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디어!! 짐멜의 대표작인 <돈의 철학>이 재판되어 나왔다. 꼼꼼한 각주가 돋보이는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 고기토 총서 시리즈. 이 가운데 '세계사상의 고전' 27번 째 책이다.

 

내가 소장한 책은 한길사 본인데, 너무 오래되서, 그리고 번역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새 판본이 나오길 기다리고 기다렸다. 나왔긴 한데, 헐~ 비싸서 못사겠다..ㅜㅜ  세상에, 5만원이 넘다니...@_@

그래두 우리말처럼 술술 읽히면 구입할 수밖에 없을 듯..OTL

 

이 책의 재간행을 기념할 겸, 짐멜에 대해 몇 자 끄적거려 놓아야 겠다. 그 이유는 누가 이 책을 사회학의 3대 명저 가운데 하나로 운운했기 때문.

 

물론 <돈의 철학>이 독창적이고 빼어난 책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과연 사회학을 정초시킨 3대 명저에 꼽힐 수 있는가?'가 내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사회학은 철학에서 독립한 학문임에는 이설이 없다. 근데, 그 시조가 누구이냐고 물으면 명확히 답하기가 쉽지 않다. 콩트가 그 시조라는 걸 고교 교과서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콩트가 사회학을 창설한 사람이라는 설은 통설이 아니다. 다수설 쯤 된다. 왜냐하면 일부 학자들은 마르크스를 사회학의 정초자로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야스퍼스다. 야스퍼스는 <철학적 사유의 작은 학교>(서광사, 1989)에서 마르크스를 사회학의 시조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 일부 학자들은 에밀 뒤르켕의 <자살론>이 사회학을 연 최초의 문헌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뒤르켕이 사회학이 말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려고 노력한 시조였고, 또한 사회학 기술(글쓰기 형식)의 원형이었기에 그런 것 같다. 고전 사회학의 시조를 꼽을 때 뒤르켕과 베버는 빠지지 않는 걸로 봐서도 일말의 설득력은 있다.

 

 

 

 

 

 

 

 

 

 

 

 

 

 

뭐, 어찌되었던 사회학의 시조는 고교 교과서에 그리고 서양철학사에 콩트로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에 콩트의 <실증철학 강의>는 사회학을 정초시킨 시발점이다. 이는 경제학에서 애덤스미스의 <

국부론>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책이다.

 

 

 

 

 

 

 

 

 

 

 

 

 

 

 

그래서 사회학의 3대 명저를 꼽으라면 우리는 콩트의 <실증철학 강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뒤르켕의 <자살론>을 꼽아야 한다. 이들 책이 사회학의 근간을 마련한 책들이기에 그렇다. (이는 경제학에서 <국부론>, <자본론>, <일반이론>을 경제학 3대 명저로 꼽는 이유와 비슷하다.)

 

물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 칼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등이 사회학의 명저임은 분명하지만 3권 이후의 후순위로 꼽을 수 있는 저작들이지 않을까....하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다.

 

 

 

 

 

 

 

 

 

 

 

 

 

 

그래도 짐멜의 <돈의 철학>은 후순위에 놓기에 지극히 불만스럽다. <공산당 선언>이 달랑 100여 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인데, 단지 시대가 앞선다는 이유만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돈의 철학>이 명저의 후순위로 밀린다는 건 아주 많이 아쉽다. 그렇다고 사회학 3대 명저로 꼽을 수도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떠벌인 낯작이 있는데...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돈의 철학>에 대한 내 느낌과 짐멜에 대한 단상 그리고 돈에 대한 관심 주제를 부가하여 짐멜에 대한 애정을 좀 드러내고자 한다.(흠흠...--;;)

 

짐멜과 동시대의 인물로는 막스베버가 있었다. 베버와 짐멜은 독일 사회학의 공동창립자였지만 짐멜은 살아 생전 베버만큼 학자로서 유명하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그리 조명을 받는 학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가 전형적인 사회학 이론가가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글쓰는 스타일을 보면 학계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았을 거란 생각이다. 솔직히 내가 게오르그 짐멜의 주저인 <돈의 철학>(한길사, 1988)을 읽고 느낀 건 바로 이점이었다. (짐멜의 저서를 읽은 건 이 책이 유일했지만) 것두 완독한 것이 아니라 1/3 정도 읽고 옮긴이 해제를 읽었던 게 전부였음에도 보통의 이론서하고는 판이하게 글이 달랐기 때문이다.

 

읽은 지 오래되서 주요 내용은 휘발성 기억으로 날라간지 오래다. 하지만 짐멜의 글쓰기 스타일은 정말 독창적이었다. 내가 읽었던 1988년 한길사 본은 무려 638페이지 달하는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했다. 당시 출간된 한길사 본은 한 페이지에 30줄 이상 아주 빽빽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점은 책의 처음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 한 개의 각주와 미주도 없었다. 소제목도 없이 장의 내용이 소설처럼 유려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읽으면서도, '허~ 참 신기한 책이네'를 반복적으로 되네였다. 사회를 분석한 학술서가 주가 없다니!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짐멜의 저서를 한 권밖에 읽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짐멜은 주로 자유로운 에세이 형식을 자식의 글쓰기 스타일로 삼은 것 같다. 정제된 논문 형식이 아닌 에세이 형식의 글이었기에 당시 독일 교수 집단에게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듯. (뭐,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아주 심하지만~)

 

하지만 <돈의 철학>이 영어로 번역됨에 따라 짐멜은 문화와 사회를 연구하는 신진 연구자들에게 점차 인지도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연구자들이 학계를 주도할 쯤 짐멜은 미국 사회학 이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부각된다. 그의 주요 이론인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사회학설사에서 분명히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중요 이론이다.

 

생각건데, <돈의 철학>도 짐멜의 '상호작용론'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보인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근대 세계에서 화폐경제가 출현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거시적 상황이 미시적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다방면으로 스케치 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인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맞는지 다시 한번 책을 읽고 확인을 해 보고 싶다.

 

 

예전부터 화폐와 돈에 대한 책들을 모으고 있다. 돈이 곧 화폐인가?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학분야에서는 줄기차게 화폐로 쓰는 듯...개인적으로 돈이 더 좋은데..

까치 출판사의 <돈의 세계사>가 절판되고 <화폐의 역사>로 재간 된 것도 무척 불만스럽다. 프리드만의 <돈의 이야기>가 <화폐역사의 교훈>이나 <화폐 이야기>로 재간되면 되게 신경질이 도질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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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3-11-03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년전쯤인가 '화폐, 마법의 사중주'라는 책을 읽었는데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네요. 돈의 철학은 듣기는 정말 많이 들었던 책인데, 읽을 엄두는 전혀 나지 않는 군요.^^;;;

yamoo 2013-11-03 21:55   좋아요 1 | URL
앗! 가넷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제 서재에서 정말 오랜만에 뵙는듯^^

오~ <화폐, 마법의 사중주>라는 책도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반드시 찾아 볼게요. 흥미롭다니 급 땡깁니다..ㅎㅎ
뭐, 저두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펼쳐 보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더라구요. 단지 압도적인 분량에 먼저 기가 질리는게 흠이지만^^;;

쉽싸리 2013-11-03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중권교수의 한겨레 서평을 보니 짐멜은 가치를 '교환'의 측면에서 집증탐구 한다고 하더군요. 고진선생도 교환양식에 방점을 두는거 같은데, 흥미롭네요. 근데 높은 가격과 천쪽에 달하는 두께! 가난한 샐러리맨에게 화폐가치는 자꾸만 떨어져만 가고요...ㅜㅜ

yamoo 2013-11-04 10:53   좋아요 1 | URL
와~ 쉽싸리님 반갑습니다.^^ 흠...진중권 씨 서평을 읽어봐야 겠어요~ㅎ 그러고보니 교환양식으로 짐멜의 사회학을 분석한 논문도 본 것 같습니다.

아, 근데 책가격은 정말 ㅎㄷㄷ 사 놓고도...천페이지의 압도적인 분량에 정말 읽을 엄두가 안날거 같다는...ㅜㅜ 정말 가난한 샐러리맨에게 이런 책은 사치인 거 같아욤..^^;;

쉽싸리님, 페이퍼좀 발행해 주시어요~~^^

oren 2013-11-0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멜의 《돈의 철학》이 엄청난 분량과 가격을 자랑하는 책이면서도 또한 사회학 분야의 명저임을 yamoo님의 글을 통해 아주 자세히 알게 되는군요. 이 페이퍼에 담긴 몇몇 다른 책들은 읽어봤으나 짐멜의 책과 yamoo님께서 오래 전부터 모아 놓으신 '돈에 대한 책들'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네요.

제가 읽었던 '돈에 대한 책들' 가운데는 《돈, 그 영혼과 진실》(버나드 리테어 지음)이라는 책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원형심리학과 각종 신화를 통해 '돈의 영혼과 진실'을 설명한 부분이 특별하더라구요. 지금 살펴보니 아직까지 절판되지 않았고 제가 쓴 리뷰도 붙어 있네요.)

피터 L.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지금 보니 구판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은《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로 나와 있네요)도 아주 유익하게 읽었던 책이었던 것 같아요.(구판에는 제가 쓴 리뷰도 있네요)

yamoo 2013-11-04 10:57   좋아요 1 | URL
돈에 대한 다른 책들도 있었던 거 같은데, 현재는 저것들만 남아있어요. ㅜㅜ

오~~<돈 그영혼과 진실> 얼른 검색해서 장바구니 담아야 겠어요! 원형심리학과 신화를 통해 본 돈이라...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그리구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이것두 찾아볼게요. 알라딘 중고서점에 어딘가 있을 거 같다는. 오렌님께서 유익하게 읽으셨다니, 뭐 더 알아볼 건덕지도 없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 해주셔서요! (무한 감솨~~~ )
돈에 대한 책들이 점점 늘어가 뿌듯합니다~ㅎ

감은빛 2013-11-04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경제학 공부모임'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무님의 야무진 글을 통해 만나니 무척 반갑네요!
일단 보관함에 넣었지만, 가격이 무시무시하네요.

사회학의 시조를 말씀하셔서 오랜만에 전공 수업시간이 생각났습니다.
별로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졌던 이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

yamoo 2013-11-05 22:02   좋아요 0 | URL
아, 경제학 공부모임에서 경제 공부도 하시는군요!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저두 가격이 무시무시해서 망설이고 있답니다. 두깨는 부차적이에요..ㅎㅎ

감은빛님이 사회학과를 전공하셨던 걸 새롭게 알았네요^^
전공은 열공하지 않았더라도 타과에서 보기엔 기본은 합니다...개인적 기준이 높은 분들이 종종 말씀하시는 부분이지요~
짐멜을 통해 다시한번 전공 기억을 떠올려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가요. 경제학과 사회학의 만남...좋은데요~^^

페크pek0501 2013-11-0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만원이라는 책의 가격보다 천 쪽이 넘는 책의 두께에 부담스러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겠어요.ㅋ

저는 <세계명저 사회학 30선>이란 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으로 사회학 책을 소개받아 하나씩 읽으며 공부하기로 했죠. 좋은 정보를 주는 책이랍니다. 님이 언급한 <자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공사당 선언> 등이 다 나와 있어요. 저는 <자살론>에도 큰 충격을 받았죠. 이런 지적 충격이 재밌어요.
심리학 서적에 비하면 사회학 서적은 많이 읽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돈에 대한 것은...
제가 아는 건,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정도... ^^

yamoo 2013-11-05 22:11   좋아요 1 | URL
전 오만원.....이게 걸려요~ 두깨는 제게 부차적이에요..ㅎ

저두 그 책 가지고 있어요. 일본 사람이 쓴 작은 문고본 책이죠. 후루룩 읽기 좋더라구요~ 저번주에 사서 다 읽었어욤^^

요기 소개된 책 중에서 반 이상은 제가 읽었던 거에요. 모르는 저서도 많아요. 특히 일본 사회학자들의 책은 생소한데, 번역된 게 있는지 찾아 보고 있어요.

심리학과 사회학...가만히 생각해보면 비슷한 것두 같아요. 심리학은 개인에 대한 연구고 사회학은 사회에 대한 연구라서 개인에 대한 연구가 사회로 확대된 걸로 얼추 기억하면 편해요. 특히 사회심리학이 그래요. 물론 콩트나 뒤르켕 베버의 책을 보면 심리학과 많이 다르지만서두요~

보드리야르듸 <소비의 사회>..이거 재밌죠. 사회학 이론 서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기억의 한 권입니다. 전 밀즈의 <파워엘리트>를 가장 잼나게 읽었어요. 소비의 사회는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먼저 읽고 보면 훨씬 도움이 되요.

어쨌든 즐거운 사회학 산책 시간 되시길~^^

종이달 2021-10-1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몇일 전 <그래비티>를 봤다. 영화 예고편을 보고 꼭 봐야겠다고 별렀다. YTN영화 소개 코너에서도 이 작품이 수작이니 꼭 보라는 말과 함께 스펙터클한 영상미를 놓치지 말라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서 시계를 보니 영화의 러닝타임은 90분 정도. 아, 그런데 나는 에일리언도 나오지 않고 우주 전쟁도 없는 SF영화를 너무도 몰입해 본 것이다.

 

고작 2인, 아니 중반부 이후 주인공 혼자 이끌어가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SF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 같다. 우주 재난 영화를 다루면서 이런 포스의 연출력을 자랑하는 영화는 처음 봤다.

 

무엇보다 우주 공간에서 우주 미아가 되는 이야기는 그 과정만 재미있지 결과는 지루함의 극치다. 우주선이 난파되거나 고장나서 우주에 표루하고 있다는 사실은 뭘 말하는가? 그것도 혼자이면?

 

뻔하다.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곤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전부다. 점점 바닥나는 산소를 조금씩 소비하려고 애쓰면서, 무참히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이야기.

 

이런 장면은 SF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수도 없이 봤지만, 전체 플롯 구조에서 지나가는 한 장면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냥 '그는 죽어가겠지'라는 추측으로 생략된 내용을 메우곤 했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여타 SF작품에서 그냥 흘려버렸던 '우주 미아'의 상황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설정 상황은 일본 만화 <플라네테스>의 한 에피소드를 영화로 옮겨 놓은 듯한데, 내용은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고작 2명 뿐이라는 사실이다. 처음에 미 우주선에 붙어 있는 대형 허블 망원경 점검 장면에서 5명 정도 나오지만 소련 인공위성 파편이 이들이 작업하는 곳으로 들이닥칠 때 모두 사망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망원경 수리자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와 수리 책임자 매트(조지 클루니) 뿐이다. 하지만 조지 마저도 러시아 정거장에서 저 먼~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매트가 날아가기 전까지 둘의 대화가 영화 중반까지의 내용이다.

 

혼자 남은 스톤은 소련 모듈 속으로 들어가서 소유주 우주선을 타고 중국 모듈로 이동한다. 그리고 지구로 점점 추락하는 중국 모듈과 함께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이 우주 공간에서 매우 리얼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지구로의 귀환 과정이라는 지극히 심플한 줄거리를 갖고 있지만 각 과정을 단계화시켜 극적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우주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모듈까지 가는 과정도 매우 힘들게 그려지고, 모듈에 도착해서도 탑승을 방해하는 돌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탑승 이후에도 역시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영화 감상자는 주인공의 악전 고투를 몰두하면서 보게 된다. 저 사건 이후에는 도대체 뭐가 터질지 조마조마하면서.

 

물론 이런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상황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웰메이드 작품'이라고까지 느낄 수 있는 데에는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그 방식에 있다.

 

영화의 플롯 구조는 주인공의 지구 귀환 과정과 삶의 과정을 적절한 상징 장치들을 통해 빼어나게 유비시킨다.

 

영화의 주인공 스톤 박사는 허블 우주망원경 수리 책임자 매트(조지 클루니)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어두운 삶의 과정을 토로한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후 자신의 삶은 엉망이 되었다고. 퇴근 후 주로 뭘 하느냐는 매트의 이어진 물음에 대해서는 그냥 계속 운전을 한다는 말로 답한다. 이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그녀의 상태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에게 우주 공간에서의 작업은 무의미한 시간들을 채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말로 볼 때 그녀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삶의 의지가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다.

 

이로 볼 때, 우주 공간은 그녀에게 곧 죽음과 동등한 의미를 상징한다(이렇게 유비할 수 있도록 보여진다). 하지만 갑작스런 조난을 당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그녀는 탈출(삶)에의 의지를 새롭게 다진다.

 

이는 소유주 우주선 안에서 극명히 보여진다. 낙하선 줄을 분리하고 드디어 중국 모듈로 날아갈 찰나 연료가 바닥난다. 이때 스톤은 안타까움에 몸부림 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 순간 매트의 환상을 통해 '착륙은 발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탈출(삶)의 의지가 깨어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죽음의 공간(우주)에서 삶의 공간(지구)으로의 이동이다. 스톤이 마지막에 헤엄쳐 해안에 도착하여 흙을 움켜쥐고 충만한 표정을 짓는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흠...나는 이렇게 보였다~--;; 주인공이 새로 태어나기 위한 상징적 장치들이 영화 곳곳에 있다. )

 

우주 재난이라는 SF소재로 죽음과 삶이라는 진중한 주제의식을 깔끔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그래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명작이 될 듯하다. 올 해 최고의 개봉 영화로 손색이 없을 듯~.

 

 

[덧]

우주 공간에서 에일리언도 나오지 않고 우주 전쟁도 없으며, 고작 등장인물이 달랑 2명인데, 영화를 몰입하고 볼 수밖에 없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촬영을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하고, 감독의 연출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산드라 블록의 신들린 듯한 연기는 보너스. 그녀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는 이전에 미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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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0-3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평생의 소원 가운데 하나가 '우주여행'이고, 죽을 땐 (살아생전 돈을 많이 벌어서) '우주장'(우주로 쏘아올려져 뼛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사라지는)을 치르는 겁니다.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서 더더욱 '우주'로 날아가 보고픈 열망이 커지더군요.

스톤 박사가 우주에서 마침내 지구로 되돌아와 흙을 움켜잡고 일어서는 장면도 참 좋았고, 그 전에 홀로 남겨진 채 '지구의 소리'와 애타게 교신하는 장면도 참 인상적이더군요.

yamoo 2013-11-01 18:14   좋아요 0 | URL
아, 오렌님께서는 그 환상적인 우주장이 꿈이시군요! 근데, 알아보니 비용이 어마어마 하더라구요~ 97년인가 어느 갑부가 우주장을 치뤘다는 외신 기사를 봤어요.
소원이 우주장이면 정말 이 영화를 보면서 바람이 커지시겠어요^^

저도 그 교신장면을 처음 쓸 때 넣었는데 이상하게 흐름이 깨져서 삭제했어요. 중국 방송인가...계속 솰라솰하 하는 와중에 개소리가...ㅋㅋ 따라하는 스톤...그라다가 울먹이구..저두 인상깊었던 장면이었어요~ㅎㅎ

hnine 2013-10-3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해요.
yamoo님의 영화 후기도 훌륭합니다.

yamoo 2013-11-01 18:20   좋아요 0 | URL
아, 나인님께서두 보셨군요! 사실 영화 후기를 좀 멋들어지게 써보고 싶었어요. 영화 자체가 넘 멋져서요~ 삶과 죽음을 정신분석학을 원용해 한 번 써보려 했는데...글이 계속 삼천포로 빠져부려서 걍 본 소감만 정리했어욤~
10줄 안으로 짤막하게 쓸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길어졌다는....--;; 그래두 훌륭하다고 해 주신 엣지나인님께 천개의 감사를~^^

페크pek0501 2013-11-0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이렇게 많군요.(댓글을 보니까...)
저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며칠 전 '토르'라는 영화를 봤답니다. 안경을 쓰고 보는 영화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관람료는 만삼천원. 비싸요.

저는 영화의 줄거리나 주인공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서 써야 하는 영화 리뷰를 쓰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리뷰는 쓸 엄두를 못 내요. 책이라면 들춰 볼 수 있지만 영화는...
그래서 이런 리뷰를 쓰는 분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하죠.ㅋㅋ
재밌게 읽고 갑니다. 두 사람만의 열연으로 펼쳐지는 영화라는 게 흥미롭군요.

yamoo 2013-11-03 15:14   좋아요 0 | URL
네..요즘 대세는 이영화와 <캡틴 필립스>같더라구요.ㅎ SF매니아인 저로서는, 특히 비주얼 위주의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지라 예고편보고 별르고 있었어요..ㅎㅎㅎ 뭐, 비주얼도 훌륭하고 내용도 훌륭하고 나무랄데없습니다. 단지 러닝타임이 살짝 짧은 게 아쉬워요~

3D 디지털 영화를 보셨군요~ 관람료..ㅎㄷㄷ 한데요^^

흠, 그러고 보니 페크님 서재에서 영화리뷰를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욤~ 저야, 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수준이지만 이곳에서는 전문적인 영화평들이 꽤 자주 올라오는 거 같아요. 영화를 보고 장문의 글을 쓰는 사람이 전 존경스럽던데요~ㅎ A4 넉장은 가뿐히 넘는 글들을 보면 ㅎㄷㄷ한 느낌밖에 안든다는^^
 

‘하룻밤에 읽는’ OOO, ‘하룻밤 지식여행’ 등의 시리즈가 있다. 대중들의 기초적인 교양을 위해서 출판사가 기획한 인문교양 총서들이다. 이 총서들의 혁혁한 공로는 문외한에게 고전과 인문학자들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주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난해한(?) 내용이 무척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이해를 돕도록 삽화와 도표 그리고 만화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압축적인 정보전달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총서 시리즈다.


한데, 이 시리즈 타이틀을 보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뭔가가 이상함을 느낀다. 책 타이틀과 달리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지 않아서다. 그리고 읽는 중에 알아 버린다. 책 시리즈의 타이틀은 완전 ‘낚기용’ 떡밥 대마왕이라는 사실을. ‘하룻밤’ 때문에 이 책을 구입하고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는 리뷰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래, 뭐 마케팅 면에서는 칭찬해 주자. 하지만 사발도 이런 사발을 치면 곤란하다. 이런 문구로 순진한 대중들을 기만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책과 친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이런 식으로 속았다는 느낌을 심어주면 그들에게 영영 책(특히 인문 책)을 멀리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책 내용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입문자가 읽기에 평이하고 알차다. 이런 좋은 책의 이미지가 낚시용 문구로 한 순간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되겠다.


그런데 이런 계열의 총서가 하나 더 있다. 중앙M&B에서 출간하였던 ‘30분에 읽는’시리즈(M&B 출판사는 이후 랜덤하우스중앙으로 바뀌었다). 이 시리즈는 분량상 위 시리즈보다 얇고 무게가 가볍다. 배판도 약간 작다. 물론 ‘30분’ 시리즈(전30권)도 그 기획의도가 ‘하룻밤’ 총서 시리즈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겹치는 주제가 꽤 많다.


특히 ‘하룻밤’ 시리즈와 살짝 비교해 살펴보아도,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사르트르>, <플라톤> 등이 눈에 띈다. 그래서 같은 주제를 겹쳐 읽으면 꽤 흥미로운 구도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주제에 어떤 책이 더 잘 편집됐는지 비교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솟구친다. 두 시리즈를 모두 읽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운 비교 놀이 쯤 된다.

 

 

 

 

 

 

 

 

 

 

 

 

 

 


 

 

(사실 <프로이트>의 타이틀을 달고 출간된 교양 총서 시리즈들은 꽤 많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하룻밤 지식여행, ‘30분에 읽는’ 시리즈, 옥스퍼드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 HOW to READ 시리즈, 20세기를 만든 사람들 시리즈 등) 

 

 

 

 

 

 

 

 

 


아, 근데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30분에 읽는’ 시리즈가 정말 정직하게 30분 분량 정도만 투자하면 다 읽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실로 놀라운 편집이다. 그 방면의 문외한이라도 30분이면 책의 주제를 거의 다 인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절대 설레발치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최대 장점인 요점 정리(각 절의 말미에 정리돼 있다)만 보면 책의 핵심을 모두 다 본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키워드도 덤으로 알 수 있다. 30분이면 내용의 뼈대와 핵심이론이 자연스럽게 잡힌다.


예컨대 이 시리즈 중 하나인 <마르크스>를 보자. 먼저 장별 목차에서 핵심을 확인할 수 있고, 본문의 키워드와 말미의 요점을 보면 본문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모든 장을 이런 식으로 보면 마르크스가 어떤 책을 저술했으며 각 책의 핵심 이론이 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평생 어떻게 살았고, 추구한 이념은 무엇이었으며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30분 안에 확인할 수 있다.


문외한이 30분 정도 투자해서 한 주제에 대해 이 정도의 체계적인 이해(지식)를 갖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그걸 가능하게 해 준다. 물론 관련 분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본다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데 30분 정도면 족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흩어진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그만인 시리즈다.


인문학을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나, 자신이 아는 게 정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시리즈로부터 그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 뒤에 읽어 가야할 중요 참고문헌도 정리되어 있기에 최적의 입문자용 2차 문헌이다.


무엇이든지 입문자에게는 기초와 방향이 중요하다. 해당 방면에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해당 지식을 무장시켜 주는 이런 책은 정말 유익하고도 필요하다. 0과 1의 차이와 2와 3의 차이는 전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1이란 해당 방면에 대한 기반이자 출발이기에 그렇다. 1을 갖춘 사람이 3정도의 책을 읽는 건 가능하지만, 0은 읽어 나갈 수 없다.


결론적으로 본 페이퍼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하나다. 기본 교양 총서는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출간되어야 하고 장기간 읽혀져야 한다는 거.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총서의 생명력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짧아 유감스럽다. 위에서 소개한 ‘하룻밤’ 시리즈는 점차 절판되어가고 있고, ‘30분’ 시리즈는 모두 절판되었다. 모두 다시 발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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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김진명, 이원호, 김종성 작가들의 작품은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다. 이들이 출간한 책은 수십종에 이르며, 발행부수도 상당하다. 대중소설, 더 좁히면 이른바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이들 중 김진명은 단연 톱이다. (아, 이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의 어머니의 평이기도하다. 어머니가 무척 김진명 작가를 좋아하여 그의 책을 도서관에서 모두 대출할 정도이니..)

 

그도 그럴 것이, 김진명 소설 중 상당 수는 영화화 됐다.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는 그래서 김진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그가 얼마나 대중에게 어필하는 작가인지는 구립 도서관 서가에만 가 봐도 알 수 있다. 가는 도서관 마다 비치되어 있는 작가의 소설들은 하도 많이 봐서인지 거의 다 너덜너덜 한 수준이다.

 

내 어머니가 광적으로 좋아하고, 대중이 지극히 사모해 마지 않는 김 작가의 소설을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더랬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작품 더 보았지만, 움베르토 에코에 환장하면서부터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밀란 쿤데라를 만나고 칼비노 류의 세계문학 작품들을 만나면서 그의 작품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김진명 작가를 외면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언젠가 김 작가가 인터뷰를 한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결정적이었다. 그 때 그가 말하길, 자기의 작품은 완벽한 문헌 고증과 철저한 사실 조사를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작품이기에 가치가 있다는 논조였다. 더군다나 표절은 있을 수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 인터뷰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고 이휘소 박사의 유고로부터 작품을 쓴 OO작품을 표절했다는 당시 언론 기사들에 대한 작가의 항변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러 정황상 나는 김 작가가 표절을 했다고 확신을 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확신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이 사건이후 나는 김진명 작가를 멀리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세계명작을 읽으면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학계가 발칵 뒤집힌 후 논쟁이 잠잠해 질 때 <살수>가 출간돼었다. 20005년 출간 당시 <살수>의 책 광고는 대대적이었는데, 인터넷 서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김 작가의 책을 소개했다.

 

김진명의 신작 장편소설. 고구려 역사는 물론이요, 한민족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이면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웅 을지문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복원시키고, 거대한 수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웅혼한 정기와 지략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정부 차원의 한반도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있다.빼앗긴 역사속의 고독한 영웅 을지문덕과 난국을 헤쳐나가는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상이 살아숨쉬는 대역작!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05년 6월 29일자 신문에서도 '고구려는 중국 고대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보도를 하여 다시 한번 중국의 역사 왜곡은 현재진행형임을 인지시켰다. 김진명의 장편소설 '살수'는 고구려 역사는 물론이요, 한민족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이면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웅 을지문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복원시키고, 거대한 수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웅혼한 정기와 지략을 보여줌으로써,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정부 차원의 한반도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히 맞선다.

[네이버 책소개]

 

역시, 김진명 작가의 위상에 걸맞는 대단한 격찬이다. 요즘 보니 김 작가의 신간인 <고구려>가 1권부터 5권까지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보건대 김진명의 고구려사에 대한 애착(대하 소설로서의)은 <살수>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고구려>에 대한 인기로 이전 작인 <살수>가 덩달아 잘 나간다는 전언.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새 판본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읽고 있는 듯하다. 알라딘에서도 역시 리뷰가 많다. 오~ 근데 역시 찬사 일색이다. 어떤 면에서 찬사를 보내는지 몇 개만 거들떠 보자.(알라딘 리뷰를 작성하신 분들에게 미리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퍼 온 것에 사과를 드린다~ 퍼온 분의 아뒤는 생략)

 

OO님

비록 문과이긴 하지만 국사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을지문덕이 엄청난 전술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만 알았지 자세한 상황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이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소설인데도 실제처럼 여겨지는 이 책은 지루하지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집어삼키고 우리나라의 역사인 고구려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중국에 대항하여 이 책은 이나라를 짊어지고 갈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반해버려서 ....

 

&&님

작가의 이름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작품!

 

@@님

저자의 소설을읽게되면 마치타임머신을 타고 있는것 같다. 첫장을 열고서 마지막 책을 덮을때까지 아무것도 할수 없고책위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나는 과거에 있었고, 책을 덮는 순간현실로 돌아와 있다. 물론작가와 독자도 궁합이 맞아야겠지만 김진명의 소설은 적극 추천하고 싶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몰랐던 역사를 알수도 있고, 내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님

김진명작가의 중국을 겨냥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여 현재의 우리나라의 중국에대한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여 보여준 작품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꼬면서 우리나라의 조상 고구려의 멋진 기상과 기개를 멋지게 잘 표현하여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꼬는 멋진 글이다.

 

**님

과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읽었더니 너무너무 재미났다..  마치 삼국지 분위기로 흘러 들어가공... 중국풍이 좀 심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감동에 벅차올랐다..

 

 

흠....그만하자. 충분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읽어보니, 이 작품은 함량미달의 작품이었다. 작품을 쓸 때 풍부한 사실 자료를 확보하지 않으면 작품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이 작품은 자료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그도 이 사실을 알아 챘는지 뒤늦게 작가의 말에 '자료 부실'운운하며 슬며시 끼워넣었다. 내가 읽었던 건 초판인데,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네이버 책소개]처럼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숨쉬는 대작이 절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위대한?) '<삼국지> 대신 이 책 <살수>를 읽는게 우선'이냐.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동북공정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또한 고구려 역사에 대한 그 어떤 웅대한 스펙터클도 제시해 주고 있지 못한 졸작이기에.

 

을지문덕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를 뿐더러(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가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일말의 단서조차도 없다.

 

완전히 3류 무협지처럼 한 청년이 홀연히 등장하여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모든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수퍼맨질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래놓고 일반독자들에게 을지문덕도 모르면서 무슨 역사운운하냐며 따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적어도 그렇게 말하려면 상상력을 동원해 어린시절의 비범함을 부각시키면서 성장 과정을 개연성있게 전개시키든지, 아니면 을지문덕이 정계와 군계에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어느 정도 보여주든지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통째로 빠져 있다. 무늬만 역사소설이지 3류 무협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작품이다.

 

소설은 급조된 느낌이다. 사건의 개연성도 플롯의 전개도 3류 인터넷 소설처럼 조악하기 그지 없다. 스토리는 탄탄하냐? 수 문제와 양제의 고구려 침공을 을지문덕 혼자 원맨쇼로 막아냈다는게 전부다.

 

여기서 웃기는 건 을지문덕이 수113만 대군을 아주 우습게 돌려보냈다고 하는 점이다. 그는 제갈공명을 넘어 슈퍼맨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건 김용의 그 유명한 무협적 과장을 아주 우습게 넘어 서고 있다.

 

고구려 역사를 통째로 먹으려는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역사소설을 썼다는 그에게, 미안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데 내놓기에는 너무도 허접하다. 솔직히 창피하기까지 하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간간히 열혈적 역사의식을 보여주지만 <시경> '학현편'을 인용한게 전부다. 관련학과를 나오거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너무 똥폼잡고 허풍을 떠는게 아닌가 싶다.

 

<살수>어디에도 을지문덕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곳은 없다. 다~ 고교 국사교과서에 있는 수준이다. 교과서와 다른 점은 그가 혼자 수의 대군을 아주 우습게 물리쳤다는 가공할만한 무용담을 담은 페이지 수밖에 없다.

 

진짜 을지문덕이 그렇게 싸웠을까? 그가 전투하는 장면은 무협소설의 과정과 진배없다. 그가 어떤 전술을 갖고 어떻게 병사들을 진두지휘했으며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고뇌는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건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몇 권의 소설을 읽어 보면 대번 비교가 가능하다.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들을 읽어보면,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어떻게 병사들을 운용하여 전쟁에서 연전 연승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비범함을 알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비록 을지문덕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면 상상력으로 충분히 개연성 있게 매꿀 수 있어야 역량있는 작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디 왕이 전시에 한낯 장수에 불과한 을지문덕에게 고개를 숙여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가? 당시 고구려 왕의 품격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어떤 사료를 보고 집필했는지 의아스럽다. 아, 소설이라고? 그럼 몰랐던 부분을 그럴싸하게 알려주든가.

 

무엇보다 심각한 건, '진짜 수가 113만 대군을 파견했을까?'라는 문제이다. 솔직히 도서관에서 관련 논문이나 사료를 조금만 들춰보더라도 그 당시 113만 이란 숫자는 침공의 과장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역사학계의 다수설이다. (당시 인구 대비로 그 숫자가 동원될 수 없단다) 그런데 당연한 듯 써내려간 김진명의 그 똥폼은 무엇인지. 언제나 작품 내기 전에 사실적 고찰을 완벽히 한다고 언제나 당당했던 그 기질은 '아집'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아주~ 실망스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여-수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없거니와 그 당시 전쟁에 대한 나름의 시각도 없다. 역사소설을 빙자한 삼류무협소설밖에 안되는 졸작이라 평하고 싶다.

 

 

 

[덧붙임]

요즈음 한국 사회는 역사 인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한국사 필수 선택 문제와 교학사본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 그리고 국사편찬위원장의 자질 문제가 그렇다. 그래서 김진명의 이 소설도 많이 읽히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완전 함량미달이다. 본작은 을지문덕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지식도 알려주지 않거니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고구려 역사에서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열렬적 민족의식에 불타 오버하는 일갈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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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10-22 17:52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 ^^

2013-10-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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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래 전에 읽었다.(오래 전이라도 불과 3년 전이다.) 여러 단상들을 적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이 단상들을 마구 적어 놓은 노트를 발견했다. 주로 물음으로만 점철된 감상이었는데, 지금 보니 꽤 치열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텍스트를 읽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영미 문학에서 샐린저의 이 작품만큼 많이 읽혀지고 수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은 작품은 별로 없다고 한다. 당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많이 읽혀져 왔고, 매우 철저하게 논의되어 왔단다. 청소년, 교수, 그리고 전문적인 비평가 모두 이 작품에 찬사(또는 혹평)를 보내고 있다.


여기 알라딘 리뷰만 봐도 정말 많은데 대부분 찬사 일색이다. 명사 추천 리뷰도 어찌 그리 많은지. 피츠제럴드 하면 <위대한 개츠비>이듯이(그래도 피츠레절드의 여타 작품은 꽤 된다.) 샐린저 하면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샐린저는 이 책으로 명성을 얻은 이후 다른 어떤 작품도 쓰지 않은 듯하다. 작품 하나로 이렇게나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어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설 한 권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리도 많이 읽고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지. 그 실체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듯하다.


도대체 샐린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기에 영미권에서 그렇게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에 집약되어 제시되고 있다고 하는 그 문제의식이 뭘까? 샐린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이따위 문제의식을 갖고 작품을 읽어 나갔다. 답은 얻지 못하고 아래와 같은 나만의 질문들만 쏟아낼 뿐이었다.


<1>

이 작품은 주인공 홀든 스코필드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기 전 몇 주의 자신의 행적을 회상해 보는 형식으로 돼 있다. 홀든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의 관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상한 질문을 해대고, 세상을 좋은 놈과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 정신도 꽤 불안하다. 그래서 후반부에 보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홀든은 정신병원에 입원할 만큼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병든 사회가 건전하고 순수한 개인을 이상자로 몰아간 건 아니고?


 

<2>

이 작품에서 홀든 코울필드는 자주 뜬금없이 뉴욕 남부 센트럴파크에 있는 오리 얘기를 하곤한다.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훈계를 듣는 와중에도 역시 오리가 처한 상황을 생각한다.홀든이 택시를 탔을 때 그는 운전사에게 오리에 대해 묻는다. 첫 번째 택시 운전사는 무시했고, 두 번째 택시 운전사 호르비츠는 오리의 향방에 대해서 답해준다. 코울필드는 묻는다. “뉴욕 남부 센트럴파크 연못 위에 있는 오리들은 겨울이 되면 어디로 갑니까?” 이에 택시 운전사 호르비츠는 물고기로 화제를 바꾼다. 그러나 홀든은 물고기와 오리는 다르고, 설령 물고기라고 한들 그들은 얼음으로 덮인 연못에서 뭘 하느냐고 또 묻자 호르비츠는 홀든과 물고기 사이를 분명히 관계시켜 준다.

 이렇게 홀든의 입을 통해 센트럴파크 공원 연못의 오리가 자주 언급되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근데, 명확히 뭔지 모르겠다.) 이 뜬금없는 오리 얘기는 홀든 자신의 상황이 오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상기하려는 메타포 같은 것이 아닐까?


<3>

이 책의 제목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읽는 내내 책 제목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 중간에 책의 타이틀과 연관된 내용이 나오기는 한다. 홀든의 동생 피비가 “오빠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홀든 코울필드는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어린아이들을 잡아주는 캐쳐가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뉴욕에서 산 기다란 챙이 달린 사냥모를 항상 거꾸로 쓰고 있다. 야구에서 캐쳐가 모자를 거꾸로 쓰는 것처럼 그는 모자를 쓰는 것에서 캐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책 전체를 봐도 그는 캐처로서의 삶을 전혀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끝에 가서는 캐처로서의 삶을 그만두는 것으로 그려진다(통나무집을 짓고 혼자 살겠다는 결심을 접고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책 중간에 어떤 초등학생이 흥얼거리는 로버트 번즈의 시로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핵심어구는 잠깐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린저는 왜 이 책의 타이틀을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명명했을까? 호밀밭은 낭떨어지도 아닌데..


<4>

홀든 코울필드의 감수성과 직관력은 어른들의 교훈적인 태도 속에서 오히려 ‘가짜’를 발견해 낸다. (실로 대단한 통찰력이다.) 이 책에서 가짜에 대한 반응은 어떤 이론에 기반한 비판이 아니라 거의 직관에 가까운 지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코울필드는 이 가짜라는 말을 절제되지 않은 자기중심주의와 뒤따르는 이중적인 가치 기준, 다시 말해서 허세, 폭력 등으로 대변되는 ‘물질주의적 가치’를 가리키는데 사용한다. 그런데, 그의 옛 스승인 안톨리니 선생이  뉴욕에서 방황하는 둘째 날 저녁에 그에게 들려주는 말은 애써 가짜가 아니라고 부인하려 한다. 선생님들의 훈계는 홀든의 생각대로라면 가짜인데 말이다. 어떤 말인지 안톨리니 선생이 16세 먹은 소년의 목적없는 방황과 가짜에 의한 정신의 시달리는 홀든에 대한 충고를 거들떠 보자.


“무엇보다도 너는 네가 최초로 인간행동에 의해 당황하고 상처받고 병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그런 문제로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지금 네가 그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 오고 있어.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 받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는데, 너는 네가 원한다면 그런 기록으로부터 배울 수가 있을 거야······ 그건 참으로 서로 주고받는다는 아름다운 과정 일 테지. 그리고 그건 교육이기도 해. 그건 역사이고 시(poet)지.”


과연 이와 같은 일반화된 교훈적 말은 진실인가? 아니면 (홀든의 생각처럼) 가짜이고 위선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인간형을 만들기 위한 훈육?


<5>

이 작품의 주인공 홀든 코울필드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다. 양면성을 가진 이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키(key)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코울필드는 이른바 엉터리들, 위선자들, 속물들, 지저분한 인간들로 가득 찬 학교를 그만둔다. (와우!)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한 홀든 코울필드는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 한다. 홀든은 소통할 수 없는 그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럼으로써 소외감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어쭙잖은 우월감으로 해소하려 한다. 오로지 소통 가능한 이는 그의 여동생 피비뿐이다. 그런데 문제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사실은 홀든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이해를 갈구하면서도, 그의 갈망은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너무도 소극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며, 그들과 교제를 맺는 일에 매우 수동적이다. 좋게 말하자면 너무 섬세하다고 할까. 하지만 그의 그런 면이 문학적인 글쓰기로 연결되어 독창적인 면을 보인다.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하지만 작문에서만큼은 제대로 된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좀처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인물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소위 말하는 청소년의 성장 소설로 가볍게 분류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오히려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관한 소설이 아닐지? (개인의 삶과 사회의 갈등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삶의 부조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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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0-1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호밀밭의 파수꾼, 을 정말 좋아했었기에.. 그나마 조금 생각한 부분을 적어보자면, 1번의 경우 yamoo님이 생각하신 것이 맞는 듯 합니다. 그러나 홀든 본인이 정말 건전하고 순수한 인물인지는 조금 의문의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반항하는 인물의 재사회화, 정도의 강압적인 의미로 정신병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3번의 경우 catcher를 홀든 콜필드가 잡는 사람, 으로 여겼기 때문에 저런 비유가 나온 것으로 압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을 호밀밭의 잡는 사람, 으로 여겼던 콜필드는 잡는 사람, 이 아니라 파수꾼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잡는 사람, 이라는 뜻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이 잡는 사람, 이라는 의미에서 홀든의 꿈이 확장됩니다. 어떤 위험지대에서 서서 순수함을 잡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건 마지막의 피비, 에 의해서 구현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5번의 경우.. 이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청소년때의 제가 저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었을때는 홀든 콜필드가 스스로와 정말 비슷해보였습니다. 청소년들은 거의 대부분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가지던 것 같으니..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하다못해서 소설의 진의와는 멀어질지라도 어른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문장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한 청소년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사실 저도 그다지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 그러나 특히 3번의 경우는 저도 한 번쯤 생각해본 부분이라서 이렇게 몇 마디 끄적여보았습니다. 홀든에 공감을 하느냐, 공감을 하지 못하느냐, 가 이 소설의 평에 영향을 줄 듯 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처음 읽었을때는 홀든에 너무 깊이 공감을 했고.. 두번째 읽을때에는 피비가 너무 좋았습니다. 세 번째 읽었을때는 옛날에 읽었던 그런 느낌이 제대로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홀든에 공감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틀을 떠올리지 않기가 힘이 드는 나이가 되버린 것 같기도 하고

yamoo 2013-10-18 17:07   좋아요 0 | URL
저의 문제의식에 이렇게 답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연님!
무려 3번을 읽으셨군요~ 우와~!
전 이거 작가가 뭘 전하려는 건지, 또 저 제목 때문에 답답해서 연속으로 2번 읽었습니다. 근데,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저런 물음만 가득히~~ㅜㅜ
가연님의 답변 때문에 1번과 3번을 잘 정리했습니다.
정성된 고견 정말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3-10-1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유명한 작품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어요. 읽어야 할 책으로 찜해 놓기는 했는데...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인물이 또 있으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이죠.
저는 이 작품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한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학교)에 대한 비판으로 읽었죠. 아무도 한스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주인공 한스에 대해 연민과 애정을 가졌어요. 고독해 보여서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님의 글을 읽으니 그 작품이 생각났다는...
꼭 <호밀밭의 파수꾼>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

yamoo 2013-10-18 17:12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은 아직 못 접해 보셨군요!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홀든과는 많이 달라보여요. 이거 읽으시면 같으면서도 다른 두 인물을 비교해 보실 수 있는 기회를 얻으시겠어요~^^

저도 이게 하두 유명세를 탄 작품이라 읽어 봤는데,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보다 더 좋은 작품들도 많은데....어쨌건 페크님이 이 소설을 읽으신다면 어떤 느낌이실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읽으신다면... 한스와 홀든의 비교 리뷰가 가능하실 거 같습니당~ 여튼 어여 읽어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