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절한 외침, 이 절규가 너무 고귀하고 아름답다. 마리아의 심장에 가 닿기를 ... ...

˝,,,,, 왜? 대체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걸까요?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게걸스럽게 탐하지 않고는 여자를 쳐다볼 수도 없는 걸까요?˝
...... 어쨌든 세상이 인생의 가장 성스러운 것을 가장 천박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마리아! 그러지 말아요. ... ... 그렇지만 저 소란스런 바깥세상에는 괘념하지 말고, 두 마음이 순수한 마음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우리만의 성전을 지킵시다. ... ˝(150쪽)


넷째 회상
나는 곰곰 생각을 모으려고 하다가는 얼른 생각을 털어버리고, 돌아가신 후작 부인의 초상화 앞으로 다가섰다. 
바로 그때 문이 열렸고 어릴 적에 자주 보았던 
두 장정이 후작 따님을 침대에 누인 채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아, 그 모습!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얼굴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두 장정들이 나가자, 이윽고 그녀는 내게 시선을 보냈다.
옛날 그대로의 그윽하고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그 눈. 그녀의 얼굴은 순간마다 생기를 띠더니 마침내 온 얼굴에 웃음을 함빡 머금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예요. 우리는 변한 게 없는 것 같군요. 나는 ‘지이‘라고는 부르지 못하겠어요. 또 ‘두우"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 영어로 말해야겠는 걸요. Do you understand me?"

*독일어 Sie는 예의 바르게 쓰는 존칭, Du는 친한 사이에, 특히 남녀 간에는 애인 사이에 쓴다. - P53

다섯째 회상
그때부터 아름다운 삶이 열렸다. 매일 저녁 
나는 그녀를 방문했고, 우리는 곧 서로가 진정한 옛 친구임을, 서로 ‘두우‘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사이임을 절감했다. 우리는 서로 지금껏 늘 함께 어울려 살아왔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켜는 감정의 현치고 이미 나의 영혼 속에서 울리지 않은 음이 없었고, 내가 입 밖에 낸 생각치고 그녀가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응해오지 않은 생각은 없었다. - P62

여섯째 회상
자연이 차별 없이 분배하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그것을 자기것으로 하지 않으면, 말하자면 노력하여 쟁취하지 않으면 만족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아름다움은 마치 여배우가 여왕 의상을 입고 무대로 나오는데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그 의상이 결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님을 드러내듯이, 오히려 불쾌감을 줄 뿐이다. 그러나 참된 아름다움이란 우아함이며, 우아함은 모든 압박과 육체적, 세속적인 것이 정신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추한 것까지 아름답게 하는 정신의 현존인 것이다. - P95

그렇게 내 앞에 서 있는 환영을 관찰하면 할수록 나는 그 환영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풍기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그 온 존재에 비치는 영적 깊이를 알아보았다. 오, 그토록 엄청난 축복이 내 곁에 가까이 있었다. - P95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게 지상의 행복의 절정을 보여주고 나서, 나를 인생의 넓은 사막으로 팽개치는 과정에 불과했다! 
오, 이 땅에 얼마나 엄청난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번 사랑하고 나서 영원히 고독해져야 한단 말인가! 한번 믿고 나서 영원히 의혹에 빠져야 한단 말인가! 한번 빛을 보고 나서 영원히 눈이 멀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엄연한 고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여타 모든 고문도 이 고문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니리라. - P95

마지막 회상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바로 이 ‘무엇‘에 대한 이름을 찾아내야만 했다. 
세상은 이름 없는 것을 결국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모든 다른 사랑의 원천인 저 순수하고 전인적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내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내 편에서 그녀에게 나의 혼신의 사랑을 고백했을 때, 왜 그녀가 놀라움과 언짢은 기색을 보였는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가 그녀의 사랑에 대한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는 없었다. - P137

어차피 우리 자신의 마음속이 불가사의한 것투성이인데, 왜 인간의 영혼 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모조리 알려고 하는가? 자연에서든 사람의 속마음에서든, 자신의 가슴 속에서든, 우리를 가장 매료시키는 것은 해명할 수 없는 것들 천지가 아닌가. 우리에게 이해되는 인간, 해부용 표본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태엽을 지닌 인간들 앞에서는 수많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경우처럼 우리는 냉담하게 된다. 만사를 해명하려 들면서 내면의 기적을 일체 부인하는 윤리적 합리주의자들이야말로 생명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기쁨을 망치는 자들이다. 
어느 존재 안에나 운명이니 영감이니 성격이니 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풀어지지 않는 요소가 있는 법이다. 이처럼 영원히 남는 요소를 인정치 않고, 인간의
행동거지를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저
자신은 물론 인간을 모르는 위인들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엊저녁에 절망했던 모든 것에 대해 알기를 깨끗히 체념했다. 그러자 이제 내 미래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P137

통계학자들은, 매시간 한 사람의 심장이 찢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왜? 세상 어디에서나 타인간의 사랑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하물며 남녀 간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경우, 한쪽 여인은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경우 한쪽, 아니면 두 남자 다 희생이 됩니다. 

왜? 대체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걸까요?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게걸스럽게 탐하지 않고는 여자를 쳐다볼 수도 없는 걸까요? - P150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손 안에 잡힌 그녀의 손이 뜨거운 마음의 악수에 응답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안에서는 파도가 일고 폭풍이 치고 있었다. 층층이 쌓인 구름이 그 폭풍에 의해 걷히며 내 앞에 펼쳐지는 푸른 하늘은 지금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워보였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었느냐고,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이 대답이 미흡하다면, 당신 옆에 놓인, 당신이 그토록 애독하는 책으로 대답을 대신하지요."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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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문예출판사

<독일인의 사랑>과의 떨리는 재회~~
책 읽는 생활 중에 가장 취약한 게 읽은 책 다시 읽기이다. ‘읽을 책‘도 많은 데 ‘읽은 책‘ 다시 읽기라니 라는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가끔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이 딜레마..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작품이 늘어난다는 것이 오늘 이 <독일인의 사랑>과의 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시 읽고 싶은 간절함이 ‘읽을 책‘의 유혹을 물리쳐 주었다.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이 책이 문예 출판사의 ‘문예 세계 문학선‘이었고 이 시리즈를 주욱 둘러보니 정말 놀랄 정도로 내가 어리고 파릇하던 젊은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게 아닌가! (다른 출판사의 시리즈도 물론 그렇겠지만 문예출판사의 판형이 나는 편하더라는... 뿐만 아니라 가격도 넘넘 착하다! 민음사 ㄴㄴ 넘 불편해!)
갑자기 가슴이 설레고 그러니 읽고 싶어져서 이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놓았고, 시리즈 앞쪽에서 읽지 않아 눈에 띈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뒤쪽에서는 포드 매덕스의 <훌륭한 군인>을 담았다.
아~~ 이렇게 나의 독서 생활에 ‘고전 다시 읽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카테고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독일인의 사랑>은 1987년에 1판, 2022년에 6판4쇄까지 출판이 되었다. 87년이면 20대 중반이기는 하지만 내가 읽은 건 이 시리즈는 아니었던거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나? 아닌가? 이것도 아닌거 같고... 결혼 전에 분명히 소장하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독일인의 사랑>은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안나지만 ˝사랑에 관한 불후의 명작˝이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다시 읽기의 첫 책으로 선택하기에 부담이 없다.

오늘은 바람도 거의 안불고 따뜻해서 썬룸에 나가 책을 읽었다.
어제 같이 수영 다니는 동생이랑 남사화훼단지 구경 갔다 왔다. 눈 둘 곳 없이 꽃들도 많고 냄새가 넘 달콤하고 향긋해서 기분이 진짜 금방 업업~~~
그냥 올 수는 없지.
해마다 꽃볼 생각에 들였던 시클라멘.
작은 꽃이 앙증맞은 제라늄.
그리고 지금 딱 꽃이 피어 향이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
썬룸 나가니 향이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음~~~ 달콤해~~

어린 시절은 그 나름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누가 그것들을 이야기로 엮을 수 있으며, 누가 그것을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이 고요한 경이의 숲을 방황하여 빠져나왔다. 우리는 모두 한때 모든 감각이 마비된 행복감에 젖어 눈을 떴으며, 삶의 아름다운 현실이 우리의 영혼 위로 넘쳐흘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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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2-27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군인> 반갑습니다!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은하수 2025-02-27 21:42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다면 완전 믿고 빨~~~리 읽어보겠습니다.
그러잖아도 너무 궁금했거든요^^

민선진 2025-02-2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속 꽃이 제라늄인가요? 봄이 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은하수 2025-02-28 10:24   좋아요 0 | URL
네~~
앞쪽 붉은 색은 시클라멘이고
뒤 왼쪽이 제라늄 종류입니다. 꽃이 작은 종이 요즘 꽃시장에 엄청나게 나와 있더라구요.
봄을 만끽하기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