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오후의 햇살은 그냥 집에서만 즐기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밖으로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오후 5시 무렵의 햇살을 운전석 쪽에서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집 근처에 있는 '벗이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무작정 미술관 정문으로 향했는데 밖에서 볼 땐 어두워서 폐관 했나 싶어 확인해 보려고 다가가니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는 거다. 열리니 안들어갈 수가 없지 싶어 들어갔더니 아직 한 시간 가량 관람 시간이 남았대서 지역주민 우대로 표를 할인받고 들어갔다. ...
전시작품들은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는 색감 예쁜 작품들이었고 미술관도 작은 곳이라 금방 둘러볼 수 있었다. 작지만 아담한 미술관 뒷편 정원까지 산책하고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 사들고 마시며 봄햇살을 만끽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받아와 책상에 놓아 두었던 최순우 선생의 <한국미 한국의 마음>이 갑자기 생각나서 저녁부터 펼쳐 보기 시작했다. 책 가격이 너무 높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하면서도 승인이 날까 안날까 걱정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구입해 주어 반가운 마음에 얼른 가서 받아 왔다.
<한국미 한국의 마음>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책을 처음 접한 건 학고재에서 1994년 간행되었고 2002년 보급판으로 재출간되었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최순우 선생의 글이 나에게 그리 생소하지 않았다. 이 책의 처음 '건축' 편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축물이 '부석사 무량수전'인데, 최순우 선생이 쓰신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논한 글은 1994년 7월 간행되었던 유홍준 교수의 <우리 문화 유산 답사기 2> 에서 이미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시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 한 편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왔다. 혹자는 이 글을 일러 너무 감상적이라고, 혹자는 아카데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감상적이면 뭐가 나쁘고 아카데믹하지 못하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이냐고 되받아쳤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98쪽, 영풍 부석사 중에서)라고 유홍준 교수는 여러 글에서 밝힌 바 있다.
또 2002년에 발간되었던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서문 격인 '보급판에 부쳐'에서 유홍준 교수는 평소에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미술과 문화재에 눈을 뜰 수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지체 없이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길"이라고 대답하곤 한다고 했다. 그때의 좋은 선생은 사람일 수도 책일 수도 있는데, 좋은 책으로는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이상이 없다는 대답을 내어 놓는다. 최순우 선생과 유홍준 교수의 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나는 최순우 선생의 <한국미 한국의 마음>(지식산업사, 1980)이 새로운 옷을 입고 복간되었다는 소식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기웃거리게 되었다. 이 3 권의 책에서 최순우 선생이 쓰신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논한 글은 같은 내용이고 <한국미 한국의 마음>이 근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명문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는데도 금방 다시 익숙하게 다가온다. 가보지도 못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이 큰 책의 두 쪽에 걸쳐 넓게 펼쳐진 사진으로 대하니 실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정면에서보다는 건물의 오른쪽에서 찍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진이 비슷한 위치에서 찍은 걸 알 수 있다. 정면에서 찍게 될 경우 무량수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 단아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보여주는 석등(국보 17호로 지정되어 있다)이 무량수전을 가리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미 한국의 마음>에는 무량수전과 석등이 하나의 프레임에 담겨 있어 내가 본 무량수전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은 1043년, 고려 정종 9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집으로 창건연대가 확인된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랜 것이다. 정면 5칸에 측면 3칸 팔작지붕으로 주심포집인데 공포장치는 아주 간결하고 견실하게 짜여 있다. 그것은 수덕사 대웅전에서 보았던 필요미必要美의 극치이다. 기둥에는 현저한 배흘림이 있어 규모에 비해 훤칠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기둥머리 지름은 34cm, 기둥밑은 44cm, 가운데 배흘림 부분은 49cm이니 그 곡선의 탄력을 수치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유홍준,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2, 83~84쪽, 영풍 부석사 중에서)"
이제 최순우 선생이 쓰신, '부석사 무량수전'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던 그 문장들을 다시 음미해 보자. 조금 길지만 전문을 실어보고 싶다. 책에서처럼 세로획으로 쓸 수 있다면 천천히 읽으며 운치있게 느낌이 살 거 같은데 그건 안되겠지?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柱心包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必要美여,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석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고웁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에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의 큰 이름은 이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이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진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案山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한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 올린다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건축 부분은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비원의 연경당, 비원의 부용정, 경회루의 돌기둥, 경복궁의 옛 담장 등 5개이고 도자는 청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백자로 나뉘어 36개의 글이 있는데 그 중 20 여 개의 글을 읽었을 뿐이지만 예전에 읽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문장의 특별함과 '미문美文의 향연'에서 만나게 되는 생소한 단어들을 대하노라면, 나의 지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ㅠㅠ. 왜 그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특히 선생이 사용하신 단어들의 뜻을 몰라 사전으로 검색을 해도 알 수 없어질 땐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머릿 속에서 지진이 난다.
'늣늣하다-느끼하다의 충청방언', '갓맑다-잡스럽고 탁한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아니하여 깨끗하다는 뜻의 순우리말', '연연娟娟하다-빛이 엷고 산뜻하며 곱다', '헤식다(사전에 검색하니 3가지의 뜻풀이가 나왔지만 어떤 것을 적용해야할지... 유의어 반의어로 서먹서먹하다, 실없다, 싱겁다 등이 있었는데... 청자죽절문병의 유려하고 청초하며 전아한 곡선의 감각, 그리고 "너그럽게 벌어진 입이 헤식어 보이지도 않고 긴 병목이지만 과장된 것 같지도 않아서 바라보기에 그저 정이 가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라는 표현에서 사용하셨는데 고운 청자빛의 청자죽절문병의 사진을 보고 나면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한달까...
"부드럽고도 홈홈한 병 어깨의 곡선이 허리로 흘러서(청자복사문 매병)", "또 이것이 어떤 서상적瑞祥的(검색은 안되지만 다행히 한자가 병기되어 있어 유추가 가능한데 '상서롭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였다-청자상감어룡문매병)인 뜻에 영합되어"와 같은 문장을 만나는 기쁨이라니... 모르는 단어들의 뜻을 찾으며 유추하며 공부하듯 읽어 나가는 것도 기쁨이고.
어젯밤 청자를 지나 분청사기를 감상하고 있는데 다른 두 책에서와 달리 이번에 복간된 책에서는 도자 부분의 사진이 정말 너무도 아름답게 제 색감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어 계속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준다. 선생이 분청사기를 비롯한 이조시대의 자기에 대해 설명하는 글들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만났다.
"한국 도자기사 2천 년의 자취를 살펴보면, 대개 시대가 내려올수록 아름다움의 방향은 더 한국적으로 바뀌어 왔으며, 이 한국적이란 말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양식에서 우러난 무리하지 않는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든 아름다움, 수다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아울러서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도자기가 지닌 이러한 한국미의 바탕 속에서 이 잘생긴 아름다움을 때때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한국인이 지닌 가장 행복하고도 존귀한 재산의 한 묶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85~86쪽)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선생의 자부심이 한껏 느껴지는데 그것이 결코 과하게 읽히지 않고 공감하게 되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싶어지지만 이러한 감정이 흔히들 말하는 '국뽕'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평생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했던 선생의 그 곱고 넉넉한 인품이 문장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거 같아서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오늘도 역시 후회하며 다시 책을 사러 간다. 이런 책은 소장 가치 백만퍼센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