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것을 배반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우리가 그것을 배반이라 부르지 말자 하고 만났다 하더라도 사랑은 양이 적고 많을 뿐 일정한 몫의 자기 비밀을 등에 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언젠가 때가 되면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묻게 되는 배반의 암영이 일찌감치 드리워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가 살을 맞댄 남편이요, 아내라 할지라도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의 불가능성’(302쪽) 같은 허망함이 겨드랑이를 간질일 때 우리는 텅빈 얼굴로 웃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이 소설은 말을 걸어오고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구성체의 허약함’(〃), 예를 들어 결혼이나 가족 같은 것이 실상은 얼마나 무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권하는 소설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미국의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 조종사의 아내가 주인공이다. 캐트린(34세)은 뉴잉글랜드에서 살면서 음악과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다. 매티라는 열다섯 살 딸이 있고, 남편 잭(49세)은 열다섯 살 연상이다. 잘 생긴 얼굴에다 딸을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아내는 인생의 안전판으로 여기며 으레 그렇듯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쯤, 남편의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노조 직원이 집으로 찾아온다. 남편은 그 시각 대서양 상공을 비행하고 있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며 불길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는 안주인에게 느닷없는 방문객은 너무도 엄청난 비보를 전한다. 남편 잭이 조종하던 여객기가 폭발사고로 추락했으며, 남편을 포함한 100여명이 아일랜드 근해에서 몰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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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타 슈레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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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작품의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악동)가 되기로 작정하고 말씀드린다면, 이 소설은 비행기 추락이 문제가 아니다. 남편에게 혹시 가정 생활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느냐, 비행기 탑승 전에 술을 마시는 습관은 없었느냐고 따져 물어오는 ‘그들’ 앞에서 자신의 이성을 지켜냈던 아내 캐트린은 그보다 훨씬 가슴 미어지는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된다.
남겨진 유품들이 단서가 돼서 드러난 결과를 추적해 보니 남편은 영국 런던에 아이를 둘씩이나 낳으면서 딴 살림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숨겨진 여인은 같은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던 아일랜드 출신의 뮈어 볼랜드였다.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의 추도식을 치른 후 볼랜드를 찾아간 캐트린은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녀는 어째서 분노가 치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칼에 깊숙이 베어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경우와 비슷했다. 그저 약간의 충격만이 느껴질 뿐이었다.’(280쪽)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320쪽),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모든 기억(남편을 믿고 아름다운 생을 긍정하던)을 수정해야 하는 때(314쪽)에 이르면 남편의 죽음을 통보받았을 때보다 더 비참할 수 있는 것이다. 통증도 비켜갈 만큼.
그러나 여기까지의 얘기도 그 다음에 전개되는 얘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은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국제적인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태생과 삶의 궁극적인 철학과 깊이 관련돼 있었고, 두 곳의 여인들과 따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일은 오히려 사소한 일로 전락해 버릴 지경이었다.
시종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긴박감에 덧붙여, 매 장면마다 산뜻하게 들어 있는 삶에 대한 통찰,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가히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압권이다. 우아한 문체와 간결한 압축미의 황홀함을 보이는 저자 슈레브는 둘째 치고, 최필원의 번역 문장은 오히려 슈레브가 빚지고 있다 할 정도다.
슬퍼할 수 없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분들께,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는 분들께 이 소설을 권해드린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