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러스님 페이퍼로 촉발된 서평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 생각난 김에 몇 자 끄적거려 봅니다.

 

사실 이에 대한 논쟁은 2007년에서 2010년 사이에 알라딘 및 제가 가입한 몇몇 독서 카페와 제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웃들 간에 간간히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촉발된 사이러스 님의 글을 보니, 2011년 여름 즈음이 생각납니다. 당시도 사이러스 님은 비슷한 고민(리뷰, 독후감, 서평에 대한 차이)을 하고 계셨고, 제가 페이퍼를 보고 댓글을 단 적이 있습니다. 뭐,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죠. 약간 가필했습니다.

 

리뷰와 독후감 그리고 서평은 구별해서 쓰는 것이 좋습니다. 2년 전에 한 매체에서 기사를 쓰면서 배웠습니다. 일단 리뷰는 독후감과 서평을 아우르는 가장 넓은 개념입니다. 책을 읽고 기록하는 거의 대부분이 리뷰라고 보면 됩니다.

 

감상문(독후감)이 리뷰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 서평은 말그대로 책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는 글입니다. 책을 읽고 객관적으로 쓰는 글이 서평입니다.

 

뉴욕타임즈 서평 기사를 보시면 서평이 어떤 글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현 우리나라 신문지 상의 서평은 60퍼센트 이상 서평이라는 형식에 미달합니다. 그래도 신문사 기자들이 쓰는 서평이 그래도 낫습니다.

 

책을 객관적으로 평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습니다. 독후감 또는 감상문은 책의 내용이 없이 느낌만 써도 됩니다. 이게 보편적으로 리뷰라고 일컬어지는 것과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수 있습니다.

 

리뷰는 책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만 독후감은 내용이 전혀 없이 그 상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독후감이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현 인터넷 상에서 대중을 상대로 책을 뿌리면서 서평을 요하는 글들은 거의 대부분이 '서평'이 아닙니다. 10중의 8, 9는 '나는 책을 이렇게 읽었고, 이런 부분이 너무 좋다'는 식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서평은 주관적인 생각을 가능한 배제하고, 평가가 가능한한 객관적이라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을 요합니다. 책에 대한 좋고 나쁨을 알려, 3자가 책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가가 객관적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지만요~)

 

물론 독서감상문을 평가형으로 쓸 수 있지만, 그 평가가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에 따라 서평이 될 수도 있고 리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평, 리뷰, 감상문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것 같아(엔날에 제가 고민했던 것처럼) 몇 자 남겨봤습니다.

 

오래 전 한국언론문화재단에서 신문에 나온 서평에 대한 분석기사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교수들이나 전문가들이 신문지 상에 쓰는 서평이 형편없다는 보고서 였습니다. 하물며, 이런 블로그에서야 더말하면 뭘할까요.

 

학부 4학년 때 파이낸셜 타임즈를 구독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그냥 무료로 보내줬죠. 한창 영어 공부하던 때라 아주 고맙게 받아 봤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거의 모든 분석 기사나 기획기사를 관심있게 보았고 또 스크랩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스크랩했던 기사가 서평란이었습니다.

 

얼마나 심도있게 책을 평가하는지, 당시 우리나라 신문들의 북섹션 리뷰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서평 자체가 소논문 수준으로 밀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책의 장점과 단점, 특히 단점을 항상 명확히 짚어줬습니다.

 

위에서 평가의 객관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파이낸셜 타임즈의 서평 필자들은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당한 근거를 확보하며 책을 평가했습니다.

 

'이주의 읽을 만한 책은 이거 밖에 없어!'라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책의 장단점에 대한 세세한 근거를 보고 독자가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글을 씁니다.

 

근데, 서평을 읽고 있으면 책을 사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입니다. 책의 인용 문구를 자신의 글에 자연스럽게 녹여 써서 최대한 책을 부각시킵니다.

 

책의 핵심 내용은 그대로 인용하는 게 아니라 매우 압축적이고 간견하게 요약하여 중학생이 봐도 어떤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사실 저는 이게 가장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다!'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감상)은 최대한 자제한 채, 소개하는 책을 중심에 놓습니다.

 

분명히 서평자가 주관적으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주된 논점을 잡지만(이를 '야마'를 잡는다고들 하죠), 그 논점이 '책의 내용'에 갈무리 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책을 평가하게 되고, 독자를 설득시킵니다.

 

저는 이게 가장 모범적인 '서평'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매체에 서평을 기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위의 방식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뷰나 독후감은 아주 자유롭게 써도 문제될 게 없겠죠. 남들에게 보이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 나의 독서활동 기록이 1차적인 목적이니까요. 보다 자유롭게 독창적으로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소개하는 책'이 중심이 되느냐, 아니면 '읽은 사람'이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합니다. 이건 무우 베듯 싹뚝 자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마지막으로 매체에 서평을 기고할 때 매체의 대표가 강조한 좋은 서평의 요건을 부가하고, 그 매체의 대표가 쓴 그 요건에 부합한다고 하는 리뷰를 첨부합니다.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매체 **대표가 밝힌 [좋은 서평의 요건]

●개인의 비판적 생각은 자제하고 쉽고도 명료하게 쓰라.

●'아, 그래서 이 작가가 위대하구나'라고 느끼게끔 서평을 쓰라.

●서평을 보니 '~한 이유가 너무 다가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쓰라.

●서평을 읽고 나니 새삼 '~의 소중함이 느껴지네'라는 생각이 들도로 쓰라.

●색다른 토픽, 뛰어난 묘사, 감동을 줄 수 있는 글감과 전개로 쓰라.

 

 

 

 * 당시 매체의 대표가 밝힌 [좋은 서평의 요건]에 맞춰 서평을 쓰려고 하니, 도무지 그런 서평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특히 '읽고 난 뒤 기억에 남는 글'이라고 하는 조건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을 거 같아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평을 쓴 뒤 다시 엎어 버리길 수십 번. 그리고 나서 에라, 모르겠다~ 될데로 되라지..라는 생각으로 서평을 썼다는..

 

 

위 조건을 내건 대표가 모델로 보여 준 서평입니다. 이것은 오래 전 서평이고 매체에 기고한 게 아니라 그대로 가져와 봤습니다. (매체와 기고자 이름은 모두 블라인든 처리했음)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한 서평입니다.

 

 

하늘에서 별따기 `초신성` 찾는 귀재

[◇◎○☆] `우리 태양보다 훨씬 큰 거대한 별이 수축되었다가 극적으로 폭발하면서 1,000억개의 태양이 가진 에너지를 한순간에 방출하여 한동안 은하의 모든 별을 합친 것보다 더 밝게 빛나는 상태`

 

 

초신성에 대한 정의다. 밤하늘에서 이 초신성을 찾기란 한마디로 `하늘에서 별따기`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하면 이렇다.

 

 

검은 식탁보를 덮은 식탁 위에 한 줌의 소금을 뿌린다. 흩어진 소금 알갱이들이 수많은 별로 이뤄진 은하다. 이 소금 뿌려진 식탁 1,500개가 이마트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식탁에 소금 알갱이 하나를 뿌린다. 그 알갱이가 바로 초신성이다. 그것을 찾아내라고 하면 어떨까.

 

 

더 쉬운 비유를 들면 이렇다.

 

 

`63빌딩 전망대에 올라서서 망원경으로 서울 시내를 둘러보면서, 어느 집의 생일 파티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

 

 

하지만 그 초신성을 아주 쉽게 찾아낸 이가 있다. 호주 시드니 근처 불루 마운틴에 사는 에번스 목사다. 그는 1980년에서 1996년 사이에 한해 평균 두 개의 초신성을 찾아냈다. 1980년 당시까지 과학자가 찾은 초신성은 60개가 채 안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일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유명 저술가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 까치)에 나온다. 우주에서 생명의 탄생, 그리고 현재 인류의 진화에 이르기까지 지구 35억년의 역사를 알기쉽게 풀이한 책이다. 기자출신인 빌 브라이슨은 3년에 걸쳐, 어렵고 골치아픈 `과학`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은 에번스 목사 에피소드처럼 흥미진진하다.

 

 

에번스 목사는 왜 초신성 하나를 찾기 위해 밤마다 망원경과 씨름했을까.

 

 

"나는 우주공간을 통해서 수백만 년을 지나온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순간에 누군가가 하늘의 바로 그 곳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정도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겠지요."

 

 

에번스가 초신성 찾는 데 귀재가 된 데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책에 따르면 그는 많은 천문가들이 북반구에 살고 있는 것과 달리 그 반대에 있었기에 혼자서 하늘 전부를 찾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각고의 노력일 것이다. 아마도 그의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별들의 밭을 기억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에번스가 다른 일엔 재주가 별로 없었고, 심지어 물건 넣어둔 곳도 잘 기억 못했다는 점이다. 어떻튼 그는 밤하늘에서 그토록 어려운 초신성을 찾는 `재주`를 가진 덕에 천체물리학에서 한 장을 장식했다.

 

 

한가지. 이젠 에번스의 재능이 더 이상 필요없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전에 따라 컴퓨터가 알아서 초신성을 찾아 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세지 않는 세상, 에번스의 말은 흐르는 유성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제 초신성을 찾아내는 일에서도 낭만이 사라져버렸지요."

 

[○○○○ ○○○기자]

 

 

 사실, 저는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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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서평은 비평적 안목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yamoo 2016-01-25 23:25   좋아요 0 | URL
네, 인정합니다. 그래야지요~!

2016-01-2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1-25 23: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까뮈님^^

oren 2016-01-21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 님께서도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점`에 대해 그동안 고민이 많으셨군요. yamoo 님의 독창적인 견해(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소개하는 책`이 중심이 되느냐, 아니면 `읽은 사람`이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합니다....)에 대해서도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그리고,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훌륭한 서평`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나라의 열악한 `독서 환경`과 겹쳐지는 듯하여 씁쓸한 느낌마저 듭니다. 알량한 돈 몇 푼에 양심마저 팔아버린 듯한 서평,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신나게 떠벌이는 듯한 서평을 볼라치면 `베알이 뒤틀려서라도` 그런 책을 사기 싫어질 때조차 있더라구요.

yamoo 2016-01-25 23:27   좋아요 0 | URL
돈 몇 푼에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써주는 서평은 정말 심각합니다. 독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일조하니까요. 저도 그런 서평을 보면 베알이 뒤틀린답니다.ㅎ

저도 오랜 님처럼 서평에 인용구가 많은 걸 좋아합니다. 단지 미디어 쪽에 서평을 보내려면 그런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는 기술은 좀 필요하다 싶습니다~^^

yureka01 2016-01-21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 수준으로 책에 대해 리뷰를 할려면 단지 책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연관된 자료를 찾고 근거를 제시하고 작가의 활동성과 책과의 관련 자료등이 책의 서평에 근거로 담보될 수 있을 거니까요.그런데 일반인이 이정도 수준의 서평을 쓸려면 책한권으로 무척 오랜 조사와 집필이 이루어져야 할 전문적 일이거든요. 대부분은 리뷰가 개인 감상문이 될 가능성이 그래서 농후해진다는 거....저는 독후감이라도 좀 잘 쓰고 싶어요..책 읽기도 빠듯한 시간에 서평까지 아울러서 쓸려면 한달에 책 몇권 리뷰 쓸수가 없겠다 싶더군요.

yamoo 2016-01-25 23:29   좋아요 1 | URL
저두 첨에 유레카님처럼 생각해서 서평을 도저히 못쓰겠더라구요. 근데, 위 페이퍼에 마지막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의 서평을 함 봐보세요. 여러 권을 참조하지 않고도, 서평할 책만으로도 좋은 서평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저 서평을 보고 알았지요.

네, 저도 독후감을 잘 쓰고 싶어요. 서평보단 리뷰를 많이 남기고픈 1인 입니다!^^

cyrus 2016-01-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여름이라면 제가 블로그를 한창 열심히 했던 시기인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

서평 작성의 조건, 그리고 서평과 독후감의 의미를 이해하는 건 좋은데,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글 쓰는 재미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저도 ‘마이리뷰’에 입력되는 글을 작성하면 줄거리 요약과 간략한 감상만 적절하게 쓰고 맙니다. 참고로 저는 책 속의 좋은 인용문을 제 문장으로 새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종의 작문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yamoo 2016-01-25 23:31   좋아요 0 | URL
네....아마도 그렇겠지요..ㅎㅎ

네, 리뷰에 쓰는 줄거리 요약과 감상...그걸 어떻게 재미있게 나름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느냐가 서평가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겠지요.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서평을 눈여겨 봐 보세요. 저 정도 쓸 수 있으면 리뷰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yureka01 2016-01-2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기사, 작가가 책을 내는 이유가 평가 받을려고 내는 목적이 몇퍼센트나 되겠습니까.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사유하도록 단초를 제공하고 함께 생각하며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며 함께 재미있게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아닐까 싶어요. 서평에 너무 부담가질 필요없어요.자신의 느낌 소감 후기.이정도라도 충분한것아닐까 싶습니다. 책 서평가라는 직업적으로 덤비는 분들이야 전문성을 발휘해도 좋겠지만 일반인들은 책읽기도 빠즛한데 서평에서까지 해야 한다는게 너무 부담입니다. 알라딘에서도 책 비평가 수준의 서평가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보긴 봤습니다만, 그 또한 자신의 스타일대로 읽고 쓰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 다니며 책 읽기도 벅찬게 사실이거든요. 간혹 책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의 전략에 말려들 필요도 없구요..편하게 읽고 쓰며 즐깁시다.ㅎㅎㅎㅎ

감은빛 2016-01-3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야무님!` 이라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이 다르지만,
야무님의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전 사실 개인의 평가를 잘 담아야 서평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후감은 평가가 아닌 감상 수준에 그치는 글이 아닐까 싶구요.
좋은 서평은 (내가) 이 책이 왜 좋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 둘을 구분하고 또 분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몇몇 작은 매체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건 `서평`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소개`였어요.
그래서 제가 왜 이 책에 관심이 있는지,
이 책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그 형식이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책에 대한 글에는 항상 관심이 많습니다.
다만 출판사 제공 책 소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글을
따로 읽는 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yamoo 2016-02-01 13:24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이 쓰신 그 서평이 제가 생각할 땐 좋은 서평같습니다. 평가가 담긴 책소개가 전 서평이라 생각하기에...

[제가 왜 이 책에 관심이 있는지,
이 책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쓰시려고 노력하시는 글이 저는 좋은 서평의 전제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글이 독후감 형식이면 어떻습니까.
저는 그런 글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고견 주셔서 넘 감사드리고, 바쁜 와중에도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교양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지식 중 하나가 경제학이다. 고등학교 때 경제에 치를 떨어 학부 2학년 때까지 경제학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 소개되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교양서적을 읽어도 경제이론으로 넘어오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할 수 없이 경제이론을 알기쉽게 소개해 준 책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주섬주섬 읽었던 책이 꽤 되어서, 4학년 때는 맘먹고 경제학 개론 수업을 들었었다.

 

하지만 엄청난 두깨의 경제학 교과서는 나를 주눅들게 했고, 교양으로 읽었던 책들은 시험에서 별로 도움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부의 경제학 시험은 교과서에 있는 이론을 그래프와 함께 답지에 옮겨 적는 일이였기에.

 

그 두꺼운 경제학 교과서에서 달랑 4문제만 나왔는데, 내가 이해하고 썼는지 아니면 외워서 썼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확인했던 건, 교양경제학 책들이 시험에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사실.

 

이후 졸업을 하고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미시와 거시에 대한 교과서를 아주 가열차게 읽었더랬다. 강의도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랬더니 연습문제의 상당수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교양경제학 책을 읽으니, 책들이 다시 보였다. 가독률이 늘긴 늘었지만,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와 수식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할 수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경제학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경제학 교과서를 읽는 다는 건 엄청난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경제 이론을 알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한다는 건 시간낭비일 수 있다.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론이 잘 정리된 교양서를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된다. 무엇보다 분량이 작다. 내용 역시 전문 용어와 그래프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교양경제학 책들의 유용성이 있다. 

 

최근 교양경제학 책들은 교과서에 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맨큐로 대변되는 교과서들이 워낙 쉽고 자세해서 교양경제학을 볼 필요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서술되어 있다고 해도 교과서는 교과서다. 배우는 내용이 정해져 있어 쉽게 지루해 진다. 혼자 읽어나가다보면 미시경제학 중간 까지도 읽기가 버겁다.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큰 배판의 책을 읽는다는 건, 쉬운 설명이라도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에 반해 교양경제학 책은 아무리 오래 잡아도 한 주일이면 완독할 수 있다. 대체로 분량도 300페이지 안팎이다. 다양한 저자들의 능력으로 인해 교과서보다 훨씬 다채롭고 이색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교과서에 있는 비슷한 미시와 거시의 내용이라도 저자에 따라 구성과 문체가 달라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사례가 무척 구체적이고 재미있다. 교양경제학의 매력은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지금까지 읽어왔던 교양경제학 책 중에서 스테디 셀러 위주로 추천서를 추려봤다. 우리 몸이 비타민을 필요로하듯이 교양을 위해서는 정신의 비타민을 필요로한다. 섭취하지 않으면 교양에 빈혈을 일으킬 수 있기에.

 

그래서 교양경제학 추천 도서 10권을 꼽아 봤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담겨 있기에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읽은 것이 많지 않다!) 더군다나 난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다.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모든 걸 감안하고 봐주시면 고맙겠다.

 

 

1.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 웅진지식하우스

 

<경제학 콘서트>는 절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비록 거시경제학 비중이 적지만 이 책의 최고 강점은 경제학적 마인드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

 

대부분의 교양경제학 서적들은 이론을 쉽게 풀어 놓거나 이론과 사례를 적절히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경제학 콘서트>는 경제 원리로부터 새로운 사실에 응용과 적용력을 높이게끔 구성되어 있다.

 

마인드를 훈련하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다.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을 스타벅스 커피숍으로 매끄럽게 풀어내는 1장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교양경제학 책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쇄를 넘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권도 발간됐다. 책 타이틀에 '콘서트' 열풍을 주도한 대표적인 책.

 

 

2.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교양경제학 코너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책이 아닐까 한다. 어느 정도 체계있는 서술이 강점.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게 흠이다. 여기서 알맹이란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거.

 

최소한 그래프를 곁들여 설명하거나, 그래프를 소개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론을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쉽게 말해서 '레온티에프 역설'이라고 하면 레온티에프 얘기만 줄창 나오다가 이론 설명은 뭐, 한 줄 정도로 정리한다랄까.

 

뭐,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를 엿본다는 취지로 본다면 괜찮다. 뭐니뭐니 해도 쉬우니까! 입문서로는 더 없이 좋은 책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최고의 경제학 교양서라고 정평이 났나부다.

 

어쨌든, 같은 저자의 <유쾌한 경제학>도 있으니 같이 보면 좋을 듯. 고1 학생도 쉽게 읽으실 수 있다니, 입문서로는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다.

 

 

3. <10대 경제학자>, 요젭 슘페터, 한길사

 

경제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려운 이론과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를 복잡한 그래프 없이 간결하게 소개한 책이다. 오래 전 고전에 반열에 오른 슘페터의 명저 중 한 권.

 

<10대 경제학자>는 그래프 없이 학자와 경제 이론을 소개한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서술을 자랑한다. 그것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말이다!

 

이 책에는 '한계효용'과 '파레토효용'과 같은 익숙하고도 중요한 이론들을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와 그 뒷 얘기를 통해 재밌게 소개하고 있다. 이론의 핵심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학자와 이론 그리고 학파가 어떻게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어떤 학자가 어떤 학파적 배경에서 이론을 전개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저다. (아쉽게도 절판이다.)

 

 

4.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부키

 

케인즈 이후 경제학자 중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는 폴 크루그먼의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는 책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경제학 책이다.

 

주로 주류 경제학자들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저절로 경제학적 이론을 습득하게 된다. 주로 아주 쉬운 사례를 들어 거창한 이론의 맹점을 드러낸다. 자연스럽게 이론의 부실함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명쾌하게!

 

아쉽게도 번역으로 인해 약간의 짜증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가장 잘 나간다는 경제학자의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책이다. 모형을 갖고 허점 있는 이론을 공격하는 석학의 신랄한 논리를 맛볼 수 있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어떻게 다양한 사건들을 비판할 수 있는지 체험해 볼 수 있는 명저. 크루그먼의 신랄한 비판은 글 읽는 재미도 배로 준다~

 

 

5. <유한계급론>, 토스타인 베블런, 우물이 있는 집

 

제도학파를 창시하고 시카고 대학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베블런의 대표작이다. 얼마나 재밌는지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시니컬한 베블런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경제학 책인지 아니면 사회학 책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에는 재미있는 문화인류학 개론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상류층과 재벌 그리고 졸부들을 싫어하는 분들이 보면 상당한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의 가치와 명성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읽기 쉬운데, 1급 경제학 고전이라....구미가 당기지 않을 런지..

 

 

6. 발칙한 경제학, 스티븐 렌즈버그, 웅진지식하우스

 

스티븐 렌즈버그는 교양 경제학의 대가로 통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발표하는 책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일 거다. 대표작 <런치타임 경제학>(<안락의자의 경제학> 개정판)을 보면, 그가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얼마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뭐, <괴짜경제학>과 뭐가 그리 다르냐고 묻는 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왜 극장에선 팝콘을 더 비싸게 팔까?" "안전벨트 의무화가 오히려 교통사고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논의들은 두 책이 매우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발칙한 경제학>은 정말 '발칙한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이 발표된 이후 독자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단다. 주제들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원나잇 스탠드의 확대를 통한 에이즈 예방, 구두쇠의 미덕, 모성과 소득의 반비례 관계 등 하나같이 도발적인 주장들로 넘친다.

 

렌즈버그에 따르면, 이런 도발적인 주제와 논증 방식을 채택한 이유가 '세상의 속살을 읽는 힘'을 위해서라니, 일독할 만한 매력적인 책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7. <경제학 산책>, 조영달&홍기현, 김영사

 

 사실 이 책은 교양서를 가장한 교과서다. 곳곳에 그래프와 설명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읽었던 건 96년 1판 이었는데, 이게 계속 증보하여 지금은 1판보다 책이 2배로 늘었다. 그러니까 거시에 대한 그래프도 많아졌다는 얘기.

 

하지만 두꺼운 경제학 개론이나 원론 책을 보기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고, 내용이 없다고 투덜거렸을 때 읽은 책이니, 내용의 밀도는 보장한다.

 

아마도 교양경제학에 속하는 책 치고, 이 책만큼 내용이 충실한 책은 드물듯. 그만큼 읽기가 녹록치 않다는 거. 하지만 산책하고 나면 꽤 많은 경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8.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인물과 사상사

 

유병률 기자의 <서른살 경제학>은 이제 헌책방에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말은 그만큼 이 책이 많이 팔렸다는 거.

 

삼십 대를 위주로 썼지만, 경제에 문외한인 30대를 위해 썼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책의 최고 강점이라면,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어려운 이론을 쉬운 사례로 풀어준다는 것. 경제원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론을 이 책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앞 부분에 설명된 게임이론의 사례가 압권.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도래할 '실버 시대'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 몰랐을 거다. 2장에 서술된 대기업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실물 경제 위주의 내용이다 보니 이론적 깊이는 덜한 편이다. 경제 주간지 읽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그만큼 쉬운 서술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경제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단지 현재 절판이라 아쉽다. 하지만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널려 있으니 일독하면 의외로 많은 걸 얻을 수 있겠다.

 

 

9.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부키

 

 이거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올라 유명세를 떨친 책이다. 2010년 알라딘 올해의 책이기도 하다.

 

캠브리지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의 대표작 중 하나. 영국에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아마존 경제 부문 1위에 올랐다고 하니, 장하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일 것이다. 

 

이후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대만, 태국 등 모두 9개국에서 출간되어 있단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23가지 중 세번 째 꼭지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다.

 

지루할 겨를도 없이 휘딱 읽을 수 있는 교양 경제서. 아직 읽지 못하신 분은 얼른 일독하시길 바란다~

 

 

10. 맨큐의 핵심 경제학, 그레고리 맨큐, 교보문고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그 유명한 맨큐 경제학 시리즈. 그 중에서도 <맨큐의 핵심경제학>을 꼽았다. 그 이유는 맨큐 시리즈 중 가장 분량이 적으면서, 핵심 사항은 죄다 담겨 있으니까.

 

1999년 교보에서 처음 <맨큐 경제학>을 보았을 때 경의로웠다. 경제학 교과서가 전혀 교과서 같지않았기 때문. 당시 경제학 교과서는 2색 인쇄로 무지막지하게 두껍고 어려운 서술로 정평이 나 있었다.

 

헌데 <맨큐의 경제학>은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컬러풀한 그림들과 함께 실려 있는 각종 읽기 자료들(신문기사와 사례연구)은 교과서와 교양서의 장점을 고루 반영한 듯했다.

 

서술은 얼마나 쉬운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보다 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고교 상위권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나 뭐라나.

 

교양경제학 책을 읽고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 다는 분들에게 강추할 수 있는 책이다.

 

[덧]

이 외에도 일독하면 좋을 교양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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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1-19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 님의 글을 읽으니 사람마다 `개성`이나 `취향`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배웠던 <정치경제>라는 과목이 꽤나 재미있었거든요. 다른 과목들에 비하면 훨씬 더 쉽기도 했구요. 그래서 `경제`나 `정치`도 뭣도 잘 모르면서도 고1때 덥석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가 쓴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사서 읽으면서도 무척이나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그 책도 꽤나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지요.. 아직도 팔리고 있고요.) 그 책 속에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케인즈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 등과 같은 머리 아픈(?) 인물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데도 말이지요. 물론 대학 1학년때 교재로 썼던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무거웠던 책 한 권(원서로 된『Economics』,저자는 시카고학파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사무엘슨)만 보면 한숨부터 나왔지만 말이지요... 암튼 흥미롭고도 친절한 안내가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yamoo 2016-01-20 17:52   좋아요 0 | URL
정치는 재밌었는데, 경제가 잼병이라 정치경제를 포기했지요. 저는 고교 때 세계사와 지리를 택해 공부했습니다.

헉 고1 때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라니! 엄청나네요. 저는 그 책을 학부 2학년 때 만나 봤지요.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부 때 경제학 원론을 저도 사무엘슨 경제학으로 봤습니다. 원서로 수업했는데, 번역본을 갖고 왔다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6-01-1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3번 책을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샀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나온 번역본을 제외하면 슘페터가 쓴 책이 많이 없어요.

yamoo 2016-01-20 17:5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득템하셨네요^^
요즘 슘페터 저작들이 번역돼고 있는 걸로 알아요. 박영률출판사에서 슘페터의 주저 <경제발전의 이론>번역도 있고, <제국주의의 사회학>도 출간됐어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번역도 재간됐구요.
주저가 점점 번역돼고 있어 고무적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학서가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딱 한 권 읽었네요... 베블린...
야무 ㄴ 님 말씀처럼 이 책 참 재미있어요. 탁월한 명저임..

근데 경제학서 하면 자본론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만 보면 자본론은 정치학서이기도 하고 경제학서이기도 하고.. ㅋㅋ

올해에는 글 자주 올려주십시오.

yamoo 2016-01-20 17:58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판인 <한가한 무리들>로 봤어요. 동인에서 나온걸로. 진짜 하루만에 다 읽었더랬죠. 읽어보셨군요..ㅎ

경제학의 근간이 된 3대저인 국부론, 자본론, 일반이론은 교양경제학의 범주를 넘는 것 같아 제외했어요. 베블런의 저 책보다 읽기에 너무 버겁고, 재밌지도 않고요..ㅎ

곰발님이나 올해 자주 올려주세요, 주로 까는 글로다가^^

stella.K 2016-01-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경제학은 잼병인데...
그런데 무조건 어려워 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죠.
얼마 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하도 안 읽어서
아는 분한테 넘겨 드린 적이 있어요.ㅠ
소개하신 책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야무님 페이퍼는 별찜했어요.
언제고 읽을 날 있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yamoo 2016-01-20 18:00   좋아요 0 | URL
아마도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근데, 관심이없으면 안 읽게 되지요. <서른살 경제학>이라도 읽으심이...대기업 얘기와 실버시대를 언급한 장만 봐도 도움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네, 스텔라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Rove 2017-05-14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종이달 2021-08-27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소설 평론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우리나라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들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이인화), <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박이문)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순간, ‘이건 뭐지?’하는 황당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고나 할까. 하일지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소개된 두 작품은 학부 때 모두 읽어 보았다.

 

 

내가 읽었던 소위 ‘포스트 모던’한 작품들과는 한참 동떨어진 작품들이었기 때문.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거다. 다음 목록들과 비교해 보자.

 

 

윌리엄 버로스의 <네이키드런치>, 토마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도널드 바셀미의 <백설공주> 등.

 

 

 

 

 

 

 

뭐라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공통된 느낌이 있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 보다는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 속에서 어떤 냉소적인(또는 전복적인) 비판 정신이 보인다랄까.

 

 

하일지, 이인화, 박이문 등의 작품을 버로스, 핀천, 바셀미와 같이 묶을 수 있다?! 어떤 관점을 취하면 같이 묶을 수 있을 지 심히 궁금하다.

 

 

평론가의 책에는 그냥 무책임하게 우리나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3명의 작품을 꼽은 게 전부다. 근거는 개뿔도 없다. 그래서 정말 알고 싶은 거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회자되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는 지. 몇 년 전부터 한국 소설과 담을 쌓고 있어 별로 아는 게 없어 정말 궁금하다.

 

 

일단 이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이 좀 막연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인듯하다. 하버마스와 리오타르 논쟁이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촉발시킨 건 어느 정도 수긍한다.

 

 

하지만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 규정하는 범주는 현재까지 매우 모호한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해체주의' 개념에 포섭하는 것 자체도 우습다. ‘해체주의’가 무엇인지는 아직 교통정리도 되지 않은 듯한데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학에서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주의를 포괄하는 아주 광범위한 개념이랄까. 여튼 그렇다. 문학이라 느낌이 중요한 듯. 읽으면 느껴지는 뭐 그런 거.

 

 

이런 맥락에서 내가 발견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정한 기수라 생각하는 작가는 박상륭이다. (물론 느낌만으로!) <죽음의 한 연구>만 보더라도 포스트모던한 포스를 마구 풍기지 않느냐는 말.

 

 

 

 

또 다른 작가로는 김운하를 꼽을 수 있다. 대표작 <137개의 미로카드>를 보면 위 외국 작가들의 작품과 매우 비슷하다. 김운하의 단편들도 정말 독특하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최근까지 이 두 사람 이외에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할 수 있는 작가를 알 지 못한다. 문학 독서량이 일천해서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포스트모던 계열의 작가는 정말 거의 없는지 알고 싶은 거다.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제발 야무의 궁금증을 풀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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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6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전에 곰발님이 포스트모던을 언급했는데, 갑자기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알고 싶어지네요. 저 같은 입문하려는 독자를 위해 좋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

yamoo 2016-01-19 19:31   좋아요 0 | URL
흠...읽은 게 많이 없어서뤼..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모스트모더니즘의 조건>과 <지식인의 종언>을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포스트모너니즘은 리오타르에 의해 촉발된 개념이라 일독하면 좋습니다~

2016-01-17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1-19 19:33   좋아요 0 | URL
저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정확히 뭔지 잘 모릅니다.

예전에 웅진에서 나온 포스트모던 걸작선이라는 선집이 몇 권 있는데, 읽어보면 어떤 공통된 느낌이 있긴 합니다만...

저도 궁금증을 풀어줄 분이 있을까하고 올린 페이퍼에요^^;;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이라는 책이 있읍니다. 이 책은 1990년~1998년 ...약 8년에 걸쳐서 중국학자5명과 일본학자7명 그리고 그외 일본사관학교 (육사.해사) 장교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으로 총 32권으로 발권된 책입니다.

이 책은 크게 이순신장군 생애를 다룬 5권.
(이순신은 누구인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2권 .
명나라가 본 이순신1권.
1500~1600년시대의 조선과일본 그리고 명나라 10권.
이순신과 임진왜란 5권.
토요토미 대 이순신 2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한 내용이 25권.
그리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이7권으로 나누워진 책입니다.


이중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장군에 관한책이 2권이나 된다는것인데, 이순신장군께서 난중일기를 남기시듯, 일본장수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와키자카와. 도도. 등등 .. 특히 이 두사람은 이순신장군에 대한 기록이 유별 나다고합니다. 아마 같은 수군이라서 그랬겠지요.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적이 있읍니다.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장군 탄생때 온다는 것. 와키자카가 이순신장군을 알게된건 한산도대첩때 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건 차이가 있겠지만...아뭏든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명예를 중요시 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 랄까 그런 묘한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중에 명장입니다.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읍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번 이순신장군에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장군 탄생일때 오는가 봅니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장군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듯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바람속으로 거닐고 있는걸까? 궁금하던차에 한번 따라가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중 효행편을 읽어주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 10살 의 어린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수 있겠는가!)


 


3.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조선에서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지략이 매우 튀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수 있을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메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이순신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게 충(忠)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4. 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이순신? 내가 알고있는 이순신은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장수였던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연구회엔 나의 절친한 동료학자의 권유로 참석하였으며 그 해에 그저 잠시나마 자리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터라, 나는 그저 일본교수진들의 말만 들을뿐..

그러한 내게 작으나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화면가득 보여지는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저런배가 400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보고있었다.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지만, 그 시각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차이는 중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이 아닌 이순신 이라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이었다. 일본 교수진들은 이 연구회를 이순신이라고 불렀다.  즉, 임진왜란 자체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되어서 바라보고 찾고 연구 하고 가설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중국 어느 누구에게도 연구해 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는 그 학술회가 끝나는 데로 일본교수의 도움으로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한 책자를 얻을 수 있었다. 7권으로 이루어진 이순신 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이었고, 나는 그 7권을 단 하루 만에 다 읽고 말았으며, 책을 손에서 놓은뒤 내게 있어서 가느라한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순신! 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

지금까지 우리 중국학자들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조선의 왕 선조는 그들을 막지못하고 의주로 몽진을 하여 우리 명나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명나라는 국력을 소비한 나머지 지금의 청에 의해 멸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별 차이 없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날 연 학술회에선 이 모든 것을 흔들어버리는 아니 뒤엎는 가설을 내놓은 것이다. 바로 이순신 이라는 이름으로..

 


5. 장웨이링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거북선


1997년 10월. 한번은 내게 북경대에서 초빙을 받아서 학생들과 토의를 한적이 있었다. 주제는 청나라의 멸망에 관해서 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 온 거북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있냐고 묻자 250명의 학생중 단 한명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나도 이 거북선을 이순신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처음 보았으니, 학생들이 모른다고 답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 지도 모른다.

이미지 

 

 

는 학생들이 이 거북선을 자세히 볼수 있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볼 기회를 주고난 후, 질문을 바꾸어서 왜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질 수밖애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으며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그 당시 전쟁에서 여러분이 아는 영웅중 단 한명 다시 태어나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학생들의 답변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 였다.

항우.제갈공명.손자.관우..
나는 잠시 창너머를 바라보았고, 한참 동안이나 내가 강단의 창 너머만 바라보자 이에 이상했는지 학생들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만일 지금 또다시 지금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거지일거라고 답해주자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들며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위인 나와야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고, 나는 그 질문에 거북선을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대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전에 만들어진 전투함, 이 전투함을 만든 이순신,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의 전생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장군이야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에 말한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많은 다른 교수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여기 저기서 이순신이 누구냐고 서로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임진왜란에 대해서 30분정도 시간을 내서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순신을 선택한지 아느냐고 물었으나 이 역시 학생중 단 한명도 알지못하였다. 단지 어느 한학생이 교수님 이순신은 해군아닙니까?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해 주었다. 바로 해군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구할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건 아편 탓도 있고 황제 탓도 있다. 정치적 이유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유능한 해군 장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수군장수 이순신은 5000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모두 승리를 이끌어 조선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 같은 처지였다. 당파싸움에 휩쌓여 있었고, 병력이라야 5만도 안되는.. 그러한 조선을 이순신장군이 지켜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안에는 바로 이 거북선 전투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들은 모두 육지에서 뛰어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 역사에는 세계에 내 놓을 만한 수군 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중국은 대륙 국가였다. 하지만 대륙만큼이나 우리 중국은 바다가 넓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교수님 그렇다면 주유가 있지 않읍니까?"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주유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유는 이순신장군과는 격이 다르다. 주유는 양쯔강에서 활약한 장수지 진정한 해상지휘관은 아니다. 영국을 보라. 네덜란드를보라. 스페인을보라. 그들은 나라는 작아도 바다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 바다를 점령하였기에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일어설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청나라는 거대한 대륙국가 이였지만 바다를 몰랐기에 무너지고 만것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 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라는 결과를 말해 주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세계 어느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한번 거북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순신이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이 거북선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순신장군이 만들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거북선은 나대용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거북선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수군은 인진왜란 1년 전만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
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나서도 1시간 정도 더 이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기를 해 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쳐주는 기립박수를 받아
보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 중 한분이셨으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해서 연구하시던중 1995년 고구려 역사편입하는 작업에서 손수 물러 나셨다고 한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이 책 머릿말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역사학자란 후세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 역사학자란 두 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 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 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려하는 역사학자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 보다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또 한 가지의 부끄러움을 말한다면,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6. 일본의 아리모토라는 역사가가 본 이순신


세계의 전쟁 영웅은 피로 만들어 진다. 전쟁 영웅은 만인들이 우러러 보게 끔 만든다. 알랙산더 대왕도 그러 했고 케사르도 그러 했고, 징키스칸도 그러 했고, 나폴레옹도 그러 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이러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크리스챤인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그 분. 이순신 장군을 볼 때면 문득 그 분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피로 혁명을 일으키기 보다는 바로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모든것을 홀로 짊어지시고 가셨다. 2000년 전의 한 청년이 그래햇듯이..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속에서 忠.孝.義.愛.善 을 가르키신 분이셨다. 그러고보니 한국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영웅 이순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성웅 이순신"

 

7.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14부인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 중에서..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 하였을까?'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는 단 한번 이라도 혁명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 장군은 혁명의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장군에겐 2만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명으로 추정되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 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여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것이다.

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수 있느냐 하는것이다.

그러나,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왕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 줄 군대가 올 거라 생각 했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였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케(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이미 조선의 민심역시 이순신에게 있는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주는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 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 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케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 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이 있다.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케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 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고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하라는 식의 각본이 이미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 털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런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 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을 끌어들여서 북의 오랑케(훗날 청나라)을 견제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께서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 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이순신을 도와줘서 낭떠러지에 몰린 조선왕 선조와 조정대신(이순신의 반대파 세력)들이 뜻밖에도 일본과 손을 잡게되고 비밀협약을 한다면, 과연 조선은 어떻해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 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이순신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 장군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이 아셨던 분이십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님께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장군님 당신은 다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우셨읍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것이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 장군~~

이순신 장군에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 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 만큼은 더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 었는지..

 

출천 : http://diarix.tistory.com/m/post/20


원출처 : [야후] soscorea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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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우연히 본 글이 너무도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여 알라딘 서재에 가져와 봤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글을 단숨에 읽어내려 갔네요.

빙글 검색으로 읽은 글인데, 원문은 야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팔로잉이 많은 글이라 펌해도 괜찮을 거 같아서 가져와봤습니다. 문제될 글이면 내리겠지만, 가장 중요한 맨 위의 연구와 책들이 허구라네요. 그래서 좀 안심하고 게시합니다.

 

순신같은 대통령을 갖진 못한 현실이 더 안타깝고, 우리의 이순신 연구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일천해서 더욱 더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위 글이 비록 허구이지만(32권 전집이 허구이지, 나머지 학자들의 시각은 팩트인 듯합니다. 진린의 이순신 평가는 기록과 일치하는 걸로 봐서) 충의 현대적 의미가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정치...바로 정치가 제대로 되야한다는 것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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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파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 북한연구자료선12

정성철 (지은이) | 동문선 | 1989-07-15 | 658p

 

 

 

 

책소개

 

“력사학에서는…실학자들도 올바르게 평가하여야 한다.”

-<사회과학의 임무에 대하여> p160

 

실학파를 옳게 평가하는 것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데서, 교육 사업에서 매우 절실한 문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실학파의 존재도 귀중하며 좋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나 실학파가 그 당시 봉건사회에서 일정한 진보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 오늘에 와서까지도 무슨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 실학파는 반동적 봉건통치배들의 죄행을 일정하게 폭로화고 진보적인 견해들을 내놓음으로써 당시 조건에서는 일정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동적 양반계층을 반대하는 진보적 양반계층의 이해를 대변한 실학파 인물들은 그들 자신의 사회계급적 제한성과 당시 생산력과 과학 발전 수준의 제한성을 면할 수는 없었다.

 

이로부터 실학파 사상가들이 기초한 세계관은 봉건 유교사상인 주자학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그 자체가 매우 관념론적이었다. 동시에 그들이 제기한 사회정치적 견해도 봉건제도와 특권적 양반신분제도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근본입장에서 제기된 개혁사상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실학파 인물평가와 관련된 교시를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실학파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 전반을 평가함으로써 지난 시기 이 분야에서 나타났던 편향들을 일정하게 시정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실학사상발생발전의 사회력사적 전제 …………11

제1절 <실학>개념에 대한 력사적 고찰 / 13

제2절 17~19세기의 우리나라 사회경제형편과 계급관계 / 25

제3절 17~19세기의 우리나라 자연과학의 발전 / 42

제2장 실학사상발생발전의 사상리론적 전제 …………69

제1절 리조 봉건지배계급의 통치사상 / 71

제2절 17~19세기의 실학사상발생발전의 사살리론적 전제 / 42

제3장 초기의 실학 ……………………111

제1절 초기의 실학발생의 사회력사적 환경 / 113

제2절 류형원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116

제3절 리익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160

제4장 중기의 실학 ……………………247

제1절 18세기 후반기~19세기 상반기 사회역사적 환경 / 249

제2절 홍대용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255

제3절 박지원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300

제4절 박제가의 사회정치 사상 / 300

제5절 정약용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386

제5장 말기의 실학 ……………………511

제1절 말기 실학발전의 사회력사적 배경 / 513

제2절 리규경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516

제3절 최한기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545

 

 

 

저자

 

정성철 (정보 없음)

 

 

 

 

 

야무의 간단 평

 

<조선철학사> 필진 중 한 사람인 정성철이 1974년 완성한 책으로 이전의 실학 연구 경향과는 다른 주체사상 입장에서 접근한 실학의 통사. 유물론과 계급적 인식이 강조되어 읽기에 매우 생소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온 <실학사상사> 개설서들과 비교해서 보면 건질 게 꽤 많다.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서술체계도 달라서 신선한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원전의 충실한 인용으로 이루어진 서술체계가 돋보여, 일독할 가치는 충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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