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길리우스의 죽음 1 세계문학의 숲 21
헤르만 브로흐 지음, 김주연.신혜양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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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서양철학 원전 텍스트를 읽다가 보면 흐름을 놓쳐 텍스트를 다시 읽는 우를 범하곤 한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해당 부분을 돌아가 다시 읽고 한다. 그 이유는 번역이 이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장 속에 담긴 개념의 비유 또는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헌데 소설 문학에도 이와 비슷한 난해한 작품들이 있다.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책들은 지루하고 난해한 문학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다른 작품을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수고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이데거나 베르그손의 텍스트를 읽는 것과 견줄 수는 없다. 집중해서 철학 텍스트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난해성은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니까. 조이스, 무질, 푸르스트의 대표작들은 단지 분량이 많고 서사가 지루하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읽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헤르만 브로흐다. 이 사람의 책은 문학임에도 철학 원전 텍스트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 올 초 <몽유병자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76페이지까지만 읽고 잠정 보류 상태에 빠졌다. 읽으면서 흐름을 놓치기 일수였고, 도대체 서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보였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무엇인지 여실히 깨닫긴 했지만, <율리시스>보다 더 읽기 힘들었다. 조이스의 책들도 100페이지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지루해서 그렇지 맥락을 놓쳐 이해가 안 되어 포기하지는 않았다. 프르스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마찬가지.

 

10월에 의미 있는 독서를 해 보자고 다시 시도한 책이 브로흐였다. <몽유병자들>에 데여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펼쳤다. 지난한 과정이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어렵게 1부를 지났는데, 이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읽어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2페이지 단위로 끊어 3번씩 읽었다.

 

진짜 더디게 읽고 있지만 이 행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브로흐만의 철학적 망상(내식으로 표현하면 그렇다는 거)’을 읽는 치명적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브로흐는 산문을 운문으로 참 잘도 표현하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심오한 철학적 망상이다.

 

여기서 나는 망상을 내식으로 조금 그 정의를 비틀어 봤다.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는 망상과 비교해 보시라.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바로 떠올린 게 바로 망상에 닿아 있었기에.


망상(妄想, delusion) :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양 믿거나, 논리에 맞지 않은, 논리를 초월한 생각을 하는 것.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를 확장하여 현실의 모순을 구현하는 믿음.

 

니체와는 다른 철학적 아포리즘이 시적 산문으로 표출된다. 논증이 필요 없는 비유와 상징이 현재의 시공간과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망상이지만 결코 소설의 개연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시공간의 상황은 단순하지만 그 찰나에 개입하는 소리에 망상의 미학이 시작된다. 시작과 끝은 항상 현재 시공간에 매인 주체로 계속 환기된다.

 

오오, 신들조차도 신성시하지 않음을 아는 신과 인간이 똑같이 품는 지각에서, 피안과 차안 사이에 팽팽히 쳐진, 불온한, 으스스하게 투명한 마령 같은 양자의 제휴에서 생겨나는 웃음, 그 제휴의 어렴풋한 마령의 영역에서 신과 인간은 만남을 이룩한다.” (p180)

 

부드러우면서도 오만하고, 마음을 녹일 듯하면서도 강압적이고, 밤의 광휘를 띠고 있으면서도 깊이 숨어 있는,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말과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영혼, 언어와 인간성의 통일그것은 마치 모든 지상의 나이를 모르는 과거의 청춘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듯했고, 그러면서도 이미 영원히 종말을 모르는 고향으로부터의 인사였다.” (p283-284)

 

이게 알프레드 자리(또는 욘 포세)와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결코 망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망상은 미학적으로 전개되면서 철학적으로 심화된다. 개연성이 없는 헛소리의 망상 같지만 다음 페이지에 그 망상이 헛된 이유가 적시되면서 의식의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름답고 치명적인 문장들이 모여 아포리즘을 만들고 바로 다음 순간 전혀 다른 관념이 끼어들어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주체의 상태(감정)를 말하는 바로 귀결된다. 귀결되는 순간 다시 의식은 다른 사고를 향해 달려간다. 이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대구와 비유 그리고 상징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따라가다가 2-3번 읽고 음미하다 보면 경탄하게 된다. 이러한 문장들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브로흐의 관념, 이러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브로흐의 박학다식과 사색의 깊이에 빠져 같은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한 번에 읽어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과 관념의 흐름을 플롯 구조에 무지막지 흩어 놓아 반복해서 읽고 줄을 치게 만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해하여 앞의 부분을 잊어버리는 이 지난한 과정, 이 과정을 이겨내고 획득하는 문학적 과실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읽기를 지속할 수밖에.

 

사실 브로흐는 철학을 전공했다. 심지어 비엔나 학파에까지 가입되어 있었다니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브로흐는 말할 수 없는 그 형이상학에 대한 끌림을 버릴 수 없어 문학으로 전향했고, 그 결과 우리는 철학적 망상을 집대성한 이 놀라운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일깨워 준 브로흐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말 읽듯이 읽을 수 있게, 이 난해한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 주신 역자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

 

 

 

[]

1. 정말 술술 읽히는 번역본. 하지만 초집중하지 않으면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희한할 정도로 난해한 문학 작품.

2. 책 좀 읽는 다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 전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어려운 책은 자기 독서 인생사에서 처음이라고 했는데, 읽은 느낌상 이 책을 같이 읽으면 동일한 원성을 듣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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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25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무님 리뷰 읽은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

Falstaff 2024-10-26 06:10   좋아요 2 | URL
난도가 좀 있지만 이 책은 읽을 만합니다. 몽유병자 생각하고 포기하지 마셔요!

yamoo 2024-10-27 17:04   좋아요 2 | URL
스탤라님, 뽈님의 댓글처럼 저도 조심스럽게 1권만이라도 권해 봅니다. 아님 2부만 읽어보심이..^^;

Falstaff 2024-10-26 0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어려운 책들 ㅎㅎㅎ
몽유병자. 읽다가 때려 치웠습니다.
율리시스. 다 읽었습니다. 책 사놓고 17년인가 27년 만이었습니다. 금속활자본이더군요. 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었습니다. 글자만 읽었다는 뜻입니다.
특성없는 남자. 안병률 북인더갭 사장의 번역으로 2부까지 읽었습니다. 지금 3부 완역했지만 절대 3부 안 읽을 겁니다.
이 네 작품 연속해서 읽으면 모르긴 해도 정신건강학과에 적지 않은 나날 동안 입원해야 할 거 같은데요.

yamoo 2024-10-27 17: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이 리스트를 거의 모두 읽어낸 분은 제가 알기론 뽈님밖에 없습니다. 암요! 율리시스 읽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ㅎㅎ 근데 몽유병자들을 무조건 읽어야 갰어요! 뽈님이 포기한 유일한 작품이네요..ㅎㅎ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친절한 미술이야기
안휘경.제시카 체라시 지음, 조경실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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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이 분야는 정말 난해하다. 현대철학보다 더 난해하다. 그 이유는 예술품과 그 이론이 전혀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그들만의 세계'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현대미술을 절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가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 의도를 알아야 하기 때문. 형상이 없어진 현대미술은 뭘 그렸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형상과 작가의 생각을 전혀 매치할 수가 없게 된다. 물감을 정신없이 뿌려놓고 '캘리포이나 드림'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안내서가 필요하다. 현대미술이 왜 그렇게 어렵고 저들만의 세계가 된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걸 알려주는 입문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왜 그러한 미술이 나왔고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엇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걸 안다고 해서 현대미술의 전 범위를 잘 즐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 '빌어먹을 현대미술'이라는 욕은 하지 않게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정도이다. 감상의 시작점이랄까.


안휘경&제시카 체라시의 공저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행성B,  2017)은 현대미술 입문서 중 가장 친절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을 보고 '이게 도대체 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그런 책이다.


"순수미술이란 정교하게 갈고 닦은 선과 형태를 다루는 솜씨와 기술, 대가의 기교가 합쳐져 이루어지며 우리가 감탄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지배적이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몹시 언짢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장인의 솜씨가 빠져 있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중략) 사실 '이계 예술이야?' 하고 묻기 보다는 '뭔가가 예술로 변신하는 순간은 언제부터지?'라고 묻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훨씬 흥미로워 진다."(43쪽)


책을 읽고 나면 현대미술의 범위가 어디까지이고 왜 이러한 작품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A부터 Z까지 나열된 물음에 대한 대답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게 된다.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46-47쪽)이나 티노 세갈의 <이것은 너무나 현대적이다>(32쪽), 또는 모나 하툼의 <이물질>(130쪽)에 대해서 '그래 만초니 정도는 봐 줄 수 있는데, 세갈의 작품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면 아주 큰 소득이 아닐까.


본문 226페이지 정도의 책을 통해 현대미술의 범위를 생각해 보고 현대미술의 역할을 상기해 볼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현대미술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런지 알 수 있다니, 가성비가 갑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고 '어렵다', '당혹스럽다', '잘 모르겠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다. 작가들이 던지는 화두에 대한 답을 따라가다 보면 비로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현대미술의 대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모더니즘 회화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아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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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9-21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 일간지를 보고 <더 기묘한 미술관>을 노트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 책도 기록해 놓겠습니다. 저도 예전에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책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좋은 정보 얻어 갑니다.

yamoo 2024-09-24 14:27   좋아요 1 | URL
현대미술에 대한 안내서는 몇 종이 출간되어 있어요. 절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10여종 됩니다. 현대 미술을 회화로 한정한 책도 있고 화가별 또는 시대순으오 나열한 책도 있습니다. 대체로 시대별 사조별 화가별로 묶은 책이 대부분이에요. 어떤 책은 모더니즘을 현대미술ㅇ.ㅣ 메인으로 놓고 그 전후 사조를 고찰한 책도 았습니다만....읽어본 바로는 이 책이 가장 평이하고 현대미술 전 분야 그러니까 설치나 퍼포먼스 개념미술까지 폭넓게 다뤄 현대미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고연 예술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 입문자들에게 아주 좋습니다. 그다먼 모더니즘 회화나 추상화에 대한 내용이 좀 부실하여 그건 좀 아쉽습니다만...입문자애게 가장 적합한내용을 담고 있어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패크님도 일독하셨으면 합니다!

그레이스 2024-09-21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어 야무님 글을 보니 반갑네요~
저자 안휘경님은 안휘준교수님하고 관계있는 분은 아니신지?
갑자기 드는 생각입니다!

yamoo 2024-09-24 14:29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그림에세이 쓰고 새로운 작품 구상하느라 알라딘에 뜸했습니다~~ㅎㅎ

안휘경하고 안휘준의 관계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네요. 사실 두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지라..^^;;

감은빛 2024-09-22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은 참 어렵다고 저도 느낍니다. 친한 사람이 쓰레기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고, 지난 몇 년간 의리로 그의 전시회를 몇 차례 다녀왔는데, 저는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저 쓰레기로 이런 작품을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런 판에 박힌 인삿말 외에는 다른 말은 하지 못 했어요.

yamoo 2024-09-24 14:3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올만입니다!
현대미술은 참 난해하죠. 왜 이상한? 작품만을 만드는지....평면은 왜 자꾸 산으로 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죠. 모두 모더니즘 때문이에요. 모더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현대미술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어요. 요 책은 그 안내서랄 수 있어요. 감은빛님도 일독하시고 나면 다른 말을 하실 수 있을듯해요..^^
 
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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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순간들의 무수한 지속이다.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순간을 산다. 그 순간들은 우리의 몸에 각인되어 기억으로 체화되고 현재의 순간을 만나 과거의 기억들은 새롭게 현재에 개입한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삶의 속성이다.

 

이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감정이라는 부산물을 만난다. 그 감정은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억(추억)이 순간적으로 응축되어 이미지화된 실체가 감정이라는 점. 이는 삶의 단면 속에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학은 이 감정을 이야기로 담는 예술 영역이다. 잘된 작품은 삶의 페이소스가 플롯 속에 오롯이 담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목적이고 예술이 지향하는 바라 할 것이다.

 

트레버의 마지막 단편집인 <마지막 이야기들>(문학동네, 2023)을 읽었다. 마지막 책까지 그의 작품들은 문학이 추구하는 카타르시스를 완벽히 선사한다. 단 한 작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한결같다. 읽고 또 읽게 되며 행간을 음미하게 된다. 그런 후에 오는 아련한 마음의 황량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특이하게도 그 황량함과 쓸쓸함이 전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 현재를 살고 있다는 삶의 생생함이 단편이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고독과 비애를 담은 단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근본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게 한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게 되거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게 상처이든 사랑이든 상실이든 우리는 그에 반응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어느 시점에서 점점 잊혀지지만 그 감정과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트레버의 작품들을 읽으면 그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이 아련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황량해 지지만 이를 통해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삶에서 위안이라는 것을 나는 작가의 단편집을 통해 그 단어의 의미를 처음 확인하는 경험을 했다.

 

여기 실린 10편의 단편들은 모두 주옥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겨울의 목가>, <여자들>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삶의 페이소스를 함축적이고 절제된 글에 담아내어 깊고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단편들이다. 마지막 몇 문장을 통해 단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일꾼들이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선다. 붉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그들의 장홧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메리 벨라는 불안감을, 그리고 어쩌면 연민을 감지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웃어넘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에게는 그 사랑이 그녀 의 그림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녀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방들과 장소 에 있음을 일꾼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사랑이 시들지 않을 것임을, 길고 느린 죽음이나 평범해진 사랑은 없을 것임을 일꾼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의 목가, p.206)



겨울의 목가마지막 부분이다. 이 몇 줄을 통해 작가는 메리 벨라(여주)의 감정을 아주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읽는 독자들은 벨라의 생각을 읽으며 아주 깊은 사랑의 상실감에 공명한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첫 문단을 작가가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지 깨닫고, 여주 메리 벨라의 기대감이 어떻게 상실로 이어지는 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마지막을 첫 5문장을 통해 결말의 복선을 아주 멋지게 깔아놓는다. 이것을 처음 읽어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다. 마지막 문장을 봐야만 안다.

 

그래서 큰 여운의 감정을 안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트레버의 단편들은 거의 모두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별 것 아닌 사건이 마지막 몇 문장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전제와 사건들은 마지막을 위한 절묘한 암시와 복선이다. 2-3번 읽으면 작가의 역량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이 돌아왔다볼품없는 사춘기에 이르러 더 거칠고, 키도 더 크고, 더 험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그녀의 물건들을 돌려주러 온 게 아니었고, 곧장 걸어들어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그녀는 거기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인간의 나약함이 사랑과, 혹은 천재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는 데만 너무 골몰했으니까.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p.17)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마지막 부분이다. 사실 트레버의 마지막 단편집에서 내가 제일 감명 깊게 읽은 단편이다. 작가는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를 노처녀와 소년 그리고 피아노를 매개로 삶의 미스터리가 하나의 경이임을 깨닫게 한다.

 

9페이지 분량이지만 작가가 두 인물을 통해, 특히 미스 나이팅게일을 통해 말 해주는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에 대한 페이소스는 고통과 슬픔을 넘어선다. 그리고 삶을 관조하게 한다. 그러하기에 작가가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담담한 서사는 우아하고 매혹적이다.

 

윌리엄 트레버에 따르면 단편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들 단편을 읽으면 삶의 진실이 폭발하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 압축된 서사가 주는 경이감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편이 주는 삶의 매혹과 서사의 절제미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 사료된다.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단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체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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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25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달에 현대문학 것 윌리엄 트레버, 샀어요. 거기에는 님이 인상적으로 읽으셨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겨울의 목가>, <여자들> 등이 없네요. 아쉽게도...ㅋ
보람 있는 독서 하셨네요. 좋은 소설 읽고 나면 기분이 참 좋지요.^^

yamoo 2023-11-27 09:07   좋아요 0 | URL
현대문학 세계단편선 시리즈는 정말 탐납니다. 모두 사는 건 공간 상 문제가 있어 관심 있는 작가만 사자는 결심으로 한 두 권 사서 모으고 있는데, 선별된 작품들이 모두 괜찮아 보입니다!ㅎㅎ

네, 현대문학판 트레버 단편집에는 없어요~~ 문학동네판으로 보셔야 할 듯해요..^^

새파랑 2023-11-25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레버의 함축적이고 절제된 글들은 처음에 빠지긴 쉽지 않지만 한번 빠져들면 너무 좋은거 같아요. 비교하면 안되지만 다른 단편들을 읽다보면 트레버 생각이 납니다 ㅋㅋ

yamoo 2023-11-27 09:10   좋아요 1 | URL
첨엔 읽다가 무슨 소린지 몰라 다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이 있어요. 하지만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트베버를 읽는 시간이 매우 귀중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맞습니다. 다른 단편들을 읽다보면 트레버 생각이 나는 건 막을 수 없어요..ㅎㅎ
트레버와 다른 지점에서 고골의 단편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모파상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얼른 읽어보려구요~

겨울호랑이 2023-11-2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그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이 아련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황량해 지지만 이를 통해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말은 과거의 부정적으로 상처가 되어 자신에게 박혔던 감정들이 이제는 온전하게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실감한다는 뜻일까요... yamoo님 말을 통해 문학을 통한 자신의 발견과 성장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yamoo 2023-11-27 09:12   좋아요 1 | URL
네..비슷합니다. 관조하게 된다는 것이 좀더 정확할 듯해요.

좋은 문학 작품은 자신을 마주하게 하고, 인간이 가진 보편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 같아 계속 찾아 읽게 됩니다만...발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ㅎㅎ

자목련 2023-11-2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참 좋았어요. 야무 님의 리뷰로 한 번 더 좋음을 확인합니다!

yamoo 2023-11-27 16:54   좋아요 0 | URL
자목련 님은 이 책을 7월에 읽으셨네요. 역시 별5개....
좋은 작품은 다독가들이 먼저 알아보는 가 봅니다.
헌데, 이런 소설을 만나기 참 어렵더라구요. 10권 읽으면 1권 발견할까말까...
다행히 알라딘 마을에는 소설 다독하는 분들이 많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ㅎㅎ 그래도 제가 발굴한 작품들도 있긴한데...지금은 절판이라..^^;;
 
잘못 들어선 길에서 (구) 문지 스펙트럼 17
귄터 쿠네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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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SF소설 덕후였다. 김용의 대하역사 소설을 다 읽고 시쿤둥해질 즈음 발견한 아시모프의 소설 시리즈. <강철도시><로봇>은 내 20대의 동반자였다. 이후 걸출한 SF소설들을 거쳤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을 즈음 내게서 멀어졌다. 아마도 에코의 소설에 심취하면서 나의 문학 편력은 시작됐을 거다.

 

그런데 SF소설은 장르적 기대감과 함께 한계가 분명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치나 사회비판적 의식의 부재였다. 그래서 가볍게 읽는 장르 소설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비록 출중한 SF 작가와 작품들이 간간히 발견되긴 했지만(예컨대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 그 수가 너무 적었다. 물론 SF소설의 장르적 특색은 여전했다.

 

요 몇 년 간 에스에프 소설과는 거의 담 쌓고 지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귄터 쿠네르트라는 작가의 <잘못 들어선 길에서>(문학과지성사, 2000)을 읽었는데 정말 놀라운 소설이었다. ‘SF소설을 이렇게도 쓸수있구나!’라는 감탄을 내뱉게 했으니까. 쿠네르트라는 작가는 처음 접했다. 단편 소설집임에도 한 작품 마다 임팩트는 상당했다.

 

보통 독일 작가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쿠네르트는 동독 작가임에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SF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보였다고 개인적으로 촌평하고 싶은 심정이다. 작가는 상황과 소재만 SF적 장르를 가져왔을 뿐 그 서사의 핵심은 동독 사회 구조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다.

 

동독 시절이면 냉전시대이다. 냉전 시대에 작가가 써내려간 짧은 서사는 시대를 초월하여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한 비판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재밌기까지 하다. 읽다 보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특히 <병 통신><가정 배달>이 그렇다.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시정하기 위한 제도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올림피아2>, <러브스토리-메이드 인 DDR>,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져야 한다> 등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돋보인다. 짝사랑과 불륜이 미래 기술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부조리하게 보여주는 단편들이다. 특히 <대리인>의 경우 사랑을 진화론적으로 풍자하는 시도가 돋보였다.

 

12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 선별집이지만 주제와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어 읽는 맛이 배가 된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보고 싶다. <잘못 들어선 길 및 또 다른 방황들>이라는 1988년 원판본이 꼭 재번역 되길 강력히 희망한다.

 

주제를 서사로 구현해 내는 작가의 역량이 매우 빼어나서 단편 12편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입맛만 다셔야겠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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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20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여간해서 별 다섯 개 안 주시는 줄 아는데 꽤 만족스러우셨나 봅니다.
좀 오래된 책이긴한데 책값도 싸네요.
전 아직 에스에프 익숙치 않지만 함 관심 가져 보도록 합죠.ㅋ

yamoo 2023-10-23 09:12   좋아요 1 | URL
네,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를 이어서 읽었는데, 좋은 소설을 읽는 시간이 왜 가치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문지스펙트럼의 세계문학은 정말 선견지명이 있었던듯해요. 여기 리스트에 목록 올리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가 걸출한 작품들입니다. 대산이나 을유에서 펴내는 세계문학 작품집에 들어 있는 듣보잡 작가라는 사람들 일부가 문지스펙트럼에 있는 걸 보고 놀랐죠. 쿠네르트는 어느 출판사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완연된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죠. 이렇게 걸출한 작가의 작품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지스펙트럼의 소설들이 다시 간행하고 있으니 기다려보면 다시 재간될 듯합니다...ㅎㅎ 2003년인가...그때 이미 무질의 단편집이 여기서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울만합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10-2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화씨451>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르귄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책도 찾아봐야겠네요!^^

yamoo 2023-10-24 09:17   좋아요 1 | URL
르귄도 괜찮지요..ㅎㅎ 브레드버리의 화씨451은 브레드버리 작품 중 가장 발군이더군요..^^

그레이스 님, 에프에프 좋아하신다면 이 책 강추합니다! 정말 의미있는 책이에요~~
 
파울리나 1880 대산세계문학총서 112
피에르 장 주브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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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을 읽을 때, 처음에 느낌이 별로라고 느끼면 바로 손절해야 매몰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 초반부, 즉 50여 페이지를 읽고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대체로 그렇다. 예외는 문장이 아주 유려하거나 가독성이 좋게 편집된 작품인데, 이 소설은 후자에 속했다.

 

더군다나 피에르 장 주브라는 프랑스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생소한 작가다. 오래 전 일본에서 건너온 세계문학 전집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작가였고, 최근에 민음사나 을유문화사 등 새롭게 단장한 세계문학전집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작가였다.

 

그런데 문지의 대산세계문학 총서 112권에 장 주부의 <파울리나 1880>(문학과지성사,2012)이 출간된 거다. 이건 아마도 대산세계문학 시리즈라서 가능한 듯하다. 이 총서에는 정말 희귀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목록을 보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어쨌거나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이 무척 지루했다. 흡입력 있는 사건이랄 게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타이틀에서 보듯이 파울리나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소개하기 때문이리라. (이와 같은 인물 전기 형식의 소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대체로 그 주제가 사랑으로 수렴되는데, 작가마다 사랑의 서사가 다른 것은 뭐 상식에 속하는 편이다. 신파로 끝나거나 아님 사랑의 쟁취로 끝나거나. 이도저도 아닌 제3의 선택으로 끝나거나. 뭐 사랑했던 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뭐 그런 얘기.

 

이 소설 역시 위에서 분류한 3가지 중 하나로 귀결된다(하지만 여 주인공은 안 죽는). 뻔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 즉 형식적 미학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매우 짧은 118개의 장과 상대적으로 매우 긴 마지막 11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은 다시 프롤로그 격인 푸른 방(1~2)’과 에필로그 격인 햇빛에서(119)’를 제외하고 토라노(3~32)’, ‘1870~1876(33~62)’, ‘성모 방문(63~92)’, ‘검푸른 천사(93~118)’ 4개의 부로 묶여 파울리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물론 그녀와 미켈레 백작의 사랑이야기도.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지역의 영주인 주세페 판돌리니 가의 딸이 매우 아름답게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딸은 매우 종교적인 성향을 가졌다. 아버지와 오빠의 시기와 감시 속에서도 몰래 유부남이자 아버지 친구인 백작을 사랑하게 된다.

 

파울리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 몸에 성()과 욕()이라는 상반되는 두 힘에 끌리게 된다. 그래서 마치 두 인물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마음은 유부남을 사랑하며 육체적 쾌락을 갈구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이게 명백한 죄라는 사실에 너무도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수녀원에 가서 마음을 정화해 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수녀원을 나온 후 연인 생각에, 백작이 사랑했던 자신의 사진을 그에게 보내 다시 만나게 되고, 격정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나서 권총으로 백작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형을 받아 살다가 풀려난다는 게 주된 얘기다. 요즘 잘나가는 막장 드라마나 영화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줄거리.

 

118장에 파울리나 판돌피니의 생애가 요약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게 이 소설의 줄거리라 봐도 무방하다. 이 작품은 결국 파울리나의 생애가 핵심이기 때문.

 

1849614일 밀라노에서 출생. 마리오 수세페 판돌피니와 그 아내 루치아 카롤리나의 막내딸.

독신, 무직.

1877년부터 1879년까지 만토바의 성모 방문 수녀원에서 수련 수녀로 지냄.

1880828일 피렌체에서 정부(情夫)인 미켈레 칸타리니 백장을 살해함.

1881412일 자로 피렌체 법정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음. 토리노의 감옥에서 형을 살다가 1891615일 사면됨. (p242)

 

사실 표면적으로는 별것도 없는 진부한 사랑 얘기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의 형식미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래 피에르 장 주부는 시인으로 출발했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의 시에 심취하여 문인들과 함께 <황금 띠>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첫 시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인 출신이 소설을 쓰면 어떤 작품이 산출되는지 이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산문이 매우 시적이고, 4부의 성모 방문편은 아예 기도문을 빙자한 시를 대놓고 시전한다. 심지어 65장은 한 문장이다. “나는 은총을 잃고 전락했지만 행복하다.”

 

이 뻔한 작품을 끝가지 읽을 수 있었던 동력은 이와 같은 짧은 장의 매력 때문이다. 짧으면 1문장 많으면 3페이지를 넘지 않는 장들은 매우 함축적인 문장들과 압축적 서사 전개로 파울리나의 삶을 끝까지 살펴볼 수 있게끔 한다.

 

보통 여성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전기적 성향의 소설들은 여주인공이 대개가 빼어난 미인이다. 그 옆에는 항상 돈 많고 잘생기고 부러울 게 없는 백마 탄 남자가 연인으로 등장한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주인공도 클리셰. (헌데 책 표지의 그림 여인은 내 생각에 정말 짜증나게 안 생겼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작품은 3류 연애소설에 그쳤을 거다. 이 작품이 이런 진부함을 가볍게 뛰어 넘는 건 두 가지 요소 때문이지 않을까. 하나는 위에서 밝혔다시피 형식미이고, 다른 하다는 캐릭터의 성격이다. 주인공인 파울리나가 가진 그 이율배반적인 성향을 작가는 무의식의 심연을 통해 들여다보기를 시도한다.

 

물론 아르투어 슈니츨러처럼 정신분석적 메타포를 능수능란하게 작품에 녹여내지는 못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무의식의 심연을 심리적 초조함으로 형상화하지도 않았다. 단지 투박하지만 내면의 그 상반된 두 힘의 이동을 서사를 통해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죄의식과 쾌락적 성향, 즉 성적인 성향과 종교적인 성향이 아주 팽팽하여 분열적 성향을 자주 보여준다. 이는 투박하지만 정신분석적으로 인물을 분석할 여지를 주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3류 통속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연대를 참작하면 충분한 작가적 역량이지 않을까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매우 상징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7장에서 파울리나는 토라노 영지에 있는 새끼염소를 매우 사랑했다. 헌데 파울리나를 좋아하지 않던 농부는 다른 염소들을 죽일 때 그 염소도 같이 죽이겠다고 했다. 염소를 구할 시간이 없었던 파울리나는 직접 염소를 죽였다.

 

그녀는 축사로 들어갔다. 염소를 죽이라고, 죽이라고, 하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중략) 그녀는 칼이 염소의 목에 파고드는 것을 느꼈고 그녀의 손은 뜨거운 피로 물들었다. 얼어붙은 듯 그대로 서 있는 그녀의 눈빛은 끔찍할 정도로 공허했고, 오직 가녀린 아랫입술만 파르르 떨렸다.” (p26)

 

이 장면은 113장에서 그대로 차용된다. 염소는 미켈레 백작으로 치환되어 있다. 칼이 염소에 목에 파고든 것처럼 총은 백작의 목을 관통했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고, 얼어붙은 듯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겁에 질리고 절규한다. 파울리나는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이면 대상을 멸함으로써 자기 사랑을 완성하는 성향을 가졌다. 정신분석적 접근이 놓칠 수 없는 인물이다.

 

, 여러 얘기를 장황하게 하긴 했지만, 딱히 추천할 만한 소설은 아닌 듯하다. 재미 면에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듯하다. 다만, 소설의 형식미를 주로 보는 분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보면 더할나위 없는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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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1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 3개라니! 작가가 이 사실을 알면 섭하겠어요.ㅋㅋ
어쨌든 읽어 볼만은 하겠어요.^^

yamoo 2023-05-12 06:41   좋아요 1 | URL
작가는 아주 오래 전 사람이라 뭐, ..ㅎㅎ
아마 유미주의나 탐미주의 계열 좋아하는 분들이면 그래도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이 계열 좋아하는 사람이 좀 드물고, 이 소설은 가독성은 좋은데 진부한 면이 많아 인기가 많이 없을 듯합니다..ㅎㅎ

그나저나 휴대폰으로 댓글 달기는 조심스럽네요. 댓글이 안 달려서 어제와 그제 날려먹은게 많아요..ㅜㅜ

페크pek0501 2023-05-1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책이라면 흥미로울 듯합니다. 심리학, 인간 이해, 정신세계 등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검색해 보겠습니다.^^

yamoo 2023-05-13 09:00   좋아요 0 | URL
페크 님,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소설이긴 합니다만..
정신분석학을 디테일하게 살려 작품속에 녹여내진 못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살던 당시는 정신분석학이 태동하던 시기라서 감안하시고 보면 좋을 듯한데...어쨌거나 정신분석학을 소설에 반영한 초창기 작품군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살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절묘하게 작품속에 녹여낸 슈니츨러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지긴 합니다.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장 주브 보다는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품들을 강추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