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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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훈의 글은 날선 검과 같아서 내 무딘 신경을 자르고도 남음이 있다.  

산문의 진수가 과연 어떤 것인지 김훈은 읽은 이로하여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한다.  

거시적 담론은 거기에 맞게 묵직한 소리를 내고, 일상의 소소한 것에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운동하는 물체조차 존재의 의미를 갖고 날아간다.  

그가 보는 사물은 그냥 거기에 있는 사물이 아니라 김훈에 의해 재창조된 의미있는 사물이 되고,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매개체가 된다.  

결코 빨리 읽을 수가 없다.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그가 하는 말이 너무도 심오하여 행간에서 멈추고 그 의미를 반추하게끔 한다.  

고종석님의 <코드훔치기>와 같이 읽었더랬다. 고종석님과 같은 글을 좋아하고 그와 같은 글을 언제나 동경해왔는데, 김훈의 글은 단번에 이런 내 생각에 파문을 던져주기 충분했다.  

매 문장하나하나 멈춰서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글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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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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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도 안되는, 그리고 겁대가리를 상실할 정도로 미쳐버리지 않고는 타이틀로 내 걸 수 없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르트르, 방곤 역, 1999). 이 빌어먹을 책은 실존주의에 대한 사르트르의 변명이다.(실존이 휴머니즘과 양립할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책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측에서 그리고 여타 문학가와 사상가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받은 실존철학을, 자신만의 거만한(?) 언어로 복잡하고도 현학적이게 강연한 그 대본이 바로 이 책이다. (간결한 팜플릿이라는 느낌은 거의 못받았다. 역시 번역의 문제인가..)

  1981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이 책은 50쪽 분량의 본문과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강연에 반대하는 피에르 나빌르 교수와의 <토론>, 그리고 1952년 프랑스 <현대>지에 게재된 사르트르와 까뮈의 알고싶지 않은 둘 만의 싸움을 비화한 <반항과 혁명>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거기다가 뭘 말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현학적인 이 논쟁을 확대시킨 장송은 지금까지 알고싶어하는 사람들만의 관심을 끌어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둘의 싸움에 제 3자가 끼어들어 교통정리하는 모양새가 여간 보기 불편한게 아니었다. (아, 그 본질은 무슨 말인지 정황파악이 안되서 였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실존주의의 도덕관으로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비비 꼬아서 논증하고 있다. (시튜아시옹과 기투의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읽고 있으면 한 없는 미로를 걷게 된다. 실존주의의 본질을 매우 난해하고 불투명하게 논하면서(번역이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건드려, 실존을 해야 자유로운것인지 아니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현존재의 가능태가 실존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럼으로써 (적어도 나에게는) 실존주의 보급을 목적으로 했다는 이 해설서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헌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빌어먹을 헛소리를 늘어놓고 투덜거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번역을 한 방곤이라는 역자때문이다. 글을 읽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비문 투성이에다가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문체는 원작을 망쳐놓은 느낌이다. 이 사람이 문학을 전공한 사람인지 심히 의아했다.

그리고 제발 전공자가 번역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존주의 제 1 원칙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이 사람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써놓고 있다. 물론 다른 판본에서도 보인다. 실존과 존재의 개념적 차이를 알면 이러한 실수(?)도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뉘앙스 차이라고 보기에는 개념적 차이가 너무 크다. 

 이러한 개념적 어휘 선택은 책 전체에서 넘쳐난다. 그래서 행간을 멈추어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모든 페이지가 다 그모양이다. 제발 개념을 탑재하고 번역해 주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번역만 제대로 됐다면 아마도 실존주의 보급을 목적으로 사르트르의 본래의 취지는 성취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고전모임 주제도서라서 읽기 했는데, 하여간 읽느라 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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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다닐때부터 락을 들어왔지만(팝은 시카고로 입문~^^) 대학졸업 때 쯤 락과 메탈을 듣는게 시들해졌습니다. 이후 애니메이션 오프닝곡과 앤딩곡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것도 듣다보니 좀 질리는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음이 좋아(일본넘들은 참으로 음반을 잘만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계속 듣고는 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 봄이 다 갈쯤 나이트위시라는 밴드를 알게됐죠. 지금까지 각종 메탈을 섭렵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크메탈로 또는 프로그레시브 메탈로불리우는 멜로딕 계열에 정착하게 되더군요. 뭐, 할로윈을 생각하시면 쉬우실듯...근데, 할로윈 보단 잉위멈스틴과 드림디어터 쪽입니다.. 

매우 좋아해 자주 듣기는 했습니다만 아쉬운점도 있었죠. 2퍼센트 부족함이 랄까....그나마 드림씨어터가 가장 좋아했던 넘버원의 그룹이었죠.   

나이트위스를 들으면서 2% 부족한 것이 뭔지 깨달았습니다. 변주가 심한 연주는 드림씨어터에서 이미 경험해 봤습니다만, 드림씨어터에는 없는 것! 바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가미된 웅장한 배경음악에 여성 소프라노의 보컬...바로 이것이 아쉽게 느껴졌던  실체였습니다.

하여간 한 1년 동안은 나이트위시 음반들만 줄창들었네요. 나이트위시의 여성보컬 타누야의 곱고 깨끗한 음역 그리고 장중한 사운드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년 들으니 이것도 약간 질리더군요..

그동안 고딕메탈 계열의 그룹들을 찾아다니면서 들어봤습니다.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스웨덴 등 북유럽권에서는 이러한 고딕메탈 계열이 인기인가 봅니다. 2년여 동안 많은 그룹의 앨범을 들었습니다만 좋아하는 그룹들은 한정되더군요. 

사이레니아, 트리스타니아, 위딘템테이션, 에피카, 에프터 포에버, 라메 이모탈레 등 여성 소프라노와 그로울링의 조합된 미녀와 야수형 밴드.. 

정말 얘네들 노래는 작살입니다~ㅎㅎ 예네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고딕메탈 계열이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어야 한다는거..) 

 하드하고 쓰레쉬한 배경음악이 달립니다. 아주 힘차게~ 달리다가 야수와 같은 남성 보컬이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솔직히 데스메탈 계열의 이런 우웨~ 우웨엑~~~~하는 소리를 넘 싫어하거든요. 인상을 찌푸리면서 듣고 있는데....물론 배경음악이 넘 좋아서...갑자기 맑고 고운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따라나옵니다. 울부짖던 남성보컬은 잦아들면서 폭발적인 고음으로 여성 보컬이 천상의 아리아를 부릅니다. 바로 이때 입니다. 거의 혼절합니다~ㅋㅋ   

이러한 고딕메탈 계열을 창시한 그룹이 해거드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는 해거드 음반들을 찾아봤습니다. 이들의 음악적 배경을 설명한 평론가의 글도 보니, 이들의 음악은 저 위의 밴드보다 더 심포니 지향적이라는 말에 바로 구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와~~~이건, 뭐...완전 오케스트라 합창단이군요~ㅎㅎ 밴드 기본 인원만 30여명. 지금은 줄어서 16명이지만 초기 앨범의 공연 실황을 보니, 완편된 오케스트라입니다. 지휘자도 있네요! 물론 고딕 밴드라 그로울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장중한 곡을 듣는 것 같습니다.  

남성 보컬이 그로울링 할때는 더블베이스와 첼로가, 백 코러스 할 때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 오보에 호른의 협연이 압권입니다. 얘네와 비슷하지만 오케스트라 동원 능력이 더 뛰어난 밴드가 테리온이라고 해서 얘네것도 들어봤는데, 역시 비슷합니다.

고딕 계열을 분류할 때 심포니/데스/고딕 메탈이라고 하는데...들으면서 어느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배경음악에 야수처럼 울부짖는 남성 보컬 그리고 여성 소프라노가 합쳐진 음색때문인거 같습니다. 오케스트라 협연이 강하면 심포닉-고딕, 그로울링이 강하면 데쓰-고딕 이렇게 분류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뭐라고 분류되던 고딕메탈계열의 압권은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변주곡에 동반된 야수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부르는 여성보컬의 소프라노 입니다. 남성이 악마처럼 울부짖을수록 여성 보컬은 천상의 목소리로 격상되는 느낌입니다. 심한 변주와 잉위멈스팀 급 전자릴렉기타의  달리는 사운드를 들으면 그대로 혼절합니다...작살 중에 이런 작살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허허~ 

클래식 음악, 특히 말로의 음악의 좋아하시는 분들은 해거드나 테리온 음반들을 들어보신다면 색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발라드로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다~ 들어본 분들이 더 들을 게 없다고 생각하시면, 이런 밴드들의 음반들을 들으면 귀가 번쩍 할 거 같다는..ㅋㅋ 

고딕 음악들은 매우 정제되고 웅장하며 비장미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작이 많아서 오페라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1곡당 8분~15분에 이르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서 들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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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2-07-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해거드가 그런계통을 창시했다고요?..금시초문이네요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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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다. 한마디로 대실망이었다. 근데, 이게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어가고 있어 심히 의아스럽다. 

욕심많은 칸과 등신같은 인조가 답답한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그냥 무참하게 읽은 작품이다. 역사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결코 역사소설일수 없고, 그렇다고 역사에세이도 아닌, 한마디로 이도저도 아닌 글이 되버렸다는.. 

아름다운 문체로 살아 생동해야할 캐리터를 죽여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역사교과서에 길어야 한 페이지 분량 정도 인것을 한 권으로 보여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서날쇠로 대변되는 민중의식의 싹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약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문체하면 떠오르는 작가 중 한사람이 김훈이다. 김훈이라는 브랜드는 언제나 간결한 문체의 미학과 함께 간다. 그런데, 이 소설은 김훈 브랜드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물론 읽어보면 김훈 브랜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스타카토식 글쓰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게 과연 김훈식 글쓰기인지 의아스러웠다.

문장으로 발신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서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산맥으로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렷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9페이지) 

책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나온 이 묘사가 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보여지는 이 아름다운 문장들...무생물을 생물에 비유하는 이러한 비유는 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한다. 급기야 중간을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런 문체가 살아 움직여야할 캐릭터의 역동성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는 구실을 하게 되었다. 김훈의 문체에 갇힌 캐리터들은 한 없이 평면적이었고 답답했다.

파주를 막아낼 수 있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낲았다. 하지만 적들은 아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18-19페이지)

보기 드물게 긴 문장이다. 스타카토식으로 짧은 문체를 구사하는 김훈의 문체와는 좀 멀어 보인다. 내용은 마지막 문장인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급박하다는 거. 그 상황을 이렇게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김훈의 장황한 문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고의 압권은 35-36페이지에 나열되어 있다. "성의 지세가 물을 두르고 산에 기댄 장풍국이라고하나~시간과 더불어 말라가니 버틸수록 약해져서 우밎ㄱ이지 않아도 해롭고, 버티고 견디려면 트인 곳을 막아야 하는데 트인 곳을 막으면 안이 또 막혀서, 적을 막으면 내가 나에게 막히게 되니 막으면 갇히고, 갇혀서 마르며, 말라서 시들고, 적이 강을 차지하니 물이 적의 쪽으로 흐르고, 안이 먼저 마르니 시간이 적의 편으로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라고 말하는..(중간생략)..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려 한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내리 썼다. 이런 만연체의 문장은 한 문장을 길게 써야 미덕이라는 판사들의 글쓰기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김훈의 소설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것두 스타카토식의 문장을 구사하는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는 작가에게서 볼 수 있다는 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만연체 문장은 소설 곳곳에 넘쳐난다. 캐릭터가 문체에 갇힌 소설은 무참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실망을 달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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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4-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참 편협하게 읽으시네요 무조건 짧고 간결해야 미학이라는 개... 평생 독서하실일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섹스 마네킹 - Love Objec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어느 모임의 지인이 (내가) 멜리사 세이지밀러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럼, <섹스마네킹>을 봤냐고 물어서, 못봤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꼭 한 번 봐보라고 강력 추천해 줬다.

근데, 제목이 좀 난감해서 XXX등급 아니냐고 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고 매우 잘 만든 스릴러물이란 사실도 덤으로 알려줬다.

영화를 본 결과, 이 영화의 제목을 붙인 넘은 싸대기를 수십 번 맞고도 남아야 한다는 거...원제는 Love Object. 원제와 영화 전체 내용을 상징하는 걸로 <섹스마네킹>이라니..이건 상업적 속물근성을 넘어 작품 자체를 아예 왜곡시키는 개념을 망각한 타이틀이다!

  2

『‘마네킹 페티시즘’에 사로잡혀 리얼 돌을 사람으로 여기고 사람을 인형으로 취급하는 지경에 이르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제작진이 만든 최신 에로틱 스릴러』

2005년 7월 15일 개봉한 <섹스 마네킹>의 광고 문구이다. 영화의 내용은 단 하나의 주제인 남자의 왜곡된 성(性)으로 수렴한다. 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 케네스는 유능한 샐러리맨이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의 생활은 너무나 건조하고 단조롭다. 일과 집을 오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다. 연애에 있어서는 완전 쑥맥이다.

어느 날 사장은 그의 능력에 걸맞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긴다. 사장은 케네스가 힘들어하지 않게 업무보조자까지 붙여준다. 이게 문제였다. 케네스는 자신의 업무보조자로 채용된 리사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케네스'는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리사'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는 솟구치는 자신의 욕망을 다른 곳에서 풀려고 한다. 급기야 그는 맞춤형 섹스마네킹인 니키를 주문하면서 리사에 대한 성(性)적 판타지를 해소하기 시작한다.

케네스는 컴퓨터로 니키의 선택옵션을 업데이트하면서 리사의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요소들로만 채워나간다.

케네스는 낮에 리사를 보고 그려지는 거의 모든 환타지를 집에 와서 니키에게 투사한다. 케네스는 니키를 식사할 때도 식탁에 앉혀 놓고 식사하고 TV를 볼때도 옆에 앉혀놓는다. 침대에서도 섹스 후 같이 잔다. 진짜 살아 있는 애인을 대하듯이 한다.

그런데 케네스가 갑자기 리사와 가까워 지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케네스의 니키에 대한 애정이 리사로 전이되면서, 그는 니키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리사를 더 사랑할수록 니키는 버려진다. 버려진 니키는 인간처럼 케네스를 공격한다.

케네스는 자신이 섹스마네킹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리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고, 니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그는 편집증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케네스의 정신분열증으로인한 일상의 섬뜩함을 강조한다.

영화는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한다가 마지막에 대반전으로 보는 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진짜 감탄할 만한 반전의 묘미라 할만했다.

3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한 것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힘이다.

이 영화는 그저 그런 B급 포르노 영화가 절대 아니다. 감독인 로버트 파라기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잘못된 사랑의 소유욕이 낳을 수 있는 극단점을 모두 보여주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적 욕망에 대해서 말하면서, 정상과 사이코의 차이는 무엇이고 사랑과 성적 욕망의 차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감독 나름의 해답이라 할만했다.

연출력도 신인감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주인공의 편집증적인 상황을 소품과 시선을 사용해 생활 속의 공포감을 조장하는 면이나, 경쾌한 음악과 절제된 침묵 속에서 주인공이 엽기적인 행적을 보여주는 것은 감독의 역량을 가늠하게끔 했다. 특히 끝의 기막힌 반전처리는 압권이었다.

케네스라는 다소 이중적인 캐릭터를 신들린 듯 표현한 데스몬드 해링턴의 연기는 이 영화를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가 되도록 한 일등공신이다. 그가 없었다면 웃기는 3류 영화로 전락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와 호흡을 맞춘 멜리사 세이지 밀러의 무난하면서도 섹쉬한 매력 또한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하나의 요소이다.

 

4

한가지 놀라운 점은 한달전인가, 미국에서 소개된 섹스마네킹 뉴스이다.(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소개되었다!) 마네킹 이름은 까먹었지만 여자 섹스마네킹을 본 순간 너무도 소름이 끼쳤다. 바로 <섹스마네킹>에 나온 니키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처음 제목 때문에 혹 주저하는 분이 있다면, 주저 말고 함 보시라 권해드린다~ 이만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쓰릴러물은 별로 없다~

PS 
안타깝게도 멜리사 세이지밀러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이 영화가 그나마 멜리사 미모의 마지노선이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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