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안진진‘이라면 이렇게 스스로 모든걸 다 아는듯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서 공감이 되면서
지금 나의 20대 시절을 생각해보니 나와 닮은 점이 참 많단걸 알게 된다.
냉소적이면서 맹랑해보이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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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결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한 번만 더 맹세코, 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다면 평소의 나는 이런 식의 격렬한 자기반성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열혈한을 만나면 지체 없이 경멸해버리고 두 번도 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침,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부르짖었다. 내 인생을 위해 내 생애를 바치겠다고. 그런 스스로를 향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눈물이, 기척도 없이 방울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 P9

처음엔 밤사이 비가 내려 허약한 천장이 또 새는 것인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흥분해서 얼굴에 땀이 흐르는 줄 알았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눈물이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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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공가의 치부> 에밀 졸라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발자크의 《인간희극》,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 권을 읽어내고 싶은 꿈을 한번쯤 꿀 때가 있었다....
음... 지금 생각으론 너무 요원한 꿈!
하지만 일단 첫권을 시작했다. <목로주점>과 <나나>는 오래 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어야 이야기의 전체가 완성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市) 남쪽에 있는 로마 문을 통해 플라상에서 나와, 도성 밖첫 집들을 지나면, 니스로(路) 오른쪽에, 그 지역에서 생미트르 공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넓은 땅이 나타난다.
생미트르 공터는 상당히 넓은 장방형으로, 도로의 인도와 같은 높이로 길게 뻗어 있는데, 사람들에게 밟혀서 뭉개진 긴 풀띠로만 도로와 구분되고 있다. 오른쪽에는 막다른 골목으로 끝나는 골목길과 그 길을 따라 늘어선 누추한 집들이 공터와 접해있다. 왼쪽 끝에는 이끼로 무성한 두 개의 담벼락으로 막혀 있다. 담벼락 위로, 도성 밖 아래쪽에 입구가 있는 아주 넓은 농지인 자스·메프랑의 높게 올라온 뽕나무 가지들이 보인다. 이처럼 삼면이 막힌 공터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장소 같고, 산보객들만 지나다니는 곳 같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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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서 있던 장소로 돌아온 그는 아래쪽을 보았다. 눈이 절로 커졌다. 진영에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산성도 비원도 선제공격을 거부하고 있었다. 단지 혹여나 상대편 파쇄자가 공격을 시작할까 두려워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평형상태가 유지된 적은 없었다. 최근의 비원은 자리에 말뚝처럼 박힌 채 미동도 않았고, 산성은 그것을 온건한 압박으로 간주해 결국엔 공격하곤 했다. 그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친구들로부터 이리도 멀리 떨어진 곳에 홀로 높이 서 있는 건 비원과 산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한눈에 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4년만에 처음으로 그 전략에 의문을 품었다. 지난 몇 달간, 그러니까 비원의 수장이 바뀐 이후로, 자신이 꼭 이런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봐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던가? - P399

홀로 높은 곳에 서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서둘러 산성이 진을 친 곳으로 내려갔다. 근처엔 총을 들고 쫓아오는 서형우도 없고 우아하게 고개를 쳐든 최주상도 없었지만, 그의 발은 어느 때보다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언덕을 구르듯 뛸 때 윤서리는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흘끗거리고 있었다. 정여준이 숨을 거뒀던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경선산성에 뛰어가 사람들에게 정여준을 찾아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 P408

윤서리는 시계를 감싸 쥐고 손을 내렸다. 몇십 년에 걸쳐 거짓말만 하느라 이젠 얼굴에 진심을 드러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적을 받고도 포커페이스로 돌아가기 힘겨웠다.
무료하게 떠돌던 김현이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산성 사람들이 양옆으로 천천히 갈라지고 있었다.
김현이가 최주상에게 말했다.
"둘로 나뉘네. 자넨 왜라고 생각해? 난 숨어 있던 나머지 인원이 뒤에서 합류하려는 것 같은데."
"공격을 시작하려는 거겠지. 오늘은 지난번보다 많이 늦긴 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될 일이었잖아." - P400

둘의 목소리는 윤서리의 정신에 닿지 않았다. 그녀는 반으로 나뉘는 산성 진영 한가운데를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 당황한 듯. 그러나 거부감 없이 선선히 몸을 뺐고 가장 앞을 지키고 있던 이찬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뒤를 보지 않아도.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는 것처럼.
한 남자가 무리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앞으로 나섰다. 정여준이었다.
피 흘리는 반시체가 아닌, 생생히 살아있는 정여준이었다.
"어라." 김현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웬일이래."
"...됐어." - P401

윤서리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살아있는 이들과 고요한 도시를 느리게 둘러보았다. 되돌려지지 않고 세차게 흘러가는 시간이 어색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녀는 손목을 두른 익숙지 않은 시곗줄을 풀었다. 시계 알을 들여다볼 일이 더는 없었기에 그녀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바닥에 내던졌다. 이제 그것은 누군가의 초조와 절박함을 빨아먹을 일 없이, 아침 참새의 장난감이 되어 새둥지 정도나 장식할 것이었다.
윤서리가 저를 무슨 심정으로 쳐다보는지 정여준이 알 도리는 없었다. 정여준은 자신의 무리를 시선으로 다독이면서 이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찬은 퉁명스럽지만 불만 없이 말했다.
"굳이 네가 안 나섰어도 별문제 없었을 거야." - P401

그는 그대로 비원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홀로 
다가오는 그를보며 비원이 술렁였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윤서리와 정여준조차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윤서리는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영원히 시간을 돌려도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 사람의 운명이, 장고의 인내 끝에 드디어 변화를 받아들였다.
"비원!" 윤서리가 소리쳤다. "지금까지 싸웠던 시간보다 더 오래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내가 용서받고 돌아올 때까지 죽지 말고 여기 있어라!"
사망의 낙인을 떨쳐낸 정여준을 보며 그녀는 심호흡했다. 울고싶지 않아서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눈송이가 콧잔등에 내려앉아 햇살처럼 녹아내렸다.
그녀는 가슴을 쭉 펴고 걸음을 디뎠다. 정여준의 유언이었던 마지막 말을, 그러나 이제는 유언이 아닌 한 문장을, 그녀는 승리감에가득 차 그에게 소리쳤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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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수 있는> 문목하 장편소설

딸램이 얼마 전 읽었는데 넘넘 재밌다고 추천!
너무 재밌다고 들었는데 미루다 이제서야 읽게 돼 아쉬웠다고 ..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나~~^^
신간인줄 알았는데 2018년에 초판이 나왔고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2020년 6쇄이다.
7월에 새로운 옷 갈아입고 재출간 되었다. 작품의 내용과 더 잘 어울린다고...
어머낫~~~ 시작부터 재밌다!!!





1
당신이 시작한 이야기

단도를 거머쥔 여자의 손이 도중에 뚝 멎었다. 칼자루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온 힘을 주어 밀어도 칼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았다. - P7

눈앞의 남자는 제 귓불에서 한 뼘 거리에 멈춰 있는 칼날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피곤한 듯 잔뜩 충혈된 남자의 눈은 조금 전 자신에게 달려든, 움직이지 않는 단도를 부여잡고 낑낑대는 여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덫에 걸린 산짐승을 겨냥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꼴에 비해 남자의 자세며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는데, 죽은 사람이 눈만 끔뻑이는 듯보일 만큼 생기가 없어서 얼핏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 P7

갑작스럽게 여자의 귀 안쪽을 때리는 진동이 일었다. 왼편이었다.
빽빽이 들어찬 활엽수 때문에 건너편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 무거운 울림이 하나둘 착실히 건너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P7

그제야 남자의 자세가 변했다. 여자는 공격을 예상하고 고개를뒤로 뺐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숲 바깥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불길한 소음이섞였다.
날 수 없는 것이 하늘을 나는 소리였다.
거대한 덩치가 나무들을 우지끈 부수며 날아들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 것은 낡은 주택 일부였고 어느 것은 바위처럼 보이는 시멘트 덩어리였다. 여자는 조금 전의 진동이 폭발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날아오는 것들은 그 폭발의 잔해였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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