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품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이 조짐은 비트코인으로 된서리를 맞은 MZ세대들이 찾은 마지막 투자의 보루처럼 느껴진다. 2021년 미술품 투자액이 9000억을 돌파해 사상최대였다는 기사는 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미술품이 정말 투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세뇌적 환상이다. 옥션에서 이우환 그림이 30억을 넘었다는 둥, 박서보의 묘법이 15억을 넘었다는 둥 등등. 이런 미술 시장의 화젯거리 뉴스는 투자만 잘하면 미술품도 얼마든지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하다.
아니, 사실이긴하다. 자신이 몇 십억을 투자할 여력이 있어,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천경자 등과 같은 우리나라 대표 화가의 대표작 한 점 정도를 살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하여 돈을 벌 수 있다.
헌데 일반적으로 막 미술에 막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이 몇 십억짜리 그림을 산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 샐러리맨들이 지갑을 열어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여력은 200만~300만원이 한계이다. (사실 이도 매우 높은 금액이다.)
미술 투자와 미술 시장을 알려주는 몇 권의 책을 읽어봐도 초보 미술 투자를 5백 미만에 시작하라고 알려준다. 자신의 연봉의 10퍼센트가 적정선이라고. 아래는 내가 읽었던 미술시장 관련 책들인데, 이들 책에서 공통으로 추천해 주고 있는 초보의 그림투자법이다.
그래, 좋다. 이우환, 천경자 급은 아니더라도(이중섭과 박수근은 우리의 시야 밖이다) 모두의 검증을 어느 정도 끝마친 중견 화가의 그림 정도는 괜찮겠지. 개인전과 초대전을 합해서 20회 이상 하고, 미술대전과 같은 공모전에서 몇 번 입선을 한 화가의 그림 정도면 적당할 듯싶다. 예산은 200만원. 그럼, 이런 그림은 어디서 구매해야할까?
일단 초보자가 그림을 구매하려고 하면 매우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어디서 사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갤러리(화랑)인데,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미술에 대해, 그리고 그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무슨 그림을 사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넘어야 할 장애물은 더 있다. 위화감을 느끼는(어떤 게 좋은 그림인지 알 수 없기에) 그림들 앞에서 관련자를 찾아 이 그림이 얼마냐고 물을 수 있는 배짱 좋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가격을 물어야 그림을 살 수 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림을 사는데 위화감이 없고 그림 값을 묻는 데 스스럼 없는 곳이 있긴하다. 바로 아트페어란 곳인데, 일종의 그림 장터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그림을 사고 팔기 위한 거대한 시장이다. 쉽게 말해 미술품 마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그림 구매가 쉽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그림은 경쟁이 붙어 쉽게 구매할 수가 없다. 지난 3월 열린 화랑미술제에는 수십만 인파가 몰려 단 3일만에 주요 작가들의 좋은 그림은 매진이 됐다고 한다.
아트페어가 그림 구하기는 쉽지만, 장터이기 때문에 시간적 한계가 있다. 상설 장터가 아니라 부정기적 장터이기에. 보통 길어봐야 1주일 행사인데, 이 기간을 놓치면 땡이다. 물론 대한민국 내에서 연중 아트페어가 대도시 위주로 열리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림을 사기 위해 그런 곳의 정보를 찾아 차를 타고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장애물은 더 있다.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전시 첫날 오프닝 때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는 거다. 입장해서 빠르게 맘에 드는 그림을 골라야하는데, 이건 거의 전쟁이나 다름 없다. 좋은 그림들은 첫날 모두 매진된다. 바쁜 직장인들이 이런 수고를 들인다? 확률적으로 적다.
하! 또다시 원점이다. 어디서 구매해야 좀 더 쉽고 발품을 덜 들일 수 있을까? 옥션이다. 온오프라인 경매회사의 경매에 참여하여 낙찰을 받으면 의외로 중견 작가들의 작품들을 200-300백 만원 대에 낙찰받을 수 있다. 오프 라인 경매의 난도가 높다면 온라인 경매에 참여하면 된다.
옥션 회사들은 여럿 있지만 대표적인 곳이 서울옥션과 K옥션이다. 중저가 작품을 위주로하는 온라인 경매가 성황이니 여기 가입하여 미술품을 낙찰받으면 된다. 가입도 쉽고, 경매 참가도 쉽다. 개중에는 작가에게 직접 연락하여 작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는 작가를 만날 수 있고 작가의 연락처도 알 수 있다.
자, 이제 답을 알았다. 미술품을 구매하려면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회사, 작가 등을 통해 구매하면 된다. 여기에 개인딜러에게 구매를 하는 방법(헌데 이는 초보자에겐 무리)도 추가할 수 있다. 일단 구매하는 곳은 알았는데, 그럼 예산 2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호당가격제라는 벽을 넘어야한다. 아주 이상한 가격상정 체계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맹위를 떨치는 계산법이다.
그냥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겠다. 우리나라 그림가격은 호당 가격으로 책정된다. 1호는 약간 큰 엽서 크기이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은 크기의 정도다. 0호에서부터 100호 이상까지 나열할 수 있는데, 100호가 1호의 100배가 아니라는 점이다. 1호는 22.7센티x15.8센티 이고, 100호는 162.2센티 x 130.3센티 정도의 크기다. 대학을 막 졸업한 미대생의 그림은 시장가격이 형성되기 전이기에 호당 5만원 이만으로 책정된다. 보통 2-3만원 정도된다. 위에서 말한 중견 작가(경력20년 이상) 정도 되면 호당 20만원 정도 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사이즈는 10호에서 30호 정도의 크기인데 미대 졸업하고 막 전시회 몇 번 한 신진작가의 작품은 10호에 30만원 정도 한다. 중견작가는 200만원이다. 단순하게 호와 가격을 곱하면 얼추 가격이 나온다. 이게 대략의 그림 가격이다. 근데, 위에서 언급한 갤러리와 아트페어에 가서 붙어 있는 그림가격을 보라. 대개가 200만원 이상이다. 더군다나 10호 사이즈 크기는 별로 없고 거의가 30호 이상이다. 200만원으로 중견작가 10호 그림을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산다? 어림도 없다. 공모전 입선까지 하면 가격은 호당 30만원으로 뛴다. 개인전과 초대전 합해 10회도 안 된 신진작가가 공모전에서 입상이라도 하면 호당 10만원은 가뿐히 넘는다.
참고로, 삼성이 택한 최승윤 작가는 호당 13~15만원 정도 하는데, 사이즈가 최소 50호 이상이어서 그림 한 점당 500만원이 가뿐히 넘는다. 거대 자본 삼성이 밀어주기에 개인전과 초대전이 일천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다. 요즘 잘나간다는 팝아트 작가들은 옥션에서 없어서 못팔 정도. 이동기와 우국원 작가의 작품들이 옥션에서 얼마에 낙찰되는지 보면 참으로 한국 미술 시장의 가격이 거품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어쨌거나, 다시 돌아와서 예산 200만원은 제대로 된 그림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가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없는 예산을 올려 500만원에 잘 나가는 신진작가 작품을 사면 되느냐? 그러면 안 된다. 그림을 살 수 있는 곳이 3곳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절대 이런 곳에서 그림을 구매하면 안 된다.
왜냐고? 간단하다. 구매한 그림을 되팔 수 없기 때문이다. 500만원을 주고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그림을 구입했다고 치자. 1년 잘 감상하고 작가가 유명세를 타니, 그림을 팔아 시세차익을 볼려고 아트페어나 갤러리에 되팔고 싶다고 해봐라. 우스운 사람 취급한다. 절대 그곳에서 판 그림을 재구매 해 주지 않는다.
갤러리에서는 판 가격의 20퍼센트 미만으로 재구매 해 주기도 한다. 500만원에 산 그림을 50만원도 안 산다는 말이다. 미술품 투자라는 말이 허무 맹랑한 소리임을 이때에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 투자의 대상이 되는 그림은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그림에 한 해서 통용되는 말이다.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구매한 그림들은 절대 되팔 수 없다.
여러 미술품 투자 카페에서 애호가들이 천 만원 주고 산 그림을 팔지 못해서 발을 동동구르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아프페어에서 500만원에 산 그림을 어느 갤러리에 10만원을 주고 팔았는데, 이 갤러리가 운영하는 옥션에서 이 그림을 300만원에 낙찰하여 파는 것을 보고 한 애호가는 절망어린 토로를 했다. 이런 글 부지기수다.
아트페어나 갤러리 그리고 옥션의 미술품 가격들은 매우 뻥튀기 되어 있다. 갤러리는 작가 홍보와 전시대관과 각종 비용 때문에 마진을 100% 붙인다. 갤러리에서 500에 팔리면 250은 갤러리 몫이다.
아트페어 또한 부스를 돈을 들여 사야하고 작가들 홍보해야 하기 때문에 그림 당 50% 정도의 마진을 붙인다. 원래 100만원 정도 하는 그림인데 백화점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기에, 500만원에 팔리고 있고, 유명 아트페어에서 판매해야 하기에 300만원에 책정하고..이런 식이다. 이걸 옥션에서 사면 100~200만원 사이에 낙찰 받는다.
200만원 정도의 예산이면 사실 큰 돈이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를 잘 찾아보면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500-600만원 정도 하는 그림을 1/5가격 심지어는 1/10가격에도 구매할 수 있다. 모두 검증이 끝난 화가들이다. 20년 이상 작가활동을 하면서 개인전과 단체전 합해 100여회 이상은 물론이고 국전 최우수상, 심사위원, 교수 및 원로 화가의 좋은 그림들을 30~100만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직접 작가가 보증하고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어 위작을 방지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구매하면 덤탱이를 쓰지 않고 제대로 된 '미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산 제품을 회원들의 시장가격에 되팔 수도 있다!
명심하자. 아트페어, 갤러리, 작가 등에서 절대 그림을 구매하면 안 된다. 되팔 수 없고 환금성이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 그림은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그림은 세월이 흐르면 값이 오르게 돼 있다. 그때 되팔 수 있는 그림, 되팔 수 있는 곳이 있어야 진짜 미술품 투자다. 거대 자본에 절대 휘둘리지 말자!
덧말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림 구매 초보자를 위해 개략적으로만 스케치한 글입니다. 여전히 봐야 할 그림은 많지만 쌩초보였던 때 내가 느꼈던 그림 구매의 막막함이 있었기에, 그림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라고 쓴 페이퍼입니다. 그림 구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하나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그림으로 투자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시라구요. 그냥 좋은 그림을 소장하고 평생 보고 즐긴다고 생각하시고 '작품'을 저렴하게 구매하시면, 세월이 흘러 그 작품은 돈이 돼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