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 얘기는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언뜻 떠오르는 건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주인공 앤디가 아내를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 않는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겠는가. 하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잠재울 수 없었던 앤디는 자신의 감방 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뚫어서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자유를 쟁취하지 않던가. 앤디가 탈출하기 전까지 교도소 생활을 하게면서 겪는 부조리와 인간군상을 보는 건 덤이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오래전에 읽었던 빅터 프랑크의 <죽음의 수용소> 생각이 난다. 빅터 프랭크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앤디가 더운 날 쉬지도 못하고 짐승 같은 노역을 감당해야 하는 죄수들에게 약간의 휴식 시간과 갈증을 풀어 줄 맥주를 나눠 마시는 장면은 그가 죄수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는 장면과 비가 쏟아지던 날 탈출에 성공하고 하늘을 향해 한껏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장면과 함께 명장면으로 뽑을 만하다. 또한 그는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는가.
지난 주일 잠시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단막극을 봤다. 장류진 작가의 원작을 드라마화했다. 이 드라마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다.
초반엔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이 겪는 몇 가지 에피소드와 인간군상들을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뭐 나름 나쁘지 않지만 왜 <쇼생크 탈출>이 명화인지 알 것 같다. 제작비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여기선 주인공의 실존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의지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중반까지 계속 주인공의 시각에서 직장 생활의 답답함과 부조리함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가면, 사이트에 거북이알이란 닉네임의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치게 여러 물품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럴까 궁금증이 발동한 사장이 주인공에게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그를 만나보라는 특명을 내린다. 주인공은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시키는 일이니 하는 수밖에.
만나 본 거북이알은 의외로 반듯한 40대 초반의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런 여자가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은 그렇게나 많이 올리다니. 뭔가의 사정이 있겠지 싶기도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이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거북이알은 자신을 순순히 열어 보인다.
그녀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황당하게도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받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녀는 어느 대기업의 문화 기획 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클래식 마니아인 회장이 러시아의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켜 보라고 한다. 성사시키면 특진이 예약되어 있기도 하다. 그녀는 고진감래 끝에 성사시키고 공식적으로 공연 확정을 알리는 광고를 올렸는데 그게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만다. 즉 그 광고는 회장이 자신의 SNS에 직접 올렸어야 했던 거다. 그것을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린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덕분에 특진은 물 건너가고 좌천 비슷한 부서 이동을 당한다. 일명 회사 이름을 딴 카드사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회장이 들이 닦쳐서 회사 포인트가 왜 좋은지 말해 보라고 한다. 그녀는 당당하게 두 배로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회장은 그럼 그 좋은 포인트를 1년간 월급 대신 받으라고 한다.
거북이알은 진짜 월급을 포인트로 받을까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진짜 받는다. 이때부터 난 슬슬 감정이입이 슬멀대기 시작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1인 시위라도 해야 아닌가. 그도 그렇지만 과연 이런 또라이 같은 회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확실히 인권 말살이다. 어쨌든 결국 그때부터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 거북이알의 지난한 여정을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물론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자신이 한 일이 그렇게 죽을 죄였나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살기를 모색하는 것이다.
거북이알의 대사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온다. 살다보면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 못할 일을 겪게 되지 않냐고. 그때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그게 이상하게도 나의 폐부를 찔렀다. 나는 지금 자발적 백수로 살고 있지만 한때 나도 사람과 부딪히며 일한 적이 있다. 그러면 정말 나의 이성과 상식으론 이해 못할 일을 많이 봤다. 그럴 때마다 난 나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과연 지금 깨달았던 걸 그때 깨달았더라면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영화 <쇼생크 탈출> 보다 좀 못하긴 하지만 묘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작품성에서 <쇼생크->이 당연 갑이지만 현실을 그리는 건 이 드라마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나라면 앓느니 죽는다고 이건 짐을 싸라는 뜻이구나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직원은 다 돈을 받는데 자기만 포인트로 받는다면 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일일이 현금으로 바꾸는 것도 구차스럽고. 그렇다고 그만둔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야 하니 구차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감내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난 포기가 빠르다. 어렵고 힘들겠다 싶으면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포기하고 만다. 견디고 참는 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어떻게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지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난 그런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아름다운 건 뭔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같은 날 밤 나는 우연찮게도 박위(이름이 멋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 자식을 낳으면 나도 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했다.ㅋ)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TV에서 보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그는 꽤 유명한 유튜버다. 그는 지금 30대 중반 정돈데 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하지만 그는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현재 손은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고 몸을 어느 정도 추스러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그러한 노력을 너튜브에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차츰 알려져 지금은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자신의 방송명이 미라클 TV라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다치는 순간에도 한 번도 좌절하지 않다고 한다. 재활에 성공해서 반드시 옛날의 건강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다. 설혹 그러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영상 한 번 보고 죽어야지 하고 보다가 다시 마음을 돌이켜 삶을 선택했다. 과연 기적이다. 정말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이 남도 살릴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최근에 쏟아져 나온 비속어 같은 단어들 흑수저니, 헬조선이니,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어낸 말일뿐이고 그 말에 매어 자신을 소모하거나 불행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의외로 낭만적인 존재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 존재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내 편으로 만드는 영특한 존재인 것이다.
올해 우리는 그 어느 해 보다 어렵고 힘든 해를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불행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내년이 올해보다 나을 거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흙을 포클레인으로 파도 부족할 판에 삽도 아니고 숟가락으로 파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설혹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올지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인간은 어차피 시지프스의 후예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