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 청년사   나의별점: ★★★★★

<이방인>과 비슷한 내용에 동일한 주인공. 뫼르소는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현실적 삶은 부조리하고 공허한 삶이 지속된다. 무엇을 하든지 뫼르소는 채워지지 않는 행복에 좌절한다. 여자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그는 만족을 찾지 못했다. 살인을 하고도 잘못인지도 모르는 뫼르소. 결국 그는 그 지루한 삶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전히 정지된 삶. 뫼르소는 그 속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순수한 시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뫼르소. 하지만 그걸 깨닫고 얼마 안 돼 뫼르소는 늑막염에 걸려 죽어간다. 행복한 죽음...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무거운 책.

* <행복한 죽음>은 <이방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창작 의도를 확인 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카뮈에 있어 행복한 죽음이 차지하는 작품의 위치는 중요한 것이더군요. 어떻게 해서 <이방인>이 태어났는지 알 수 있었답니다. 여기 포함된 단편 에세이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두대에 대한 단상>이 특히 그렇습니다.


2. <달콤한 인생>, 최인호, 문학동네 소설집   나의별점: ★★★★

최인호가 왜 우리문단을 이끌어가고 있는 두 사람 중 한사람인지, 이 사실을 아주 명징하게 깨닫게 해 준 소설집. 평범하고도 쉬운 소설 속에 그가 담고자 하는 얘기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문단 후배 소설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최인호는 저 멀리 등 번호를 휘날리며 잡히지 않게 멀리 뛰어간다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다작의 작가이자 소재의 끝이 안 보이는 작가. 이제 최인호의 평가는 확실히 달라질 것 같다. 문단에서 다작의 작가라서 그런지 좀 저 평가돼 있는 인상이 짙었는데, 소설집을 읽고 보니 그의 내공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달콤한 인생>은 작가 최인호를 재평가 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쉽고 간결한 단편에 상당한 정도의 의미를 담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최인호의 포스가 어느 정도인지 새삼 확인 할 수 있는 귀중한 단편집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갔지만, 그가 남겨준 소설들은 작가가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높은 평가 속에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겁니다~


3. <라벤더 향기>, 서하진, 문학동네 소설집   나의별점: ★★

서하진의 소설은 재미없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소설이 재미없음을 알고 있다. 끝까지 읽는다는 게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이런 작품집을 그녀는 계속 쓰고 내겠다고 한다. 음....서하진은 멀리해야겠다. 이 소설집은 죄다 역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적으로 썼으니까 그렇겠지만 하나같이 모든 작품들의 구성이 동일하니, 많이 식상했다. 소재의 참신성은 좋았으나 재미가 없는 게 흠이다. 정말 재미가 없다. 정말!


 

 

 

 

 

4.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심리코드>, 베아트 샬러, 흐름출판   나의별점: ★★★★

‘은밀하게 상대를 움직이는 101가지 심리효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행동의 원인이 되는 심리학적 이론들을 사례에 맞게 재구성한 책이다. 응용심리학을 쉽게 소개한 책으로서 사례별로 ‘OO 효과’라는 소제목(예컨대 에펠탑 효과, 후광효과, 체스판 효과, 바비인형 효과 등)으로 80여개가 소개되어 있다. 경제학과 마케팅 그리고 광고에서 심리학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익한 책. 깊이는 살짝 없는 게 흠이지만 여러 심리학적 내용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책이다.


 

 

 

 

5. <디셉션 포인트 1,2>, 댄브라운, 문학수첩    나의별점: ★★★

<천사와 악마>를 해치우고 연속해서 본 댄 브라운의 책. <천사와 악마>가 재미 면에서 다빈치코드를 뛰어넘을 만 하다고 생각하여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집어든 책이다. 한데, <디셉션포인트>는 브라운의 이전 작들과는 달리 팩션 계열이 아닌 과학첩보 계열이다. 읽으면서 많이 이질적이었다.

 북극 밀른 빙붕에서 1억5000만년전의 운석이 발견된다. 그 운석에는 고대생물의 화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 밀른 빙붕의 화석을 포함한 운석을 놓고 정치인과 과학자들이 희대의 기묘한 싸움을 시작한다. 나사의 현 체제를 옹호하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 나사를 민영화시켜 재정적자를 해결하려는 차기 대선 주자 섹스턴 상원의원.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는 우리의 두 주인공들...

 그런데 요상한 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만 있다는 거. 대중소설의 전형. 하지만 댄브라운 소설 가운데 가장 실망스런 작품.

 

 


6. <수상한 식모들>, 박진규, 문학동네  나의별점:  ★

이런, 빌어먹을! 젠장! 정말 모든 부정적 탄식들을 모두 뱉어내고 싶다. 재미있고 웃긴다고 해서,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추천을 날려줘서 본건데, 재미는 무슨 개뿔! 이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식모와 호랑아낙의 연계성도 어설퍼 보이고, 호랑아낙의 계보를 찾는 그 역사적 작업도 조잡했다. 황당한 내용에 황당한 사건 전개. 억지스런 설정에 쓴 웃음만 나올 뿐이다. 나중에 뭐가 있겠지....했는데, 끝까지 있는 건 없었다. 여튼, 읽은 책 중 최악의 책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비주류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김중혁이나 박민규를 생각한 것이 너무도 크나큰 실수였음을 고백한다.


 

 

 

7. <죽은자들을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 복거일, 북앤피플    나의별점: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가 중 한명이었다. (헌데, 지금은 아니다) <비명을 찾아서>를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고, 몇몇 산문들에서 보여준 그의 비판적이고도 냉철한 시선이 꽤 신선했었다. 그래서 그의 신간이 나왔다하면 바로 구입해서 보곤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반대를 위한 반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기를 집중하는 모양이다. 결국 그는 극단으로 종종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는 나와 멀어졌다. 특히 이 책 <죽은자들을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가 컸다. 정말 너무한다. 일본의 한국식민통치는...결국 우리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고...친일파 처단은 어려운 것이니...관두자는...논리... 일본 우익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탁석산과 더불어 끊임없이 자충수를 두는 작가. 제발 좀 그만했으면...

 

 


8.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예담   나의별점: ★★★

뭐랄까, 이상한 사람들의 모음이랄까. 아주 얇은 책인데 그 내용은 만만치 않았다. 아, 짚고 넘어가야할 한 가지. 최인호님의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맨 마지막 단편 <이상한 사람들>은 이 책을 표절한 게 분명하다는 거다. 의심을 넘어선 확신~! 아주 똑같은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인 소 단편 내용도 비슷한 느낌. 모티브 자체가 너무 흡사하다. 약간 배신감 같은 것이 들더라. 뭐, 지금 생각하니 작가가 아주 작게 각주처리를 한 것 같기는 한데~  그치만 똑같이 베끼면 안되는거 아닌가..--;;


 

 

 

 

9. <내 인생을 바꾼 이 한권의 책 >, 한국사회문화연구소, 정보나라   나의별점: ★★★

명사들이 주옥같은 명작들을 한 권씩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명작에 대한 나름의 독후감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물론 책은 문학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천가의 자서전’ 그리고 과거의 ‘역사와 교훈’을 담은 책도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명사들이 어떻게 그 책이 자기를 바꾸었는지, 자기들이 읽은 수백 권의 책 가운데 1권씩을 골라 써 낸 독후감은 충분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눈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글 읽기의 자세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본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10. <카르페디엠!>, 존 블룸버그, 토네이도    나의별점:

예전에는 자게서를 참 많이도 읽었더랬다. 쉽게쉽게 한권씩 읽을 수 있어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딱 끊었다. 아마도 이 책이 내가 골라서 읽은 자게서의 마지막이었을 거다. <카르페디엠>은 제목처럼 첨엔 좀 뭔가 있는 거 같은데, 플롯 구조가 너무 작위적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뭐, 대부분의 자게서들이 대동소이하겠지만, 이 책은 좀 심했다. 미치 앨붐 류의 자기 계발서가 인기를 끄니, 출판사가 기획회의를 통해 여기에 영합하는 책을 펴낸 느낌이다. 천사와의 대화가 최대의 아킬레스 였다. 천사가 편지를 보낸 구절은 그냥 손이 오그라드는 뭐, 그런 거. 읽으면서 애써 진부함의 쓰나미를 맛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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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수상한 식모들... 이거 제가 알라딘 처음 글 올리 때 이 리뷰 썼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삭제했지만 말입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이 이런 후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재능도 놀랍지만, 이 소설을 뽑아준 심사위원의 놀랄 만한 심미안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라고 쓴 기억이 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황당한 소설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yamoo 2013-10-12 10:50   좋아요 0 | URL
오우~! 수상한 식모, 리뷰도 올렸었었군요. 삭제하셨으면 다시 올려주세요~~ 곰발님의 혹평을 보는 재미를 주시길~^^

페크pek0501 2013-10-1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데요. 좋은 건 좋다고 하고, 후진 건 후지다고 해서 솔직함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제가 읽은 책은 없지만 다른 책으로 읽은 작가는 다섯 명이 되네요.
워낙 유명한 작가들이라서요.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1번과 2번은 존대어 문체로 쓰시다가 3번부터 바뀝니다.ㅋ)

yamoo 2013-10-12 10:53   좋아요 0 | URL
원래 제 성격이 그래요..ㅎㅎ 책도 영화도 뭐든 이런 식이에요..^^;;
이건 엔날에 읽었던 책들인데, 리뷰를 정리하면서 올린 것이에요. 읽어주셔서 감솨~!

1번과 2번은 아래 별표 덧붙임이 있는데, 고것만 존대어로 썼어요. 다른 책들은 덧붙일 말이 없구요~ㅎ
예리하신 페크님^^
 

이제는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문고본들. 그 중 하나인 박영문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로 9센티x세로16.5 센티의 문고본 시리즈.

총280여 종의 주옥같은 고전을 엄선하여 출간한 기획시리즈.

 

여기에는 고전소설, 에세이, 고전 사상, 한국학 등 그 시대에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들이 즐비합니다.  

특히 사상가들의 주저가 아닌 짧은 에세이들도 꽤 발간된 매우 귀중한 문고본 총서 입니다. 한스 콘의 <민족주의 시대>나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 막스 쉘러의 <철학적 세계관> 등이 제가 이 문고본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귀중한 책이었죠. 번역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이런 책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2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말입니다. 1998년 쯤에 대형 서점(서울문고)에서 1800원에 구입한 게 마지막 기억입니다. 현재는 절판되어 헌책방에 가야만 만나볼 수 있는 문고본 시리즈. 

지금까지 헌책방에서 약 30여 권을 구해서 지하철이나 버스 내에서 읽어왔습니다. (이동 중에 읽기 딱입니다!) 거의 다 읽어 가지만 헌책방을 돌아다녀도 좀처럼 만나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헌책방 재고도 거의 소진되어 가는 것 같군요.

3년 전인가... 자주 가던 헌책방에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3권을 손에 쥐고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가서 사려고 하니 없더군요.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 완역본은 박영문고가 처음이자 막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완역본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영사에 전화를 걸어 시리즈의 재출간 계획을 물어보니, 재 간행 계획은 없다는 군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현재 손에 잡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책은 3권입니다. 나머지는 박스에 담겨 구석에 있어 꺼낼 엄두가 안납니다. ㅜㅜ 그래서 기념 샷~)

 

(사진 왼쪽의 <경험과 교육>은 존 듀이의 교육 에세이인데, 번역이 매우 안좋스니다. 겨우 겨우 읽었다는..콘의 <민족주의 시대>는 번역이 꽤 잘되어서 슥슥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래는 박영문고 출간에 즈음한 박영사 대표의 출간사입니다. 이 출간사를 여기에 옮겨놓아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아는 것은 힘이요 행동의 원천이다. 행동 없는 지식의 축적이 공허한 것과 같이 지적 토대가 없는 행동은 맹목이며 위험하다. 추등(秋燈)밑에 책을 덮고 천고를 회상하면서 식자인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탄식하던 석학 황매천도 행동인이었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민족분단의 슬픈 현실 속에서도 바야흐로 민족중흥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맞이하기 위하여 국민전체가 감연히 일어서고 있다. 그러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민주적 통일한국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리는 현시을 직시하고 이것을 정확히 분석하며 진단하는 예지를 갖추어서 확신과 희망과 용기를 갖고 여기에 대처하는 자주적 태도와 행동력을 길러야 한다. 

여기에 박영문고를 간행하여 독자 여러분께 바치는 소이도 이 같은 요구에 응하고자 함인 바이니 이에 따라 이 문고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세계의 민주적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여 과학적, 비판적 정신을 함양한다. 

한국의 위대한 민족적 얼과 슬기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영광된 민족사를 개척해 나가는 정신자원을 개발한다.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소생시켜 민족적 긍지를 회복한다. 

종래의 독선적 장식적 교양에서 탈피하여 국민 대중과 직결된 참신한 문화를 건설한다. 

다행히 이 문고가 널리 독자의 지지를 얻어 건강한 성장을 꾸준히 지속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박영사 대표 안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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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0-06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이런 게 문고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문고본은 이상하게 하나 읽으면 모두 다 읽어서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저는 전설의 삼중당 문고 전부 한번 구비해보았으면 합니다.
전설 속 삼중당 문고....
가끔 헌책방 가면 삼중당 문고가 보이더군요. 무지 반갑습니다.

yamoo 2013-10-08 12: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문곱본만이 아니라 출판사의 기획총서 2권만 모이면 찾아 다닙니다. 문고본도 요즘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려 모을 염두가 안난단는..^^;;

삼중당 문고본은 10여권 갖고 있는데, 워낙 발행부수가 많아 전부 구비가 가능할지 의문스럽네요. 만약 가능하면 전설의 인물이 될듯 싶어요^^

페크pek0501 2013-10-0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책이네요.
저는 예전 문고본의 작은 책이 좋아서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의 시리즈를 애용합니다.
책이 작고 두껍지 않아 좋고 유익한 책이 많아서요.
몇 권 살 적마다 모두 사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디 여행 갈 때 가방에 넣기도 좋아요.
저도 출판사에 전화해서 출간 계획을 물어본 책이 있답니다. 호호~~

yamoo 2013-10-08 12:36   좋아요 0 | URL
특히 리바이어던이 귀했던 거 같아요.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요..ㅜㅜ
저두 책세상문고본 애용합니다. 우리시대와 고전의 세계 합쳐서 50권 이상을 모으고 있네요^^;;
책이 작고 두껍지 않은 걸로는 살림지식총서가 갑이에요~ 소재도 책세상 문보본도다 다양하고 주제도 가벼워서 읽는데 부담이 없더라구요~ 페크님께도 살림문고를 강추~!!!

양철나무꾼 2013-10-0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
yamoo님은 적어도 원시 내지는 노안은 아니다, ㅋ~.
언제부턴가 넘 작은 글씨의 책은 눈이 쉬 피곤하여 부담스럽더라는...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문고본은 그림의 떡이더라는..., ㅋ~.

잘 지내시죠~?^^

yamoo 2013-10-08 12:39   좋아요 0 | URL
헛! 벌써 노안이 오시다뉘...(앗, 죄송~ㅎㅎ)
전 여전히 작은 책이 좋더라구요. 이동중에 큰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팔이아프더라구요. 공간도 작게 차지하면서 가벼운게 활자 작은 불편함을 상쇄한답니다~
그리고 문고본을 모아보면, 그 매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어요. 문고본으로만 기획되는 책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제가 더 궁금합니다. 잘 지내시는지...통 서재에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으셔서 서재운영의 방침을 바꾸신거 같다는..^^;;

oren 2013-10-1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마침 지난주에 제가 사서 읽었던 책 가운데 '문고판'도 한 권 끼어 있었네요.

그 책은 범우문고에서 나온 《테렌티우스 희곡선》이라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그 책은 정말 애처로울 만큼 크기가 작더군요. 한 손에 들고 정말 가볍게 읽을 순 있었는데, 아쉬웠던 건 정작 내가 찾던 테렌티우스의 희곡 작품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가 그 책에 실려 있지 않더라는 점이었어요. 테렌티우스의 그 작품은 제가 다른 인물들의 책에서 '무려 세 번씩이나' 마주쳤는데, 국내에선 번역되어 나온 책이 아직까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도서관에서 검색해 봐도 범우문고판만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문고판의 수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가지 극복할 수 없는 난점 때문에 '문고판의 운명'은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한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모두 어리석은 축소판이다"라는 몽테뉴의 말은 문고판 책들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근원적 문제'를 아프게 콕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싶어요.

yamoo 2013-10-12 11:00   좋아요 0 | URL
범우문고판 희곡총서는 꽤 유명한 저자들의 희곡들을 선별해서 출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에게는 <젊은 세일즈맨의 죽음>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만 갖고 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희곡집은 손이 안가네요^^;;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나름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고판도 많아요. 서문문고본은 요약본이 하나도 없고 모두 완역된 작품들이에요. 범우문고도 대부분 완역이었고, 전파과학사의 문고본도 모두 완역 총서였어요~

요즘 출간되는 지만지고본이나 책세상 고전 시리즈 그리고 범우문고는 확실히 요약판입니다. 이런 문고판 총서는 어느정도 몽테뉴의 말이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고전에 가까이 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부담없이 다가가기에는 좋은 거 같습니다.

오렌님이 갖고 계신 문고본 책들이 궁금해 지는 걸요~^^

oren 2013-10-12 11:31   좋아요 0 | URL
저는 문고판 책들은 대부분 '축소판'이 아닐까 싶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yamoo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완역된 작품들만' 펴내는 문고판도 여럿 있었군요.

저는 얇은 책들은 뭔가 깊은 내용을 담기엔 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 때문에 좀처럼 문고판에는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기껏해야 중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 할려고 여러 권 읽었던 '영한대역문고'가 제가 읽은 문고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들이어요. ㅎㅎ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


“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제게 설명해 주세요”라는 친숙하고도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마르크 블로크의 미완성 대작 <역사를 위한 변명>.

 

 

 


 

나는 이 책을 2007년 존 루이스 게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구입하면서 읽었더랬다. 토론회 주제 도서였는데, 책 띠지에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뒤를 잇는 최고의 역사학 입문서!’라는 광고 카피.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오래 전에 읽었고, 게디스의 책은 토론 주제 도서이니 당연히 읽을 것이었기에, 블로크의 책만 읽으면 되었다. 그러면, ‘광고 문구’대로 주관주의 역사학자 중요 3인방의 주저들은 모두 읽게 되는 셈이다.


언제 사 두었는지조차 몰랐던 블로크의 책을 꺼내서, 게디스의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었더랬다. 번역본이 2권 있었는데, 내가 본 책은 1994년 한길사 판 이다. [다른 한 권은 한길사 숲길 시리즈 중 3번째 권(2001년 판)이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다.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데 몇 주일 전 <역사와 문화>(문학과 지성, 1983)를 읽다가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이 유언이 원 저서에 있는지 두 권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두 판본의 역자는 서로 달랐다. 94년판 역자는 정남기 님 이고, 01년 판 역자는 고봉만 님 이다. 두 분 번역 모두 읽을 만 했고, 수록 내용도 비슷했다. 단지 94년 판에 조르주 뒤비의 ‘책 머리에’가 추가된 것 이외에는 뚜렷한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현재 한길 그레이트북스 판본은 01년판의 재판)


하지만 역시나 <역사와 문화>에 수록되어 있는 블로크의 ‘유언’은 없다. 이 책에만 수록되어 있는 듯하다. 이광주 씨가 편집한 <역사와 문화>는 ‘현대에 있어서의 역사인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편집된 이 책의 필자들을 보면, 유명한 역사철학자들이 즐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칼 뢰비트, 마르크 블로크, 베르너 콘체, 요한 호이징가, 베르너 케기, 스튜어트 휴즈 등 석학들의 ‘역사적 인식’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논문식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저서 중 일부를 발췌하여 편역한 것도 있고, 소논문을 번역한 것도 있다. 한데, 여기서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을 만나 본 것이다. <역사를 위한 변명> ‘서론’을 번역한 부분의 부록으로 추가된 내용이다.


원래는 <역사를 위한 변명>에 수록되어야 마땅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빠진 듯하다. 짧은 글이기에 여기 옮겨 놓는다. <역사와 문화>가 아직 절판되지 않고 알라딘에 재고가 있는 듯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하시면 좋을 것 같다. 300페이지가 넘는데 6천원도 안한다.^^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


프랑스에서든 혹은 외국에서든 나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의 사랑하는 아내나 혹은 그렇지 못할 경우 나의 자식들에게 그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매장해 줄 것을 부탁한다. 나는 장례식이 다만 하나의 시민다운 것이기를 바란다. 나의 가족들은 내가 다른 어떠한 종류의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가 왔을 때 나는 친구 한 사람이 시체 안치소나 묘소 옆에서 다음의 말을 읽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나의 육체 위에서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나의 많은 조상들이 묻힐 때 읊어졌던 그 운율의 유태교 기도문을 읽으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나의 한평생을 통하여 나는 언어와 사상에서 완벽한 성실성을 이룩하려고 노력하였다. 허위와 타협은, 어떤 구실이 붙든 간에, 인간 정신의 궁극적인 부패의 표징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 나보다 더욱 훌륭하 사람을 따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나는 다음의 간단한 말보다 더 좋은 묘비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 “DILEXIT VERITATEM(나는 진리를 사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하는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이 순간에 언제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왔던 신앙에 대한 어떤 정통교설의 그러한 종교양식을 행하도록 부탁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 이러한 개인적 성실성에 대한 진술을, 겁쟁이의 부정과는 가장 관계가 적은 것이라고 잘못 해석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나는 필요하다면, 죽음에 직면한 이 자리에서, 내가 유태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기꺼이 확언하고자 한다. 나는 이것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 가장 경악할 야만주의에 휩쓸린 한 세계에 있어서, 가장 높고 고결한 위치에 있는 그리스도교가 그 뒤를 잇고 확대시킨 히브리 예언자들의 관대한 전통은, 생활과 시낭과 전쟁을 가장 훌륭하게 정당화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인종을 기초로 한 생활과 정신의 모든 그럴 듯한 공동체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신앙의 도그마에 대한 한 사람의 국외자로서 나는 생애를 통해, 나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아주 단순하게 한 사람의 프랑스인임을 느꼈다. 이미 오랜 가문의 전통은 나를 나의 조국에 견고하게 결합시켰다. 나는 조국의 정신적 유산과 역사 속에서 자양을 발견했다. 실로 나는 안락함과 자유를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지닌 그 어떤 다른 나라도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조국을 지극히 사랑했으며 나의 모든 정력을 그것에 바쳤다. 나는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감저들을 방해한다고 전혀 생각지 않았다. 비록 나는 양차대전에 참가하였으나 프랑스를 위하여 죽는 것이 나의 운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의 온 성실성을 다 바쳐 선언할 수 있거니와, 나는 이제 내가 살아왔던 것과 같이, 한 사람의 프랑스인으로서 생애를 마친다.


이 말들이 읽혀지고 나면, 그 친구가, 원문을 입수할 수 있다면, 내가 참전 공로로 받은 표창장들을 읽어주기 바란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내용 파악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확고한 의지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드는 유언장이다. 유태인이지만 태생을 부정하지 않고 조국 프랑스인으로 죽을 수 있다는 자부심은 베르그손의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참으로 애석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더 살았다면 대작을 여럿 썼을 석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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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시절까지만해도 돈을 주고 신문을 사야 좋아하는 신문사 주필의 글을 볼 수 있었다. 중앙일보 강위석님의 글 때문에 중앙일보를 열독할 정도였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가속화되다 보니 이제는 각 신문사의 대표적인 칼럼들도 공짜로 보는 시대가 됐다.(인터텟시대라고 하던 99년만 하더라도 신문사 칼럼을 무료로 볼 수는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칼럼자 별로 폴더화하여 차곡차곡 파일로 스크랩할 수 있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각 신문사 사이트에 접속하면 외부 칼럼 기고자까지 이름순으로 파일링화 돼있어 언제든지 놓친 글들을 찾아 읽을 수가 있다. 와~ 감탄사가 나올만 하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문사 사이트를 서핑하다 보면 참으로 놀라운 걸 발견한다. 우리시대 내로라하는 논객들의 글과 정성들인 기획기사를 무료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서핑자에게 공짜다).

 

그런 글들은 돈을 주고 살 정도로 아깝지 않은데 말이다(사실 오프라인 신문이나 잡지는 돈을 주고 구독해야 한다. 하지만 동일한 기사라 하더라도 온라인 기사는 무료다). 한 신문사의 주간지는 명품 기사로 소문이 자자해 논술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모든 기사가 온라인 상에서 무료다!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에 보면, 이제는 글로써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 1인 매체 시대를 맞아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 글들이 쏟아져 나와 글로써 돈 버는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아주 수긍할 만한 말이다. 이 곳 알라딘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목도할 수 있으니.

 

특히 알라딘 서재는 책을 내는 전문 작가들이 꽤 된다. 본래 직업이 교수인 분들과 작가인 분들이 이곳에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올리는 분들도 있고, 이곳에서 좋은 글들을 올려 나중에 책으로 출간하는 분들도 있다. 뭐든, 알라딘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은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

 

돈을 주고서라도 꼭 보고 싶은 글들이 이곳 알라딘 서재에는 꽤 넘쳐난다. 그런데 무료이니 정말 아직까지는 횡재라 할만하다. (타 포털처럼 복사방지 기능도 없다!) 이 좋은 시절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아주 좋은 글을 무료로 읽는 즐거움은 이전에 칼럼을 읽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스마트 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알라딘에 접속하여 이웃 서재 글을 읽으면서 미친듯이 웃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뿐인가. 어떤 광고문구도 나에게 책을 사라고 유혹하지 못한다. 하지만 알라디너의 리뷰들은 한 순간에 책 구매를 종용하고, 사야할 리스트까지 구성해야 할 정도이다.

 

뭐, 지금까지 많이도 주절거렸지만, 요점은 하나다. 값어치 있는 글들이 온라인 상의 도처에 있다는 것~


얼마전(그치만 좀 됐다) 스티븐 킹이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설은 유료였다. 무료인터넷시대에 킹은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해 일종의 도박을 벌였지만,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책을 다운받은 사람들이 비용을 끝내 지불하지 않았다고. (역시 인터넷을 사용자들은 무료에 길들여 있다!)

 

그런데, 한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어느 문학상 1등 당첨금은 1억원 이었다. 그 1억원 당선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상작가들은 일순간에 유명해 졌다. 무명작가일수록 이 상의 위력은 상당했다. 인세 수입도 상당할 정로라니. 흠,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글을 써서 막대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는 전망은 아직까지는 완전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무료로 공개되는 전문가 뺨치는 글들을 볼 때면(아니 어떤 글들은 전문 작가 글을 넘어서는 것도 있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수긍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쨋거나 좋은 글을 마음껏 무료로 볼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여전히 책 값은 점점 높아만 간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획 출판물들(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은 유명 원저)은 이해가 간다. 어떤 번역 책은 번역을 한 분의 노고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나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들) 책 뒤의 가격표에 표시된 금액을 제시할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른바 소설책들이 그리 높은 가격에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면 참을 수가 없다(소설을 격하시킬 의도는 전혀 없다).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소설들이 예쁜 책 표지에 싸여 진열대에 꽂혀있다. 가격은 1만원을 가볍게 넘는다.

 

대충 서서 읽어보아도 싸구려 사랑타령 아니면 개인적 얘기 인 걸 알게 된다. 이런 걸 1만원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고 서점에 물어보면 꽤 잘나간다는 답변이 들려온다.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진부한데도 말이다!

 

대형 서점 문학 코너에 가 보면, 문단에 이름을 건 중견 작가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작가 그리고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소설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가격대에 팔리고 있다. 문단에서 검증된 분들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그 가격을 달고 있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신인작가들의 문단 등단을 위한 수상작이 고가에 책정된다는 게 영~ 께름칙하다. 어떻게 그들의 글이 기라성 같은 분들의 글과 동등한 가격에 책정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김애란의 작과 윤흥길의 작이 똑같은 가격을 달고 있다!) 잘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소설을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몇 번 읽어봤는데, 영~ 신통치 않다.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참신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 작가들이 쓴 300여 페이지 안쪽의 글이 과연 1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검증해 보고 싶어진다.(그런데 누가 검증하지?) 우리시대 기라성 같은 논객들과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하는 글, 그리고 통념을 깨뜨리는 촌철살인 같은 글은 무료인데, 왜 그저그런(?) 작가의 글은 무료가 아닐까? 분량 차이인가? 문학성 차이인가? 모르겠다.

 

분명한건 이' 글의 세계'에서 만큼은 경제학 법칙인 ‘가격의 법칙’과 ‘수요의 법칙’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동일하지 않은 품질의 ‘소설 상품’이 동일한 가격에 팔리며, 세상을 비판하고 진단하는 뛰어난 글이 무료로 통용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시대에 글의 값은 과연 정당하게 책정되는 것일까?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수많은 경제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던데, 왜 글의 시장만은 예외일까. 문학이라서?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소설이라서?

 

그렇다면 가격을 달고 다른 상품과 똑같이 바코드가 달려 팔려나가는 이유는 뭐지? 이 시대에 문학도 분명한 상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상품 가격이 시장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수요가 몰리는 책은 가격이 오르지도 않고 수요가 없는 책이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경쟁력 없는 책은 일찍 절판되는 정도??) 가치의 경중도 없이 동일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이라는 한쪽에서는 좋은 글들이 무료로 퍼져가고 있다. 이 어찌 기막힌 역설이 아닐까.


내가 지금 끄적거리고 있는 이 글도 얼마나 하찮은지 모르겠다. '단상들'이라 글에 철판을 깔고 쓸 수 있어 다행이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신인 작가 소설들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보다 더 비싼 값에 책정 돼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화가 치밀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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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9-2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최근에 '빛나는 여러 훈장들까지 모조리 반납한' 어느 전직 대톨령이 '서슬 퍼렇게' 굴던 시절에 (삼성출판사 판으로) 읽었었는데, 그 때 정말 '이런 책도 다 있구나' 싶은 '호된 충격'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슘페터의 책들을 모조리 읽어봐야 겠다는 결심으로 '불끈' 했었는데, 그 뒤로 그를 오랫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yamoo님 덕분에 가까스로 알게 되는군요.

yamoo 2013-09-25 13:51   좋아요 0 | URL
아마도 고전을 즐겨 읽으시던 오렌님께서는 이미 이 명저를 읽어보셨겠지요. 다만 세월이 흘러 기억에서 잊혀졌을 뿐. 근데, 그 생각을 끄집어 내게 핸 준게 제 글이 됐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슘페터의 주저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학부 2학년때 친구와 같이 원서로 읽어나간적이 있습니다. 헌데, 문장들이 너무 난삽하고 어려워서 중간까지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문장 하나가 막 10줄 이상....저도 삼성출판사본으로 읽었는데, 역자였던 이상구 박사님이 그렇게도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이 번역해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는데, 전 엔날판에 더 애정이 있습니다.
그의 주저가 좀 늦게 번역되어 나온 지라 <경제발전의 이론>은 2011년에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번역이 그리 좋지 않더군요. 어쨋든, 제글에서 슘페터의 옛 흔적을 찾으셨다니, 정말 다행이어요^^

2013-09-25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25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09-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수많은 경제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던데, 왜 글의 시장만은 예외일까."
-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이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요.ㅋ

그런데 만약 이런 식으로 책값이 매겨진다면 책을 내는 사람이 많이 떨리겠네요.
그래서 자신 있는 사람들만이 책을 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게 좋은 현상이 될지, 나쁜 현상이 될지 모르겠네요.
자신감과 역량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어서 말이죠.

yamoo 2013-09-25 13:57   좋아요 0 | URL
저두 잘 몰라요~ㅎㅎ 그게 좋은 현상이 될지 나쁜 현상이 될지..
베르그손은 항상 자신있는 책만 출판했다해요.

단지, 저는 요즘 젊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에 실망하여 이런 투덜거림을 해봅니다.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보다 더 비싼 한국 소설들의 가격은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한데, 그 문제가 뭔지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어요. 책가격과 글 가격에 대한 어떤교통정리가 필요할듯 하다는 생각이 나서요. 근데, 정리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감히 예측을 할 수가 없네요. ^^;;

페크pek0501 2013-09-25 14:05   좋아요 0 | URL
비싼 한국 소설들의 가격은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한데, - 에 동의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든 적 있는지라... ㅋ
 
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우선, 이렇게 말해 보자. 이 영화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정말?! 보고 또 보니 그렇다는 결론.

 

영화 초반에 나래이션이 계속 강조한다.  이 영화는 보통의 연애물이 아니라고. 플롯의 구성도 500일의 시간을 앞뒤로 마구 왔다 갔다 해서 정신이 없었다. '보통의 연애물'이 아니라는 나래이션은 영화에 집중하기 위한 어떤 장치쯤으로 생각했다. '좀 색다른데'...라는 생각을 갖고 러닝타임의 90%를 본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주인공 톰은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고 그런 여자가 나타날 거라 굳게 믿는 소심남이다. 반면 남주와 500일을 보내는 썸머는 쿨걸이다. 진정한 사랑은 없고 가벼운 만남만이 남여관계의 전부라 믿는다. 이들이 만나 사랑을 하는 500일의 연애 이야기...라고, 나는 확신하면서 보았다.

 

플롯 구성이 참신해도, 뭐....이건 100% 일반 로맨스 물이라 생각했다. 플레이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쯤...썸머가 결혼 반지를 끼고 톰과의 추억의 장소(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 벤치)에 찾아왔다. 그때의 영화 상황까지 본 나는 냉소를 쳤다.

 

"흥! 뭐, 연애물이 아니라고?! 연애물이네, 뭐~

그럼 그렇지....썸머는 톰을 첨부터 가볍게 보았군. 애구, 불쌍한 톰. 썸머한테 어장관리나 당하구~"

 

아...그런데, 둘의 추억을 간직한 그 장소에서 톰이 썸머에게 묻는다. 결혼 계획이 없다는 네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는지. 그때 썸머는 말한다.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책에 대해 물어봤어.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야.." "지금은 운명을 믿어 톰, 니가 옳았어."

 

나는 썸머의 바로 저 말로부터 영화를 다시 돌려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영화가 왜 일반 로맨스물이 아닌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톰이 썸머에게 어장관리를 당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톰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충분히 그렇게 비쳐진다. 첨부터 가벼운 만남을 선호하는 썸머에게 톰은 그녀가 사귀었던 이전의 두 남자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왜냐하면 썸머는 톰과의 관계가 소원해 질 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니까.

 

하지만, 썸머가 톰에게 한 마지막 말은 그녀가 톰을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해주고 있다.

 

영화를 다시 보니, 그녀가 톰 대신에 자기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해 관심을 보인 남자를 선택한 이유를 알았다. 톰과 썸머의 관계에서 톰은 썸머의 생각과 선택을 한 번도 존중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톰이 썸머를 사랑했던 건 명확하다. 그가 데이트를 하면서 계속 '우리의 관계'를 묻는 건 그녀로부터 연인관계임을 다짐받고 싶어서다. 처음 시작이 가벼운 만남으로 시작됐기에, 톰은 그녀와의 관계를 연인관계로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그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다.

 

가벼운 만남의 대상으로 톰을 생각했던 썸머는 어느 순간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까지 톰에게 털어놓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녀도 그를 이전에 가볍게 만났던 남자들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썸머는 몇 번의 톰과의 말싸움으로 그를 떠날 결심을 한 것 같다. 우선 첫번째 상황. 어떤 바(Bar)에서 한 남성이 썸머에게 치근덕 거리자, 톰은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그 남성과 싸움박질을 벌인다. 그리고는 썸머와 심하게 다투고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바(bar)사건 직후 톰이 썸머와 싸운 이유는, 썸머가 톰이 격분한 이유의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가 싸운 이유는 썸머를 희롱으로부터 보호하려했던 게 아니라 그 남성이 톰을 무시하는 욕(찌질이)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방어를 위해 벌인 싸움을 썸머로 돌린 것이다.

 

혼자서 상황을 정리해 보면서 썸머를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썸머를 찾아가 자신의 본마음을 밝히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한 걸 알면서도 썸머를 찾아가 위로해 주지 않는다. 찾아온 건 썸머였고, 그녀가 먼저 사과를 한다. (키스도 그녀가 먼저 한다)

 

두 번째 상황. 초반 둘이 사귀게 되는 접점이 음악이었다. 그래서 레코드 가격에 갔는데, 톰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뭐냐는 질문에 썸머는 링고스타라고 대답한다. 이때 톰의 반응이 걸작이다. 비웃으면서 어떻게 링고스타를 좋아할 수 있냐고 핀잔을 준다. 이 상황은 영화 중반 이후에도 한 번 더 등장한다. 톰은 그녀가 왜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지 묻지 않고 자신의 음악취향대로 그녀의 취향을 보잘것 없는 것이라 일축해 버린다.

 

세 번째 상황. 둘이 영화 구경을 갔다. 무슨 영화인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고 썸머는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관을 나와서 톰은 썸머에게 왜 울었느냐고 묻는다. 사실 이런 물음은 처음 미팅에 나온 여자에게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 수준과 동일하다.

 

다시 돌려보니, 톰은 연애에서 상대편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잘도 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진상'이라 말한다. 하지만 톰의 이런 행동을 처음 영화를 보는 중에 발견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영화는 아주 충실히 톰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에. 영화 주인공 톰에게 감상자가 감정이입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남성이면 더더욱!) 이 영화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결국 썸머가 (톰과의 권태기에)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홀랑 넘어간 건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닌 것이다. 연애의 성공은 다름 아닌 작은 배려심이다. 배려심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에서 나온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좀처럼 나올 수 없는 미덕 중의 하나이다.

 

톰은 자기 식으로 썸머를 사랑했다. 그건 타인을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여성상을 사랑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녀도 좋아하게끔 강요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애의 다른 표현이다.

 

연애는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이다. 그것도 동성이 아니라 이성을! 화성에서 오고 금성에서 왔다는 이 극과 극의 주체들이 만나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이 연애이다. 이의 성공적인 출발점이 바로 타인에 대한 '배려'임을 영화는 빼어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단순한 연애물이 아니다. 영화 스스로 이를 멋지게 증명했다. 브라보~

 

 

덧.

1. 연애하고 싶어 환장한 남성 싱글들은 짝을 시청하지 말고 이 영화를 돌려보기를 부탁드린다.

2. 연애 초보자는 3번, 4번 돌려보시라 당부드린다.

3. 연애에 계속 실패하는 남성분들, 4번, 5번 돌려보시라.

4. 자신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여자에게 빠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역시 반복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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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9-0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뿐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일상적으로 많이 부딪히고 서로 상처받죠.
서로 배려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자세가 늘 필요한 것 같아요.

yamoo 2013-09-06 22:48   좋아요 0 | URL
결혼 하고도 계속 싸우는 커플들 많이 봤어요. 연애때보다 더 싸우더라구요~ 감은빛님의 그런 생각을 갖으면 환상적인 결혼 생활이 될듯해요~^^

페크pek0501 2013-09-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의 덧 글, 참 재밌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연애에서뿐안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필요한 덕목이죠.
그런데 그거, 쉽지 않아요. 알고는 있으되, 잘 실천할 수 없거든요.
저 역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남을 잘 배려하지 못한다는... ㅋㅋ


yamoo 2013-09-15 16:08   좋아요 0 | URL
자계서인 <배려>만 보아도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덕목이에요. 페크님의 말씀마따나 정말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남을 존중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의지만 있으면 아주 어렵지만은 않은 거 같습니다. 일종의 훈련이 필요할 뿐이죠. 남녀관계에서도 관계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이 배려라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습니당^^

초원에 부는 바람 2013-10-0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별스럽지만 몇 마디 더해 봅니다. 사랑과 연애가 같은 것인가 늘 헷갈려요. 연애는 늘 정치적이지요. 사랑은 1인칭이며 연애는 관계이니, 실상 사랑이나 연애에 타자가 들어설 수 있을까요.

yamoo 2013-10-02 23:20   좋아요 0 | URL
알렝드 보통의 책을 읽다가 제기하신 문제로 인해 격렬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결론이 안났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