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오후, 잠든 이를 지켜보다 부채를 부쳐준 적이 있었다. 잠에 온전히 사로잡힌 얼굴엔 천진한 열락이랄까, 만족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순간에 필요한 건 선풍기나 에어컨의 인위적인 바람과 냉기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문명의 이기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성에 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 P137
집에는 마침 길거리에서 홍보용으로 나눠 준 플라스틱 부채가 있었다. 한참을 인간 발전기가 되어 수제 바람을 만들었다. 미세한 세기와 방향 조절이 가능한 바람을 끼얹는 동안 문득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생각났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낭떠러지 가장자리에서 지켜보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했지. 누군가의 잠을 지켜주는 이는 어떨까. 힘껏 자고 일어난 이가 자기삶으로 돌아가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도록 도울 수 있다면. 잠 파수꾼. - P138
홀든 콜필드는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거지" 하고 호밀밭의 파수꾼 역할을 설명한다. 잠 파수꾼이 하는 일도 비슷하다. 누가 중간에 깰 것 같으면 얼른 붙잡아서 다시 잠의 축복 속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다. 행여 깰까봐 까치발로 다니며 가만가만 보살피는 일에는 뭔가 탈속적인 아우라가 있다. 결국은 그 다정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내가 구원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 P139
프랑스 시인 생 폴루는 낮잠을 잘 때 방문에 이런 표지를 걸어두었다고 한다. ‘시상(詩想) 작업 중.‘ 잠에 바치는 최상급 찬사였다. 잠 파수꾼을 할 때 나는 방문에 이런 팻말을 걸어두고 싶다. ‘인류애 발산 중.‘ - P139
잠 파수꾼은 자는 동안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안다. 예를 들면, 편두통과 불안, 욕망, ‘맙소사, 이게 인생의 전부라고?‘ 싶은 허망한 마음 같은것들. 그 덕분에 한 시절을 기대어 잘 살았다. 나도당신도, 이 행성도. 그리고 앞으로도. - P141
익숙한 듯도 하고 낯설기도 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손열음 님의 연주로 들을 수 있어 좋다. 아침에 듣는 맑고 깨끗한 피아노 소리가 청명한 봄날 아침과 너무 잘 어울린다. 소리들은 나의 귀로 들어와 머릿 속을 휘젓고 가슴으로 내려앉아 내 감정을 파도치게 한다. 평소 좋아하는 한 곡 계속 듣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내 취향에 잘 어울린다. 콘서트장이었다면 벌떡 일어나서 열렬한 박수를 보냈을테지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그런 기분은 가슴 속에 묻고 그냥 가만히 앉아 듣고 있다. 저 길 건너 초등학교 병아리들 태우고 오는 노란 스쿨버스 멍하니 바라보며, 이제는 모두 교실로 들어가버린 텅 빈 운동장 바라보며, 바람에 햇살에 흔들리는 물 댄 논에 물살 바라보며 그저 듣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 5월이잖은가! 어딜 바라보아도 푸르른 녹음이다. 기분좋은 초록이다. 언제 어디로 들어왔는지 파리 한 마리만이 나의 기분을 거슬리게 한다. 잡아 말아...! 학교 앞 정거장에 초록 버스 지나간다. 모차르트와 초록만 생각하자!^^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는 아침에 맨 먼저해야 할 일이 까라나르를 방목장에서 집으로몰아 오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 그 낙타가상당히 필요할 것이었다. 죽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지만 이승에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춰서 명예롭게 한 사람을 묻는다는 것 또한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례를 치르려면 언제나 이런저런 물건들이 부족하기 마련인 데다 수의에서부터 밤샘을 할 때 쓸 땔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급하게 마련되어야 했으므로.(58/1054)
예지게이가 하늘에서 무엇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그것은 그에게 전쟁터에서의 나날들, 발밑에서 지축을 흔드는 강력한 폭발의 먼 충격파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그는 오른편 앞쪽으로, 스텝 저 멀리 사로제끄 인공위성 기지가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가, 뒤에다 점점 더 커지는 분수 같은 꼬리를 달고, 말 그대로 불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본 것이었다. 그 광경에 그는 넋을 잃었다. 그것은 우주로 떠오르는 거대한 로켓이었다. 그는 전엔 한 번도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59/1054)
사로제끄에서 사는 사람들이면 다 그렇듯이,그는 거기서 약 4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우주선 발사 기지 사리-오제끼-I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또그레끄-땀 간이역으로부터 그리로 통하는 지선 철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그쪽으로 스텝 한가운데에 커다란 상점들까지 있는 완전한 도시가 하나 건설되었다는 것이었다. (59/1054)
그러나 우주선 발사 기지와 그 주변은 바로 근처에서사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는 무슨 일에 대해서건 간접적으로 아는 정도로 만족해 왔었다. 그랬으므로, 그가 세차고 응집된 불꽃 속에서 그 무시무시하고 놀라운 빛으로 주위의 모든 것들을밝히며 별이 반짝이는 어두운 하늘 속으로 떠오르는 우주 로켓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60/1054)
예지게이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 불꽃 한가운데 정말로 사람이 앉아 있을까? 하나? 아니, 어쩌면 둘? 그런데 어째서 그는 우주선 기지 근방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는데도 전에는 발사 순간을 보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게다가 이제는 우주 공간으로 로켓들이 너무 자주 발사되기 때문에 발사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어쩌면 다른 경우에는 낮 동안에 발사를 했었을까? 햇빛속에서는 그 정도 먼 거리에서라면 로켓이 떠오르는 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번 것은 밤중에 떠올랐을까? 아마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었을 테지. 아니 어쩌면 저 로켓은 암흑 속에서 떠오르지만 곧장햇빛 속으로 나가지 않을까? (61/1054)
예지게이가 그 깊은 밤 눈길을 여전히 우주로켓에 고정시킨 채 일터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며 했던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마침내 불을 뿜는 배가 점점 더 작아져서 조그맣고 흐릿한 점으로 바뀌어 하늘의 검은 심연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지켜보았다. 예지게이는 머리를 흔들고 나서 이상하고 상반된 감정을 느끼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로켓을 직접 본 것이 기뻤지만 그래도 그것은 경이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그의 시야 밖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64/1054)
그날 밤 로켓이 우주 공간으로 날아오르는것을 목격한 증인인 부란니 예지게이는 그 우 (64/1054)
주선과 거기에 탄 비행사가 발사 전 의식도, 신문 기자들도, 특별 보고도 없이 특별한 용무로 긴급히 발사되었으며 그 발사가 미소 우주 계획의 일환으로 이미 1년 반 동안이나 〈트램펄린〉이라고 명명된 특별 궤도에 떠 있던〈패리티〉 우주 정거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예외적인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도 알지 못했고 또 사실상 알 수도 없었다. (65/1054)
예지게이는 이 사건이 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ㅡ단지 그와 나머지 인류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ㅡ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또 사리-오제끼에서 우주선이 발사된 지 얼마 뒤에 지구의 다른 편인 네바다의 한 우주선 기지로부터 똑같은 임무를 띤, 즉 접근하는 방향만 서로 다를 뿐 똑같은 트램펄린 궤도의 똑같은 패리티 정거장으로 가기 위해 미국의 우주선이 솟아오르리라는 것도 알지못했다. (65/1054)
그 두 우주선은 〈데미우르고스〉 계획을 주관하는 미•소 공동 통제 센터의 해상 기지인 과학 탐사 항공모함 컨벤션호로부터 온 긴급명령에 따라 발사되었다. 항공모함 컨벤션호는 알류샨 열도 남쪽, 블라지보스또끄와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정확히 등거리인 태평양상의 고정위치에 정박해 있었다. 공동 통제 센터 〈옵뜨세누쁘르〉는 두 우주선이 트램펄린 궤도로 진입하는 과정을 주의 깊게 뒤쫓는 중이었다. (66/1054)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막 패리티 복합 위성과의 도킹을 위한 방향 조정이 시작될 참이었다. 그 작업은 두 우주선의 도킹이 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부터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복잡했다. (66/1054)
패리티는 지금까지 열두 시간 이상 컨벤션호의 공동 통제 센터에서 보낸 신호에 답신을 보내오지 않았고 그곳에 접근 중인 두 우주선에서 보낸 신호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패리티 우주 정거장의 승무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67/1054)
와...쪽수가 666이 책을 사놨다는게 믿기지 않네심지어 <화재의 색>도 같이 꽂혀 있었어.언제 다 읽지? ㅠ.ㅠ
어스시(EARTHSEA)의 마법사 새매 게드는 자신이 만들어 낸 죽음의 그림자를 물리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마침내 그림자와 하나가 된 새매 게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지우고 ˝한 인간˝이 되었다 .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될지 아닐지는 다음편에서 볼 수 있겠지. 지금은 새매가 명성을 얻기 전의 이야기일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