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문고본들. 그 중 하나인 박영문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로 9센티x세로16.5 센티의 문고본 시리즈.
총280여 종의 주옥같은 고전을 엄선하여 출간한 기획시리즈.
여기에는 고전소설, 에세이, 고전 사상, 한국학 등 그 시대에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들이 즐비합니다.
특히 사상가들의 주저가 아닌 짧은 에세이들도 꽤 발간된 매우 귀중한 문고본 총서 입니다. 한스 콘의 <민족주의 시대>나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 막스 쉘러의 <철학적 세계관> 등이 제가 이 문고본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귀중한 책이었죠. 번역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이런 책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2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말입니다. 1998년 쯤에 대형 서점(서울문고)에서 1800원에 구입한 게 마지막 기억입니다. 현재는 절판되어 헌책방에 가야만 만나볼 수 있는 문고본 시리즈.
지금까지 헌책방에서 약 30여 권을 구해서 지하철이나 버스 내에서 읽어왔습니다. (이동 중에 읽기 딱입니다!) 거의 다 읽어 가지만 헌책방을 돌아다녀도 좀처럼 만나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헌책방 재고도 거의 소진되어 가는 것 같군요.
3년 전인가... 자주 가던 헌책방에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3권을 손에 쥐고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가서 사려고 하니 없더군요.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 완역본은 박영문고가 처음이자 막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완역본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영사에 전화를 걸어 시리즈의 재출간 계획을 물어보니, 재 간행 계획은 없다는 군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현재 손에 잡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책은 3권입니다. 나머지는 박스에 담겨 구석에 있어 꺼낼 엄두가 안납니다. ㅜㅜ 그래서 기념 샷~)
(사진 왼쪽의 <경험과 교육>은 존 듀이의 교육 에세이인데, 번역이 매우 안좋스니다. 겨우 겨우 읽었다는..콘의 <민족주의 시대>는 번역이 꽤 잘되어서 슥슥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래는 박영문고 출간에 즈음한 박영사 대표의 출간사입니다. 이 출간사를 여기에 옮겨놓아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아는 것은 힘이요 행동의 원천이다. 행동 없는 지식의 축적이 공허한 것과 같이 지적 토대가 없는 행동은 맹목이며 위험하다. 추등(秋燈)밑에 책을 덮고 천고를 회상하면서 식자인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탄식하던 석학 황매천도 행동인이었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민족분단의 슬픈 현실 속에서도 바야흐로 민족중흥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맞이하기 위하여 국민전체가 감연히 일어서고 있다. 그러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민주적 통일한국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리는 현시을 직시하고 이것을 정확히 분석하며 진단하는 예지를 갖추어서 확신과 희망과 용기를 갖고 여기에 대처하는 자주적 태도와 행동력을 길러야 한다.
여기에 박영문고를 간행하여 독자 여러분께 바치는 소이도 이 같은 요구에 응하고자 함인 바이니 이에 따라 이 문고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세계의 민주적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여 과학적, 비판적 정신을 함양한다.
한국의 위대한 민족적 얼과 슬기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영광된 민족사를 개척해 나가는 정신자원을 개발한다.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소생시켜 민족적 긍지를 회복한다.
종래의 독선적 장식적 교양에서 탈피하여 국민 대중과 직결된 참신한 문화를 건설한다.
다행히 이 문고가 널리 독자의 지지를 얻어 건강한 성장을 꾸준히 지속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박영사 대표 안종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