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후편을 이어 갑니다~
'대상에 대한 철저한 재현', '재료와 형상의 추구'.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실상이고 졸업생들의 현실이다. 이게 내 주관적 생각이라면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의 비전문적인 비판이라고 개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말하면 달라지겠지. 내 논조와 아주 비슷하게 한국미술계를 통렬히 비판하는 전문가가 있어 소개한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윤범모 교수. 그의 책 <한국미술론>(칼라박스, 2017)에 보면 그의 매서운 전문적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지난 30여 년간 발표한 주요 논문 20여 편을 모아 엮은 책으로 한국미술사를 종횡무진 연구한 역정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윤범모 교수는 “한국 미술,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묘사. 독창적 철학이 없다.”는 것으로 요약한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1만 건 이상의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1만 건은 정말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1달에 약 천 여 건의 전시회가 개최된다는 말인데, 실로 엄청난 수다.
'우리나라에서 집에 그림을 사서 거는 가구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직장인이면 당신 동료와 선후배를 한번 살펴보라. 그림을 사는 직원은 아마도 거의 없을 거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그렇다. 직원들 중 집에 그림을 걸어 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과에는 아예 없고 옆에 과도 그리고 이전 부서였던 곳도 역시 집에 그림을 걸어 놓는 직원은 한 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 달에 천 여 건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건 정말 기형적인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전시회 숫자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프리즈와 아트페어에 몰리는 인파를 봐도 참 아이러니 하다. 이들이 정말 그림을 정기적으로 구매해서 그림을 감상하는 자들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우리나라 상황을 윤 교수 다음과 같이 정리해 준다.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수준은 형편없다. 창작 발표라기 보다 자원 낭비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혹평할 수 있다. 대관료만 내면 전시할 수 있고, 또 대관전시로 미술계에 등단하는 구조, 이런 도떼기시장 같은 미술계 관행은 커다란 문제다. 성격 없는 전시, 독창성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그가 말하는 바를 계속 따라가 보자. “그 여느 때보다 상상력과 시대정신, 독창성 등의 키워드가 중요한 시대다. 작가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나, 그런 경우가 드물어 걱정이다. 무슨 장기자랑 출전선수처럼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묘사했지, 작가 자신의 독창적 철학이 없다. 소통구조를 외면하고, 상상력과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무슨 걸작을 꿈꿀 수 있겠는가.”
윤범모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무릎을 치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미술대전에 출품하여 입상한 작품들을 죽 둘러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전통과 권위의 그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도 어디서 본 듯한 작품들이 대거 입상한 걸 목도했기에. (심지어 작년 대상 수상자는 작년과 거의 비슷한 그림을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한다.)
핀터레스트의 그림 이미지만 검색해도 비슷한 그림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한국화는 어느 대회나 본상수상작들이 항상 비슷비슷하다. 캔버스에 뭔가를 덕지덕지 붙여 이게 부조인지 공예인지 모를 작품들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이런 작품들은 대회에서 입상했기에 항상 볼 수 있다.
뽑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계속 이런 작품들이 횡행하겠지. 심지어 비구상 대회에 구상적 이미지가 강한 작품도 심사위원들은 잘도 뽑아준다. 우주에 우주선을 그린 그림도!! 구상 그림들은 잘 재현한 작품들, 그러니까 오랜 시간을 들여 형상을 잘 그린 그림들이 주로 입상한다. 신진작가를 선발하는 미술대전 입상작들을 보면 대개 그렇다.
구상계열에서 동양화건 서양화건 풍경화(강, 바다 산 등), 동물 그림(고양이, 개, 호랑이, 조류 등), 정물화(꽃, 인물 등), 팝아트(캐릭터) 등이 8할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니까 수상작은 누가 누가 공을 들여 대상을 잘 재현했는지에 달려 있다.(그래서 요즘 보면 자개나 전선 등 캔버스에 이상한 것들을 마구 붙이고 있다.)
현재 잘나가는 젊은 비구상 작가가 그랬다. 추상회화에서 철학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좋은 형상으로 작업을 해 작품을 완성하여 전시하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의미가 정해지니 작가의 철학적 사유는 없어도 된다고 조언한다. 심지어 어느 작가에 따르면 자기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미술대전은 이런 작가들의 형상에 대한 경쟁 지대다. 그 이름만 달랐지 똑같은 복사판 대회(수상작 전시회)다. 꽃, 산, 바다, 하늘, 정물, 동물, 팝아트 등등. 말과 해바라기는 미술대회 입상작에서 정말 빠지지 않는 소재다. 누가누가 잘 그리는지 경쟁하는 게 학교 사생대회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동물 그림과 식물 그림에 무슨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겠는가.
아무 문화센터나 화실에 가서 그림 강좌 5년만 꾸준히 배우면 누구나 대상을 잘 재현할 수 있다. 취미미술 학원에 가보라. 대상을 충실히 재현한 잘 그린 그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들을 작가라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미술대학 졸업생들과 신진작가 그림들이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작가적 철학?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책도 읽지 않는 작가들에게 철학은 너무 먼 나라 얘기다.
구상 그림만 그런 게 아니다. 비구상은 정말 처참할 정도다. 누구나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감성만 주야장천 그린다. 새로운 형상을 창출할 수 없으니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의 아픔과 느낌 운운한다. 레퍼런스만 넘쳐나고 그걸 넘어서는 작가적 개성은 전무하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다. 대학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후 미술대학이 생긴 지도 60여 년이 넘었다. 디자인 대학까지 합치면 매년 5000명 이상의 미술 전공자들이 사회로 배출된다. 60년이라면 30만 명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광복 이후 현재까지 배출된 미술인 30만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있기는 한 것일까? 김환기, 백남준, 이우환이 있지 않냐고? 그들은 일본에 가서 철학을 공부해서 유명해졌지 한국 미술대학이 길러낸 작가들이 아니다.
한국 미술대학의 부실함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부 학생이건 전문가이건 우리나라 미술대학의 부실함과 경쟁력 없음을 우려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 교육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수층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물론 우리나라가 빈곤국에서 출발하여 고도 압축 성장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입지전적의 나라라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른 문화적 불균형은 어쩔 수 없었겠지. 먹고 살아야 했기에 문화적 소비는 최소한으로 해 온 게 사실이다. 60-70년대에 비싼 그림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선진국이 됐다. 작년 프리즈에 몰린 구매 인파만 봐도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그림을 구매하는 층은 극소수다.
5집 건너 한 집이 미술품을 구매한다는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미술에 관심이 있는 가구가 별로 없다. 각자 직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다.
이러한 미술을 향유하는 문화. 누가 조성했을까? 나는 그 책임이 한국 미술인들에 있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럼에도 매해 1만 건 이상의 전시회가 열린다!!) 자기들끼리 파벌을 형성하고 세력을 키우느라 미술문화의 저변을 넓히지 못한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후진적인 미술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는 매우 드문 사례이지 아닐까. 2000년대 이후 상황만 놓고 봐도 비싼 그림은 많아졌지만 우리의 미술적 토양은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미술인들의 폐쇄성만 더욱 견고해 지고 있는 듯해서다.
현재 아트페어나 해외 경매에서 잘나가는 젊은 작가들은 모두 미술대학에서 낙제생들이었단다.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미술대학 경쟁력이 형편없는 것이겠지. 정말 미술인들이 뼈를 깍는 노력이 있지 않고는 해결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학생 중 작가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지는 각종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여건 보다는 훨씬 좋을 거다. 우리는 우선 내실을 다지고 일반인들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저변을 넓혀야 한다.
그 중심 역할을 미술인들이 해야 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닐까.
[덧]
수년 간 미술 언저리를 배회했다. 미학 책 읽고 그림 책 읽으며 미술모임과 각종 전시회에 따라다니면서 얼추 배웠다. 물론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아 직접적인 경험은 못해봤지만 주위에 미술대학 졸업생들의 전언들은 수도 없이 접했다. 그러다가 그림을 컬렉팅하면서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정말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매우 암담한 우리나라 미술 세계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피상적이겠지.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하면 결국에는 가산을 탕진한다는 말이 빈발이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진짜 부를 쌓은 자만이 미술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현실을 딛고 굿굿이 전업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