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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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을 한 달 내내 잡고 있었다. 토론 주제 도서라서 팽개쳐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기에 매우 곤혼스러웠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됐기 때문이다. 처음 일독했을 때, ‘헛소리의 성찬으로 가득 찬 정치이론서’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각 장을 3번씩 읽으니 어느 정도 논점이 잡혔는데,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봐도 역시나였다. 책의 결점이 매우 도드라졌다. 마지막에 대항제국을 말하면서, 운동의 바람직한 모델로 세계산업노동자조합(IWW)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용두사미의 백미랄까.

 

 

헌데 이 책이 좋다고 하고, 심지어 ‘재밌다’고까지 하는 분들을 여럿 보았다. 알라딘 리뷰도 좋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번역도 좋지 않은데(비문이 넘친다) 말이다. 아래는 이 책이 왜 별루인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비판이다. 엉성한 비판일 수 있지만, <제국>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적 리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리뷰로 남겨놓기로 한다.

 

 

1. 내재성(주체성 및 자발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결여

 

 

네그리와 하트는 현재의 정치적 구성을 ‘제국’이라 명명하면서,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을 주권의 이행과 생산의 이행으로 나눠서 고찰하고 있다. 이 이행에서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대중’이다. 이들이 말하는 ‘대중’은 19세기 제국주의를 거쳐 자본주의 시대에서 말하는 대중이 아니다. 제국을 흔들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된다.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의 지형으로 바꾸어 놓는 동인이 바로 대중의 존재이다.

 

 

현재 미국의 대중은 이전 시대의 대중과 구분되는 가장 특별한 지점이 있다. 네그리는 이를 내재성으로 보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푸코와 들뢰즈의 개념을 전유하면서 내재성을 생체 정치와 연결하여 논의를 심화시킨다. 훈육 통치, 전 지구적 통제, 제국 주권, 세계 공간, 가상성 등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면서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내재성(스피노자의 개념으로부터 도출)에 대한 개념에 있다.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내재성에 대한 개념 풀이를 보면, 이렇게 돼 있다. “어떠한 것도 외부에서 부과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들 속에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내재성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내재성은 초월성과 대립한다.”

 

 

이 개념을 좀 더 쉽게 바꾸어 보면 이럴 것이다. 기준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헌데 이것의 핵심은 주체의 자유에 있다. 내재성은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유’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내재성에 기초한 자발적 행위는 자유로운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헌데 네그리는 개체를 특징짓는 이 내재성의 개념을 집단으로 확대하고 있으면서도 ‘자유’와 ‘자율’에 대한 철학적 논증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 유럽의 근대성으로부터 제국 주권을 도출해 내고, ‘대중의 역능에 기초한 저항운동’을 논의하면서도 ‘집단의 내재성’의 근간이 되는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고찰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이 책의 맹점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네그리는 제1부 3장 [업적의 존재론적 드라마(p83)]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p100)]에서 정치적 담론을 존재론적 근거로 분석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는 이후 ‘내재성’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존재와 실존을 논하면서도 이를 내재성의 개념으로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결함이다.

 

 

헌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다. 책을 재독 삼독 하다 보니, (아마도 이는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네그리가 ‘초월성’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내재성’을 아주 소박하게 상정하면서 초래된 문제인듯하다.

 

 

2. 지나친 이분법적 도식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의 저자들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을 주권의 이행과 생산의 이행으로 나눈다. 이런 도식은 이 책의 기획의도에서도 알 수 있다. 저자들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 책의 근간으로 사용한다고 말해 놓았기 때문. 마르크스가 사회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나눠 분석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사회의 상부구조인 정치(주권)와 하부구조인 생산의 영역을 분리해서 고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마르크스가 기획했던 정치(상부구조)와 경제(하부구조)가 탈현대라고 부르는 현재에는 이들이 서로 밀접하게 섞여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하부구조라는 것이 노동의 생산 양식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는 현재 현대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중추적 쟁점으로 ‘경제’ 분야에 포섭된지 오래다.] 정치와 경제는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상호 침투하고 있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기 보다는, 상하부 구조가 뒤섞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는 게 적절할 듯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분석 방법이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제2부 ‘주권의 이행’과 제3부 ‘생산의 이행’이 각기 따로 놀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주권의 논의를 읽고 3부로 넘어가면 제국주의의 한계와 훈육 통치의 논의가 이어진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당연히 근대 국민국가의 주권의 이행이 생산의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염두에 두고 읽어 갈 것이다. 헌데 아무리 읽어도 그 관계나 영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 참으로 불친절하다 못해 논리적 치밀함이 떨어지는 엉성한 책이 아닐 수 없다.

 

 

3. 국민국가는 죽었는가?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적 상황에서 국민국가는 종말을 고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 따른 결론이다. 세계는 결코 미국을 중심으로 외부화가 없어지는 ‘제국’이 아니다. 브랙시트 사태만 보더라도 각 국가는 아직까지 국민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추구하는 경향이 암암리에 내재해 있다. 세계경제가 빠르게 통합되고 블록화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국민국가적 정체성을 지향하는 나라들이 많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사태나 남북이 대치된 우리나라의 상황만 떠올려 봐도 충분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국>에서 말하는 거의 대부분의 이론이 들어맞지 않은 나라다. 우선 포스트 모던한 시대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민족주의가 회자되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시간은 일제대의 망령에서 아직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화두가 되는 나라,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여전히 이념적 대립이 심각한 나라, 1953년의 상흔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 나라, 이런 국가가 한국이다. 이 나라는 아직도 강력한 국민국가의 나라이다.

 

 

이런 국민국가의 강력한 지표중 하나가 북한의 핵을 둘러싼 6자회담이다. 6자 회담은 북한의 핵 억제를 위해 미국을 위시한 6개 국가가 참여한 국제 회담이다. 회담에 참여한 국가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자 회담은 국가의 이익이 전면에 드러나는 국제외교의 장이기 때문이다. 제국적 상황의 갈등이라고 보기엔 ‘국민국가’의 존재감이 너무도 뚜렷하다. 책의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제국은 외부를 가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제시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강조하기 위한 흐름일 뿐 실제의 세계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매우 반갑게도 나의 이런 비판을 조금 더 세련되게 잘 지적한 책이 있어 그 부분을 첨부한다. 이 글을 보고 구미가 당기시는 분들은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가라티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같은 지점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적이다.

 

 

엘렌 M. 위드는 네그리와 하트를 비판하며 정당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글로벌한 자본주의에 있어서 국민국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정치적 형태는 글로벌한 국가가 아니라 복수 국가의 글로벌한 시스템이다. 지구 규모로까지 팽창한 자본주의의 경제적 권력과 국가의 영토 내에서 이런 권력을 뒷받침하는 경제 외적인 힘 사이에는 복잡하고 모순된 관계가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 관계로부터 새로운 제국주의의 고유한 모습이 탄생했던 것이다.” (P400)

 

 

4. 휘황찬란한 개념의 향연

 

 

저자들은 제국의 개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일차적으로 이론적 접근을 요구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고 천명한다. 그래서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비롯해 푸코와 들뢰즈의 개념을 상당히 전유하고 있다. 제국주의와 전혀 다른 새로운 현상을 ‘제국’으로 재설정하기 위해 책 전체에 걸쳐 ‘정치 이론화’에 매진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이론화를 위해 상징과 비유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논증을 필요로 하는 지점이 넘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에 대한 논증이 전혀 없다. 독자층이 안다는 전제하에 철학적 이론을 비유와 상징을 통해 끊임없이 문학적 개념화를 시도한다. 그래서 무소불휘한 개념의 잔치 속을 헤매다 보면 논점이 흐려져 선언의 정당성이 떨어져 보인다.

 

 

네그리와 하트가 이 책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도식화하고 있는 개념들을 거들떠보자. 정말이지 휘황찬란하다. ‘생체성’, ‘가상성’, ‘생체 권력 및 생체 정치’, ‘매끄러운 세계’, ‘전지구적인 홈패임’, ‘산노동’, 선험적 장치, ‘주권 기계’, ‘잡종적 구성’, ‘배열 장치’, ‘착취의 무-장소’, ‘훈육 사회’, ‘비물질적 노동’, ‘구성의 스펙터클’, ‘자본의 공리계’, ‘업적/기계’, ‘재전유권’ 등은 모두 이론을 위한 이론일 뿐이다. 이들은 전혀 ‘현실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지 않기에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이를 보면 네그리와 하트는 베르그손이 비판했던 관념연합론자들의 사고와 비슷한 면이 많은 듯하다.) 아래 인용문들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점들이다. (도처에 산재해 있지만 분량 상 아주 일부만 인용한다.)

 

 

“부패는 언어적 소통 감각의 도착 속에서 나타난다.” (p495)

→ 언어적 소통 감각의 도착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까? 부패가 그런 속에서 나타난다니, 현실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가 없다. (물론 앞부분에 약간 부연되긴 하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사건 추이들이 자신들의 시간성을 가속화할 때, 제국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적 사건 추이들에 개입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워진다.” (p101)

→ ‘사건 추이들의 시간성을 가속화한다’는 말이 도대체 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더군다나 ‘예측할 수 없는 시간적 사건 추이들’에 개입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니. 예측할 수 없으니 당연히 개입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다.

 

 

"인본주의적인 주체성 원리에 의해 개방되었던 잠재성의 영역은 초월적인 규칙 및 질서의 부과에 의해 선척적으로 제한된다." (p124)

→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상징성과 비유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해가 불가능한 진술이라는 거.

 

 

“오늘날 역사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역사성만이 존재한다.” (p471)

→ 도대체 ‘역사성’이 역사와 어떻게 다른 개념인지 전혀 설명이 없다.

 

 

책 461 쪽에는 “소통적 에테르”란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을 보면 소통이 에테르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헌데, 이후 내용을 보면 저자들은 에테르를 소통으로 통용하고 있다. ‘에테르’가 무얼 의미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물론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이 책은 ‘이론화’를 위한 도구상자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기여하고 싶은 것은 제국을 이론화하기 위한 그리고 제국 안에서 제국에 대항하여 활동하기 위한 일반적인 틀과 개념들의 도구상자이다.(p21)” 그래서 현실의 시간을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실의 정치와 사회를 학제적으로 분석하려는 야심찬 의도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론을 위한 이론에 그친 점이 매우 아쉬운 지점이다.

 

 

[덧]

1. 사실, 알 수 없는 개념적 표현이 너무 많아 아주 일부분만 언급해 봤다. 이런 상징과 비유들이 엄청난 비문들과 섞이니 읽기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번역가가 사용하는 개념의 조어나 문장이 한국어의 문법을 완전히 초월해 있다. 그러다 보니 환상적인 보그-병신체의 괴작이 탄생한 듯하다.

2.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책의 타겟은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이 아닌지. 세계체제론은 낡았고, 이를 대체할 이론적 구상으로 ‘제국’을 설정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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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1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이 인용한 책의 문장만 봐도 내용이 어려워 보입니다. 개정판이 나와야겠어요. ^^;;

yamoo 2017-06-08 20:22   좋아요 0 | URL
개정판이 나오기 매우 힘들거 같아요. 이 책은 딱 읽을만한 수준의 데드라인을 충족시켜주는 책이라 개정되어도 별반 차이점이 없을 거 같아요. 단지, 각주만 자세히 달아줬으면 좋겠습니다~

oren 2017-05-3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저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yamoo 님 말씀마따나 ‘극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임엔 틀림없는 듯합니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저는 ‘극도의 철학‘을 언급한 몽테뉴의 말이 떠오릅니다. 물론 ‘뉘앙스‘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요.

* * *

극도의 철학

과녁 너머로 활을 쏘는 자는 화살이 과녁에 못 미치는 자와 똑같이 실패한다. 눈은 캄캄한 속으로 내려가는 때나 너무 밝은 빛 속에 나가는 때나 똑같이 혼란을 느낀다. 플라톤에 나오는 칼리클레스는 극도의 철학은 해롭다고 하며, 이익이 있는 정도를 넘어서 거기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철학을 절도 있게 대하면 유쾌하고 유익하지만, 마침내는 사람을 황당하고 악덕스럽게 만들고, 일반의 종교와 법률을 경멸하고, 사람들과의 교섭을 회피하며, 인간적인 해학을 적대시하고, 모든 정치적 사건의 처리나 남을 도와주는 일이나, 자기를 지키는 일도 불가능하게 되며, 빰을 얻어맞아도 대항 못하는 인간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옳다. 왜냐하면 철학이 과도하고 지나치게 풍부하면 우리의 타고난 자유를 속박하며, 배운 꾀가 탈이 되어서 오히려 자연이 우리에게 그어 준 좋고 탄탄한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yamoo 2017-06-08 20:26   좋아요 1 | URL
한국어 문법을 아주 우습게 초월하고 있어, 문맥을 이해하기 매우 힘듭니다. 물론 저자의 글 자체도 애매하고 이해하기 힘든데, 그걸 아주 이상한 문장으로 바꾸어 번역했으니 읽기 힘들지요. 인용해주신 극도의 철학과 뉘앙스가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읽힙니다. <제국>은 읽지 않는 게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stella.K 2017-05-31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야무님 보면 느끼는 거지만 참 존경스러워요. 저는 이런 책 리뷰 못하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쓰면 남는 게 있잖아요.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 어쩔 수 없이 리뷰를 해야 하는데 이벤트 도서라. 그림 많고 글 별로 없는 책이라 편하게 읽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남는 게 없어요. 뭘 갖고 리뷰를 해야할지 대략난감 입니다.ㅠ

yamoo 2017-06-08 20:29   좋아요 0 | URL
만약 리뷰도서로 이 책을 받았으면 참으로 난감해 했을 거라 사료됩니다. 1번 읽고는 이해하기 매우 힘들거든요~ 이런 책은 읽지 않고 리뷰를 쓰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더 로드>가 매우 리뷰쓰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리뷰써야 하는 도서로 받았다면 대략 난감해 했을 겁니다. 읽기는 편하게 읽고 매우 의미싱장하게 읽었습니다만...스텔라 님께서 느끼시는 그 지점을 저는 <더 로드>를 읽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읽었어도 리뷰를 못셨지요.ㅎ
 
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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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지난 주 토요일,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집어 든 책이 <해변빌라>. 독특한 제목에 끌린 것이 사실이다. 분량 작은 책을 찾고 있었기에 걸려들었을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었으니. 읽은 후에 참으로 이상한 책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흥미진진한 사건이나 그 흔한 갈등도 없는 밋밋한 내용에 많은 실망을 하고 말았다. 10여 년 전 읽었던 <엄마의 집>에 실망하여 더 이상 한국 문학 작품을 읽지 않게 된 기억이 새록새록 났기에.

 

 

더 이상 전경린 작가 작품을 읽지 않았던 이유는, 작가가 그리는 작품들 속 인물들이 하나 같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핍을 안고 있는 여성들로 그려지고, 그녀들이 사랑하는 방식은 언제나 위험하다. 처음에는 무도덕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작가에 매력을 느꼈지만, 언제나 결핍을 매우려는 사랑 타령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전경린 작가와 더불어 나의 한국 문학 읽기는 끝나버렸다.

 

 

물론 전경린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가독성은 있다.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문체는 꽤 치명적이니까. 그래서 꽤 많은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었더랬다. 이 소설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이상하게도 별 내용이 없기에, 작가는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좀처럼 읽지 않는 ‘작가의 말’ 부분을 읽어야 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해와 착각과 환상과 거짓과 허구와 진실의 충돌 사이에서, 타인의 이야기든 나의 이야기든 싫증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야기의 허무 위에서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급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223p)

 

 

하! 정황만 있을 뿐, 갈등도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니! 하지만 “허무 위에서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저 말로부터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을 처음 읽고 든 생각이 ‘부유(浮游)하는 인물들의 허무’였기에. 재독, 삼독 하면서 밑줄들은 늘어갔다. 하지만 이에 더해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내 생각의 편린도 같이 늘어가기만 했다.

 

 

2

 

 

“세포는 수생식물처럼 물 위에 떠 있단다. 생명은 유동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멈추어 있을 수 없어. 우리는 죽음에 너무나 익숙하고 동시에 재생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도 불안정한 것이다.” (p 25)

 

 

생물교사인 이사경이 즐겨 쓴 말인데, 어린 유지의 몸은 이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몸이 반응했을 정도로 이 말은 유지의 무의식 속에 각인됐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윤유지였다가 하루아침에 손유지가 된 그녀는, 이 충격으로 학창시절 줄곧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성장한 유지는 연인 오휘와 결혼하지 못하고 오휘 어머니의 훼방으로 헤어지게 된다. 이후 그녀는 이사경의 집에서 백주희의 손자인 아기를 돌보며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생활한다.

 

 

이사경과 친분이 있는 편 사장. 바닷가 폐해수욕장에서 ‘해변의 가능성’이라는 카페를 운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젊고 매력적인 해영을 연인으로 두고 있지만, 관계가 아슬아슬하다. 편 사장은 산 위의 알코올중독치료센터에서 내려온 진수를 거두어 카페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진수와 해영은 눈이 맞아 편 사장의 돈을 갖고 도망간다. 편 사장은 마음이 아프지만, 돈으로 해영을 붙들어 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이렇듯 바닷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유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더 가까워지지도 않았고 더 멀어지지도 않은 채 한결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유지와 고모부, 이사경과 유지, 유지와 이린, 이사경과 백주희 등은 ‘한결같은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다. 소설의 커플들은 이 관계보다 못하다. 유지와 오휘, 편 사장과 해영, 진수와 상희(알코올중독치료 센터 커플) 모두는 사랑에 실패한다. 패잔병처럼 바닷가 주위를 떠돌 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부유하는 관계를 보면서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많이 우울했다. 요즘 우리들은 수많은 모임과 일적으로 엮인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을 단 한 사람이 없어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우리 각자는 부유하는 삶으로 더욱 고독하게 된 듯하다.

 

 

결국 쓸쓸히 홀로 죽는 고독사가 우리들 삶의 종착역일까. 그래서 소설 속 유지가 떠올리는 노부인(이사경 어머니)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노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제 상대를 못 만나면 남자는 바람처럼 들판을 떠돌다가 덧없이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거다. 여자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흩어지는 거지……” (p 90)

 

 

3

 

 

작가 전경린은 단언하는 것 같다. 제 남자를 알아보고, 제 여자를 알아볼 줄 아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들은 모두 부유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소설 속에서 말하듯이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라면, 결국 우리는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고 삶의 수면 위를 빙빙 돌며 (……) 자신마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듯 초월적으로 떠 있(p 205)”게 된다고.

 

 

참으로 진부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종착역은 일부 예견되어 있다. 각자 부유하는 삶을 살다가 쓸쓸히 고독사 하는 것. 이를 막는 유일한 한 가지가 남녀의 사랑이라니, 어찌 진부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노부인의 말을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것 또한 진실이다. 그래, 늙고 실연을 당해도 서로를 알아 볼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작가는 슬쩍 마지막에 복사가게 노인과 신상희 그리고 유지와 연조의 관계를 설정해 놓은 듯하다. 늙었다고, 실연당했었다고 사랑할 능력을 잃은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실망스럽다. 참신하지 않아서다. ‘전경린식 사랑타령’의 새로운 버전처럼 느껴지기 때문.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으로 해영에 실연당한 편 사장의 입을 빌어 전경린이 전하는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돈다.

 

 

“그러면서 왜 사랑을 (계속) 하느냐고요? 말도 안 되는 사랑을 왜 하고 또 하느냐고요? 허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외에 무엇이 있지요? 먹는 것, 입는 것, 꿈도 없는 수면, 걷기, 살랑이는 바람, 햇살, 온갖 향기, 미소, 하지만 타인의 살갖을 파고드는 사랑보다 더 강렬한 행복감은 없어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 중독자이지요. 하지만 그 동작이야말로 삶에서 최고가 아닌가요? 그 외엔 아무리 미화해도 일과 온갖 관계와 생활이란, 그저 인생의 노동일 뿐이니까요.” (p 187)

 

 

그녀의 작가 의식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사랑이외의 모든 것은 ‘인생의 노동일 뿐’이라고 여전히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헬조선의) 현실을 도외시한 감상적 사랑타령으로 인생의 가치를 말한다는 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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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5-0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 님, 그동안 너무 격조하셨습니다.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

yamoo 2017-05-08 14:34   좋아요 0 | URL
네..좀 격조했습니다.^^; 탁구를 열나게 치느라 서재질을 거의 못했네요.ㅎ 덕분에 건강은 좋아졌습니다만 점차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 탁구를 그만 두기로 했슴돠~ㅎㅎ 무탈했다 봐야죠^^ 맞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oren 2017-05-0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 없는 기쁨과 놀라움이 앞서네요, yamoo 님이 이렇게 나타나시다니~

yamoo 2017-05-08 14:35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갑고 기쁘군요! 격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탁구도 그만뒀으니 종종 출몰하겠습니다.ㅎㅎ

cyrus 2017-05-0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

yamoo 2017-05-08 14:37   좋아요 0 | URL
저두 오랜만이어요. 탁구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네욤.ㅎㅎ
사이러스 님은 여전히 잘 지내시는 것 같아요. 종종 출몰하겠슴다~^^

stella.K 2017-05-0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리뷰를 쓰시다니...!
저완 아직 인연이 없는 작가이긴 하지만 전경린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문체의 독특함, 치명적인 뭐 그런 걸 제일로 치긴 하던데
어떤 작가든 전작을 하다보면 비슷한 구조나 패턴을 보이긴 하죠.
저는 읽지 않은 고전이 너무 많아 앞으로 전경린을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암튼 오랜만입니다. 뭐하며 지내십니까?^^

yamoo 2017-05-08 14:43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스텔라님^^
탁구치며 지냈어요. 탁구만치니시간가는줄 모르고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
그래서 다시 컴백했어욤^^

전경린 작가를 읽지 않으셨다면 ‘검은설탕이 녹는 동안‘ 한 권 읽어보세요.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스텔라 님에게 강추드려요~^^

수다맨 2017-06-10 0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0년대를 풍미했던 몇몇 여성 작가들(전경린, 신경숙 등)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자의식만 충만한,‘문장 세공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독성 강한 문장을 짓는 솜씨는 우수한데 그 이상의 역량과 재능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저만한 작가들에게 상을 안겨주고 문학적 거목으로 만들어준 그 당시(그리고 오늘)의 비평계도 문제가 얼마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yamoo 2017-06-11 21:25   좋아요 0 | URL
‘문장 세공사‘라는 멋진 표현을 배웁니다!^^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등의 저자들 작품들을 보면 ˝중독성 강한 문장을 짓는 솜씨는 우수한데 그 이상의 역량과 재능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하신 부분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문학은 비평계가 문제의 7할 이상은 제공했다고 여겨집니다. 어제와 오늘 바사니의 <금테안경>을 읽었는데...제가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읽을 수 없는 이유가 자명하더라구요. 필립 로스의 <에프리맨> 같은 책을 읽다가 김애란 작가의 책을 잡으면 그냥 던져버리게 됩니다. 시간은 짧고 좋은 책을 읽은 시간은 더더욱 짧으니까요.

좋은 댓글로 나눔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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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노트북이 3대다. 데스크 탑을 치우고 장만한 노트북. 10년 사이에 컴퓨터를 4대나 장만한 셈이다. 이상하게도 컴퓨터는 쓰면서 계속 고장이 났다. 고장의 원인은 웹상에서 유포되는 악성 파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부품 결함 때문이었다. 노트북을 산 후 약 2년 안에 보드나 램 또는 다른 장치에 이상이 생겨 수리를 반복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단종된 모델은 수리비가 매우 비쌌다. 저가 새 노트북을 구입하는 가격에 육박했다. 프린터도 마찬가지였다. 비싼 카트리지를 사 가며 써 봤지만, 이상하게도 1년에 2-3번은 수리 기사를 불러야 했다. 1달 동안 기사를 무려 3번이나 부른 적도 있다. 그러다가 결국 2년도 되지 않아 다른 기종으로 교체하게 된다.

 

잠을 잘 때 요긴하게 쓰는 담요의 경우 요즘 1만 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세탁비다. 담요를 세탁하는 요금이 1만원이다. 새 담요가 1만원이니, 세탁할 바에는 차라리 새 상품을 구입하게 된다. 그렇게 내다 버린 담요만도 서너 장은 된다. 휴대폰의 경우 2년 이상 쓰면 모델이 단종 된다. 그러면 액정 하나만 수리해도 10만 원을 가뿐히 넘는다.

 

옷은 말할 것도 없다. 멀쩡한 티셔츠나 면바지 또는 청바지를 수도 없이 헌 옷 상자에 담아 버렸다. 유니클로 같은 저가 브랜드에 가면 티셔츠 한 장에 5천 원 뿐이 안한다. 바지 역시 마찬가지. 유행에 맞게 이것저것 사다보면 옷이 사정없이 늘어나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정리해서 버리게 된다.

 

정말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30여 년 전만해도 가전제품은 완전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버리지 않았고, 옷 또한 헤질 정도로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쳐 쓰거나 입지 않는다. 수리하는 곳도 없거니와, 수리비가 새 상품 가격을 넘은 경우도 많다. 대개 버리고 새 상품을 사는 순환을 반복한다.

 

도대체 요즘 가전제품의 수명은 왜 이리 짧은 것이며, 고장은 왜 이리 잘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서 <낭비사회를 넘어서>(민음사, 2014)라는 얇은 책을 만났다. 사실 ‘낭비사회’의 원인이 궁금해서 책을 찾던 중 우연히 눈에 띈 책이다. 다소 생소한 프랑스 학자였는데, 주제 또한 매우 생소했다.

 

페이지를 넘겨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계획적 진부화’라는 학술 용어가 튀어 나왔다. 헌데 저자인 세르주 라투슈가 겪은 경험이 나와 거의 비슷하여 책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알려주는 ‘계획적 진부화’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린터나 만년필이 2년을 넘을 수 없게 제조회사가 계획적으로 그리 만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책의 중심 주제인 ‘계획적 진부화’는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작자가 상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특수한 장치 등을 이용해 미리 수명을 제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린터를 제작할 때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을 삽입한다든지,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나자마자 고장이 나도록 기계를 설계하는 식이다." (p 34)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을 비비고 두세 번 거듭 읽어야 했다. 거짓말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뒤로 갈수록 그 놀라운 실체를 보니, ‘설마가 사람을 잡는’ 꼴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예견된 일이었는데,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이를 간파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를 지속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체제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생산된 상품의 소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전제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바로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발생한다. 우리가 목도했던 ‘그리스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패닉 상태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는 광고라는 매개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을 소비하게 한다.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쌓여도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굴러간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 왔다.

 

 “소비 사회는 성장 사회의 종착점이다. 성장 사회는 성장하기 위해 성장하는 사회다. (……) 생산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무제한적으로 부추겨야 하며, 새로운 욕망을 무제한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종국에는 오염과 쓰레기가 늘어나 지구 생태계가 파괴된다." (pp 16~17)

 

‘계획적 진부화’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지구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계획적 진부화’와 ‘지구환경 파괴’는 인과관계로 확고하게 연결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전혀 눈치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평균 18개월 정도 사용되고 버려지는 휴대 전화는 비소, 안티몬, 베릴륨, 카드뮴, 납, 니켈, 아연 등 생물체에 유해한 다량의 독소를 포함한 쓰레기 더미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들을 소각한다는 것은 다이옥신과 푸란, 그 밖의 오염물질을 대기 중으로 뿜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2002년 여전히 작동 가능한 휴대전화 1억 3000만 대가 폐기 처분됐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p 99)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추세가 더욱 심해진다니. 그런데 ‘계획적 진부화’의 문제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또 하나의 엄청난 재앙에 직면해 있다. 이 현상은 ‘사회적 문제’라기 보다는 재앙에 가깝다. 학문적으로 아직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아닌 듯하다.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문제다. 소위 인권의 본질(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가치하락.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근원적 이유가 바로 ‘계획적 진부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아직 ‘인권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탐구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행한바 있다. 그는 (‘계획적 진부화’로 인한) 낭비 사회를 ‘쓰레기가 되는 삶’이라고 명명했다. 바우만의 논의를 따라가면 결국 비정규직의 삶이 곧 쓰레기가 되는 삶의 시초다. 세르주 라투슈는 이에 대해 “결국 계획적 진부화가 진행되면서 윤리 자체도 진부화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인간 역시 진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귀결이다.

 

 “이른바 ‘발전된’ 사회는 쇠퇴를 대량 생산한다. 다시 말해 가치의 상실, 상품을 넘어 인간까지 포함하는 일반화된 퇴락을 양산한다. ‘일회용’ 제품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상품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인간은 소외되거나 사용 후 해고된다. 실업자, 노숙자, 부랑자, 그 외 각종 ‘인간쓰레기’에서부터 최고 경영자와 관리자들까지 예외는 없다.” (p 86)

 

현재 전 세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고 유통기한이 정해진 부품처럼 취급하는 근원적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바우만이 지적한 ‘쓰레기가 되는 삶’의 근원적 주범이 바로 ‘계획적 진부화’였던 것이다. ‘계획적 진부화’가 가속화되면,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이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우리가 장님, 귀머거리, 병신, 기형아 등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윤리적 진부화‘는 부지불식간에 우리 삶에 들어와 ‘인권 의식’ 자체를 마비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재앙이다.

 

작금에 대두하고 있는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협적이다. 비정규직 차별은 정말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예방 법규가 구비되지 않으면, 국민의 인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은 ‘차별 금지’와 ‘노예제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들은 현실을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하다. 규정과 현실의 갭이 너무도 크다. ‘노예’에 대한 새로운 표현이 요구된다. ‘계획적 진부화’에 의해 쓰레기로 전락하는 층을 산업사회의 새로운 ‘노예 층’으로 포섭하는 규정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권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매우 얇다. 144쪽 분량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가히 치명적이다. ‘계획적 진부화’와 ‘환경 파괴’ 그리고 ‘인간의 진부화’로 이어지는 인과의 고리는 너무도 확고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책이 아니면,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실 환경문제는 인식하지 않으면 좀처럼 실천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쉽다. 공정무역 상품 구입하기, 1회용품 쓰지 않기, 친환경 물품 구입하기 등은 실천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들도 많다. 하지만 환경 파괴의 근본적 원인이 ‘계획적 진부화’라는 사실과 이로 인해 인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책을 통해 이러한 보이지 않는 근원적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독서는 없을 것이다. 뭐든지 알아야 실천이건 뭐건 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치는 실로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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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0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 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왜 그동안 이리 뜸하셨슴꽈...
하여튼..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마니 받으십시요..

yamoo 2017-01-13 19:40   좋아요 0 | URL
주로 다른 데에서 놀아서뤼...^^;;
요즘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관계로 알라딘 서재는 뜸했습니다.
여튼 저도 반갑습니다..ㅎㅎ 곰발 님 서재 간만에 방문해 보니, 닥그네를 끊임없이 씹는 그 엄청난 페이퍼들을 봤습니다.ㅎ 정말 대단하신 거 같다는!! 그 정도로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까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죠. 필력이 더해 더 신랄한 거 같습니다!!!

곰발 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mor fati~

cyrus 2017-01-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했지만, 저자가 제시한 일상적으로 실천 가능한 대안을 따르기가 망설였어요. 공감보다는 실천이 중요한데, 저는 실천을 시작하기 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맙니다. ^^;;

yamoo 2017-01-13 19:41   좋아요 0 | URL
저두 오랜 말이 뵈어요~~ㅎ
그쵸, 공감보다 실천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감하지 않으면 실천도 없지요. 실천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

사이러스 님두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7-01-0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시죠?
새해 복도 많이 받고 계시고 있죠?
올해도 변함없이 빕게되길 바랍니다.^^

yamoo 2017-01-13 19:48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반갑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재밌게 놀다보니, 알라딘 서재에는 뜸했네요.ㅎ

스텔라 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올 해에는 알라딘 서재 활동을 최소한으로만 할 거 같아요. 다른 곳이 워낙 재밌어서 말이쥐요..^^;;

감은빛 2017-0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든 오래 쓰는 편이예요.

지금도 가끔 쓰는 데스크톱은 거의 20년이 다 된 놈인데,
좀 느리긴 해도 아직 쓸만합니다.
노트북은 3년쯤 되었는데,
열었다 폈다 하는 이음새 한 쪽이 벌어진 걸 빼면,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요.
아마도 앞으로 5~6년은 문제없이 쓸 것 같아요.

이불은 대부분 10년 이상 된 놈들이고,
옷도 한 번 사면 어딘가 튿어지거나 구멍날 때까지 입어요.
지금 입는 옷 중에는 15년 이상 된 옷들도 좀 있어요.

그런데 휴대폰은 정말 3년 이상 못 쓰겠더라구요.
2년만 넘으면 꼭 어딘가 이상이 생기더군요.

yamoo 2017-01-13 19:5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감은빛 님!

감은빛 님은 요즘 사람 같이 않게 느리게 사는 기술을 잘 터득하신 거 같습니다. 저도 최소한의 물건들로, 그 물건들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습니다요~ㅎ

휴대폰은 약정 넘으면 바꿔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약정 넘어 고장나면 수리비가 정말 장난 아니거든요~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보슬비 2017-01-0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대한 오래 사용할수 없으니 불편하더라도 많이 소유하지않려 노력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오셔서 반가웠습니다.

새해에 안보이는 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더 반갑네요.^^

yamoo 2017-01-13 19: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보슬비 님! 오랜만입니다~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많이 경악했더랬습니다. ㅎ 적게 소유하고 최소한의 사물로, 그 사물들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습니다.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어느 가요 평론가가 말했다죠. '희대의 노래'라고.

 

무려 30년도 훌쩍 뛰어넘은 1979년 곡입니다. 오래됐지요. 하지만 '윤시내'하면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겁니다. 1980년대 후반, 돌연 TV가요프로 그램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윤시내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였습니다.

 

지금은 잊혀져 버린 가수지요. 하지만 윤시내 씨는 자신이 경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아직도 열정적으로 라이브 무대에 서서 지난 곡들과 신곡들을 선보이고 있답니다. 새 음반도 낸다고 하더이다. 지난 2014년 '7080콘서트' 무대에도 섰었죠. 이제는 나이 때문에 젊은 시절처럼 고음 처리가 잘 안 되는 듯하여 좀 안된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제겐 '윤시내' 하면, '이상한(?)' 가수라는 선입견이 많이 작용합니다. 그도그럴것이 어릴 때 보는 이 가수의 모습은 굉장히 기괴했거든요. 가창력은 뛰어난 거 같은데, 아방한 옷차림은 약간 무섭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으으~'하는 추임새는 뭐랄까 약간 무당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어린 느낌에요.ㅎㅎ

 

근데, 요새 80-90년대 가요를 들으면서 윤시내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됐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당시 윤시내가 무대에서 보여줬던 포퍼먼스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습니다.

 

유투브로 '가요톱10'이나 당시 강변가요제 등의 동영상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게 있습니다. 그 많은 기라성 같은 가수 중에서 윤시내에 필적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가수는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이선희, 조용필, 나훈아...이런 가수와는 완전히 뭔가가 달랐지요. 대표곡 <열애>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니 한 번 들어 보시죠.

 

 

이동원, 장혜리, 양수경, 신해철, 남궁옥분, 김학래, 이현우, 김승덕, 신승훈, 이승철, 이선희, 조용필 등등 80년대 가요톱텐을 수놓은 1위곡들이나 강변가요제 인기곡 위주로...그러니까 80년대를 대표했던 곡들을 들으면서 윤시내의 <열애>를 같이 들었죠.

 

들으면서 참으로 이 당시 노래가 좋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곡마다 가수 개개인의 고유한 음색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이때가 진정 한국 가요의 르네상스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즘 노래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더군요~ '7080콘서트'가 인기 있는 이유가 다 있었던 거였습니다. (나만 몰랐나...--;;)

 

어쨌든....여러 가수 중 듣게된 윤시내의 <열애>. 뭐랄까, 비주얼부터 완전히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다른 가수들과 완전히 구별됩니다. 이건 뭐, 가사의 의미를 목소리와 몸으로 표현하는 듯. 어떤 분들은 윤시내가 노래에 혼을 담든다고 하던데, 빈말이 아님을 느낍니다. 제가 어렸을 때 윤시내 씨를 무당같다고 느낀 바로 그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니, 소름이 돋네요~

 

요즘 명곡 리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윤시내 씨의 이 곡이 후배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다는 것도 유투부에서 확인했습니다. 남자 가수든 여자 가수든 전부 윤시내 씨에 못미치더군요. 이선희 씨가 24살에 이 곡을 부른 영상이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낫더군요. 하지만 가사의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열창에 지나지 않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뭐, 24살에 이 노래를 소화했다는 자체가 대단하긴 했지요.

 

<열애>는 사연있는 노래 입니다. 이 가사, 다시 한번 전문을 인용해 봅니다.

 

열애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싸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리

우우우~~~~

 

이 가사의 사연인 즉슨 이렇습니다. 이 시는 부산 MBC 음악PD 배경모 씨가 암투명 중에 쓴 것입니다.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는 아내의 모습이 안스럽고 고마워서 이 시를 쓰게 됐답니다. 아내의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서 말이지요. 절절한 내용에 아내 분이 울었다지요. 헌데 남편인 배경모 씨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미망인은 이 시를 남편의 절친이었던 작곡가 최종혁 씨에게 보냈고, 최종혁은 이 시에다가 드라마틱한 곡을 붙입니다. 노래 <열애>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고, 운명적으로 윤시내 씨가 부르게 됩니다.

 

이 곡은 1979년 TBC 국제가요제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이 곡은 본선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가수 '윤시내'를 전국에 알리게 됩니다. <열애>는 매우 드라마틱한 곡이고, 남편이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주는 사랑의 고백이라 그 사랑의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기가 힘든 곡이죠.  이러저런 사랑이 아니라 '이 생명 다하도록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사랑'이니 말입니다.

 

감정을 절제할 때 절제하고 폭발할 때 제대로 폭발해 주는 클라이 막스. 곡의 기서결이 아주 잘 짜여져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이런 곡들은 주로 고딕 메탈에서나 들을 수 있는데 말이죠. 우리 가요에서 윤시내의 <열애>이전에는 이런 곡이 전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제 기억에요.

 

이 완성도 높은 가사와 곡은 윤시내의 독특하고 아방한 퍼포먼스를 만나 '불멸이 곡'이 됩니다. 윤시내 씨의 음색과 퍼포먼스가  화룡점정이 되었던 것이죠. 반복해서 들어도 79년도 노래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 가요계가 윤시내라는 가수를 가졌다는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희 씨나 전영록 씨 못지 않은 가수인데,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가수 같아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습니다. 새롭게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가수인데 말이죠.

 

(참고로, 윤시내 씨는 80년부터 84년까지 5년 연속으로  MBC10대 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잠적했지요.)

 

 

 

수상 경력(위키 피디아)

 

[덧]

일명 AOR이라는 노래를 찾아 미친듯이 듣다보니, 윤시내가 그저 그런 가수가 아닌 거 같아 페이퍼까지 쓰게 됐네요. 아우라가 있는 가수는 많지 않은데 말이죠. 윤시내의 <열애>는 참으로 대단한 곡인거 같습니다. 네, 정말 반복해 들어도 그렇네요.^^;;

응팔 ost와 함께 흘러간 노래를 들으니 책도 장만해 놔야 할 거 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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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0-05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윤시내라는 가수를 처음 TV에서 보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 노래할때 제스쳐도 특이하고요 (특히, 공부합시다인가? 그 노래 부를때 제스쳐 생각나시는지요) 그러다가 이 노래 때문에 그냥 팍 빠져버렸지요. 최종혁 작곡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가사에 얽힌 사연은 모르고 있었네요.

yamoo 2016-10-12 22:13   좋아요 0 | URL
흠, 그러셨군요^^ 윤시내 씨는 첨 보면 좋아하기 힘든 가수죠. 제 어머니는 엔날 가주 중에서 윤시내를 젤루 싫어하십니다. --;;

하지만 노래부르면서 하는 포머먼스는 가히 최고였던 거 같아요. 지금 다시 보고 들으니, 윤시내 씨는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듯해요.

공부합시다...DJ에게..제스처 죽이죠~^^

yureka01 2016-10-05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창력이 대단한 가수였지요....태워도 태워도...^^.

yamoo 2016-10-12 22:15   좋아요 0 | URL
넵,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무대 퍼포먼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 같아요.ㅎ

열애를 부르는 윤시내와 공부합시다를 부르는 윤시내가 같은 가수였다는 걸 알았을 때는, 조용필 이후로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지욤^^;;

곰곰생각하는발 2016-10-0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아. 걸크러쉬네요.. 제가 걸클러쉬의 원조는 김추자 ! ㅎㅎㅎ 진짜 시대를 앞선 분이십니다..

yamoo 2016-10-12 22:26   좋아요 0 | URL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원츄~~~ㅎ

시대를 앞 서간 가수들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ㅎ

근데, 이건 딴 건데....이치현과 벗님들의 그 이치현이 60이 넘었다네요~ㅎ 옛날 그대로, 하나두 안 늙었더라구요..ㅎ

붉은돼지 2016-10-05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시내 열애 당연히 알죠 ㅎㅎ
특이한 음색에 조금은 기괴한 몸동작
열애를 열창할 때는 정말 자신을 태워 불꽃을 피우려는 듯....

yamoo 2016-10-12 22:35   좋아요 1 | URL
돼지님 역시 아시네요~ㅎ
특이한 음색에 기괴한 몸동작...윤시내의 트레이드 마크인거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stella.K 2016-10-05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 앞선 가수긴 하죠.
90년 대만 했어도 앞섰다는 생각 안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열애는 나이들어 들으면 더 절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던 고 이태석 신부가 좋아했던 곡이라고 하더군요.ㅠ

yamoo 2016-10-12 22:37   좋아요 1 | URL
그쵸, 79년도 이전에 데뷔했으니까요.ㅎ 80년대 윤시내 이후 드라마틱한 곡이 쏟아졌다고 하네요..ㅎㅎ

아, 근데...애태석 신부가 좋아했던 곡이라니...새로운 정보입니다! 이태석 신부 다큐를 선재 아트에서 본 게 엊그제 같네요~

oren 2016-10-05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어제 저녁에 동네 중식당에서 저녁 겸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나서 차에 올라탄 후 (마침 외박을 나온, 운전병 의경 아들이 대리 운전^^)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통해 이 음악을 생방으로 들었었죠.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된 이 노래의 감동에 휩싸여 집에 오자 말자 인터넷으로 `가사`까지 다시 찾아보며 찬찬히 `열애`를 음미해 보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봤는데, 알라딘에서 이런 페이퍼를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요. 문득문득 까마득히 지나간 옛 시절의 추억들을 불쑥불쑥 떠올리게 하는 잘 읽었습니다^^

yamoo 2016-10-12 22:46   좋아요 1 | URL
와~~~ 이런 우연이라니!!

제가 포스팅을 제때에 했네요^^ 정말 가사 좋더라구요.

근데, 오렌 님...좋은 시간 보내신거 같네욤^^

수다맨 2016-10-05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미사리에 라이브 카페가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현재 미사리엔 송창식의 `쏭아`와 윤시내의 `열애`, 이렇게 두 곳의 라이브 카페만 남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가수는 흔치 않다고 봅니다. 가창력이 탁월하거나, 무대 매너와 쇼맨십이 탁발한 분이야 많겠습니다만 이만한 개성과 마성을 가진 가수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yamoo 2016-10-12 22:55   좋아요 1 | URL
우왕~ 제 서재에서 수다맨 님의 댓글을 보네요^^

미사리에 그 많던 카페가 2개뿐이 안 남았다니, 놀랍네요. 그 두 사람이 송창식과 윤시내라니!!

저도 격하게 동감합니다~!

쉽싸리 2016-10-05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우연찮게 보고 이 누님? 참 멋지게 지내시는구나 생각했드랬죠. `목마른 계절`이란 노래가 있는데 의상과 화장과 춤과 노래가 절묘합디다.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어요. 콘서트 7080엔 그래도 자주 나오나 봅니다. 올 해도 나왔죠. 기성가수들 티브에서 보려면 이 프로그램하고 가요무대밖에 없죠.
열애는 몇 년전 돌아가신 김추련이란 분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가 어렴풋이 생각나네요.

yamoo 2016-10-12 23:01   좋아요 1 | URL
왓! 쉽싸리 님이시네요^^ 잘 시내셨는지요..

목마른 계절...물론 잘 알지요.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윤시내와 DJ에게를 부르는 윤시내 그리고 열애를 부르는 윤시내가 같은 가수라니, 말입니다!ㅎ 참 스펙트럼이 넓은 분인거 같아요.

근데, 가요무대하고 7080은 나오는 가수가 많이 다른 듯합니다. 가요무대는 60대에 맞춰서인지 7080 가수들이 거의 안 나오더라구욤..ㅎ

오, 그런 영화가 있었다니, 찾아 봐야 겠네요..

어쨌거나 넘 반갑습니다!^^

elenaji 2019-01-1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윤시내님 참 좋아합니다 ㅎ 공부합시다 뮤비보면 가사도 화면도 모두 정겨워요 ㅎ
김추자님의 창법도 너무 좋아하고 나미의 빙글빙글때 그 의상들은 후덜덜이에요 참고로 전 80년생 ^^
 

 

 

아, 진짜 이런 글 안 쓰고 싶었다. 지난 번 페이퍼에 이달의 당선작 문제를 어렵게 짚어 보았기에, 알라딘이 신경을 좀 써 줄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나 보다. 9월 당선작을 보면서 ‘이건 뭐지?’라는 당선작들이 대거 등장했기에.

 

 

지난 번에도 분량 얘기를 했었는데, 점점 당선작 리뷰 분량이 줄어드는 듯싶다. 내용 요약하는 게 과연 좋은 글인지,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려면 다음처럼 쓰면 될 듯싶다.

 

 

먼저 가장 최근에 나온 핫한 책을 읽는다. 읽고 삼박하게 책 내용을 요약한 후(네이버 책 소개건 뭐든 상관 없다.) 책에 있는 몇 문장 인용한다. 그리고 자기 감상을 몇 줄 부가한다. 분량은 A4 1장을 채워도 되고 약간 넘겨도 된다. 신간이니까. 아무렴~

 

 

퀄러티? 퀄러티를 판단하는 건 무관하다. 내용 요약 들어있겠다, 중요 문구 있겠다, 읽은 이의 감상까지(이 책 좋아요~!) 덧붙여 있으니 말이다. 리뷰가 갖추어야 할 기본은 되니, 신작 소개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신간에 대한 노출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알라딘 당선작이다. 어느 정도의 분량은 기본이다. A4 한 장으로 책의 내용을 절묘하게 담아내어 그 책의 가치를 드러내는 리뷰라면 분량이 무슨 문제일까. 하지만 현재 당선작들은 이런 글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분량이 필요하다.

 

 

알라딘 리뷰 당선작에 매번 오르는 사이러스 님, 시이소오 님, 다락방 님, 헤르메스 님의 리뷰는 기본적으로 A4 3~4장 분량이다. 한데 9월 당선작 중 일부는 A4 1장 정도밖에 안 된다. 적은 분량으로 당선된 분들을 열거해 보면 아래와 같다.

 

 

중동이 님의 리뷰...A4 1장. 약 1800자

세실 님의 리뷰...A4 1장. 약 1800자

드림모노로그 님의 리뷰 ...A4 1장 약2000자

고귀한 수영이 님의 리뷰...A4 1장 미만. 약 1600자

오쌩 님의 리뷰...A4 1장. 약 1700자

앤드류 대디 님의 리뷰...A4 2/3장. 약 1100자

사랑지기 님의 리뷰...A4 3/4장. 약 1400자

고양이라디오 님의 리뷰...A4 1/2장. 약1000자

 

 

8월 당선작 25편 중 무려 8편이 적은 분량으로 당선작이 됐다. A4 1장 분량밖에 안 된다. 그 압권은 고양이라디오 님의 리뷰다. 1000자도 안 된다. 고양이라디오 님의 무수한 좋은 리뷰 중 왜 하필 이 리뷰를 당선작으로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매우 죄송한 말이지만, 이 리뷰는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책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그냥 느낌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양이라디오 님이 쓴 다른 리뷰에 비해 이 리뷰는 당선작으로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라디오 님도 의아할 듯하다. (다른 좋은 리뷰 놔두고 왜 이 리뷰를 당선작으로 했는지..)

 

 

앤드류대디 님, 사랑지기 님의 리뷰 역시 마찬가지로 A4 1장이 안 된다. 왜 이런 짧은 리뷰가 당선작이 되는 걸까? 아주 놀라운 사실은 앤드류대디 님이 <숨결이 바람이 될 때>를 읽고 작성한 리뷰에 있다. 이 리뷰는 책 내용에 근거해 추천하는 게 아니라 막연한 인상을 통해 책을 추천하고 있다. 그 흔한 인용조차 없다. 더군다나 문장도 비문이 많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책 정보를 훑어 보는 게 이 리뷰를 보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 이 책에 대한 리뷰가 8월에 27편이었다. 앤디류대디 님의 리뷰보다 훨씬 성실하고 알찬 리뷰가 대여섯 개는 되었다. 그 중에서 카일라스 님, 은솔 님, 가고파 님의 리뷰가 눈에 띄었다.

 

 

알라딘 당선작 선정 위원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앤드류대디 님의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는지 묻고 싶다. 왜 카일라스 님, 은솔 님, 가고파 님의 리뷰는 앤드류대디 님의 리뷰에 밀렸나? 만연체로 안 써서? 강력 추천을 안 해서?

 

 

분량상으로 보나 내용의 충실도로 보나 이 책에 대한 당선작을 선정한다면 이 세 리뷰 중 하나가 선정돼야 한다. 죄송하지만 앤드류대디 님의 리뷰는 평타 이하다. 알라딘에 걸려있는 책소개(정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보다 못하다. 죽음에 대한 어떤 참신한 생각도 엿볼 수 없다.

 

 

고양이라디오 님의 리뷰 역시 문제가 있다고 위에서 언급했다. 내가 전에 리뷰 문제제기 할 때 리뷰가 하나 있는 걸 당선작으로 선정할 시 분량과 내용을 좀 더 꼼꼼히 봐 달라고 요청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런 선정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무시 당하는 더러운 기분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제기한다. 왜 앤드류대디 님의 글이 이달의 당선작이 됐는지 답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카일라스 님, 은솔 님, 가고파 님의 리뷰와 비교해서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시라! 그리고 고양이 라디오 님의 리뷰가 제일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이 된 이유도 해명해 달라!

 

 

선정위원회의 잘못된 당선작 추천으로 인해 보다 좋은 리뷰를 쓰는 분들에게 돌아갔어야 마땅할 장려금이 엄한 데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부당한 조치(성차별 같은 문제)나 잘못된 평가(예컨대 신경숙 문제)는 쌍심지를 켜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알라딘 당선작의 부당한 문제점은 왜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 뻔히 보이는데 말이다.

 

 

내가 왜 이 지랄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을 거다. 거기에 대한 답변이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알라딘이 한 달 주기로 당선작을 내 주는 것은 내게 정말 유익한 정보다. 나같은 경우는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온 책을 위주로 신간을 구경하기 때문이다. 좋은 리뷰를 써주시는 많은 분들로 인해 신간 책들 중 읽을 만한 책들을 추릴 수 있어서다.

 

 

헌데 내가 애용하는 그 보고가 그저 그런 리뷰로 넘친다?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는 거다. 생각해 보시라, 나 같은 넘이 안 짖을 수 있는지. 자주 짖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아 근데 진짜로, 담달의 당선작이 A4 한페이지도 안 된 글이 보이면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겠다. 진짜다! 강도 높게 비판할 거다!

 

[덧]

내가 알라딘에 개무시 당하는 것 같아, 좀 거시기 하지만 리뷰 쓴 분들을 실명으로 거론해 봤다. 헌데 당선작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어서 굳이 가명으로 비판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냥 정의를 위해 분노한 것이라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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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들을 내리깐다고 우뚝 서는게 아니라는 걸 깨닫다
    from Insure safety distance 2016-09-12 14:24 
    요즘 힙합이 대세란다.그동안 난 힙합에 대해서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몸에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바지는 똥싼 바지를 입어줘야 하며, 머리엔 스냅백을 써주는데,그걸로 끝이 아니고 '힙합 뮤지션이 잘난 척을 하거나 으스대는 걸 가리키는 swag'을 구사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스웩(swag)이라는 것이 힙합에 관해 일자 무식인 내가 보기엔,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다른 사람들을 디스(dis)하는 것처럼 보여 완전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yureka01 2016-09-1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작이런거에 크게 신경써본적은 없었는데요..이렇게 문제제기에 있어서 읽어 보니 당선의 기준이 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yamoo 2016-09-12 21:08   좋아요 0 | URL
당선작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면 그 기준이 정말 궁금해 집니다. 유레카 님두 당선작들에 관심을 갖고 보세요. 당선작을 보면 신간에 대한 좋은 책들을 추릴 수 있어 좋습니다.

아무 2016-09-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달의 당선작 선정위원회(?) 모집한다는 공지를 본 적이 있어요. 그걸 토대로 추측해보면 알라딘 회원 중 선정위원회에 뽑힌 분들이 `좋아요`를 누른 걸 통계로 내는 듯합니다. 그러면 분량은 중요한 기준이 안 될테고 당연히 신작 중심으로 당선작이 모이겠죠 아마.. 그동안 성실하게 써왔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yamoo 2016-09-12 21:20   좋아요 0 | URL
좋아요가 적어도 선정되는 리뷰가 있어요. `좋아요`를 많이 받아도 선정 안 되는 분들도 많아요~

불편한 글로 인해 알라딘 당선작이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별족 2016-09-1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북플에서 보기에는 A4 한장도 충분히 길다는 생각이^^

yamoo 2016-09-12 21:20   좋아요 0 | URL
북플의 영향이 상당한 듯합니다. 그럼 100자평에 대한 당선작도 심각히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하지만 항상 정당한 질문을 던져주시는 야무 님이십니다. 선정 기준이 모호하죠.. 선정 기준을 못박으면 이런 의문도 생기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yamoo 2016-09-12 21:25   좋아요 0 | URL
이 불편한 글을 정당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몇 이나 될지 몰겠습니다. 불편해요, 유감이에요, 너무했어요....이런 비난들...제게 쏟아진다해도 괜찮습니다. 알라딘 당선작들이 좀더 좋은 글들로 채워진다면 뭔 상관이겠습니까. 분량이 작아도 곰발 님이나 falstaff 님 정도의 리뷰들이 많아져 꾸준히 당선으로 채워진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요!

stella.K 2016-09-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쯤되면 알라딘 운영진측에서 뭔가의 해명이 필요할 듯한데
언제까지 침묵하려는지 모르겠어요.
해택을 여러 사람이 골고루 나눠야 할 텐데 고르지가 못해요.
저는 글도 만연체로 쓰고, 추천도 높은 편인데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솔직히 되면 정말 되야할 사람이 나 때문에 안 된 건 아닐까 미안하고,
안 되면 내 글이 어디가 어때서 그런 생각이 들고,
계속되는 사람은 열열히 되고, 뭐 이런 기형적 당선제도가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이러고 저러고 알라딘에 꾸준히 많이 글을 올리는 사람이 당선이 되야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야무님의 문제 제기 적극 지지합니다!!!!

yamoo 2016-09-12 21:26   좋아요 0 | URL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불편한 페이퍼로 인해 당선작들이 좋은 글로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별족 2016-09-1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당선작은 이달의 당선작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는 거니 운영진보다 위원이신 알라디너 분들이 댓글 달아 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어느 정도 아시지 않나요?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니, 그런 다른 좋아요,의 기준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거 같구요. 선정기준,을 못 박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문예창작과에, 당선작 쓰는 법을 가르친다는 헛소문에도 귀가 팔랑거리는 축이라, 이런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게다가 글,이란 것에 못박을 수 있는 선정기준이 뭐가 있을까 싶어요.

yamoo 2016-09-12 21:28   좋아요 0 | URL
선정 기준을 안 밝혀도 남득할 수 있을 정도의 글이 꾸준히 당선작을 채운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제 글에 많은 비난이 있더라도, 그로인해 당선작이 향상된다면 전 소기의 목적을 다해, 매우 고무적일 것입니다!^^

별족 2016-09-13 07:17   좋아요 0 | URL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정하기 위해 늘 같은 사람의 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할까요? 글의 수준을 높여 초보자의 진입이 어려운 것은 바람직할까요?

22c 2016-09-1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운영진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한명이 글 남깁니다.

제가 좀 황당해서요.

분량이 무슨 말인가요. 앤드류대디님의 리뷰 읽고 책 구매했습니다. 근래에 책 사게 만든 글은 그 리뷰가 유일합니다. 막연한 인상이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저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왜 그렇게 인용해가면서 A4 3-4장 분량을 쓰는지.. 물론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리뷰가 될 수 있겠지요. 리뷰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저 같은 사람은 책 요약한 리뷰가 질색입니다. 문학을 요약하려는 그 시도라니!)

적어도 예의는 갖춰주시기를.

yamoo 2016-09-12 21:32   좋아요 0 | URL
뭐, 님같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겠죠. 좋은 리뷰는 책 요약한 게 아닙니다. 작은 분량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지요. falstaff님의 리뷰를 아무 거나 하나 읽어보시면 어느 정도 제가 말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문학을 요약하는 리뷰가 좋은 리뷰라고 말 한 적 없어요. 앤드류 님의 리뷰는 그 인상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예의는...뭘 말씀하시는 건지...텍스트에 대한 비판과 리뷰 글에 대한 비판을 한 건대....제가 인신공격 한 것이 있나요??

다락방 2016-09-12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야무님. 이 글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선작에 적립금이 걸린 만큼 선정 기준을 알고 싶고 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누군가의 글은 부족하다고 지명하시다니요. 제가 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일단 저는 분량이 적다고 당선작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요, 짧아도 충분히 내공있는 글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의 조건에 `반드시 긴 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오히려 너무 길면 가독성이 떨어져서 중간에 읽다 말기도 하지요.

지난번에도 다른 분과 함께 `선정작들에 문제가 많다, 당선작이 당선작답지 못하다` 글 쓰셨을 때도 사실 불편했었습니다. 문제 제기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누군가로부터 글을 못쓰는데 뽑혔다는 비난을 받게 됐으니까요. 당선작에 뽑혀본 적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저마다 `내 얘기 하는건가?` 했을 겁니다. 그런 식의 저격글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글은 숫제 그냥 빵- 하고 쏴버리셨네요.


알라딘 당선작에 대한 문제제기를 꼭 이렇게 하셔야 했는지 유감입니다.

yamoo 2016-09-12 21:35   좋아요 0 | URL
아....지나치다는 그 느낌...저도 인정합니다. 다락방 님께서 유감이라니, 저도 좀 거시기 합니다..하지만 제 불편한 글로 인해 알라딘 당선작이 좋은 글들로 채워진다면 제게 비난이 쇄도한다 해도 전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관점을 바꿔서 그 못쓴 글을 선정한 위원단의 책임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비판한 님들이 망신을 당한 것이라면, 그런 글을 선정한 위원단도 다락방 님의 유감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cyrus 2016-09-1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이 언급하신 분들 중 몇 분은 저와 알고 지내는 분이라서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알라딘 당선작 선정 문제를 `글의 수준`까지 언급하면서 논의되면 회원 간의 갈등이 커지고, 적절한 타협안을 찾기가 힘듭니다.

제가 몇 달 동안 글을 쓰면서 A4 용지 3장 이상은 넘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항상 한글 워드로 작성하는데요, 많이 써봤자 2장 채우고, 대부분은 1장 반 분량입니다. 별족님 말씀처럼 1장 채우는 분량도 북플에서 보면 길게 느껴져요. 그래서 저도 최대한 글의 분량을 줄인 게 1장 반 정도로 나온 겁니다. ^^;;

사실 저도 가끔 리뷰라고 보기 힘든 제 글이 당선작이 되면 의아스럽고, 저 혼자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8006201

yamoo 2016-09-12 21:37   좋아요 1 | URL
저와 알고 지내는 분도 계세요. 글의 수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 선정되어 부득이 그 부분을 건드리게 되었네요. 많은 비난이 제게 향한다하더라도 이로 인해 당선작 글이 좋아진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아온 사이러스 님의 리뷰들은 상당한 분량이라 아무 문제거리가 없는 듯합니다. A4 1장 반의 분량이면 충분할 듯!

cyrus 2016-09-12 21:48   좋아요 0 | URL
야무님 덕분에 은솔님, 가고파님의 서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항상 즐겨찾는 이웃의 서재만 보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교류는 없지만, 묵묵히 리뷰를 남기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좋겠어요. 글 잘 쓰는 것 떠나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더 열심히 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oren 2016-09-1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어 보니 아직도 yamoo 님께서는 알라딘에 대해 여러모로 참 애정이 많으신 듯합니다. 그리고, 이 글 속에 담긴 눈에 번쩍 뜨이는 단 한 줄, `하지만 그래도 알라딘 당선작이다` 라고까지 표현하신 대목에서는 부질없는 자부심과 까닭모를 서글픔이 뒤섞인 듯해서 저로선 이래저래 착잡한 마음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알라딘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당선작`이 갈수록 열등화되고 왜소화되는 걸 온전히 부정할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한낱 북플이라는 어플한테 엉뚱하게 뒤집어씌우는 일조차도 참 낯설어 보이고요. 아무튼 이래저래 참 씁쓸합니다. 진정성이 담긴 어엿한 주장이 이상스레 핍박받는 모습조차도 더더욱 이상하고요. 이게 다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탓일까요?

* * *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사람도 신도 서점의 기둥도
시인이 평범하게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 호라티우스, 《시론》

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이 자기들과 타인의 시간과 종이를 얼마나 망쳐 놓으며, 또 그 영향이 얼마나 해로운가 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과 동질인 불합리한 것과 범속한 것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은 대중을 참다운 걸작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러한 작품들로 대중의 교양을 억제한다. 따라서 천재의 좋은 영향을 정면으로 방해하고,좋은 취미를 점점 해쳐서 시대의 진로에 역행한다. 그러므로 비평이나 풍자를 할 때는 용서나 동정을 하지 말고, 평범한 시인들에게 혹평을 가해서, 그들이 졸작을 쓰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읽는 데에 여가를 이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시인들의 졸렬한 작품은 온화한 시신인 아폴론까지도 마르시아스의 껍질을 벗기게 할 정도로 격노하게 한다. 나는 평범한 시가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알 수 없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yamoo 2016-09-17 16: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렌 님의 댓글은 언제나 심오합니다! 호라티우스의 <시론>에 이런 시의적절한 글이 있다니, 새롭게 배웁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읽었는데도, 저런 내용이 있었는지 깜깜입니다^^;;

저로 인해 이달의 당선작 글들이 좀더 좋아졌으면 바랄게 없습니다!ㅎ

추석 잘 보내시고 계신가요?!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cyrus 2016-09-1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yamoo 2016-09-17 16:26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 님, 감사합니다!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2016-09-24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1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1 0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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