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의 가능성을 끌어안고 일찍이 신일숙 선생님은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명언을 남겼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예측불허의 상황이 당연해진다. 다음에 무슨 카드가 나올지 모른다. 다른 플레이어가 어떻게 끼어들지 모른다. (4) ‘필요한 과제를 제대로 산출했더라도 (5) ‘상황이 변하는 바에 따라 경로를 수정할 필요가 생긴다. 스플렌더라면 바닥에 원하는 색깔의 카드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든가, 얻으려고 했던 토큰이 똑 떨어진다든가, 내가 목표하던 카드를 누가 먼저 가져가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 이는 게임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전제된 변수다. 상황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만이 상수다.*[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오는 저 명언은 만화를 본 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뇌리에 각인되어 버렸다. 작가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니.. 신기하지 뭔가. 작가와 나의 나이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 P120
목표를 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스플렌더에서는 카드를 구매하는 등의 3가지 행동만 허용된다. 플레이어는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게임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효율적인지 아닌지 차이가 날 뿐이다. 반면 인생에서는 게임과 달리 모든 행동이 목표를 향해 쓰이진 않는다.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무궁무진하다. 이 문장을 쓰는 나는 글쓰기를 그만두고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옥상을 찾아가 상념에 잠길수도 있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나의행동은 내 인생을 구성하는 것이지, 게임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내가 취하는 행동 중에서 프리랜서 게임의 목표를 향해 쓰이는 행동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게임에서 내 행동력은 몇일까? 다시 말해, 나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행동을 목표를 향해 사용할 수 있을까? - P121
따라서 게임은 우리로 하여금 ‘기능적 아름다움에 대한 더욱 명료하고 인식적으로 신뢰할 만한 지각을 가능케‘ 한다. 우리의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그런 지각이야말로 우리가 게임을 통해 갈구하고 경험하는 최대의 가치, 혹은 게임에 몰입할 때 얻는 최대의 즐거움 아닐까? C. 티 응우옌은 이렇게도 말한다. "게임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중 하나가 일종의 실존적 위안, 즉 일상 세계의 실존적 복잡성으로부터 도망치는 잠깐의 피난이다."([게임:행위성의 예술], 109면)이러한 휴식은 우리가 분석 마비로 좌절하지 않도록 기력을 북돋는다. 전략이라고 하면 눈살부터 찌푸리는나도 전략 게임의 사고방식은 습득할 수 있다. 반짝, 불이 켜진다. - P123
우리 인생도 선택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래봤자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어차피 평생 갈 수 있는 길이하나뿐이라면 결국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없으니까…. 영웅적인 선택도 바보스러운 선택도 할 수가 없어. 원하지 않는 길을 어쩔 수 없이가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다 자신의 인생에서소외되는 거야...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선택지가 나타났을 때 알게 되는 거야. ‘나는 저모든 길을 다 갈 수 있겠구나.‘ 세계의 이면을 다 보고, 모든 가능성의 경로와 결과를 다 볼 수 있겠구나....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내 게임을 하는사람은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그게 바로게임이야. 그게 진짜 게임 시나리오라고. - 김보영의 단편 [저예산 프로젝트], 29면 - P133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진짜 게임은우리에게 진짜 인생을 알려준다. 현실의 나는 미처다 살아보지 못하는 인생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평범하게 한 가지 길만 걷더라도, 게임에서 나는 나를 확장하고 성장시킨다. 게임은 낯선 길을 마음 편히 시도해볼 특별한 자유를 제공한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유명한 마셜 매클루언은 게임을 현대사회에 긴요한 대중 예술로 꼽았다. "우리는 무미건조한 세상 또는 직업적인 삶에서는 단지 존재의 아주 일부분만 사용할 수 있는데 장난과 놀이 속에서는 총체적인 인간으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5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게임은 진짜 인생을 누리도록 도와준다. 게임 속 경험이나 성취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아니라서 명료하고 매혹적이다. 현실과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마법이 힘을 발한다. 다양한 게임이 삶을 다양하게 채색한다.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게임은 그 자리에 남아 우리를 배웅한다. "마치 내가 그간 어떤 선택을 했든, 어떤 길을 걸었든, 우리가 어떤 다툼을 했든, 모든 일들은 세월에 마모되고 윤색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만이 이 자리에 남아 빛나고 있다고 말하듯이." - P147
<사생아> 이디스 올리비어, 휴머니스트세계문학39
데이비드와 키티는 클러리사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보데넘 아가씨의 별난 고집에 화가 났고, 클러리사를 설득해 같이 드라이브도 가고 도로에서 연습도 하고 싶어 했다. 클러리사의 행동반경이 보데넘 아가씨의 역량에 의해 한정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90
애거사가 움직이는 차를 타면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에 클러리사도 움직이지 않는 차만 타야 하고, 애거사가 차 타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클러리사도 도로에서 주행하는 법을 배우면 안되고, 애거사가 클러리사를 데리고 있길 원하기 때문에 클러리사도 애거사 없이는 어디에도 가서는 안 된다니. - P90
그들은 클러리사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의분과 연민으로 펄펄 끓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연민을 쏟아부어도 정작 클러리사 자신은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큰소리로 열을 내도 클러리사는 그저 웃으며, 자신은 엄마와 꼭 같고, 엄마가 무엇을 느끼는지 정확히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차고 안에서 운전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그들이 이해 못하자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내심 생각했다. - P91
단편 <거울>, <부엉이>, <두드림>, <내가 까다롭나요>, <파리의 신문>, <툰의 클라이스트4>를 읽었다.
[모우어] 천선란, 문학동네, 2024.음.. 별점은 낮지만...여러 작품을 읽어 온만큼 천선란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이기도 할 것이다.인간의 육신이 마지막 가는 길, 염습과정을 담당하는 로봇 로비스와 인간의 우정을 그린 <뼈의 기록>은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고, 미드 [Heroes]를 연상케했던 단편, <서프비트>는 흥미로웠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설에 집에 오면서 딸램이 지하철 도서관에서 픽해왔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선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알수도 없는데 지하철 도서관엔 서가에 그냥 꽂혀 있더라나~~ 설자은 시리즈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가 나왔고 이어서 3권도 나온다길래 읽어봤다.읽고 나니 한꺼번에 이어서 읽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역시 정세랑이군! 했다. 가독성 최고. 사랑스럽고 정의로우며 올곧은 여성 주인공인 설자은의 매력에 빠져 3권 연달아 읽는다면 더 신날텐데.. 3권 나올때까지 기다리진 못할 거 같다. 3권이 완결인지도 모르겠다.탐정콤비하면 바로 누군가가 떠오르듯 새로운 콤비, 설자은과 목인곤의 활약이 눈부시다.거기다 이번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다음 권을 위한 포석으로 느껴지는데... 다음권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