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시이소님 페이퍼를 보면, 정말 한 달에 30권을 넘어 40권을 넘게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리뷰를 쓰면서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시이소님 자신은 누구나 백수면 그리 읽는다고 하시지만, 그런 가열찬 독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실감할 뿐이다.
하, 난 지난 달에 몇 권이나 읽었나? 이것 저것 여러 권 집적거려 봤지만, 완독한 책은 6권을 갓 넘겼을 뿐이다. 근데, 이건 순전히 명저 번역을 엉터리로 한 역자들 때문이다. 이들 불량 역자들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져, 책을 집어 던지고 다른 판본을 집어드는 지럴을 지속했에. 썅 소리가 절로 난다!
특히 지만지고 출판사의 책들은 비싸기는 우질나게 비싼데, 번역은 별루다. 개중에 최악의 책을 만나면, 진짜 뚜껑이 열려버린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는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번역본이 지만지고 본밖에 없는데, 가격 대비 번역의 불량이 매우 심하다. 대형 서점에서 서서 봤기에 망정이지 일단 구매했다면 화가 정말 많이 났을 거 같다.
이런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책 시장의 유통 구조가 참으로 요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책 값 비싸며 번역이 매우 안 좋은 출판사가 한길사다. 한길 그레이트 북스의 책들은 나름 진짜 그레이트한 책들인데, 번역은 정말 형편없다. 2만원 이상 나가는 책들은 그야말로 고급 장정에 책을 소장하고 싶게 한다.
하지만 페이지를 열면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불량 번역 제품은 교환도 환불도 안 된다. 번역이 안 좋아 서점에 환불하러 가면, 읽은 흔적 때문에 안 된다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번역이 불량인지 아닌지 알아 내기 힘든데, 이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불량품을 양산한 출판사와 저자는 항상 면제부를 받고 있는 모양새. 진짜 천불나는 상황이다.
내가 읽어본 한길사 그레이트 북스 번역본들은 불량 번역이 대부분이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키에르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 등은 읽다가 집어던지다가를 반복했던 책들이다. 특히나 <의미의 논리>와 <관념의 모험>은 진짜 심했다. 이런 번역본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 나라의 지식 수준을 알려주는 척도이기에.
헌데 독서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별로 제기하지 않는 듯하다. 난 이게 정말 이상하고 궁금하다. 불량 번역본이 두루 돌아다니고 있는데, 리콜하는 출판사는 없고, 그 불량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둘!
시이소오 님 페이퍼를 보다가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사이토 다카시가 조언하는 바를 이전부터 행하고 있었기 때문.
이 책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작은 책장을 만들어라’
흐흐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을 여기저기에다가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지막 궁극의 리스트는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들 책들을 제외하고는 점점 솎아 내어 처분할 계획이다.
[내 궁극의 리스트]
(이 사진의 책들 이외에 비트겐슈타인의 책들은 10여 권이 더 있다. 다른 책꽂이의 아래 칸에 있어 현재로서는 손이 닿지 않늗다. 여튼, 이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 원저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읽을 예정임)
셋!
오늘로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문학과 지성사, 2013)를 완독했다. 책이 얇고 작아서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곤했다. 구입하기는 지난 3월엔가 한 듯한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라 그냥 출판사의 네임 밸류만 믿고 구입한 경우인데, 다 읽고 나니,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읽는 중간 중간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곤했다.
하지만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란의 카프카'란 책 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끝까지 책을 잡고 있었던 거다. 염병할,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은 무슨 얼어죽을 찬사란 말인가.
그냥 찌질이가 아주 괴기하게 헛소리만하다가, 40페이지 정도에 끝나버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내용을, 174페이지까지 끌고 가는 그 기이한 힘이라니! 뭐, 중간 중간 끝내주게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들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배수아 씨가 번역을 하여 우리 작품 읽는 것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무시못할 장점)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이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좀 유사한 면이 있어, 계속 읽어갈 동력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너무도 심하게 의식의 흐름(망상) 쪽으로 경도된 듯하여 실망이 컸다.
물론 작가가 어떤 성향인지 모르고 덥석 책을 잡은 내 잘못이 크겠지. 자칭 실재론자인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할 리가 없잖은가.
그나마 위안인 것이, 이 책과 함께 읽고 있었던 베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 동안 버닝할 태세를 마쳤기 때문이다. 아, 어찌 모든 문장들이 그리도 줄을 치고 음미하게 하는지, 참으로 읽는 맛이 난다는 말이지. 빌어먹을 부엉이, 것두 <눈먼 부엉이> 따위가 시간을 갉아 먹게 하다니.
아, 물론 작가 지망생에게는 <눈먼 부엉이>가 매력적일 수 있다. 환상문학과 유미주의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절대적인 추앙을 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뭐, 난 '부엉이'보단 '불안'같은 작품이 100배 좋다. 그나저나, 다음부턴 절대로 책 표지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넷!
처분할 책들이 쌓이고 있다. 예전같으면 악착같이 소장할 책들인데, 이제는 미련없이 처분을 하려고 한다. 공간, 내겐 더 중요한 책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발품 팔아가며 모은 책들인데... 아쉽긴 하다. 그치만 내겐, 현재...공간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