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비판 - 우리시대의 부끄러움을 말하다
김상태 지음 / 옛오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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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회사에 나가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간만에 들른 서점에서 획기적인 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판서를 읽는 게 몇년 만인지..시간상 서점 마감시간이 임박해서 더 읽을 수 없었지만 대충 끝까지, 타치바나씨가 가르쳐준 속독법으로 완독했다. 완독한 이후 사기친 사람에 대한 분노를 넘어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바로 도올 김용옥 비판서다. 비판의 대가 강준만 교수도 비판을 피해간 유일한 사람이었는데(인물과 사상시리즈), 한 서울대 출신 수학도로 인해 만천하에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예전에 도올이 티비에 나와 엔터네이너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할때 이경숙씨나 서지문 교수 그리고 일부의 동양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도올의 이상한 논리를 비판했지만 주로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어...도올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도올 왈, "내 책도 안 읽은 것들이 어디서 대가에게 함부로 지껄이느냐"였다. 적어도 나 도올을 비판하려면 내가 쓴 책을 전부 읽고 뭐라 말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데, 누가 도올의 머리아픈 책을 읽겠는가..

도올을 비판하고 싶어도 비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올이 너무도 방대한 사유체계의 저작물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 생물학, 물리학, 사회학 등 도올은 그의 학분적 영역을 넘어 여러 영역에서 '씨부린다'(책의 표현을 살렸다). 언어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히랍어, 라틴어 까지 씨부린다. 티비에서도 정도전에 대해서 강의할 때 불씨잡변을 중국어로 씨부린 도올이었다. 잘난척 하면 정말 알아주는 도올..

비판을 하려면 도올에 버금가는 수준이 되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정도의 교양수준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없기에 도올은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으로 활기치고 다닐 수 있었다. 이경숙씨나 서지문찌의 도올비판에 대해서 도올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어디~ 9급이 9단을! 예끼~!~' 하는 식이었다.

논의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두 단발성으로 그쳤고, 도올도 거기에 콧방귀만 뀌었지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경숙씨나 서지문교수 모두 도올의 논어와 노자의 단일텍스트만을 비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두 분의 비판은 일리가 있었지만 동양학 원전의 텍스트를 여러 방향으로 해석하는 도올의 박식함에 유야무야 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텔레비전에 나와 강의할 당시, (물론 지금도) 도올의 인간성은 싫어하지만 그의 학문적 자세는 받아들이는 나였기에 두 분의 도올 비판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긴것 또한 사실이었다. 도올 논어 티비 특강 1강에 도올은 화이트 헤드의 철학을 끌어들이면서, 동양학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열어가야 함을 역설했다. 그런 부분을 도외시한 서교수의 비판은 그리 잘나 보이지 않았던게 그때의 느낌이었다.

여기, 드디어 도올의 모든 저작을 샅샅이 읽고 가장 기본적인 의문점으로부터 도올을 비판하는 저작이 나왔다. 이 저서의 논리대로라면 도올은 반드시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도올의 책을 전부 읽고 이런 책을 낸데에는 저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도올의 책으로 동양학에 입문하려고 그의 책을 사서 읽다가 충격을 받으면서부터 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문제의 출발은 도올 논어 첫문장에 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유리를 밟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얇게 아는 대학 초년생이 치기어린 지식을 과대포장하려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 첫문장이 아마도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고 두번째 문장이 "공자는 실제로 존재했을까?"였을 것이다.(기억력이 가물거려 확실치가 않다) 여기서부터 저자는 충격을 받는다.

나름대로 저자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서 자신이 독서 아우라를 가진 분이다. 열정적인 탐독가이고 진지한 독서가이다. 그런 그에게 김용옥의 저작들은 모두가 저열했다. 수박겉핥기식 책이 대부분이란 것. 50여권을 모두 읽고 내린 결론이 김용옥의 저작들은 모두 "위대한 서설"뿐이라는 사실. 저작에서 얘기한 도올의 어떤 약속도 그는 지키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사실 도올은 지금까지 동양학 텍스트에 대한 어떤 논문도 발표한 적이 없고, 또 그가 주장하는 방식(철저한 고증을 통한 해석방식)으로 동양철학의 원전들을 한권도 번역하지 않았다. 저자는 바로 이점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판서가 나름의 의의를 갖는 것은 도올의 아킬레스를 집요하게 파헤쳤다는 점이다. 미심적지만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을 저자가 해 냈다. 그것은 바로 도올이 지식이라고 떠들면서 논문하나 쓰지 않았고, 그가 그렇게도 학계를 비판했던 고전번역서를 그 자신이 한권도 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것은 학자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 저자처럼 책을 많이 읽는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식인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저자는 통탄을 했고 그게 우리의 아픈 자화상이라고 했다.

도올 김용옥이 박식한 지식이라는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하는 모든 얘기들은 단편적이고 깊이가 없다는 내용이다. 그 사실을 저자는 레래드 다이아몬드의 <제3의 침팬지>라는 저서를 통해 입증한다. 도올이 생물학과 생태학을 씨부릴때 그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인 책조차 읽지 않았다고 일간한다. 그 책을 읽었으면 범하지 않을 심각한 오류를 도올이 저지르고도 그것이 오류인지 모르고 있는 사실에서 저자는 비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도올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하는 얘기들은 신학대학 학부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아울러 알려줬다. 틸리히나 해방신학을 애기하는 것도 저자에 따르면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저자는 이 모든 저작들을 독서토론을 통해 모조리 읽었다고 한다. 근데, 도올의 씨부리는 얘기가 그 때 읽었던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책은 도올을 황우석에 빗대어 국민을 사기친 대형 지식 사기꾼으로 매도하고 있다. 좀 어폐가 있긴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도올의 만행을 낱낱히 파헤친 면에서는 사기꾼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게 바로 대중이었음을 지적한다. 바로 우리 사회의 척박한 권위주의 의식이 황우석과 도올 같은 사람들 만들었다는 것이다. 뭐, 그렇게 일리가 박약한 말은 아닌듯 싶다.

도올이 나이 40에 원광대 학의과대학 학생으로 입학해서 진짜 열심히 공부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동양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그 해석의 지평을 열어준 것에 열광하여, 그의 돼먹지 않은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했는데....이 책을 읽고나서 도올이 사기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사기는 치지 않았더라도 도올은 그가 말한 것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후레자식이라고 욕하는 대상과 도올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단 말이다.

도올의 책을 모조리 읽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서... 신랄하고도 기본적이기에 비판서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일단 그의 저작을 모조리 읽고 도올이 사기치는 넘이라고 평하는 이 사람에 대해서 도올은 적어도 대응은 해야 할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가 '도올은 허풍쟁이다' 라고 이전의 사람들이 비판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비판에 직면하여 도올은 내 책 전부 다 읽고서 그런말을 하라고 했는데, 진짜 도올 책 전부를 읽고 도올이 '너저분한 넘'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도올이 말해야 할 때가 아닌지...그리고 뭐라고 할 지 무지 궁금하다. 책을 보면 도올은 더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거의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아...위대한 서설만 있으니 이제 쓰면된다고?!

 

*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했기에, 그리고 그의 저서들을 읽고 매번 시원시원한 비판의 재미에 빠져있었기에,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의 충격은 상당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충격은 가시지 않고, 그래서 도올이 더 괘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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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뇌동 2011-03-0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보쇼...

1.수학과나온 서울대 학사가 고전문학 전공박사의 글을깐다는 것자체가 모순이다.

2.수학과나온 서울대 학사는 고전문학에 대한 논문이나 번역집하나 쓴 경험도 없는사람이 고전문학 전공자를 깐다는것 자체가 모순이다.

3.수학과 나온 서울대학사가 ....도올의 완역번역집 금강경을 `이건 논외로 하자 시중에 많으니 `라고 말하는것 자체가 모순이다.

도올의 금강경텍스트는 한국최고 팔만대장경판을 원본으로 한거이기 때문이다.

4.황우석사태를 들먹이며 자신이 고전문학전공박사를깔수 있다고 하는데
황우석 사태의 논문조작을 밝혀낸 사람들도 그 분야의 생명공학분야전문가들 이였다.

좀 알고 부화뇌동하시길...

하지만빨랐죠 2020-05-02 23:42   좋아요 0 | URL
이보쇼...

1. 저자는 도올을 비판하면서 그 기저에 깔린 학벌주의적 맹목이 만들어낸 허상을 비판하고 있다. 글쓴이가 후기처럼 쓴 글 역시 이를 말하고 있다. 자네는 반박처럼 무슨 말을 씨부리지만, 그 무뇌적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2. 충분한 서치능력만 갖고 있다면 학위나 전공은 별 상관이 되지 않는다. 이건 지식의 창출, 편집의 과정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텍스트를 발굴해내고, 면밀한 검토를 통해 타당함과 그름을 따지는 과정이다.

3. 한국 최고.. 이런 열받는 말투는 올군에게서 옮겨 왔는가? 어떤 텍스트가 해석될 때엔 대상 텍스트의 가치가 ˝시장˝에 끼칠 영향력과 필요성이 따져져야 한다. 이는 기존의 관련 텍스트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지 역시 포함된다.

모순이라는 말이 모순이다. 그런 건 없다. 그냥 이 글도 도올느님 비판한 책도 자네 마음에 안들고, 더 못되고 현란한 비판을 끄적임으로써 글쓴이를 굴복시키고 마음의 상처도 좀 주고 싶은데, 평소에 공부가 부족했던 탓인지, 무언갈 더 생각하긴 귀찮고, 자기 속에 더 내보낼 수 있는 단어가 없어서 대충 문장 끝에 쿨한 척 첨가한 게 자네가 말하는 모순의 참뜻이다.

4. 황씨와 올군의 업적은 대중에게 인정을 받았고, 까보니 그럴싸한 구라였더라. 이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직관적인 이해를 놔두고 뭐 이 말 저 말 돌아서 먼 길을 가는가. 돌았는가?

좀 부화뇌동하지 마시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사회학의 명저를 찾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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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 배정희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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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 지음, 강희경.이해찬 옮김 / 돌베개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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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엘리트
C. W. 밀즈 지음 / 한길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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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토르스타인 베블런 지음, 김성균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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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통이 되게끔 하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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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심리학- 생각의 오류를 파헤치는 심리학의 유쾌한 반란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한창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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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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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변화시킨 40가지 연구
로저 R. 호크 지음, 유연옥 옮김 / 학지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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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B.F.Skinner / 탐구당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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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경제학적 마인드를 쌓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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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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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경제학
크리스 앤더슨 지음, 이노무브그룹 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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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열린경제학
이준구 지음 / 다산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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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경제학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성훈 옮김 / 김영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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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범우사상신서 35
E.F.슈마허 지음 / 범우사 /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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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이나 고급음식점 같은 곳에선 차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주차안내원이나 종업원들은 작은 차를 타고온 사람에게 "어이"라고 호칭하고, 소형차는 "아저씨", 중형차는 "선생님", 대형승용차는 "사장님"이라고 부른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대형차를 탄 재벌 아들이 자기 앞에 끼어든 작은 차의 무엄한(?) 행동에 격분하여 그 운전자를 폭행, 중태에 빠진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사회에서 흔히 경험하는 이런 일들은 우리가 큰 것에 약하기 때문이다. 일명 '사이즈 컴플렉스'. 큰 사이즈라면 무조건 주눅이 드는 경향. 이런 큰 것 선호의식은 큰 것은 무조건 좋고, 작은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편견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우리의 편견과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석학의 명저가 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범우사, 2004)가 바로 그것.

크기가 좋고 나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했을까? 

 작은 것은 가치개념이 개입되면 큰것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작은 것은 좋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사회가 거시적인 것, 공업화를 추구하면서 작은 것은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작은 것은 무조건 크게 해야만 가치있는 일로 생각되었다. 오죽하면 '성장의 신화'라고 까지 했겠는가.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절약과 능률'이라는 모토아래 그 전도가 서서히 뒤바뀌어지고 있다. 이런 조류를 존 네이스 빗은 "세계경제가 거대화 될 수록 소규모 경제주체들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글로벌 패로독스라는 개념으로 형상화 시켰다.

이것은 거대화된 경제구조 속에서  작은 기업이 세계경제를 주도한다는 것. 그렇게해서 일본은 1980~90년대 축소지향적 산업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바야흐로 작은 것이 가치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작은 것을 지향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한정된 에너지로 작은 것을 움직이는 것이 큰 것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에 에너지라는 개념이 개입되면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

이 한정된 현재의 기술을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으로 풀어냈다. 그의 명저 <엔트로피>에서 우리 지구는 폐쇄체제로서 에너지가 한정되어 한방향으로만 흐른다고 했다. 쓸 수 있는 에너지에서 써버린 에너지로 이행하는 에너지 고갈을 그는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보았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이와 같은 엔트로피 법칙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학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자원은 고갈되었다. 무분별한 개발은 자연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상실하게 할 정도로 황폐해졌다. 하지만 '발전'이라는 신화의 논리는 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 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 댓가는 만만치 않았다. 에너지 문제가 전 지구적 문제로 확대되었고, 이때부터 환경파괴에 대한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하여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행은 인간소외와 인구문제를 심화시켰다.

이에, 슈마허는 이 책의 반을 할애하여 우리시대의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 홀크하이머과 아도르노가 쓴 우리시대의 가장 암울한 책이라 일컬어지는 <계몽의 변증법>이 우리시대의  철학의 부재와 가치관의 혼동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그 정신적 혼란이 야기시킨 물질적인 면을 경제학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헌데 그 경제학적 시각이 독특하다. 슈마허는 경제학의 역할이 경제학을 위한 경제학이 아닌 인간을 위한 경제학이 될 것을 주창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찬 이론의 정치함 속에서만 안주해 왔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것. 경제학이 수많은 천재들을 집어삼키고서도 해답없는 문제가 지속되는 것은 그 가운데 인간을 위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슈마허는 경제학이 주류와 비주류를 지양하고 인간중심의 경제학으로 바로설 것을 역설한다. 

 이 작은 책 속에서 인간중심의 경제학을 위해 슈마허는 방대한 형이상학적, 종교적 성찰을 시도한다. 그 성찰의 결과로서 슈마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스몰사상 즉 중간기술의 개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중간기술은 기계적 대량생산체계가 아닌 대중의 손에 의한 대중생산에 초점을 맞춘다.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대중생산체제는 분권화를 촉진하고 생태계법칙에 적합하며 인간을 위한 기술이라는 것. 다시말해 이것은 필요한 만큼만 소비한다는 불교의 구도자적 사상을 그의 대안 철학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이 중간기술의 철학적 기반은 '중도'개념이다. 슈마허가 불교에 심취했을 때 그 사상에 매료됐다고 한다. 인간이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이것의 끝(물질적인 것)과 저것의 끝(정신적인 것)이 아닌 그 중간(중도)을 이용한다는 것은 매우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현대 대량생산체제에서 인간은 소비자로 전락했다. 경제학책 어디에도 인간의 개념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소비만을 하는 소비자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우리의 의식을 점점 황폐화 시켜 부지불식간에 소비주의적 생활 습관에 익숙하게 했다. 매일 우리가 접하는 신문과 TV가 그런 소비에 익숙하도록 우리를 훈련시켰다.

이것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미국식 산업구조를 반성적 사고 없이, 소비주의적 생할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폐습이다.

  결국 우리는 작은 것과 적은 것에 고마워 할 줄도, 만족할 줄 모르게 되었다. 국민총생산과 같은 단순한 수량적 척도로 발전의 기준을 삼는 산업문화 속에서 인간은 점차 도구화 되어 가고 있다. 성장 제일주의와 정신적 가치가 부재한 물질적 번영은 심리적 빈곤과 불안 그리고 생명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인간이 아닌 소비자만을 배운 당연한 결과이다. 

이 책을 쓴 슈마허는 독일 출신으로  독일 영국 미국 등지에서 슘페터, 케인즈, 윌리스 등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경제학을 배웠다. 22살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나치스의 유태인 탄압으로 영국에 건너가 개인 기업의 재무고문 신문사 프리랜스 기자 등으로 근무했다.1946~1950년까지 경제통으로 활동했다. 국제결제제도에 관한 그의 구상은 케이즈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64년 이후 이른바 중간기술이론을 제창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농촌 개발에 대한 그의 권고안은 수많은 외국 정부로부터 주목받았으며 활발한 학술 활동으로 1974년에는 대영제국 지도자 훈장(CBE)을 받았다.

현대 환경 운동사에서 최초의 전체주의적 사상가로 평가되는 슈마허는 매우 다양한 관심사를 하나의 참조 틀 속에 버무릴 줄 아는 위대한 경제학자였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탄생한 책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다. 이 책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슈마허 사상의 결정체이다.

그런데  '슈마허 사상'의 실체를 확인할수록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슈마허가 지향하는 가치라는 것이 우리가 너무도 쉽게 버린 가치, 다시말해 물아일체되어 안빈낙도하며 안분지족의 생을 누린 우리 선조들의 시조와 사상적 자취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문제해결의 열쇠를 위한 기본철학은 우리의 한국사상 내면에 면면히 흐리고 있는 것들 이었다.

 슈마허가 제시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명제는 결국 우리의 전통적 가치인 '안분지족'의 삶을 배우라는 소중한 충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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