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애인을 위해서 한 가지 향기를 남겨두는 것은 각 애인들에 대한 내 나름의 순정이다. 내가 여러 종류의 향수를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애인을 만나러 갈 때마다 그가 좋아하는 향수를 기억해서 뿌릴 줄 아는 나의 인지 및 분류 능력을 나는 늘 기특해 한다.
애인이 떠나면 나는 한동안은 그를 만날 때 쓰던 향수를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떠난 뒤 내가 처음 하는 혼잣말은 '향수를 바꿔야 겠어'이다. 언제나 우리의 만남을 동반하던 향기를 맡지  않으면 이미 휘발돼버린 그의 존재를 그리워하지 않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사랑은 순간에 머무는 자극이고 또 기분일 뿐인지도 모른다.
(31페이지)       

                                                                              ---쥔스킨트의 <향수>가 생각난다..

 

시간은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순간들의 체적일 뿐이다. 나는 시간을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은 채 그냥 흘려보내는 편을 좋아한다. (52페이지) 

                         ----<행복한 죽음>에서 뫼르소가 그렇게도 원했던 시간의 개념이 생각난다..

 

진희: .....부탁이야. 나한테는 농담만 해줘
현석: 사랑해
진희: 그래, 정말 좋은 농담이야
(중략)
진희: 잘 알잖아. 나한테는 끊임없이 남자가 필요해
현석: 당신한테 필요한 건 남자가 아니야. 사랑의 존재를 의심하는 싸구려 연애 감정이지. 당신은 사랑이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자꾸 남자에게 곁은 주는 거라구
진희: 당신말대로라면 당신도 그중 하나 아냐?
현석: 난 사랑을 믿는 사람이야. 믿는 사람에게는 보여
진희: 그거야 당신 방식이고 나한테는 내 방식이 있어. 맞든 안 맞든, 너무 오래되고 익숙해서 난 그 방식이 편해. 날 바꾸려고 하지 마
  (208-209페이지)

 

진희: 나는 희망을 갖는 일이 두려워. 결국 적응하게 되고, 지속되기를 바라고 그런 것들 모두. 희망을 가지는 것은 문가를 믿는다는 거야. 당신은 그 결과가 뭐라고 생각해? 삶은 늘 우리를 속인다구. 삶은 말야. 믿으라고 있는 게 아니야. 배신을 가르쳐주기 위해 있는 거야. (259-260페이지)
 


진희: 조금은 믿게 해줘. 말하자면 당신의 청혼 같은 그런 희망. 기쁨의 순간이 있어. 그러나 그것은 스쳐가는 일이야. 거기에 집착하면 인생이 무거워져. 빗방울 처럼 발밑으로 떨어진다구.
삶은 폭력남편과 비슷한 점이 있다. 때린 다음에 반드시 울면서 안아 준다. 그리고 또 때린다. 아내들은 속는 줄 알면서도 믿는다. 절대 이혼하지 못한다. 삶은 커다란 속임 속의 작은 믿음을 익혀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현석:언제까지나 순간에서 순간으로 떠다닐 수는 없어.
진희: 나는 인생에 자신이 없어. 그래서 가볍게 살고 싶어하는 거야. 난 내인생을 사소하고 잘게 나누어서 여러 군데에 걸쳐놓고, 그리고 작은 긴장만을 갖고 그 탄성으로 살아갈 거야. 전불ㄹ 바쳐서 커다란 것을 얻으려고 하기엔 나는 삶의 두려움을 너무 빨리 알았어.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인지도 몰라.....희망을 가지면 난 약해져
. (26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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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단수(單數)가 아니다. 단수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일직선 위에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 시간이 단수라고 여기는 한, 앞의 물음들은 그저 불가지(不可知)나 신비주의의 영역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시간은 단수가 아니다. 유(有)와 무(無)의 경계를 넘나들고, 관현악의 화음처럼 중첩되어 있으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다. 시공간이 연출하는 이 화려한 퍼레이드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선분 위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것들을 그저 ‘포스트모던’의 징후로 돌리는 건 적절치 않다. 분명 근대 이전에도 시간은 복수(複數)였다. 중세적 문명론은 천(天)․지(地)․인(人)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적 시공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단수가 된 건 20세기 근대의 산물이다. 오직 인간의 활동만으로 역사를 구성하게 되면서 시간은 단 하나의 척도로 가늠되었다. 시간의 ‘주름들’이 얇게 펼쳐지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일직선으로 늘어서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시간은 계산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대상을 수로 측정할 수 있다는 건 모든 것이 동일한 질량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 균질화!

모든 시간이 동일한 질량으로 이루어졌다고? 오, 그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이와 뜨겁게 교감하는 시간과 증오와 분노로 마음지옥을 헤매는 시간, 혁명적 열정으로 바리케이드 위를 지키는 전사의 시간이 어떻게 동질화될 수 있단 말인가? 토굴에서 7년 동안 면벽하는 달마 대사의 시간과 아무런 목표도 의지도 없이 방황을 거듭한 나의 20대가 어찌 같은 척도로 측정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시간을 수로 계산하고, 그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강제한다.

그 이유는 바로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균질화하는 배후의 동력은 화폐라는 ‘숨은 신’이다. 시간은 돈이다! 돈이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헛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시간을 낭비하는 자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귀한 가치처럼 내세우는 ‘노동의 신성함’ 역시 그 기저에는 ‘시간의 화폐화’라는 원리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상식처럼 통용되는 ‘노동/게으름의 이분법’은 사실 돈이 되는 ‘짓’을 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자신이 아무리 즐거워도 돈이 안 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따라서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스스로 알아서 죄의식을 느낀다. 자신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국가와 인류에게. 속도에 대한 신앙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요컨대 지금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속도의 문화는 화폐화된 시간의 단선성 그 자체에 있다. 잘게 쪼개서 화폐로 계산하고 오로지 앞을 향해 나아가도록 강제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피로함.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맹목의 리듬, 속도! 이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삶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죽거나 나쁘거나!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 ‘외부’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속도의 파시즘’이라 할 수 있으리라. 속도의 파시즘은 20세기 초 기차와 함께 이 땅에 도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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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어떤 길을 가다가 맞은편에서 같은 길을 걸어오고 있는 사람과 만났다고 할 때, 우리는 다만 우리가 걸어온 쪽의 길만 알 뿐 상대편이 걸어온 쪽의 길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그와의 만남에서 그가 걸어온 길을... 말하자면,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너’라는 완전한 관계의 과정에 있어서도,우리는 다만 우리가 살아온 양상에 따라서 우리가 살아왔다는 것, 우리가 걸어온 길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상대편이 걸어온 길은 다만 우리에게 마주쳐지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만남 속에서 그것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마치 만남 저편의 어떤 것인 양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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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치는 밤 읽기책 단행본 9
미셸 르미유 글 그림,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한의 끝은 어딜까?
다른 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지?
도대체 누가 맨 처음 인간의 생김새를 생각해 냈을까?
우리가 만일 채소처럼 땅에서 솟아 자란다면..
나는 누굴까?
이 세상에 나는 오직 나 하나밖에 없을까?
만약에 우리가 몸을 서로 바꿀수 있다면...
아니면 우리 몸 가운데 우리가 싫어하는 부분이라도 감출 수 잇다면!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드는 몸을 고를 수 있다면, 누군가가 내몸을 가지고 싶어할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는 처음부터 미리 정해져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내 앞날을 나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 걸까?
내가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결정한 것이 옳은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나는 불행한 일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운명- 그게 도대체 정확하게 뭘까?
그리고 우연은 뭐지? 누가 그걸 정하지?
내 머릿속에 있는 이 많은 생각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그것들이 내 머리를 떠날 때에는 어디로 가는 거지?
우리가 지금 사는 게 사실은 꿈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꾸는 꿈이 진짜라면?
이 세상의 끝이란게 있을까?
내가 언제 죽을지 미리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볼 수 있을까?
도대체 무한은 어디에서 끝나지?
혹시 내가 죽은 다음에 모든 것이 내가 태어나기 전과 똑같지 않을까?
어쩌면 죽음이 우리 기억을 싹 지워 버리는지도 몰라,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우리는 아마도 사람이 아닌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될지도몰라!
죽은 다음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떡하지?

 
이 동화책에 나오는 물음들이다. 책을 한 시간 만에 볼 수 있지만 다시 그림과 글을 매치시
켜서 보니 거의 매장을 멈춰있게 된다. 하나 하나의 물음들이 심오한 철학적 물음들이기 때
문이다. 돌아버리겠는건...천둥치는 하룻밤 사이에 한 아이가 자기의 개와 함께 침대에서 이
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도무지 잘 것 같지 않은 아이는 이런 심각한 물음들을 던져놓고는...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그러면 모든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지구의 신비와
우주의 신비를
그리고 난 어디에서나 친구를 사귈 수 있을 텐데!
그려면 정말 신날거야!

 

 "그러면 정말 신날거야!"라는 말로 마무리 하면서 침대속 속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도리도리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잠을 설치게 하는 난제를 던져주고는 정말 무책임하게도 잠이 든다.  

그리고 해가 뜨는 그림과 함께 더 넘길 책장이 없어진다. 이런이런이런~~ 아이다운 무책임한 마무리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책 읽는 내내...얘야, 잠 좀 자라...넌 잠도 없니? 애가 왜 이리도 어려운 것만 무책임하게 묻고 나서...어른이 심각하게 고민하게 해 놓고 그제서야 자는 거니...니가 던져 놓은 물음들을 생각하느라 나는 밤잠을 설쳤는데..개하고 먹을 것을 먹으면서 하나도 심각하지 않게 어떻게 그런 물음들을 던질 수 있는 거니?  

아~ 넌 정말 무책임한 애구나. 어쩌자구 나는 천둥치는 밤을 나기 위해 아이가 하는 이런 말에 넋을 놓고 읽게 되었을까. 

아이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을 형상화하는 그림들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아이의 세계였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어른들의 머리가 얼마나 굳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상상력의 빈곤을 들어내는지 단박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바로미터 역할도 해 주고 있다.   

천진하지만 난해한 질문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우리세계의 희로애락과 애오욕을 상상력있게 펼쳐보이는 삶 자체였고, 색다른 차원의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진리라는 체계, 당위, 상식 그리고 통념을 뛰어넘어 어렸을 때 막연히 생각했던 '진리의 원형'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어른이 아이의 눈으로서 사물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투박하지만 삶에 직관적인 통찰을 주는 것 같다.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너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는한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때묻지 않은 삶의 순수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귀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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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을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궁극적 실재를 우리의 언어로 파악한다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인 텍스트이다 ;

나는 다음과 같은 비류로 세월 보내기를 좋아한다. 선장은 주머니 속에 먼 바다로 나아가야만 열어 볼 수 있는 봉인된  항해지령서를 넣고 출항했다. 그는 불안감이 사라지는 순간을 고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봉투를 열어보니 거기에는 온갖 화학처리를 해보아도 글씨가 나타나지 않는 지령문이 있을 뿐이었다. 간혹 가다 글씨가 나타나기도 하고 자오선을 표시하는 숫자가 보이기도 하다가는 다시 사라져 버린다. 그는 지령문을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었다. 지령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임무를 저버릴 것인가마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지령문이 들어 있다는 의식은 그것을 해독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장을 유람선이나 해적선 선장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끔 만들었다.(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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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kuppe 2011-05-2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십니까입니다. ^±^/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네요. ^±^
꿈과 모험의 책, 어렸을 때는 좋아했습니다.
「삼총사」, 「15소년표류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