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작년에 비해 올해에는 좀 더 발전된 한 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런 기대를 해 보게 된다.

 

올해엔 서재 활동도 좀 열심을 내야 겠다. 게으름을 조금 걷어 내려면 좋아하는 거에 집중해야 하는데, 서재에서는 책 얘기와 함께 내 옷 스타일에 대한 얘기도 늘어 놓아볼까 한다.

 

서재에 옷 얘기라니, 좀 엉뚱한 면이 없지 않지만 서재 포스팅을 늘리려면 이것밖에 없는 듯하다. 하이드님 서재를 보면 플라워에 대한 포스팅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나도 하이드님의 서재 활동을 본 받아야 겠다. 서재에 꽃 애기가 정말 많은 호응을 받고 있으니!!

 

나는 뭐, 옷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옷을 책만큼이나 좋아해서 날마다의 옷 차림에 대한 얘기를 주절거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드님의 페어퍼와는 질적으로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도 하는 건 상대적으로 포스팅을 많이 할 수 있어서다.

 

주로 데일리 룩에 대한 착장 사진과 그에 대한 내 짧은 느낌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내가 이 무모한 짓을 하는 데에는 드라마 '미생'에서 뜬 강소라가 아주 혁혁한 공헌을 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드라마 미생을 딱 3편 봤다. 중간에 1편 후반부에 1편 그리고 마지막편. 미생 마지막편을 보고 얼마 안 있어 강소라 드레스라는 게 화제가 됐었다. 강소라가 무슨 어워드 시상식 상에 갔나 본데, 거기서 입은 미니 드레스가 나중에 H&M의 3만 9천원 짜리 드레스임이 밝혀진 거다. 청중 대부분은 명품 옷이라 생각한 바로 그 옷이!

 

(왼쪽에 강소라가 입은 푸른 드레그사 3만9천원 짜리 H&M 드레스. 오른쪽 명품 드레스와 비교해도 전혀 빠지지 않는 자태를 드러낸다.)

 

이후에 H&M에서 강소라 드레스가 최단 시간에 완판 됐다는 후문. 강소라가 개인적으로 사서 입고 간 거라, 강소라 스타일리스트가 매우 미안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단다. "브랜드와 상관없이 언제나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의상을 선택해야.."

 

내가 추구하는 바와 완전히 일치하는 말이 강소라 스타일리스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는 게 좀 재밌었다. 스타일리스트가 강소라에게 미안해서 일종의 자기 합리화를 위해 한 말처럼 들렸지만 이 말은 모든 배우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새겨 들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3만 9천원 짜리 옷을 명품옷처럼 보이게 입는 그 스타일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다. 아무리 수 백 만원 짜리 옷을 걸치고 명품 백을 들었다하더라도 사람드리 시장 바닥에서 산 것처럼 생각한다면 돈을 시궁창에 버리는 것과 매한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상황은 남 얘기가 아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과 대다수의 옷에 무지한 남성들에 대한 애기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로 좋지도 않은 수트를 백화점에서 100만원을 주고 사서 입고 다닌다.

 

근데, 그 수트가 정말 100만원의 가치가 있는 줄로 생각한다. 항상 그 브랜드를 입으면 기분이 달라진단다. 내가 수트에 대해 뭐라 하면, '이게 어느 브랜드껀데..'하면서 비싼 가격을 들먹인다. 그 수투가 20만원 정도밖에 안한다는 걸 그들은 진정 모른다.

 

남성 잡지를 펴도 거기 실려 있는 남자의 물건들은 겁나게 비싼 것들 뿐이고, 패션 블로거란 사람들이 운영하는 자신들의 룩을 봐도 비싼 것들 뿐이다. (물론 멋지다!) 남성 잡지에서 소개된 물건들보다야 저렴하지만 패션 블로거들이 자신들의 룩이라고 선보이는 사진들을 보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사실 유명 패션 블로그를 보면 한 포스팅 당 수십개의 덧글들을 볼 수 있다. 인기 블로거이다 보니 추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이들 덧글들을 보면 각 아이템들의 브랜드들을 열거하며 서로 멋지다고 난리다.

 

예를 들어 패션 블로그의 모 브랜드 구두 포스팅을 보며 자기(덧글을 달고 있는 자신))도 있는데, 너무 좋단다. 밑의 덧들들은 이에 조금씩 덧붙인다. 이 슈즈의 라스트는 예술이라는 둥 브로그가 치밀하다는 둥 가죽 색깔이 죽인다는 둥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둥 찬사를 늘어 놓는다.

 

근데, 이 구두의 가격은 100만원 가까이(세일 해서 80에 아주 합리적으로 구매했단다) 된다. 블로그의 주인장들은 이런 구두 자랑을 일 주일에 한 두 번씩 한다. 정말 능력자다. 상속자이거나 자기 부모가 갑부가 아니고서야 20 후반의 나이에 이런 구두를 몇 십 켤레씩 소장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반 샐러리맨들로서 반갑지 않은 이유를 알 것이다. 구두 100만원, 자켓 80만원, 코트 100만원..일반 샐러리맨들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어느 잡지, 어느 블로그를 돌아다녀봐도 남성 클래식 사진 속 착장 물건들은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가격대들이다.

 

그들의 스타일 사진 속 아이템들을 모두 구입한 비용은 대체로 100~200만원 사이다. 200을 훌쩍 넘는 스타일 사진도 많다. 일반 월급 쟁이 남자가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룩을 추종하면서 비싸면 다 좋은 것인 줄 안다. (물론 비쌀수록 값어치는 한다.)

 

나는 이런 패션 블로그를 보며 그들과 비슷한 것을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남성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친구들에게 백화점 매장에서 수트를 구입하는 걸 말리고 싶다. 더군다나 백화점 매장 가격이 1/5이 그 옷의 적정 가격임을 말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서재에다가 내 스타일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옷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멋져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이런 방자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나는 내 스타일이 맘에 든다. 시간을 들여 재미있게 선택한 내 옷차림을 사람들이 좋게 봐주기 때문이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고른 것들을 모두 좋게 봐주고 어디서 샀냐고, 어디 브랜드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가 입고 걸치고 드는 것들은 모두가 아주 저렴한 것들 뿐이다. 대개가 3-5만원 정도이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사서 착장할라고 하면 적어도 50~100이상은 줘야 하는 것들이다.

 

나는 싼 물건도 비싼 물건 못지 않게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데일리 룩'이란 걸 포스팅 해 보고 싶은 거다. 숏다리이고 패션 블로그들에 비해서는 비교 불가능할정도로 열등하지만, 저렴한 옷들도 얼마든지 매력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200만원 짜리 풀 착장은 멋지다. 하지만 너무 과도하지 않은가. 20만원으로도 그 비슷한 스타일을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게 패션 스타일에서 '오캄의 면도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비슷한 스타일을 갖는다는 건 확실히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더 낫지 않은가 말이다.ㅎ

 

 

작년에 수트 착장 사진을 올린다고 했는데, 날씨가 따뜻해서 셀카를 찍어 봤다. 옷을 바닥에 펼쳐 놓을 때가 입었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새삼 느낀다. 데일리 룩을 포스팅 할 예정이라 그 시작을 이 사진으로 골랐다. 뭔가 많이 아쉬워 룩 하나를 더 올려본다.

 

 

약속했던 팔질레리 원단으로 맞춘 수트다.

워낙 비율이 안 좋아, 더욱이 핸펀 사진이라 구리지만

그래도 착장 사진을 찍어 봤다. 25일 전후로 날씨가

따뜻하여 저런 차림으로 나가도 춥지 않았으니..

수트 : 이전에 말한대로 총60

슈즈 : 모 사이트에서 단돈 6.0에 구입한 스웨이드 더블 몽크 스트랩

양말 : 유니클로. 세일할 때 1켤레 1000원 주고 구입.

패딩 베스트 : 오렌지 팩토리에서 구입한 것 3.5

머플러 : 작년 스트릿 사진에서 밝힘

 

 

빨강 더플 코트 : 일본 빈티지 매장에서 3.5주고 구입

안에 입은 자주색 자켓형 베스트 : 일본 빈티지 사트에서 가격 후려칠 때 2.5에 구입

안에 입은 베이지 숄 카라 카디건 : 요즘 H&M에서 1.9에 세일 중

이너로 입은 얇은 터틀넥 : 플로렌스&프레드 1.5

작은 윈도 페인 팬츠 : 11월 명동 에이랜드 구제코너에서 득템 3.5(유나이티드 애로우)

머플러 : 계속 재활용..ㅎㅎ

슈즈 : 5년전 옥션에서 켤레 당 7천원에 가격 후려칠 때 산 것. 타탄 체크라 회색과 빨강을 샀는데, 현재 빨강만 건재하고 회색은 2년 전에 떨어져서 버렸다.

흠...그러고 보니 총15도 안 되네..

 

 

지난 한 해 제 서재를 방문해 주시고 좋은 댓글로 나눔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천성이 워낙 게으른 관계로 일일이 서재 방문을 못하는 걸 용서하시길~

새해에는 바라는 것들을 성취하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야무의 서재에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진을 보시고...돌은 던지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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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5-01-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댓글에 결례일까 망설이다가... 너무-) 귀여우셔욤;; 비싸지 않은 옷을 고급스럽게 소화해내는 게 더 멋진 스타일이라는 의견에도 동감이고요.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 이런 게 궁금한데요, (속닥) 내복,,, 입으십니까?

yamoo 2015-01-02 14:16   좋아요 0 | URL
아...다락방님 서재에서 자주뵙던 에르고숨 님! 반갑습니다. 제 서재에서도 님의 댓글을 볼 수 있다니!

흠..제가 귀여운가욤?? 전 귀엽다는 소리를 매우 싫어했지만 몇년 전 지인이 그건 칭찬으로 받아들이라고 해서 그 이후부턴 기분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리고 의견에 동감을 주시니, 앞으로의 페이퍼 쓰기에 힘이 될 듯합니다.

내...겨울철 필수품 중 하나가 내복과 목티입니다. 추위를 너무 타서 셔츠를 거의 입지 않습니다. 입어도 안에 아주 얇은 터틀넥을 입어야 합니다. 내복은 아니지만 유니클로 히트텍이 없으면 정말 큰일납니다~^^

수이 2015-01-0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귀여우신데요. 저도 결례일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든 생각은 이래서. :)

yamoo 2015-01-02 14:18   좋아요 0 | URL
헐~ 야나님까지 귀여우시다고 하지....감사합니다. 옛날 같았으면 버럭 화가 났었을 법한데, 요즘은 아주 칭찬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cyrus 2015-01-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군대 동기 중에 옷장사했던 형이 있어요. 장사 수완도 좋고, 패션 감각에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옷에 관한 썰만 풀면 야외근무 1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그 형도 말하더군요. 자신도 브랜드 있는 옷을 팔아봤지만 아무리 옷 잘 입고 싶어도 비싼 돈 들여가며 고급 브랜드에 사는 손님들이 한심하다고 말했어요. 저한테 너무 고급 브랜드 옷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앞으로도 패션 관련 글을 쓰신다면 개성 있는 알라디너가 되실 겁니다. ^^

yamoo 2015-01-02 14:21   좋아요 0 | URL
정말 패션의 고수들은 보세옷과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더이다~ 브랜드 옷은 걍 가볍게 치부하고..ㅋㅋ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소재로 독특한 디자인으로 자기만의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보기에도 정말 멋지구요.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이 옷이니까요. 자신도 오직 세상에서 하나 뿐인 존재이니..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러스님!^^

야클 2015-01-02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 님의 `용감하고` 멋진 패션에 박수를! ㅎㅎ 잘 읽고, 또 공감하며 갑니다. ^^

yamoo 2015-01-02 14:22   좋아요 0 | URL
오~ 야클님의 칭찬 감사합니다!! 잘 읽어 주시니, 앞으로의 페이퍼 쓰기에 힘이 나는 듯합니다~ 공감해 주시니 쓴 보람이 있네요.

올해에도 야클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순오기 2015-01-0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감과 스타일이 좋은데요~~^^
사진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찍으면 더 좋을 거 같아요!

yamoo 2015-01-02 14: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댓글이 아니었다면 수트 착장 사진을 올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새로운 페이퍼를 쓰게 동기부여를 해 주신 분이 순오기님이실 겁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근데, 사진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찍으면 얼굴이 나오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항상 저렇게 찍을 수밖에 없더군요. 사람들에게 찍는 걸 부탁드려 봐야 겠습니다..ㅎㅎ 어쨌든 좋게 봐주셔서 고압습니다!

oren 2015-01-0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 님의 옷차림 사진들을 보면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친구들 중에서도 yamoo 님과 얼핏 닮은 듯한 차림새를 자랑하는 애들이 있는데, 굳이 얼마짜리냐고 물어보지는 않는답니다. 너무 예상을 벗어나기 일쑤여서 말이지요. ㅎㅎ

yamoo 2015-01-02 14:33   좋아요 0 | URL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면 좋아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비쌉니다. 생활 속에서 안목이 높아지고 어느 순간 눈에 좋아보이는 것이 비싼 거라는 걸 직감하게 됩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멋진 차림새의 젊은 남자들을 보면 주로 자기들이 입은 것들에 대해서 서로 자랑하는 걸 듣게 됩니다. 어디서 샀고 브랜드는 뭐고 얼마 줬다고. 이들은 대부분 강남 편집숍에서 물건들을 구매하는 것 같습니다. 가격은 뭐 그냥 다 비쌉니다~ ㅎㅎ

오렌님 정도의 나이대면 실루엣이 아닌 소재로 결판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소재는 기본 디자인이라도 그 자체로 광채를 발합니다. 닥스 스타일을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닥스 정도면 오렌님에게 가장 어울리는 브랜드가 아닐까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스타일 취향이 저와는 180도 다르군요. ㅋㅋㅋㅋㅋ
지금은 많이 순화되었지만 한때 저는 히피 스타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드니 얌전한 스타일로....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감이더라고요. 자신감만이 개성을 키우게 됩니다.

yamoo 2015-01-04 15:0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ㅋㅋ 아방한 곰발님 스타일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아방한 스타일을 안좋아하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부때 저도 아방한 스타일을 곧잘 입고 다녔거든요~ㅎㅎ 특이해 보이는 건 죄다 입었던 거 같습니다..ㅎㅎ

근데, 머....곰발님 정도는 아니었습니다.ㅎ

스타일은 자신감이라는 거에 정말 공감합니다. 아무리 비싼 옷을 걸쳐도 `좀 이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역시나 어색한 티가 팍팍 나고 옷과 사람이 따로 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랄까요~
 

벌써 클스마스 이브가 됐다는 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저는 날짜가는 것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그리고 대책 없는 넘..ㅜㅜ

 

올 한 해 내가 본 것, 들은 것, 등등을 정리해 봐야 하는데, 그럴 염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기억할 수조차 없기에 기억을 짜내 정리를 해 봅니다.

 

 

개봉 영화도 매달 한 편씩 꾸준히 보았는데, 돌이켜 보면 4-5개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가장 재밌게 본 게 <퓨리>였고, 가장 의미 있게 본게 무슨 쓰레기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회고발 다큐 영화였는데, 당최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OTL

 

그래도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는다면 <베스트 오퍼>를 꼽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정말 최고의 몰입도를 보여주는 영화였고, 끝에 반전과 숨겨진 퍼즐을 맞추는 재미도 솔솔했습니다. 이걸 종로 스펀지에서 보았는데, 이 정도의 작품이 흥행에 실패했다는 게 의아할 정돕니다. 어쨌든 저는 올해 놀란 감독의 영화보단 이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음악은 단연 코키아. 천상의 목소리라고 소문이 자자하기에 들어보니 정말 빈말이 아니더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메탈 매니아에게 추천을 받았다는 거. 사실 제가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가수였는데, 이름을 몰랐습니다. 이력을 보니 실력이 대단하더군요.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 여튼 올해 제가 들은 최고의 앨범은 코키아의 <moment>였습니다. 유투브 동영상 연결 서비스가 되지 않아 링크를 걸 수 없는 게 아쉽습니다. 최고는 싱글 '본당의 음'을 꼭 들어 보시길!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만...당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책도 사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올해 제가 구입한 책이 어제까지 무려 588권이었습니다! 그것도 알라딘에서만 산게요. 다른 서점에서 구입한 것까지 합치면 가뿐히 700권 가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ㅜㅜ 이 중에서 새 책으로 구입한 건 20여 권도 안됩니다. 알라딘에서는 12권만 새책으로 구입했네요.

 

 

대부분 구매한 책들이 시리즈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나머지 책들 역시 '이건 만사를 제껴 놓고 구입해야 돼~'라는 책들이었습니다. 뭐, 예컨대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 에드먼드 리치의 <성서의 구조인류학> 등입니다. 이런 책들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보면 이성을 잃고 그냥 사서 나옵니다. 압 뒤 재지 않구요. 이런 책을 구입하고 나면 후회 보단 병신같은 만족감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후회는 한 열흘 뒤에 밀려오지요. 젠장입니다~

 

그런데 아주 심각한 것은 이들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700권 가까이 구매했지만 정작 읽은 건 100권도 되지 않으며, 더 어처구니 없는 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책이 꽤 된다는 겁니다. 이건 좀 심각한 증상 같습니다.

 

매달 꾸준히 8-9권을 읽었지만 기록해 놓은 달이 몇 달 안돼 뭔 책을 읽었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기억 나는 책 중에서 그래도 올해 괜찮다 싶은 책들을 꼽아 봤습니다. 전부 구간들이라 신간 위주로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안될 것들이지요..ㅎ 어쨌거나 5권 정도만 꼽아 봅니다.

 

 

 

 

 

 

 

 

사실 이미지가 뜨지 않아서 그렇지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기시다 슈의 <게으름뱅이 정신분석1,2>였습니다. 정신분석으로 사회를 분석하는 독특한 시각이 마음에 들었고, 그의 해괴한(?)논리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히 의미있고 독창적인 사고를 전개하는 학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의 책이 더 이상 번역되어 나오지 않고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참 아쉽습니다.

 

문학은 거의 읽지 않았지만 체홉의 소설을 만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캉디드>와 <로마의 테라스>도 읽었지만 체홉의 단편만큼은 강렬하지 않았습니다. 아, 빠뜨릴 뻔 했습니다. 애드거 알렌 포우를 문지스펙트럼으로 만나, 그의 단편집들을 몇권 읽었습니다. 체홉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늦게 만난 두 작가인데, 제게 소설읽는 재미을 듬뿍 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체홉과 포우의 단편집들을 많이 사 모았습니다.

 

 

 

 

 

 

 

12월 24일, 이 좋은 날, 전 막간을 이용해서 올 한 해를 정리해 봤습니다. 올 해는 정말 근근히 버틴 한 해 였네요. 이상 날짜 가는 것도 모르는 야무의 한 해 정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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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4-12-25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시다 슈, 독특한 정신분석학자더군요. 특히 그의 성담론은 새겨볼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책은 나온지 꽤 되어서 다시 낼법도 한데요...

yamoo 2014-12-25 20:33   좋아요 1 | URL
오, 쉽싸리님 이 저자 아시네요! 맞습니다. 그의 성담론은 독특하고도 의미심장합니다. 다시 개정되거나 이 저자의 다른 책들이 번역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참 재밌게 잘도 쓰는 사람이라 번역되어 나오면 컬렉션 할 예정인데요..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쉽싸리님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덧글로 뵈니 반갑습니다!
 

알라딘 회원에게 꽤 많은 중고책을 팔았다. 나름 골드셀러다. 근데, 아주 가끔 환불을 요구하는 회원들 때문에 번거롭기 그지없다. 문제는 배송비 때문. 핵심 쟁점은 배송비 액수를 누가 부담하느냐 하는 거. 구매자의 변덕이면 구매자가 모두 부담해야 하기에 구매자는 어떻게 해서든 책상태를 물고늘어진다. 대부분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그냥 반반으로 타결하는 게 누이좋고 매부 좋은 방식임을 최근에 알았다. 내가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구매자가 버팅기면 할 수 없다.

 

아, 근데...내가 얘기하려는 핵심이 이게 아니었지. 내가 알라딘 회원에게 중고책을 팔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알라딘 중고서점의 책매입 정책 때문이다. 정말 열불나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재작년 때 였을 거로 기억된다. 안 보게 된 경제학 교과서와 법학 교과서 그리고 인문학책을 들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 총 7권이었다. 교과서는 거의 3만원 대 책들로 거의 새책 수준의 중고책들이었다. 알라딘은 이들 책 중 3권만 매입했고 나머지는 재고가 많아서 구매할 수 없다고 했다. 교과서는 권당 2천원에 구매하면서, 수요가 많지 않다는 이유를 달았다. 어차피 안 볼 책이니 그냥 2천원에 팔았고, 나머지 책들은 재고가 없다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1권은 페이지에 줄친 부분이 5페이지에 걸쳐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거였다. 뭐, 어째겠는가....매입 정책이 그렇다는데...군말하지 않고 갖고 온 책을 도로 갖고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검색 기능을 사용하면 알라딘이 구매할 책인지 아닌지, 그리고 적정가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중고서점에 가 보니, 내가 2천원에 판 책이 13800원에 책정(정가 32000원짜리 책)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가 팔려고 했는데 재고가 많다고 한 책은 검색해 보니 1권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팔려다가 낙서가 많이 돼 있다고 퇴짜맞은 책이 알라딘 매장에 있었다. 4800원의 가격이 붙어 있길래 넘겨 보니 낙서돼 있는 페이지가 무려 20페이지가 넘었다. 그래서 하도 빡쳐서 알라딘 직원에게 따졌다. 어제 내가 이 책을 팔려고 했는데, 낙서가 돼 있어 퇴짜 맞았는데, 왜 이 책은 낙서가 이리 많이도 놰 있냐고. 그랬더니, 이 직원의 말이 걸작이다.

아, 그건 알라딘 중고 물류센터에서 온 거에요.

 

헐~ 그렇다면 물류창고 도서들은 어디에서 매입한 건가? 박스로 팔면 낙서돼 있는 것도 헐값으로 팔 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오로지 개인이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서 책을 팔 때에만 가장 엄격한 룰이 적용되는 것이다. 알라딘에서 분명히 3200원으로 검색되는 책도 그 매장에서 직원이 "이 책은 재고가 많아서 구매가 어렵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책을 다시 가져올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일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3번 정도 겪자, 다시는 알라딘에 책을 팔러가지 않았다. 대신 알라딘 회원에게 팔아보았다. 교과서들은 확실히 1/3 가격에 내놓으면 수요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 회원에게 중고책을 팔기로 하고 알라딘 중고매장에 다시는 가지 않게 됐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알라딘의 중고서적 매입 정책이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거다. 심지어는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산 책을 되팔때 알라딘이 구매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다. 아주 오래된 책을 살 경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영어 원서에 대한 합리적인 매입 가격 정책도 요구된다. 너무 싼 값에 매입하여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일반 우리나라 도서 매입 정책과 매우 동떨어져 보인다. 현재 알라딘의 일반 서적 매입 정책은 비교적 간단하다. 2000원에 책을 샀으면 4000원의 매장가격을 책정하는 식이다. 그런데, 외서의 경우 거의가 3천원 미만에 구입한다. 매장에서 팔 때에는 항상 정가의 55% 정도다(책 정가가 2만원일 경우 매장가가 9000원 정도).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수요가 많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수요가 많지 않으면 당연히 매이 하지 말던가 아니면 싼 가격을 매장가로 책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좀더 근본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서 소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가격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불만을 없애는 첩경일 것이다.

 

알라딘은 중고서점 사업으로 도서 시장에서 브랜드 포지셔닝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알라딘을 모르던 사람들도 이제는 거의 다 알 정도다. 약속 장소와 가족 단위 나들이로도 이용되는 걸 보면 알라딘 브랜드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는지 알 수 있다.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한 업체 치고 현재의 알라딘 정도의 인지도를 거둔 업체는 전무하다. 비슷한 업체인 리브로와 인터파크는 사장됐고 그나마 yes24정도만 버티고 있는데, 인지도 면에서는 이제 yes24는 상대도 안된다.(인지도와 매출 순위로 yes24가 알라딘 보다 앞섰던 때가 불과 5년 전이다.)

 

중고매장 오픈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그 기세로 미국에까지 알라딘 중고서점을 오픈한 알라딘이다. 그럴수록 보다 투명하고 개선된 서비스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발전하는 기업은 사소한 고객의 소리에 언제나 귀를 귀울여 왔다. 알라딘이 계속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서점이 되려한다면 중고책 매입과 매장가격 책정을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중고책을 팔러 와서 빡치는 고객이 없게 하려면 말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팔러와서 빡쳐 돌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했다. 심지어는 가져온 책들을 중고서점 부근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보았다. 나도 빡치는 일을 당했기에 이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 봤다. 알라딘이 미국에까지 오픈 한 걸 보니, 정말 잘나가긴 하나보다. 그에 맞춰 서비스도 개선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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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12-2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늘 야무님의 글은 좋아요 백만 번쯤 눌러야 하는데 한 번 밖에
안 된다는 게 아쉬워요.
저는 정말 빡침을 당할까봐 집에서 안 보는 새책들로만 가져 갑니다.
그런데 팔 때는 천 원 밖에 안 되는 책도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많이 받아 봤자 한 권에 3천원 넘어가질 않더군요.
아무튼 이렇게 힘들게 매장에 가져와서는 이 책이 팔릴 때는 2배 3배의 가격으로
팔리겠지 생각하면 저도 직접 회원에게 팔기 같은 거 하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더라구요.
그것도 골치 아픈 일 있을 것 같아 직접 중고샵에 나가 파는데 너무 짜더군요.
뭐 어쩔 수 없는 상업주의 논리라고는 하지만 정말 좀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야무님 글 읽으니 절절합니다.ㅠㅠ

yamoo 2014-12-24 10:37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두 알라딘에서 많이 팔아보셨군요~ㅎ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아마 그럴거에요. 초창기에 나온 책들은 그냥 무조건 1천원이더이다..ㅋㅋ

3천원 넘는 것도 있어요. 꾸준히 나가는 비싼 책들..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 같은 책은 정확히 책 정가의 1/4값 쳐줍니다. 28000원이면 7천원에 알라딘에서 구매합니다..ㅎ 새책일 경우에요~

재는재로 2014-12-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에 팔기 햇는데 보낼때는 깨끗한 새책이 알라딘에 도착하니 책 상태 파손으로 줄급판정을 받아 책 값이 깍여서 정산되데요 뭐 책상태에 대해 문의 하니 포장을 잘못했든 택배운송중 손상되었든지 책 상태가 안좋다고 말하는데요 에구 그냥 빡치는

yamoo 2014-12-24 10:34   좋아요 0 | URL
헐~ 정말 빡치는 상황이군요. 모든 것을 판매자한테 부가하는 군요!
저는 박스에 담아 알라딘에 팔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런 빡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해결책이 안보이는 난감한 경우이겠습니다..

sijifs 2014-12-2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회원이 알라딘한테 팔 때는 완전 헐값으로 사가면서 알라딘이 회원한테 팔 때는 최대한 많~~이 비싸게 받으려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짜증나요..

yamoo 2014-12-24 10: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ijifs님! 반갑습니다~^^
알라딘이 완전 헐값으로 사는 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알라딘 중고매장 가격들을 잘 보면 대부분은 정가의 55-60%정도입니다. 정가가 1만원짜리 책이면 3400원 정도의 가격이 붙어 있지요. 새책도 50% 미만의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알라딘 중고매장이 책을 구입할 때는 보통 책 정가의 1/4가격을 적용한다는 겁니다. 팔때는 산 금액의 2배를 붙여 팔지요. 이건 일반 동네 헌책방보다 마진율이 훨씬 적은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알라딘의 중고 가격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매우 저렴하게 사서 비싸게 파는 책들이 있는데, 그런 책들이 매우 일관적이지 않다는 거에 제가 태클을 거는 것입니다.
잘나가는 작가의 책은 수요가 많아 50%보다 비싸게 팔고, 어떤 책은 수요가 적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구조가 납득할 수가 없어서요^^;;

liftup21 2014-12-2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경험 많이했습니다. 재고가 많다고 다시 가져가라고 해서 그담날 다시 가봤더니 재고 달랑 2권 뿐이더군요. 정말로 매장에서 파는 회원에게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제세하는거 같아요 사실 그런사람들때문에 알라딘이 먹고 사는건데....

yamoo 2014-12-24 10:26   좋아요 0 | URL
재고가 많다고 하는 책들 보면 매장에 거의 없거나 1권 있습니다. ㅋㅋ 매장에 책이 10권 넘게 있음에도 구매하는 책들이 있지요..ㅎㅎ
제가 나중에 추정해 본 건데요...재고가 많아서 알라딘이 구매하지 않는 책들은 대부분 온라인 알라딘에서 새책을 75% 가격으로 후려칠 때 그런 말을 하더이다. 알라딘 세일 기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구매하는 알라딘 중고매장..ㅋㅋ

클라라비 2014-12-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이에요.. 지적하신 부분 중에 등급판정에 대한 불만이 커요. 저는 책 진짜 조심해서 보는 편이라 제가 파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 최상등급인데 가끔 상이나 중으로 매기는건 너무나 사소한 꼬투리에 가깝습니다. 새책이 그 지경(?)으로 온적도 많고요. 그러다보니 중고서점에 팔 생각으로 책을 사는건 아닌데도 새책 배송상태를 트집잡아 완벽한 새책만 고집하게되었어요..
그런데 반대로 중고책이 최상등급이라해서 사보면 책등이 쫙 갈라져있다던지 낙서가 여기저기 한 부분도 많고.. 어처구니 없어 고객센터에 따지고 반품시킨적도 있었네요..

yamoo 2014-12-24 10: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클라라비님, 동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에서 책 팔기 위해 직원이 책을 감정하는 거 보면 죄인된 모습입니다..ㅋㅋ 취조받는 것처럼 위축돼 있지요. 한 페이지에 물 떨어진거나, 국 흘린 자국만 있어도 퇴짜. 연필로 3페이지 이상 줄만 있어도 퇴짜. 5년 지난 책들은 사지도 않는데, 10년 20년 지난 책들은 버젓히 매장에서 팔리고 있고...이럴때면 좀 빡칩니다..ㅎㅎ

저는 온라인 상에서 중고책을 구매할 때에는 그런 불만 사항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로지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만 불만이 많지요~^^

하이드 2014-12-24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화나는 경우 몇 번 있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이전의 헌책방들에 비하면, 알라딘 중고서점은 신세계죠. 신간이고 새책이고, 알라딘 이전에는 헌책방에서 거의 책을 폐지값으로 받아 팔 때는 비싸게 팔더군요. 책상태에 대한 컴플레인은 알라딘에서도 제일 골치 썩는 부분일꺼에요. 그리고 작년까지도 알라딘은 무려 업계 4위 입니다. 예스, 교보, 인터파크가 그 앞에 있지요. 덧붙이면, 중고샵이 손익분기점에 달하지 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책값 굉장히 잘 쳐주고, 시내 요지에 매장 내서 말대로 만남의 장 같은 곳 만들어내고,

근데, 수익 부분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머리 굴려보아도, 오프 매장에서 이게 크게 매출이 생길 수가 없지요.멀리 보고 하는 사업분야겠지만요.

재고부분은 시스템적인 부분이고, 이쯤되면, 시스템부분에서 실수가 생길일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알라딘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미숙한 부분은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진짜 책 귀퉁이에 물방울 떨어진거 매입도 안 된다고 해서 심히 빡쳤던 기억. 저다보니 꽤 크게 컴플레인 했는데, 여전히 이해가지 않지만, 뭐, 알라딘 기준이 그러니깐. 하고 넘겼습니다.



yamoo 2014-12-24 10:17   좋아요 0 | URL
네네...그렇지요. 헌책방에 비하면 그래도 알라딘 가격은 좋습니다. 제가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매장 가격 체계가 투명하고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납득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납득할 수 있는 일관적인 가격 체계를 마련한다면 지금보단 훨씬 빡쳐서 돌아가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 사료됩니다. ㅎ

근데, 작년까지도 알라딘은 업계 4위이군요. 예스나 인터파크는 책은 쇼핑몰 사업의 따라기 같다는 인상이 짙은지라...순수하게 인터넷 서점이라는 면은 알라딘이 강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인지도는 알라딘이 예스를 가볍게 넘어선 거 같아 알라딘 중고서점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스24를 모르는 어른들은 많지만 현재 알라딘을 모르는 어른들은 거의 없거든요..그래서..^^
손익분기점은 아마도 매장을 많이 열어서 그럴거라 예상해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겠지요. 알라딘은 손익분기점보다는 인지도에 포인트가 있는 거 같습니다. 어쨌든 아직도 업계4위라는 정보는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크발랄 2014-12-2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때그때 책 받아주는 사람 잘만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팔고 못팔고가 갈리는 느낌

yamoo 2014-12-24 10: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크발랄님, 반갑습니다!

까칠하지 않은 직원 만나면...사정 좀 하면 구매해 주는 거 같습니다. 얄짤 없는 직원도 있구요..ㅋㅋ

saint236 2014-12-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러가지만 판매하러 가지는 않습니다. 책을 판매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야무님과 같은 일을 겪는 것이 짜증나서요. 예전에는 알라딘에 대해서 마냥 우호적이었지만 요즘은 좀....

yamoo 2014-12-24 11:32   좋아요 0 | URL
저두 얼마전부터는 알라딘에 판매하러 가지 않아요..ㅎㅎ 빡치는 일을 3번 당히니 당최 가기가 싫은 거 있지요..ㅎ
그래두 현째까지는 알라딘이 타 업체보다는 서비스가 좋은 거 같아요. 불만사항 어느 정도 수용해 주는 거 보면요~

oren 2014-12-2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서점들의 시장점유율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직까지도 예스24가 `부동의 1위`인 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상장기업인 예스24가 발표한 `2014년 3분기 분기보고서`에 나름대로 참고해 볼 만한 자료들이 있어 길게 덧붙여 봅니다.(알라딘은 `체류시간` 부문에서 굳건하게 앞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ㅎㅎ)

* * *

인터넷 서점간에도 대형서점의 매출은 증가하고 소규모 서점의 매출은 감소하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여 최초 온라인 서점이 등장한 90년대 후반 150여개에 달했던 온라인 서점은 현재 상위 4개사로 크게 압축되었습니다. 이중 업계 1위인 예스24는 전체 온라인서점 중 40%를 상회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단일매장 기준으로는 전체 1위의 규모입니다. 또한 예스24는 인터넷 기업의 주요지표인 트래픽(방문자)과 일평균 페이지뷰에서도 경쟁사와 큰 격차를 보이며 창사 이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넷서점 트래픽 및 로열티분석]

(단위: 명, 페이지, 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이트명____ : 일평균방문자수 : 일평균페이지뷰 : 체류시간
예스24______ : _______452,848 : ______4,186,830 :___0:06:30
인터파크도서 : _______131,949 : ______1,128,883 :___0:05:36
교보문고____ : _______203,894 : ______2,986,485 :___0:07:54
알라딘______ : _______147,543 : ______1,962,021 :___0:09:4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출처 랭키닷컴, 2014년 9월 기준>

※ 일평균 방문자수는 Session Visits으로 이는 1시간 기준으로 이후의 재방문을 인정하는 방문자수 입니다. 동일한 방문자수를 나타내는 사이트라면 Session Visits가 높은 사이트의 퍼포먼스가 더 높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yamoo 2014-12-24 12:25   좋아요 0 | URL
의미 있는 자료 감사합니다. 예스24는 여전히 부동의 1위군요. 그래도 인지도는 알라딘이 많이 끌어올린 거 같습니다. 인터파크 도서가 아직도 건재하디니 놀랍네요. 망한 건 리브로 뿐인가요??

정말 유용한 자료입니다!

2014-12-25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5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5-07-1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이번에 오프라인 매장에 거래하러 갔더니, 가격 후려치기 장난없더군요. 택배거래하는 것이 훨씬 정당한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사례가 있는지 검색해보다 이 글을 발견하여 공감의 댓글 남깁니다.

- 2018-01-1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고매입은 예전에도 답이 없었군요

만화 2018-03-0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것을 보고 바로 매점매석 이라고 하지않나 싶습니다 상당히 장사치 짓거립니다 자기들은 물류창고에서 껌값에 사서 그이상에 헐값에 붙여 판다라
 

 하나.

 

 어제 작업할 게 있어서 늦게까지 자판을 두드렸다. 와이티엔 밤 뉴스를 틀어놨는데 책 소개 코너에서 찰스 디킨즈의 저서 소개가 있었다. 찰스 디킨즈야 워낙 유명한 소설가이니, 아직 번역이 안된 작품을 누가 번역서를 낸들 뭐가 이슈가 되겠냐마는..(소설광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뉴스의 요지는 찰스 디킨즈가 역사책도 썼다는 거였다. 발굴이 돼서 이제야 번역이 됐다니, 전혀 의외라서 귀가 쫑긋 세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사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이 역사책이 당시 영국 초등학교 교과서로 사용되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소설가가 쓴 역사 교과서라...정말 놀라운 뉴스다!

 

 

둘.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12월 초부터 날씨가 미쳤나부다. 강추위, 비, 눈, 강추위의 순환이 계속되는 듯. 중간에 따뜻하고 괜찮은 날씨가 있었는데, 그땐 하필 중요한 뭔가가 발목을 잡았다.

수트 입고 착장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럴 결심을 하면..그때마다 비가오거나 눈이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춥다. 젠장이다~ 착장 샷을 올린다고 괜히 약속했나부다. 날씨가 좀 풀리면 입고 나가서 찍어야 겠다.

 

 

셋.

 

  최근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보다가 한 책에 필이 꽂혀버렸다. 매달 십 여권을 빌려보는데, 책을 슥슥 넘겨보다가 보석같은 책을 발견했다. 집중해서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반드시 소장하고 싶어졌다. 그제 빌려서 빠른 속도로 완독했고, 오늘 아침에 알라딘 중고서점들을 뒤졌다. 있었다!! 그것두 강남점과 신촌점에 있는게 아닌가.  

  아침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강남전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다시 검색을 했는데, 아뿔싸 벌써 팔렸다! 할 수 없이 신촌점으로 빽했다. 10분 단위로 검색해가며 도착해서 책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알라딘에서 급하게 이 책을 손에 넣고 싶었던 건 가격이 반값도 안되는 아주 새책이었기 때문. 신촌점에서 건지지 못했다면 일주일 내에 알라딘에서 새 책으로 구입했었을 거다.

  책을 소장하고 싶었던 건 다름이 아니라 책의 내용과 만듦새가 정말 탁월했기 때문이다. 남성 복식사를, 그것도 근대 100년의 역사를 도판과 함께 압축적으로 개괄할 수 있는 책은 이책이 유일했다. 여러 도서관에서 복식사 분야를 자주 기웃거려 봤지만 이 책만큼 남성 복식의 핵심을 짚어주는 책은 보질 못했다. 대부분의 남성 복식사는 여성 복식사의 따라지마냥 또는 부차적으로만 언급될 뿐인데, 이 책은 과감히 그런 입장을 뒤집는다. 근대 복식사에서 여성 복식이 남성 스타일을 얼마나 많이 차용했는지, 남성복의 여러 스타일 화보에 따라 그 특징을 간결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책 구매는 화려한 화보(끝내주는 도판과 화보가 패션잡지를 방불케 한다.)보다는 저자의 서문에 있었다. 단 2페이지로 남성 복식사를 정리해주고 있는데, 이런 포스의 글은 스타일을 다룬 어떤 책에서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복장사 학위를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미술사 학위도 갖고 있다) 도판을 해설한 간결하고 압축적인 글은 이 책 구매를 부채질 했다. 두고두고 볼 책인 것을 직감하고 구매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나라 스타일 전문가란 사람들이 낸 책을 이 책과 비교해 보면 초등학생들의 장난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수준은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문화사 분야의 중요 자료집으로도 손색이 없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보면 아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겠다. 자기가 현재 입고 있는 옷의 근원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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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2-17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가 쓴 역사책이 교과서로 채택되었다니,
그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역사적 상상력을 많이 키웠으려나요?

남성 복식사도 흥미롭네요.

yamoo 2014-12-17 19:50   좋아요 0 | URL
뉴스로 듣는데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서점에 가서 들춰보고 괜찮으면 구매를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때 그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 중 유명인물들이 된 사람이 디킨즈의 책이 유용했다고 하는 내용을 알려주는 책이 어딘가엔 있겠죠~ㅎㅎ

저, 복식사 책...끝내줍니다. 도서관에서나 서점에서 시간 있으실 때 넘겨보세요...도판 편집과 글들이 정말 좋습니다!

세실 2014-12-1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책을 사기 위한 님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니 다행입니다. 실시간 검색도 가능하군요.
저도 요즘 2주에 한번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갑니다. 책 사는 재미가 쏠쏠해요.
단 2페이지로 남성 복식사를 정리해주다니....대단하네요.

yamoo 2014-12-21 12:12   좋아요 0 | URL
네..알라딘 중고서점의 장점은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다는 거에요^^
인기있는 책은 금방 품절되거든요~
예를 들어 한길그레이트북스나 대우고전총서 같은 경우는 새로들어온 코너에 진열되자 마자 팔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검색보고 가도 허탕칠때가 많아요..ㅎ

그래서, 저자의 내공에 반해서 책을 사게 되었답니다.^^
언제, 세실님이 운영하시는 도서관에 가보고 싶어요. 진짜! 센스만점의 도서관장님~
 

한 때 쇼펜하우어의 빠였다. 학부 시절 열렬히 추종해 마지 않던 3명의 철인이 있었으니, 비트겐슈타인, 키에르케고 그리고 쇼펜하우어였다. 영문과 전공 영어 수업시간에 독일 출신의 미국인 담당 교수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난 쇼펜하우어라고 답했다. 하하, 그 정도였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쇼펜하우어는 내게 점점 잊혀져가는 철학자가 되었다. 아마도 내 저자 리스트 중에서 강준만 정도의 위치를 차지했던 거 같다. 시간이 가면서 강준만 저서들은 더이상 읽지 않았으니.

 

하지만 내가 쇼펜하우어 저서들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런건 전혀 아니었다. 당시 쇼펜하우어 저서의 번역본은 극소수였다. 대체로 <쇼펜하우어 행복론>이 무수한 출판사들에 의해 중복 번역된게 쇼펜하우어 저서의 대부분이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는 번역도 안 된 상태였다.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집문당 판본과 곽복록 씨가 번역한 을유문화사 판본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곽복록 씨 번역본을 집어들어 몇 페이지 읽다가 집어던져 버린 후 쇼펜하우어의 주저는 읽을 염두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문당 판본도 대체로 곽 씨 번역과 대동소이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축소 편집본이!) 그래서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읽는 것을 유보했다. 그리고 점점 잊혀져 간 듯하다.

 

그러던 것이 2008년 동서문화사에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이 나오고 2009년 을유문화사에서 역자를 달리하여 출간되었다. 2012년에 김미영 역자에 의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와 <충족이유율의 네겹의 뿌리에 관하여>(나남, 2010)가 나온 것을 본 후, 다시 쇼펜하우어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난 베르그송 철학의 위대함에 빠져있었기에 쇼펜하우어의 주저를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김미영 역자의 번역이 매우 빼어나서 나중에 번역본을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다짐만 했더랬다.

 

 

 

 

 

 

 

 

 

 

 

 

 

 

 

근데, 며칠 전 알라딘 신림점에서 을유문화사에서 새로 번역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홍성광, 2009)를 입수한 것을 계기로 읽을 당위가 발동했다. 구매한 그날 집에 와서 서문과 함께 5장까지 스트레이트로 읽어나갔다. (그래봤자 64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이다.)

 

매우 매끄럽게 번역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어색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난 이 쇼펜하우어의 주저 번역본들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어떤 번역본이 그나마 가장 읽을만 한 책인지.

 

나는 동서문화사본과 을유문화사본을 가지고 있기에 도서관에서 지만지고본을 빌렸다. 이게 현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 전부다(집문당본 포함). 발췌된 곳을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가장 좋은 번역본을 나름대로 선정해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떤 번역본이 잘 된 번역본인지 그 정보가 현재 인터넷 상에서 전무했기에. 여러 번역본이 있다는 건 언제나 선택의 어려움이 따른다. 경험상 가격이 비싼 책이 번역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선택을 위한 최소한의 유용한 정보가 없으니 그걸 내가 하기로 했다. 그냥 최소한의 지침이다. 엄한 선택으로 불량 번연본을 사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사람을 정말 열받게 하는 일이기에.

 

비교 판본은 3권으로 했다. 을유본, 동서문화사본 그리고 지만지고본. 곽복록 씨 번역과 집문당본은 옛날에 읽다가 던져버렸기에 제외했다. 너무도 많은 비문들과 번역투의 문장으로 읽는 이를 짜증나게 하는 번역본들이다. 알라딘에 누가 곽복록 씨 번역본이 그립다고 했는데, 전혀 아니다. 완전 그지 발쌔기다.

 

 

 

 

 

 

 

 

 

 

 

 

 

 

번역의 질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은 1장~2장 중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부분을 택했다. 기준본은 동서문화사본으로 하고 지만지고본을 통해 비교한 다음 홍성광 씨 을유본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동서문화사본이 처음 읽을 때 술술 읽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완역된 책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팔리고 있는 책이기도 했기에. 을유문화사본인 홍성광 씨 번연도 술술 읽혔는데 비교해 보니 전자가 쪼금 이상한 부분들이 많은 거 같았다. 그래서 다시 철저히 읽어 보니 동서문화사본은 문제점이 매우 심각했다. 그래서 동서본을 기준으로 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인용된 부분을 통해 어떤 판본이 읽을 만한지 판단하면 되시겠다. 분량의 압박이 좀 있지만....그래도 시작하겠다. 하나, 둘...

 

 

1장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서 인식하고 있는 모든 존재에 해당하는 진리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반성하고 추상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며, 인간이 실제로 그렇게 인식할 때에 인간의 철학적인 사유가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태양을 알고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태양을 보는 눈이 있고, 대지를 느끼는 손이 있음에 불과하다.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자기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고 하는 표상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 <동서판>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있으면서 인식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진리다. 그러나 인간만이 이러한 진리를 반성적으로,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데, 인간이 진정 그렇게 의식한다고 하면 그는 철학적인 신중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태양과 땅을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 그리고 땅을 느끼는 손을 아는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단지 표상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 세계가 오로지 완전히 다른 존재, 즉 인간 자신이 표상하는 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만지고본, p31>

 

책을 처음 펼쳐 읽으면 이 번역이 이상한 줄 눈치채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지만지고본을 보면 어떤 부분을 이상하게 번역했는지 대번 나타난다. 줄친 부분을 비교해 보면 지만지고본이 훨씬 매끄럽게 번역된 것을 알 수 있다. 동서판의 줄친 부분은 호응이 잘못된 문장이다. 동서판의 마지막 문장도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한 문장이다. 하지만 지만지고본을 통해 보면 무슨 내용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이 말은 살아 있어 인식하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그렇지만 인간만이 이 진리를 반성적이고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으며, 인간이 정말로 이를 의식할 때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에 인간은 태양이며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과 대지를 느끼는 손을 지니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즉 세계는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는 표상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하고 확실해 진다.   <을유본, p39>

 

을유본은 확실히 지만지고본만큼 명확하지는 않지만 동서판보다는 그래도 의미파악이 수월하다.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 본다.

 

이와 반대로 이 근본 진리는 인도의 현자들이 이미 신식했던 것으로, 비야사(Vyasa, 인도의 전설적 성자)의 설이라고 하는 베단타(Vedanta) 철학(우파니샤드에 근거하여 일원론을 주장하는 철학)의 근본원리로서 나타나 있다. 윌리엄 존스는 이 사실을 그의 마지막 논문 <아시아 연구 : 아시아인들의 철학에 대하여)>, 4권 164쪽에 다음과 같이 입증하고 있다.

 

베단티학파의 근본 교리는 물질의 존재, 즉 그 고체성·불가입성·연장의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관한 일반의 관념을 바로 잡는 데 있고, 물질이란 것이 마음의 지각에 의존하지 않는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피지각과는 교환할 수 있는 명사라는 것을 주장하는 데 있다.

 

이 말은 경험적 실제성과 선험적 관념성과의 양립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동서본>

 

 

이에 반해서 앞서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가 베다의 지혜에 의해서 인식되었듯이―이 지혜는 브야사에 의해서 쓰인 베다 철학의 기본명제로서 나타나 있는데―윌리엄 존스는 자신의 논문인 <아시아 철학에 관하여>(4권 164쪽)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다. "베단타 학파의 근본적인 교리는 고체성, 불침투성, 연장으로 이루어진 물질을 부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인데―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을 바로잡고 물질은 마음의 지각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본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존재와 지각 가능성은 서로 호환 가능한 용어라는 점에 있다." 이 말은 경험적인 실재성이 선험적인 관념성과 함께 있다는 것을 좀 더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다.

<지만지고본, p33> 

 

이 부분은 정말 심각하다. 동서본의 줄친 부분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후반부의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지만지고본을 읽으면 쇼펜하우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 지만지고본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확실히 동서본이 내용을 오해하고 번역하지 않았는가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미심쩍어 을유본을 열어봤다. 

 

반면에 이러한 근본 진리는 비아사가 주창한 것으로 간주되는 베단타 철학의 근본 명제로 등장하면서 인도의 현자들이 일찍이 이를 인식했다. 윌리엄 존스는 자신의 마지막 논문 <아시아인들의 철학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베단타 학파의 근본 교리는 물질의 존재, 즉 고체성, 불가입성, 전충성(물체가 공간을 메우는 성질)을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걸 부정하는 것은 미친짓이겠지만), 물질에 대한 일반의 개념을 바로잡아 그것이 인간의 지각과 무관한 어떠한 본질도 갖고 있지 않으며, 존재와 지각할 수 있는 성질은 동의어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데 있다." 이러한 말은 경험적 실재성과 선천적 관념성의 양립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을유본, p41>

 

베단타 학파의 근본 교리 중 마지막에 언급되는 교리를 을유본은 '전충성'으로 옮겼다. 동서본과 지만지고본은 이 마지막 교리를 각각 '연장'과 '연장으로 이루어진 물질'로 번역했는데, 이 부분은 을유본이 더 나은 거 같다. 그리고 을유본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 내용이 동서본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원문을 대조해 보기 어려워 확신을 할 수 없지만 흐름상 '양립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는 번역이 더 잘 이해된다. 확실히 가독성은 을유본이 좋다. 

 

 

2장

 

그런데 다른 측면인 주관은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관은 표상작용을 하는 모든 존재 속에 전체로서 분리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일지라도 현존하는 수백만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객관과 더불어 표상으로서 이 세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단 하나라도 소멸해 버리면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면은 사상에 있어서도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이 두 가지 면의 어떤 쪽도 다른 한쪽으로 말미암아서만, 또 다른 한 쪽에 대해서만 의미와 존재를 갖고 있으며, 그것과 생멸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 경계가 서로 공존한다는 것은, 모든 객관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형식들인 시간, 공간, 인과성은 객관 그 자체에 대한 인식 없이도 주관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되고 또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는 것, 즉 선험적으로 우리 의식에 존재한다는 칸트의 말을 생각해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동서본>

 

 

다른 하나의 측면은 주관인데, 이것은 공간과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관은 전체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모든 표상하는 존재 속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상하는 존재 중의 유일한 존재는 현존하는 수많은 존재들처럼 객관과 함께 완전히 세계를 표상으로서 채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일한 존재가 사라진다면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객관과 주관은 사유를 위해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지만지고본, p37>

경계의 공통점은 모든 객관의 본질적이며 보편적인 형식들―이것은 시간, 공간 그리고 인과율인데―은 객관 자체의 인식 없이도 주관에 의해서 시작되거나 발견되며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 즉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형식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 선험적으로 놓여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지만지고본, p38>

 

3판본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주관과 객관 그리고 표상과의 관계를 기술한 2~3번째 문장이다. 특히 3번째 문장은 5번 연속으로 읽어보아도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다. 지만지고본은 비교적 의미있게 번역해 놓았지만 역시 동서본의 3번째 문장 부분과 비교해 보아도 좀처럼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을유본의 번역은 이렇다.

 

그런데 다른 측면인 주관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관은 표상하는 모든 존재에 나누어지지 않은 채 온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들 중의 단 한 사람이라도 현존하는 수백만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객관과 더불어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사라져버리면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두 측면은 사상에 있어서조차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략)

이러한 경계가 서로 접한다는 사실은, 모든 객관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형식들인 시간, 공간 및 인과성은 객관 그 자체를 인식하지 않고도 주관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되고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는 데서, 즉 칸트의 말을 빌면 우리의 의식 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을유본, pp43-44>

 

을유본은 동서본의 번역과 거의 똑같다. 서술어 호응이 맞지 않는 것까지!(서로 대조해 읽어 보면 난해한 부분은 번역된 문장들이 서로 비슷하다. 추정하는 바이지만 홍성광 씨도 동서본을 참조하면서 번역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는 호응이 맞지 않는 부분까지 잘못된 문장을 쓸리가 없을 거다.) 이 부분은 여전히 쇼펜하우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이런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젠장!

그런데 문제가 더 심각한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동서본과 을유본은 처음 읽으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문장의 호응도 전혀 맞지 않는다. 2-3번 읽어야지 겨우 의미파악을 할 수 있는 정도다. 문장이 매우 길기 때문에 번역자가 짧게 끊어 번역하면 명확성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지만지고본은 줄표를 사용하여 전체 문장의 뜻이 어떤 것이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번역했다. 물론 지만지고본 번역이 좋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 독자로 하여금 의미파악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수준이다.

 

많은 부분을 점검해 본 것은 아니지만 경험상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내가 번역본을 고를 시 사용하는 방법이다. 번역본에서 이상하게 의미파악이 안되게 끔 번역된 곳을 찾아 다른 번역본은 어떻게 번역했는지 비교해 보면 얼추 읽을 만한 번역본을 선택할 수 있다. 내용 파악을 전혀 할 수 없는 부분을 다른 번역본이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끔 번역했다면 후자본을 택하는 것이 유익했다. 많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2-3부분의 몇 문장들만 비교해 보면 된다.

 

같은 방법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 3개를 확인해 봤다. 완역된 본은 1권이 16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만지고본은 이중 4장(4절)까지만 번역돼 있어 그 부분만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동서본에서 이해 되지 않은 많은 부분을 지만지고본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지만지고본은 동서본의 해석판이었다. ㅋㅋ 하지만 지만지고본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좋지 않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잦은 줄표의 사용과 긴 호흡의 문장들 역시 짜증을 유발한다. 매 순간 집중해서 읽어야 하기에. 뭐, 그래도 동서본이나 을유본보다는 훨씬 낫다. 발췌본이라 완역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을유본을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을유문화사본으로 보는 게, 현재로서는 차선의 대안이다. 이상한 부분을 건너 뛰면서 읽는다면 슥슥 읽히는 가독성 하나는 장점이니까. 3권째에 이르면 아주 읽을만 하다. (뒷부분을 간간히 들춰봤다.) 김미영 역자의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을유문화사본으로 어느 정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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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12-15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펜하우어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니체와 보르헤스 등 수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은 책으로 워낙 유명한 줄로 알고 있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은 모국어인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쓰여진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번역`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던 `무척 행복한` 독자들이 아니었나 싶네요.

저는 권기철 님이 번역한 동서문화사판으로 읽었는데, 어려운 대목들을 만나면 같은 문장을 여러 번씩 읽으며 이해하려 애쓴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번역`이 문제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답니다.(예전에 yamoo 님께서 대우고전총서에서 나온 베르그송의『창조적 진화』에 대해서 `번역 문제`를 짚어 주셨을 때에도 저는 그 책의 번역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 채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번역`에 무척 둔감한 지도 모르겠다 싶네요.)

어쨌든 쇼펜하우어 자신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한 번 읽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거듭 경고하면서 `여러 번` 다시 읽어 볼 것을 권할 정도였고, 저 또한 그 책을 거듭 읽고 난 뒤에,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와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까지 찾아 읽어 보고 나서야 겨우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들더군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인식론이나 존재론뿐만 아니라 미학을 비롯한 예술철학과 종교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매혹적이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지만, 저는 특히 그의 생각이 후대에 찰스 다윈이 쓴『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 앙리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까지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걸 발견하는 재미가 여간 크지 않더군요.

이 글을 통해 yamoo 님께서 학창시절에 쇼펜하우어를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로 꼽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문득 보르헤스가 이 철학자를 두고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 * *

······ 나는 스위스에서 머물던 시절 쇼펜하우어를 읽기 시작했다. 만일 나에게 한 명의 철학자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그를 택할 것이다. 만일 우주의 수수께끼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언어가 그의 책 속에 쓰여져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의 책을 독일어로 읽었고 나중에 스페인어로 번역된 것도 읽고 또 읽었다. ······

yamoo 2014-12-15 23:54   좋아요 0 | URL
네, 쇼펜하워 자신도 그렇게 말했지요. 한 번 읽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적어도 2번 이상 정독하라구요. 내용이 심오하여 한 번 읽어서 이해 안되는 부분이 분명이 있어요. 사상서 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은 그런 부분들이 많다는 것 인정합니다. 학부 초년생 시절 노자 도덕경 1장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의 해석부분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아 되풀이 해 읽고 또 읽어도 모르겠어서 그냥 덮은 적이 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어려움은 엉터리 같은 번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 자체가 심오해서였습니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라는 해석본은 문장이 난삽하고 비문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그 사상의 심오함에 있었습니다. 논리적인 면도 그렇구요.
하지만 현재 서구 사상의 번역본들은 이런 사상적인 난해함이나 논리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그 심오한 사상적이고 논리적인 면을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하는데서 오고 있습니다. 문장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것과, 명확하지만 논리적인 깊이 때문에 이상하게 이해하여 번역기 돌린 문장과 같은 번역을 하여 어려운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제가 계속 번역이 거슬려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번역자들이 명확한 우리말 구사를 못해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렌님도 이해가 안된 부분을 여러번 읽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올바른 우리말 문장을 사용하지 못해서 입니다.

항상 좋은 인용과 댓글로 제 서재를 빛내주셔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랜님의 이런 댓글 나눔은 알라딘 서재의 댓글 문화를 한 차원 높여주는 것 같아 존경스럽습니다!^^

그렇게혜윰 2014-12-1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댓글을 달만큼의 지식이 없어서 댓글 달기도 민망합니다만 철학사책 읽다보면 쇼펜하우어 궁금하더라구요.어려운 책들이니만큼 좋은 번역이 중요한 것 같아요. 번역가분들 성함을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yamoo 2014-12-15 23:57   좋아요 0 | URL
지식이 있어야 댓글을 다나요?^^ 저도 지식이 없기는 헤윰님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철학사에서 쇼펜하우어는 매우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 철학자들 중 한 사람입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의 책 <인생론>을 읽어보세요. 매우 쉽고 평이합니다. 이 책으로 소펜하우어 사상의 진수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습니다. 꼭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니 헤윰님의 리스트에 올려두었다가 시간 되시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쌩 2015-01-0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지만,입문서 위주로 읽은지라,개괄적 지식밖에 없고,저는 주로 정치철학 쪽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야무님 글 읽으니,쇼펜하우어에도 관심이 생기네요, 전 예전에 친구랑 쇼펜하우어 중화이론 가지고 키득거리던게 생각나요
`네가 사랑에 실패한건 상대의 생에 대한 의지가 이상적인 상대로 인식되지 않은것 뿐이야. 너와 결합되었을떼 좋은 아이를 가지지 못할꺼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거지`하면서 패배자들 끼리 서로 개똥철학자 흉내내던게 생각나네요ㅎ

알라딘에 오니,좋은 책을 소개해주시고
책과 연애하는 분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올해가 다가기전에 쇼펜하우어
즐독하고싶네오ㅎ 좀 늦었지만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yamoo 2015-01-04 20:13   좋아요 0 | URL
오쌩님 반갑습니다! 오쌩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입문서 위주로 여러 권 읽으면 원전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쇼펜하우워 입문은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부터 봐 보세요. 쇼펜하워가 자기 책에서 자기 책 읽는 순서를 알려주는데, 자기 철학의 핵심은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녹아 있으니 이거부터 읽으라 하네요. 김미영 역자의 번역아 아주 좋습니다. 이 책으로 입문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ㅎㅎㅎ 2017-12-2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을유문화사 꺼 읽고 있는데 술술읽히는 부분은 좋으나 간혹 우리말로 이해하려해도 무슨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는 것 같아서 짜증을 참고 여러번 읽고 있습니다
글쓰신 내용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독서광 2021-10-2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김미영님 번역이 안 나온 건가요 ㅠ ㅠ 2019년도 을유문화사본으로 보려고 하는데 홍성광 역자님이 얼마나 업그레이드하셨을지 감이 안 오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