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더우드家 "이젠 한국 떠납니다"
연세대·새문안 교회 설립…4代 119년간 현대사에 큰 공

4대(代)에 걸쳐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언더우드 일가가 입국 119년 만에 한국을 떠난다. 언더우드 일가는 지난 1885년 언더우드 1세인 원두우(元杜尤·미국명 호러스 G 언더우드)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한 이후 명문 사립 연세대를 설립하는 등 한국의 교육·종교·사회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원두우씨의 증손자인 원한광(元漢光·61) 한·미교육위원회 위원장(연세대 재단이사)은 10일 “4대에 걸쳐 언더우드가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봉사는 다 했다고 생각한다”며 “올 10월쯤 아내와 함께 자녀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원 위원장은 3년 전부터 환갑이 되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 왔으며 한국에서 입양한 두 딸 등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원 위원장이 한국을 떠나면 일가 중 연세대와 관련을 맺지 않고 있는 원 위원장의 동생 원한석(49·개인컨설팅회사 근무)씨만 국내에 남는다.

원 위원장은 떠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정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아쉽지만 언더우드 가문의 시대적 소명이 끝난 것이 엄연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며 “이제 우리가 더이상 도움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 도움을 줘야할 나라가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 원두우 박사의 묘를 한국으로 이장한 가족들이 서울 마포구 외국인 묘지공원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오른쪽 두번째가 손자인 원일한 연세대 재단이사, 앞줄 왼쪽이 증손자인 원한광 연세대교수.

언더우드 일가는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다. 언더우드 1세는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한 뒤 광혜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쳤으며,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민족이 일본에 주권을 침탈당할 만한 나라는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문화를 보존하고 나면 언젠간 독립국가로 바로 설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2세 원한경(元漢慶) 박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연희전문학교로 돌아와 교육학을 가르쳤으며, 제3대 교장을 지냈다. 역사상 처음으로 백두산 천지의 깊이를 잰 것도 이들 언더우드 1세와 2세 부자로 알려져 있다. 원한경 박사는 1951년 6·25전쟁의 와중에서 심장병으로 한국에서 사망했고 부인은 1949년 공산당의 테러로 절명, 한국사의 아픔을 함께했다.

3세인 원일한(元一漢) 박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재입대, 한국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대위로 전역했지만 위기에 빠진 한국을 위해서 다시 군에 입대한 것이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으며, UN군 정전협상 수석 통역장교를 맡아 정전(停戰) 협정의 전 과정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한·미협회 부회장, 한국성서공회 이사, 광주기독병원 이사, 한·미우호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올 1월 그가 사망했을 때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 간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가 찾아가 조언을 받던 분”이라며 “한·미 우호를 위해 애쓰시던 모습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의 친근한 벗이었다.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학 시절 모두들 원일한 박사님의 인자한 모습에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천사라고 생각했다”며 “언더우드 일가는 120여년 전 암울했던 시기에 한국에 와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한국사람과 똑같이 생활한 위대한 선구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원일한 박사는 99년 5월 미국 뉴저지주에 안장된 할아버지 원두우 박사(언더우드 1세)의 유골을 한국으로 이장,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지공원에 안장했다. 한국에서 숨을 거둔 아버지 원한경 박사(언더우드 2세)가 묻힌 장소였다. 원 박사도 숨을 거둔 뒤 같은 곳에 묻혔다. 작고한 언더우드 1세부터 3세까지 모두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묻힌 것이다.

한국을 떠나는 4세 원한광 위원장은 “앞으로 여생은 미국에서 살겠지만 숨을 거둔 뒤 묻힐 장소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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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이상범· 최순우·권진규 등 이달내 지정
이광수·이상·이중섭·박종화·홍난파 등 줄이을듯


20세기 한국의 문화예술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고택(古宅)이나 작업장이 사상 처음으로 문화재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9일 ‘님의 침묵’의 한용운(韓龍雲·1879~1944), 조선 후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화풍을 계승했던 한국화가 이상범(李象範·1897~1972), 한국미를 국내외로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崔淳雨·1916~84), 전통에 바탕을 둔 한국적 리얼리즘을 조각으로 승화시킨 권진규(權鎭圭·1922~73)가 작품활동을 했던 고택과 화실(畵室) 등을 지정예고기간을 거친 뒤 5월 하순쯤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또 이광수 이상 이중섭 박종화 홍난파 마해송 등이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9채의 고택〈표〉에 대해서도 문화재 등록을 최근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이에 따라 이들 건물들은 오는 6월 등록문화재로 등록될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 한국 문화예술계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고택들은 그동안 “문화예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문화재적인 가치는 낮다”는 이유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한국 문단의 사실주의 대표작가였던 현진건(玄鎭健·1900~43)의 종로구 부암동 고택,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1916~78)의 용산구 원효로 4가 고택이 최근 잇따라 헐리면서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올해 들어 철거 위기에 놓였던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1915~2000)의 관악구 남현동 봉산산방(蓬蒜山房), 화가 이상범의 종로구 누하동 화실(畵室), 작곡가 홍난파(洪蘭波·1898~1941)의 종로구 송월동 1번지 고택을 매입하는 등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유적 보존에 박차를 가했고, 지난 4월에는 서울시에 있는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고택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심의를 벌였다. 이번 지정 조치는 앞으로 각 지방에 산재한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고택이나 작업실 등이 문화재(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사에 남을 한용운 고택

종로구 계동 43번지, ‘ㄷ’자 형식의 목조 기와집이다. 대지 35평 건평 15평. 만해(卍海)는 설악산 오세암에서 1918년 이곳으로 옮겨와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하며 계몽적 성격의 논설과 수필·시를 발표했다.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될 때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독립운동사와 불교사에 길이 남을 곳으로 꼽힌다.

◆'수묵화의 터전' 이상범 화실과 고택

화실은 종로구 누하동 181번지에, 고택은 누하동 178번지에 접해 자리하고 있다. 30대 초반부터 타계할 때까지 여기서 살았다. 평범하고 친숙한 산천 들녘을 담은 화풍을 이곳에서 창조했기에, 현대 한국 수묵화의 터전으로 평가되는 공간이다. 그는 1955년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실과 고택을 “나의 모든 창조적인 계기를 계시·정리·실현해 주는 곳이자 내 생명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평했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산실' 최순우 고택

성북구 성북2동 126-20번지에 있는 대지 110평의 목조 기와집이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토대를 닦았던 선생이 말년에 6년 동안 거주했던 곳이다. 최근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매입해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적 리얼리즘' 권진규 아틀리에

성북구 동선동3가 251-13번지에 있다. 대지 23평의 시멘트 양옥이다. 동세대 작가들이 서구 조각의 흐름을 모방하기에 골몰할 때, 신라 토우 등 전통에 뿌리를 둔 한국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정립하려 했던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부터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15년 동안 활동했던 공간이다. 일본에서 교수직을 제의했지만 조국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며 거절했던 그는 막상 국내에서는 ‘시대착오적 복고주의자’라고 비판받았다. 가난과 질병·멸시 속에서도 예술혼을 지켜냈던 한 예술가의 삶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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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선택한 부부의 고뇌
문(門)/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유은경 옮김/향연/246쪽/9000원



▲ 영문학자이자 뛰어난 하이쿠 시인이기도 했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인간 존재의 내면 탐구라는 진지한 주제를 탐구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이며 국민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인간의 내면적 우울과 불안을 밀도 있게 그려낸 그는 20세기 초 서구의 근대화 물결 속에 나름의 근대적 인간상과 삶의 모습을 모색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1000엔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만큼 일본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는 작가다. 국내에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불륜을 선택한 데 대한 죄의식을 안고서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채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부부의 고뇌를 담았다. 장편소설 ‘산시로’ ‘그후’와 함께 사랑을 주제로 한 그의 초기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대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을 빼앗은 소스케와, 애인을 버린 오요네는 사랑은 얻었으나 세상 밖으로 내쫓기게 된다.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소스케에게서 친구는 떠나고, 가족과 친척의 외면 속에서 학교와 사회로부터도 고립된다. 오요네는 세 번에 걸친 임신이 실패로 돌아가자 심한 정신적 가책까지 느끼게 된다. 평생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자의식과 고독에 시달리는 이들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서도 결국 도피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스케는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도 않은 채 사회와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한다. 아버지의 유산 처리나 동생의 진학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만 대처한다. 이들 부부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금실 좋게 살아가지만, “어느 틈엔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과거라고 하는 어둡고 깊은 구렁텅이 속에 떨어져 있었다.”(46쪽)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절벽 밑의 작은 셋집은 그들의 위태롭고 불안한 심정을 암시한다. 드라마틱한 사건 대신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 숨어있는 복선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읽어내는 것이 그의 소설의 감칠맛이다.

▲ 문
“이 비극이 언제 어떤 형태로 다시 자기 가족을 엄습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따금 그의 머릿속에 안개처럼 드리웠다. …간신히 자기 차례가 되어 차가운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문득 이 모습은 원래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144쪽)

자기와 관계없이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불시로 문득문득 고개를 내미는 과거의 죄의식은 이들 부부의 가슴을 억누르곤 한다.

소스케가 대학시절 애인을 빼앗은 옛 친구 야스이의 소식을 듣고 곧 그와 대면할 상황에 처하게 되자 소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극도의 내적 갈등을 겪는 소스케는 산사로 찾아들어가 참선을 시도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소스케로 인해 만주나 몽골로 떠돌며 살게 된 친구 야스이는 소스케 앞을 가로막고 선 ‘문’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래도록 문 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으로 태어난 듯했다. …눈 앞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245쪽)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친구의 존재감에 늘 불안해했던 소스케는 친구 야스이의 굴레를 활짝 벗어젖히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그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앞에서 초조해한다. 그는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하게, 닫힌 문 앞에 남겨져 있을 뿐이다.

작품의 결말에 오요네는 유리창으로 비쳐드는 화창한 햇살을 바라보며 새봄이 왔다고 좋아하지만, 소스케는 고개를 숙인 채 “하지만 다시 또 겨울이 올 거야”(256쪽)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사랑과 불륜, 죄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천착하는 소세키 특유의 내면적 문장이 독자를 반성적 성찰로 이끄는 작품이다.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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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4-05-09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이 '도련님'인데 그의 다른 작품이 무겁고 내면으로 가라앉는 느낌인반면 도련님은 유쾌하고 가벼워서 즐겁게 읽었죠. 음, '문'의 스토리만 보아도 궁금해집니다. 꼭, 읽어보고싶네요.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혹독한 겨울도 봄을 잉태하기 위한 시련일 뿐이라고 위로하는 듯 평화롭죠?
 

"사랑하는 법 익혀야 현대사회 소외 극복"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지음 |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스테디셀러는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효자’ 상품이다. 꾸준히 돈을 벌어주어 보다 야심찬 기획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한때 가장 많은 스테디셀러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들었던 문예출판사의 ‘효자’는 단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지금이야 저작권법이 강화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해적출판시대에는 중복출판이 일반화됐었고 이런 중복출판의 첫 번째 타깃은 늘 스테디셀러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기술’뿐만 아니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데미안’, ‘갈매기의 꿈’, ‘어린 왕자’, ‘독일인의 사랑’ 등은 새로 창업하는 출판사들이 으레 살림밑천으로 출판하던 고정 메뉴였다. 당장 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사랑의 기술’을 두드리니 17종이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와 있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중복출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스테디셀러의 중요한 자격요건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정확하게 직역하면 사랑하기(loving)의 기술 혹은 기예(art)라는 제목은 이미 ‘사랑은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두루 섭렵한 프롬은 흔히 우리가 저지르는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의 문제로 여기고, 사랑하는 능력보다는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막 시작하는 순간의 강렬한 감정만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이런 착각을 깨닫고 사랑도 음악이나 그림, 건축, 의학, 공학과 같은 넓은 의미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사랑하기는 제대로 시작된다. 보기에 따라 통속적인 사랑의 기법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그가 겨냥하는 것은 역시 사회사상가답게 소외를 부르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현대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 지배를 받고 있고 인간의 가치도 결국은 경제적 교환가치 정도로 전락했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고 이런 정황 때문에 사랑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이 같은 성찰을 바탕으로 그는 사랑의 실천에도 큰 비중을 둔다. 그가 권하는 실천의 핵심은 정신집중이다. 자신에게 집중해 먼저 자립을 이뤄야 한다. 자립하지 않은 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집착일 뿐이다. 이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도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이런 집중은 더욱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쉽지 않기에 일정한 훈련을 해야 한다. 결국 프롬은 성숙한 성찰적 사랑이야말로 자기를 되찾고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1976년에 처음 냈던 문예출판사 전병석 사장은 “지금도 1년에 1만여권씩 나간다”며 “얼마 전에는 드라마에 여주인공이 잠시 들고 나와서 화면에 비치는 바람에 한 달에 5만부도 나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잠재독자들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많다는 뜻인지 모른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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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5-0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기술, 참 좋아하는 책입니다.^^

stella.K 2004-05-0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 볼려구요.
 





아침에 눈을 뜨면 문득 천장의 벽지 무늬가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매일 습관처럼 보는 방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지고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 나를 4차원의 세계에 옮겨 놓은 듯,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순간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릴 때가 있다. 시간이 되면 일어나 기계처럼 학교 가고, 버릇처럼 가르치고 이런저런 일에 치여 밤이 되면 지쳐 잠들고…. 벌써 오월인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속에 그야말로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허무할 뿐 아니라 죄의식마저 느낄 정도이다. 장영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뭔지, 하루하루 귀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타성처럼 살아가며 정말 내 삶이 단지 그냥 한 마리 벌레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간혹 섬뜩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카프카의 ‘변신’(1915)이 단지 기괴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하는 ‘변신’은 바로 이렇게, 사람에서 벌레로의 ‘변신’을 말한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상점의 판매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문밖에서 출근을 재촉하는 가족들의 소리가 들리지만,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는’ 벌레가 되어 꼼짝할 수도 없다. 겨우 문밖으로 나갔을 때 식구들은 경악하고 그를 한낱 독충으로 간주한다. 그는 ‘변신’ 이전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며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해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가족의 냉대는 더욱 심해간다. 그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가족은 모두 새로운 직장을 잡고, 그레고르는 없어져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다. 어느 날 그림에 달라붙어 있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절하자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를 던져 큰 상처를 입힌다. 며칠 뒤 각별히 아끼던 누이동생이 하숙생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러 나가지만 벌레의 존재를 보이고 싶지 않은 가족에 의해 방에 감금된다. 그 이튿날 청소를 하러 왔던 가정부는 그레고르의 죽음을 알리고, 가족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피크닉을 간다.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 간은 물론, 하물며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 유대인 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스물다섯 살되던 해부터 일생을 보험국 관리로 일했다.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생활에 매여 오직 밤에만 글을 쓸 수 있었지만, 결국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 직업을 떠나지 못했다. ‘변신’은 어쩌면 그가 일생을 통해 느꼈던 철저한 소외와 고립감을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장영희교수
헨리 8세의 왕비였던 앤 여왕이 부정의 누명을 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오월이군요”였다. 햇볕이 너무 밝아서, 바람이 너무 향기로워서, 나뭇잎이 너무 푸르러서, 꽃이 너무 흐드러져서, 그래서 세상살이가 더욱 암울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오월, 새삼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며 본능으로 사는 벌레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의 ‘변신’을 꿈꾸어 본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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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5-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교수의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 잘 읽고 갑니다.^^

겨울 2004-05-0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은 뒤, 고독감과 소외감이 극에 다랄 때면 벌레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요. 어짜피 존재감없이 살바에는 인간보다는 벌레가 되자고요. 바퀴나 모기, 파리를 제외한 거미.... 무지 심각하게 읽은 책입니다.

stella.K 2004-05-0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3년 전이던가? 아는 누구로부터 <변신>을 드라마한 비디오를 본적이 있었죠. 감독의 연출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했습니다.
저도 읽고나면 인간 존재의 허망함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었거든요, 이렇게 작품 설명을 읽고나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