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실 ~~ 2. 발견


로마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여신 중 하나의 이름은 타키타다. 침묵하는 여신이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망자의 날, 그녀를 위무하려는 신자들이 입을 꿰맨 물고기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제신에게 안성맞춤인 제물이었다. 죽음은 입이란 입을 모조리 꿰맨다.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이 언어에 거역한다. 죽은 자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다. 산 자들은 죽음을 체험하여 말할 수 없다. 애도하기 위해 적합한 말을 고르는 일조차 대단히 어렵다. 우리는 애도하기로부터 애도에 관해 배우지만, 이는 외롭고 새로울 게 없는 지식이며 묘사하기도 어렵고 거의 모든 측면에서 개별적이다.  - P97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죽음과 마주한 이를 위로할 때 스스로가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무슨 말을 하건 정확하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 뻔하고 진부한 얘기만 늘어놓게 된다는 걸 알고 짜증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로 애도할 수 있는 다른 유일한 사람인 언니와 대화를 나눌 때조차도 언니의 슬픔이 내 슬픔보다도 고통스러웠는데 그때도 내가 한 번이라도 위로가 되거나 유용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그저 장례를 치르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에 언니와 전화하는데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우리 둘 다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서글프게 깨닫고 그저 "어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 P97

그래서 아버지의 침묵이 그토록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리라. 그 침묵이 여전히 내 곁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침묵은 내가 그 실체를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 영구하고도 전격적인 상실이 찾아오기 전 살짝 맛을 보여준 것이다.  - P98

한 의식의 소멸이란 숨이 턱 막히는 일이다. 
거리를 두고 보면, 역사의 여명 이후로 이런 상실은 날이면 날마다 매시간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가까이서 봤을 때, 한 우주가 순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건 충격적이다. 나는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는 전부를 잃었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침묵이 예언했던 건 이처럼 절대적인 상실이었다. 정신이 끝자락에 도달했으며, 자아가 최종 장을 맞았다는 것, 더는 항구나 도시, 시, 세상의 일부일 수 없다는 것. 시인 W. H. 오든W. H. Auden은 예이츠가 사망하자 이렇게썼다. "그는 자신의 숭배자가 되었다." 이제 아버지를 사랑했던 우리는 그가 남긴 전부가 되었다.
- P100

... 애도하는 우리에게 남은 건 기억뿐이기에 우리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헷갈려하지만, 당연하게도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가 슬퍼하는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 이 시점부터 내 인생에 있을 모든 일들을 아버지가 볼 수 없다는 것. - P103

나는 여전히 거의 매일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모든 곳에 시선을 보낸다. 사진에서, 읽던 책에서, 내가 쓴 문장이 내는 소리와 내 생각들의 형태에서, 어머니와 언니에게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낯익은 아버지 지갑(이제 아버지 곁에 있지 않게 되었으므로 안전해진)을 보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마주친다. 그중 몇몇은 내 아버지였던 사람에 대해, 잠시 멈추어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 몇몇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울하고 애매한 감정이 든다. 의자처럼 일상과 관련된 기념물memorial은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환히 빛나고 있기에 내가 밝힐 필요가 없는 양초다. 이 모든 것들은 집단적으로 세상을 조금 덜 불완전하게 하는 일에 봉사한다. 아버지와는 다르게 이런 것들은 아직 여기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들을 만들어낸 사랑처럼 지속적으로. 이것이 상실의 근본적인 역설이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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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으로 떠오르기 세리프
캐슬린 제이미 지음, 고정아 옮김 / 빛소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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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제이미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풍경과 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여행, 여성문제, 고고학과 시각예술 등을 아우르는 작품을 쓰고 있다. 2021년 스코틀랜드 마카르Makar(스코틀랜드 정부가 지정한 국가 시인)로 임명되었다. 자연과 풍경을 그린 에세이집을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는데, 『발견들Findings』,시선들Sightlines』, 『표면으로 떠오르기』가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이 중 "빛소굴 세계산문선" 세리프Sefif로 『시선들』과  『표면으로 떠오르기Surfacing』가 간행되어 있고, 

이 두 권을 모두 읽은 셈이 되었다. '세리프' 시리즈로 출간되기 전엔 이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지만 먼저 

출간되었던 『시선들』을 읽고 나서 이 세리프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다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3권의 책만이 출간되었지만 말이다. 





먼저 읽었던 『시선들Sightlines』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표면으로 떠오르기Surfacing』를 읽으면서도 실감하게 되었는데 작가 존 버거의 말처럼 "독자의 세계를 한층 넓혀주"는 글이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시선들Sightlines』에서는 병원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의 아름다움, 빙산이 흩뿌려진 바다 위를 환히 비추는 북극광, 스코틀랜드 섬 위에 뜬 위성, 보존 작업 중인 고래 턱뼈의 구멍으로부터 뻗어 나간 사색의 경험, 요란하고 심각한 소동이 일어나는 절벽의 가넷 서식지, 박쥐를 따라 나섰다가 발견한 동굴- 속 신석기 시대 벽화 중앙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새-인간 벽화 -을 찾아 나선 여행, 절벽들 사이를 휘돌아 다니는 바닷 속 범고래. 이 모든 여정들이 정확하고 섬세한 묘사로 아주 작은 세상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더 넓은 세상 끝, 깊은 심해로까지  우리를 이끈다. 





이번 작품에서도 캐슬린 제이미 작가는 스코틀랜드의 대자연의 풍경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봄날의 웨스트하일랜드 순록 동굴 탐험에 나선 탐험가들은 동굴 깊은 곳에서 표면으로 떠오른 곰의 뼈를 발견했다.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그 뼈가 자그마치 4만 5천 년 전의 것임이 밝혀졌다(「순록 동굴」). 

북행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 길, 바다와 숲이 만나는 앵거스의 시골에서 앉은 쪽 창문으로는 소나무 숲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 배가 바다 위를 유유히 떠가는 상像이 맺혀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윌리엄 스코스비라는 포경선 선장의 놀라운 경험을 들려준다. "7월의 어느 화창한 날, 바람이 가볍고 대기의 굴절률이 높을 때 스코스비와 선원들은 놀라운 광경을 맞닥뜨렸다. 하늘에 배 두 척이 뒤집힌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그 배들을 알았고, 그것들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15킬로미터 너머의 거리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에 그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북극 여름 저녁의 투명한 하늘에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뒤집혀 있었지만 그 모양이 너무도 선명해서 돛 하나하나가 뚜렷이 보였다. 그는 그 배에 아버지의 배 이름을 따서 '페임 호號'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배는 당시에 수평선 너머에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수평선 너머를 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162~163쪽)" 하고 "하늘에 뜬 배" 일화를 들려준다. 짧은 글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유리에 비친 모습」).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된 북구 하일랜드의 오크니 제도에서 신석기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과 경험을 토대로 써내려간 「링크스 오브 놀틀랜드I,II,III」도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들고 외연이 확장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에세이는 이 책에서 다소 긴 분량을 차지하는 두 편인데 모두 스코틀랜드 바깥을 배경으로 한다. 하나는 젊은 시절 방황할 때 찾아갔던 티베트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경험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추억하는 여행기이고(「바람의 말馬」), 다른 하나는 알래스카에서 고고학 발굴에 참여하여 에스키모인 조상들의 유물 발굴을 도왔던 경험을 쓴 이야기(「퀴나하크에서」)이다. 


티베트 여행을 소재로 했던 「바람의 말馬」은 중국 당국의 지배력 강화로 인하여 티베트와 긴장 상태에 놓인 불안한 티베트의 정치 상황이 배경으로 깔린다. 당시 중국 북경에서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로 인하여  5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본문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북경 '천안문 사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의 불안한 정치 상황은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티베트에도 여파를 미쳐 여행객으로 갔던 작가를 비롯한 외국인들에게까지 불안을 야기하고 급기야는 예정했던 여행을 마치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다. 파키스탄 북동부에서 육중한 구형 버스를 타고 카라코람 고속도로를 달려 길기트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버스로 파키탄과 중국의 국경에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이라는 '쿤자람 고개'를 넘는 힘겨운 여정을 거쳐 마침내 경이롭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높은 고도, 거친 설산,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놀랍도록 차가운 공기에 대한 감각이 강렬하고, 물이 흐르는 험준하고 아름다운 어느 계곡과 황량한 산비탈에 흩어져 보석처럼 반짝이던 집들이 생각나는 티베트의 중심 도시 '카슈가르'에 닿은 일을 읽을 때 흔히 티베트 여행이라고 하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정경이 글 속에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단편의 제목과 관련한 것인데, 호텔에 방을 잡고 바라본, 호텔 담 너머로 보이는 마을에서 바람에 '오색 경번'이 펄럭이는 모습이다. 언덕 위 티베트의 마을을 가장 아름답고도 이국적으로 만드는 풍경이 바로 '오색 경번'이 펄럭이는 모습이 아닐런지...


   "벽돌 담 너머 펼쳐진 땅 몇 미터 아래에는 쪼그라든 강이 있었다. ... 그 강은 황하의 지류였는데, 마을이 언덕 지대에 자리해서 해발 고도가 2,700미터 가량 되었기 때문에 봄에는 눈 녹은 물이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6월 초라 눈이 없고 언덕은 푸르렀다. 마을 위쪽에서는 양과 야크 무리가 풀을 뜯었다. 아침이면 창밖으로 안개가 걷히면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에 있는 돌무덤과 그 곁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경번들이 보였다. 경번. 이걸 보려고 참 먼 길을 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장대에 매단 그 천 조각들을.(28쪽)"


이 에세이의 제목을 뜻하는 '바람의 말'도 이 경번에서 유래한다. 경번經幡prayer flags은 티베트 불교에서 쓰는 깃발로서 모두 다섯 가지 색깔이 있다. 가로로 거는 것을 '룽다'라고 하고 세로로 거는 것을 '타르초'라고 하는데, 이 중 룽다, 즉 가로로 거는 깃발을 '바람의 말馬'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가로와 세로로 거는 깃발에 각기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 중 가로로 거는 깃발을 '바람의 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었다, 달리는 말을 연상케 하는 깃발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퀴나하크'의 위치를 설명하는 글로부터 시작하는 「퀴나하크에서」.... 이 아름다운 에세이는 작가가 위도 60 도선의 지도를 한 바퀴 돌아 알래스카 주, 베링 해에 이르고 거기에서 알래스카의 마지막 150킬로미터 지역에서 쿠스코큄-유콘 삼각주를 지나 퀴나하크 마을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이마저도 아름답다. 퀴나하크 마을. 그 마을은 북위 60 도 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지도를 보면 도로는 없고 녹색 물길과 얼음 녹은 웅덩이들만 보인단다. 여름엔 그렇고... 겨울엔 물론 강이 얼고 눈이 높이 쌓인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 발굴은 짧은 여름 동안만 가능하다. 


마을엔 주민이 7백 여명 정도, 대부분 유피크Yupik 족이고 이들의 강인 카네크토크 강은 유명한 연어 회귀천이다. 이 단편을 읽다 보면 기후 위기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얼음이 녹아서 에스키모인들이었던 유피크 족은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남쪽의 땅으로 거주지를 이전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으로 보면 해변은 직선으로 1.5미터가량 뻗은 검은 모래밭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툰드라가 겨우 2~3미터 높이로 솟아있다. 해수면의 빠른 상승으로 툰드라가 빠르게 부식되고 있고 매일매일 새로운 흙덩이와 초목이 모래밭으로 떨어져 내려와 바다에 휩쓸린다. 그리고 영구 동토층이 녹아서 땅 자체가 버티지를 못하고 점점 바다에 굴복하려고 한다. 결정적으로 이 툰드라 벽을 바다가 할퀴어서 묻혀 있던 유피크 족의 선조들의 마을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퀴나하크 주민들은 전부터 이 지점에 오면 흙에서 갖가지 용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유피크 물건"

그들의 조상이 바깥 세계와 접촉하기 전, 유럽인들이 오기 전, 기독교 선교사들이 강을 타고 올라오기 전에 쓰던 장신구와 기구와 물건들... 이 누날라크 마을 현장은 겨우 5백 년 되었지만, 유피크인이 수렵채집으로 자급자족하던 시절,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던 시절을 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서구인들의 침탈로 명맥이 끊긴 그들의 문화, 그들의 전통을 잇고자 마을 회의를 거쳐 이 누날라크 마을을 발굴하기로 결정한다. 고고학자들과 고고학에 관심있는 대학생들, 그리고 마을의 젊은이들이 매해 발굴에 참여하게 되었고 발굴이 진행될수록 점점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고 전통을 잇고자 애쓰게 되었다. 그해의 발굴이 끝날 시점에 전시회와 발표회 등을 하면서 주민들은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에 참여하는 퀴나하크 마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풍경과 계절에 따른 유피크의 생활도 자연을 닮아있다. 베리를 따서 잼을 만들고 베리 따기가 끝나면 연어 낚시 철인데 겨울이 오기 전에 손질하고 말리고 얼리고 훈연해 두었다가 내내 먹는다. 연어 철 다음에는 말코손바닥 사슴 철이 오고 그 다음에는 

송어 철... 그러고 나면 겨울. 겨울이 오면 눈과 얼음이 풍성하기를 기다렸다가 언 강을 타고 툰드라 지대로 가서 늑대에 쫓겨 내려오는 순록을 잡는다. 뇌조를 잡기도 하고... 뇌조 수프는 물범 기름을 뿌려 먹어야 한다는데... 봄이면 얼음 낚시로 바다코끼리와 물범을 잡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현대인, 도시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생활 모습이지만 이들의 사계절은 정말 빽빽하게 할 일이 많다. 유피크 족 사람들은 기꺼이 순응하고 

만족하며 살아간다. "자신들의 땅과 아주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영적이다.... 그런 그들에게 선교사를 보내고 그 땅을 정복하고 유피크인의 문화를 잃게 만든 외부 세계는 이제 그들에게 방송국 촬영팀을 보내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자연친화적 삶"이라고 포장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아마추어 고고학자로서 동굴탐험을 하고 퀴나하크와 북구하일랜드의 오크니 제도에서 발굴에 참여한 경험은 이 책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땅은 신화의 시대가 아닌, 실제적인 삶을 살았던 생명이 살아 숨쉬는 땅이었고, 이들의 삶과 그 실제성을 발굴을 통하여 체험함으로써 "지나간 삶과 현재의 삶, 앞으로의 삶을 다층적으로 투시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의 제목이자 각각의 에세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면으로 떠오르기'라는 이미지와 표현을 통해서 더욱 생생해진다. 발굴된 유물들이 마침내 '표면으로 떠올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가 티베트 여행 중 개에게 물렸던 사소한 기억이 20년도 더 지나 저자의 꿈 때문에 기억이 표면으로 떠올랐고, 저자의 할아버지가 광산 매몰 사고 후, '지상으로 올라온' 경우도 그러하다. 공기를 타고... 예민한 감각으로 공기의 결을 가늠하며 상승 기류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수리의 묘사에서도 그러하다.


   "이 "떠오르기"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잊혀졌다고 생각한 것들이 살아 돌아와서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해주고(「퀴나하크에서」), 생명을 되살려주며(「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로는 병마를 이기는 기묘한 계시가 된다(「티베트의 개」)(268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의 담백한 문장들에 담긴 깨끗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작가를 따라 여행을 다녀온 듯, 그리고 거기에 깃든 인류 생명체의 깊고 오랜 역사를 표면으로 끌어올려 잠시 들여다보고 돌아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 책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웨스트하일랜드의 웨스트레이 스톤에 새겨진 나선형 무늬처럼 모든 것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처음과 다른 것일지라도 깨달음의 시간들로 인해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캐슬린 제이미는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들을 반복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이처럼 멋진 에세이를 남기려고.... 나도 한번은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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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캐스린 슐츠

사별 환각이란 말이 와닿는다.
수시로 티격태격하지만... 남편과 사별한다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될거 같아 특히 공감된다.

애도 중인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흔히 한다는 것을 나는 시 1-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시인 잭 길버트 Jack Gilbert는 「홀로Aloneone」에서 죽은 아내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미치코가 죽은 뒤에/그녀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는데 / 돌아왔다니 이상한 일이지/누군가의 달마시안으로 말이야." 
망자를 감지하거나 보거나 듣는 경우, 그런 만남을 사별 환각bereavement hallucinationo라 부르는데, 대략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한다. 이 비율은 배우자를 잃은 경우에 더 높으며, 결혼 생활 기간과 비례한다.) 
아무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언젠가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관찰한 바와 같이, 독방 수감자거나 최근 시각을 잃은 사람들, 대양을 횡단하거나 장기간 극지방 항해를 한 사람들처럼 극단적으로 단조로운 풍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경험하는 환각 증세와 어떤 공통점을 보인다. 이런 경우들, 그리고 아마도 사별의 경우에는 낯익은 감각이 돌연 철회되면서 우리의 마음이 이전까지 늘 존재했지만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리라. - P82

사별 환각을 경험한 이들 중 상당수가 어떤 형태의 사후세계도 믿지 않는데, 나도 그렇다. 내가 경험했던 생생한 환각들은 내가 죽음에 대해 이해하는 바와 합치되지 않았고, 예상외로 내 이해를 변경하지도 않았다. 이런 경험으로 내가 어떤 신념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면, 그건 오로지 인간 정신의 무한한 수수께끼들 속에서 내가 늘 유지했던 신념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매번 반갑고, 놀랍고, 한편으로는 조금 우습기도 했다. 신성하다기보다는 훨씬 세속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천사나 유령 따위가 현전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고,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흐리는 장막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상호작용을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로 경험한 것도 아니었다. 특히 나를 꾸짖는 할머니나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는 생각이나 기억, 
심지어는 꿈과도 전적으로 다른 형태의 외현성exteriority을 지니고 있었다. 이 경험들을 최대한 범주화해보자면 낯설고 기이한 것보다는 그 반대, 아주아주 친숙한 쪽에 가까웠다. 마치 내가 애도를 경험하기 전에는 몰랐던 형태의 사랑인 것 같았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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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할일이 많네. 가우스틴이 둥근 안경의 렌즈를 닦으며 말했다. 여기 보이는 건 중산층의 60년대야. 과거는 값이 비싸고 누구나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모든 과거가, 그리고 모든 유년기가 이렇지는 않았다는 점은 자네도 알 거야. 노동자들을 위한 1960년대도 필요하고 학생 기숙사도・・・・・・ 아울러 동유럽에서 산 이들의 60년대, 
즉 우리의 60년대도 필요해. 언젠가 이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가우스틴이 말을 이어갔다. 이런 클리닉이나 요양소를 여러 국가에 만들거야. 과거는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지. 어디에나 여러 시대를 재현한 집들이, 작은 동네들이 생길 테고, 언젠가는 작은 도시들, 어쩌면 나라 전체가 그렇게 될지도 몰라. 알츠하이머병이라든가 치매라든가, 그 이름이 뭐든 기억 쇠퇴를 경험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말이네.  - P62

이미 과거라는 현재에서만 살고 있는그 사람들 모두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가우스틴은 잠깐의 멈춤 뒤에 비로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오늘날 기억을 잃는 사람들이 갑자기 급증한 건 우연이 아니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기 위해 여기에 있어. 내 말을 믿으라고, 언젠가, 머지않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할 거야. - P62

기억을 기꺼이 ‘잃기 시작할 거라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과거라는 동굴에 숨기를, 돌아가기를 원하는 때가 올 거야. 그런데 행복한 이유로 그러진 않겠지. 우리는 과거라는 방공호를 마련해야하네. 

시간 대피소time shelter라고나 할까. - P63

12.
그래서 가우스틴과 나는 과거 요법을 위한 우리의 첫번째클리닉을 세웠다. 사실은 가우스틴이 세웠고 나는 단지 그의조수로서 과거를 수집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쉽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턱대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 P67

향을 기록하는 장비가 없다는 사실이 진정 놀랍지 않은가?
실은 하나가 있긴 하다. 기술보다 앞서 존재한 단 하나의 도구,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도구. 그것은 물론 언어다. 당분간은 언어 말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향기를 말로 포착해 또다른 노트에 추가해야 한다. 우리는 묘사해봤거나 비교해본
향기만을 기억한다. - P73

놀라운 점은 이런저런 냄새에대한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혹은 아담은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등의이름이 있는 색깔과는 다르다. 향기는 우리가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기는 언제나 비교를 통해, 묘사를통해 인식된다. 제비꽃 냄새가 난다. 토스트 냄새가, 해초 냄새가, 비 냄새가, 죽은 고양이 냄새가………… 하지만 제비꽃, 토스트, 해초, 비, 그리고 죽은 고양이는 향기의 이름이 아니다.
이 얼마나 부당한가. 아니 어쩌면 이 불가능성 아래에 우리가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징조가 숨어 있는지도...………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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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1. 상실

너무 오래 쉬다 다시 이어서 읽으려니까
앞에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다.

처음 읽을 땐 지루하더니 다시 읽으니 또 너무 재미지다.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읽다 기절... 침 흘리며 엎어져 자고 있더라는... ㅎㅎ  




... 항공계에서 말레이시아항공 370편에게 벌어진 사건은 극도로 변칙적인 예외였다. 지난 50년간 
거의 10억편에 달하는 항공기들이 오간 항로에서 조그만 상용 비행기 하나가 훌쩍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더 큰 세상을 놓고 보면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경험과 역사는 우리가 그 가치나 크기와 관계없이,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지켜보려고 안달복달하더라도 이 지상에서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는 건 없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착륙하기 전의 비행기가 고속도로 위를 낮게 지나가는 모습은 충분히 거대하기에, 그런 물체가 사라질수 있다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 P33

하지만 이는 문제를 가늠하는 잘못된 해법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보잉777 힌ㅇ공기가 거대하게
보이겠지만, 인도양 대양저에는 같은 기종 항공기
 1800억 대가 충분히 놓일 수 있다. - P34

결국 이런 이유에서 어떤 상실은 그토록 충격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리라. 현실을 거역해서가 아니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상실은 우리에게 많은 걸 알려주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규모에 대한 감각을 정정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끔 하는 것이다. 잃어버릴 수 없을 만큼 큰 건 없을 정도로, 반대로 무엇을 잃어버리기에 너무 협소한 장소도 
없을 정도로 이 세계는 너무나 신비롭고, 거대하며, 복잡하다. 
잃어버린 결혼반지 하나 때문에 동네 공원의 소박한 지형도가 로키산맥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이킹을 하다가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평화로운 개울과 숲이 무시무시한 황무지로 돌변하기도 한다. (상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경외와 비탄처럼, 상실은 주변 환경과 우리의 크기를 단번에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작아지고 이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광활해진다.
- P34

우리가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권한과 힘을 부여하는 감각을 교정하기란 이처럼 가혹해서 사소한 상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다. 무언가 잃는 일은 우리를 한없이 겸허해지게 한다. 상실은 우리에게 정신의 한계를 직시하도록 강제한다. 
우리가 식당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어디에 지갑을 흘렸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실은 의지의 한계를 직시하도록 강요한다. - P34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시간과 변화의 가능성으로부터 지키기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상실은 우리에게 존재의 한계를 직시하도록 강제한다. 거의 모든 것들이 언제고 사라지거나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상실은 지금 여기 존재할 수 있었던 무언가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당혹스럽고, 미칠 것 같고, 마음 아픈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이처럼 보편적인 일시성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반복적으로 요구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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