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지식 중 하나가 경제학이다. 고등학교 때 경제에 치를 떨어 학부 2학년 때까지 경제학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 소개되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교양서적을 읽어도 경제이론으로 넘어오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할 수 없이 경제이론을 알기쉽게 소개해 준 책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주섬주섬 읽었던 책이 꽤 되어서, 4학년 때는 맘먹고 경제학 개론 수업을 들었었다.
하지만 엄청난 두깨의 경제학 교과서는 나를 주눅들게 했고, 교양으로 읽었던 책들은 시험에서 별로 도움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부의 경제학 시험은 교과서에 있는 이론을 그래프와 함께 답지에 옮겨 적는 일이였기에.
그 두꺼운 경제학 교과서에서 달랑 4문제만 나왔는데, 내가 이해하고 썼는지 아니면 외워서 썼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확인했던 건, 교양경제학 책들이 시험에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사실.
이후 졸업을 하고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미시와 거시에 대한 교과서를 아주 가열차게 읽었더랬다. 강의도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랬더니 연습문제의 상당수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교양경제학 책을 읽으니, 책들이 다시 보였다. 가독률이 늘긴 늘었지만,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와 수식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할 수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경제학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경제학 교과서를 읽는 다는 건 엄청난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경제 이론을 알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한다는 건 시간낭비일 수 있다.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론이 잘 정리된 교양서를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된다. 무엇보다 분량이 작다. 내용 역시 전문 용어와 그래프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교양경제학 책들의 유용성이 있다.
최근 교양경제학 책들은 교과서에 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맨큐로 대변되는 교과서들이 워낙 쉽고 자세해서 교양경제학을 볼 필요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서술되어 있다고 해도 교과서는 교과서다. 배우는 내용이 정해져 있어 쉽게 지루해 진다. 혼자 읽어나가다보면 미시경제학 중간 까지도 읽기가 버겁다.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큰 배판의 책을 읽는다는 건, 쉬운 설명이라도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에 반해 교양경제학 책은 아무리 오래 잡아도 한 주일이면 완독할 수 있다. 대체로 분량도 300페이지 안팎이다. 다양한 저자들의 능력으로 인해 교과서보다 훨씬 다채롭고 이색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교과서에 있는 비슷한 미시와 거시의 내용이라도 저자에 따라 구성과 문체가 달라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사례가 무척 구체적이고 재미있다. 교양경제학의 매력은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지금까지 읽어왔던 교양경제학 책 중에서 스테디 셀러 위주로 추천서를 추려봤다. 우리 몸이 비타민을 필요로하듯이 교양을 위해서는 정신의 비타민을 필요로한다. 섭취하지 않으면 교양에 빈혈을 일으킬 수 있기에.
그래서 교양경제학 추천 도서 10권을 꼽아 봤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담겨 있기에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읽은 것이 많지 않다!) 더군다나 난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다.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모든 걸 감안하고 봐주시면 고맙겠다.
1.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 웅진지식하우스
<경제학 콘서트>는 절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비록 거시경제학 비중이 적지만 이 책의 최고 강점은 경제학적 마인드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
대부분의 교양경제학 서적들은 이론을 쉽게 풀어 놓거나 이론과 사례를 적절히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경제학 콘서트>는 경제 원리로부터 새로운 사실에 응용과 적용력을 높이게끔 구성되어 있다.
마인드를 훈련하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다.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을 스타벅스 커피숍으로 매끄럽게 풀어내는 1장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교양경제학 책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쇄를 넘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권도 발간됐다. 책 타이틀에 '콘서트' 열풍을 주도한 대표적인 책.
2.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교양경제학 코너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책이 아닐까 한다. 어느 정도 체계있는 서술이 강점.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게 흠이다. 여기서 알맹이란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거.
최소한 그래프를 곁들여 설명하거나, 그래프를 소개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론을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쉽게 말해서 '레온티에프 역설'이라고 하면 레온티에프 얘기만 줄창 나오다가 이론 설명은 뭐, 한 줄 정도로 정리한다랄까.
뭐,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를 엿본다는 취지로 본다면 괜찮다. 뭐니뭐니 해도 쉬우니까! 입문서로는 더 없이 좋은 책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최고의 경제학 교양서라고 정평이 났나부다.
어쨌든, 같은 저자의 <유쾌한 경제학>도 있으니 같이 보면 좋을 듯. 고1 학생도 쉽게 읽으실 수 있다니, 입문서로는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다.
3. <10대 경제학자>, 요젭 슘페터, 한길사
경제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려운 이론과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를 복잡한 그래프 없이 간결하게 소개한 책이다. 오래 전 고전에 반열에 오른 슘페터의 명저 중 한 권.
<10대 경제학자>는 그래프 없이 학자와 경제 이론을 소개한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서술을 자랑한다. 그것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말이다!
이 책에는 '한계효용'과 '파레토효용'과 같은 익숙하고도 중요한 이론들을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와 그 뒷 얘기를 통해 재밌게 소개하고 있다. 이론의 핵심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학자와 이론 그리고 학파가 어떻게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어떤 학자가 어떤 학파적 배경에서 이론을 전개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저다. (아쉽게도 절판이다.)
4.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부키
케인즈 이후 경제학자 중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는 폴 크루그먼의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는 책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경제학 책이다.
주로 주류 경제학자들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저절로 경제학적 이론을 습득하게 된다. 주로 아주 쉬운 사례를 들어 거창한 이론의 맹점을 드러낸다. 자연스럽게 이론의 부실함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명쾌하게!
아쉽게도 번역으로 인해 약간의 짜증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가장 잘 나간다는 경제학자의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책이다. 모형을 갖고 허점 있는 이론을 공격하는 석학의 신랄한 논리를 맛볼 수 있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어떻게 다양한 사건들을 비판할 수 있는지 체험해 볼 수 있는 명저. 크루그먼의 신랄한 비판은 글 읽는 재미도 배로 준다~
5. <유한계급론>, 토스타인 베블런, 우물이 있는 집
제도학파를 창시하고 시카고 대학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베블런의 대표작이다. 얼마나 재밌는지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시니컬한 베블런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경제학 책인지 아니면 사회학 책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에는 재미있는 문화인류학 개론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상류층과 재벌 그리고 졸부들을 싫어하는 분들이 보면 상당한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의 가치와 명성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읽기 쉬운데, 1급 경제학 고전이라....구미가 당기지 않을 런지..
6. 발칙한 경제학, 스티븐 렌즈버그, 웅진지식하우스
스티븐 렌즈버그는 교양 경제학의 대가로 통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발표하는 책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일 거다. 대표작 <런치타임 경제학>(<안락의자의 경제학> 개정판)을 보면, 그가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얼마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뭐, <괴짜경제학>과 뭐가 그리 다르냐고 묻는 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왜 극장에선 팝콘을 더 비싸게 팔까?" "안전벨트 의무화가 오히려 교통사고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논의들은 두 책이 매우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발칙한 경제학>은 정말 '발칙한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이 발표된 이후 독자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단다. 주제들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원나잇 스탠드의 확대를 통한 에이즈 예방, 구두쇠의 미덕, 모성과 소득의 반비례 관계 등 하나같이 도발적인 주장들로 넘친다.
렌즈버그에 따르면, 이런 도발적인 주제와 논증 방식을 채택한 이유가 '세상의 속살을 읽는 힘'을 위해서라니, 일독할 만한 매력적인 책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7. <경제학 산책>, 조영달&홍기현, 김영사
사실 이 책은 교양서를 가장한 교과서다. 곳곳에 그래프와 설명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읽었던 건 96년 1판 이었는데, 이게 계속 증보하여 지금은 1판보다 책이 2배로 늘었다. 그러니까 거시에 대한 그래프도 많아졌다는 얘기.
하지만 두꺼운 경제학 개론이나 원론 책을 보기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고, 내용이 없다고 투덜거렸을 때 읽은 책이니, 내용의 밀도는 보장한다.
아마도 교양경제학에 속하는 책 치고, 이 책만큼 내용이 충실한 책은 드물듯. 그만큼 읽기가 녹록치 않다는 거. 하지만 산책하고 나면 꽤 많은 경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8.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인물과 사상사
유병률 기자의 <서른살 경제학>은 이제 헌책방에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말은 그만큼 이 책이 많이 팔렸다는 거.
삼십 대를 위주로 썼지만, 경제에 문외한인 30대를 위해 썼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책의 최고 강점이라면,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어려운 이론을 쉬운 사례로 풀어준다는 것. 경제원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론을 이 책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앞 부분에 설명된 게임이론의 사례가 압권.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도래할 '실버 시대'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 몰랐을 거다. 2장에 서술된 대기업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실물 경제 위주의 내용이다 보니 이론적 깊이는 덜한 편이다. 경제 주간지 읽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그만큼 쉬운 서술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경제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단지 현재 절판이라 아쉽다. 하지만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널려 있으니 일독하면 의외로 많은 걸 얻을 수 있겠다.
9.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부키
이거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올라 유명세를 떨친 책이다. 2010년 알라딘 올해의 책이기도 하다.
캠브리지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의 대표작 중 하나. 영국에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아마존 경제 부문 1위에 올랐다고 하니, 장하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일 것이다.
이후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대만, 태국 등 모두 9개국에서 출간되어 있단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23가지 중 세번 째 꼭지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다.
지루할 겨를도 없이 휘딱 읽을 수 있는 교양 경제서. 아직 읽지 못하신 분은 얼른 일독하시길 바란다~
10. 맨큐의 핵심 경제학, 그레고리 맨큐, 교보문고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그 유명한 맨큐 경제학 시리즈. 그 중에서도 <맨큐의 핵심경제학>을 꼽았다. 그 이유는 맨큐 시리즈 중 가장 분량이 적으면서, 핵심 사항은 죄다 담겨 있으니까.
1999년 교보에서 처음 <맨큐 경제학>을 보았을 때 경의로웠다. 경제학 교과서가 전혀 교과서 같지않았기 때문. 당시 경제학 교과서는 2색 인쇄로 무지막지하게 두껍고 어려운 서술로 정평이 나 있었다.
헌데 <맨큐의 경제학>은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컬러풀한 그림들과 함께 실려 있는 각종 읽기 자료들(신문기사와 사례연구)은 교과서와 교양서의 장점을 고루 반영한 듯했다.
서술은 얼마나 쉬운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보다 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고교 상위권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나 뭐라나.
교양경제학 책을 읽고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 다는 분들에게 강추할 수 있는 책이다.
[덧]
이 외에도 일독하면 좋을 교양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