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장!
혁명은 실패한 것이다!

분노에 찬 열두 목소리가 고함을 치고 있었고, 그들은 전부 비슷했다. 이젠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창문 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보고 인간을, 그 다음에 인간을 보고 돼지를, 그리고 돼지를 보고 인간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 둘을 서로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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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하우스에서 영국 교외를 바라보며,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만족감에 차서 비로소 자신이 자연 세계의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해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의 가장 장엄하고 잘 알려진 마지막 구절에서 다윈은 식물과 새, 곤충, 벌레가 가득 차 있으며 그 모두가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상호작용 하는, 얼기설기 얽힌 강 둔덕에 대한 명상에 잠긴다. - P13

다윈의 거대한 유산은 서로 뒤얽힌 이러한 웅장함의 대부분을 이제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한 진화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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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동물 농장 - 194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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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의 중앙 집권적 독재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은 일찍이 독일의 급진 사회주의 학자인 로자 룩셈부르크가 경고한 바 있다.
수퇘지 나폴레옹의 혁명은 오히려 동물들을 혁명 이전보다 못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고, 이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이라는 독재자의 몰락을 전제로 쓰여진 우화이므로 결국 해체되고 말 것이라는 오웰의 믿음이 깔려있다.
마지막으로 동물들이 본 모습 ㅡ창문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돼지와 인간의 흉측한 얼굴이 서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이 혁명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라면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읽어도 참 좋은 오웰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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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 fairy Story까지 다 써 있는 초판본 표지네요^^ 구글 검색으로만 보던 옛 이미지에서
새로 나온 책 표지라니까 엄청 반갑네요

은하수 2023-05-27 11:26   좋아요 0 | URL
저도 괜히 이 표지가 초판본이라니까 끌려서 굳이 또 구입을 하게 되더라니까요~~
책 들이는 이유도 가지가지죠? ㅎㅎㅎ
 
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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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읽었지만 이 이야기의 끝은 보지 못한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든다. 

이 책은 츠바이크 사후 그가 남긴 원고 뭉치에서 발견이 되어 출간이 되었다. 츠바이크는 글을 몰아치듯 써서 작품을 출판했지만 이 원고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고치면서 천천히 작품을 써나갔다.  그래서 아내와 동반 자살을 생각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원고를 매만졌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하는 말들은 한 마디도 버릴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다 소중하다. 

   글을 쓰는 동안 경험한 천국과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분노하고 절망한 세상이라는 지옥을 오가며 썼던 이 원고에서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었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 책의 결말은 여기서 끝이라고 해도, 다시 이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해도 분명 비극으로 치닫는 내용일 수 밖에 없다. 




   "1926년, 수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 크렘스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을 클라인-라이플링의 우체국.  이곳의 교체할 수 있는 정부 '비품'은 여성이다. 당국에서는 그냥 '우체국 여직원'이라고 부른다."(16쪽)


   이런 안쓰러운 설명이 붙은 우리의 주인공 우체국 아가씨 크리스티네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꿈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성이다. 공무원이란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정부는 최소한의 생활을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정도를 제공할 뿐이고, 전쟁으로 인하여 청춘의 빛을 잃어버린 그녀는 이미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져 있어 자신에게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미국에서 상류층으로 살아가는 이모로부터 스위스의 최고급 휴양지로 초대한다는 전보가 날아든 것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마치 신데렐라로의 변신 스토리 같은 가슴 두근거리는 이 화려하고 풍요로운 환상 여행은 물론 해피 엔딩일 수 없다. 츠바이크가 바라보는 세상은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까 머뭇거리며 두려워하던 그녀는 곧 그 환상적이고 화려한 세상에 도취한 듯 빠져든다. 그러나 상류층의 부유하고 폐쇄적인 그 사람들은 끝내 그녀를 그들의 세상에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그녀를 초대했던 이모는 그녀의 평판에 흠집이 날까 부랴부랴 그녀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 보내버리고, 열흘 남짓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행은 결국 씁쓸한 결말을 맺는다.

  

  "이것은 이별이 아니라, 죽음이었다."(231) 


   자신의 초라한 짐을 챙겨 호텔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선언한다! 죽음과도 같은 삶일 것이라고...

   이 환상적이고 화려한 여행은 읽는 내내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책장을 넘어가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츠바이크의 절묘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덫을 놓는다. 빠져나오고 싶지가 않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크리스티네가 스위스 여행에서 돌아와 죽음과도 같은 삶은 사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더 빠져들게 만드는 또 다른 국면의 전환을 맞는 빈으로의 주말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네는 자신의 초라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 무작정 떠난 빈에서 언니 가족을 만나러 가고 그곳에서 형부 프란츠의 전우였던 '페르디난트'를 만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귀향 열차를 기다리던 중 체코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체코가 열차 선로를 폭파하는 바람에 그가 탄 기차는 시베리아로 돌아가고 볼셰비키와 차르 지지군의 내전에 휘말려 4 년간이나 포로 생활을 하다 적십자의 노력으로 겨우 돌아올 길이 열린다.  전쟁에서 돌아 오던 중 "귀국 바로 전날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지는 하찮은 사고"(280쪽)로 인하여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절망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페르디난트 앞에 크리스티네가 ㅡ 혹은 크리스티네 앞에 페르디난트가 ㅡ  나타난 것이다.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 이 두 젊은이는 곧 주말마다 만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어디에서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극심한 빈곤 속에 출구 없는 삶 뿐이고, 페르디난트가 다니던 직장이 망하면서 실직을 하는데 페르디난트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  결국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가기 힘들었던 두 사람은 동반 자살을 하기로 계획하는데, 계획을 실행하기 직전, 잠시일 것이지만 희망을 품고 삶을 좀 더 유예할 수 있는 극적인 기회가 찾아오고 그들은 그 기회를 잡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작품 속에서 페르디난트가 절절하게 토해내는 항변들이 진짜 츠바이크가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더 가슴이 아프도록 저려온다.  


   "사소한 부상이야, 그렇지 않아? 세계 대전을 겪고 시베리아에서 4 년간 지내면서 겨우 손가락 두 개 다쳤을 뿐이니. 그런데 죽은 손가락이 살아 있는 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잘 몰라. 건축사가 되고 싶은데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사무실에서 타이핑할 수도 없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도 못하지. 가느다란 힘줄 하나가 썼었을 뿐이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꼭 하고 싶은 일들이 그 실처럼 가느다란 힘줄에 매달려 있다는 게 문제야. 집을 설계할 때 도면에서 1밀리미터만 잘못 그려도, 겨우 1밀리미터이지만, 집 전체가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야."(281쪽)




  프란츠가 "상이군인 연금"을 받을 권리, 그리고 자네는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자,,


   "그렇게 생각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나처럼 집이고 포도밭이고 뭐고 다 날려버리고, 손가락까지 다치고, 전쟁이 6년이라는 세월을 앗아간 사람에게는 국가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친구야, 오스트리아에서 길이란 길은 모두 휘고 꼬여 있어. 나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상이군인 담당 부서를 찾아가서 보여줬지. 자 봐라, 이곳저곳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가 내 손가락이 이 모양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우선, 내가 전쟁 때문에 부상당했다거나 부상이 전쟁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거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전쟁은 1918년에 끝났는데, 1921년에 어떤 특수한 사정 때문에 부상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나? 아무 기록도 없는데. 게다가 한 가지 더 있어. 관료들이 대단한 일을 했잖은가. 프란츠, 아마 자네도 내 말을 들으면 놀랄 거야. 나는 이제 오스트리아 국민이 아닐세. 내 세례 증서를 보면 나는 오스트리아 메란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내 거주지는 이탈리아 메란 행정구로 되어 있어. 오스트리아 국민이 되려면 제때 국적을 선택해야 했던 거야. 그래서 모든 일이 엉망이 되고 말았지."(285쪽)




   페르디난트가 겪고 있는 이 모든 문제들은 츠바이크 자신이 겪은 일들과도 당연히 관련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츠바이크는 작가로서도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치 탄압으로 망명객이 되어 외국을 뗘돌아야 했고, 조국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면서 나치에 재산을 몰수 당하였으며 모국어로 작품을 발표할 수도 없었던 그래서 결국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절망과 분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 ... 그래,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어. 어떤 의사도 6년간의 젊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어. 누가 내 젊음을 보상해 주지? 국가가? 그 고위층 사기꾼들이? 그 고위층 도둑놈들이? 40명이나 되는 장관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대봐. 법무부 장관? 복지부 장관? 산자부 장관? 공정하게, 사리사욕 없이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급 공무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름을 대봐. 그들은 우리를 전쟁에 몰아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 '황제 만세!'를 외쳤어.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들려주고 있지. 진흙탕에서 보니, 세상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288~289쪽)




   그러면서 그는 평범한 행복에 젖어 혁명을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잊어버린 친구 프란츠를 은근히 비난하는 말들을 한다.  너무 선량하고, 의심할 줄 몰라서 이용만 당하고 가난 속에서 절망하다가 "인간이 평생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라는 그것,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유"를 실행하게 만드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 왜 국가는 전쟁에 청춘을 바친 이 젊은이들을 구제하지 못하는가. 정부의 고위직 관료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 이 젊은이들을 극심한 가난 속에 방치하고 왜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지.  왜 프란츠는 시의회 의장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으면서 친구 페르디난트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인지. 왜 크리스티네의 이모는 조카를 그런 잔인한 방법으로 내치고 돕지 않는 것인지. 왜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는 28살, 30살이라는 꽃같은 나이에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 

   이러한 질문들은 이야기를 읽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1920년대 오스트리아의 현실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알 수 없어졌다. 가난한 자의 역사는 반복이 된다는 이 단순한 진실이 주는 중압감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단지, 저는 너무 늦게 돌아왔습니다. 기차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 기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죠.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기술도 배웠고, 지능이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김나지움과 수도원 부속학교에 다닐 때에는 우등생이었어요. ... .... 제게는 1년의 시간이 필요해요. 1년간의 자유 시간. 높이 뛰어오르기 전에 도움닫기가 필요하듯. 아...... 1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예요. 어디가 좋을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이라도 당장 어금니를 깨물고 온몸을 긴장시키고 하루에 열 시간, 아니 열네 시간이라도 배울 수 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더 보내고 나면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치겠지만, 만족감도 생기겠죠. 그러면, 저 자신과 화해하며 말하겠죠. '다 됐다! 끝났다!' (317쪽)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싫습니다. 만족감에 빠진 인간들 말입니다. 그 자들이 저를 자극하는 바람에 이따금 어쩔 수 없이 호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쥐곤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득권을 철석 같이 끌어안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그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르니까요."(317쪽) 




   아... 저 페르디난트, 우리 사회의 수 많은 페르디난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저렇게 절규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할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면... 뭐라도, 아니 원하는 무엇이라도 다 들어줄 수만 있다면, 내게 그런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간절히 염원했는지 모른다.  츠바이크도 이 작품을 쓰면서 이런 심정이었겠지.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면서... 그럼에도 그의 절망과 울분,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결말은 잠시 유예된 채로 작품은 끝났지만,  이 두 젊은이와 츠바이크 부부의 마지막이란 것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유"의 실행이어서 가슴이 아프다! 다른 한편으론 츠바이크 이 사람의 재능에 끊임없이 감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안타까움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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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아사랑해 2023-05-26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할 책이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하수 2023-05-26 13:43   좋아요 2 | URL
네네~~~
꼭 읽어보세요.
책장 넘어가는게 얼마나 아쉬운지.. 왜 이다지 긴 리뷰를 쓰게 된 것인지 와닿으실걸요?
아마 제 개인적인 소견만은 아니란걸 실감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요~~~

얄라알라 2023-05-26 1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이 리뷰, 이달의 당선작에서 다시 보게 되길 바랍니다

정부의 ‘비품‘이라니,
휴양지에서 반강제로 퇴출당하다니,
...손가락 2개의 어둠의 나비효과까지

이 책 읽는 독자의 감정도 결코 쉽지 않겠어요...

은하수 2023-05-26 14:38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비품이라는 글에서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안쓰럽고..아무튼 굉장히 여러 감정이 올라오고 끊임없이 생각할거리를 남겨주더군요. 일독을 권하는 마음이 이리 당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문장들이 굉장하답니다~~

당선작이야 되면 감사하죠! 삼만원 받아서 구입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던걸요^^

다락방 2023-05-26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거 읽고 있어요. 크리스티네가 변신에 도취하여 자신의 원래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을 때부터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하던지요. ㅠㅠ

은하수 2023-05-26 14:42   좋아요 3 | URL
저 1부 끝나고 그래서 며칠 쉬었잖아요.. 초조한 그 심정 너무 이해되거든요 사실 어떤 전개가 기다릴지 대충 감이 오니까 뒤를 보기 겁나서요 ㅠ.ㅠ
잡으면 순식간에 페이지가 달아난다니까요. 특히 페르디난트의 말은 하나하나 어찌나 콕콕 박히는지 .. 읽다 지금이랑 너무 똑닮이어서 소름 돋았자나요

이 책처럼 다른 플친님들 리뷰 궁금한건 없었던거 같아요.
얼른 읽으시고 리뷰 읽게 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크리스티네의 입이 움직였지만,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말했다. 

"저를 위로할 생각은 마세요.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에요. 남의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지저분한 접시를 남기면 부끄럽듯이, 숨길 수 없는 것이라면 부끄러운 것이죠.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겁니다. 취업자건 실업자건, 정직한 사람이건 인색한 사람이건,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냄새가 납니다. 그래요, 냄새가 나요. 창이 없는 방에서 냄새가 나듯이, 자주 갈아입지 않은옷에서 냄새가 나듯이 냄새가 나요.  - P312

썩은 물의 악취처럼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게 되죠. 씻어낼 수도 없어요 새 모자를 써도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구토 후에 입을 헹궈내도 냄새가 나는 것처럼 가난의 냄새는 몸에 배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맡을 수 있죠. 아가씨의 언니는 그 냄새를 금세 맡은 거예요. 여자들이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깔보는 시선을 저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도 어쩔 줄 모르지만, 본인이 가장 당황스럽죠. 벗어날 수도 없고 피해 갈 수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술이나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 남자가 와인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 말을 계속했다. - P313

"여기 이 나라 사회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가난한사람들은 왜 점점 더 술에 의존하는 걸까요? 심각한 문제죠. 그런데 이런 문제를 두고 귀족 부인들이나 자선단체 후원자들은 차를 마시면서 고민하죠. 잠깐 고민하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도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저처럼 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기가 부끄럽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저 역시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그냥 말씀하세요. 점잖게 말씀하실 필요도 없고 저를 동정하지도 마세요!" - P313

남자는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몸을 점점 깊숙이 웅크렸다.

"미안합니다." 
마침내 남자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전했다. 
"제가 어처구니없이 아가씨를 비난했군요. 시도 때도 없이 미련하게 화를 내고, 사람들을 공격적으로 대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무나 걸리기만하면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듯이 퍼붓게 되는군요. 그리고 저 혼자만 전쟁하러 갔던 것처럼 착각하죠. 수백만이나 되는 군인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인데. 저는 매일 아침 일터로 가면서, 집을 나서는 사람들을 관찰하곤 합니다. 잠에서 덜 깨어 얼굴은 지치고 창백하죠. 원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일터로 마지못해 끌려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그리고 저녁때면 다시 전차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표정이나 발걸음이 납덩이처럼 무겁죠. 아무 이유 없이, 혹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모두 지쳐 있어요.
그 끔찍하고 무의미한 삶을 의식하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죠. 저처럼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P315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밖에는 해본 게 없어요. 이제 더는 견딜 수 없어요. 내 인생이 밑바닥으로, 주변으로 밀려난인생이라는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도록 일하는 사이에 찢어진 구두 아래서 시간은 쉴새 없이 달아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제게 일을 시키는 건축사들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만큼 아는 것도 많아요. 그들과 똑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똑같은 피가 제 혈관을 흐르고 있죠. 단지, 저는 너무 늦게 돌아왔습니다. 기차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 기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죠.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기술도 배웠고, 지능이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김나지움과 수도원 부속학교에 다닐 때에는 우등생이었어요. 음악 실력도 괜찮았고, 오베르뉴에서 온 신부님에게서 프랑스어도 배웠죠. 피아노가 없으니 연습할 수도 없고, 프랑스어로 대화할 사람이 주변에 없으니 거의 다 잊었죠. - P316

"말 좀 해봐! 어떻게 할 거야? 이제 뭘 하면서 살 지야?"
"뭘 할 거냐고?" 남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간신히 웃음을 보였다.
"글쎄,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수입이 없으니 은행 계좌에 의지해야지 뭐. 그런데 계좌에 돈이 한 푼도 없으니 6주 후에나 들어올 실업급여에 기대야겠지. 우리 복 받은 도나우 공화국의 30만 실업자들처럼 복지 기관에 가서 그 영광스러운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만약 그나마도 못 받으면 그냥 굶어 죽어야지 뭐."
남자가 자신의 절망을 냉소적으로 드러내자 여자는화가 났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그만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당신 정도면..……… 일자리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남자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지팡이를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아니야! 다른 일자리는 찾지 않을 거야! 지쳤어!  - P368

‘일자리‘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해. 지난 11년 동안 용케도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는데 그때마다 간신히 연명만 했을 뿐, 자리를 잡지는 못했어. 일자리는 항상 있었지만 실제로는 갈 곳이 아무 데도 없었지.
나는 4년 동안이나 ‘전쟁‘이라는 살인 공장에서 일했어.
그 후에는 이런저런 공장과 회사를 전전했지. 나는 항상다른 사람들을 위해 뼈빠지게 일했어. 돈 많은 사업가, 자본가, 소유주 들의 재산을 늘려주는 데 내 인생을 허비했어. 그렇게 죽도록 일하고 나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어. ‘자, 이제 그만 나가! 너는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이제 다른 데로 가봐!‘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 이제 정말 더는못 하겠어. 지쳤어, 더는 안 할 거야!" - P369

크리스티네가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남자가 여자의말을 가로막았다.
"크리스티네, 또다시 직업소개소에 가서 구걸하는 거지처럼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짓은 못 하겠어. 그러느니 차라리 죽고 싶어. 그동안 나는 일자리를 찾느라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거절이 예정된 전화를 걸고,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내고, 아침이면 청소부가쓰레기로 가져가는 이력서와 구직 신청서를 수도 없이썼어. 이제 더는 못 하겠어.
- P369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가 너무도 불쌍하고가려했다. 하지만 자신이 느낀 연민을 남자가 눈치채게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미래가 두렵지 않아. 신세 한탄이나 하려고 너를 찾아온 게 아니야. 동정을 바라지도 않아. 그런 것은 도움이 될만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작별 인사 하러 왔어. 우리가 계속 만난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같아. 너에게 의지할 수는 없어. 그래도 내게 아직 자존심은 살아 있으니까. 깨끗하게 헤어져서 서로 부담주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 말을 하러 온 거야.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어."
"페르디난트!" 여자가 남자의 팔을 힘껏 움켜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남자에게 매달리며 소리쳤다.
"페르디난트, 페르디난트, 페르디난트!" 여자는 속수무책으로 밀려오는 두려움 속에서 남자의 이름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 P371

남자가 뒷주머니를 더듬어 군용 연발권총을 꺼냈다.
11월 오후의 햇빛이 총신에 반사되었다. 여자는 그 무기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당신 관자놀이에・・・・・…." 남자가 말했다. "무서워할 것없어. 내 손은 떨리지 않을 거야. 그러고 나서 나는 심장을 겨눌 거야. 이것은 대구경 연발권총이야. 아주 확실한 무기야. 마을 사람들이 두 발의 총성을 듣기도 전에모든 것이 끝날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여자가 아무 말 없이 냉정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침착하게 권총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둘이 앉아 있는 벤치 앞에 높고 거대한 수난의 그리스도 십자가상이 서 있었다. - P375

"여기서는 싫어." 여자가 다급히 중얼거렸다. "여기는싫어. 그리고 지금 그러기도 싫어. 왜냐하면………."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면서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전에 다시 한번 같이 있고 싶어. 정말로 같이…………. 아무 두려움 없이, 밤새도록 당신과 나눌 이야기가 많을거야. 다시는 하지 못할 마지막 이야기들. 그런 다음에하자. 당신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어. 아침이 되면사람들은 우리 둘을 발견하게 되겠지."
"그래, 좋아." 남자가 대답했다. "당신 말이 맞아. 인생을 마감하기 전에 생애 최고의 시간을 함께 가져보자. 미안해. 내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미풍이 두 사람을 간질이듯 스쳐 지나갔다. 햇빛이 감미롭게 피부에 와닿았다. 둘이 함께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신기하게도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행복하기만 했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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