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채 배우를 좋아해 보기 시작했다. (이동휘는 내 스타일은 아니고.)
어찌보면 오래된 연인의 그렇고 그런 시시한 이별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보고나서 읭, 이거 뭥미? 했다. 그런데 또 이런 이야기가 의외로 뭔가의 여운이 있어 날아가기 전에 붙잡아 두겠다고 몇 자 적어 본다.
솔직히 난 음식과 로맨스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 영화는 아무리 잘 차려놔도 먹을 수 없고, 로맨스 역시 남의 사랑 이야기라 특별히 감흥이 없다. 또 그런 영화는 MSG가 있지 않은가. 사랑은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로맨스 영화는 이루는데까지만 보여주는 게 대부분이니까 그 여운이 오래 가지도 않는다. 더구나 사랑의 유통기한은 짧으면 3 개월 길어야 1년을 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 나머지는 '사랑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문제다. 하지만 고민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
어쨌든 그러다보니 사랑을 이루는 것 보단 차라리 왜 헤어지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나에겐 오히려 신선하게 왔다고나 할까?
이 영화는 오프닝 씬부터가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영(정은채 분)이 미술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전공과 다른 부동산 중개 일을 하고 있다. 텅 빈 어느 집에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가 집을 구경하며 행복해 한다. 아영은 그것과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그 예비부부의 뭔가의 질문에 기계적인 미소로 대답을 한다. 그 대비되는 표정에서 그녀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준호(이동휘 분)와는 CC로 만나 동거부터 시작한 아영. 시작했을 땐 행복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준호가 지겹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만년 공시생일뿐이다. 동창 모임에 나가도 가오가 나질 않는다. 그리고 매사 대충 좋은 게 좋은 거려니 하는 안일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니 짜증이 난다. 뭐 그것까지도 좋다고 치자. 그녀가 못 참는 건 준호의 거짓말이다. 집에 있으면서 독서실에 있다고 하곤 백수 친구와 게임 한 판 뜰려고 하다 딱 걸렸다. 결국 그것이 빌미가 돼 준호는 순식간에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문득 과연 동거가 결혼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동거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살아 보고 결혼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합리적여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갈수록 결혼을 안 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줄어 들 수는 있어도 여전히 결혼들은 한다. 결혼이 합리적이지 않는데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하지는 말자. 결혼은 선택이니까.
그런데 동거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달리 생각해 보게 되더라. 단순히 살아 보고 결정하는 거던가 그냥 좋아서 동거부터 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기우는 동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의 집에 누가 들어와 살 거냐에 따라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살다가 싫어지면 일방적으로 쫓겨나야 한다. 그건 얼마나 X팔리는 일인가. 영화속 준호처럼 말이다. 그런 걸 보면 그냥 각자의 집이 있고 데이트만 하는 다소 고전적인 방법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란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둘은 그렇게 헤어지고 또 얼마 안 있다 각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준호는 아영 보다 훨씬 젊고 어린 여대생과 동거를 하고, 아영도 준호 보다 훨씬 능력있고 매너 좋은 남자와 교제를 한다. 둘은 한동안 잘 될 것만 같았는데 잘 안 됐다. 무엇보다 그 능력있는 매너남은 사실은 애 딸린 유부남으로 이혼도 하지 않으면서 아영에게 껄떡대고 있었고, 준호 역시 아영 보다 좋은 상대였지만 아영에게 베풀지 않아도 되는 친절을 베푸느라 소홀히 해 놓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준호는 아영의 집을 나올 때 태블릿이 딸려 와 그것을 돌려 주러 잠시 나갔다 들어 오겠다며 그 동안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놓고 있으라 했다. 하지만 아영과 얘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그것을 잊었는지 돌아와 보니 음식은 이미 배달 돼 먹지도 않고 개수대에 쳐 밖혀 있고 여대생 애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장면이 참 묘한 여운을 남긴다.
결국 헤어진 연인들은 새로운 상대를 만나도 여전히 볼온한 걸까? 그래서 다시 새로운 상대를 만나 봤자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영과 준호는 스스로가 뭔가를 뛰어 넘어야 할 것 같은데 그 굴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건 사랑은 언제 누구를 만나든 두근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게임을 해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동거를 하면 사랑을 쟁취했다고 착각하고 안온함을 찾으려고 한다. 인간관계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게 인간관계라는 거 우린 이미 너무 많이 경험하고 살아 오지 않았던가. 있다고 해도 얼마되지도 않는다. 냉정히 말해 준호는 쫓겨날 짓을 했다. 아영의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재빠르게 대처했더라면 그 지경까지는 안 갔을 거다. 오히려 남의 집에 얹혀 살아도 당당하고 재미지게 살지 않았을까.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영화는 다음은 그 보다 더 못한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노래했던 모 가수의 노래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것을 깨달았을 땐 늦었고 늙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진짜 인생 종친다.
영화가 단백하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선 심심할 수도 있겠다. 이렇다할 빌런도 어떤 질투도 음모도 없다. 난 때로 이런 스토리를 좋아한다. 그냥 존재만으로도 이야기가 되는 거. 물론 다 좋다는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