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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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적인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책을 읽었다. 보통 미술사를 소개하는 책들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예술 사조의 변천사, 다른 하나는 작가별 통사. 후자가 미술사를 스케치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어느 작가를 선별하더라도 항상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기에.

 

왜 하필 그 작가인가?’ 작은 물음이 아니다. 시대사를 정리하다 보면 아주 소수의 몇 명으로 추려진단다. 내 얘기가 아니라 영국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가 한 말이다. 중요한 건 이 작가들이 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에 의해 선별된 작가들이라는 거.

 

이 기시감. 즉 역사는 그것을 서술하는 주체의 시각이 절대적이라는 거. 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선택된 사건만 역사서에 담긴다는 사실. ‘왜 이 사건은 중요한데 잊혀진거지?’ ‘일상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등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서 미시사(微時史)라는 분야가 생겨났는지도)

 

하지만 미술사를 작가별로 스케치한다고 할 때 이 비판은 좀처럼 피해갈 수 없다. 왜 그따위로 작가를 선별하여 미술사를 구성했느냐(왜 이 작가는 빠졌냐)는 타박. 특히 한국 미술사, 그것도 현대미술사를 정리하여 개론적으로 보여준다고 선정한 작가라면 이 비판의 십자포화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현대미술이라는 분야가 그 역사가 일천하기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선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도 1977년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100인의 리스트가 있고, 2009년에 한국미술평론가 협회에서 발간한 한국 현대미술가 100인의 리스트가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시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미술가의 범위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얼추 1910~1990년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범위라 생각한다. 그래서 위 두 리스트에서 함께 다루어진 작가라면 충분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현대미술을 스케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최근에 읽은 <커튼콜 현대미술>(은행나무, 2019)은 현대미술 사학자 정하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스케치이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 30인을 다루었다. 여기 수록된 작가 대부분은 이미 일부 평론가가 출간한 작가론 저작에 포함된 작가들이다. (중복된 작가가 꽤 된다.)

 

하지만 미술사가가 집필한 책이 개인 선호도에 치우치고 객관적 평론이 아닌 인상비평으로 흐른다면 그 책에 대해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커튼콜 현대미술>은 미술사가의 작가론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입문서이지만 엄연히 작가론에 해당한다.)

 

정하윤은 한국현대미술의 시대를 4분 한다. 20세기 초, 해방 직후, 1970년대, 1980년대 이후로. 그리고 각 시대에 대응하는 작가들을 7~8인으로 선별하여 대략 6-12페이지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표작인 도판을 제외하면 평론은 대략 A4 1~2장 사이 분량이다.

 

문제는 정하윤이 작가와 그림을 분석하는 태도에 있다. 그림에 대한 추측성 인상비평이 많다. 첫 장부터 나오는데, 고희동의 자화상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그림에 대한 분석적 비평이 아니라 추측성 서술은(p17)은 비평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런 추측성 서술과 인상비평은 책 도처에 있다.)

 

더군다나 개인의 선호는 어찌나 그렇게 심하게 반영하는지 모르겠다. 이승택을 다룬 부분을 보면, 정말 미술사가가 작가를 이런 식으로 평해도 되는지 고소를 금치 못한다. “이승택의 작품은 짱이다!,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할 생각을!!, 작품을 보면 넋을 잃을 정도다.”(pp177-178) 읽어 보시라. 저자의 두 페이지를 압축한 글이니.

 

이런 인상비평은 책 전반에 걸쳐 있다. 논증이 필요 없는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동기를 평한 부분을 보자.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는 어떤가요? 아톰과 미키마우스는 각각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이지만, ‘아토마우스는 이동기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형상입니다.” (p.223)

 

이동기 작가의 작품을 팝 아트라 단정하지 말라는 소제목하에 예술=창조라는 말로 아토마우스를 평가하고 있다.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아토마우스가 이동기 작가가 예술적으로 창작한 작품이란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런데 팝 아트라 단정하지 말라. 아토마우스 캐릭터를 보면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캐릭터와 본질적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다. 형상이 다를 뿐이지 전형적인 팝 아트다. 저자가 팝 아트라고 단정하지 말라는 논거가 창조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동기가 작품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그 자체에 있는 거고 그게 바로 팝 아트의 중심이자 작품 창작 활동의 근거다. 레퍼런스가 아닌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변형이나 합성 또는 패러디가 불가피하다. 그게 창작 활동 본질이기에 저자의 논거는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러한 저자의 논조는 책 초반 김관호를 논한 부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작품 창조를 뭔가 처음 고안한(예컨대 절대주의 창시자 말레비치) 것뿐만 아니라 그걸 수용한 작품도 아류가 아닌 창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창작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레퍼런스가 아닌 창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원작을 변형한 나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선배 작가 AB를 믹스한다 든지, 아니면 내게 영향을 미친 작가 그림을 내식으로 변형하는 게 창작 활동의 근본이다. 내식으로 변형이 없으면 그건 레퍼런스일 뿐이다.

 

하지만 이건 그 계열의 일부 작품일 뿐이다. 진정한 회화의 창작물(=창조)은 독창성에 있고, 이건 그 사조를 연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달려있다. 절대주의에서 말레비치, 팝 아트에서 앤디 워홀 정도가 아니면 미술에서 창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창작 활동창조를 혼동하는 듯.

 

그런데 서세옥은 논한 부분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저자는 확실히 작품의 창조가 뭔지 알고 있다.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라는 개념만 존재하던 1959년에, 몇 개의 점을 찍어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p113)

 

이 대목을 보면 작품의 창조가 뭔지 대번 알 수 있다. 전통과 규칙을 넘어선 실험 정신에 입각한 이전에 없던 형상의 창작.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창조의 본질일 거다. 그래서 서세옥을 본질에 집중한 화가라고 저자가 평한 거. 이런 것이 창작 활동으로서의 창조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ab를 조합하여 그 장점만을 형상화한 작품이 창조가 아님은 당연하다. 한 사조라는 계열에 포섭되는 따라지 작품이다. 물론 작가의 창작품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동기의 아토마우스가 창조물이라는 건 저자의 서세옥 논의를 따를 때 결코 창조라 할 수 없을 거다. 저자는 이런 이율배반적 논의를 반성적 사유 없이 작품 분석에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책의 4부에 민중미술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저자는 오윤과 신학철을 선정하고 있다. 그리고 민중미술은 엘리트 미술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고 말하면서(이 부분이 저자가 민중미술을 보는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오윤과 신학철의 말을 언급하고 있다.

 

오윤은 추상미술은 엘리트 미술이라고 비판합니다. (중략)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미술이 중요하고, 단색화와 같은 추상미술은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p198-199) “신학철은 민중이 주가 되는 미술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할 수 있다.”(p204)

 

저자는 민중미술을 통해 엘리트 미술을 극복할 수 있고 민중이 주가 되는 미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민중이 누구를 지칭하느냐에 따라 이 미술 분야는 사장될 수도 있고 재평가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민중의 범주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도외시한 채 엘리트 미술의 대안으로 민중미술의 의의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민중가요와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분야다. 당시 민주화 물결에서 미술도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시대상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미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대학교 주변의 가투가 없어진 걸 보면 민중미술도 한 시기의 유행이었던 거다. 물론 민중가요는 노동쟁의 때 종종 들리지만, 민중미술을 하고있는 작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시대가 변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80년대 민중은 독재에 눌려 지내던 국민을 부르던 일종의 구호였다. 시대가 만들어낸 대중의 다른 표현이다. 이걸 2020년대로 끌어와 엘리트 미술을 극복할 미술 분야로 상정한 것 자체가 무리수. 예나 지금이나 미술은 엘리트 미술이고 대중과 유리되어 온 게 미술사였다.

 

단순히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난해한 현대미술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민중미술을 접근하면 민중미술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시대성을 희석시키게 된다. 또한 민중미술을 우리의 주체성 있는 미술로 자리매김하기에는 그 연속성의 한계가 뚜렷하다.

 

민중미술을 다루려면 시대의 한계와 그 특수성을 감안하여 민중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시도해야 그나마 이 분야가 나아갈 방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저자는 우리 미술의 주체성 확보를 위해 민중미술을 새롭게 인식하자는 식인데, 너무 소박한 인식인 듯하다.

 

객관성이 부족한 30인의 인상비평을 보니, 저자가 시대성을 대표한다고 본 작가가 결국에는 저자의 관심 작가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 이건 어쩔 수 없는 작가론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앞에서도 밝혔지만, 정작 박생광, 박고석, 권진규, 권옥연, 변종하, 이숙자, 이왈종 등이 빠져 있어 작가의 선택에 있어 아쉬움이 많다.

 

지금까지 책에 대한 불만만 얘기한 거 같아 좀 거시기하지만,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이다. 한국 미술 초보자에게 작가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림을 보고 대하는 감상 포인트는 유용하니까. 더군다나 대표작 74점의 도판은 확실한 장점이지 않을까. 여튼 한국 현대미술 입문자에겐 좋은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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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03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미술에 거의 문외한인 저는 읽을만한 것 같습니다. 들어 본 이름이 3분의 1이고 첨 듣는 이름이 나머지인데 가격도 싸네요. 미술책 거의 싼게 없는데.

yamoo 2024-12-04 14:4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이 책, 단점도 뚜렸한 책이지만, 최대 장점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 무척 쉽게 서술되어 있다는 거에요. 문외한이라도 30명의 작품과 설명을 보면 왜 중요한 작가인지 감을 잡을 수 있어요. 입문자들에게 최고의 입문서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입문자들 10이면 10이 하는 말..^^

나머지 1/3도 차차 알아가면 됩니다..ㅎㅎ

맞아요,. 이 책이 현대미술 책 칙고는 무척 싼 편이죠. 컬러 인쇄임에도 불구하고..ㅎㅎ 그래도 종이질이 일반적이라 도판의 선명함은 많이 떨어집니다~

2024-12-19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20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위 명작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 후 뭘 봐도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전작과 비교되어 보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한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진짜 재미있는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없게 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뒤늦게 본 후로, 뭘 봐도 재미가 없는 거다. 넷플 영화는 죄다 재미가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헌트>를 보게 되었다. 2020년 영화라 이것도 보다가 재미없으면 꺼버릴 요량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B급 영화를 이처럼 재밌게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 영화, 정말 B급 저예산 영화 맞다. 이름 있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힐러리 스웽크가 특별 출연한 정도) 제작비가 많이 든 스팩타클한 영화도 아니다.  그냥 데스 게임 형식의 고전물에 가까운 장르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 감독이 그만큼 연출을 잘한 케이스.

 

원래 작품 의도는 정치적인 풍자를 하드 코어 영화로 만들었다지만, 그냥 데스 게임 영화로 봐도 손색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장르 영화가 갖추어야할 미덕(재미)을 충실히 구현한 영화로써 한계가 뚜렷하지만, B급 장르 영화를 이 정도로 재밌게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다크 시티> 이후 최고의 B급 영화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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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11-2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예전에, 그러니까 누군가가 불법 다운로드 받아서 공유해준 파일로 봤었어요. 그때 저도 야무님과 거의 비슷하게 정말 비급 영화치고 참 괜찮게 만들었다. 재밌었다. 라고 생각했었죠.

어제 밤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걸 보고 설마 그건가? 하고 영화 소개를 보니 맞더라구요. 반가웠습니다. 알라딘에서 야무님의 글을 읽으니 더 반갑네요. ㅎㅎㅎㅎ

yamoo 2024-11-29 15:01   좋아요 0 | URL
오~~ 감은빛 님두 이 영화를 보셨군요!
저하고 생각이 같으시네요..ㅎㅎ
늦었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니, 무척 반갑습니다!!^^

페크pek0501 2024-11-30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크 시티>와 <헌트>를 기억해 놓겠습니다. 어디 적어 둬야 기억 나서 보게 될 듯합니다.
읽은 책 목록은 꼭 적어 두는데 영화는 적다가 말았어요. 앞으론 영화도 기록해 놔야 할 것 같아요.
넷플에 영화가 많다 보니 뭘 봐야 할지 몰라 누가 보고 나서 추천한 영화를 주로 찾아봅니다.
좋은 영화 정보 얻어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yamoo 2024-12-03 15:17   좋아요 1 | URL
아...그러시군요!! 일단 <다크시티>는 좀 오래된 영화긴한데, 아주 재밌고 의미심장합니다. 제니퍼 코넬리 리즈시절 영화에요~~

넷플 영화 중 재밌는 영화 일단 몇 개 추천드리겠습니다!!
리브더 월드 비하인드,
더 포가튼 배틀(스헬더강 전투),
뮌헨;전쟁의 문턱에서,
행복한 남자,
미스슬로운,
아이리시맨,
노바디
 

책 타이틀에 착각이 들어간 시리즈를 모으고 있기 때문에, <읽었다는 착각>(EBS BOOKS, 2022)를 구매했다. 헌데, 이거 읽은 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문해력관련 책인 것을,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착각에 관계된 책 중 내 의도를 완벽히 빗겨간 책이다.

 

교환 하려다가 그냥 읽기로 했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나저나 요즘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책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더 심하다. 재작년부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본 영화나 드라마 리스트를 보면 너무 생소할 때가 있다.

 

읽었던 책 중에서는 <소립자>, <푸코의 추>, <정체성> 등의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특히 에코의 에세이 책들이 그렇다.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대중의 슈퍼맨> 등을 펼쳐 몇 페이지 읽었는데, 읽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너무 새로운 책 같다.



 






영상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심각하다. 하도 잘 잊혀져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즉시 제목을 적어 놓고 평점을 매겨 놓는다. 이 리스트가 200개를 넘어가니 제목 자체가 생소한 게 너무 많은 거다. 예컨대 이런 거. [조디악 ★★★★, 블랙 아일랜드 ★★]

 

제목만 보면 내가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뒤에 별로 평점을 남겨놔서 이걸 봤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다시 보면 봤다는 생각이 나겠지만 제목만 보고서는 이걸 봤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후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수월해 져서 하루에 3-4편을 보니, 당연히 제목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제목을 기록해 놓지 못한 영화들의 경우 줄거리와 주제가 생각나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아 연관된 영화를 기록할 때 여간 곤혼스러운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본 한국 영화 <원더랜드>의 경우, 분명히 올 초에 비슷한 미국영화를 넷플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 죽기 직전에 기억(젊은 시절)을 서버에 저장해 놓아 평생 그 공간에서 지낸다는 설정이었고, <원더랜드>가 그 영화의 아류라는 걸 알았는데, 정작 그 영화 제목이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 거다.

 

이런 현상이 정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듯. 책은 오래 전에 구매했는데, 구매한 줄 몰라 또 구매한 책이 꽤 된다. 같은 책이 3권이 나왔을 때는 너무 허탈하다. 이제 나도 치매인가? ‘나 이제 노인으로 가는 거야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읽는 인생이고, 보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읽은 적이 없는 착각본 적이 없는 착각속에서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이게 언제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때를 맞이해야 하는 시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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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9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건 저도 그래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나는데 그걸 어느 드라마에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가 있죠. 책도 그렇고.
저는 꽤 오래 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데 세월이 한참 흘러 엇,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죠. 설혹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읽었다는 기억만하지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책이든 영화는 몇 번 거듭해서 봐야할 것 같긴한데
그러면 다른 걸 못 보게되니 그것도 쉽진 않죠?
그런데 착각은 왜 모으시는지?

yamoo 2024-11-19 17:52   좋아요 1 | URL
와우~!! 스텔라님은 오래 전부터 리스트 만들어 관리해 오셨군요! 책은 리뷰를 써 놓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리뷰 쓰지 않는 책들은 10여 년이 지나면 생각나는 게 별로 없는 듯해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제목만으로는 2-3년 전에 본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착각 시리즈를 모으는 이유가...책 3권을 샀는데 ‘착각‘이 들어가는 책을 모으게 되더라구요. -의해 시리즈도 그렇게 모았구요...~~에 관하여..라는 책들도 그렇게 모으게 됐으요..^^;;

페크pek0501 2024-11-30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책 구매는 알라딘, 한 곳만 정해 놓고 구매한답니다. 산 걸 또 구매하면 구매한 적이 있다는 문구가 뜨거든요. 국내 소설 단편집 같은 경우는 열 편쯤 담겨 있어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다른 책으로 읽다 보면 중간쯤 가서 아, 읽은 단편이구나, 한답니다.ㅋㅋ

stella.K 2024-11-30 12:21   좋아요 1 | URL
헉, 그런 기능이 있었나요? 알라딘 기특한데요? 전 아직 그런 일이 없어서요ᆢㅎㅎ
 


넷플 애청자로서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넷플에서 방영되는 최신 영화들이 전부 그저그렇다는 거. 시간 낭비인 작품들이 8할 정도 차지하는 듯하다. 드라마는 볼 만한 게 많은데, 특히 한국 드라마. 영화는 외화든 방화든 뭐든 넷플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망작인 듯해서.


어떻게 보는 족족 죄다 재미가 없다. 심지어 '이런 걸 영화라고 만들다니'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5할이 넘는다. 개중에 본 작품이 <탈출>과 <탈주>. 그나마 좀 나은 듯싶지만 여전히 보고 나서 괜히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많이 아쉬운 작품이 <탈주>다. 이거 넷플 상영 시작일에 바로 본 건데, 보니까 2024년 7월에 개봉한 영화다. 3백만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겨우 손익 분깃점을 넘긴 영화. 다 보고 나니 왜 그저 그런 성적을 거뒀는지 알겠더라. 


탈북에 관계된 영화는 지금까지 없었는데, 이 좋은 소재로 어떻게 연출을 그따위로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믿고 보는 배우인 이제훈과 구교환이 아니었으면 200만도 달성하지 못했을 영화였다. 개연성이 완전 망한 케이스.


처음엔 매우 긴장감과 몰입감이 좋았다. 헌데 김동혁이 임규남의 탈주 계획을 눈치 채고 같이 탈북하겠다는 대목까지는 볼만했지만, 그 이후 규남과 동혁의 관계는 영화의 흐름을 깨는 1등 공신. 쫓은 현상과 쫓기는 규남 역시 플롯 구조에서 개연성 없기는 마찬가지.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더 혈압이 오른다. 물론 좋은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규남이 비무장 지대를 달리는 탈주 장면은 꽤 좋았다. 그냥 아주 심플하게 탈주하는 규남과 쫓는 현상의 관계만으로 러닝 타임을 채워도 충분할 거였다. 심플하게. 


헌데 동혁의 서사구조가 끼여들면서 영화 플롯은 산으로 갔고 개연성도 망가졌다. 2002년 영화 <비하인드 에너미 라인스>에 보면 탈출하는 주인공과 그걸 쫓는 보스니아 반군 추리닝맨의 서사가 있다. 도주와 추격에 초점을 맞춰 걸출한 연출력을 보여준 숨어있는 명작이다.


<탈주>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도주와 추격에 관현 영화다. 그렇다면 규남과 현상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에너미 라인스>의 도주 구도와 <탈주>의 도주 구도를 비교해 보면 왜 <탈주>가 용두사미가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탈주를 막는 외부 요인과 집요한 추격의 서스펜스만으로도 충분했다는 말이다. 탈북과  비무장지대라는 이 매력적인 요소로도 도주와 추격의 드라마틱한 연출을 할 수 없다면 감독으로 소질을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제훈과 구교환 배우로 뽑아낸 영화가 이 정도라면 망한 케이스가 아닐까. (끝)


종합 평점 : 3점/5점 (참신한 소재+좋은 배우+내맘대로 개연성=평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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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09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어요
ㅠㅠ
넘 아니더라고요.
이러다 한국 영화 망할까 우려됩니다^^

yamoo 2024-11-10 10:31   좋아요 1 | URL
헛!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군요!
이거 1만5천원 내고 봤다면 욕을 한바가지로 하고 나왔을 듯합니다.
다행히 넷플로 편안히 봤는데...요즘 영화들이 대체로 평타 이하더라구요. 특히 넷플 영화들은..

한국영화 망하는 도화선은 아마도 영화관 티켓값 15000원으로 쳐 올린 영화관들 몫이겠죠. 이렇게 재미없는 작품을 1만5천원 내고 누가 갈까요? <파묘> 정도면 돈 안깝다는 생각이 안들터인데...죄다 평타 이하...탈출, 탈주 이 두작품을 영화관에서 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극장 안갈겁니다..

hnine 2024-11-09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마 이 영화를 본다면 이제훈과 구교관 때문일 것 같은데요.
배우의 연기력으로 부족한 서사와 작품성을 덮기엔 무리가 있지요.
저도 <시민 덕희> 이후로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추천할 만한 영화를 본 기억이 없어요.

yamoo 2024-11-10 10: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런 도주와 추격의 영화는 외부적 사건이 인물의 연기력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볼거리도 외부 사건들이 중요합니다. 이걸 두 배우의 연기력으로 덮는다? 불협화음으로 이런 작품이 탄생하죠.
전란,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 탈주, 유령, 돈 무브 등 넷플에서 최근 본 영화들 모두 다 최악이었습니다. 그나마 패스트라이브즈가 좀 위안이 됐죠.
여튼 넷플용 개봉 신작 영화들은 죄다 망작이라는..--;;

<시민 덕희>가 재밌나보죠? 흠...봐야 겠습니다. 작년과 올해 넷플용 영화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를 뛰어넘은 영화가 없으요~~~ <테넷>은 너무 어려워 3번 봐야 해서 제외..ㅎㅎ

stella.K 2024-11-10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저만 그런게 아니군요. 저는 최근 지성이 나오는 커넥션하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봤는데 둘 다 감히 걸작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좋았는데 영화는 영 땡기지 않더군요. 문제는 드라마는 보는데 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거죠. 앞으로도 찜한 드라마가 산더미인데 언제 다 볼는지 모르겠어요. 행복한 비명이죠? ㅎㅎ

yamoo 2024-11-12 15:16   좋아요 1 | URL
커넥션..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리스트에 추가 했습니다..ㅎㅎ

맞아요....넘 시간이 많이 걸려요..ㅎㅎ 군검사 도베르만 같은 경우 이틀만에 해채웠는데...슬의생은 한편이 너무 길어서 1주 넘게 걸렸으요~~

그래도 행복한 비명 맞는 거 같아요...넘 시간이 잘가요..ㅎㅎ
 


요즘 반려동물로 토끼를 키우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래서 토끼를 키우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토끼는 어떤 류로 분류되냐고?


그랬더니 설치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지인이 대뜸 무슨 설치류냐고, 포유동물이라고. 설치류는 쥐나 족제비라고 단언했다. (솔직히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좀 찾아봤다. 그 유명한 종-속-과-목-강-문-계. 알아보니, 조금 놀라웠다. 토끼는 토끼과, 토끼목, 포유강, 척사동물 문, 동물계의 분류 따랐다.


그리고 다음 정보가 부가된다.

설치류(쥐목)

중치류(토끼목)

모두 설치동물에 속한다나..


그니까 토끼는 설치류가 아닌 중치류에 속하는 동물이고, 설치동물이니 

설치류라고 불러도 충분히 헷갈릴만하다는 소지.


여기서 또 하나 배운 것이 척삭동물이라는 거.

척추동물의 오기인줄 알았는데 척추동물은 척삭동물의 일부라는 사실.


역시 무식하면 공부를 해야한다. 나는 토끼가 어떤 류에 속하는 동물인지 무지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내가 알고 있는 동물은 단지 그 이름만 알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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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6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어렵네요. 토끼가 설치류라는 것도 잊고 살 때가 많은데
사실은 충치류고 척삭동물이라니? 이거 꼭 알아야 하는 건가요?
이래서 저는 과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ㅠㅠ

yamoo 2024-11-07 15:03   좋아요 1 | URL
저도 토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 때문에 토끼에 대해 알아보고 그 이름에 대한 분류가 참 심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척삭동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ㅎㅎ
과포자..라기 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그레이스 2024-11-06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속과목강문계 ㅎㅎ

Falstaff 2024-11-06 20:4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는 계문강목과속종, 이렇게 외웠습니다.

그레이스 2024-11-07 08:35   좋아요 2 | URL
더 어려운데요?^^;;

yamoo 2024-11-07 15:04   좋아요 2 | URL
계묵강목과속종으로 외운 분들도 많아요..ㅎㅎ 누구는 큰것에서 작은 것으로..누구는 작은 것에서 큰것으로 암기..ㅎㅎ

hnine 2024-11-06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 다닐때는 ‘척색동물‘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척삭동물이라고 하나봐요? chordate라고 원어는 같은 것을 보니 동일한 명칭인건 맞는 것 같아요.
토끼 이빨을 보면 쥐 이빨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yamoo 2024-11-07 15:05   좋아요 0 | URL
오~~~척색동물이라는 개념을 배우셨군요!! 저는 배운 적이 없어서요..ㅎㅎ 생물 교과서에도 척삭이라는 용어는 없었습니다! 요즘 문학에서 잘 사용하는 핍진성이라는 개념도 교과서에는 없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