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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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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일단 내용이 빨리 빨리 들어오지 않아 몇 줄 읽고 그냥 던져버리기 딱 좋은 작품들이다. 짧은 단편일수록 그런 열망은 가속화된다.

하지만 조금만 끈기를 갖고 읽어보면 카프카의 작품들이 왜 현대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 연유를 가슴 깊이 느낄 수가 있다.

그의 작품이 빼어난 것은 소설을 허구의 이야기로만 쓴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민을 상징적인 이야기 속에 담아냈다는 데 있다.

그 이전의 작가 누구도 카프카처럼 쓰지 않았다. 읽는 독자는 그냥 캐릭터나 작가의 생각에 동의 여부를 생각하면 됐고, 이야기에 감동을 느끼면 만사 오케이였다.

<백년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말하기를, ‘소설을 카프카처럼 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했다.

카프카 이전의 인간 소외와 부조리 그리고 고뇌에 찬 인간의 실존 문제는 철학에서 다루는 영역이었다. 카프카에 와서야 비로소 이 주제를 문학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카프카가 있었기에 사무엘 베케트와 카뮈의 작품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카프카의 작품은 난해하다. 그도 그럴것이 순전히 개인적인 고뇌가 담겨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지점이 있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내면에 도사린 깊은 고뇌에 공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카프카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유대교나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독일어로 작품을 썼지만 독일인이 아니었다. 체코 태생이지만 결코 체코 국민이 아니었다.  

이렇게 카프카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회색인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최대 숙명은 어디에 소속되는 것이었다. ‘존재는 그냥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존재는 어디에 소속되어야 한다.’ 카프카의 말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직업을 가진 자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 축을 이룬다.

중편인 <변신>, <판결>, <시골의사>, <만리장성 축조 때> 등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디에 소속되고자 하는 카프카의 바람이 그대로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

특히 카프카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꿈속에서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실체 없는 것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깨어나는 그런 찜찜한 기분. 책의 2부가 그렇다.

<작은 우화>, <옆 마을>, <돌연한 출발> 등을 읽으면 짧지만, 도대체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마치 사진의 원판 필름을 보는 느낌이랄까. 한번 봐서는 흐릿하여 그 실체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자세히 볼 때에야 비로소 그 자체의 의미가 드러나며 카프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직접적으로 깨닫게 된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을 음미해 볼 때에야 비로소 그 독자가 누구이건 그 존재 자체만의 고뇌와 고민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카프카가 문학사에서 위대한 점이며 지금도 널리 읽히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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