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이상해 옮김 / 북폴리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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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에서 누보 로망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알랭 로브그리예의 유작 <되풀이>(북폴리오, 2003)를 읽었다. 문학 사조에서 누보 로망이라 하면, 내겐 재미가 더럽게 없는 소설로 분류된다. 이건 뭐 편견이긴 하지만, '누보 로망' 하면, 전통적 소설의 형식을 배격하기에 인칭, 서사적 맥락, 주제 등이 전혀 없거나 매우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난해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누보 로망 어쩌구 하면 나는 아얘 쳐다도 안 봤다. 교과서에서는 반소설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매우 난해한 작품만 나열되어 있어 별로 땡기지 않았다. 내게 소설의 미덕은 재미난 이야기라서 그것 자체가 없는 작품은 나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랭 로브그리예는 그 사조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작가였기에 읽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질투>(민음사, 2003)를 살짝 봤는데, 그 한 시퀀스를 묘사해 내는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읽지는 않지만 컬렉션 해 온 작품들 중 르 클레지오, 로제 그르니에의 작품들과 같이 구매한 작품이 <되풀이>였다. 제목도 참 맘에 들지 않았지만, 로브그리예라서 그냥 컬렉션했다고 볼 수 있다.

 


헌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있는 책을 주섬주섬 옮기다가(물론 책이 너무 많아 버릴 책을 선별하기 위해서) <되풀이>의 첫장을 펼쳤는데, 보통 헌사가 쓰인 제일 첫 페이지에서 키에르케고의 <반복>의 한 문장을 보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용한 부분이다.

 


되풀이와 되새김은 동일하지만 서로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되새기는 것은 이미 있었던 일, 따라서 뒤쪽을 향한 반복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되풀이는 앞쪽을 향한 되새김일 것이기 때문이다. -쇠렌 키에르케고, <되풀이>

 


인용한 책은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이었지만, 로브그리예는 되풀이로 번역하여 문장을 인용했다. 사실 나는 오래 전에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을 읽었지만, 인용된 문장이 그 책에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반복을 되풀이와 되새김으로 나눈 키에르케고의 탁견에 깊은 인상을 받아 로브그리예를 읽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질투>와는 차원이 다른 뭔가가 잡아끌었고, 첩보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시작되는 <되풀이>는 나의 구미를 돋우기 충분했다. (난 첩보 소설 매니아다!)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과 불가해한 사건들은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넘기게 해 줬다. 불가사이한 사건들의 퍼즐을 맞추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었지만.

 


책을 덮고 로브그리예와 누보 로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누보 로망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 작품은 로브그리예가 20년의 침묵을 깨고 근 80의 나이(2001년)에 선보인 작품이란다. 만년의 유작이 된 작품이 흥미진진한 추리기법과 첩보소설의 형식을 띠었다는 거에 놀랐고, 가독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그가 왜 타이틀을 <되풀이>라 명명했는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무릅을 쳤다.

 


<되풀이>는 표면적 의미가 반복이지만 불어에서는 짜깁기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불가해한 사건들과 분열된 인물(이 작품의 주된 인물은 분열 증상을 보인다)의 퍼즐을 맞추게 한다. 단편적이고 이상한 사건들은 분열된 인물이 불연속적인 시간을 지나며 일으킨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을 다시 맞추는 행위, 그게 바로 <되풀이(짜깁기)>였다.

 


이 소설은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시간 순으로 목차가 짜여있지만 시간 순대로 읽으면서 첫째 날을 다시 읽고 둘째 날을 지나 다섯째 날까지 날짜를 한 번 에 쭉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되돌려 읽고 되풀이해서 읽어야 했다. 궁금해서. 이 인물이 그 인물인지, 시간 대가 어제인지 오늘인지 계속 되풀이하며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궁금증이 지속됐기에.

 


결국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면서(전형적인 메뵈우스의 띠 구조는 아니다!)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 어떤 이미지를 띠는지 그려볼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불가해한 사건과 알 수 없는 기억의 부재 그리고 의식의 혼돈은 삶의 부조리그 자체였다. 그래서 <되풀이>를 짧고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끝으로 이런 리뷰를 남기게 한 감명깊은 다음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거기에 동일자인 동시에 타자, 질서의 파괴자이자 수호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현존인 동시에 여행객인 누군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와 깥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우아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이미 뱉어진 옛 낱말들은 늘 똑같은 낡은 이야기를 이야기하며 반복된다. 세기에서 세기로 전해지는, 한 번 더 되풀이된, 그리고 영원히 새로운 이야기를……” (p212)

 

 

[]

0. 이 리뷰가 <되풀이>의 알라딘 첫 리뷰라는 사실!

1. 이 작품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실의 모호성과 주체의 분열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 십분 공감한다.

2. 여기에도 질리도록 세세한 묘사가 넘쳐난다. 아주 신기한 것은 그 세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퀀스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3.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작품의 근간에 흐른다. 뿐만 아니라 소아 성애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이 신선했다.

4. 여아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가 <롤리타>를 가볍에 압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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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23-03-2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보로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이야기 같습니다 예전에 질투를 읽다가 던져버린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겠네요!

yamoo 2023-03-28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질투를 읽다가 던졌습니다. 치밀한 묘사 때문에 각인된 작가인데, 고민하다가 읽었습니다. 전 되풀이가 꽤 인상깊어서 질투를 다시 읽어야 할 듯합니다!ㅎㅎ 흥미로운 작가의 재발견이었습니다~~ㅎㅎ

stella.K 2023-03-27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질툰가 뭐 하나 읽다 중고샵에 넘겼나 그랬는데
이렇게 쓰시니 읽어보고 싶은데 품절이란 게 잘된 건지 못된 건지 모르겠네요.ㅋ

yamoo 2023-03-28 07:41   좋아요 2 | URL
보통 질투를 읽으면 대부분의 반응이 그렇습니다...ㅎㅎ 읽다가 덮죠..ㅎㅎ
근데 되풀이는 많이 달랐고 읽을만했고 꽤 인상깊었습니다. 근데 이 책이 절판이라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책을 읽고나서 알았네요..--;;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 본업도 있고, 부캐도 있고 자기만의 방
최재원 지음, 김현주 그림 / 휴머니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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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N잡러가 대세인가 보다. 한승현의 <이번 생은 N잡러>(매경,2021)의 성공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을 해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서 그런가 보다. 쉽게 생각해도 인기 유튜버만 되어도 직장을 다닐 필요없이 유투브 제작에만 몰빵해도 수천만원의 수익이 생기니 말이다.


그래서 비슷한 부류의 책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한승현의 책보다 나은 책은 못봤다. 거의가 내용없는 자기 커리어 쌓기로 내놓은 책들인거 같아서다. 특히 최재원의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휴머니스트, 2020)는 이런 부류의 책들 중 최악이었다.


왜냐? 이 책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실천 방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반은 '준비'에 할당되어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는 식이다. 중고교생 대상이라면 뭐 그럴 수 있다. 근데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인 생업전선에서 마음 가짐에 대한 장황한 서술은 그냥 지면 채우기용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된 업을 가진 사람이 부업, 즉 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N잡러를 꿈꾸는 사람들은 실제 주된 업 외에 부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게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아서가 문데다. 그래서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게 된다.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타겟을 아무 준비 없는 평범한 직장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은 있을지언정 전혀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주위에 널렸다). 물론 찾아 보기는 한다. 그런 사람을 위해 '준비'의 중요성을 역설하려면 책의 1/5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주위의 청소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자계서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을 주구장창 나열한다. 책의 반이 그런식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건 습관의 문제이고 개인 의지의 영역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언급과 그 사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준비를 하면 실천방안이 나와야하는데, 그 실천 방안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이 책의 3장은(stage3)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오는 단계인데, 목차를 보자.

나보다 상황을 믿자 : 시간

나보다 상황을 믿자 : 공간

나보다 상황을 믿자 : 사람

기록X기록


이건 뭐, 실천을 하는데 시간, 공간, 사람을 믿자니 믿음이 가지 않는 콘테츠다. 이런 류의 책은 실천 방안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인데, 그 핵심이 뭔가를 믿는 거다. '상황을 믿자 : 시간'의 절이 시작되는 90 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막상 사이드 포르젝트를 시작했으나, 금세 불꽃이 꺼지려 합니다. 의지가 매우 굳은 사람들은 시작과 동시에 계획대로 모모을 움직일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자기 비난에 빠지진 말아요. 대신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나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람보다 상황을 믿어보세요. 


나를 더 강하게 묶어둘 상황을 위해 '지그재그 몰입' 방식을 추천합니다. 지그재그 몰입은 본업을 할 땐 본업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땐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완전히 집중하는 방식이에요. 하루 중 두 시간이면 두 시간, 일주일 이면 일주일 (중략)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시간을 만듭니다. (p90)



지금 위에 인용한 부분과 같은 내용들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점령하고 있다. '지그재그 몰입' 방식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고 있는 방식이다. 중요한건 어느 비중으로 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책에는 이런 구체적인 얘기가 빠져있다. 


기록의 중요성도 하나마나한 얘기다. 내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 다른 부업을 시작한다면 기획을 하고 예산을 구상하며 내 시간 투자를 얼마나 하고 어떻게 내 산물을 팔려고 하는지 꼼꼼히 기록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런 걸 구체적으로 잘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산출물만 있고 이걸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거다.


보통 'N잡러'를 위한 이런 류의 책은 기획에서 수익창출까지 자기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알려주는 게 들어 있어야한다. 그래야 구매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책은 구매할 가치가 전혀 없다. 자게서 본연의 역할을 전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 관련 일을 좋아해서 게스트룸에서 외국인과 수다를 떨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나보다. 그래서 지인의 조언을 따라 유튜브 채널을 열어 수익을 올리게 됐나보다. 그래서 본업 외에 수익을 창출한 기회를 얻어 이런 책도 썼나본데, 도대체 왜 유튜브를 통한 수익창출의 방법이 없는지 의아하다. '기록'을 강조한 장에서 이미 언급됐어야 했는데 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한승현의 책보다도 먼저 출간된 책인데, 저자가 구체적인 사례나 방법이 전무한 책을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내놓은 용기가 정말 가상하다. 자기가 부업을 통해 수익을 낸 방법이 쏙 빠진 책은 믿음이 가지 않는 책이다. 더욱이 하나마나 한 소리로 페이지를 채우는 내용은 함량 미달 그 자체다. 이런 책이 휴머니스트라는 지명도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게 신기할 뿐.



[덧]

1. 나도 내 그림으로 뭔가를 해 보기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런 류의 책을 주섬 주섬 사서 읽는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의 책들은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최재원의 책도 그래서 읽게 됐다.

2. 한승현의 <이번 생은 N잡러>를 보고 난 후에 몇 권의 책을 사서 보았는데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는 그 와중에 본 책이다. 한승현의 책과 비교해 보니 너무 함량미달인 책이라 구매하지 말라는 의미로 여기 리뷰로 남겨 놓는다. 이 외에 몇 권의 책이 더 있는데 다른 책들도 대동소이했다. 한승현처럼 구체적으로 뭔가를 제시한 책이 하나도 없었다. 부업이 필요하고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승현의 책을 보시라. 최재원의 책은 절대 사지 마시라. 그냥 시간 낭비 돈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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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03-20 09:31   좋아요 0 | URL
그림도 있고 페이지 수도 많고...그런데 내용이 없고...하나마나한 얘기를 반이 넘는 분량으로 채우고 있는 책은 정말 독자를 우롱하는 책인듯합니다.

이런 류의 책, 그니까 내용없는 책들이 많은데 비판적 리뷰가 알라딘에 별로 없는게 참으로 거시기합니다~^^::
 



더글로리 파트2를 하루만에 완결하고 그 다음날 주요 회차를 다시 돌려보기까지 했다. 회차를 보면서 그 다음 편을 위해 인정사정 없이 다음회를 눌러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이 올라갈 때 박수를 쳐 주었다. 파트2 기대감이 높았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해서.


사실 더글로리 파트1은 출발이 늦었다. 다들 재밌다고 난리를 친 후에, '그렇게 재밌다고?! 그럼 어디 한 번 봐 볼까~'라는 생각에 1화를 본 때가 2월 초순이었다. 8화를 이틀만에 해치우면서 파트2를 기다렸는데, 사실 이 시간이 견디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대체재로서 재미있는 소설을 찾아 보았다. <제7의 십자가>는 기대만큼 재밌지 않았고, <가아프가 본 세상>은 2권으로 접어들면서 흥미가 반감되었다. 두 책 모두 읽기를 멈추고 찾아 든 책이 파트릭 모디아노의<한밤의 사고>.



예전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매우 좋은 기억이 있어 펴 들었는데 일단은 성공이었다. 재밌게 읽어가는 와중에 영국으로 갈 그림 반입하고, 국내 전시 알아보고 그림 몇 점 그리니 3월10일이 되었다.




드디어 더글로리 파트2가 올라오는 날이 된 거다. 점심을 먹으면서 더글로리 파트2 정주행을 할 예정이라니, 팀원들 중 한 명이 한 회씩 올라올텐데 무슨 정주행이냐고 핀잔을 준다. 파트1이 어떻게 개봉했는지 몰라 그냥 그런 가 보다 하고...그냥 한 회만 일단 보자는 심정으로 오후 7시에 스타트를 했다.


근데 웬 걸~ 8회차가 모두 올라와 있는 거다. 알아보니 파트1도 8회차 전부 개봉이었고, 파트2도 마찬가지였다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멈출수 없이 16회를 끝내고 보니 새벽3시가 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음날 파트2를 다시 돌려본 후 1화를 또 2번 보았는데, 초반부에 이미 여러 복선이 선명하게 깔려있었다. 특히 연진이 돈과 빽으로 사회적 약자들(소희, 동은, 경란)을 괴롭히는 게 아주 크게 부각됐고 죄책감이라고는 1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9화에서도 여전히 동은에게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멘트를 날린다. 천연덕스럽게.


연진의 뚜렷한 이 평면적 캐릭터가 아주 반가웠던 건 배우자 하도영에게 버림받고 딸과 엄마에게까지 버림받으면서 교도소에 홀로 수감되어 수감자들을 위해 날씨 예보를 해주는 연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다 중 이런 사이다 복수는 없을 듯.


더군다나 연진은 손명오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는 데 자기가 죽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그걸 끝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거. 그게 연진 입장에서는 가장 고통스러울 듯하다. 9화에서까지 '그래 어디 해봐~'라는 연진의 도도한 입장이 겹쳐지면서 복수의 통쾌함은 배가 됐다.


물론 드라마의 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여정의 힘과 부에 기대어 그녀의 복수가 이루어져서 '복수의 순수성'에 손상을 입은 것이 많이 아쉬웠다. 특히 주여정과의 멜로 라인은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다른 조연들의 열연으로 인해 어느 정도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임지현(박연진역), 박성훈(전재훈역), 김히어라(이사라역), 차주영(최혜정역), 김건우(손명오역) 빌런 5인을 손에 꼽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성일(하도영역), 염혜란(강현남역), 안소요(김경란역) 등 3인이 매우 인상깊었다. 


특히 비중이 매우 미미한 역할 중 한 명이 김경란 역을 맡은 안소요인데, 파트1에서는 대사도 별로 없고 부각될 만한 신이 별로 없었지만 파트2에서는 손명오 사건의 숨은 공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녀는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흡사 실제 학폭을 당해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처럼 연기했다.


무엇보다 두 장면이 이 배우를 각인시키도록 했다. 원룸에 앉아서 양주명을 꺼내기 전에 흐느끼는 장면과 동은에게 SOS를 치고 자기 원룸에 찾아온 동은이 더이상 체육관에 서 있는 경란이 되지 말라고 말한 직후 오열하는 장면이다. 진짜 또 하나의 명품 배우를 찾은 느낌이었다. 적은 분량이지만 정말 안소요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그녀는 정말 상처입은 사람처럼 보였다.


캐릭터, 플롯,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이렇게 숨막히게 재밌는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내게 정주행이라는 걸 처음 경험하게 해 준 미드가 <24시>였다. 그 후 미드 <24>를 넘어서는 흡입력을 제공한 드라마는 <오징어게임>이 유일했는데, 이제 <더글로리>도 추가됐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미 사회의 큰 문제가 되어 버렸고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임영웅과 정순신 아들의 학폭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이런 드라마가 제때 나왔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학폭 가해자는 소급하여 그게 언제가 됐던 철저히 조사하여 응징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글로리> 총평 : 9.5/10



[덧] 

1. 드라마 주연인 송혜교의 연기 변신은 정말 놀라웠다. 이전에 멜로물에서만 보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 개인적으로 송혜교를 무척 싫어했지만 동은을 연기한 송혜교에게는 박수를 쳐주지 않을 수 없었다.

2. 동은의 학교시절을 열열한 정지소 배우. 만신창이가 되는 처절한 절망을 연기한 모습이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다른 역할로 나온 정지소 보다 동은으로 열연한 정지소가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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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3-03-12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시즌 1도 안봤는데, 볼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야무님 페이퍼 보니 볼까 쪽으로 약간 솔깃하네요 ㅎㅎ

yamoo 2023-03-13 18:26   좋아요 1 | URL
강추드립니다! 학폭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 왜 중요한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요. 무조건 보시길요!!ㅎ

공쟝쟝 2023-03-12 1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재밌었어요…. 멋있다!! 동은아!!! 🥲😆 상반기 최고 히어로물 ㅋㅋ

yamoo 2023-03-13 18:27   좋아요 2 | URL
넵~ 저도 넘넘 재밌게 봤습니다~~ㅎㅎ

stella.K 2023-03-12 18: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회차를 아예 다 까서 보여주는군요.
고거 마음에 드네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야무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좋다는 말인데
TV데서도 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컴에서 보는 건 익숙치 않아서 말이죠.ㅜ
근데 왠지 작가도 정점에 오른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송지나 모래시계 이후로 태왕사신긴가 뭐 하나하고 조용하잖아요.
뭐 나름 히트작을 많이 냈으니 더 보여줄게 있을 수도 있지만…ㅋ

yamoo 2023-03-13 18:28   좋아요 2 | URL
스텔라 님, 아직 이거 안보신듯합니다. 무조건 보시라고 강추드립니다!!
요즘 최대 화두인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주제인데...
너무 재밌어서 걍 시각이 순삭합니다~~ㅎ

감은빛 2023-03-12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저녁부터 새벽까지 다 봤어요. 전반적인 느낌은 확실히 잘 만든 드라마는 맞는데, 저는 세부적으로 좀 아쉬운 점들이 있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주여정의 부와 힘에 기댄 부분이 있고, 또 각 악역들이 무너지는 패턴이 좀 전형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초등 교사로서 문동은이 한 일이 별로 없었다고 느껴지는 면도 아쉬웠구요.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 라는 점이 제일 큰 매력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yamoo 2023-03-13 18:33   좋아요 0 | URL
감은빗 님두 다 보셨군요! 저도 잘 만든 드라마라는데 동의합니다만, 옥에 티는 있듯이 이 작품도 아쉬움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주여정에 기댄 점이 매우 큰 한계였고, 주여정과의 러브라인도 거슬렸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몇 작품 봤는데, 항상 러브라인을 강조해서 이 작품 역시 러브라인 있을거라 예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라는 거에 동감합니다. 법의 정비가 절실하고.. 이게 판타지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문제의식을 다시 환기시켜주는.. 이 작품이 그 마중물이 됐으면 합니다.

transient-guest 2023-03-14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의 학폭장면이나 중간중간 삽입된 회상씬의 학폭장면을 보는 건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다 좋게 끝내자 라는 식의 결말이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화가 나는 건 여전합니다만.

yamoo 2023-03-15 08:59   좋아요 1 | URL
학폭 씬은 1편이 압도적이었지요. 학폭 신을 보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었지만 제겐 주여정과의 로맨스 라인이 스트레스였습니다.

물론 현실은 드라마처럼 복수가 안되지만 화두를 잘 던져 학폭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있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3-03-14 1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나 더 글로리가 화제네요. 저도 다 보았지요. 8회차가 한꺼번에 올라와 있어서 쭉 이어서 볼 수 있는 건 큰 장점인 듯. 넷플릭스 시대가 오고 있는 중 같습니다.^^

yamoo 2023-03-15 09:00   좋아요 3 | URL
네...공개 3일만에 비영어권 1위에 올랐고, 다음 주가 되면 전체 1위도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ㅎ

넷플 시대는 이미 왔다고 생각하는 1인이에요..ㅎㅎ

얄라알라 2023-03-19 0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3월 책을 좀 덜 읽은 데, <더 글로리>가 한 몫(?) 했다싶을 정도로,저는 관련 컨텐츠까지 샅샅이 다 뒤져 봤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yamoo 2023-03-20 09:32   좋아요 0 | URL
마저요. 글로리 보느라고 책 못읽었던 거...분명한 사실이에요..ㅎㅎ
저도 관련 영상 많이 찾아봤습니다..ㅎㅎ
요즘도 보고 있어요..^^
 















순수의 전조

Augries of Innocence

윌리엄 블레이크 (1757~1827)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어떤 이는 달콤한 기쁨으로 태어나며

누군가는 끝없는 밤으로 태어난다

우리는 거짓을 믿기 마련

밤에서 태어나 밤에 사라질 눈이니

우리가 눈을 통해 보지 않을 때

영혼의 빛은 광채 속에 잠드는구나

어둠에 드리운 가여운 영혼에게

                                       -<순수의 전조> 중에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2019, 민음사)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실망이 컸다. 전작인 <방랑자들>이 너무 좋아서 '쟁기'를 들었는데(표지도 한 몫했다!) 이건 뭐 '존 윅'의 하하위 버전을 보는 듯했다.


물론 다량 실망했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대가 없었다면 그냥 괜찮은 작품이었다는 느낌은 받았을 거다.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전편에 인용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수록되어 있는 삽화도 괜찮았다. 그래서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를 전편 다운 받아 읽어봤다.


그리고 위에 인용된 부분이 강렬하게 다가와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작으로 그리게 된 '순수의 전조'. 4작품을 그렸고 더 그릴 예정이다.


<순수의 전조, F6, 캔버스에 아크릴, 2023>



나는 기본적으로 순수가 발현되는 기조를 불안에서 찾았다. 과거의 시대나 작금의 시대나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인간 내면의 상황을 불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를 불안감 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리고 각자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유토피아[좋음]에 대한 가능성으로 설정했다.


그 불안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검은색이 인접해 있는 색의 띠로 표현했다. 완전한 직선이 아닌 최대한 직선인 것처럼 보이는 인접한 색의 띠를 중심으로 불안을, 그리고 순수의 이상을 크고 작은 흰 사각형으로 구현해 봤다.


결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순수의 전조'는 불안 속에서 피어나는 최초의 발현이라, 인접한 색의 띠 위에 올린 흰 사각형들 위에 투명한 파란 사각형을 엊어 그 위에 투영된 최종적 사각형들의 색으로 '순수의 전조'를 이미지화 해 보았다.


가장 위에 올린 상대적으로 투명한 파란색은 불안과 기대가 섞인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보았고, 붓질을 나타내어 순수의 징조가 보여주는 상태에서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가 가시지 않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책 하나에 내가 그린 그림 하나, 그리고 텍스트(밑줄긋기나 짧은 감상). 앞으로 책과 그림이 있는 글을 올려 야무의 주력페이퍼로 만들 예정이었으나 천성이 게으른 관계로 그냥 작품집을 올리는 카테고리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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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16 18: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멋져요

yamoo 2023-02-17 22:0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stella.K 2023-02-16 1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 카테고리 기대하겠슴다.
멋진데요?^^

yamoo 2023-02-17 22:09   좋아요 3 | URL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서곡 2023-02-16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늘 블레이크의 그림을 봤답니다 햄릿요

yamoo 2023-02-17 22:10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이런 우연이!!!ㅎㅎ

초원 2023-02-17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씨실과 날실이 엮인 듯한 분위기가 특이합니다. <순수의 전조> 제목도 좋아요. 볼 때마다 달라지는군요. 배우고 싶네요.

yamoo 2023-02-17 22:12   좋아요 2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이게 영국으로 가야하는데 나중에 새 컨셉 그림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한 작품이에요~~^^

초원 2023-02-17 16: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댓글 쓰고 다시 한참을 봤네요. 주황색 위를 덮은 하양과 파랑의 그림자가 마음에 들어요. 멋진 그림 감사합니다.

yamoo 2023-02-17 22:12   좋아요 3 | URL
좋게 봐주셔서 넘넘 감사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23-02-18 0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는 기본적으로 순수가 발현되는 기조를 불안에서 찾았다. 과거의 시대나 작금의 시대나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인간 내면의 상황을 불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를 불안감 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리고 각자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유토피아[좋음]에 대한 가능성으로 설정했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보통 힘들 때 귀농이나 시골에 가서 slow down하는 삶을 꿈꾸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평화, slow life, 귀농, 동물, 농장, 번잡한 곳을 떠나 살고 싶은 맘이 발현되는 기조는 ‘피로‘ ‘장기간에 걸쳐 쌓인 번아웃‘ 심지어 ‘불안‘까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림은 잘 모르지만 책을 읽고 영감을 얻은 모티브를 표현한다는 행위는 참 멋있는 것 같습니다

yamoo 2023-02-18 10:2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트랜스 님!!

뭐랄까...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것이 뭐가 됐든요~ 그래서 추상적 작업이 보기 좋고 그 결과물에 대해 보는 이가 납득할 정도면 성공적인 작업이라 자평합니다.

근데 아직 흉내만 내는 초보단계라 갈길이 멉니다..^^;;

얄라알라 2023-02-20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웅....이 격조 높은 그림과 격조 높은 댓글 사이에서...
전 갑자기 야무님 이 작품, 순수의 전조, 모시 옷감에 물들일 수 있다면 해서 입고 싶어지는 거 있죠...영국행할 뻔한 귀한 작품을 애정하는 또 다른 애정표현으로 들어주세요.^^ 우아한 황금색과 욕망을 가라앉히라 하는 듯 차분한 청색의 조화가 너무도 끌립니다!!

yamoo 2023-02-20 09:54   좋아요 1 | URL
얄라님,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ㅎㅎ
이 작품으로 굿즈를 만들 예정입니다. 에코백하고 머그컵을 만들 건데, 단가 맞추기가 어렵네요..^^;;

페크pek0501 2023-02-20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너무 어려워서 말 잘못하면 저의 무식이 탄로 날까 봐 입을 다물겠어요.ㅋㅋ
그런데 저런 파랑색은 제가 좋아하는 색인지라 그림이 멋지게 보이네요.
그림 감상을 천천히 더 하고...
야무 님의 주력 페이퍼를 응원합니다!!!^^

yamoo 2023-02-21 09:45   좋아요 0 | URL
음...그림은 그냥 색과 면으로 봐서 좋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림의 의도는 그리는 사람의 몫이지만 보는 이가 색으로 보면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은빛 2023-02-21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져요!
책 하나에 그림 하나라니!
그림을 잘 볼 줄 모르지만, 일단 무조건 멋있어요. ^^

순수가 발현되는 기조라.
음, 어려운데 흥미가 생기는 주제네요.

yamoo 2023-02-23 13: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멋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말할 수 없는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했을 때 멋있고, 보기좋으면 장땡이라 생각하기에...격려라 생각하고 열심히 그리겠습니다~^^
 

간만에 경매에 참가해서 평소 눈여겨 보던 북한 그림 한 점을 낙찰받았습니다. 약30호 정도의 풍경화인데, 보는 순간 너무도 멋진 풍경화라 안 살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 그림의 작가는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는 사람인데, 북한에서 인민예술가는 그 공적이 탁월한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칭호라고 합니다. 이보다 한 등급 낮은 칭호가 공훈예술가라고 합니다.


대체로 북한의 일류 예술가의 작품들이라고하면 공훈예술과와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작가들의 작품군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로치면 각종 미술제에서 우수하게 입상을 여러번 하여 한국예술원 회원이 되는...뭐, 그 정도 급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북한의 일류 예술가들 특히 미술가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공적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없는 아주 드문 곳이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끔 보는 6.25 전쟁을 미화하는 그림이나 노동적위대를 선전하는 포스터류의 그림들을 보면 약간 촌스러운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사실화를 원색을 써서 강렬하게 표현하기에 그런 듯보입니다.


주어진 틀이 그러하니 아무리 대가들이 그렸다고하더라도 잘 그렸다는 느낌보다는 80년대 영화관에 걸린 선전용 포스터를 보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선전용 선동 매체로 그림을 활용하는 북한의 방식 때문에 북한 화가들의 그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풍경화로 넘어가면 정말 끝내주는 그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진짜 대가들이 그렸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 일반 그림 경력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풍경화도 정형적인 틀이 있는 듯 비슷비슷한 그림들(금강산을 그린 채색 산수화)이 많습니다만, 고흐가 그린 듯한 풍경화들도 꽤 있어 놀라곤 합니다. 정말 끝내주는 세밀화도 있구요.


이런 북한의 일류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는 유럽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희귀성 때문이라는군요. 화가들이 사실화만을 그리는 나라는 거의 없는데 구소련이 망한 이래 북한이 유일하답니다.


체제 안에서, 형식 안에서 그리도 많은 제한 속에서 탄생한 풍경화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40-50년대 화풍을 간직한 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면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응팔을 보고 열광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2015년에 영국에서 전시된 북한의 그림들은 엄청난 호평속에서 전시된 거의 모든 그림들이 팔렸는데, 50호 기준으로 한 점당 천 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북한의 일류화가들의 그림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는 듯합니다. 인민예술가의 30호 그림이 강남 모 갤러리의 30대 초짜 작가의 그림에 1/10도 안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니까요. 이건 정말 기가찰만하죠.


물론 위작의 위험이 있긴합니다. 헌데 정창모 화백과 같은 아주 대가가 아닌 이상 위작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뭐, 위작이라도 엄청나게 잘 그린 위작이라면 걸어놓고 감상할 가치는 충분한 듯합니다. 


인민예술가 정도 되면 위작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않긴 하겠지만(작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그림만 보고 내 눈을 믿어야겠지요. 이제, 구매한 그림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 렴태순(인민예술가), 육계리에서, 약30호, 캔버스에 유채, 2007>


렴태순 : 1950년생

1973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4~  전문미술창작기관 창작가

1993~  백호창작사 창작가

2005    인민예술가 칭호

1978 국가미술전람회 2등상 수상

1992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수상



렴태순 화백의 '육계리에서'라는 작품으로,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습니다. 원경과 근경 그리고 물가에 반사된 자연을 먼 구도에서 포착해 표현한 부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은 흡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실물을 보면 정말 압도합니다. 렴태순 화백의 여러 작품들을 봤지만 이런 수평 구도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구도는 별로 못봤습니다. 물론 이 작품보다 훨씬 멋진 작품들이 더 있긴 하지만 렴태순 화백만의 뚜렷한 화풍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래 서명이라든가 색을 표현하는 붓터치 같은 걸 보면 위작일 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뭐, 위작이니 북한 그림이니 이런 걸 모두 떠나서 위 그림 자체만 본다면, 이 그림은 강남 어떤 갤러리에서 보는 작품들보다 훨씬 좋습니다. 같이 놓고 본다면 다른 풍경화들은 다 아마추어 급이 되는 듯합니다. 저는 볼때마다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ㅎㅎ



아쉽게도 북한 화가에 대한 소개서나 북한 그림에 대한 안내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북한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개론서가 대세인듯합니다.











덧>

북한의 그림들은 통일이 됐을 시 가치가 상상 이상으로 폭등할 거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죠. 언제 어떤 그림을 사야할지가 문제이고, 위작에서도 자유롭지 않고...투자처로서는 머리가 아픈 그야말로 복마전이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저렴하게 사서 걸어 놓고 감상하여 좋다면 그걸로 된 거죠. 위작이라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요. 물론 진품이라면 좋은 이익이 덤으로 생기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ㅎㅎ 그때까지 좋은 북한 그림을 한점 한점 모아야 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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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2-11 1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처음 볼 땐 다소 촌스럽긴 하지만 뭔가 빨려 들어가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30호면 작은 것 같지는 않은데 정말 통일되면...!
덕분에 잘 배우고 갑니다.^^

yamoo 2023-02-12 17:25   좋아요 2 | URL
저는 처음 벌 땐 그냥 지나쳤었습니다. 다른 작품들에 눈이 갔긴했어요. 근데 다시 출품작들을 주의깊게 살피다가 다시 봤는데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잘 보관해야겠습니다~~ㅎ

초원 2023-02-12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렴씨 성을 가진 분이 그린 <육계리에서>, 볼수록 좋습니다. 북쪽 땅에도 바람이 통과하는 들판이 있고, 그 하늘 아래에서 같은 정서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북한의 그림들이 어떻게 남한에 오게 되는지 신기하네요.

yamoo 2023-02-12 17:32   좋아요 1 | URL
저도 볼수록 좋아요~~^^
이게..아마도 추측컨대 금강산 관광 즈음해서 울나라 사람들 북한에가서 북한 일급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구매해 왔을겁니다. 중국을 통해 우회하여 반입..그리고 소장하다가 가격이 오를거라 생각했는데 남북관계 경색으로 샀던 가격에 그대로 되팔고 있는듯합니다..ㅎㅎ
인민예술가 정도되려면 몇십년을 그려냐하는데..작품에 내공이 잘 담겨있어 볼수록 좋습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3-02-12 1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풍경화 좋아하는데 정말 멋지군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이색적인 느낌이 납니다.
구도도 좋고 색상도 맘에 들어요. 하늘과 물의 색을 통일해서 통일감을 살렸네요.
지평선을 3분의 2의 지점으로!!! 하늘이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건 저만의 느낌이겠죠...

yamoo 2023-02-12 17:42   좋아요 1 | URL
저도 정말 멋져 구매했어요~~
입찰하고 약간의 경쟁을거쳐 낙찰받았는데...그냥 횡재한 느낌인거 있죠...프린트된 그림값 정도에 인민예술가 그림이라니...진짜 북한그림은 이맘때 사 둬야 좋을듯합니다.

흠..저도 그 지점이 야간 아쉬웠는데 페크님두 그렇게 느끼셨군요! 그래두 머...전체적으로 안정감있어 만족감이 더 높아요.~~^^

새파랑 2023-02-12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육계리에서 저그림 좋네요~!! 그림은 잘 모르지만 자연 그대로를 옮겨온듯한 느낌이 드네요 ^^ 사진보다 더 실제적인 느낌? ㅋ

yamoo 2023-02-12 17:48   좋아요 1 | URL
원경과 앞의 풀은 그림같지만 물에 비친 나무와 하늘은 정말 사실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나게 그렸습니다. 근데 보기에 밸런스를 잘 맞춰 이질감이 없어요~
대체로 저렇게 원경과 근경을 붓터치있게 그리고 중경을 던면에 내세워 세밀화 작업을하면 그림이 전체적으로 죽는데...이 그림은 정말 밸런스가 훌륭합니다. 전혀 이질감이 없어요.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 그림이라 보고있으면 넘 좋습니다~~ㅎㅎ

감은빛 2023-02-24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한 그림을 구매할 수 있군요.
그림을 잘 모르지만 상을 많이 받은 분이시니 당연히 대단한 분이시겠네요.

북한의 문화 예술을 소개한 책들도 의외로 많군요.
사실 남한의 정치, 사회 문제들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북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네요.

얼른 통일이 되어 그림 값이 많이 오르기를 기대해봅니다. ㅎㅎ

yamoo 2023-02-27 10:33   좋아요 0 | URL
네..북한그림을 구매할 수 있는 루트가 여러 곳이 있는데, 제가 구매한 곳이 가장 믿을 만한 곳입니다~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도 되면 30년 이상 그림만 그린 유명화가들인데, 김일성 김정일 선전용 그림만 그려 좀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거의 없는 국회라..

북한의 문화예술을 소개한 책들은 꽤 되는데, 그림을 소개한 책들은 거의 없네요..ㅎㅎ

저도 빨리 그리되길 기대합니다!

2023-04-1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04-15 09:11   좋아요 0 | URL
주로 경매에서 살 수 있어요. 북학 그림은 처음에 여러 루트로 우리나라 컬렉터들에게 흘러들어왔습니다. 첨엔 금강산 관광 무렵이었구여. 이때 일반 그림애호가들에게 대대적으로 넘어왔죠. 북한에서 책정한 금액보다 무려 10배 20배 정도로 우리나라에게 팔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북한 여행길이 막혔고, 이 기간이 길다보니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외국에서 북한그림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팔렸습니다. 또한 중국을 여행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북한 그림을 구매했죠. 이 그림들이 현재 유통되고 있어요. 위작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이 그림들....80년대 그림에서 2000년대 초반 드림들이 대부분이고...이런 그림들은 경매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유일합니다.
여러 옥션 업체들이 있으니 온라인 경매시에 응찰하면 매우 저렴하게 데려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