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읽어나가는 동안 올리브가 점점 더 좋아진다. 어쩜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건지...!
문장들이 가슴에 와서 콱콱 박힌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너무 잘돼서 문제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소제목은 <시인>이어서 미국의 계관시인이 된 앤드리아 르리외가 중심이긴한데 난 올리브의 이야기를 기억에 남기고 싶다. 이런건 남겨야 해!



그녀가 말했다. 
"음, 덕분에 같이 아침을 먹을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여자가 깜짝 놀라며 올리브를 쳐다보았다.
  "어머….…" 그녀가 말했다.
  "어머, 키터리지 선생님, 가지 마세요. 커피 좀더 드세요. 아, 커피가 없네요. 커피 드실래요?"
"이제 커피는 안 마셔."올리브가 말했다. 
"몸에 잘 안 받는 것같아서. 하지만 너는 마시고 싶으면 더 마시렴. 네가 마시는 등안 같이 있어줄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종업원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금방 나타나 앤드리아에게 아주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따라드릴게요."
그 여자가 웃으면서 - 웃으면서! - 앤드리아게 말했다. 그리고 커피를 따랐다.
 "나이가 들면" 종업원 여가 가고 나서 올리브가 앤드리아에게 말했다.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유를 주지.‘
- P324

앤드리아가 궁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게 어떻게 자유를 주는지 말씀해주세요."
"음." 올리브는 약간 당황했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알 수없었다.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말이야. 거기에 뭔가 자유를 주는 측면이 있지."
"잘 모르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 순간 올리브의 마음을 관통한 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너는 솔직하구나. - P325

올리브가 말했다.
 "내가 그걸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보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건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야.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돼.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거지" - 올리브는 아까 커피를 가져온 여자가 있는 쪽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가 더이상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걸 엉덩이가 큰 종업원에게 투명인간이 되는 거지. 그런데 그게 자유를 줘." 
그녀는 앤드리아의 얼굴을 계속 살폈는데, 뭔가와 싸우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 P325

찬란한 가을이었다. 잎은 나무에 매달려 그 색깔이 연중 어느때보다 선명했다. 사람들은 서로 그런 말을 주고받았고, 사실이그랬다. 태양이 날마다 그 모든 것에 햇빛을 비춰주었다. 밤에는 대체로 비가 오고 추웠으며, 낮은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따뜻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반짝거렸고, 노란색과 빨간색과 오렌지색과 연분홍색이 만으로 뻗은 길을 지나가는 모든 운전자들에게 찬란한 빛깔을 뽐냈다. 올리브는 차를 타고 지나가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집 앞문에서 숲이 보였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 P335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현관 벽장에 잭의 코트와 스웨터가 그대로 있었다. 그것 또한 다른 점이었다. 헨리의 옷은 그가 죽자마자 재빨리 없앴다. 심지어 요양원에 있을 때 이미 치우기 시작했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날 신었던 새 신발, 그가 다시는 신지 못한 그 신발. 그녀는 그것을 번개처럼 빠르게 없앴다. 낙타털 색깔의 스웨이드 구두였는데, 신발끈에 조금도 때가 묻지 않았었다. - P336

하지만 잭의 옷은 간직했다. 옷장 문을 열면 그 냄새가 여전히 희미하게 풍겨왔다. 그들이 처음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을때 그가 입은 카디건-진녹색, 팔꿈치에 가죽을 덧댄 것이었다 - 도 가지고 있었고, 처음으로 심각하게 싸웠을 때 그가 입은카디건- 푸른색에 삼각 문양이 있었다 -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었다. 
"맙소사, 올리브,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여자예요. 더럽게 까다로운 여자 젠장, 그런데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괜찮으면 올리브, 나하고 있을 땐 조금만 덜 올리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조금 더 올리브가 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 P336

올리브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잭은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결혼합시다. 올리브, 당신이 헨리하고 살던 집을 팔고 여기로 옮겨요. 나하고 결혼해줘요, 올리브."
"왜요?" 그녀가 물었다.
그가 한쪽 입가가 올라가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
 "내가 당신을사랑하니까." 그가 말했다. 
"내가 당신을 지독히 사랑하니까."
"왜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이 올리브니까."
"방금은 내가 너무 올리브 같다면서요."
"올리브 쉿. 그만 입다물고, 나하고 결혼합시다." - P337

잭이 잠을 자다 그녀 옆에서 죽었을 때, 공포가 큰 바다처럼 올리브를 덮쳤다. 그녀는 하루하루 겁에 질려 지냈다. 돌아와,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오, 제발 제발 제발 돌아와! 그들이 함께한 여덟 해가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해괴하게도-그녀는 이따금 잭을 진짜 남편으로 생각했다. 헨리는 첫번째 남편이고, 잭은 진짜 남편이었다. 해괴한 생각이었고, 그게 사실일 리도 없었다. - P337

잠시 뒤 올리브가 물었다. 
"네 삶은 어떠니, 베티?"
베티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제 삶요?" 더 많은 눈물이 베티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오, 아시잖아요." 그녀가 티슈를 허공에서살짝 흔들었다. "형편없죠."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리브가 말했다.
 "음, 말해봐. 듣고 싶구나."
베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또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 그냥 삶이에요, 올리브‘
올리브는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음. 그건 네 삶이야. 중요한 거라고."
- P420

그들은 손주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올리브가 이저벨에게 왜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손자 이야기를 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저벨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처럼 턱에 손을 갖다댔다.
 "음, 손주들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겐 지루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이저벨은 이쯤에서 한숨을 쉬고 올리브의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서로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또 손자를 그리 잘 알지는 못해요. 사실 올리브, 에이미는 나한테 잘해주지만 아이오와에 살고, 나는 이따금 자식이 그렇게 멀리에 가서 산다는 건 정말로 뭔가로부터 떨어져 있으려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 경우에 그 뭔가는 내가 아닐까 하고요." - P450

그제야 올리브는 크리스토퍼가 왜 뉴욕에 사는지를 어느 면에서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녀가 천천히 말했고, 고통이 그녀 안에서 그물을 짜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올리브는 에이미를 생각했다. 약간 차갑게 느껴졌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에이미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어머니와 가깝지는 않은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손자를 사랑해요."
이저벨이 말했다. 
"오, 사랑해요. 하지만 그애는 정말로 내 삶의 일부는 아니에요." - P450

올리브는 창가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벌새 한 마리가 격자 울타리로 날아왔고, 이어 박새가왔다. 올리브는 이거벨이 한 말을 한참생각해본 뒤 조심스럽게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바보같이 들렸다. 여든여섯 살 먹은 여자의 목소리로 불러보는 그 이름. 게다가 올리브는 어머니의 목소리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안 돼, 이건 안 되겠어.

그리고 한편으로 올리브는 이제 다른 층위의 상실의 슬픔을 느꼈다. 이저벨은 여전히 어머니를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고 있었지만, 올리브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앉아서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뒤 일어서서 말했다.
 "쳇, 됐다 그래."
 하지만 누구한테 한 말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 P456

그리고 헨리를 생각했다. 젊은 날 헨리의 눈에 깃들어 있던 다정한 눈빛, 그 다정함은 그가 뇌졸중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즐거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잭을, 그의 영리한 미소를 생각했고 크리스토퍼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고, 그건 행운이었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녀를 왜 사랑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사랑했다. 그리고 아들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올리브는 깨달았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그녀는 의자에서 조금 뒤척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 P459

그래서 그녀는 앉아서 하늘과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고, 시선을 내려. 장미꽃을 바라보았다. 심은 지 딱 한 해가 지났을 쀼인데도 그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장미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우와, 피어난꽃 뒤로 또 한 봉오리가 막 피어나려 하는 게 아닌가! 오, 그것을 바라보니 행복해졌다. 새로 맺은 싱싱한 봉오리의 모습. 그리고그녀는 뒤로 기대앉아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놀라움과 두려움의 감정이 되돌아왔다.

그것은 올 것이다.
"그래, 그래."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거기 꽤 오래, 심지어 정말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앉아 있었다.
- P460

마침내 올리브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천천히 일어섰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의자에 앉았고, 안경을 쓰고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자판을 톡톡 쳐서 한 문장을 타자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타자했다.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방금 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가지도 알지 못한다."

올리브는 지팡이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이저벨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할 시간이었다. -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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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하나 모든 에피소드가 왜 다 슬픈지..
읽고 있으면 모두 슬프다. 어쩌지...
이제 올리브가 80세가 넘었다!
헉...곧 이별 ㅠㅠ

그러나, 또 다시 멋진 문장 발견!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310)



그래서 밥은 발꿈치에 엉덩이를 붙인 채 쪼그려 앉아 있다가, 헬렌의 눈이 한동안 감겨 있자 맞은편 의자로 조용히 옮겨 앉았다. 그는 몸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은 것처럼 아팠다. 온몸이 아팠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내 영혼이 아파하고 있다고.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그것은 짐에게도, 헬렌에게도, 마거릿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망명자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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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7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너무 좋죠, 너무! 스트라우트는 연작 소설에서 항상 최신게 더 좋은것 같아요. <올리브 키터리지>너무 좋았는데 <다시, 올리브>는 더 좋더라고요! ㅠㅠ

은하수 2023-03-27 11: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러니 끝을 꼭 봐야죠
근데 올리브 두번째 남편 잭도 죽었네요 지금 그 부분 읽고 있는데 가슴이 아파요 ㅠㅠ
루시 바턴 후속작도 읽어야겠어요. 루시도 궁금하네요 너무^^

다락방 2023-03-27 11:32   좋아요 0 | URL
루시 바턴 후속작 오 윌리엄은 제가 읽은 스트라우트 소설들 중에 최고였어요!!

은하수 2023-03-27 12:08   좋아요 0 | URL
윌리엄은 저도 읽었답니다~~~~꺅~~넘 좋은걸요.
어떻게 안읽을 수 있겠어요~~
저 이제 무엇이든 가능하다 하나 남았어요 거기 루시 바턴이 나온다고 해서 곧 읽어보려구요^^
 

*생산과 재생산 : 자본주의는 여성을 이중으로 억압한다.


생산과 재생산의 모순 관계에 대해 논쟁하면서
다음의 중요하고 새로운 발전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세계 임금 노동자의 약 40%를 차지한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의 54%가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13억 명이 넘는 이 여성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무급 노동의 부담 역시 지고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수가 자신시 노동시장에서 착취
당할 수 있도록, 즉 재생산 노동의 양을 줄이기
위해 자기 임금을 사용해서 유급 가사노동을
이용하고 있겠는가?(146)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확인하게 되니 좀 충격적이다.
8 : 3,500,000,000(35억)

모든 종류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여성을 해방할 열망을 가진 페미니스트라면 자본주의가 만든 장애물을 피해갈 수 없다. 무엇보다 명확한 건 오늘날
8명의 남성이 35억 명의 사람(이들 중 70%는 여성이다)이 가진 것만큼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47)



마르크스는 생산적 노동을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확실히 독창적인 것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분석에 기초한다.

"생산적 노동이란 노동의 특정 내용, 또는 그것이 드러낸 특정한 유용성 또는 특정한 사용가치와는 그 자체로 전혀 무관한 노동의 질을 뜻한다. 따라서 동일한 내용의 노동은 생산적일수도 비생산적
노동일 수도 있다." - P138

마르크스는 재생산 노동의 특징을 특별히 다루지 않았지만, "그 외형적 분리를 넘어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필수적인 연결고리를 확립"했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생산, 순환, 경제적인 자본 재생산으로 구성된 자본주의 경제의 범주를 훨씬 폭넓은 사회적 물질대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사회적 물질대사는 사회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이것은 오로지 시장에만 주목하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은 외면하는 주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모든 생산방식에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가사노동은 교환가치는 되지 못하지만,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은 자신이 수행되는 바로 그 사적 영역 안에서 ‘생산적 소비‘로 행해진다. 이 과정은 노동력의 재생산에 반드시 필요하다.  - P139

재생산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꼭 잉여가치를 창출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반면 어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재생산 노동이 노동력 상품을 ‘생산‘한다면 생산적인 것으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적 · 문화적 억압은 여성이 경제적 보상 없이 개별 가정 내에서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을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다니엘 벤사이드는 이렇게 지적한다.

"시장에서 실제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 노동과 사적 행위를 측정하는 각각의 기준을 비교하기란, 예컨대 부엌일과 호텔 노동을 테일러주의 식으로 계량화하기란 어렵다. 측정 수단은 동의하기 힘든 자의적 선택에 달려 있다. 즉 어떤 사람이 가사활동을 하는 기간에 노동시장에서일했다면 벌 수 있었던 소득이 얼마인지, 시장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시장에서의 구입 가격)를 계산에 포함시킨다." - P140

노동자계급이 남성 · 여성 · 성인 · 아동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는 산업의 탐욕에 맞서 가족관계를 착취로부터 보호한 것은 그들의 생활 조건을 향상하기 위해 자본과 대결한 것을 뜻하기도 했다.

 학교·병원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대중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노동자의 생활 조건이 개선되고, 재생산 노동의 무거운 부담 일부가 가정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이전됐다. 전 세계에서 노동자 대중이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폐지에 저항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에 재정 타격을 주며,
가정에서 주로 여성이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의 필요량을 증가시키기때문이다. - P144

최근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의 형태를 띤 자본주의는 착취를 증대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기타 노동자계급 조직을 공격해왔다. 그것은 또한 다음을 통해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기업의 민영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축소, 공교육과 보건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긴축 정책, 대중교통 및 기타 필수 서비스의 요금 인상. 

이런 긴축은 노동자 민중의 가정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제국주의에 억압받는 나라들의 외채 문제를 규탄할 때,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취해지는 긴축 정책으로 여성들이 경제적 보상 없이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144

자본주의 생산은 임금노동을 착취해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모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없이 그런 착취도 불가능하다. 민중 대다수를 점차 임금노동자로 전환하면서, 자본은 재생산 과정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낸시 프레이저가 주장하듯이 이것은 다음의 모순을 반영하는 반복적 위기로 이어진다. "(이 모순은)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재생산이 동시에 분리되고 연결되는 경계에 있다. 경제 내부도 아니고 가정 내부도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의 두 가지 필수 구성요소 사이에 위치한 모순이다." - P145

우리가 건설하려는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 없이 성 불평등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8명에 여성 4명이 포함될 수 있도록 싸우자는 건가? 아니면 가장 가난한 사람끼리 성평등을 이루자는 건가?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핵심, 즉 자본 축적이라는 문제를 제쳐두고 여성해방을 이론화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 P147

물론 작업장에서 이뤄지는 투쟁과 사회적 재생산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투쟁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지배계급이 강제한 분열과 반목에 맞서는 길,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갈라놓은 것을 통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는 이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왜냐면 우리 여성은 아마 처음으로 그 과제가 우리, 즉 노동자계급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셀레스테 무리쇼, 안드레아 다트리 글 · 김요한 옮김Celeste Murillo and Andrea D‘Atri,
"Producing and Reproducing: Capitalism‘s
 Dual Oppression of Women"
2018년 9월 11일 (레프트 보이스>에 영어로 게재됨.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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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여성해방의 전략을 위한 토론
3장에서는 빵과 장미의 정치 전망과 연결된 글을 모았는데, 주로 논쟁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다룬다.
‘99%를 위한 페미니즘‘, ‘사회적 재생산‘ 이론, ‘엥겔스, 여성 노동자,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소제목 아래서 전진방향을 탐색한다. 필자들은 수잔 퍼거슨, 실비아 페데리치 등의 주장을 소개하며 논쟁적으로 문제의식을 전달한다.(들어가며 중 일부 발췌)


《99% 페미니즘 선언》 서평: 전략에 대한 토론

2018년 벽두, 미국에 기반을 둔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은 ‘99%를 위한페미니즘‘ 건설을 호소했다. 2011년 월가 점령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이 개념은 낸시 프레이저, 친지아 아루짜, 티티바타차리야가 작성한 선언으로 구체화돼, 2019년 3월 8일 발표됐다. [한국에서는 《99% 페미니즘 선언》(박지니 옮김, 움직씨)라는 책자로 2020년 3월에 번역·출판됐다.]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과 저자들이 제안하는 반자본주의 전망에 대해 몇 가지 우리의 의견을 밝힌다.
‘99%를 위한 페미니즘‘ 선언이 미국에서 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7년 미국은 페미니즘 운동 부활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였다. 1월 20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 이를 거부하는 여성 행진에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 P116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 살해, 성적 확대, 가해자의 형사 면책, 피해자에 대한 비난 같은 남성 폭력으로부터 촉발된 거대한 여성 시위가 터져 나왔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니우나메노스‘ (2015년), 이탈리아의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2016년), 스페인의 ‘나는 너를 믿는다‘(2018년) 시위를 들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미국의 ‘미투‘(2017년 프랑스의 ‘그놈을 고발하라 (2017년) 같은 대규모 캠페인이 전개됐다.
 동시에 다른 운동도 활발히 펼쳐졌는데, 폴란드의 임신중지권 제한반대 시위(2016년), 아이슬란드의 임금 격차 항의 시위 (2018년), 아르헨티나의 임신중지 합법화 요구 시위 (2018년) 등이 무수히 많은 여성의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페미니즘의 전망과 전략에 대한 토론이 계속 활성화돼온 연장선에서 이 선언이 나왔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저자들이 지적하듯이, 페미니즘 운동은 ‘갈림길‘에서 있다.

*니우나메노스 운동(Ni Una Menos) : ‘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라는 뜻으로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을 말한다. 아르헨티나 빵과 장미의 시위에서 구호로 쓰였다. - P117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
XXX
체제 전반이 위기에 처하면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의문이 제기됐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소수가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훨씬 더 많은 인류가 비참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2011년 "우리는 정치인과 은행가에게 지배당하는 상품이 아니다"라고 했던) 스페인의 ‘5월 15일 운동‘,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99%이고 너희는 1%다"라고 했던) 미국의 ‘월가점령운동‘은 자신의 부모보다 삶이 나빠질 거라는 사실에 맞닥뜨려야 했던세대가 처음으로 자신을 정치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2015년부터 거대한 여성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젠더 불평등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계적 불평등과 분리해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다. - P119

"임금을 지불받는 노동의 중단은 영구적인 이윤 손실의 형태로 자본가들에게 타격을 가한다. 

무급 재생산 노동의 중단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만일 노동이 어린이나 나이 든 가족처럼 취약한 이들에 대한 돌봄노동의 형태를 취한다면, 중단은 가능한 선택일 수 없다. 만일 노동이 빨래나 청소처럼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아닌 경우라면, 여성이 나중에 그 일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이가 하게 될 것이다. 또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집이 점점 지저분해질 것이다. 기껏해야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부끄러워하면서 여성이 하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은 고통당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신경도 쓰지 않는다." - P127

"자본주의가 흐릿하게 감추려는 진실, 즉 이윤을 만들어내는 임금노동은 대부분 무급 노동으로 이뤄지는 사람 만들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의 임금노동제도는 잉여가치만 감추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성립이 가능해지는 조건인 사회적 재생산 노동이라는 출생 모반도 감춘다." - P129

저자들이 보기에 현재 진행 중인 자본주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재생산 위기다.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개념은 앞에서 언급한 무급가사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료·교육 등 서비스 부문에서 주로여성이 수행하는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를 매개해 사회적 재생산이 수행된다는 점을 포괄한다.

 사회적 재생산 위기가 갖는 세 번째 측면은제국주의가 만든 위계질서를 토대로 대도시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며 좋은 급여를 받는 진보적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이주민, 유색인종 여성을 불안정한 조건으로 고용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고용된 여성은 자신의 집에서 수행해야 할 가사노동을 누군가에게 떠넘겨야 한다. 고용된 여성의 딸이나 어머니는 어떤 종류의 급여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형제자매나 손자 손녀를 돌보고 청소와 요리를 해야한다. 그들은 이 사슬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다.
- P129

다르게 말하자면,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노동자계급의 페미니즘이자 노동자계급을 위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가 자신을 작동시키기 위해 전략적 지위에 놓은 사회적 주체다. 

바로 이로부터 노동자계급은 동맹을 건설할 수 있다. 그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개량의 지평선을 넘어설 힘이 없는 운동으로 용해되고 말 것이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가장 집중화된 부문이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잠재력을 현실화하려면, 자본에 억압받는 모든 부문을 (심지어 모든 계급을) 이끌려는 실질적이고 의식적인 의지를 수립해야만 한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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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이 괴로울 땐 아무 생각없이 주욱 읽어나갈 수 있는 소설이 시간 채우기에 제격이다.
늘 달고사는 더부룩함의 끝판왕, 심히 불안정한 내 위장... 어찌나 심하게 체했던지 어제 아침 일어나니 온 몸이 두드려 맞은듯 아프고 배가 뒤틀려서 급히 한의원 가서 침맞고 약 타와서 먹고 있다. 죽 포장해서 오는 길에 도서관 들러 《다시, 올리브》 빌려왔다. 그러고선 집으로 돌아와 아픈 걸 잊어볼 요량으로 억지로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책을 읽었다. 저녁때쯤에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도저히 집중이 안돼 포기... 아우 머리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니 두드려맞은 듯하던
몸과 배는 한결 편해져 《다시, 올리브》 읽어보기로 했다.

내용이 주는 메세지가 있겠지만 그런 걸 꼭 느껴야할 필요는 없다. 그냥 집중해서 스토리를 따라가고 싶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익숙하니 잘 읽혀서 순식간에 백여 페이지를 읽었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올리브는 내 기준에서 봤을 땐 참 이상한 사람이다.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싫지는 않고 묘하게 동조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올리브가 사람들과의관계에서 느끼는 어색함들이 나도 불편한데 어느 면에서는 나도 그럴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나의 생활을 글로 쓴다면, 속마음들까지 이런 식으로 글로 표현한다면 내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느끼는 어색함, 불편함, 친밀감, 말로 표현하지 않는 그 감정들에서 뭔지 모를 슬픔이 느껴질 거 같아서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올리브를 내 나름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고 할까.


"크리스토퍼." 그녀가 용기를 내서 아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결혼한다."
아들이 어중간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쳐다보고 이렇게 말하기까지 영원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결혼할 거라고 말했어. 잭 케니슨하고."
- P139

"오, 그만, 크리스토퍼! 그만해. 그만 좀 하라고!" 앤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올리브를 뒤따라 거실에 들어와 있었다. 올리브가 돌아보니 놀랍게도 앤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입술도 더 커진 것 같고, 눈도 더 커진 것 같았다. 앤이 다시 말했다.
 "그만, 크리스, 그만 좀 해! 어머니 결혼에 참견하지 마. 당신 대체 왜 그래? 맙소사! 저분한테 예의를 갖추는 정도도 못해? 맙소사, 크리스토퍼, 당신 정말 애구나! 당신은 내가 애 넷을 키운다고 생각하지? 다섯을 키워!"
그런 다음 앤은 잭과 올리브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제가 대신 어처구니없이 유치한 남편의 행동을 사과드릴게요. 저 이가 이렇게 유치할 때가 있어요. 크리스토퍼, 이건 유치한 행동이야.
하느님 맙소사, 당신 이런 모습 정말 유치해"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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