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떨림 : 변증법적 서정시 지만지 고전선집 348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규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차례
서언
조율
아브라함께 드리는 찬사
문제제기

 1. 토로하고 싶은 심정 
 2. 문제1: 윤리적인 것이 목적론적인 유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3. 문제2: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의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4. 문제3: 아브라함이 사라나 에리나나 이삭 앞에서 자기의 게획을 침묵에 붙여 버린 것을

                그가 윤리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일까?
끝맺는 말
부록
<두려움과 떨림>이 성립하게 된 유래- 에마누엘 히르쉬
키아케고어 평전- 루돌프 카스너
키아케고의 파토스론- 강학철
역자후기


대학교 2학년때인가..민음사에서 나온 키에르케고의 <두려움과 떨림>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워낙 인상깊게 읽어서 인지 키에르케고르 하면, 항상 <죽음에 이르는 병>과 <두려움과 떨림>이 떠오릅니다.

당시 도서관에서 빌려보아서, 이 책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 해봤지만 구할수가 없더군요. 민음 이데아 총서 시리즈 중 한권이었는데, 민음사 측에 문의를 해 보니, 절판이고 더이상 발행하지 않는다는 군요. 완전 실망~

할 수 없이 헌책방을 전전하면서 찾아 봤지만 헛수고. 그러다가 2007년 대구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냉큼 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면서 생각나면 탐독하고 있지요.

<두려움과 떨림>은 크리스트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의 외아들 이삭과의 관계를 윤리적-종교적 실존의 영역에서 분석한 키에르케고르의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후기 대표작인 <죽음에 이르는 병>과 함께 그의 실존 변증법적 사고 방식을 가장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저작물입니다.

이 책의 처음을 펼치면 서론 다음에 '조율'이라는 장이 나옵니다. 성경 창세기 22장 1절부터 13절 까지의 내용인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말합니다. "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나에게 바쳐라."

바로 이 내용은 어린 키에르케고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회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시험하였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 시험을 이기고 신앙을 지켜서, 기대와는 반대로 아들 하나를 다시금 얻었는가라는 저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다"(p15)

'조율'에서는 이 황당한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면이 4가지 시각으로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꼭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후의 장인 '아브라함께 드리는 찬사'와 '문제제기'는 위 상황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논평입니다. 윤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지만 그리스도교적 실존에 따를 때 이 행위의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설파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 책의 타이틀은 보시다시피 사랑의 변증법적 서정시라는 부제가 붙은 <두려움과 떨림>입니다. 책을 번역한 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경적으로 해석하여 이와 같은 타이틀을 붙인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만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신앙인의 경건한 생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면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주제 아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다루어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개신교 신학과 실존철학 및 실존주의문학의 원천적 사상이된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책은 사르트르와 게오르그 루카치 등을 통해 실존사상의 입문서라는 격찬과 추천을 얻기까지 애독된바 있습니다.


[책에서]  


현대에는 아무도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묻는다면 아마 낯간지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내가 사람마다 제각기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거의 처세술과 교양의 표적이 되리라.  p11

믿음을 갖지 않는 자들에게는 모방이란 가장 쉬운 일이다. 믿음은 모방을 곤란하게 한다.   p43

철학은 신앙을 제공할 수 없고, 또한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철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만 하고, 자기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철학은 인간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듯이 무엇을 빼앗거나 편취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p48

사려 깊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결코 잊지 않는다. p63


현재 이 책이 두 권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2007년 다산글방에서 임춘갑님의 역으로 <공포와 전율>(키에르케고 선집4)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2009년에는 지만지고전천줄에서 임규정님의 역으로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민음사판과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91년 출간된 민음사 이데아 총서 시리즈 중 44권째인 <두려움과 떨림>(강학철 역)입니다. 알라딘 DB에 목록이 없어 동명 출간서인 지만지고전천줄판에 할 수 없이 리뷰를 남깁니다~ 책 내용은 동일한 거 같아서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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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8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인이 모 매체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숨어있는 명작 소설을 찾아 소개해 주는 책들인데, 정말 명작들입니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명작들이라서, 저도 리스트를 참고하여 독파하고 있습니다.
 
값진 보석들이니, 잡아끄는 소설이 있으시다면, 인연이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 아지즈 네신 (푸른숲. 2005)

2. <러시아 인형> , 아돌프 비오이 까사레스 (문학과지성사. 2003)

3. <내 말 좀 들어봐(Talking it over)> , 줄리언 반즈 (열린책들. 2005)

4.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 이장욱 (문학수첩. 2005)

5.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 , 마루야마 겐지 (책세상, 2000)

6. <알리와 니노> , 쿠르반 사이드 (지식의숲. 2005)

7. <제5도살장> , 커트 보네거트 (아이필드. 2005)

8. <소설> , 제임스 미치너 (열린책들, 2006)

9. <낙천주의자, 캉디드> , 볼테르 (아테네. 2003)

10. <황진이>, 홍석중 (대훈서적. 2002)

11. <오렌지 다섯 조각> , 조앤 해리스 (문학동네. 2001)

12.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Le passe-muraille)> , 마르셀 에메 (문학동네. 2002)

13.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다카하시 겐이치로 (웅진. 2005)

14.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 2>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문학동네. 2002)

15. <잭나이프>,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 <커플> , 엠마뉴엘 베른하임 (작가정신)

16. <모데라토 칸타빌레> ,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과지성사. 2001)

17.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민음사. 2001)

18. <제발 조용히 좀 해요(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 , 레이먼드 카버 (문학동네. 2004)

19. <콧수염> , 엠마뉴엘 카레르 (열린책들. 2001)
 
20. <장국영이 죽었다고?>, 김경욱 (문학과지성사. 2005)
 
21. <질투(La Jalousie)> , 알랭 로브그리예 (민음사. 2003)

22. <센티멘털> , 히라노 게이치로 (문학동네. 2006)

23.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민음사. 2007)

24. <얌전한 레슬러> , 프란츠 카프카 외 (하늘연못. 2006)

25. <밑줄 긋는 남자> , 카롤린 봉그랑 (열린책들. 2000)

26. <개를 위한 스테이크> , 에프라임 키숀 (마음산책. 2006)

27. <달에 홀린 광대> , 정영문 (문학동네. 2004)

28.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손안의책. 2004)

29.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1998)

30. <제49호 품목의 경매> , 토머스 핀천 (2007. 민음사)

31.  <누더기> , 샤를르 쥘리에 (현대문학. 2003)

32. <죽은 올빼미 농장> , 백민석 (작가정신. 2003)

33.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 파스칼 키냐르 (문학과지성사. 2005)

34. <책벌레> , 클라스 후이징 (문학동네. 2002)

35.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2005. 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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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1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이네요~저도 꼭 멋진 명작들을 찾아내겠습니다..

yamoo 2010-07-18 17:08   좋아요 0 | URL
옙! 꼭 끌리는 명작들을 읽어보세요~ 여기 리스트들 중에서 지금까지 9권을 읽었는데, 실망시키는 책은 단 한권도 없었습니다! 꼭 멋진 명작을 찾으시길~
 
프롬파리 위드러브 - From Paris with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액션 영화를 검색하는 와중에 누가 재밌다는 말을 해서 <서틴>과 같이 봤다. 

근데, 두 영화에 모두 존 트라볼타가 나와서 좀 짜증났다. 

<프롬 파리 위드 러브>에는 이녀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ㅎ 것두 아주 터프하게~ 

흐음~ 뭐, 나름 재밌게 봤지만, 이걸 극장에서 봤다면 돈 아까와했을 영화다.. 

러닝 타임은 짧고 반전도 없으며, 매우 진부한 내용으로 일관한다는 거.. 

사건의 개연성도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했던 것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때문이다. 

그가 주연으로 열연한 미드 <튜더스2>를 너무도 재밌게 봐서 그런지, 영화에 그가 나와서 넘 반가웠고(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봤다) 존 트라볼타 보다는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이 내내 즐거 웠다.  

키도 그리 크지 않은 넘이 어찌 그리도 수트가 잘어울리는지.. 

오락영화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는 진부한 영화지만 그래도 두 캐릭터의 힘이 영화를 볼만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무료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분이라면 강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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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자마자 서점으로 직행했다.. 

드디어 휴가.. 2주간의 긴~ 휴가..휴가 기간에 읽을 책을 사기 위해 반디 문고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월드컵과 회사일이 겹쳐서 6월과 7월에 책을 거의 못읽어, 평소 찜해 놨던 책을 데리러 갔다. 

물론 알라딘에서 찜해뒀던 책을 구입하고 바우만의 <지성의 근본주의>를 도서상품권으로 사기 위해 갔는데...아뿔싸 품절..ㅜㅜ 그래서 할 수 없이 산 책이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와 김영사의 하룻밤지식여행 시리즈인 <데리다>였다. 도서상품권과 반디문고 적립금으로 공짜로 데리고 왔다..ㅎㅎ 

참고로,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은 3권.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인리히 창클의 <과학의 사기꾼> 

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책을 거의 읽지 못해서 인지 사오자 마자 <데 리다>를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게 술술 읽힌다. 역시 하룻밤 지식시리즈는 쉽고도 유익하다..ㅎ 

그나저나 방바닥에는 읽다가 만 책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빨랑 읽어야 하는데, 30페이지를 넘지기 못하고 있다.  

복거일의 <국제화 시대의 민족어>는 마지막 10여장 남았는데, 읽기가 너무 싫어 팽게쳐 놨고, 한스 콘의 <민족주의 시대>는 40페이지에서 멈춰져 있다. 

앙리 바르뷔스의 소설 <지옥>은 24페이지에서 정지되어 주인공은 계속 방에 갖혀만 있다.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총 17장 중에서 4장만 골라서 읽은 상태다. 아, 빨리 다 읽어야 하는데... 

제랄드 프랭스의 <서사학>도 제4장 서사물의 독서만 읽은 상태로 <교양>책에 눌려 있다. 

다카하시 쇼이치로의 <이성의 한계>는 월드컵 하기 직전에 딱 반을 읽었는데 여전히 고대로다.. 

한스 켈젠의 <민주정치와 철학, 종교, 경제>는 서론만 읽은 상태다..하~ 

아마도 오늘 데려온 5권의 책을 빨리 독파하지 않는 이상 위의 읽다가 널부러진 책들은 다시 집어들기 힘들 것 같다.. 

부디 휴가 기간에 모두 완독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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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언싱커블]

1

일반 스릴러 영화를 보려고 영화를 선택했다. 스릴러물이라서 폭탄 테러에 대한 범인과 FBI의 숨막히는 지략 대결을 기대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여 동안 루즈하게 전개되는 양상에, ‘이건 뭐지?’를 되뇌이면서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끝에 기막힌 반전이 있다는 영화 카피만 믿고 그냥 꾸역꾸역 플레이 시간을 늘려 갔다. 1시간이 가고 영화 플레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나는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딕이 올라가는 시점이 되자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영화는 고문의 정당성을 대놓고 묻고 있었다.

“과연 고문은 어떠한 경우에도 행해져서는 안 돼는 것인가? 그리고 윤리적으로 정당화 되는 고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영화 <언싱커블>은 이 물음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원색적이다.  윤리학 영역에서 오랫동안 쟁점화 되어온 ‘고문의 정당화’에 대해서 관객의 주관적 생각을 묻고 있다. ‘그래, 윤리적 사고는 좋은데, 너라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2

고문은 인간에게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전통적인 처벌 수단이다. 이러한 고문은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런 유구한 처벌 수단이 근대 헌법국가 단계에 오면서 심각한 반대에 부딪쳤다. 근대 헌법국가 시대에 가장 중요한 권리로 대두된 것이 천부인권 사상에 바탕을 둔 인간 존엄권이다. 생명권과 더불어 인간 존엄권은 시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입헌주의 국가들 대부분은 국민이 고문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헌법적 차원에서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예외는 아니어서 헌법 12조에 이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근대 이후 고문은 공식적 처벌 수단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주된 이유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처벌이기 때문.

그래서 고문은 일반적으로 정당하지 않으며 범법행위로 간주된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가하는 행위는 이제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인 동시에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행위이다.

헌데, 이러한 고문 행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당화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 <언싱커블>에서 보여지는 하나의 상황이 이를 예시한다.


3

'스티븐 아더 영거(전직 폭탄 전문가)'라는 이슬람계 미국 시민이 미국의 주요 도시에 핵폭탄을 몰래 설치한 후, 동영상 까지 찍어 자신의 행위를 당국에 알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스스로 체포된다.

핵폭탄이 터지기까지는 5일의 시간밖에는 없다. 핵폭탄의 위치를 찾기 위해 정보부는 한시적 조직을 만든다. 영거를 기밀이 유지되는 곳에 가두고 특수부대 장교, 고문 전문가 H (헨리 험프리스) 그리고 FBI 특수요원(브로디)으로 팀이 구성된다. 그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폭탄의 위치를 자백받으라는 명령을 하달 받는다.

방법을 동원해도 소득이 없자 정부는 고문전문가인 H를 투입한다. 하지만 영거는 온갖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동원되는 갖가지 고문이 여과없이 영화를 통해 보여진다.

손가락 자르기, 칼로 성기에 상처내기, 손톱과 이빨에 상처주기, 얼굴에 비닐봉지 덮어씌우기, 물고문, 전기고문 등등.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 기술이 H에 의해 시행되지만 끝내 영거는 폭탄의 위치를 말하지 않는다. 고문 당하는 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H는 영거에게 휘둘린다. 고문전문가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 영거. 모든 고문 수단을 다 동원해도 영거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드디어 H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이 비장의 카드로 H는 영거의 결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온갖 고문은 견뎌냈지만 이 히든카드 앞에서는 자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H는 확신했다. 바로 영거 앞에서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을 고문하고, 그 고문당하는 모습을 영거가 보는 것이다. (결국 H의 이 확신은 결실을 맺어 영거는 일단 자백하고 자살한다)

한편 H에 의해 선택된 조력자인 FBI 특수요원 브로디는 갈등한다. 영화에서 그녀의 심경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H는 영거의 입을 열게하는 방법은 오로지 고문밖에 없다고 하지만  브로디는 계속 고문만은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고문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해 봤지만 영거에게 놀림만 당하는 그녀는 드디어 고문에 묵시적 동의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문은 부당한 것이라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항상 밖에 있다. 그녀가 괴로운 것은 영거의 부인과 자식들이 아무 죄가 없고 단지 고문을 받아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도 고문만이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H의 고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고문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결과적으로 그녀의 고고한 윤리관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셈이 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하야 할 것은 고문을 반대하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고문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 있다는 점이다. 난감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

영화는 이 상황을 대놓고 들이댄다. 한 사람 또는 죄 없는 몇 사람에 대한 고문을 거부함으로써 미국 시민 수백만명을 죽이는 폭탄테러가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것은 자신의 윤리적인 욕심으로 인한 일종의 도덕적 방종이 아닐까?

더러운 행동을 하지 않아 자신의 윤리적 고결함은 지킬 수 있겠지만, 그런 그의 결정으로 인해 무고한 수백만명의 목숨들이 희생된다. H가 결국 최후의 고문 수단으로 택한 영거의 두 자식에게 가하는 고문을 인정할 수 있다면, 고문 필요성에 대한 근거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모든 고문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권유린 이라고 보는 인권운동가들에게는 이런 입장이 일종의 윤리적 도전이 된다. 영화에서는 FBI 특수요원 브로디가 인권운동가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운동가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고문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무고한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입장은 단호하지만 결국 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윤리적 원칙을 고수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은 없다.

솔직히 영화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 많은 사람의 생명이 더 중하다는 공리주의 입장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딜레마 상황에 부딪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의 입장에서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윤리 문제에서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은 지극히 높은 위치에 있다. 인간 윤리에서 칸트의 정언명령은 견고 하고 절대적이며, 인간이면 누구나 따라야할 규범윤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리학의 오랜 딜레마적 상황인 특수한 경우 칸트의 윤리법칙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의 상황은 그러한 딜레마 상황 중 하나의 사례이다. 이 지점에 오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이 힘을 잃고 공리주의적 윤리설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칸트의 윤리설 입장에서 고문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결국 브로디로 대변되는 인원옹호론자들이 승리하지만 하나의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지켜지는 보편적 윤리법칙이 과연 정당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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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2012-09-29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리적으로 동의하지않지만 할수 밖에없는... 딜레마군요.. 소수보다 다수가 중요하다는 논리에 저는 아직도 명확한 답을할수없는것 같습니다.. 과연 1명보다 수백만명의 목숨이 소중한걸까요? 때에 따라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것이 맞는 것일까요? 글쎄요... 그 '소수'안에 제가 포함 되있지만 않다면 그것이 맞다고 하는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답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