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250년경 전쟁발발
그리스 연합군 1차원정은 실패 2차원정이 진짜 트로이 전쟁
500년후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드’에 담아
1871년 독일 기업가 슐리만 터키서 트로이 장신구 발굴



▲ 영화 '트로이'
상상인가 아니면 역사적 사실인가.

트로이 전쟁은 수많은 문학도와 시인, 미술가, 학자와 호사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장대한 인류사의 드라마였다. 기원전 1250년경 지상 최고의 미인 헬레네를 둘러싼 사내들의 다툼이 도화선이 되어 벌어진 트로이 전쟁은 서구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배경이 됐으며 이후로도 많은 미술작품과 문학작품을 잉태했다.

2004년 5월 개봉한 블록버스터 트로이가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이 영화가 신과 인간, 영웅과 악당, 끔찍한 살육과 죽음을 넘어선 로맨스라는, 지금은 잊혀가는 단어들을 통해 관객들을 머나먼 시간의 저편으로 인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 관객들은 검은 투구 밑에서 번득이는 아킬레스(브레드 피트 분)의 눈빛과 우람한 근육에 열광한다. 인터넷에선 운명적인 죽음을 예감하고도 담담하게 아내에게 어린 아들과 탈출하라고 지시하는 ‘조연’ 헥토르(에릭 바나)에 대한 동정과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역을 맡았던 올란도 블룸은 유부녀를 유혹해 전 국민을 전란 속으로 몰아넣은 ‘파렴치한’ 파리스로 열연했지만 고정팬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았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통해 전설이 된 트로이는 1870년대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지금의 터키에서 옛터를 발굴해 내며 다시 각광을 받았다. 트로이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트로이 전쟁의 진실은 지금껏 규명의 손길을 기다리는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 헥토르의 시체를 끌고 다니는 아킬레스. 헥토르의 아버지인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스에게 거액을 주고 시체를 되돌려
받는다. '트로이'(도서출판 루비박스)중에서

과연 영화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어디까지 일치할까. 그리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과연 어디까지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작성됐을까. 시공을 초월한 신화 트로이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김동석기자 ds-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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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수준이 대통령 수준을 결정한다


‘세계 정세에 혜안이 있었던 반면, 아첨배를 가려내는 분별력은 거의 없었다. 독재자로 낙인찍혀 망명지에서 타계함으로써 훗날 국민이 대통령을 얕잡아 보는 선례를 남겼다.’(이승만) ‘3선까지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정치인에게 절대 필요한 선거를 통한 압박을 제거한 유신을 단행한 뒤 부인을 잃으면서 도덕적으로 더욱 타락해 갔다.’(박정희)


▲ '한민국 50년-우리들의 이야기전' 열린 1998년 8월 예술의 전당에 전시됐던 역대 대통령 사진. 왼쪽부터 이승만 윤보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조선일보 DB사진

언론계·관계·학계를 두루 거친 저자(67·세종대 석좌교수)는 우리 현대사 역대 최고 지도자 9명을 독하게 재단한다. 그는 “글은 독자를 위해 존재하고, 사람(글쓰는 대상)을 봐주면 글이 죽으니까 독자를 위하고 글을 살리려면 냉혹하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문민 정부에서 정무·공보 수석비서관 및 문화체육부·정무 장관을 지냈던 저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세상 모르는 잠수함 선장’으로 묘사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등 ‘번개작전’에도 불구하고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며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중산 보수층 지지기반을 잃었다고 썼다. 그는 “문민 대통령은 정치 투쟁만 해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상상 외로 무능·무지하고 독선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IMF 위기를 조기 극복해 국제 신인도를 높였지만, 국가정보원·검찰 등 사정기관이 직·간접적으로 부정·은폐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권과 다른 부정부패 양상을 보였다고 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은 ‘007 수법 대북 상납으로 가능했다’는 것.

그는 5공화국에 대해서 더 가혹하게 비판했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한 방식으로 정권을 잡고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으나, 퇴임 후 뇌물죄 추징금을 아직도 체납 중인 전두환’ ‘구속·사면의 악순환을 반복케 했고 집단 간 갈등을 높인 노태우(물태우) 민주화’라고 기술했다. 반면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과 장면 총리에 대해서는 온정적인 입장이다. 단명 지도자에 대해 나름의 업적·장점을 조명하려는 시도다.

남편의 양말을 손빨래한 프란체스카 여사, 새벽 3시부터 취약 과목인 영어 공부를 한 전두환 등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들도 썼다.

“대통령과 정치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자와의 비굴한 타협이 상식으로 통하는 한,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다할 즈음엔 개정증보판을 내겠다”고 말했다.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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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04-06-0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들은 이제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몇몇의 대통령은 우리가 원해서 된 것도 아니며 단순히 그들의 행태를 꼬집고 넘어가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것은 그들의 폭정(-->사실 전 그들의 행위는 결코 정치가 아니라 국민에대한 폭행이라고 생각합니다)에 희생당하고, 직접 간접적으로 고통받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stella.K 2004-06-0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메시지님 말씀이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사회를 죽일 수 있어도, 사회는 그들을 죽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부조리겠죠. 그저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더 똑똑하게 만들어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통령을 뽑는 수 밖에요...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먹고] 사이비 콩국수

여름이다!->덥다!->시원한 게 땡긴다!->콩국수, 비빔냉면, 화채.. 요즘 웰빙웰빙, 말도 많은데 저도 웰빙이라는 트렌드어를 살짝 집어넣어 인기에 편승해볼까 하는 얄팍한 심정으로 간단한 콩국수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사실 이 방법은 제가 고안한 것이 아닙니다. 신기하고 간편한 방법을 모아 소개하는 '클럽버스의 대발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언뜻 본 것이지요. 주위에 물어봐도 차마 이렇게 해먹어본 사람이 없어서, 마루타가 된 심정으로 한 번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간편하고도 맛나는 콩국수가 되어버렸습니다!(아아, 되어버렸다, 되어버렸어..)

정석대로라면 흰콩을 하룻밤 불려 삶아 껍질까고 갈고..하는 것인데 귀찮기도 하고, 우유와 두부를 사용하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자주 이렇게 해먹을 것 같네요.

시원하고도 꺼칠꺼칠한 콩국수, 땡기지 않으십니까!

준비물: 얼린얼음, 국수사발, 국수소면, 굵은소금, 오이채, 우유, 두부 한 모, 믹서기 혹은 블렌더

1. 소면은 팔팔 끓는 물에 넣고, 거품이 미친듯이 올라올 때 찬물 한컵을 다시 부어 얌전히 거품을 가라앉히고 한 번 더 끓여냅니다. 찬물에 잘 헹궈서 체에 담아두세요.

2. 믹서용 통에 두부 한 모(저는 부드러운 두부 썼음), 우유 두 컵 정도를 넣고 원없이 갈아주세요.(2인분)

3. 국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먹어보아요. 얼음이 녹을 것을 감안, 약간 짜다 싶을 정도로(너무 짜면 안됩니다) 굵은 소금을 넣어주세요. 맛소금은 느끼합니다.

4. 대접에 소면 양껏, 오이 채썬 것(다다기오이보다는 가시오이가 채에는 힘있고 좋습니다), 얼음 동동 담아주시고, 국물을 부어주세요.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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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것을 배반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우리가 그것을 배반이라 부르지 말자 하고 만났다 하더라도 사랑은 양이 적고 많을 뿐 일정한 몫의 자기 비밀을 등에 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언젠가 때가 되면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묻게 되는 배반의 암영이 일찌감치 드리워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가 살을 맞댄 남편이요, 아내라 할지라도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의 불가능성’(302쪽) 같은 허망함이 겨드랑이를 간질일 때 우리는 텅빈 얼굴로 웃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이 소설은 말을 걸어오고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구성체의 허약함’(〃), 예를 들어 결혼이나 가족 같은 것이 실상은 얼마나 무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권하는 소설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미국의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 조종사의 아내가 주인공이다. 캐트린(34세)은 뉴잉글랜드에서 살면서 음악과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다. 매티라는 열다섯 살 딸이 있고, 남편 잭(49세)은 열다섯 살 연상이다. 잘 생긴 얼굴에다 딸을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아내는 인생의 안전판으로 여기며 으레 그렇듯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쯤, 남편의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노조 직원이 집으로 찾아온다. 남편은 그 시각 대서양 상공을 비행하고 있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며 불길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는 안주인에게 느닷없는 방문객은 너무도 엄청난 비보를 전한다. 남편 잭이 조종하던 여객기가 폭발사고로 추락했으며, 남편을 포함한 100여명이 아일랜드 근해에서 몰사했다는 것이다.


▲ 아니타 슈레브
스포일러(작품의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악동)가 되기로 작정하고 말씀드린다면, 이 소설은 비행기 추락이 문제가 아니다. 남편에게 혹시 가정 생활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느냐, 비행기 탑승 전에 술을 마시는 습관은 없었느냐고 따져 물어오는 ‘그들’ 앞에서 자신의 이성을 지켜냈던 아내 캐트린은 그보다 훨씬 가슴 미어지는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된다.

남겨진 유품들이 단서가 돼서 드러난 결과를 추적해 보니 남편은 영국 런던에 아이를 둘씩이나 낳으면서 딴 살림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숨겨진 여인은 같은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던 아일랜드 출신의 뮈어 볼랜드였다.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의 추도식을 치른 후 볼랜드를 찾아간 캐트린은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녀는 어째서 분노가 치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칼에 깊숙이 베어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경우와 비슷했다. 그저 약간의 충격만이 느껴질 뿐이었다.’(280쪽)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320쪽),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모든 기억(남편을 믿고 아름다운 생을 긍정하던)을 수정해야 하는 때(314쪽)에 이르면 남편의 죽음을 통보받았을 때보다 더 비참할 수 있는 것이다. 통증도 비켜갈 만큼.

그러나 여기까지의 얘기도 그 다음에 전개되는 얘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은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국제적인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태생과 삶의 궁극적인 철학과 깊이 관련돼 있었고, 두 곳의 여인들과 따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일은 오히려 사소한 일로 전락해 버릴 지경이었다.

시종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긴박감에 덧붙여, 매 장면마다 산뜻하게 들어 있는 삶에 대한 통찰,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가히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압권이다. 우아한 문체와 간결한 압축미의 황홀함을 보이는 저자 슈레브는 둘째 치고, 최필원의 번역 문장은 오히려 슈레브가 빚지고 있다 할 정도다.

슬퍼할 수 없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분들께,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는 분들께 이 소설을 권해드린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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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6-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뭐 별거일까? 했는데...결론은 별거가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나는 기자의 말처럼, 인물들의 감정변화와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을 좋아한다. 더구나 기자는 번역자의 번역이 범상치 않음을 전하고 있다. 이런 책은 그냥 놓치면 안될 것 같다.

panda78 2004-06-0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별거일 거 같다... 아니구요? ^^;;; 아니면, 별거 아닌 게 아닐 것 같다..라던가..
딴지 아니에요. >.<

stella.K 2004-06-0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별거>라는 단어의 용도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헷갈리고 있답니다. 부정일 때 쓰는 건지? 긍정일 때 쓰는 건지? 근데 확실히 제가 틀린 것 같네요. 어떻게 고쳐야 할지?
요즘 Kimji님 마춤법 클리닉 여셨는데 도움 좀 받아야 할려나?

stella.K 2004-06-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말슴대로 고쳤습니다.^^
 

"달빛 손님 훤히 스미니… 깨어있으란 소식인가"
5년만에 수필집 ‘홀로 사는 즐거움’ 낸 법정 스님
“꽃은 향기로 서로를 느껴…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해야
사람 피해서가 아니라 내 길 가기 위해서 홀로 살아”



▲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는 법정 스님. 밤잠을 깨면 좌선에 드는 그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조선일보 DB사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명예욕과 물욕이 남는다고 했는데 법정(法頂) 스님은 오히려 그 반대다.

식솔이 없으니 물욕이 없는 것은 이해해도 명예까지 훌훌 털어버린다면?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 회주 자리를 함께 벗어 던지고 강원도 산골로 은신했던 스님이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보내왔다. 수필집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 출판사)을 펴낸 것. ‘오두막 편지’ 이후 5년 만이다.

스님은 이 책에서 “내 생각과 삶의 모습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앞뒤 창문 활짝 열어 젖히고 한바탕 쓸고 닦아냈다. 아침나절 맑은 햇살과 공기 그 자체가 신선한 연둣빛이다. 가슴 가득 연둣빛 햇살과 공기를 호흡한다. 내 몸에서도 연둣빛 싹이 나려는지 근질거린다’(64쪽), ‘가을 바람 불어오니 일손이 바빠진다.…이제는 날마다 군불을 지펴야 하므로 나뭇간에 장작과 땔감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127쪽)

고희를 넘긴 노승은 적막의 반복에 불과할 강원도 산 속 암자에서의 생활에서조차 보석 같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달빛이 방 안에까지 훤히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자리를 일어나 마주앉는다.…한낮의 좌정보다 자다가 깬 한밤중의 이 좌정을 나는 즐기고자 한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면…’(10쪽)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이다.…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99쪽)

홀로 있어도 의연한 나무 같은 삶이지만 마음마저 목석일 순 없다. 스님은 동화작가 정채봉의 죽음 앞에서 삶의 허무를 토로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빙판길을 달려 한동안 발걸음이 잦았던 중앙병원으로 갔다. 영안실에 들어서자 사람은 어디 가고 사진만 영단에 올려져 있었다. 어이없었다. 허무했다.’(104쪽)

‘무소유’와 ‘산방한담’에서 그랬듯 스님에게 자연은 깨우침을 주는 스승이다. 정채봉을 잃을 슬픔을 갈무리하는 방법 또한 꽃에게서 배운다. ‘서로의 향기로써 대화를 나누는 꽃에 비해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 인간인 우리는 꽃에게서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140쪽)

스님은 세상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해 안타까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걸치고 적게 갖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이 폭력과 인간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199쪽)

이 책은 2001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맑고 향기롭게’의 회지에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3년을 기다려 책 한 권을 냈다. 스님은 ‘말과 글도 삶의 한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이 전제됨이 없이는 새로운 말과 글이 나올 수 없다.…할 수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144쪽)는 말로 자신의 글 무게를 달았다.

두 달에 한 번씩 해온 길상사 법문도 “그동안 말이 많았다”며 봄 가을 한 차례씩으로 줄인 스님은 다만 “한꺼번에 사라지면 궁금해하니까 차츰 줄여나간다”는 말로 세속과의 가는 끈을 잇고 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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