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요크셔테리어 숫커)가 잠을 잔다.
지난 주말 병원에 다녀 온 후로 잠이 더 는 것 같다.
원래 예민한 성격이라 잠을 자도 몇번씩 깨곤 하지만 저렇게 한번 깊은 잠에 빠지면 정신없이 잔다.
병원 가기 전엔 비교적 잘 먹고 잘 지냈다.
이번에 병원 행차는 1년 3개월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병원갔던 그 1년3개월 전엔 녀석이 갑자기 핏똥을 쌌다. 그것도 한 두 번도 아닌 여러 번을. 말하자면 멎질 않는 것이다.얼마나 놀랐던지 녀석이 뭔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됐나 보다 했다.
그래도 의사가 실력이 좋아선지 다행히 치료를 잘 받고 퇴원했다.대신 췌장염이란 훈장을 달았다. 즉 다롱이는 겉으로 보기엔 나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췌장염은 난치병으로 평생 관리해줘야 한단다.
잠시 녀석이 주인을 잘못 만나 그런 병에 걸렸나 자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건 다롱이를 돌보는데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다.
관리라봤자 아무 거나 먹이지 않고 지방을 뺀 특수 사료만 먹도록하면 된다.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가 보면 무식하다고 하겠지만 녀석이 건강할 땐 사료 외에도 인간이 먹는 간식은 다 먹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료건 간식이건 다 사람이 먹는 것 가지고 만들지 않는가. 그걸 주는데 무슨 상관이랴 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나 줬던 건 아니다. 이걸 가지고도 엄마와 난 의견이 달라 누구는 조금만 줘라, 누구는 사료를 안 먹는데 이런 거라도 먹게 해 줘야하지 않냐 옥신각신 말이 많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도 우리는 동생이 사 온 통닭을 먹으면서 녀석에게도 먹였던 것 같다. 결국 그런 전적이 쌓여 핏똥을 싸고 췌장염이란 훈장을 얻은 거겠지.
문득 그때가 생각이 나면서 그동안 우리가 다롱이에게 무엇을 주었나를 복기하기도 했는데 그 복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녀석은 나름 잘 먹어왔던 사료를 먹지 않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평소 좋아하는 견빵(건빵을 개에게 맞게 만든 것인데 첨가물을 봤더니 마가린과 조지방이란 게 들어가 있다)과 콩으로 일관했었다. 물론 이것 조차도 어떤 땐 잘 안 먹기도 했다.그러다 얼마 전엔 우유를 주기도 했다. 우유에도 지방은 있다던데 펫밀크였다면 탈이 안 났을까.
1년 3개월 전엔 그렇게 신경을 써 줬던 의사는 이번엔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녀석에게 해 준 거라곤 링거를 놔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람 의사나 개 의사나 가능성 있는 환자에게만 신경 쓰겠다는 태도는 매한가진 것 같다. 그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녀석은 링거를 맞고 거의 파김치가 돼서 왔다. 와서도 잘 먹지도 않았다. 아마도 녀석이 이번엔 좀 어렵지 싶었다.
그나마 그저껜 뭘 먹는 것 같더니 어제는 다시 거의 먹지 않고 잠만 잤다. 안 먹으면 간다던데 아무래도 녀석이 갈 모양인가 보다 마음이 안 좋았다. 새벽에 잠시 깨면 녀석이 밤새 간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차마 확인해 볼 자신이 없다. 엄마가 그 옆에서 코를 골고 자는 걸 보면 아직은 살아있는 것 같긴했다.하지만 녀석이 얼마를 버텨줄 건가를 생각하면 어느 새 잠은 멀리 도망가고 대신 눈물이 배게잇을 적셨다. 그러다 어느 새 또 잠이 들고.
오늘은 아침부터 제법 꽤 먹었다. 혹시 탈이 날까 두려워 더 주고 싶어도 못 줄만큼 녀석은 활기차게 먹어댔다. 잘 먹으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저녁은 건너 뛰고 저렇게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될까. 언제나 그랬지만 2003년 10월 생 다롱이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