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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초순 경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알라딘 신림점을
둘러 보려고 들렀다. 자주 확인하는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엄청난 책들을 발견했다. 책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예기치 않게 20권 가량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모으고 있는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가 대거 들어와 있었던 거다!

 

거기다가 항상 찾아다녔던 까치출판사의 서양사 절판도서까지 있었으니, 생각이고 뭐고 할 게 없이 바로 결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중동의 역사>나 <비잔틴 제국사>같은 책은 도서관에서 보고 소장하고자 헌책방을 찾아다녔는데, 그날 알라딘에서 만나거다. 심마니가 심봤다고 하는 게 그런 기분일 거다.

 

어쨌든 그날 나는 내가 찾던 책들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시리즈 중 하나인 크로노스 총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겠지만..

 

 

을류문화사의 KRONOS 시리즈는 책 내용을 떠나서 정말 모으고 싶은 총서다. 책이 매우 이쁘게 만들어졌기 때문. 읽어보니, 시리즈의 명칭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역사 총서였다.

 

시리즈의 책 날개를 보면 <크로노스 총서>의 탄생을 알리는 문구와 함께 다음과 같은 부제가 걸려 있다. "세계의 석학들이 참여한 간결하고 새로운 형식의 역사 읽기 프로젝트" 석학들이 참여했다고 모두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 관심을 갖고 몇 권을 읽어 내니, 괜찮은 책도 있었지만 별로인 책도 있었다.

 

이 시리즈의 책을 7권 갖고 있었는데,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그리고 <이슬람>은 내용 자체로도 훌륭했다. 각 테마에 맞는 역사적 입문서 구실을 하는 책들인데, 고교 세계사 수준을 넘는(학부 교양 수준 정도), 내용임에도 알차고 쉬운 서술이 영양가 만점 이었다.

 

 

 

 

 

 

 

 

 

 

 

 

 

하지만 <독일제국>과 <근대 일본>, <런던의 짧은 역사>는 그리 높은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산만함이 결정적이었고, 번역 문제도 한 몫 했다. 그에 반해 <기업의 역사>는 좀 피상적이었다. 익히 알려진 내용이라 새로운 게 거의 없었다. 지루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 역시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는데 그건 내가 셰스피어 작품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을 모르면 정말 읽기 곤욕인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아다니던 책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보고 꼭 소장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수학의 역사>, <도시의 역사>, <진화의 역사>, <아메리카의 역사> 등이 소장 목록이다. <수학의 역사>를 지난 여름에 제일 먼저 손에 넣었다. 읽어 보니 역시 찾아다닌 보람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800페이지 짜리 <수학사>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다. 물론 역사서라 전문 수학적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수학의 역사를 스케치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진화의 역사>, <도시의 역사> 등을 항상 찾아다녔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매일 들르는 것도 이런 책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찾던 책들을 떼거지로 만난 거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외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거 같다. 특히 <야구의 역사>가 구미를 당긴다.

 

 

 

 

 

 

 

 

 

 

 

 

 

 

 <공산주의>는 어떤 시각으로 쓰였는지 살펴보고 싶고, <발칸의 역사>는 이전부터 궁금했던 지역이다. 살림 문고본에서 나온 발칸의 역사는 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발칸의 역사>를 구입했다. <비폭력>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 됐는지 궁금해서 구입했다. 

 

 

 

 

 

 

 

 

 

 

 

 

 

 

 

 

 

 

 

 

 

 

 

 

 

 

 

 

 

전체적으로 크로노스 시리즈는 괜찮다. <지식인 마을>시리즈 만큼 어느 정도의 퀄러티를 보장한다. 책 디자인도 빼어나 꽂아 놓으면 참으로 예쁘다~ (지금 나오는 판이 아니다. 꼭 이전 판본을 구입해서 꽂아야 한다~ㅎ) 얼마나 예쁘냐면... 현재 갖고 있는 크로노스 총서의 기념샷이다. 제대로 꽂아 놓지 못하여 미감이 반감됐다. ㅜㅜ

 

 

여러모로 관심을 갖고 있는 총서 이기에, 발간사를 갈무리 해 놓는다. <크로노스 총서>와 함께 나름의 '역사 읽기 프로젝트'를 가동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관심이 동하는 7권 정도만 끝내도 프로젝트를 완료한 뿌듯함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Kronos)신'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관장하는 제왕으로서 '시간, 세월'이라는 어원에서 나아가 '연대기'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크로노스 총서는 세계역사학계의 저명한 석학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 테마별로 집필한 새로운 개념의 역사 개론 시리즈이다. 200쪽 내외의 짧고 간결한 글 속에 시대를 이끈 위대한 인물과 사상, 문화, 종교제도 그리고 전환기적 사건 등의 역사적 편린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서 인류 역사의 거대한 조감도를 그려내고 있다.

깊이 있는 내용과 생동감 넘치는 이 역사 시리즈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뿐만 아니라, 역사 읽기의 길잡이 역할을 해줌으로써 폭넓은 교양 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덧] 

 

단언하건대 요즘 나오는 책보다는 이전판의 디자인이 훨씬 좋다! 신판과 구판을 비교해 보면 대번 알 수 있을 듯..사진보단 일러스트레이션이 훨씬 낫다~ (수학의 역사 일러스트레이션은 최악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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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서울 알라딘 중고샵은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책을 구할 수 있는 보물섬 같은 곳이에요. 저도 서울에 들리면 종로점을 꼭 가는데 정말 운이 좋으면 책방에서도 찾기 힘든 책을 찾을 때가 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서울 알라딘 중고샵에 다 가보고 싶습니다.

yamoo 2015-01-16 20:47   좋아요 1 | URL
가끔 알라딘에만 절판 도서들이 대거 몰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절판 도서를 데려올 수 있지요..
서울은 상대적으로 알라딘 중고점이 많아 조금만 검색을 하면 좋은 책을 찾을 수 있어 좋습니다. 경기권까지 넓히면 1달에 한 번 정도는 원하는 책을 손에 넣곤 합니다~^^ 대구 부근에도 있지 않나요?? 없으면 조만간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 봅니다~ㅎ

가넷 2015-01-18 11:13   좋아요 0 | URL
대구에도 생긴지 오래되었습니다. ㅋ

cyrus 2015-01-18 14:19   좋아요 0 | URL
대구 알라딘 서점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 있어서 여기 지나가면 꼭 알라딘 서점에 갑니다. 그래도 서점이 여러 개 있는 서울이 부럽습니다. ㅎㅎㅎ

돌궐 2015-01-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분당점에 갔다가 몇 개 좋은 책 건진 적이 있어서 공감하며 봤습니다.^^
기회가 되면 서울점에도 한 번 들러봐야겠어요.
크로노스 시리즈는 기억해 뒀다가 도서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yamoo 2015-01-18 00:01   좋아요 0 | URL
분당점에 가셨었군요. 지하철이나 버스로 1시간 내에 갈 거리이면 알라딘 중고서점을 방문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라딘이 생겨나면서 알게 됐습니다. 가서 구경하다보면 의외로 좋은 책이나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있어 아주 좋은 나들이입니다.ㅎ
서울에는 강남, 종로, 대학로, 신림, 노원, 건대, 신촌점 등이 있습니다. 사시는 곳에서 최고로 가까이 있는 서울점에 방문해 보시면 돌궐님 눈에 띠는 역사서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방문해 보시길!

크로노스 시리즈는 돌궐님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습니다. 책 시리즈 모두 개론서로 집필된 것들이거든요~ <세익스피어의 시대>나 <야구의 역사>, <수학의 역사>, <도시의 역사>는 분과학문의 통시적 관점으로 엮어진 책들이라 돌궐님도 재밌게 일독하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살림지식총서가 드디어 500권을 냈다. 정말 놀라운 속도다. 거기다가 이 지식 총서의 컨셉처럼 스펙트럼도 넓다. 인문, 사회, 문화,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 취미, 실용까지 교양 지식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200권대 중반이후로 가격이 한 차례 껑충 뛰기는 했지만 이 시리즈의 역사, 철학, 문화 분야는 정말 탁월한 책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도그럴것이 해당 분야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전공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고 알차다. 시리즈 초반에 출간된 책들은 매우 저렴해서(3300원) 미친듯이 사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나도 100권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소장한 살림문고본은 총 110권이 좀 넘는다. 주제별로 그리고 시기별로 읽었기에 책꽂이에 꽂아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읽었던 살림문고 중에서 최고의 책들을 꼽아보면 정말 30권이 훌쩍 넘는다. 그 중에서도 인상깊었던 책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특히 푸코와 후설이 대박이다~!)

 

 

 

 

 

 

 

 

 

 

 

 

 

 

 

 

 

대부분의 문화, 역사, 철학 분야의 책들이 정말 좋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이 시리즈 중에서 제일 허접한 책을 선별해서 그 책들만 피하는게 상책이다. 내가 소장한 살림문고를 모두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한 70% 정도는 완독했다. 대개가 옹골찬 책들이었지만 역시 함량 미달인 책도 속해 있었다. 이런 건 역시 총서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듯. 일단 두 권만 피하자.

 

먼저, 최악의 책은 <고객을 사로잡는 디자인 혁신>이다. 저자인 신언모는 삼성에서 매우 많은 뒷돈을 받아 챙긴 모양이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삼성 제품 예찬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사람은 교수 중에서도 원로 교수급에 속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이 교수는 디자인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제품의 외형적 이미지가 디자인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읽으면서 '지랄같다'는 생각을 수십 번 되네였다.

 

<흡결귀가 지배하는 세상, 대학>을 읽고 보니, 퀄러티가 떨어지는 책을 내놓는 교수들은 거의가 실력없는 놈팽이쯤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을 후려 학부모의 돈만 빼먹는 흡혈귀같은 존재들. 이들은 대개 신 모교수처럼 한심한 책을 줄기차게 내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안주하는 모양이다. 살림문고 최악의 책은 바로 신언모의 책이다.

 

 

두 번째 책은 <이란의 역사>다. 이 책 저자도 교수다. 유흥태란 사람인데, 역사서가 참으로 '창세기'초반부같다. 누가 누굴낳고, 또 누가 누굴낳고...하면서 끝임없이 이어지는, 뭐 그런 내용. 이전 페이퍼에서도 내가 이 부분에 내해서 불평해 놓았었다. 정말 지루한 책이다. 아랍 사람들 이름들이 모두 압둘, 모하메드, 하산...이런 이름들인데, 성과 이름들의 조합이 끝임없이 나열되면서 누가 누구를 죽이고 어느 나라를 세웠고, 또 간신히 살아남은 조카 아무개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언넘을 죽이고 새로운 왕조를 열고...계속 된다. 빌어먹을 책이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른 최악의 책이니, 읽지 않은 책 중에서도 있을 것 같긴하다. 어쨌건 위 두 책만 피하면 살림문고 본은 양질의 책을 만날 확률이 높은 시리즈다.  

 

살림문고가 처음 100권 돌파했다고 알라딘에서 세일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0권이라니....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총서 시리즈 중 가장 많은 권수 발행을 목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이건 우리나라 출판문화에 한 획을 긋는 대단한 업적인데, 이에 대해서 일언반구가 없는게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총서에 관심이 많아 총서들을 쭉~ 모아오고 있는데, 100권이 넘은 총서 시리즈는 정말 드물다. 아마도 단일 시리즈로 '한길사상신서'와 문지의 '현대의 지성' 시리즈 그리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대우학술총서 정도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총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총서는 모두 100권 이상을 돌파했다.)

 

헌데 살림지식총서는 단기간에 500권을 돌파하여 이 부분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위 100권을 돌파한 총서들은 80년대부터 또는 90년대부터 쭉~ 출간되어 오고 있는 총서 시리즈다.) 분명히 축하받아 마땅할 업적이지 않을까.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한 건 괴씸하지만^^;;)

 

서점에서 500권을 본게 어느 덧 한참 전이다. 그때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500권 제목이 <결혼>이라서. 난 아직까지 관심이 없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근데 결정적인 것은 이 책의 저자가 '결혼' 전문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근무했거나 그 대표가 썼다면 전문성에 의심이 가지 않았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이 <결혼>이라는 책을 쓴게 좀 거시기 해서 패쓰했다. 슬쩍 보니, 자게서 모양새에 정보의 나열에 불과해 앞으로 소장할 생각은 없다. 500권이라는 상징치고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책인 듯하다. 뭐, 결혼예찬론자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서 봐도 무방할 듯.

((500권 기념으로 후설 책이 나왔으면 어떨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니면 <이야기 서양철학사> 정도. 특히 후자는 그 두깨가 압도적이니..ㅎㅎ))

 

 

어쨌거나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살림지식총서다. 앞으로 몇 권까지 출간될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 지금까지 모아온 살림문고 기념샷이나 올려야 것다. 살림문고,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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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4-11-2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별히 야무 님 향해 드리는 말은 아니랍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더불어 책 이야기를 건넬 때는 무엇이 매개 돼야 할까요. 근방에 블로그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물길에 잠길 듯 말듯한 징검다리를 마주할 때 마냥 망설임이 앞섭니다.

yamoo 2014-11-25 13:4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리고 책 이야기를 건넬 때는 무엇을 매개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저도 정말 고민을 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안다는 건 무엇이고 아는 것 같은 걸 말했을 때 반응들, 그게 담론이라면 그게 참 거시기 한 거 같아 저도 망설이게 됩니다. 네..그렇습니다..^^;;
 

 

이 번에 소개해 드릴 총서는 해냄출판사의 대표적인 교양 시리즈 중 하나인 [클라시커 50]이다. 이 시리즈의 모토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다!'이다. 책의 편집이 매우 훌륭하여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매 꼭지인 메인 에세이는 분량상 깊이가 없는 게 흠이다.

 

물론 중학교 교과서 수준의 평이이한 문체와 문화사별로 꼭 알아야할 내용을 선별해 소개한 건 분명한 강점이다. 문학, 음악, 미술, 역사, 인물 등 교양인으로 꼭 알아야할 명작, 명인 50선을 한 권에 담는 다는 것은 웬만한 편집 능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이걸 아주 멋진 편집으로 해냈다.

 

그래서 현대 교양의 결정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깊이가 아쉽다는 것은 '교양'이라는 말에서 어느 정도 방패막이가 될 수 있겠다. 내가 이 시리즈의 4권을 읽어 보니 해당 분야의 무식을 충분히 타계할 수 있어, 참으로 괜찮은 교양 총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잠깐 밝혔다시피,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편집이다. 모든 책이 공통된 편집틀로 이루어져 있다. 컬러 도판이 시원시원한데, 여기에는 희귀한 사진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시리즈가 그렇게도 자랑하는 편집틀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참으로 자랑할만하다고 생각한다.ㅎ)

 

 * 글의 메인을 이루는 에세이 : 현대적인 감막 필치로 풀어낸 수준 높은 에세이

 * 링크 박스 : 인용문, 일기, 인터뷰를 비롯, 타분야와 연계된 흥미로운 정보

 * 그림과 사진 : 300컷에 이르는 컬러 화보

 * 캡션 : 그림과 사진에 대한 깔끔한 설명

 * 별도 자료 : 각 주제의 신속한 개관을 위한 다양한 압축 정보

 * 세부 정보 : 생애, 업적, 줄거리, 전승 과정 등 세부 정보

 * 추천 정보 : 각 주제와 관련된 책, 영화, 음악, 탐방지 소개

 * 요약 평가 : 각 주제의 특징과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별점 평가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체제의 입체 교양서'라는 광고 카피에 적절한 편집틀이라 하겠다. 컬러 화보 때문에 최고급 코팅지를 사용하고 가로 크기가 좀 큰 책이라 보기에는 좋지만 이게 이 시리즈의 결정적인 단점 역할도 한다. 갖고 다니면서 보기가 좀 불편하다. 무게감 때문에.

 

한 가지 밝혀 둘 건, 이 시리즈도 역시 퀄러티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꼭지 읽고 소장한 책은 4권이다.

 

 이 중에서 <재판>과 <건축>이 제일 만족하며 본 책이다. <철학가>의 경우 번역이 매우 저열했고, <디자인>의 경우 다른 디자인 책에서 많이 다뤘던 내용을 재탕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중복이 심하더라도 내용이 새로우면 괜찮은데, 이도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다. 이 점에서 <건축>이 그만큼 돋보인다.

 

사실 다른 주제는 별 관심이 동하지 않아 4권만 소장했다. 하지만 <커플>이나 <발명>, <오페라> 등은 흥미로운 얘기가 많아 일독할 만한 가치는 충분한 듯하다.

 

어쨌든, 이 교양 시리즈는 눈이 호강하면서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총서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그나마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시리즈이니, 착한 가격에 읽어보면 언론들의 찬사(이 시리즈 출간 당시 언론들의 격찬이 이어졌었다)가 허언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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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 출판사에서 아주 야심차게 기획하여 출간한 철학 총서가 있다. 이름하여 [누구나철학총서]. 이 총서 기획이 얼마나 거창했는지는 발간사에 확연히 들어나 있다. 동서양의 주요철학자 100명의 사상을 총 100권으로 담는 실로 엄청난 작업을 2003년에 기획한 것이다!

 

일단 얼마나 가열차게 기획했는지는 발간사가 웅변적으로 대변해 준다. 발간사가 무려 4페이지에 이른다. 어느 정도로 삐까번쩍한지 혼자 보기 아까워 전문을 옮겨 본다.

 

 

누구나 철학 총서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에서는 한때 바니타스라는 정물화가 유행하였다. 허망함과 무상함을 나타내는 바니타스는 사물의 생명감이나 정돈된 배치를 보여주는 여느 정물화와 달리 죽음과 소멸이라는 부정적이고 불쾌하기까지 한 이미지에 치중한다. 해골이나 곰팡이가 낀 치즈,썩은 사과 등이 즐겨 사용된 이미지들이었으니 그 그림의 음산한 분위기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철학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생동감 있는 정물화가 아닌 소멸하고 있는 바니타스의 모습일 것이다. 아니, 철학뿐 아니라 인문학 자체가 바로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실 바니타스의 화가들이 사물의 어둡고 무상한 측면을 부각시킨 것은 생명에 대한 또 다른 직관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패와 죽음은 감추고 싶지만 결국은 떨쳐버릴 수 없는 현실의 또 다른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에 마치 학문의 제왕인 듯 행세하던 철학과 인문학의 죽음이 오늘날 당연시되고 희화화되기도 한다. 클릭한 지 3초만 지나도 자신이 원하는 사이트에 링크가 되지 않으면 바로 중지시키고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초감각적인 새대들에게 철학이나 인문학은 결코 매력 있는 학문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두고 끈기 있게 달라붙어야만 겨우 개략적인 의미만을 파악할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터득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학문으로 비춰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인 사실은 바로 이런 상황이 철학의 가치를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ID)로만 통용되는 가상의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주체들의 혼란과 자아 정체성의 문제, 매트릭스에 의한 가상현실과 지식의 한계, 혹은 그 기초의 문제 들에 봉착하면서 우리는 다시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의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이 무용화되는 시기에 오히려 철학적인 담론들이 가장 번성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만 보더라도 오늘날 철학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철학총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총서의 이름에 그다지 학술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누구나'는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청소년을 포함하여 성숙한 사고를 시작하거나 이미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한번은 접해보아야 하는 철학총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고등학생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난해하지 않은 철학책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반영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와 순발력이 필요한 이 시대에 그와 정반대되는 느림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딱딱한 총서를 고집하는 것은 이 총서의 의도와 어긋난다.

 

 본 청소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본 총서는 동서양의 주요 철학자들을 거의 총망라하는 대규모의 총서이다. 동서양의 주요 철학자 100명의 사상을 총 100권으로 담는 그 규모에서 볼 때 지금껏 유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산술적 수치에서 갖는 규모의 의미보다 본 총서는 동서양의 주요 사상가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는 데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시도가 될 것이다. '누구나철학총서'는 서양의 사상가 60명과 한국, 중국, 인도의 사상가 40명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적 범위로 볼 때 소크라테스나 공자로부터 로티와 들뢰즈 혹은 풍후란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거나 주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상가까지 포함된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소개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상가들 역시 대거 포함된 것도 본 총서만이 가지 강력한 장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본 총서의 모든 필자가 국내 학자라는 사실이다. 본 총서는 국외 저자의 원저에 대한 번역물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필자들은 모두 해당 사상가들을 전공하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어설픈 번역에서 오는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든가 비전공자의 무지로 인해 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한껏 줄어들 것이다. 특히 몇 사람을 제외한 필자 대부분이 30대 혹은 40대 소장 학자들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겪을 수도 있을 어려움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셋째,  본 총서는 '누구나철학총서'라는 총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들과 일반 독자들로부터 철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이 있는 전문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철학 총서이다. 주요 개념이나 사상에 대한 설명은 청소년 독자들의 이해 수준에 맞추지만 각각의 책이 담는 내용의 범위는 해당 사상가의 핵심적인 사상과 범위 전체를 덮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엄청난 기획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본 총서에 참가한 많은 집필자들이 기획 과정에서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조력을 아끼지 않았다. 본 기획이 첫 결실을 맺기까지 3년이 넘는 준비 기간과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청소년들을 포함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누구나철학총서'를 통하여 철학의 참 맛과 유쾌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위원 박영욱

 

 

이 발간사는 참으로 거창하기만하다. 왜냐면, 지금까지 달랑 5권만 출간됐기 때문이다. 동서양 100명의 사상을 100권에 담는다는 총 3년 간의 준비기간과 이후 10년의 세월이 더 흘렀건만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헤겔에 대한 책들은 깜깜 무소식이다.

 

 

 

 

 

 

 

 

<로티>와 <비트겐슈타인> 책이 2003년 8월에 제일 번저 출간됐고, 그 다음 해 2월에 <들뢰즈>가 그리고 2004년 8월에 흄이 출간됐다. 이후 출간 소식이 없다가 무려 5년이 지난 2009년 1월에야 지젝이 출간됐다.

 

도대체 지젝은 갑자기 왜 출간한 것이며, 리처드 로티가 왜 1빠였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출간 순서다. 이런 어이없는 순서라니.. 반드시 내야할 사상가는 건너뛰고 로티와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흄이라니...어떤 기준으로 출간 순서를 잡았는지 오리무중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총서의 가장 심각한 부분을 좀 건드려보고자 한다. 내가 본 책은 <들뢰즈>와 <흄>이 전부다. 하지만 일독해보니, 위 발간사의 말 중 "필자들은 모두 해당 사상가들을 전공하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게 뻥이었다.

 

일단 <들뢰즈>를 쓴 박성수는 전공이 칸트다. 그래서 그런지 들뢰즈의 핵심 저작들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 분야인) 들뢰즈의 영화와 회화 이미지 텍스트로만 책을 구성했다. 들뢰즈에 의해 새롭게 평가된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에 대한 그들의 핵심이론들은 다 빠져있다. 그나마 영화와 회화속에서 들뢰즈가 본 베르그송의 논의만 살짝 보일 뿐이다.

 

물론 <로티>, <비트겐슈타인>, <흄>을 쓴 저자들은 모두 해당 철학자의 전공자들이었다. 하지만 <지젝>을 쓴 김현강은 전공이 카프카다. 카프카 전공자가 쓴 지젝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기획위원 박영욱이 "비전공자의 무지로 인해 독자들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한껏 줄어들" 것이라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발간사의 말은 지켜져야 하는 거 아니가. 아주 강력하고도 확신있게 3년을 준비하여 발간사를 쓴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런 말이 아예 발간사에 없었다면 아무 문제의 소지도 없었겠다. 하지만 이런 걸 발간사에서 밝힌 건 총서 기획의 핵심 컨셉 중 하나라는 건데, 이것을 아주 우습게 버렸다는 데에 실망감이 크다.

 

그리고 똑같은 흄 전공자가 쓴 <흄>은 [누구나철학총서]의 책이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 <흄>보다 더 어렵게 서술되어 있다. 두 권의 책을 같이 비교해 보았는데, 살림의 절대사상 시리즈가 훨씬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난 살림 출판사 책을 소장하고 이룸 출판사 책을 사지 않았다.

 

 

 

 

 

 

 

만일 이룸 출판사가 이 총서 시리즈를 계속 발간할 계획이라면 철저히 해당 철학 전공자를 선별해서 책을 발간하는 길만이 해결책일 것이다.

 

근데,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시리즈는 죽었다고 본다. 이 총서 시리즈보다 훨씬 수준높은 총서가 살림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로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철학총서 기획위원 박영욱이 말한 그대로 말이다. 핵심 동서양 철학자들을 해당 전공자들이 알차게 해설하여 편찬해 낸 총서가.

 

정말 전형적인 용두사미식 기획인듯하여 참으로 씁쓸한 느낌의 총서다. <지젝> 출간 이후 이 시리즈 기획위원들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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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2014-10-2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총서 중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총서 명을 검색하다 이 글을 접합니다. 지금은 한 오십권 나왔으려나, 했는데 겨우 네 권이군요. 그리고 그마저 기획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니 조금은 씁쓸하네요.
글쓴님의 다른 서평이나 감상들도 꽤나 좋습니다. 좋은 곳을 발견한 듯 해 흡족하네요. 이 흡족함도 결국은 `누구나철학총서`가 가져다 준 것이니, 저에게 이 총서는 나름 `만족스러운`총서가 되겠네요.^^

yamoo 2014-10-22 19:57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의도하지 않게 편익을 주는 글을 줘서 정말 글쓴 보람이 있네요.^^

2015-08-09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0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첩 2018-08-1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만 읽고 너무 좋아서 다른 철학자 편도 읽으려고 했는데 고려해 봐야 겠어요 ㅋ 하지만 박병철 교수의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보다 내용면에서 충실하고 이해하기도 쉬웠어요 개인적으로 이룸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네요
 

철학총서 시리즈 중에서 한국철학 총서 시리즈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시리즈는 아마도 예문출판사의 한국철학자 총서일 거다. 대체로 동양 철학자 이름을 건 총서시리즈들은(동양철학 총서에 포함되곤 함)대학출판부에서 찍어 내기 때문에 일반에 널리 읽혀지지 않는다. 주로 논문 모음지이기에 수업용 교재로 쓰여 독자가 매우 협소하다.

 

시리즈를 펴 내면서 출간사를 책 앞에 수록한 시리즈도 거의 없다. 대학 교재인데, 그런 걸 넣어서 뭣하겠는가. 총서를 기획한 사람의 정성이나 기획의도를 가늠해 볼 수 없는 시리즈가 넘쳐나고,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된 한국철학자 시리즈를 보면 대체로 고려 유학자로부터 시작해서 구한말 최제우나 김옥균에서 끝난다. 멋대가리도 없고 거의가 그게 그거다.

 

하지만 작년에 눈에 번쩍 띄는 한국철학자 총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한국현대철학자 시리즈다. 그리 많은 부수를 찍지 않았고 현재까지 5권만 나와 있는데, 여태까지 한국철학자 총서 시리즈 목록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대출판부에서 나온 이 총서 시리즈는 매우 밀도가 높고 만듬새가 좋다. 가격도 적절하게 책정한듯하다.

 

특히 내가 주목한 건 (언제나지만) 시리즈 출간사다. 시리즈를 펴내며 편집위원인 씨알학회의 출간사가 아주 멋들어지게 수록되어 있었던 거다. 보통 출간사는 한 페이지에 간략히 넣는 것이 보통인데, 이 시리즈 출간사는 무려 2페이지 분량이나 된다. 읽어보면 이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친다. 무엇보다 근 백년 간의 한국의 철학자들을 묶어 시리즈를 낼 생각을 한 건 아마도 씨알학회가 처음인듯하다. 이 시기는 일제 식민지와 맞물려 우리 나름의 '근대'를 찾지 못했던 시기이기에.(물론 내가 무지해서 일 거다. 다른 목록을 모두 검토해 본 것도 아니니..)

 

발간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현대철학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있으면 그들은 누구지?'라는 의문들. (우리 역사에서 근대가 없었는데, 현대가 가능해? 라는 의문)

그리고 과연 이들의 사상이 한국현대철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사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겼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건 <박홍규의 철학>인데, 얼마전 타계한 고 박홍규 교수가 우리 사상사에서 어떤 업적을 남겼길래 이 시리즈에 포함됐는지 의아했던 건 사실.

 

박홍규 전집 중 두어 권을 봤었는데, 제자들은 많이 길러냈는지 몰라도 그가 우리 철학에 한 획을 긋는 어떤 철학 이론을 제창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이런 문제의식은 <박홍규의 철학>을 읽은 사람들의 몫이겠지. 어쨌든 매우 이례적인 철학 총서 시리즈인 까닭에, 그리고 전대미문(내용이!)의 발간사가 수록되어 있기에, 여기 옮겨본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 권 택해 일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김교신과 서남동 그리고 박홍규는 정말 이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을 듯!)

 

 

 

| 시리즈를 펴내며 |

 

 

  이제까지 한국에서의 철학 연구는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주로 강대국(중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사상들 가운데 주류로 알려진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한국에서 동양과 서양을 분명하게 분리하는 태도는 20세기 초 일본의 동양통합론에 의해 더욱 확산되고 습관화되었다. 이 때문에 전 인류의 지혜를 참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편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연구 태도는 희석되고, 전공별로 나누어진 좁은 테두리 안에 갇히게 되었다.

  서양철학의 연구는 본국에서 제기된 문제와 해답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거나 모방하여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는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실정 때문에 서양철학 문헌들에 대한 사상적 연구는, 번역과 개괄적인 소개 논문의 수는 증가하였으나, 그 창의성에서는 해방 전후의 수준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철학 교육의 차원에서도 연구 대상에 대한 주체적이고도 비평적인 설명과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시적 유행 사조로서 혹은 임의적으로 선택된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 대학 교육의 현장에서 교육되어 왔다.

  동양철학으로 분류되어 왔던 동아시아 사상도 철학과마다 한두 명의 연구자를 두고는 있지만 근대 이전의 전통 사상에 대한 연구와 소개에 머물러 있다. 아시아 철학의 연구 또한 전통의 권위에 기대는 수동적 연구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일본과 중국의 선행 연구 방법에 거의 의존하는 에속적 여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상황이 던지는 문제에 대응하거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고 피력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했다. 이 빈 공간은 현대 성양철학이 자신의 전제에 대한 깊은 음미 없이 자신을 선전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한국 사상계의 이러한 타성적 관행은 최근의 관제화되고 수량화된 시장주의적 강제에 의해 인식조차 되지 못했다. 대학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양성하고, 학술보다는 기업 이윤에 한눈을 팔 때, 한국 청년들의 영혼은 머리 둘 곳이 없다. 또한 창조적 문제 제기와 문제 자체에 대한 분석 및 자발적 해결의 의지에 기초하지 못하는 연구 풍토가 연구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부재로 더욱 촉진되었다. 연구 공간의 시장화와 이에 따른 인간관계의 외면화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연구자들 자신이 속한 역사적이고도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학술적이고도 사상적인 반성과 대응을 가로막았다. 특히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근 백년 간의 한국의 현대사상사적 흐름에 대한 주체적 관심의 결여로 철학은 자신들이 어떤 문제를 역사적으로 부여받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무자각적 철학은 단지 자신들의 철학을 전공 상태에서도 통ㅇ요될 수 있는 것처럼 무반성적으로 외우며 가르치는 철학 청부업일 따름인 것이다.

  그동안 비주류이자 비체계적인 가치관으로 치부되어 왔던 근 백년간의 한국 사상사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하여 발간하는 것은 한국 사상계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에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출발은 근현대 한국철학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것은 발전시키고, 타당성이 의문시되는 관념들은 유보하거나 비판함으로써 재사유와 반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먼저 일차적으로 간단한 자료집을 해설을 첨부하여 발간하고자 한다. 그리고 차후로 현대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논문과 연구서를 발간할 게획이다.

 

 

2011년 7월

씨알학회, 근현대 한국사상사 연구모임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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