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를 얼마쯤, 나는 너무 약이오르고 내 무능력에 화가 치밀어서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며 주먹으로 마룻바닥을 내리쳤다. 그리고 마침내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여 벌떡 일어서서, 머리를 세게 부딪쳐 기절해 버릴 작정으로 곧장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펄쩍 뛰어올랐다가 어깨가 벽에 쾅 부딪치기 직전의 눈 깜짝할 순간에, 나는 내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앞쪽으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허공으로 돌진하면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무중력의 파도에 실려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처 알아차릴 틈도 없이 나는 벽에 부딪쳤고, 고통을 못 이겨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내몸왼쪽 전체가 충격의통증으로 욱신거렸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20분동안 천장이 떠나가라 웃어 젖히며 춤을 추듯 방안을 빙빙 돌았다.
나는 비밀을 깬 것이었다. 알아낸 것이었다. 직각따윈 생각하지 마,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원호(圓弧)를 생각해, 탄도(彈道)를 생각해. 그것은 처음엔 올라가고 다음엔 움직이는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올라가면서 나아가는 유연하고 끊기지않는 동작으로 나를 에워싼 허공의 거대한 품을 향해 날아오르는 문제였다. - P111
그 시점에서 내 당면 문제는 지속 시간, 즉 공중에 얼마나 오래 떠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초기의 결과는 대략 3초에서부터 15초까지에 걸쳐 변화가 심했고 내가 움직이는 속도도 지독히 느려서 갈 수 있는 거리는 고작 2미터 내지 2미터 50센티미터, 그러니까 내 방 한쪽 벽에서 다른 쪽 벽까지의 거리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그 동작도 활기 있게 사뿐사뿐 걷는 것이 아니라 공중 곡예사처럼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유령의 걸음걸이 같은것이었다. - P112
그렇더라도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을 계속했다. 이제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용기를 잃어 기가 꺾이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가는 중이었고, 어느 것도 내 앞길을 막지는 못할 것이었다. 비록 내가 전과 마찬가지로 15센티 내지 20센티보다 더 높게 떠오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당분간 이동에 정신을 쏟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 일에서 어느 정도 숙달이 되고나면 상승으로 관심을 돌려 그 문제에도 부닥쳐 볼 셈이었다. 그것은 의미가 있는 생각이었다. 설령 내가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 계획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날짜가 촉박해지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가 상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 P112
다음 한 시간 동안 나는 예전의 기록을 두 배로 올려 30 내지25센티미터 높이까지 떠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었을 때는 땅에서부터 족히 70, 80센티미터는 떠올라, 예후디 사부의 육감이 옳았으며 공중 부양술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력이 있었음을 증명했다. 땅에서부터 그런 높이로 떠올라 돌아다닌다는 사실상 바야흐로 날기 직전이라는 것을 느끼는 데서 오는 스릴은 굉장했지만, 60센티미터가 넘는 높이에서는 몸이 비틀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똑바로 선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 높이까지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일이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치 내 몸이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하나로 연속되지 않은 것처럼, 머리와 어깨는 위쪽에서 따로, 무릎과 발목은 아래쪽에서 따로 놀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일어설 때마다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를 취했다. 본능적으로 몸 전체를 땅 위로뻗친 자세가 발바닥만으로 지탱하는 자세보다는 더 안전하고편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자세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겁이 났지만 우리가 연습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나는 머리를 가슴에 묻은 자세로공중에서 천천히, 몸의 어느 한 곳도 땅에 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완전한 원을 그리며 공중제비를 넘을 수 있었다. - P122
그날 밤 사부와 나는 기쁨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에게는 모든 일이, 상승과 이동을 한꺼번에 정복하고 상당한 높이로 올라가고 하는 꿈같은 일들이 다 가능해 보였다. 나는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굉장한 순간, 우리의 장래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절정에 달했던 날로부터 꼭 하루 뒤인 6월 6일, 내 훈련은 갑작스럽게 회복할 수 없이 중단되었다. 예후디 사부가 그처럼 오랫동안 두려워해 왔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 일은 너무도 무자비하고 흉포하게 일어나서 우리의 가슴에 엄청난 파괴와 격변을가져왔고 우리 둘 중 누구도 다시는 전과 같아질 수가 없었다. - P123
우리가 말발굽 소리를 들었던 것은 틀림없이 10시가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처음엔 희미하게 우르릉거리는 소리, 몇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일어나려는 것처럼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 비슷한 땅울림이었다. 그때 나는 연못가에서 두 번 연달아 공중제비를 넘은 뒤사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부는 평소 때의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대신, 갑자기 겁에 질린 몸짓으로 내팔을 움켜쥐었다. 「잘 들어 봐라.」그가 말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되뇌었다. 「저 소리를 잘 들어 봐라. 그놈들이 오고 있어. 그개자식들이 오고 있어.」 나는 귀를 곤두세웠다. 분명히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자 나는 그것이 우리 쪽으로 우르르 달려오고 있는 말발굽 소리와 말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움직이지 마라.」 사부가 말했다. 여기 그대로 있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꼼짝도 하지 마. - P123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나무 뒤에 서서 큐클럭스클랜패거리가 벌이는 소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십여 필의 말에 올라탄 십여 명의 사내들이 마당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껑충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고 소리를 질러 대는 살인마들. 우리에게는 그들을 저지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들이 불타는 집 밖으로 이솝과 수 아주머니를 끌어내어 그들의 목에 로프를 걸고, 길가에 있는 느릅나무 가지에다 따로따로 매달았다. 이솝은 울부짖었고 수 아주머니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채 몇 분도 안 되어 두 사람 모두 숨이 끊겼다. - P125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 눈앞에서 살해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예후디 사부가 손으로 내 입을 가리고 있을 동안 눈물을 삼키려고 애쓰면서 지켜본 것뿐이었다. 살육이 끝나자 두 명의 3K 단원이 마당에 나무 십자가를 박고 거기에다 휘발유를 끼얹은 다음 불을 붙였다. 그 십자가가 집과 함께 불타오르는 동안 3K 단원들은 사방으로 총을 쏘아대며 큰소리로 떠들어대다가 모두 말에 올라 시볼라 쪽으로 사라져 갔다. 그때쯤엔 우르릉거리며 타오르던 목재들은 뜨거운 불덩어리로 작열했고 그 살인자들 중 마지막 사내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쯤에는 이미 지붕이 사방으로 소나기 같은 불똥을 튀기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태양의 폭발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이 세상의 종말을 목격한 듯한 느낌이었다. - P125
그곳에서의 공연은 의상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었지만 어쩐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관객들도 내가 등장하는 - 거기에서는 등장을 하는 일이 연기 못지않게 어려웠다 - 순간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예후디 사부는 남부풍의 선전을 철저히 해두었고, 내 허클베리 핀 의상도 아주 수수해 보인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허를 찌를 수 있었다. 여섯인가 일곱 명의 여자들은 기절했고,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어른들은 놀라고 믿어지지가 않아 입을 쩍 벌렸다. 30분 동안에 걸쳐 나는 공중에서 의기양양하게 걷고, 공중제비를 넘고, 반짝이는 널따란 호수면 위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그들을 뇌쇄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1미터 50센티미터쯤 되는 높이까지 떠올라 그때까지의 기록을 경신한 다음,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인사를 하는 것으로 공연을 마쳤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솥과 냄비를 두드려 댔고, 색종이 조각을 하늘로 던져 올렸다.
그것은 내가 맛본 첫 번째 승리였다. 그 느낌이 너무도 황홀했다. 그때까지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어떤 승리보다도 더 황홀했다. - P164
나는 사부가 그 간이식당에서 보인 행동이 자랑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 어머니의 오빠는 믿을 수 없이 교활한 인간인 데다, 어떤 일에 마음을 정한 이상 자기의 목표에서 눈을 돌리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그가 주장하는 얘기를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쩌면 사부는 그에게 25퍼센트를 주겠다고 약속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것은 모두 물 건너간 일이었다. 내가 원했던 단 한 가지는 그 개자식을 내 삶에서 영원히 몰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나를 벽에다 수도 없이 여러 번 집어 던지곤 해서 내게는 그에 대한 증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 돈을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건 없건, 그는 단 한 푼도 받을 자격이 없었다. - P183
그러나 슬프게도내가 어떻게 느끼건 그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또 사부가 어떻게 느끼느냐도 그것은 모두 슬림에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뒤쫓아오리라는 것, 그의 손이 내 목을 조를 때까지 계속 뒤쫓아오리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 P183
나는 팝콘을 한 봉지 사 들고 자리에 앉아 어둠속에 흩어진 다른 사람들을 잊어버린 채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20분이나 30분쯤 되었을 때, 뒤에서 뭔가 이상하면서도 어쩐지 향긋한 약 냄새가 풍겨 오는 것이 느껴지더니, 그 코를 찌를 듯 강한 냄새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려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기도 전에, 그 자극적인 약품에 적신 헝겊이 내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풀려나려고 버둥거리면서 안간힘을 썼지만 어떤 손이 내 얼굴을 뒤로 밀어 젖혔고, 다시 저항해 볼 힘을 끌어모을 수 있기도 전에 온몸에서 힘이 쭉빠졌다. 내 근육은 기운을 잃었고, 살갗에서는 땀이 흥건히 배어났고, 머리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거기에서부터 어디로 옮겨졌건, 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 P187
운명의 장난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납치는 내게 일어났던 일 중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내게는 커다란 행운, 나를 마침내 궤도에 진입시켜 준 연료가 되었다. 나는 한 달이 넘게 공짜 선전이 되었고 슬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을 때쯤엔 이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 미국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내 탈출 소식이 일대센세이션, 첫 번째 센세이션을 훨씬 능가하는 두 번째 센세이션을 일으킨 덕분에 그 이후로는 어떤 나쁜 일도 있을 수 없었다. - P219
이제 나는 희생자였을 뿐만 아니라 영웅,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굉장한 일을 해낸 꼬마로서 단순한 동정을 넘어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 일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는 지옥에 던져졌었다. 밧줄로 묶이고 재갈에 물린 채 죽은 것으로 치부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달 뒤에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머리에 바람이 들어서 기고만장해지기에 족한 일이었다. 미국이 내 발밑에 있었고, 예후디 사부 같은 사람이 줄을 당기고 있는 이상 내 인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 거의 확실했다. - P220
내가 슬림보다 한수 위였다고는 해도, 그가 아직 체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 사우스다코타의 오두막을 급습했을 때는 여기저기 찍힌 지문과 한 무더기의 더러운 빨랫감 외에는 범인들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겁을 먹고 다시는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빈틈없이 경계를 했어야 옳았지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거기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케이프코드가 너무도 평화로웠다. 또 슬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은 이상 그런 일이 다시 생기더라도 ㅡ내가 살아 나온 것이 얼마나 위기일발이었는지는 금세 잊어버리고 ㅡ 그를 뭉개버릴 자신이 있었다.
예후디 사부는 나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고,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내가 어디를 가건 그가 함께 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납치를 당했던 일에 대해 점점 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그 일을 생각할 때가 있더라도 그것은 주로 내가 도망쳐 나올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슬림이 무릎을 얼마나 심하게 다쳤을까 궁금해하는 정도였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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