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화면이 흙빛이다. 사람도, 땅도, 하늘도, 나무도, 심지어 바다까지. 흙빛 화면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가진 두 눈 뿐이다. 그 눈빛은 언제든 꺼질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아슬아슬해서, 보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원작을 읽지 않아서 영화를 원작에 비교할 수 없지만, 영화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충실한 재현이니, 주제의식을 깊이있게 담아내지는 못했느니 하는 말들도 원작의 품격을 모르는 내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훌륭했고, 아버지와 아들은 처절했으며,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을 해쳐야 하는 날의 연속, 총을 손에서 놓고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고, 뺏지 않으면 빼앗기고 마는 세상. 이런 세상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 남에게 능욕을 당하고 내 아이가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고 사랑이 가득한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던, 걱정없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그랬다.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 가득한 세상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는데, 그 시절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랬다. 더이상 나아갈 힘도, 의지도 없어서 그냥 버려야만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지나간 날을 추억으로 그리워하지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한다는 의지로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아들에게 심어주며,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과 싸우는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 가장 강한 것이 모성이라지만, 여기 그 보다 더한 부성을 지닌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모진 세상을 살아내는 아들은, 보이는 나쁜 것은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좋은 것을 믿고 찾으려는 아이다. 반드시 좋은 사람은 있다는 믿음이, 흙빛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솔직히 의아했다. 그 어떤 즐거움도 없는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살아내려고 애쓰는 건지.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건지.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해도,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보장도 없는 데 말이다. 바다 건너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삶인데도 그렇게 살아내려고 애쓰는 것이 의아했다. 살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살기 위해서 끝없이 걷는 그들은 이 편안한 삶 속에서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더 나은 삶이란, 정말 상대적인 것인데도 항상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는 마음이, 그냥 부끄럽다. 삶이란, 저렇게 무거운 것인데도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참, 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