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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 - 개정판
이재정 외 지음 / 예경 / 2006년 9월
평점 :
디자인 계열의 책들을 읽다가 보면 의외로 숨겨진 일급 비서(秘書)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도널드 노만의 <디자인과 인간심리>, 커트 행크스외 2인 공저 <재미있는 디자인 여행> 그리고 루이스 멈포드의 <역사 속의 도시>와 같은 책들을 보면 디자인을 넘어 ‘인간’에 대한 어떤 통찰 같은 것을 던져 준다. 생각의 폭을 넓혀 주며 전혀 다른 학문들을 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할까.
그래서 디자인과 패션에 관한 책들은 즐겨 찾게 되며, 이 분야의 책들은 항상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거기다가 편견과 고정관념까지 깨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최근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 하나가 이런 유익함을 듬뿍 얻어 주었다. 바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예경, 2004)이다. 어찌 보면 딱딱하고 멋대가리 없는 책인 듯 보일 수 있다. 나도 디자인 코너에서 책을 빼어들고 첫 장을 열어보기 전에는 교과서 느낌이 물신 풍겼으니까.
하지만 몇 장을 넘겨보니, 트렌드를 대표하는 사진에 눈이 즐거워졌다. 책을 뺀 곳에서 순식간에 40여 페이지를 읽었다. 서서 읽을 책이 아니었다. 대출하여 황급히 집으로 가져와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실로 유익하다. 타이틀이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이지만, 이 책의 본질은 ‘트렌드 개념어 사전’쯤 된다. (책의 부제가 ‘패션 디자이너를 위한 트렌드 키워드 130’이다.) 그래도 개념 자체가 인문 사회학에서도 두루 통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트레드 개념어 소사전’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공저자인 이재정과 박은경 씨는 모두 미국 뉴욕 주립대 F.I.T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이 씨는 현재 국민대 의상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박 씨는 패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이러한 책을 출간한 이유가 머리말에 제시되어 있다.
두뇌한국 21 정책 지원을 받아 출범한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대학원 패션디자인 랩실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로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국내외 시장을 조사한 것은 물론이고 해외 현장과 서점에 나와 있는 방대한 자료도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정보를 집대성한 책이 있어서 디자이너가 참고하며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국내외의 자료를 수집, 요약,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수백 개의 주제어 중에서 효용성을 고려해 다시 130개 주제어를 추출하여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p8)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책으로 집필되었지만 일반인들이 보아도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소사전’이다. 예컨대 패션 잡지나 기사를 보다보면 생소한 개념어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아르데코, 옵아트, 레트로, 그런지 등이 바로 그러 단어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패션과 디자인에 관련된 최근 기사를 옮겨 본다.
세련된 패셔니스타들은 베이지 톤의 트렌치코트와 함께 브라운과 베이지컬러가 매치된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다. 좀 더 모던한 느낌을 주려면 내추럴한 캐주얼룩에 브라운 컬러 슈즈로 표인트를 주어 OSEN, 2011.10.14
베이직하우스의 조홍준 마케팅 팀장은 “올 가을은 ‘레트로 클래식’의 영향으로 그런지룩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필드점퍼와 복고적인 감성이 살아있는 체크셔츠가 빼놓을 수 없는 패션아이템이다” 2011.8.30 [아주경제] 패션 면
북유럽의 자연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했다. 다양한 재단을 통해 의외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기능성을 놓치지 않은 그의 컬렉션은 실용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다. [패션저널] 2011.10.13
지난 9월말 국내에 발매된 잼박스는 최첨단 스피커이다. (중간 생략) 스테인리스스틸의 기본 구조에 고무 케이싱, 사면 전체가 하나의 그릴형으로 이루어진 잼박스는 미니멀리즘 미학을 추구하면서 내구성까지 확보했다. [IT/디지털 미디어 케이벤치] 11.10.18
외국어가 한국어 문법을 무시한 채 무지막지하게 나열된 기사이다. 패션계의 언어는 이렇다. 뭐, 모두가 패션잡지에서 많이들 보아 온 익숙한 기사이니 외국어 남용 문제는 제쳐 놓고 기사에 묻혀 있는 개념어들을 놓치지 말자.
‘모던(모더니즘)’과 ‘캐주얼’ 그리고 ‘그런지’와 ‘미니멀리즘’ 등의 개념들은 익숙하지만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한 단어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의미와 기원 그리고 문화현상으로서의 해석이 사진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의 일부만 발췌해 본다.
모더니즘 ; modemism
Key Words ; Form follows Function, Bauhaus, Futurism, De Stijl
P(인물) ; Thomas Elyot
-보편적으로 모더니즘은 근래의 스타일, 취향, 태도, 표현을 일컬음.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은 르네상스 이후에 생겨난 개념으로 보편적인 근대적 감각을 나타내는 문화, 예술의 여러 경향을 일컬으며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에 대한 반항이자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임
-순수한 미를 표현하고자 단순성을 추구하며 기능적 구조를 위해 장식을 제거하고 비례와 리듬감을 살려 디자인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사용함. (p48)
미니멀리즘 ; minimalism
Key Words ; ABC Art, Primary Structures, Specific objects, 3S(small, slim, simpl)
P(인물) ; Kasimir Malvich, Frank Stella, Josef Albers, Prada
Color ; 오렌지바미리온, 팔 그레이, 알루미늄 그레이, 슬레이트 그레이, 담수색, 퍼머넌트 그린, 커피 브라운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예술을 뜻하며, 미학적인 범위에서 극도로 단순화하는 것이 특징임.
-미니멀리즘은 주관적이며 풍부한 디자이너의 감성을 고의로 억제하며 디자인에서 최소하의 장식을 통해 미감을 최소한으로 줄여 나타내려는 것으로 그 시각적인 특성은 화려한 색상을 절제하여 대개 검은색이거나 단색, 때때로 금은색을 사용함. 미니멀 디자인들은 그 절제된 단아함 속에서 더욱 세련된 면모를 보임. (p50)
레트로 ; retro
Key Words ; Classic tradition, Historicim, Rvivalism, remake image
Color ; 프렌치 그레이, 와인, 핑크, 밝은 청자색, 다크 브라운, 베이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담은 복고적 분위기와 가상을 의미함. 또한 상징적인 복고적 표현 또는 과거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분석에서 비롯된 감성적 표현임.
-방법론적 고찰에서의 가치보다는 ‘시대적 이념 혹은 이상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강하며 레트로의 표현은 고대부터 1980년대 풍의 이미지까지 다양하나 주로 가까운 과거인 20세기에 대한 복고적 경향을 일컬음. (p126)
그런지 : Grunge
Key Words ; Ecology, bricolage, layering&shabby, recycle fashion
P ; Pearl Jam, Nirvana
Color ; 프렌치 그레이, 올리브 그린, 와인, 다크 블루, 베이지, 라이트 브라운
-그런지라는 용어는 1980년대 말 미국의 시애틀 지역에서 최초로 발전한 그런지 록(Grunge Rock)에서 출발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중적인 면모를 갖춘 얼터너티브 음악이자 문화를 일컬음.
-80년대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고 근원은 도시적인 보헤미아니즘에 있음. 실용적인 가치관이 낳은 이 문화는 히피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젊은이들의 염세주의와 불안을 잘 표현한 거칠고 분노에 찬 감정적인 노래처럼 현실에 대해 냉소적임.
-특별한 형식 없이 아무렇게나 입거나 혹은 여러 가지 스타일을 섞거나 반대되는 소재를 사용하여 다양함을 표현함. 또는 중고 의류를 재활용한 에콜로지의 표현이나 색상에 서로 반대되는 것을 혼합하여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하기도 함. (p 230)
(왼쪽부터 미니멀리즘, 레트로, 그런지를 보여주는 이미지 컷들. 책의 왼쪽 면에는 개념 설명을 그리고 오른쪽 면에는 해당 주제어를 잘 보여주는 이런 이미지 컷들로 구성됨)
위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이 책은 다양한 문화 현상에 주목하여 디자인 소스를 찾아내고 정리한 사전이다. 사회, 문화, 예술 일반에 드러난 130가지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였으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풍부한 사진자료를 곁들인 게 최대 장점이다. 핵심 개념어 설명도 기원과 함께 응용 분야를 명시하여 간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특히 각 주제어를 대표하는 컬러, 키워드, 중요 인물, 영화 등이 함께 제시되어 있어, 디자인과 문화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 책만의 미덕이다. 디자인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를 넓히고자 하는 분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