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모임 기다리며 잠깐 읽으려고 펼쳤다가 본격적으로 몰입해서 읽어버렸다.
<징구>와 <로마열>...
단편으로서의 흡인력 최고~~~!!!
이제 표제작인 <버너자매>만 남아서 ... 천천히 읽어야겠다. 이건 중편 정도의 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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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5-13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다른 출판사로 <징구> 읽었었는데...<버너 자매> 이 책에도 나오는군요?
<징구> 재밌죠?^^
요즘 이디스 워튼 작가에 대한 리뷰가 쏙쏙 올라와서...저도 읽고 싶네요^^

은하수 2023-05-13 08:38   좋아요 1 | URL
전 이디스 워튼 글이 진짜 좋더라구요
제가 정말 리뷰쓰기 진짜 싫어하는데 블로그 열심히 하던 시절에
<순수의시대> 리뷰를 줄줄이 써놨더라구요!별도 다섯개 줬구요
그 이후로 계속 못읽다 이 책인데... 징구 진짜 재밌었어요^^
 

애정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리커버 특별판이라니...
폴 오스터 책 세트 4권이 집에 다 있고(그러고보니 다 열책에서 출간된 책들이네! 표지는 좀 별로..)
<공중곡예사> 빼곤 다 읽은 책인데 사고 싶다!
리뷰 당첨금 받은거로 사고 싶다!
사서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진다.
특히, <뉴욕 3부작>은 평론들과 달리 내겐 너무 별로였기 때문에 언젠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맘이 있었다. 대체 왜 별로였던건지...
언제나 문제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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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5-12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로인 책들이 일으키는 마음은 신기하네요..이제 별로 읽고 싶지 않다…이기도 하고 아니 남들은 다 좋다는데 왜 나만 별로야? 하고 다시 읽기도 하고 ㅋㅋㅋ저도 둘다 느껴봤네요. 폴오스터는 좋다니까 막 몇 권 집에 어느새 모여 있긴 하던데 한 권도 안 읽은 게 새삼 신기합니다…신기함 남발해서 송구합니다…

은하수 2023-05-12 16:25   좋아요 1 | URL
제 마음을 딱 집어 표현하셨네요^^
근데 그래도 폴 오스터 꼭 읽어보셨으면 해요. 그것이 언젠가는일지라도요.
신기함 남발? 덕분에 웃었습니다~~

잠자냥 2023-05-12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공중곡예사>가 가장 좋던데, 그걸
안 읽으셨다니!

유수 2023-05-12 13:35   좋아요 1 | URL
저도 최애가 공중곡예사입니다!

은하수 2023-05-12 16:28   좋아요 1 | URL
정말요~~~???
전 달의 궁전이요. 초반엔 지루하다 중반부터 몰아치듯 전개되는 이야기에 푹 빠졌더랬죠~~
한동안 폴 오스터 책을 몰아서 계속 읽다보니 자꾸 밀리더라구요
책장에 꽂혀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데 이 참에 세트 구입해서 첫 책으로 읽어야겠단 생각이 부르르 드네요~~
 

이 책 생각보다 점점 재밌어진다.
반납전에 얼른 읽어야지.

지금 그는 분별력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망막이 죽은 아내를 고이 간직한 나머지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녀를 동일시하는 것일까? 위그가 아내의 얼굴을 찾아다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 여인은 아내와 너무나도 똑닮은 쌍둥이처럼 보였다. 이 여인의 출현으로 혼란스러워졌다!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포에 가까운기적이었다.
모든 게, 걸음걸이, 몸매, 신체리듬, 표정, 내면의 시선, 이 모든 것이 선이나 색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과 영혼의 움직임까지 그에게 다시 나타나 살아 있는 것이다!
최면에 걸린 듯, 위그는 이제 영문도 모르고 생각도 하지 않고 안개 낀 미로 같은 브뤼주의 길들 사이로 그녀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길이 얽혀 있는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 그녀 뒤에 조금 떨어져 걷던 그는 그녀를 더는 볼 수 없었다. 어느 골목길로 돌아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이 사라진 것이다. - P31

그는 멈춰서서 눈물이 고인 채로 먼 곳을 응시하고 허공을 훑어보았다….
아! 죽은 아내와 어찌나 닮았던지! - P31

III
위그는 그 우연한 만남 때문에 큰 혼란에 빠졌다. 이제 아내를 떠올릴 때면 그날 본 미지의 여인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녀는 생생하고 뚜렷한 기억이었다. 그에게 그 여인은 죽은 아내보다 더 아내 같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가 묵묵히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유품으로 간직해둔 아내의 머리카락에 키스하러 가거나 몇몇 초상화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도 이제는 죽은 아내의 이미지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닮은 살아 있는 그 여인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두 여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치되었다. 마치 운명이 그를 동정하여 그의 기억에 지표를 제시하고 망각을 거스르는 공범이 되어 시간이 흘러 이미 누렇게 변질되어 희미해진 판화를 새로운 복제본으로 대체하는 것 같았다. - P33

그는 경솔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보고, 오페라글라스로 그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의 출현에 놀랐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물론 그는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았다. 가족 그 누구와도교류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하지만 저마다 적어도 안면이 있고, 그가 누구인지도, 그리고 그의 숭고한 슬픔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이 브뤼주라는 도시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알고, 새로운 얼굴에 대해정보를 캐고, 이웃들에게 그 정보를 알려주거나 물어보기 때문이다. - P41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일종의 전설이 거의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절망에 빠진 홀아비에 관해 이야기할때 항상 미소 짓던 사악한 사람들의 승리였다.
위그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무엇인지 모를 기이한 기운에 이끌려, 그리고 그 기운이 하나의 집단적인 생각으로 일치된 바로 그때, 자기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을, 고귀함이 깨져버렸다는 느낌을, 아내에 대한 숭배를 상징하는 꽃병에 처음으로 균열이 가면서 지금까지 잘 유지되었던 자신의 고통이라는 물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은느낌을 받았다. - P42

막이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위그는 분을 바르고 목각인형처럼 짙은 화장을 한가수들 중에서도, 합창대에서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공연에서 그 외의 것에는 무관심한 그는 수녀들이 나오는 장면이 끝나면 떠나야겠다고 확실히 결심했다. 장면의 배경은 묘지였는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되살아나게 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을 되살리는 레치타티보가 흘러나오는 찰나, 죽음에서 깨어난 수녀원의 수녀들 분장을 한 발레 무용수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지나가고,
헬레나가 무덤 위에서 살아 움직이며 수의와 수녀복을 벗어 던지고 부활하자, 위그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후 비틀거리는 눈앞에서 빛이 너울거리는 연회장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그녀였다! 그녀는 무용수였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일 분도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돌무덤에서 내려온 죽은 아내, 지금 저편에서 웃음을 띠고 팔을 뻗으며 다가오고 있는 바로 ‘그의‘ 죽은 아내였다.  - P45

너무나 닮아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녀는 어스레한 석양을 두드러지게 하는 흑갈색 빛 눈, 금발 특유의 명료한 삭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 P45

IV
위그는 재빨리 여자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름은 알 수있었다. 제인 스코트. 그녀의 이름이 포스터에 큰 글씨로쓰여 있었다. 그녀는 릴에 거주하면서 자신이 속한 극단과 함께 브뤼주에 일주일에 두 번씩 공연을 하러 왔다.
여자 무용수들이 정숙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은 별로없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죽은 아내와 닮은 모습이 주는 가슴 아픈 매력에 이끌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기분 좋은 그녀는 놀란 기색 없이 마치 만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위그의 영혼까지 뒤흔들었다. 목소리 역시 그랬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닮아서 아내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듯했고, 같은 색깔로 똑같이 세공된 듯했다. ‘유사성‘의 악마가 그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면 두 얼굴 사이에 배합의 비밀이 숨겨져 있거나 그런 눈이나 그런 머리카락에 상응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인가?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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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날이 저물고 있었다. 고요한 대저택의 복도에는 어둠이드리웠고, 크레이프 천으로 된 가림막 커튼이 내려졌다.
위그 비안은 늦은 오후가 되면 매일 그랬듯 외출할 채비를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위그는 2층에 있는 널따란 방에서 온종일을 보냈다. 방 창문으로는 로제르 강둑이 보였고, 강기슭을 따라 지어진 그의 저택이 물에 비치고 있었다. - P11

그에게 아내와의 이별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호화롭게 여가와 여행을 즐기며,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새로운 지역에서 사랑을 맛보았었다. 전형적인 부부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한 즐거움뿐만 아니라 순수한 열정, 지속되는 열기, 계속되는 성관계, 둑길이 서로 평행하게 위치하지만 물 위에서는 두 그림자가 뒤섞이는 것처럼 서로 먼 듯하면서도 결합하고 있는 영혼의 일치 같은 것 말이다.
이 행복했던 십년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이 그렇게나 빠르게 흘러버렸다! - P13

그렇게 서른을 갓 넘긴 아내는 죽어버렸다. 몸져누운지 몇 주도 안 되어 이내 쓰러져버린 날을 마지막으로 그는 그녀를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위그는 양초가 비추는 것처럼 생기 없고 창백한 그녀의 꽃처럼 아름다운얼굴빛, 크고 검은 눈동자를 지닌 진주 같은 눈, 그리고 눈동자와 대조를 이루는 호박색 머리카락, 길고 구불구불하게 늘어져 등을 모두 덮어버리는 그 머리카락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 P13


위그는 이제 겨우 마흔 살이었지만, 불확실한 걸음걸이와 약간은 구부정한 자세로 둑길을 따라 같은 여정을 매일 저녁 되풀이했다. 혼자가 된 삶은 그에게 일찍 찾아온가을이었다. 관자놀이는 텅 비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잿빛가루로 가득했다. 생기 없는 그의 눈은 멀리 삶의 아득한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브뤼주 역시 어찌나 슬픈 도시인지! 위그는 그런 도시를 사랑했다! 그는 바로 그 슬픔 때문에 이 도시를 선택했고, 그런 큰일을 겪은 후 이곳에 와서 살게 된것이다. 한때 행복했던 시절, 아내와 함께 원하는 대로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아가고, 파리로, 외국으로, 바닷가로여행을 다니던 때에는 그녀와 이곳에 오더라도 도시의 엄청난 우울함이 그들의 기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혼자가 되자 위그는 브뤼주를 회상했고 이제는 그 도시에 정착해야 한다는 직감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 P22

그는 진지하게 오랫동안 자살을 생각했었다. 아! 그 여인을 그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를향해 있다! 그가 항상 쫓아다니던 그녀의 목소리는 지평선끝에, 너무나도 멀리 잠겨 있다! 그 여인이 세상을 떠난 뒤그가 그녀를 전적으로 따르게 하고 온 세상으로부터 그를분리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해의 열매처럼 입안에 영원히 재의 맛만을 남기는 사랑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 P26

그런데 갑자기, 그가 정신을 집중하여 기억 속에서 이미 반쯤 지워진 특성들을 재구성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다가, 행인들을 거의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런 일은너무나도 드물었던 위그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젊은 여인에게 돌연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처음에 그는 거리 반대편 끝에서 다가오는 그녀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본 위그는 굳은 것처럼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 P28

반대 방향에서 오던 사람은 그를 스쳐 갔다. 그것은 충격이고, 예기치 않은 출현이었다. 위그는 잠시 어지러운 듯보였다. 그는 환영을 멀리하려고 눈에 손을 갖다 댔다. 위그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천천히 걸어가며 멀어지는 미지의 여인을 향해 몸을 돌려 가던 방향을 바꾸고 그가 내려가던 둑길을 벗어나 느닷없이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여자를 따라잡기 위해 그는 빠르게 걸어가 인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가까이 다가갔고, 그녀가 넋이나간 듯 보이지 않았다면 무례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집요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젊은 여자는 길을 걸어가며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냉담했다. 위그는 점점 더 이상한기분이 들고 얼이 빠진 것 같았다. 그가 이 길에서 저 길로돌아다니며 그녀를 쫓아간 지 벌써 몇 분이 흘렀다. 때때로 그녀에 대해 정확히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에게다가갔다가 너무 가까이 간 것 같으면 놀란 기색으로 멀리 물러났다. 위그는 어떤 얼굴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간우물을 발견한 듯 매혹당한 듯하면서도 겁에 질린 듯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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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 울프가 지닌 천재성의 일면은바로 그런 알지 못함, 즉 소극적 능력이었다.
언젠가 하와이의 어느 식물학자 이야기를들었다. 그는 새로운 종을 찾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그가 밝힌 요령은 밀림에서 길을 잃는 것, 자신이 아는 지식과 방법을 넘어서는 것, 경험이 지식을 압도하도록 허락하는 것, 계획이 아니라 현실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울프는 정신과 다리가 둘 다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회하는 산책을 유용하게 활용했을 뿐 아니라 글에서도 칭송했다. 그녀가 1930년에 쓴 근사한 에세이[ 거리 떠돌기: 런던 모험(StreetHaunting: A London Adventure)」은 초기의 여느 에세이들처럼 어조는 가볍고 경쾌하지만
사실은 깊은 어둠을 여행하는 글이다.
(172/305)

그 글에 묘사된 산책은 실제 일화를 픽션화한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지어낸 것일 수도있다. 어느 겨울날 해거름녘에 그녀가 연필을 사기 위해서 런던 거리로 나선다는 설정인데, 사실 그 설정은 어둠을, 방랑을, 창조성을, 정체성의 소멸을, 육체가 일상적인 경로를 거니는 동안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대단한 모험을 경험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않는다. 울프는 이렇게 썼다. "저녁시간 또한 우리에게 어둠과 램프 불빛이 제공하는무책임함을 선사한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자신이 아니다. 날이 좋은 저녁 네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집을 나설 때, 우리는 친구들이아는 우리의 자아를 벗어둔 채 익명의 보행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화국 군대의 일부가 된다.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을 맛본 뒤라서, 그들과의 사교는 참으로 기껍다." 울프
(173/305)

울프가 여기에서 묘사한 사회는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해방시키는 사회, 낯선 사람들의 사회, 거리들의 공화국, 대도시가 발명한 익명성과 자유의 경험이다. (174/305)

성찰은 대개 고독한 실내활동으로 묘사되곤 한다. 독방에 든 수도사, 책상에 앉은 작가. 
울프는 여기에 반대하면서 "집에서는 우리가 옛 경험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체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물체들을 묘사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문이 닫히면, 그런 것들은 사라진다. 우리 영혼이 자신을 담아두기 위해서, 남들과는 다른 형태를 스스로 빚어내기 위해서 분비한 껍데기와도 같은 외피가 갈라지며, 주름지고 거친 그 껍데기 중심에 진주알과도 같은 지각만이, 하나의 거대한 눈만이 남는다. 겨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174/305)

거리를 걷는 것은 사회에 관여하는 행위일 수 있으며, 봉기나 시위나 혁명에서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걸을 때는 정치적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또한 걷기는 몽상과 주관성과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 걷기는 바깥세상의 자극과 방해가 내면에서 흐르는 이미지나 욕망(그리고 두려움)과 함께 연주하는 이중주이다. 생각은 때로 야외활동, 육체적인 활동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훼방받지 않는 집중이 아니라 가벼운 주의산만이 상상력을 추동하곤 한다. 그럴 때 생각은 우회로로 간다. 곧 (175/305)

곧 바로는 가닿을 수 없는 장소를 향하여 슬렁슬렁 에둘러 간다. 울프가 「거리 떠돌기」에서 묘사한 상상의 산책은 오락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울프는 실제로 그런 산책의 와중에 『등대로』를 구상했으며, 책상에 앉은 채로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창작을 북돋웠다. 창조작업이란 무릇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법이다.
배회할 공간이 필요하고, 일정과 체계는 거부된다. 그 방식은 복제 가능한 공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176/305)

몇몇 구체적인 사회 변화를 요구했다는점에서, 울프는 혁명가였다. (그녀에게도 물론 자신이 속한 계급, 장소, 시대에서 비롯한 결함과 맹점이 있었고, 어떤 측면에서 그녀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바라볼 줄 알았음에도 전부 다 넘어서진 못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후세대가 어쩌면 비난할 수도,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맹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꿈꾼 해방은 또한 내면적이고 감정적이고 지적인 해방이었다. (187/305)

 내 친구 칩 워드(ChipWard)는 "계량 가능한 것의 폭압"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측정될 수 없는 것에 거의 언제나 우선한다는 뜻이다. 사익이 공익에, 속도와 효율이 즐거움과품질에, 공리주의가 미스터리와 의미에 우선한다. 사실 우리의 생존에는, 또한 우리의 생존 이상의 차원에는, 또한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모종의 목적과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문명이 간직할 필요가 있는 다른 생명들에는 후자가 훨씬 더 유용한데도 말이다. (188/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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