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만의 독특한 파괴적인 사랑이야에 홀릴 수 있는 작품.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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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를 모는 여자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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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제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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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전경린 외 / 도서출판르네상스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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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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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역시 전경린! 이전에 보여줬던 전경린의 파괴적이고 우울한 작품과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그 포스는 간직하고 있었다.

야사속에나 등장하던 그 황진이를 전경린은 완전히 부활시켰다. 고뇌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하나의 자유로운 여자로서.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어둡고 우울한 포스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황진이 자체가 어느정도 역사적 실증성을 부여받기에 그럴것이다.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들..소세양과의 관계, 서화담과의 관계가 문헌속에서 명확히 존재하기에...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조선 중기를 불꽃같이 살다간 황진이. 김미진의 말대로 황진이는 팜므메탈의 선구자(최초는 미실이 있다- 김별아 저)였을 것이다.

인습과 사회적 굴레 그리고 법과 도덕을 초월해서 "16세기를 불꽃같이 살다간 21세기의 여자". 소설 <황진이>(이룸, 2007)을 읽고난 지금, 황진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이 표현은 김영하의 산문집에서 빌려와 봤다.

여기서 잠깐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 잇>에 있는 글을 한 번 보자. 거기에 '19세기에 태어난 20세기의 여자'란 글이 있다. 존 파울즈의 1969년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논평한 부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라 우드러프는 난파당한 프랑스 배에서 표류중인 한 장교를 보살피다가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불과 하룻 밤에 불과했지만 그것으로 그녀는 고뇌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사랑한 귀족 스미스의 연정을 뿌리치며 그가 프랑스 중위를 사랑했던 걸 찰스에게 고백한다.

 "제가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것은 수치심과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자각입니다. 다른 여자들처럼 결혼해서 남편, 자식, 순결한 행복 따위는 결코 갖지 못할 거에요. 대신 나는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모욕이나 비난도 자극할 수 없는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 나 자신을 두고 있기에. 난 아무것도 아니고 더 이상 인간도 아닙니다. 그저 프랑스 중위의 창녀일 뿐"

이 멋진 사라 우드러프의 고백은 황진이가 황진사 집에서 나와 신분이 수직하강하여 창기가 되기로 결심한 부분과 매우 비슷하다. 머리올리는 날 진이 창기로서 자기소개하는 대목(p217)을 보자.

 "인사드려요 저는 진입니다. 오늘 밤 나의 뜻은 내게서 내용을 전부 버리는 것이에요. 호리병 같이 쓰러져 텅 비워질 거에요. 무아의 빈 그릇으로 남아 다시는 나로 인해 울지 않을 거에요. 사람이 자기를 버릴때...자기몸의 영욕을 버리고...천애고아가 되고...도덕과 관습, 규제를 버리고...오직 제 경험속에서 윤리를 발견하며...지침을 삼습니다...세상이 내게 허용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우드러프는 단지 프랑스 중위의 창녀라 고백하지만 진은 자기몸을 버리고, 세상이 내게 허용하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더 철학적인가.

계속해서 김영하가 우드러프를 평가한 부분을 보자. "사라는 존재 그 자체로 현대소설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했으며 그 사랑이 너무도 한심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였으며 그 이후의 시련에 대해서도 의연했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는가를 생각했다. 당대의 어떤 여성보다도 지적이었스며 문학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교육받을 수 있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딸들은 그녀와 같은 고뇌를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름없는 그러나 위대한 개인이었던 것이다.(김영하, <포스트 잇>,pp144-145)

그런데 황진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사라 우드러프가 한 남자의 사랑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에 저항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의 자기애를 통해 자유를 획득했다면 황진이는 자기애를 버림으로써 자유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사라는 프랑스 중위의 창녀였지만 진은 모든 남성의 창녀였기에 뭇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

자, 비교해 보자. 어떤 여자가 더 자유로운 여자였을까?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와 자기를 비우고 모든 남자를 사랑한 여자. 자유는 안정과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진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한 여자로 보인다. 우드러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냉철히 비교해보자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라우드러프와 16세기 중종대의 황진이를.

 어떤 개체가 그 자체로 현대소설인가? 김영하는 "사라우드러프라는 소설의 인물 자체가 곧 이 소설인 셈"이라 했다. "그녀는 19세기라는 시대가 갖고 있는 관습적 도덕률과 다가올 20세기 해체적 양상을 동시에 내장한 인물이며 따라서 그녀를 통해 소멸해가는 19세기적 도덕률과 20세기이 사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되는 것".(포스트잇, pp145-146)이라 했다. 

한편, 진은 자애를 버림으로써 천하에 고루 사랑을 나누어 주고 천하의 사랑을 모두 받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진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으니, 전경린은 이를 "자신을 버리고 다른 것과 바꾼 사람이 얻는 삶의 궁극적 조건이 되고 그로부터 이 세계와 타자를 향한 진정한 사랑의 실제적 삶이 실현된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16세기 중엽의 시대가 갖고 있는 도덕률과 20세기의 해체적 양상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사상을 몸으로 펼치면서 죽어간 인물이었다. 솔직히 우드러프에게 '해체적 양상을 동시에 내장한 인물'이라고 한 김영하의 이 평가는 황진이에게 주어져야할 평가라는게 더 적절한 듯 싶다.

홍경화가 진을 자신의 소실로 삼을 것을 제안했을때 진은 대답한다. "(기생의 길을 간다는 것이) 잘못한 일일 수도 있으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였던 이제와서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어떤 길이든 뜻대로, 예상대로 편편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잘못된 길이라해도 내 의지대로 선택했기에 세상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며 지극히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길에서 벗어난다해도 남의 힘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일에 불과하니까요. 이곳에서 나가면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로 옮겨갈 것입니다...이 시대가 낯설고 당황스러울 뿐입니다."(2권 p155)

화담은 금강산 유랑길에서 돌아온 진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네게 있어 몸은 무엇이더냐?" 진은 대답한다. "제게 몸은 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밟으면서 길을 버리고 온 것처럼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제 몸을 버리고 여기 이르렀습니다. 사내들이 제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이 저 역시 제 몸을 지나 나의 길로 끈힘없이 왔습니다. 길이 이렇듯 어느누가 몸을 목적으로 삼고 누가 몸을 소유할 수 있으며 어찌 몸에 담을 치겠습니까? 길이 그렇듯, 몸 역시 우리 것이 아니지요. 단지 우리가 돌아가는 방법이지요."(2권 p276)

이처럼 전경린은 황진이를 통해 그 가공할 포스를 다시 한번 발휘하고 있다. 머리올리는 날, 홍경화에 답한 말, 그리고 화담에 답한 진의 말 등을 통해서 볼 때 진이 얼마나 거침없고 철학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전작과는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본질은 동일한 거 같다. 책 전체를 통해 진이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의 창녀가 아닌 조선의 기생 진이를 통해 억압받는 몸의 철학을 운명론과 결부시켜 풀어낸 소설이 <황진이>였기 때문이다.(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전경린은 아직도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여자로서의 굴레를 다시 한번 진을 통해 표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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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모험 - 동녘출판사 철학 시리즈 1
미카엘 비트쉬어 / 동녘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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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어디서 왔어요? 저것(저 사물)은 왜 저기에 있죠? 시간은 누가 만들었나요? 왜 착한 일만해야 하고 나쁜 일은 하면 안 되나요?····


어린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들이다. 물론 지금 성인이 된 사람들도 어린 시절 이런 물음을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어른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물음에 직면한 어른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무엇을 말해줘야 할 것인가? 옛날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그랬고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궁색한 답변밖에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예전에 궁색한 답변에 또 다른 물음을 제기한 것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또 다른 난해한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낸다. 그것이 두려워 우리는 얼른 말한다. 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니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그러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우리 경험상 학교는 이런 물음들에 대해서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된다고 해서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저절로 알아가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사물이 무엇이며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하나 둘씩 아는 것 같으면(본질은 여전히 모르면서), 어렸을 때의 그 왕성했던 호기심은 차츰 사라진다.


특히, 어른들의 경우는 조급해 하고 아는 체하기 때문에 질문할 게 점점 없어지며, 호기심은 더더욱 사그러든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이러한 유감을 날려버리고 어린이들이 하는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사고하는 습관을 가르쳐주는 유용한 안내서가 있다. 미카엘 비트쉬어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가 쓴 <철학의 모험>(동녘, 1996)이 바로 그것.


‘철학적 사색, 인식론, 도덕철학의 길잡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가 교사와 고교생 그리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여타 다른 철학 입문서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보통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주로 읽은 철학 개론서나 입문서는 철학자나 철학사의 나열이라서 철학적 사색을 해보기도 전에 몇 페이지를 읽다가 덮기 일쑤이다. 친절한 설명이 있지만 계속 어려운 개념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은 역시 난해해’하면서 철학으로부터 멀어진다.


"어떤 점에서는, 철학의 요지를 정리해 놓은 철학 개론만큼 비철학적인 책도 없다. 일상의 사사로운 문제에도 고민을 하는 게 인간이데, 하물며 그런 고민과 일상적 소망의 뿌리에 있는 인생의 근본문제, 살의 의미와 목적의 문제를 ane고 따지는 철학을 어찌 간단히 개괄할 수 있단 말인가."(p10)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인간의 운명을 감동적으로 그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죽음과 영혼불멸의 주제를 깊게 다루고 있는 미겔 디 우나무노의 <안개>를 읽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문학들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본질적인 물음들에 대해서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진정한 철학책이라고 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갑작스런 전율을 일으키게 하면서 많은 물음을 쏟아놓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해 만든 비트쉬어의 이 철학적 사유의 입문서는 비록 23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이지만 진정한 ‘철학적 사유’를 가르쳐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구성과 내용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여타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들은 철학자위주로 개념을 설명하거나 전통적인 철학의 분야인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 등을 분야별로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책은 “철학의 전통적인 몇 가지 문제를 소개하고 그 문제를 파고드는 가운데 독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책 전체는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철학적 사고의 본질’, ‘2부 진리에 이르는 길’ 그리고 ‘3부 도덕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책 전체를 이루고 있는 이 세 범주의 구분은 각각의 세부 항목들이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 읽어 나가는데 전혀 부담감이 없을뿐더러, 전개되는 철학적 에피소드가 세 편의 주제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철학자나 소설가의 생생한 원문과 의미심장한 삽화들은 논의 되고 있는 철학적 주제를 감동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에피소드 가운데에는 철학자나 문학가의 글도 소개되어 있다. 질문있습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토마스 만),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이상 에른스트 블로흐), 철학의 세 가지 규칙(칸트), 모든 것이 그저 꿈인가(데카르트), 의지의 자유 문제(쇼펜하우어), 에서와 야곱(콜라코프스키). 서커스 관람석에서(카프카), 범죄와 예절(하인리히 뵐) 등.


그 밖에도 그때그때의 철학적 주제에 적절한 이솝 우화나 사건 기사 등을 포함하고 있어, 매우 재미있게 생각의 나래를 펼 수가 있다.


수록된 모든 글과 삽화들이 주제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음미하다 보면 하나의 철학적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사유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독특한 경험을 맛보게 해준 이 책의 저자인 미카엘 비트쉬어는 태어난 곳인 쾰른의 비퍼퓌르트의 김나지움에서 철학과 독일어를 가르치면서 작가이자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80년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크래타인이 말했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냈는데,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널리 읽히는 책이 되었다. 이 밖에도 <윤리학 입문>(1983), <너 자신을 알라>(1994), <놀랄만한 여행의 진실; 일상의 철학>(1996) 등의 저작이 있다.


아, 참! 이 책의 또 하나의 강점이자 아주 유익한 정보가 더 있다. 바로 각 철학의 기초 분야별로 읽어야할 철학의 입문서들을 추천해 주고 간략한 해설이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여기 추천되어 있는 대부분의 책을 갖고 있는데, 얇고 쉬운 철학의 입문서이자 학계에서 쉬운 걸로 정평이 나 있는 기본 서적이라는 점이다. 쉽지만 아주 중요한 저작물들이다.(책에서는 각 편이 끝나는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실려 있다)

 

 

1편 책, 책, 책(철학 일반)

<철학적 사색에의 길>, 보헨스키, 동명사/종로서적

<철학의 뒷계단>, 빌헬름 바이셰델, 분도출판사/서광사

                 (이 책은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책으로 2000년 재출간 되었음)

<초보자를 위한 철학>, 데니스 위스망

<철학사>, 크리스토프 헬퍼리히

<철학입문>, 안첸바허


2편 당신의 눈의 위하여- 책소개(인식론의 범주)

<철학의 여러 문제들>, 버트란드 럿셀, 서광사

<객관적 지식>, 칼 포퍼

<현실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파울 바츨라빅

<평면의 나라>, 에드윈 에버트

<우라니아의 눈>, 귄터 슐테

<인식의 나무>, 마투라나&바렐라


3편 더 읽어야 할 책들(가치론/윤리학의 범주)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임마누엘 칸트, 아카넷

<윤리학 강독>, 디에테르 비른바허&노베트르 회르스터

<윤리학>, 존 매키

<윤리학 입문>, 아르노 안첸바허

<형이상학 없는 윤리학>, 귄더 파치히



잊을 수 없는 글---------------------------------------(p47 철학의 탄생)

(사진; 푸른 초원의 양 한 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응시하는 눈)

초원의 양이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마치 나한테서 최초의 안간 남자를 보았다는 듯이.

응시하는 그 눈초리. 우리도 그 양처럼 섰다.

나로 말하자면, 난생 처음으로 양을 보는 것 같다.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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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경제학 책을  읽는 일은 피곤하다. 매우 집중력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우리몸이 비타민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정신도 경제학의 비타민을 필요로 한다.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정신적 빈혈을 일으키기에...작년 12월 하순부터 교양경제학 책들을 독파하고 있다. <괴짜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서른살 경제학>,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 <열린 경제학>, <행동경제학>, <정치 경제 에세이> 등등.. 그리고 여기에 폴 크루그먼이라는 요상하게 생긴 기묘한 경제학 책이 추가된다.

 모두 만만치 않은 책들이지만 그래도 <서른살 경제학>이 가장 평이했다. 이론 습득에 유용했고 그런 핵심적인 이론이 현실경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경제학 콘서트>와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는 그 보다 좀 어려웠다. 미시와 거시에 대한 이론의 다양한 면을 모색하고 있었기에...물론 3책다 교양 경제학에서 빼어난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절한 해설과 이론을 쉽게 이해시키는 책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 이 3권을 뛰어넘는 현란한 독설가의 책이 있다. 원제 <The Accidental Theorist>(어설픈 이론가), 우리말 제목으로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로 부키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주로 경제지에 실렸던 에세이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상당히 난해하지만(글을 쓴 전후의 사건의 상황판단을 이해해야 하기에) 그렇게 유쾌하고 통쾌할 수가 없다.

크루그먼은 통념의 경제학을 뒤집는다. 저명한 정부관리, 경제학자, 정치가들이 언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책에 언급된 지당한 경제이론들의 허점과 급소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헌데 그 방식이 매우 시니컬하면서도 유머스럽다. 번역본이라 그 유쾌함은 상당히 반감됐지만 꽤 진지하게 2-3번 정독하면 그가 하는 빈정거리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비판을 해도 크루그먼식으로 하면 좋겠다.(나는 이사람의 비판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3번 정독해야 했다) 급기야 크루그먼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마구마구 들게 만들었다. 신랄하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론의 핵심을 바로 치고들어가면서 이론의 맹점을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간단한 모델(이야기)로 논파하는 그의 글쓰기는 가히 경탄할 만 했다. 그가 24세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임이 이 한권의 책으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크루그먼의 비판의 수위는 상당하다. 주로 관료나 잘나가는 동료 경제학자 그리고 저명한 경제 칼럼리스트를 공격한다. 특히나 공급중시 경제학, 다시말해서 우파(공화당)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괴상한 허점 투성이의 경제이론이 17년을 구가하는 것에 매우 불만인 듯 했다. (크루그먼의 성격 자체가 잘못된 이론에 기반한 권력 누리기를 매우 싫어하는 듯한 인상이다)

일명 래퍼곡선으로 레이건 시대이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바로 그 공급중시 학파의 이론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각종 이론과 문헌을 인용하면서. 그것두 신랄하고도 위트있게, 때로는 뒤통수치는 식으로.

책을 읽어보면 크루그먼이 독설가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펠릭스 로허틴을 비판한 부분(p156)에서 잘 드러나 있다. “·······나같은 짜증나는 경제학자가 등장하여 그의 주장에 두어 가지 허점, 대학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애써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를 지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어이쿠~ 또 크루그먼이지. 정말 거만한 친구야~”

 좀 더 크루그먼식 독설을 따라가 보자. 연준 부의장으로 거론되는 펠릭스 로허틴을 ‘어리석은 4%론자’로 빈정거리고(p431), ‘어설픈 이론가’라는 부분에서는 롤링스톤 기자 윌리엄 그레이더가 쓴 <하나의 세계로 가는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조울병적 논리>라는 책의 말도 안돼는 허점을 핫도그와 롤빵생산 이야기로 파헤치면서 어떻게 이런 허무맹랑한 책이 그렇게 유명세를 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다운사이징의 다운사이징’에서는 실종사건 이야기(유괴)로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얼굴 없는 유괴와 마찬가지로 다운사이징은 실제 문제의 작은 일부분이면서도 얼굴을 파헤치기에 완벽하게 촬영준비가 된 비극이라는 점이다.”(p33)

크루그만의 글쓰기는 이렇듯 그럴듯한 학자의 대단히 인상적이고 현학적인 말들 속에 감춰진 기본적인 이론의 허점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완벽하게 KO시킨다는 느낌. 그가 하는 말은 교주처럼 다~ 맞아 보인다.(진짜 모두 옳은 사실을 지적한다) 27편의 유쾌한 에세이들은 버릴것이 하나두 없었다. 에세이 제목 하나하나 속에 그의 재기넘치는 독설이 숨어있었다.

 크루그먼이 하는 경제학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 일단 동료학자나 유명한 경제칼럼니스트(대체로 공급중시학파이다)의 어떤 문제작을 읽고 거기에 대한 경제학적 반론을 가한다. 그 비판의 대상으로 선택되는 대상은 매우 잘나가고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텍스트이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쓰여지고 과대포장된 잘나가는 책이 엉터리라는 걸 증명한다.

그 증명법 또한 명쾌하길 이를데없다. 언제나 단순하고 재미있는 모델로 이론이 안고 있는 허점을 논파해 낸다. 우스울정도로 단순화된 모델안에는 경제학적 핵심사상이 담겨져있다.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크루그먼의 지적에 따르면, 이 단순화된 경제에 관한 가상적인 이야기들을 갖고 시운전 해 보는 일이 대부분 잘나가는 경제학자들에게 품위를 떨어뜨리게 해 점잖은 경제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시도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바로 자명하고 쉬운 그 진리를···

크루그만은 말한다. “진정한 경제 전문가가 행하는 방식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데 관한 이야기를 갖고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세계를 단순화시켜 복잡성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표상의 형태를 띠는 모델입니다. 일단 모델이 있으면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으로 잘 들어 맞으면, 그것이 내포하는 중요성은 어떠한 것인지 또 그 반대양상은 어떠한 것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책적 견해가 모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p154)

“모델이란 것이 때로는 우리들 자신보다 더 영리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관성있는 모델에····훨씬 해박해 집니다. 여러분들이 탁아조합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진정 이해하셨다면 여러분들은 르네상스 위켄드에 참석하는 멤버들의 99%보다 통화정책과 경기순환의 본질에관해  더 많이 알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p155)

 포춘지의 서평에서 케인즈 이후로 글을 가장 잘 쓰는 경제학자라고 그랬는데, 진짜 빈말이 아니다. 크루그먼은 진짜 재미있게, 경제이론을 갖고 사람을 웃게 만든다. 희한한 능력이다. 비판의 신랄함과 현상을 뒤집어 보기 그리고 유머스런 면에서는 에코의 글쓰기 방식과 비견될만하다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 

에코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의 배경과 이탈리아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크루그먼이 하는 비판의 논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학 이론의 포괄적인 이해가 급선무였다. 크루크먼의 이론 응용력은 매우 뛰어나서 거시경제학이 정부정책에 어떻게 잘못 적용됐는지 논파하는 이론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단순하고 명확한 모델이 있었지만. 친절하게도 자기가 하는 모델을 이해하면 머리 나쁜 우파 경제학자보다 낫다는 칭찬도 덤으로 해줘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오랜 경제학을 공부한 우파 경제학자들보다야 낫다는데, 머리를 싸매고 이해하는 수밖에. 아~~고약한 크루그먼. 그런 고약한 칭찬으루다가 자신의 이론을 흡수하게끔 만들다니..."정말 거만한 친구야~!"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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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상식사전 스페셜 -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 대한민국 1%를 위한 상식사전
이동준 지음, 이관용 그림 / 보누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항상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는 친구들 주위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모인 그들의 얼굴은 항상 즐거운 표정이었다. 유머감각 있는 친구들은 어디서나 인기다. 천성적으로 썰렁한 나는 그런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유머감각으로 사람들을 후리는 그들의 능력에 질투심이 들기도 했으니까...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열심히 그런 방면의 책을 탐독하고 자기것으로 승화시키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음...역쉬 열정과 노력밖에는 없나부다..

인터넷이 발달하니 여기저기 유머가 넘쳐난다. 진짜 재미있는 유머만을 골라 메일로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유머들을 빨리 캐취하여 그 유머를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써먹는 민첩한 사람들도 있다. 썰렁한 사람을 위한 개그집 비스무리한 책도 널려있다.
난 재미없는 사람이고 보니 가끔 이런 류의 책을 구경해 보곤한다. 읽지는 않고 구경만...나도 그런 능력을 길러볼까하고...언제나 그렇지 못하지만 서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읽고나서도 어디다가 분류를 할지 난감하다.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식을 키워주는 교양도서도 아니고...그러면 어떤가 읽고 유쾌하면 그만인것을..

이 책은 유머집이 맞기는한데, 옛날에 인기있던 만득이씨리즈나 최불암씨리즈를 모아놓은 유머집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싸구려 유머가 아니라 품위있는 유머라할까...부제가 밝히고 있듯이 비범하고 기발하며 유쾌한 반전이 돋보이는 그런 책이다.

물론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요소도 충분하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애피소드도 있고 은근히 입이 돌아가게 하는 내용도 있다. 애피소드 마지막을 읽어야 전체적인 맥락을 잡을 수 있는 깜직한 글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래 맞아!"하면서 무릎은 탁 치게 하는 공감가는 글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랑과 우정, 나라마다 다른 문화, 여행, 일과 컴퓨터, 정치와 역사,나이듦과 추억 등의 주제로 전복적인 사고를 하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쳐준다.

위트상식사전이라고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상식사전이라 부르기에는 그 유쾌한 반전의 사고가 그분류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유머에 관심이 없어서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아는 유머는 거의 없고 언제나 난 무릎을 치고 있었다..특히 남녀관계를 소재로 쓴 글들이 압권이랄만 했다. 거기서는 언제나 바보같이 무릎을 치고 고개만 끄덕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은 누군가가 그랬다. 저자인 롤프 프래드리히가 그의 동료학자와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집필했다고. 음...웃긴 책을 진지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필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그것도 또한 웃긴다. 웃긴것두 진지하게 연구하나 부다...

유쾌한 저자들의 유쾌한 발상과 내용에 책 읽은 후에도 계속 입가에 웃음이 남아있어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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