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나경원의 재산이 언론에 밝혀 졌을 때 심히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도대체 피부를 어떻게 관리하기에 억대의 비용이 들 수 있을까...하는~ 

뭐, 40-50대 여자 연예인들이 젊어지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맞거나 20-30대 연예인들이 조금 더 어려보이려고 양악수술을 하는 건 이해가 간다. 

헌데, 나경원 의원은 원래부터 타고난 미인이었다는 소릴 들으지라...돈의 출처가 의심스러웠다. 어디서 받은 돈을 위장하려고 피부미용비로 둔갑시킨게 아닌가 하는... 

아, 오늘 그 실체를 알았다. 다음 사진으로부터..ㅋㅋ 

  

정말 놀랍다. 왼쪽이 지금의 오른쪽이 됐으니...ㅋㅋ 성형을 피부미용으로 포장하다니..나경원스럽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ㅎㅎ 

아, 근데 저 정도의 시술이면 그 병원 문전 성시를 이루겠네~ 와~~~정말 마술같은 성형이다..ㅋㅋㅋ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1-10-25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럴수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어느 남자 국회의원이
이 여자의 미모에 대해 한마디 하던데
그게 단순히 남자로서 흑심이 있어서 한 말마는 아니었나 봅니다.
원래 미모가 출중한 줄 알았는데.
사람 생긴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처럼 치사한 게 없는 건데
사회가 성형을 권하고 있으니 탓할 수마는 없는 노릇이고.
암튼 대략난감하네요.ㅋ

yamoo 2011-10-26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원래 미모가 출중했다는 소릴 들었었거든요. 어디서 나온 뜬소문인지 모르겠지만..ㅎ
저도 사람 생긴거 가지고 뭐라 하는 것만큼 치사한 짓은 없는 거 같아요. 근데, 얼굴에 손대는 사람들에 정치인도 포함된다니 좀 의외에요. 유명한 정치인으로서는 나경원이 아마도 유일할 듯 싶어요..ㅎㅎ
 
계량화돼가는 학문세계(이승우)

아프락사스님이 서재에 올려주신 이승우 씨의 글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있어 전문을 옮겨 놓고 몇 자 부가해 본다.  


 

계량화돼가는 학문세계
2011년 10월 20일

이승우 출판인  

 

최근 우리 사회에 독서 열풍을 몰고 온 한 교수의 책은 여러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가운데 나는 경제적 삶의 영역을 이제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함으로써 ‘통계’에 익숙한 경제 분석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정신이 스며든 시각으로 경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을 명징하게 드러내 보인 점이 신선했다.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예를 들어 애덤 스미스로부터 마르크스, 요제프 슘페터까지)이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사상가였음을 상기해본다면, 현대경제학 특히 미국식 계량경제학에서는 ‘인간’이 배제된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고 좀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자료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 생활의 주체가 인간인데 인간은 배제되고 단지 숫자화된 통계자료를 통해 경제학을 해왔으니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흔히 말해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의 분석과 전망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제 현상 한가운데 ‘인간’을 두고 분석해보면 의외의 시각으로 복잡한 경제현상을 ‘인간학적’으로 볼 수 있음을 그는 말하고 있다.

무릇 학문의 존재 이유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대학에서의 인문학, 사회과학 역시 인간의 이해를 돕는 학문일진대, 지난 십여 년간 우리 대학사회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숫자와 통계의 논리에 빠져 최소한의 상아탑 지위마저 상실 위기에 처한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한 학회지 편집간사를 맡고 있는 소장학자에게 들은 바로는 예전에 비해 학회지에 기고하는 논문 편수가 눈에 띌 정도로 늘었지만, 질적 수준의 진전은 제자리걸음 내지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아울러 실적을 쌓고 그에 걸맞은 승진 제도가 질적 평가기준보다는 수치화된 양적 평가 위주로 이루어지고, 연구 프로젝트 역시 (인문학의 경우 특히나) 장기간에 걸친 ‘사유의 모험’을 보장해주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교수나 강사, 대학원생들이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각 대학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제 대부분의 평가기준은 논문 편수로 수치화된다.

그렇다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충분한 연구기간을 확보하고 심혈을 기울여 단행본 저술을 해나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레 출판계 쪽으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 해 각 언론사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괄목할 만한 수준의 학술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출판계의 평가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출품종수 자체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 질적 수준 역시 갈수록 떨어진다는 데 있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연구자들이나 인문, 학술출판계에 종사자들이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보다 먼 훗날을 생각해보면 실적에 급급한 양적 연구결과물 생산에 익숙해진 것이 고착화돼 저술의 早老 현상이 가속화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서구 학계에서는 정년을 넘어서도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해 대작을 집필하는 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가다머나 하버마스, 최근의 자크 랑시에르나 알랭 바디우, 테리 이글턴, 프레드릭 제임슨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제 大作이나 力作을 찾는 것은 물론, 소장학자 때부터 온축된 치열한 글쓰기와 사유의 모험을 나이 들어서도 활발히 전개해나가고 있는 학문의 ‘어른’을 찾기란 더더욱 요원한 일이 되어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계량화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유용하게 쓰일 정도까지가 그 한계이지 그 범위를 벗어나면 사람이 거기에 종속하게 된다. 하물며 학문세계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지 않는가. 한 연구자의 정신의 발현을 숫자로 표기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한 교수가 시장자유주의의 숨겨진 허상을 인간화된 경제학으로 극복하자고 하듯이, 대학의 학문세계 역시 인간의 정신 행위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통해 계량화의 폐해를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대 경제학이 인간을 위한 경제학이 아닌 수학적 모델을 위한 경제학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예전에 이미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설파한 내용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독서 열풍을 몰고 온 한 교수의 책’이 무슨 책인지 모르겠지만 “복잡한 경제현상을 ‘인간학적’으로” 본다는 시각에서, 그 교수는 확실히 슈마허의 경제학을 계승한 학자임이 분명할 것이다. 이 교수가 쓴 책이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

아무튼, 출판계에 종사하지 않아 출판계의 현황은 이런 출판인들의 전언에 귀 귀울이지 않는 이상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런 글은 가치가 있다.

   
  지난 해 각 언론사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괄목할 만한 수준의 학술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출판계의 평가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출품종수 자체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 질적 수준 역시 갈수록 떨어진다는 데 있다.
 
   

 


괄목할 만한 수준의 학술서가 거의 없다거나, 출품종수가 현저히 줄었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네 평범한 독자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통계 수치로 좀 자세히 알려줬음 하는 아쉬움이 있는 대목이다.

각 대학의 논문 편수가 늘었지만 질적으로는 떨어지며 학술 단행본이 양적, 질적으로 저하된 이유는 위 글에서 언급 됐다시피 결과물 위주로 교수와 대학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교수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꽤 많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교수들에 따르면 예전에 심혈을 기울여 1편 쓸 논문을 여러 편으로 쪼개서 발표한다고 한다. 그래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논문이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데 대학에서 실적 위주의 양적 평가 장치라도 없으면 1년에 논문 한 편도 안 쓰는 교수들이 엄청 많아지리라는 데 문제가 있다.

내가 학부를 다닐 때에도 그런 교수들을 부지기수로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런 교수들도 지금은 결과물 위주의 평가 때문에 적어도 몇 편은 쓴다. 물론 부실할 수 있다. 쓰기 싫어하는 사람이 억지로 쓰니 오죽 할까. 그래도 이런 공부 안하는 교수들이 공부를 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그리 나쁜 장치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좋은 논문들을 쓰고 항상 공부하는 교수들에게는 논문의 질을 저하시키는 작용도 할 것이다. 제약이 없었던 예전에는 1년에 양질의 논문 3편을 썼던 교수가 이제는 평가 제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6편-7편을 쓴다. 확실히 질적인 면에서 예전만 못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지만, 주목할 만한 학술서가 없고 논문의 질이 떨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논문을 쓰는 교수는 정해져 있다. 예전에 좋은 논문이 100편 이었다면 어떤 제약 없이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에서 이들이 쓴 논문이다. 양질의 논문이 50편으로 줄었다면 이들이 스트레스로 인해 100편 쓸 것을 200편 쓴 것이다. (이게 주범일 듯)

현행 결과 위주의 대학 평가 시스템은 결국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공부 안하는 교수들을 어느 정도 공부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공부를 꾸준히 해 오던 교수들에게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주어 그들의 학구열을 반감시키는 것은 크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학문의 진보'는 그저 그런 100편의 논문이 아니라 양질의 논문 1편에 의해 이루어진단다. 예전에 비해 좋은 논문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은 이승우 씨가 지적했듯이 학문의 퇴보라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평가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학문의 퇴보는 가속화 될 것같아 심히 걱정된다.
 

 ps.
좋은 글을 접할 수 있게 해 준 아프락사스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1-10-2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하는 책은 정태인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일 것입니다.한번 확인해 보세요.

yamoo 2011-10-24 19:05   좋아요 0 | URL
우왓! 감사합니다~ 한 번 찾아볼게요. 무지 궁금했더랬어여! ^^
 
완득이 - Punc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러니까 10월 14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친구가 시사회에 당첨이 돼서 보기 싫다는 나를 억지로 불러냈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꽁짜표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러 갔지요. 

책은 이미 재미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볼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영화 포스터도 디게 재미 없을 것 같은 포쓰가 마구 발산되는 것 같아, 그냥 어떤 내용인지 확인만 할 요량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기 시작하자 영화의 재미에 금새 빠져들었습니다. 저예산 영화라는 티가 팍팍 났지만, 재미 면에서는 역대 성공한 한국 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았습니다. 5분마다 한 번씩 폭소를 터뜨렸던 것 같습니다. 

동주 선생을 열연한 김윤석 씨와 도완득 역을 훌륭히 소화한 유아인 군의 연기가 발군이었습니다. 특히 김윤석 씨는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연기 내공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아마도 성공하리라고 확신합니다만) 이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 때문일 것입니다. 

이끼에서 이미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김상호 씨의 옆집 아저씨 역은 정말 많은 웃음을 선사해 줬습니다. 조연 이었지만 옆집 아저씨 캐릭터가 없었다면 그 많은 웃음의 미학은 반감됐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완득이에게 호를 붙여주고 싶더군요. 영화 속에서 완득이는 이름 앞에 붙는 호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유명한 사람 이름 앞에 남들이 불러주는 호. 완득이는 동주 선생으로 인해 그 염원하는 호를 저도 모르게 얻게 됩니다. 다름 아닌, '얌마'라는 호이지요. 담임 선생인 동주선생은 완득이를 그냥 이름대로 부르지 않습니다. 항상 '얌마, 도완득~!'하고 부르죠. 언제나, 항상 그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도완득의 호는 '얌마'입니다..ㅎㅎ 

한편, 이 영화는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웃기는 영화이긴 합니다만, 내용 자체는 만만치 않습니다. 이 영화는 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을 들추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조심스럽게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습니다. 

영화는 보기드물게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합니다. 왜냐하면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내내 웃었지만 완득이가 자신의 필리핀 어머니를 만나 구두를 사주면서 '엄마'라고 부르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으니까요. 완득이의 어머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싸~했습니다.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왔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마지막 완득이의 웃는 모습이 어찌나 밝고 깨끗한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어찌나 재밌에 이 영화를 봤는지, 시사회 당첨된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거, 참 재밌네~ 진짜~ 재밌네'라는 말을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에게 초강추 하는 영화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0-2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엉, 저는 영화본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이렇게 마구 유혹의 메시지를 날리는 리뷰라니! 그런데
김윤석 씨의 연기를 처음 보셨단 말이예요? 으아, 야무님두 영화랑 담 쌓고 사셨군요. ^^

완득이 무척 좋은가봐요, 아직 책도 못 읽었는데...... ㅠㅠ

yamoo 2011-10-24 00:13   좋아요 0 | URL
네~ 김윤석 씨 첨 봤어요..ㅎㅎ 한국영화하고 그리 친하지가 않아서여..^^;;
좀 친해지려고 요즘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완득이, 완전 재밌습니다. 책 읽은 친구가 책보다 훨씬 낫다고 해요. 책 안 보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거 같다는...이거 꼭 보시길 권해드려욤!

가연 2011-11-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은가봐요, 저도 볼까 생각중인데.

yamoo 2011-11-04 01:24   좋아요 0 | URL
완전 재밌어요! 전, 안보려고 했었다니깐여!ㅎ 보고나서 이 영화 광고인이 됐다는..ㅋㅋ 가연님에게두 강추~~^^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 - 개정판
이재정 외 지음 / 예경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자인 계열의 책들을 읽다가 보면 의외로 숨겨진 일급 비서(秘書)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도널드 노만의 <디자인과 인간심리>, 커트 행크스외 2인 공저 <재미있는 디자인 여행> 그리고 루이스 멈포드의 <역사 속의 도시>와 같은 책들을 보면 디자인을 넘어 ‘인간’에 대한 어떤 통찰 같은 것을 던져 준다. 생각의 폭을 넓혀 주며 전혀 다른 학문들을 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할까.

그래서 디자인과 패션에 관한 책들은 즐겨 찾게 되며, 이 분야의 책들은 항상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거기다가 편견과 고정관념까지 깨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최근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 하나가 이런 유익함을 듬뿍 얻어 주었다. 바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예경, 2004)이다. 어찌 보면 딱딱하고 멋대가리 없는 책인 듯 보일 수 있다. 나도 디자인 코너에서 책을 빼어들고 첫 장을 열어보기 전에는 교과서 느낌이 물신 풍겼으니까.

하지만 몇 장을 넘겨보니, 트렌드를 대표하는 사진에 눈이 즐거워졌다. 책을 뺀 곳에서 순식간에 40여 페이지를 읽었다. 서서 읽을 책이 아니었다. 대출하여 황급히 집으로 가져와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실로 유익하다. 타이틀이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이지만, 이 책의 본질은 ‘트렌드 개념어 사전’쯤 된다. (책의 부제가 ‘패션 디자이너를 위한 트렌드 키워드 130’이다.) 그래도 개념 자체가 인문 사회학에서도 두루 통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트레드 개념어 소사전’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공저자인 이재정과 박은경 씨는 모두 미국 뉴욕 주립대 F.I.T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이 씨는 현재 국민대 의상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박 씨는 패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이러한 책을 출간한 이유가 머리말에 제시되어 있다.   


두뇌한국 21 정책 지원을 받아 출범한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대학원 패션디자인 랩실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로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국내외 시장을 조사한 것은 물론이고 해외 현장과 서점에 나와 있는 방대한 자료도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정보를 집대성한 책이 있어서 디자이너가 참고하며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국내외의 자료를 수집, 요약,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수백 개의 주제어 중에서 효용성을 고려해 다시 130개 주제어를 추출하여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p8)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책으로 집필되었지만 일반인들이 보아도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소사전’이다. 예컨대 패션 잡지나 기사를 보다보면 생소한 개념어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아르데코, 옵아트, 레트로, 그런지 등이 바로 그러 단어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패션과 디자인에 관련된 최근 기사를 옮겨 본다.


세련된 패셔니스타들은 베이지 톤의 트렌치코트와 함께 브라운과 베이지컬러가 매치된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다. 좀 더 모던한 느낌을 주려면 내추럴한 캐주얼룩에 브라운 컬러 슈즈로 표인트를 주어   OSEN,  2011.10.14

베이직하우스의 조홍준 마케팅 팀장은 “올 가을은 ‘레트로 클래식’의 영향으로 그런지룩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필드점퍼와 복고적인 감성이 살아있는 체크셔츠가 빼놓을 수 없는 패션아이템이다”  2011.8.30 [아주경제] 패션 면

북유럽의 자연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했다. 다양한 재단을 통해 의외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기능성을 놓치지 않은 그의 컬렉션은 실용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다. [패션저널] 2011.10.13

지난 9월말 국내에 발매된 잼박스는 최첨단 스피커이다. (중간 생략) 스테인리스스틸의 기본 구조에 고무 케이싱, 사면 전체가 하나의 그릴형으로 이루어진 잼박스는 미니멀리즘 미학을 추구하면서 내구성까지 확보했다.  [IT/디지털 미디어 케이벤치] 11.10.18

  

 

 외국어가 한국어 문법을 무시한 채 무지막지하게 나열된 기사이다. 패션계의 언어는 이렇다. 뭐, 모두가 패션잡지에서 많이들 보아 온 익숙한 기사이니 외국어 남용 문제는 제쳐 놓고 기사에 묻혀 있는 개념어들을 놓치지 말자.  

 

‘모던(모더니즘)’과 ‘캐주얼’ 그리고 ‘그런지’와 ‘미니멀리즘’ 등의 개념들은 익숙하지만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한 단어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의미와 기원 그리고 문화현상으로서의 해석이 사진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의 일부만 발췌해 본다.

 

모더니즘 ; modemism 
  Key Words ; Form follows Function, Bauhaus, Futurism, De Stijl 
  P(인물) ; Thomas Elyot
-보편적으로 모더니즘은 근래의 스타일, 취향, 태도, 표현을 일컬음.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은 르네상스 이후에 생겨난 개념으로 보편적인 근대적 감각을 나타내는 문화, 예술의 여러 경향을 일컬으며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에 대한 반항이자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임
-순수한 미를 표현하고자 단순성을 추구하며 기능적 구조를 위해 장식을 제거하고 비례와 리듬감을 살려 디자인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사용함. (p48)

미니멀리즘 ; minimalism 
  Key Words ; ABC Art, Primary Structures, Specific objects, 3S(small, slim, simpl) 
  P(인물) ; Kasimir Malvich, Frank Stella, Josef Albers, Prada 
  Color ; 오렌지바미리온, 팔 그레이, 알루미늄 그레이, 슬레이트 그레이, 담수색, 퍼머넌트 그린, 커피 브라운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예술을 뜻하며, 미학적인 범위에서 극도로 단순화하는 것이 특징임.
-미니멀리즘은 주관적이며 풍부한 디자이너의 감성을 고의로 억제하며 디자인에서 최소하의 장식을 통해 미감을 최소한으로 줄여 나타내려는 것으로 그 시각적인 특성은 화려한 색상을 절제하여 대개 검은색이거나 단색, 때때로 금은색을 사용함. 미니멀 디자인들은 그 절제된 단아함 속에서 더욱 세련된 면모를 보임. (p50)

레트로 ; retro 
  Key Words ; Classic tradition, Historicim, Rvivalism, remake image 
  Color ; 프렌치 그레이, 와인, 핑크, 밝은 청자색, 다크 브라운, 베이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담은 복고적 분위기와 가상을 의미함. 또한 상징적인 복고적 표현 또는 과거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분석에서 비롯된 감성적 표현임.
-방법론적 고찰에서의 가치보다는 ‘시대적 이념 혹은 이상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강하며 레트로의 표현은 고대부터 1980년대 풍의 이미지까지 다양하나 주로 가까운 과거인 20세기에 대한 복고적 경향을 일컬음. (p126)  


그런지 : Grunge
  Key Words ; Ecology, bricolage, layering&shabby, recycle fashion 
  P ; Pearl Jam, Nirvana 
  Color ; 프렌치 그레이, 올리브 그린, 와인, 다크 블루, 베이지, 라이트 브라운
-그런지라는 용어는 1980년대 말 미국의 시애틀 지역에서 최초로 발전한 그런지 록(Grunge Rock)에서 출발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중적인 면모를 갖춘 얼터너티브 음악이자 문화를 일컬음.
-80년대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고 근원은 도시적인 보헤미아니즘에 있음. 실용적인 가치관이 낳은 이 문화는 히피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젊은이들의 염세주의와 불안을 잘 표현한 거칠고 분노에 찬 감정적인 노래처럼 현실에 대해 냉소적임.
-특별한 형식  없이 아무렇게나 입거나 혹은 여러 가지 스타일을 섞거나 반대되는 소재를 사용하여 다양함을 표현함. 또는 중고 의류를 재활용한 에콜로지의 표현이나 색상에 서로 반대되는 것을 혼합하여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하기도 함. (p 230)   

 

 (왼쪽부터 미니멀리즘, 레트로, 그런지를 보여주는 이미지 컷들. 책의 왼쪽 면에는 개념 설명을 그리고 오른쪽 면에는 해당 주제어를 잘 보여주는 이런 이미지 컷들로 구성됨)

 

 위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이 책은 다양한 문화 현상에 주목하여 디자인 소스를 찾아내고 정리한 사전이다. 사회, 문화, 예술 일반에 드러난 130가지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였으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풍부한 사진자료를 곁들인 게 최대 장점이다. 핵심 개념어 설명도 기원과 함께 응용 분야를 명시하여 간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특히 각 주제어를 대표하는 컬러, 키워드, 중요 인물, 영화 등이 함께 제시되어 있어, 디자인과 문화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 책만의 미덕이다. 디자인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를 넓히고자 하는 분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1-16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1-16 15:08   좋아요 0 | URL
늘 아껴 읽는지 아닌지는 저로서는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구여~~ㅋㅋ
저는 좋은 리뷰를 쓰는 인간이 절대 아니랍니다~~ㅎㅎ

2011-11-16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 - The Unforgive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난 주 일요일. 2005년 부산영화제에서 PSB관객상을 비롯 4개 부분의 상을 휩쓴 그 명성도 자자한 <용서받지 못한 자>를 드디어 봤다. 감독의 졸업 작품이라는 점도 이색적이었지만 작품이 얼마나 대단했기에 이듬해 2곳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될 정도인지 자못 궁금했다.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승영(서장원)이 자대배치를 받아 친구인 병장 태정(하정우)을 만나는 장면에서 부터 몰입하기 시작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화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본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군 생활의 안 좋은 기억들이 영상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충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감독이 미시적인 군대문화와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를 어찌도 그리 섬세하게 파헤쳤는지 놀라웠다.

이 영화에 바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영화 속 인물 승영 때문이다. 그가 자대배치 받아 신병 생활을 하는 초반에 보인 행동과 말은 내가 군 생활 하는 내내 가졌던 생각과 꼭 같았다.


승영은 막내의 성기를 만지며 장난을 치는 고참에게 단호히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개념 없는 이등병이다. "왜 쓰레빠를 후임병이 갖다줘야해? 자기가 꺼내 신으면 되잖아." "그런 게 다 폭력이야." 그리고 항상 말한다. "내가 바꿀 거야."

이렇게 승영은 군 문화의 폭력성에 저항하고 이런 잘못된 폐단을 자기가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 나의 군 생활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갈굼 당하는 이등병은 누구나 승영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극의 전개는 서서히 바뀌어 가는 승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등병 시절 처음 가졌던 승영의 결심은 점점 무디어져 간다. 승영의 보호막이었던 병장 태정은 승영 때문에 심한 갈굼을 당하자,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승영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

"이승영, 대가리 박아. 그리고 너네, 이 새끼한테 잘해 주지 마."

이 사건을 기점으로, 승영은 군대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간다. 고참들에게 갈굼 당하지 않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자기도 폭력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다. 승영은 자신의 후임병인 지훈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잘해 주었지만 고참들의 압박이 심해지자 편한 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지훈을 갈구기 시작한다. (이건 제대한 대한민국 남자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승영의 폭력은 결국 지훈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여자 친구와 헤어져 힘들어하던 지훈은 어느 날, 승영에게 심한 갈굼과 함께 구타를 당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공황상태에 빠진 지훈은 결국 전투화 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승영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미 제대한 친구 태정에게 용서를 받고 싶어 한다. 휴가를 이용해 둘은 만나지만 태정은 승영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고, 승영은 끝내 지훈 죽음의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결국 죄책감에 의해 갈등하다가 승영도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내가 본 이 영화는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단순한 군대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대 문화의 폭력성과 인권 유린에 대한 고발이다. 군대 문화의 인권 유린과 폭력성은 매년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이 영화가 2005년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승영과 지훈과 같은 병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지난 여름 해병대 2사단 A 모 이병의 자살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묻힐 뻔한 사건이 참으로 우연히 공개된 것이다. 그리고 어제 광주의 모 부대에서 선임병의 가혹행위로 인해 김 모 이병이 군화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름 모를 병사가 조용히 자살로 삶을 마감할 것이다. 군대 내의 폭력과 구타로 인해.

이 영화의 고발성은 실로 가공할만하다. 승영과 지훈은 이름 없고 얼굴 없이 죽어간 자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현실에서 수많은 병사가 자살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자살자의 자살 매커니즘을 명백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쯤해서 현재 진행형인 대한민국 군대의 인권유린과 폭력성이라는 사실을 거들 떠 보기라도 하자.

• “말한다고 맞고, 말 안한다고 맞고…” 육군 이병 “선임병 괴롭힘 못견뎌” 외박 나와 자살  [2011.10.18 YTN]

• 식칼로 부하 얼굴 면도질...군 간부 가혹행위, 올해만 35명. 강제로 담배 씹어 먹게한 중사, 비누·음식 찌꺼기 먹인 간부도 있어  [2011.09.29 오마이뉴스]

• 軍내 성범죄 심각. 매주 1건 꼴 발생  [2011.07.24 연합뉴스]

 


군대에서 인권 유린을 당하면 하소연 할 때가 한 군데도 없다. (폭력적인 군대문화로 인해 금새 은폐되고 하소연 한 자만 매장된다) 자살만이 병사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 이외에는 어떠한 탈출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를 비롯해 정부와 법원은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병영 내에서 병사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실체는 국가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임병과 후임병 사이에 행해지는 제도적 악습이다. 이러한 인권 유린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해마다 70명 이상에 이른다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통계수치가 아닐까? 단지 몇 달 먼저 입대했다고, 폭력을 정당화 하는 군대는 비민주적 군대의 전형이다. 군대의 시간은 1960년대에 멈춰있는 가 보다.

하지만 매우 슬프게도 우리 군의 시간은 멈춰있기는 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여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보도가 한창 일 때 한 신문의 논설위원은 1962년 최영오 일병 사건을 들춰내는 칼럼을 썼다. 다음은 그 칼럼의 일부이다.


강화도 해병 부대의 총기 난사를 보며 낡은 신문 속의 ‘최영오 일병 사건’을 떠올렸다. 1962년 7월 8일 오전 8시의 일이다. 서울대 문리대 4학년을 다니다 입대한 최 일병은 고참 2명의 등을 향해 M1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여자친구가 보내온 12통의 사랑 편지를 같은 내무반의 병장과 상병이 뜯어보고 희롱하자 대들었다. 고참들에게 거꾸로 흠씬 얻어맞은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총을 쏘고 자살을 기도했다. 군사법정에 끌려온 최 일병은 “두 사람을 살해한 순간 나 또한 죽은 지 이미 오래다. 다만 아무리 군대라 해도 인간 이하의 노리개처럼 갖고 노는 잔인함을 향해 총을 쏘았을 뿐”이라고 울부짖었다.

 수많은 서울대 학생들과 문인(文人)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으나 소용없었다. 이듬해 3월 19일, 그는 서울 수색의 군 사격장에서 총살당했다. “나의 죽음으로 비인간적인 군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군대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남편과 사별한 뒤 20년간 혼자 그를 뒷바라지한 모친(당시 61세)이 한강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평소 자주 빨래하던 마포 강변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안에는 “높으신 선생님들, 내가 영오 대신 가겠으니 제발 내 아들은 살려주십시오”라고 적힌 유서가 들어 있었다. 온 사회가 눈시울을 붉혔다.

 

온 사회가 눈시울을 붉혀도, 언론이 떠들고 시사고발 다큐가 사건을 파헤쳐도 전혀 변하지 않는 군대가 대한민국의 군대다. (우리는 이를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과 천안함 사건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다)  영화에서 선임병의 폭력에 저항하던 승영에게 태정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너가 틀린 건 아닌데, 그러면 너만 힘들어져.”

최 일병 사건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똑같은 사건을 거의 매주 마주하니, 슬픔을 넘어 분노하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고 있는 걸까? “나의 죽음으로 비인간적인 군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군대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한 최일병의 유언을 우리는 어쩌자고 방치했는지 모르겠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죽음이 됐으니.

군의 폭력과 구타 그리고 인권유린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병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영화 속의 승영과 지훈의 죽음이 오버랩되곤 한다. 그리고 태정이 승영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돈다.

“너가 틀린 건 아닌데, 그러면 너만 힘들어져.”

우리가 태정이 되어 우리 스스로에게 이 말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1-10-2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군대를 나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군대 시절을 떠올렸을 겁니다. 저도 그랬구요. 그리고 운좋게도 제대한 사람이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요.
yamoo님이 강조하신 말씀이 저도 마음에 걸리네요. 한국의 남자들은 이런 군대 문제에서만큼은 말씀하신 바대로 이중적이 되니까요. 분명 잘못된 부분을 인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런 것이 어쩔 수 없다,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요(그런 생각들이 사회에서까지 연결이 되구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같은 것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태도만 보아도 어느정도는 알 수 있구요.
무엇을 바꾸어야만 바뀔까요? 혹은 무엇을 더 이야기하여야만 나아질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yamoo 2011-10-20 23: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 영화를 보면 생각이 복잡해 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마도 군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 예비역 남자들의 비애 같습니다~^^;

근데, 맥거핀님두 이 영화 보셨나요? 맥거핀님 영화리뷰에서 못 본거 같아서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1-10-2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환상도 없이 너무나 적나라한 영화라서 직시하기가 힘든 영화였습니다.이 영화는 대학에서 남녀학생들이 함께 보고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어떤 반응이 나올지...아마 여학생들은 주변의 남학생들에게 너도 저랬냐 하고 물어볼 것 같아요.

그런데 여학생들이 이 영화를 통해 군대의 실상을 아는 것에 대해 남자들이 찬성할지...그것도 궁금하네요.여자들은 이런 영화에 애초에 관심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yamoo 2011-10-22 19: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거 학교 수업시간에 함께 보며 토론 자료로 삼으면 금상첨화 겠어요^^

아마도 여학생들은 이런 영화에 관심이 별로 없을거 같긴 하네요. 군대갈 쯔음의 동생을 두거나 막 갔다가 온 동생을 둔 여자분이 아니면 많은 관심을 받긴 힘든 영화라고 생각이 들긴합니다만..그래두, 하정우가 나오는데..헤~

릴케 현상 2011-11-1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전 개봉관에서 봤어요. 꽤 세월이 지났군요. 그무렵 동호회 사람들이랑 봤는데 남자들은 숙연해져서 나오고 단 한 명이던 여자는 지루해서 혼났다고 하면서 우리더러 뭔 내용이냐고 하더군요. 사실 영화애호가라 할 만한 사람은 그날 그분이 유일한 모임이었는데도 그날은 그렇더군요.

yamoo 2011-11-20 1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꾸벅~^^
그쵸, 이 영화 개봉한 날짜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어요~
당시 상황이 그려져서, 웃음이 납니다..ㅋㅋ 하기사, 여자분들은 지루하겠지요..ㅎㅎ 영화애호가 한 사람의 지루함이라..ㅎㅎ 남녀의 반응이 극과 극인 영화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