그동안은 폭염이더니 어제 모처럼 비가 내려주어 그나마 더위는 한숨 쉴 것도 같다.

그래도 요즘엔 시간이 없다. 모처에서 두어 달쯤 리뷰를 쓰는 조건으로 책 한 권을 받아왔는데, 사실은 읽겠다고 하다 고사를 했던 책이다. 근데 뭐 때문인지 기어이 보내와 결국 읽고 말았다. 리뷰를 써야 하는데 알다시피 폭염에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다롱이 역시도 심상치 않아 여태 쓰지 못하고 있다. 


다롱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녀석은 키워 본 중에 가장 애를 먹이는 개로 기록될 전망이다. 키울 때도 쉽지 않았는데 마지막도 이렇게 힘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다롱이는 20여일 전부터 신경안정제를 먹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잠을 자지 않아 내려진 특단의 조치다. 자기도 괴로운지 밤이고 낮이고 찡찡대니 그것을 받아주는 것도 한계다. 무엇보다 어무이가 잠을 못 자니 그렇게 사랑으로 키웠던 다롱이를 향한 증오가 극에 달할 정도다. 오죽하면 안락사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려고. 물론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하긴 반려인이 건강해야 반려견도 돌볼 수 있는 거지 죽을 날이 머지 않은 개 돌보겠다고 사람이 희생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울어무이를 보면 물론 아동학대를 결코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아동을 학대하는 마음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다롱이를 미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밉다고 해서 그게 아동이나 동물 학대로 가면 결코 안 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사실 다롱이가 강적인게 신경안정제 하나만으로도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밤에 자기 전에 약을 먹이면 못해도 아침까지는 가야할 텐데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에 깨서 또 보챈다. 병원에서는 다롱이가 워낙 노견이라 약의 도수를 함부로 높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정 얘기를 하자 뭔가의 약을 더 처방을 해 줬는데 모르긴 해도 진짜 수면제는 아닐까 싶다. 의사는 이건 확실히 효과가 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웬걸 대신 다롱이는 먹지 않았다. 그걸 먹기 전에는 식욕하나 만큼은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는 입맛 나는 영양제도 같이 넣었다고 했으니. 먹는 것도 잊고 잠만 자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 의사에게 전화를 하니 그렇다면 수면제를 빼보라고 한다. 그래서 뺐지만 당장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까지 물조차도 자기가 알아서 입으로 먹지 못해 입을 벌이고 넣어줬다. 신경안정제와 녀석이 먹는 밥은 말할 것도 없고. 빈속에 약을 먹이면 안 된다니 어쩌겠는가. 강제로라도 넣어줘야지. 


그런 걸 보면 몸은 점점 마르다 못해 경직되어 가는 것 같았다. 기르던 개가 식음을 전폐하면 결국 마지막이라던데 그때가 가까이 이른 건 아닌가 싶어 그동안은 간헐적으로 울다 어제는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그래. 가려면 가라. 남들은 안락사도 시켜준다는데 차마 그런 식으로 보낼 수는 없고 녀석이 알아서 가 주길 바랄뿐이었다. 새삼 우리가 다롱이를 너무 많이 좋아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정 떼기가 어려워서야 원.


헉, 근데 오늘은 좀 다르다. 전날까지만 해도 밤낮으로 잠을 자던 녀석이 오늘은 좀 정신이 나는지 아침부터 일어나 낑낑대며 보채는 것이 수면제를 먹기 이전으로 돌아 온 것이다. 먹는 것은 여전히 넣어줘야 하지만 어제 보다는 훨씬 많이 먹었다. 그러니 마음이 다소 놓이긴 했다. 


하지만 과연 뭐가 잘하는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이렇게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다롱이를 끝까지 돌보는 것이 옳은 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롱이를 편하게 보내주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니할 말로 다롱이를 수면 상태에서 업체에서 데려가 안락사를 시킨다면 그걸 알았을 때 우리에게서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가장 좋은 건 녀석 스스로가 가는 건데 아직은 그럴 맘이 없는 건지 이것도 다롱이를 너무 사랑한 때문은 아닌지 그저 마음만 심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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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3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픈이를 돌보는건 반려동물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군요. 맘도 많이 아프시고 몸도 힘들고.... 이 더위에 고생이 많으셔요. 다롱이도 그 맘을 알겠지요.

stella.K 2021-08-03 19:42   좋아요 0 | URL
정말 올여름은 어떻게 지나가나 싶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녀석 때문에 오늘 새벽엔 잠을 설치고 아무 것도 못하고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고 다롱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더라고 우리를 잊지말았으면 좋겠어요.
고맙슴다.^^

scott 2021-08-03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사랑하면 끝까지 한번 책임지면 하늘 나라 갈때 까지ʘ̥_ʘ

stella.K 2021-08-03 19:47   좋아요 1 | URL
무슨 표어 같네요.
전 죽을 땐 연명치료 같은 거 안하고
3, 4일 앓다가 죽었으면 좋겠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정말...ㅠ

syo 2021-08-03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롱이 뽜이팅......

stella.K 2021-08-03 19:53   좋아요 0 | URL
스요님 아실런지 모르겠는데 옛날 60년대
가요중에 이런 노래가 있죠.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지울 길 없어
빗소리도 슬피 우네(?)
물론 그 사랑이 이 사랑과 같은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다롱이를 너무 많이 사랑한 것 같습니다.
사랑한 죄 밖에 없는데 이렇게 애를 먹이고 있습니다.ㅠㅠ

레삭매냐 2021-08-05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에는 좀 선선해졌지만
낮에는 여전히 덥네요...

시원한 곳만 생각나네요.

stella.K 2021-08-06 19:29   좋아요 0 | URL
밤에 잘 때는 이불을 살짝 끌어 덥게도 되던데요?ㅋ
오늘은 소나기가 살짝 지나더니 더 선선해진 것 같아요.
이제 늦여름이고 낮에만 덥겠죠.
또 그렇게 그렇게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겠죠.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페크pek0501 2021-08-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 - 고통이란 낱말과 함께 다녀요.

stella.K 2021-08-12 19:1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슬플 줄 알았으면
다롱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는데...ㅠㅠㅋ
 

자랑은 아니지만 난 추위 보단 더위에 특화된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치 덥지 않으면 에어컨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이번 더위는 웬만한 것이 웬만치가 않다. 어찌나 덥던지 결국 못 참고 에어컨을 지난 주부터 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삼 천국이 따로 없구나 싶다. 그러니까 에어컨을 끄면 지옥이고 켜면 천국이다. 천국과 지옥이 한끗 차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에어컨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에게 감사하고 싶을 정도다.)


그걸 실감하는 건 내 방 창문은 서쪽으로 나있다. 그런데 비해 거실은 동쪽으로 나 있다. 해가 뜨면 거실도 만만찮게 더워지기 시작하지만 아무려면 하루종일 달구고 서쪽으로 지는 해에 비할까. 해가 지는 시간에 내 방에 있으면 요즘 에어컨 기능이 좋아져 실내 곳곳을 시원하게 한다지만 내 방은 예외다. 물론 찬공기는 주로 아래쪽에서 돌기 때문에 한창 더울 땐 차라리 낮잠을 자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이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있겠지만 나는 요즘 밤이면 에어컨을 끄고 창문과 방문을 열어 맞파람을 치게 해 놓고 그 길목에 머리를 두고 누워 EBS2에서 하는 클래스 강좌를 듣는 것이다. 얼마 전엔 오후라는 작가의 마약 중독에 관한 강좌를 들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 작가는 정말 사람들이 마약 중독에 대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을 잘도 포착해 들려준다. 송사비의 클래식 강좌도 꽤 들을만 하고. 이런 더운 여름에 이런 낙이라도 없었다면 어떻게 보냈을까 싶기도 하다.


그게 끝나고 나면 멍TV를 하는데 편집없이 사람의 어떤 동작이나 일을 10분간 보여 주는 것이다. 잘 안 보지만 요즘에 나오는 건 뭔가의 일을 하는 사람의 손동작을 보여 주는데 보고 있으면 잠이 올 것만 같다. 어떤 땐 시작도 하기 전에 잠이 들기도 하지만. 

무슨 얘기냐면, 난 이런 더위에도 잠 하나만큼은 잘자고 있다고. 

이 글을 읽고 나만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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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9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의 더위 견디시는 모습, 울 할무이 모습인뎅 ㅋㅋㅋㅋ이런 상태로 동영상 응시 하시면 시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더위 쫒는 방법은 쉬원한 에어콘 🧊 🍧 🤿

stella.K 2021-07-30 18:38   좋아요 1 | URL
췟, 할머니요? 하긴 옛날 같으면 제 나이 정도면 슬슬
손주가 하나 둘씩 태어나기 시작한 나이죠.ㅎ
누워서 TV 보는 게 그렇게 안 좋은가요? 이거 상당히 오래된 습관인데 어쩌나...ㅠ

조그만 메모수첩 2021-07-29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는 방법은 아닌데 욕조에 찬물 넣고 들어가서 책을 읽는다는 분이 계시더군요. 높은 온도와 습도 건강 지키시는 나날들이길 바랍니다~

stella.K 2021-07-31 19:47   좋아요 1 | URL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입욕하면서 독서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책 한 권 읽고 나온다던데 대신 살이 퉁퉁 불어 나올텐데
그래도 좋은지 모르겠어요.ㅋ

바람돌이 2021-07-29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더위를 힘들어 하므로 에어컨과 선풍기를 껴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널부러져 있을 것이며, 돋아나는 땀띠로 인하여 짜증 만땅일 것이므로.....

stella.K 2021-07-30 18:5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돋아나는 땀띠! 맞아요.
2, 30년전만해도 에어컨은 사치품이었는데
지금은 없으면 안되는 필수품이 됐어요.
옛날엔 전기 요금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잘 안 켰는데
지금은 뭐 여름에 냉장고 하나 더 사용한다고 생각해야죠.ㅋ

기억의집 2021-07-30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후 마약에 관한 책 읽었어요. 이 작가 몰랐다가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를 유투버 궤도가 소개 하길래 흥미가 생겨 읽었다가 다 읽게 되었는데.. 책에는 약간 마약에 대해 우호적인 것도 있어요. 그게 좀 맘에 안 들긴 했지만 나름 괜찮었는데 유투브에서 ebs 오후 찾아 봐야겠네요.

전 아예 에어컨 틀고 끄고 난 후에도 더운 공기 못 들어오게 24시간 문 닫고 살아요. 솔직히 저도 아주 오랜된 사람이라 더위에 강한데 애들이 있어서 켜게 되더라구요

더운 여름 건강 챙기세요~

stella.K 2021-07-30 19:07   좋아요 0 | URL
아, 오후 작가를 아시는군요.
EBS는 공영방송이라서 그럴까 별로 우호적이란 느낌은 안 들던데.
근데 정말 이 사람은 똑똑한 것 같더라구요.
단순히 정보만 챙기는 게 아니라 마약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까지
잘 얘기하더군요. 이 사람은 한때 쪽집게 과외 교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가끔 실내 공기를 환기도 해야한다더군요.
더워 더워해도 이럭저럭 반은 지나갔지 싶네요.
폭염만 꺾이고 밤에 잠만 잘자도 지낼만하죠.
기억님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1-07-30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오전엔 종이책 독서로, 낮엔 티브이로, 밤엔 오디오북으로 이 지루한 여름을 견디고 있어요.
그저께인가 티브이로 영화 ‘투캅스‘- 안성기와 박중훈이 출연- 을 봤는데 오래전에 본 것이라 새로 보는 느낌으로 재밌게 봤어요. 뭔가에 몰입해 있으면 여름이란 계절을 잊지요.
책과 영화가 없다면 더 지루한 여름이 될 듯합니다. ^^**

stella.K 2021-07-30 19:14   좋아요 0 | URL
역쉬!
전 요즘 영화는 거의 안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고 있죠. 솔직히 영화는 너무 짧고
드라마는 너무 길다는 생각이에요.
한 14나 12부작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16부작은 넘 길어요.
엇,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 얘기 했던 것 같아요.
왜 기시감이 느껴지죠?ㅋㅋ
그래도 뭐 어쨌든 소설 읽는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ㅎ
얼마 전까지 <모범택시> 봤구요 지금은 <괴물> 보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봐야할 드라마가 줄줄이죠. 전 왜 드라마를 좋아하게
됐을까요?ㅎㅎㅎㅎ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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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기는 을지로 어디쯤에서 태어났지만(정확히는 집과 가까운 어느 산부인과 병원이었을 것이다) 워낙 어렸을 때라 태어난 집은 기억에 없고, 두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이사한 광희동 집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집이다. 그 집에서 거의 9년을 살고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적잖이 기쁘고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 집에서 너무 오래 살까 봐 내심 걱정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새롭게 이사 간 집에서 산 세월을 생각하면 그 집은 그렇게 긴 세월도 아닐 테지만 확실히 9년이란 세월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다.


내가 그 집에서 오래 살까 봐 걱정이었던 것은 집으로 보나 동네로 보나 별로 좋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리도 회색빛 그 자체인 것인지. 풀 한 포기 제대로 구경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동네는 또 얼마나 후미지고 지저분한지. 한 때 집 앞 공터는 쓰레기 집하장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영아의 시제가 발견되기도 했다. 게다가 누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했던가. 어느 집에서 싸움이 시작됐다 하면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구경하기 바빴다. 글쎄 그게 보기에 따라선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생각하면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책에도 보면 어느 교양 있는 점잖은 중년 부부가 이사와 그대로 점잖게 살고 싶어 했지만 동네가 워낙 그렇지 않아 결국 악다구니를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다.   


그래도 우리 집이 나쁘지 않았던 건 옥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엄마가 그 집을 원했던 것도 바로 이 옥상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4 남매는 한창 자랄 나이라 마구 뛰어놀 공간이 필요했다. 그 집은 마당이 작은 대신 옥상이 있었으니 뛰어노는데 이만한 장소도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빨래를 말리고, 간장을 달이기도 좋고. 


어느 날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동네 아이들이 눈을 크게 굴리며 "야, 이 집은 옥상이 있어." "어, 정말? 좋겠다. 옥상도 있고." 그게 내 귀엔 나름 크게 들렸다. 뭐야, 그럼 쟤네들 집엔 옥상이 없단 말이야? 아이들은 우리 집에 옥상이 있는 것을 부러워했겠지만 난 그 아이들의 집에 옥상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 난 그때 우리 집에 대해 조금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집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기와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학교를 다니게 됐는데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당시론 현대식 이층 양옥집 두 채가 지어지는 걸 보면서 다녔다. 그게 어찌나 신기하고 부럽던지 도대체 누가 이런 집을 짓고 사는 걸까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했다. 학교와 친구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새로운 집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때는 70년 대 중반 지금의 강남의 옛 지명인 영동지구였다.(난 오래도록 이 의미를 몰랐는데 국회가 있는 영등포구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서 실소했다.) 난 지금도 궁금하긴 하다. 왜 하필 부모님은 하고 많은 곳 중 그곳을 선택했을까. 그곳이 지금의 '강남 불패'라고 이름 지어진 곳이란 걸 아셨을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전에 아버지와 엄마는 천호동을 알아보기도 했다고 들었다. 


아무튼 우리가 이사한 곳은 정확히 논현동이었다. 이사할 집은 앞서 말했던 학교 가는 길에 보았던 이층 양옥과 비슷했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흡사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동네는 '친애할만한 곳'은 못 됐다. 논현동의 논이 논 논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로가 포장이 되지 않아 비가 오면 질척해 발이 빠졌고,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말도 못 했다. 나는 서울에 아직도 붉은 흙과 개천과 달구지를 맨 소가 똥을 싸고 지나다닌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떠나 온 광희동 옛집을 그리워했다. 적어도 그 동네는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런 생각은 그 후 2, 3년 내에 말끔히 사라졌지만.  


저자는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어린 나이에 느꼈던 계층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 경험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나의 경우는 공부에서다. 즉 학습격차. 먼저 다니던 학교에서 공부를 썪 잘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은 했다. 하지만 전학한 학교는 여간해서 중간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학교는 생긴지는 얼마 안 되었고 이런 시골 같은 곳에서 처음부터 이렇게 경쟁적이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나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2, 3등을 했던 언니가 고등학교는 중간으로 떨어지더니 3년 내내 반등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사실 언니는 이사는 해도 전학은 하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다녔다. 그러니까 언니가 다녔던 중학교는 소위 말하는 8 학군 지역이 아닌 것이다. 고등학교 때야 비로소 8 학군 내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난 처음 그런 언니가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공부하는 차원이 달라서 그런가 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특정 학군이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 공부가 평등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원래 학교란 나의 존재가 인정되고, 학습의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학교는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커트라인을 만들어 놓고 미달자, 패배자를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중학교 때 언니는 당당했고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런 언니가 중간을 했으니 그 박탈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언니만이 알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딸의 성적이 그렇게 떨어졌는데도 아버지나 엄마는 그것을 학교의 문제로 보지 않고 언니가 실력이 없고 공부 머리 없는 집안 내력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건 차라리 우리를 살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와 아버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간만 해라 주의였으니까. 안 그랬으면 우리 중 성적 비관 자살자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학교에서 찾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본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학교란 공부를 하는 곳이고, 내 자식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보내는 곳이 아닌가. 내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공부를 못하는 것이 어떻게 본인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왜 학교의 문제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걸까. 그랬다면 부모는 내 자식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해 학교에 더 많이 문제제기를 하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러기보다 오히려 촌지를 바치고 과외라는 편법을 선행학습으로 둔갑시켜 정당화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더구나 언니가 학교를 다녔던 때는 학력고사 시대였고, 대학도 전기와 후기로 나누던 때였다. 당연히 전기의 대학은 좋은 대학이고 후기는 실력 없는 대학이었다. 이건 또 얼마나 아이러닌가. 학교가 학생을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학교를 맞춰야 한다.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매년 학교에서 실시하는 가정환경조사는 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 그거야 말로 "어디 살아?"란 질문을 노골적으로 제도화했던 비열하고 비인격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강남의 8 학군이니 뱀의 머리가 되느니 용의 꼬리가 되라고 할 텐가. 


어쨌든 그 집을 25년을 살았으니 우리도 그렇게 오래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원래 미국은 잘 사는 집일수록 언덕 꼭대기에 저택을 짓고 산다던데 우리나라는 어디 그런가. 언덕 꼭대기면 달과 가까워 달동 네고 산동네지. 그곳을 우리 4남매야 평지를 오르내리고, 아버지는 자가용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출퇴근하신다지만 그 집에서 제일 고생한 건 역시 엄마다. 집에서 시장까지 일주일이면 거의 두세 번은 무거운 시장 가방을 들고 오르내려야 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더구나 그땐 우리가 한창 자라느라 먹성이 좋았고 도시락도 싸 가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또 본의 아니게 있는 집 자식들이라 아무 반찬이나 싸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귀한 집 자식일수록 마구 굴리며 키워야 하는데 그 시절 우리네 부모들이 다 그렇듯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을 경험한지라 '내 자식 마는 좋은 것으로'란 생각이 엄마, 아버지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뼈골 빠지는 건 당신들이고 그걸 알리 없는 우리는 천하의 후레자식 되는 거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때의 고난을 밥반찬 삼아 얘기하곤 한다. 


그러던 중 동네가 리모델링 바람이 불었다. 집을 아예 부수고 새로 짓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바람을 타고 집을 새로 지었다. 지하 일층, 지상 이층으로 지어 1층은 우리가 살고 나머지는 세를 주는 방식으로 살게끔 지었다. 처음엔 새집이었으니 그 기분이 남달랐던 것도 사실이다. 마당을 3분의 1로 줄여 실내는 널찍했지만 역시 마당이 줄은 건 아쉬웠다. 그 집의 하이라이트는 마당에 있었는데 말이다. 25년 중 10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세상 공부하려면 집에 세를 들여 보아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엔 있는 사람이 입바른 소리 하면 갑질로 비치고 이 책의 기조와도 맞지 않아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제까지나 그 언덕 꼭대기의 집에서 살게 될 줄로만 알았던 우리가 이사를 했다. 이사 경험은 그리 많지 않지만 우린 이사할 때마다 좋아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의 이사는 집안이 기울어 줄여가는 이사다. 오빠가 사업에 실패해 집은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갔고 우린 마지막 2년을 전세로 돌려 살았다. 그때 처음 세입자가 되었다. 만감이 교차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을 산 새 주인은 대체로 좋은 사람 같아 별 마찰 없이 살았다. 하지만 우리 집이 이사를 했을 땐 가차 없었다. 그 주인은 2년 후에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집을 부수고 새로 지을 거라고 했다. 이미 남의 집에 뭐라고 할 건 없지만 10년 정도밖에 안 된 집을 부순다니 뭔가 낭비 같기도 하고 되게 아쉬웠다. 그 집에서 우리 4남매는 학교를 마쳤고, 언니가 시집을 갔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사 한 달 앞두고는 반려견인 (몰티즈 암컷) 제니가 죽어 마당에 묻혔다. 그땐 반려견의 장례업이 아직 활성화되기 전이라 어떻게 할 바를 몰라 그렇게 했다. 그런 저런 사정을 알리 없었던 주인은 제니의 뼈가 다 삭기도 전에 우리가 이사를 하자마자 당장 그다음 날 포클레인이 밀고 들어와 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듣자 좀 서늘했다. 만일 우리 집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예정했던 날 보다 하루나 이틀만 늦어도 그렇게 했을까 알 수가 없었다.


우린 그렇게 그곳을 25년 만에 떠났다. 저자는 집에 관해 쓰는 건 한 시대를 쓰는 거라고 하는데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청년 시절의 반을 보냈다. 처음 이사 오고 살 수 있을까 싶지만 우린 어쨌든 살았다. 살다 보면 살아온 곳은 다 친애하는 곳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그런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집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풀어내고 있다. 유년 시절은 물론이고 도시와 공간, 사회 계층 간의 문제 나아가서 페미니즘의 문제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누구든 인생에 한 번은 자기 이야기를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담에도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름만 남겨서야 되겠는가.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와서 무엇을 경험하고 살았는지 자기 인생 보고서 정도는 남겨야지. 어찌 보면 집에 관한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다. 누구든 그 시작은 집이란 공간에서부터 시작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난 많은 부분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고 동의하지만 장르가 좀 불명확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순수하게 자전 에세이로 써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참고 도서와 인용구 등을 밝혀놓은 것이 무슨 논문이 되기를 바랐나 좀 애매모호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부분 저자 개인의 생각을 일반화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논증이 필요한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에세이라면 그건 개인의 생각이란 걸 전제하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도 별무리가 없었을텐데 말이다. 그냥 그렇다고.) 열심히 썼다는 건 인정하지만 에세이도 아닌 것이 논문도 아닌 것이 저자의 의욕이 너무 앞선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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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kang1001 2021-07-13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7-13 19:56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오히려 읽어주셔서 제가 더 고맙지요.^^

scott 2021-07-13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의 추억이 지나간 자리, 서울 곳곳 아파트 숲이 들어서기 전 마당을 소유 했던 삶이 그려지네요.

스텔라 케이님 반려견 이번 무더위 무사히 잘 견디길 바랍니다. ^ㅅ^

stella.K 2021-07-14 18:5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다롱이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즈음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엔 잠을 잘 안 자서 신경안정제를 먹이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효과가 좋은 건 아니더군요.

hnine 2021-07-14 0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집의 역사는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고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stella.K 2021-07-14 19:0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꾸 옛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들었습니다. 그죠?^^

페크pek0501 2021-07-14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고 도서와 인용구를 밝혀 놓은 걸 보면 저자가 공을 많이 들인 책 같네요.
책 하나로 이렇게 길게 글을 쓸 수 있는 스텔라 님의 능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진심!!!
덕분에 재밌게 읽었어요. ^^

stella.K 2021-07-14 19:10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긴한데 의욕이 넘 앞서지 않았나 싶어요.
조금은 힘을 빼도 될 것 같은데...

사실 이 리뷰 쓰는데 보름쯤 걸린 것 같아요.
요즘 제가 사는 게 말이 아니고 생각은 넘쳐나는데
다 쓸 수는 없고, 시간도 없고.
쓰는데 좀 애를 먹었습니다.
언니 같이 깔끔하고 명확하게 써야하는데 그래서 제 글은 별로
인기가 없나 봐요.ㅠ ㅋ

희선 2021-07-14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은 지금까지 살았던 집을 잘 기억하고 있었군요 오랜 시간을 보낸 집을 떠나야 했을 때는 아쉬웠겠습니다 stella.K 님이 이사하고 바로 집을 부수다니... 집 무척 새로 짓고 싶었나 봅니다 새로 지은 그 집은 지금 있을지...


희선

stella.K 2021-07-15 18:58   좋아요 1 | URL
이런 말하면 꼰대라고 그러시겠지만 나이들면
자꾸 어렸을 때 생각이나요.
집 얘기는 그냥 어렸을 때 얘기를 하기 위한 일종의 당의정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저자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새 주인이 능력 있어서 새로 짓겠다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부수고 새로 짓는 건 하나의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ㅋ

니르바나 2021-07-19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서재 이 달의 마이페이퍼로 강력 추천합니다.^^

stella.K 2021-07-19 20:12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님의 예감이 틀린 적이 없으니 기대해 볼까요?ㅎㅎ
고맙습니다.^^

scott 2021-08-06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 이달의 당선 작으로 드디어!!

8월 무더위 다롱이와 행복하게 ~*

stella.K 2021-08-06 19:24   좋아요 1 | URL
꺄오~ 제가 이달의 거시기를 했단 말입니까!
이거 제가 거시기된 거 보다 스콧님 축하 받는 게 더 기분 좋은데요?ㅋㅋ
고맙습니다. 늘 다롱이 걱정해 주시고.ㅠ
스콧님도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8-0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stella.K 2021-08-06 19:25   좋아요 0 | URL
어멋, 초딩님 고맙습니다.
일케 친히 댓글도 남겨주시고. 기분 좋네요.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8-06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stella.K 2021-08-06 19:28   좋아요 2 | URL
아, 서니님! 이거 얼마만입니까?
그동안 좀 소원했죠? 미안함다.
제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ㅠ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좋은 주말 보내요.^^

강나루 2021-08-06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 축하 축하드려요.

stella.K 2021-08-06 20:23   좋아요 2 | URL
어멋, 고맙습니다.
언제부턴가 이달의 당선작이 되면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가 되었어요.
안 되신 분들(저도 잘 안 되는 편이긴 합니다만 ㅋ)에겐
좀 미안하지만 일케 서로 축하해 주니까 분위기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강나루님도 축하드려요.^^

니르바나 2021-08-16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니르바나 돗자리 펼까요 ㅎㅎ
파란 딱지 받으셨네요. 축하합니다.^^

stella.K 2021-08-16 14:31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앞으로 파란 딱지가 필요하면 니르바나님을
사알짝 찾아 뵐까봐요.ㅋㅋㅋ
 

오늘은 저 갠적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뭐냐구요?

바로 은행 채무를 상환한 날입니다. 

글쎄요... 얼마만일까요? 엄니는 20년만이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땐 그 보다 더 되지 않나 싶습니다. 

빚 권하는 사회라고 은행 대출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그게 꼭 나쁘기만 하겠습니까?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해서 사업을 하고 번창하면 가정 경제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도 보탬이 될 테니 꼭 나쁘다고마는 할 수 없겠죠.

우리도 그러려고 대출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더 정확히는 울오빠가 그렇게 한 거죠. 

하지만 오빠는 8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빚은 오롯이 살아있는 가족의 몫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론 채무자는 오빠에서 엄마로 넘어 갔죠. 

뭐 당장 거지가 되어 길바닥에 나앉은 건 아니고 이자만 꼬박꼬박 내면 사는대는 그렇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침 어찌된 일인지 오빠가 세상을 떠나자 엄마 앞으로 유족 연금이라는 게 나와서 이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죠.

근데 작년 여름 대출 연장하러 갔을 때 우리를 응대했던 은행 직원이 이번이 마지막 연장이라며 내년부턴 원금 상환을 조금씩이라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크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방법은 그때 가서 알려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걱정이 안 된 건 아니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말대로 그땐 또 그때의 방법이 있겠지 애써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무슨 말 끝에 엄마가 누가 엿듣기라도 하듯 저에게 낮고 작은 소리로 은행 돈 갚을 거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어 그걸 갚겠다는 건지 좀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오랜 세월을 두고 동생이 주는 생활비에서 돈을 조금씩 떼어 모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땐 엄마가 사치하거나 낭비가 심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두쇠처럼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언제 그 돈을 모았다는 건지 미스터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울오빠가 나쁜 놈이긴 합니다.

엄마 명의로된 집을 담보로 인생의 거의 반을 은행 대출로 살고 제대로 갚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부모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부족해 엄마를 채무자로 만들고 하늘 나라에서 편한가.전 살아오면서 은행 대출 할 때마다 오빠한테 이를 갈았습니다. 죽어서는 대출 연장하러 1년에 한 번씩 은행갈 때도 원망스러웠고. 물론 이미 죽고 없는 사람 원망해 뭐하겠습니까. 그래도 그때 엄마라도 오빠 편을 들지 않았다면 오빠를 덜 미워했을지도 모르죠.

그 돈을 모으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행문을 나서면서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우리 모녀는 하늘을 날 것만 같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가면서 엄마가 그러더군요. 처음 그 돈을 모으는데 과연 다 모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고. 그런데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막내 아들내미 때문에 모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제 동생은 엄마에겐 위로의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평생 4남매를 낳아 키우셨지만 엄마에겐 이 아들을 제외하곤 모두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 동생이 엄마한테 살갑고 효도하는 자식이라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엄마에겐 그늘 정도는 되어주는 자식이니 나름 위로는 되죠.

저는 말입니다, 이담에 죽어 하늘 나라 가도 오빠는 찾지 않을 겁니다.

살아서도 정없는 오누이지간이었는데 하늘 나라에서까지도 그 인연을 이어 갈 필요가 있나 싶네요. 그냥 하늘 나라 어디쯤에서 잘 살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우리 집 해방의 날입니다. 이 해방감이 얼마를 가겠습니까만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겨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도 모은행에선 돈 꿔 줄게 빚지고 살라고 문자가 오네요. 당분간은 그럴 생각 1도 없는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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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1-07-06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축하합니다.^^

리뷰 채택되어 축하 받는 것이랑 비교할 수 없는 엄청 기쁜 날이었네요.
이자는 밤에도 자지 않고 늘어난다고 하잖습니까.
빚 무서운 줄 모르면 평생 가난하게 살게 마련입니다.
정직하게 분수 지키며 사는 스텔라님이 부자입니다.

stella.K 2021-07-07 14: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글을 책과 교묘하게 연결시켜
이달의 페이퍼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아니어도 좋더군요.
은행 가기 전날은 약간 설레어었고 어제는 정말 다리 쪽 뻤고 잤습니다.
저나 울엄니는 좀 보수적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빚내서 좋은 집에 살기 보다 작더라도 빚없이 사는 게 더 좋다는주의입니다.^^

syo 2021-07-07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대단하시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전 아버지 돌아가실 때 상속포기하고 모든 걸 다 털어버렸는데.... 애증의 아버지여....

stella.K 2021-07-07 18:43   좋아요 1 | URL
제가 뭐 한 일 있나요? 울엄마가 대단하죠.
손 큰 사람에겐 별 것 아닐지 몰라도 평생 살림만 해 온
분으로선 결코 작지않은 액수였죠. 그걸 말없이 모아 오셨다는 게
저도 참 마음이 찡했습니다.
어제는 유난히 더 오빠가 원망스럽더군요.
뭐 객관적으로 보면 남에게 해 안 끼지고 성실하게
살아오긴 했지만 그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족들에겐 좀 피해를 준 사람이죠.
불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냥 그렇게만도 봐 줄 수 없는 내면에
거시기한 게 있어요.ㅋ
에고, 근데 스요님도 나름 어려운 시절을 보냈나 보군요.
나중에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웃는 날이 있을 거예요.
축하 고마워요.^^

scott 2021-07-08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정말 정말 대단, 대단
맘껏오빠분 원망 하시고
어머님은 꼭 안아주세요
스텔라 케이님 오늘 부터 다리 쭈욱 !뻗으시고
앞으로 매일 매일 웃는날 ,
어머님과 건강하게 화목하게 ( •͈ᴗ•͈)◞

stella.K 2021-07-08 18:13   좋아요 1 | URL
고맙, 고맙.ㅎㅎ
그래야죠.
참, 이달의 거시기 2관왕 축하해요^^
 


피드설정

오늘 또 북플에 지난 오늘이 오랜만에 떴다.
감동스럽진 않고, 정말 작년 오늘 내 서재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새롭다. 어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그런데 그때 난리를 치느라 잊고 있었는데 1995년 오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정신이 멍한 게 폭격이라도 맞은 느낌이었다. 그 아수라장을 얼마 전 <알쓸범잡>에서 다시 보여줬는데 놀랍고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건물을 쌓았는지 설명을 들으면 제 정신 같지가 않고 책임자들은 비교적 경미한 처벌만 받았다. 
며칠 전 미국의 어느 아파트가 붕괴 됐다는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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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29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하고 사고 동기시네요. ㅋㅋㅋㅋ
저도 작년 6월에 와장창 당했습니다.

stella.K 2021-06-30 19:38   좋아요 2 | URL
엇, 그럼 폴님도 그 의문의 팝업창 때문에요?
저 그때 알라딘에 전화했더니 전혀 모르겠다는 식이었어요.
누구라도 저와 같은 피해를 당했다면 덜 답답했을텐데
근데 폴님이 계셨군요.ㅋㅋ
그래서 알라딘에 피해보상은 받으셨나요?

Falstaff 2021-06-30 20:23   좋아요 2 | URL
옙. 팝업 창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알라딘 외부에서 공격해온 것도 아니고요 단지 후진 알라딘 전산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삽질한 겁니다.
전 항의했더니 2만원인가 만원인가 위로금 주더라고요.
그래 계속 뭐 안 된다, 뭐 안 된다.... 난리를 치다가 나중엔 결국 요구하는 제가 괜히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 작년 6월까지 했던 서재. 북플 같은 건 ‘전혀‘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사장화 됐답니다. 예컨데 누구누구의 마니아 등등의 모든 자료는 날라갔습니다.
뭐 그딴 거 보고 서재에 글 올리는 거 아니니까 별거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속이 상하더군요. ㅋㅋㅋㅋㅋㅋ

stella.K 2021-06-30 20:42   좋아요 2 | URL
헉, 위로금은 그렇게나 많이요?
저는 5천원 주던데요?
단 며칠이긴 하지만 그동안 마음 졸인 것에 비하면
터무니 없더라구요. 전 한 3만원 주나 했어요.
액수를 요구한 건 아니지만 막 뭐라고 했죠.
5천원이 뭐냐고. 정말 지네들이 잘못해 놓고.
처음엔 오히려 그래서 뭘 어쩌라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냐고 했죠.
문제 해결을 해 줄 생각은 않하고 오히려 묻다니 말이나 됩니까?
제가 뭐 거기 사원도 아니고. 어이가 없더군요.
나중에 거의 복구를 다 해줬지만 그것도 도메인 주소를 모르면
살릴 수도 없는 걸 다른 사이트에 남겨둔 기억이 있어
알려줬더니 겨우 살려줬어요.

근데 위로금 좀 억울한데요?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 다시 따질 수도 없고.ㅋ

2021-07-06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07-06 18:18   좋아요 0 | URL
엇, 저는 이 글에 댓글 다신 줄 알았습니다.ㅋㅋㅋㅋㅋ
맞아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고 식은 땀이 날 것 같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