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2주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상처, <엘라의 계곡>
1. 감독 폴 해기스, <크래쉬>로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감독.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이름보다 각본을 잘 쓰는 각본가로서의 이름이 더욱 익숙하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봤던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떠올리면 무조건 생각나는 이름이 폴 해기스다. 더구나 굵직한 전쟁 영화였던 <아버지의 깃발>이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와 인연이 깊었던 그가 연장선상에서 감독과 각본을 맡은 작품이라니 왠지 꼭 봐야 할 것 같다.
2. 연기 잘 하는 배우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수잔 서랜든. 토미 리 존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연기력에 감탄하게 되었는데(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그런 중견배우라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엘라의 계곡>에서 아들을 전쟁에 보낸 완고한 아버지 역할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에서도 연기력을 한껏 뿜어내는 장면이 있다고 하니 기대된다. 샤를리즈 테론 역시 연기파 배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말할 것 없고(<몬스터>보기 전에는 몸집만 큰 여배우라고 '잠깐' 생각했었더랬다), 이 영화에서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수잔 서랜든은 비중이 적지만, 이름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보게 만드는 묘한 힘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3. <엘라의 계곡>은, 완고한 아버지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가 아들 마이크를 찾아나서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이크는 이라크전에 파병되었는데, 귀환 중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아버지가 접하면서 '불명예'스러운 탈영병이 될 위기에 처한 아들의 '명예'를 찾기 위해 사건을 파헤친다. 아버지는 원래,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완고한 애국주의자이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 사건의 진실 앞에 그 가치관이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상처, 엄마를 잃은 딸들의 상처
1. 배우 존 쿠삭 , 그 이름 하나만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작품을 선택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중심축이 존 쿠삭이기 때문에, 그의 연기가 어느 영화보다 중요했다. <2012>에서 뛰어다니고 헤엄쳐다니고 운전하는 존 쿠삭도 나쁘지 않았지만, <세런디피티>의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도 좋았지만, <굿바이 그레이스>에서의 절제된 남자 존 쿠삭도 참 좋았다.
2. 잔잔함 속에 스며든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다. 존 쿠삭은 더이상 영웅처럼 보이지도 않고, 삶에 지친 평범한 남자이자 아버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딸들에게 '엄마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야하는 엄청난 짐을 지고 있는 남자다. 당연히 국민이라면 나라를 위해 싸워야한다(이건 미국이 그리는 이상적인 국민형인지)고 생각하는 스탠리(존 쿠삭) 역시 군인이었다. 직업군인인 아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러 간 것이라 믿었던 그에게 닥친 불행으로 그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 것인지. 딸들에게 엄마의 부재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남편을 찾아 인생을 버리고 떠난 아내의 상처
1. 감독 이준익의 이름은 '무조건'이다. <왕의 남자>부터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까지 인생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던 그의 작품이라면, 무조건이다. 그의 전작보다 못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그의 이름에 거는 기대감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2. 배우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는 꽤 많이 함께 하는 편이다. 카리스마 있는 배우이기도 하고, 튀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묵직한 배우이기도 하다. <님은 먼 곳에>에서는 베트남에 위문공연을 갈 밴드를 결성하고 단원을 모집하는 리더 정만의 역할을 맡아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 또 한 명의 배우는 수애. 그저 다소곳하고 예쁜 줄만 알았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 '연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노래'라는 것을 부른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닌데,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리더라는.
3.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찾아서 떠난 길, 남편 상길(엄태웅)은 첫사랑을 잊지 못해 정작 아내인 순이(수애)에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남편이 홧김에, 혹은 사랑을 잊기 위해, 혹은 잊지 못해 죽기 위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 죽을 지도 모르는 그 길을 순이가 밴드 보컬이 되어 '써니'라는 이름으로 따라 떠난다.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녀는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또 애를 쓴다. 그녀가 전쟁을 통해 잃은 것은, 순수했던 마음과 남편의 사랑에 대한 믿음. 그래서 그녀는 이제껏 살아왔던 인생을 모두 잃고 상처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