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꾀 부린 자, 꾀로 망할 것이니…위선과 변명 꾸짖는 '성인 우화'
라퐁텐 그림 우화/ 장 드 라 퐁텐 지음/ 박명숙 옮김/ 시공사
여우의 초대 자리에서 황새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그릇에 담긴 먹음직스런 음식들….
그러나 황새의 긴 부리로는 아무 것도 집을 수가 없었다. 환상적인 음식, 이 모든 것이 넓은 접시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새라고 답할 길이 없으랴. 황새는 여우를 청했다. 이번엔 모든 산해 진미가 목이 긴 병에 담겨 있었다. 하하! 세상엔 이런 복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우도 황새도 어느 쪽도 행복하지 못했다. 우린, 지금, 여우와 황새의 손님 초대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 퐁텐은 ‘황금 알을 낳는 암탉’을 들려주면서 “우리는 너무 일찍 부자가 되기 위해 오히려 순식간에 가난해진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라며 어른들의 탐욕을 직접 꾸짖는다.
끝없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거듭하는 ‘목동과 사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아주 작은 동물이라도 우화 속에서는 주인 역할을 한다. 단순한 도덕론은 지루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서 교훈을 들려주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꾸민 이야기를 통하여 가르치면서 즐겁게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 라 퐁텐의 ‘우화(寓話)’가 마침내 우리말로 모두 옮겨졌다. 본디 12권으로 이뤄진 책을 삽화를 곁들여 양장본 1권으로 묶었다.
황새와 여우가 서로 식사 자리에 초대해서 골탕을 먹이는 이야기, 멍청한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있다가 “예쁜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여우의 꾐에 빠져 고기를 놓치는 이야기, 진수성찬과 맞바꾼 목걸이를 거부하고 멀리멀리 달아난 늑대 이야기….
솔직히 털어놓자. 라 퐁텐의 우화를 우리가 아는가.
그동안 우리가 읽은 우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로 재편집돼 돌아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교훈적이며 풍자적인 내용과 동·식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형식이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라 퐁텐도 이솝도, 어린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우화를 쓰지는 않았다. 우화는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거짓말에 익숙해 있고, 언제든지 온갖 궤변으로 자신을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이번의 우리말 완역본은 1834년에 프랑스에서 펴낸 초판본을 옮긴 것이다. 이 책은 고서적상 김준목씨가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시골 농부의 서재에서 100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던 그 오래된 책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심지어는 먼지와 곰팡이까지도 보여주고자 애쓴 표지 장정은 아름답다.
그리고 작품 한편 한편마다 판화가 구제의 세밀화가 문자를 이미지로 받쳐주고 있어, 책이 출간된 19세기의 정신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망외의 소득도 있다.
그렇지만 시적인 원문을 그대로 옮긴 데다가, 글씨의 크기도 작고, 어른들 세계의 실상을 엑스레이 필름처럼 환하게 드러내는 작품도 적지 않아 아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청소년은 되어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 퐁텐의 애초의 의도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고대인의 영혼이 우리들 현대인의 몸 속에, 그리고 불투명한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꾼 라 퐁텐의 이 마르지 않는 샘물을 천천히 맛보기를. 작가의 이름 라 퐁텐은 프랑스어로 ‘샘’이라는 뜻이다.
작품의 유명세와 달리 작가 라 퐁텐이란 인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작가의 조국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화’ 몇 소절 정도는 누구나 다 암기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 독특한 장르의 글인 ‘우화’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기이한 역설’의 주인공인 그를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장 드 라 퐁텐은 1621년 샹파뉴 지방에서 태어났다. 부르주아지 가문의 자식으로 부친에게서 적지 않은 땅과 함께 물과 숲을 관리 감독하는 직위를 물려받는다. 그리하여 거기서 들어오는 연금과 세금으로 부르주아의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을 택하지 않는다. 라틴어로 된 고전과 당대의 시인들에게 매료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글쓰기를 선택한다.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하나 두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올라가 독신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사교계를 드나들며 시적 재능을 펼칠 기회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문학적 영광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대의 권력자인 재무총감 푸케에게 시를 지어 바쳐 그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것도 푸케의 실각과 함께 끝났다. 성공을 갈망하며 여러 권의 에세이를 남겼고, 그 가운데 하나는 훗날 시학 이론서에 이름이 오르지만,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라 퐁텐은 내내 별볼일없는 작가로 지내야 했다.
‘우화’는 라퐁텐에게 거의 유일한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 성공으로 그는 후원자를 얻는다. 오를레앙 공작 부인, 라 사블리에르 부인, 그리고 에르바르 가문. 하지만 뒤늦은 성공 탓인지는 몰라도 건실한 부르주아의 삶과는 거리가 먼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사상적인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실제적인 삶에서도 그러했다. 술과 도박·매춘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여 그가 죽었을 때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면모 때문에 그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왕에게 얌전하게 살겠다는 약속까지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서약이 있은 뒤에도 라 퐁텐은 여전히 순종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자유사상가들과 교류하며, 제도 바깥의 삶을 살아나간다. ‘우화’는 계속 이어졌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형식의 글쓰기 자체가 문학 제도의 바깥에 있는 것이었다.
그를 얌전하게 만든 것은 병이었다. 생의 마지막 회한 때문이었을까? 종부성사(終傅聖事)를 받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부정했다. 그의 묘비명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장은 그가 왔던 것처럼 가버렸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많은 재물을 하찮게 여겼다/ 시간으로 말하자면, 그것만큼은 잘 쓸 줄 알았다/ 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실컷 잠자는 데/ 나머지 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썼으므로.’
그의 ‘우화’에는 이렇게 라 퐁텐의 삶이 그려나간 궤적이 밑그림으로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의 교양과 섬세함이,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가로서의 자유의지와 비판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그것이 도덕적 차원에서의 일탈과 방종의 모습을 띠긴 했지만, 그 둘은 우리들 인간 자신에 대한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통찰의 시선을 빚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라 퐁텐의 ‘우화’는 창작이 아니다. 그러나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문체는 시적인 품격을,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이야기 구성과 함께 인간존재와 삶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지적인 시선은 뛰어난 산문가의 특성을 그에게 부여해주었고 프랑스 문학의 전통으로 자리잡는 풍자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데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친구인 몰리에르의 희곡 작품과 함께 사랑과 미움, 우정과 배신, 지혜와 어리석음, 성공과 질투 등등 우리들 삶의 내장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로 이어진다.
(박철화·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