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르베르쉬르우아즈에서 세트까지
ㅡ정오의 태양 아래 깃드는 고독 中.
‘휘몰아치는 외로움과 광휘의 여정ㅡ반 고흐를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아를,파리,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긴 겨울 여행의 끝을 암스테르담으로 결정한 것은
반 고흐를 비롯해 몇몇 그곳 출신 화가들의 족적을
 밟아보기 위해서였다. 20대의 끝을 향해가던 어느 여름밤 나는 파리에서 반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1853~1890의 <해바라기>(1889)를 보기 위해 야간열차를 탔었다. 파리-암스테르담 간 열차의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나는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밤이 다하도록 열렬하게 달려가도록 만드는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달려가고자 결심하는 순간마다 ‘바로 그것!‘이었던, 그러나 정작 달려가면서, 또 달려가 마주서서는 ‘진정 그것!‘인가를 회의하던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  - P264

그날 <해바라기>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단지 나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았다는 것일 뿐,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 거금을 들여서 야간열차를 타고 하루 이틀을 바친단 말인가. 때로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타인들에게서 간혹 거북하게 느꼈던 지적인 허영이나 무모함이 오히려 나 자신에게서 더 크게 발휘된 결과는 아니었는지 씁쓸하게 반추하곤 했다. - P264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한때의 지적인 허영과무모함 또한 내 지난 삶의 소중한 자산이어서, 치열하고도 숭고한 순간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지속적으로 그렸고, 암스테르담 이후 나는 파리, 런던, 뉴욕, 뮌헨 등 발길 닿는 데마다 그의 <해바라기>를 찾았다. 무수히 떠나기를 꿈꾸면서 겪었던 마음의 황홀한 떨림,
<해바라기>를 향해 달려가던 그 뜨거웠던 여름 이후, 나는 시간만 나면,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전 세계를 떠도는 이방인이 되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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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에 새긴 이름, 영원의 노래-페르 라셰즈 묘지
中 ‘공간기록자의 벽에 깃든 생生ㅡ조르주 페렉‘을 읽는다. ‘공간기록자‘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작가이긴 하지... 페렉의 작품을 읽고 나면 ˝그들과 함께 파리에 오래 산 것처럼 거리와 골목, 계단과 문, 벽과 창문, 창문과 창문 밖 풍경까지 세밀하게 알고 있는 듯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고 그들의 묘를 찾아 기록한 함정임 작가도 공간 기록자이며, 한편으론 그 열정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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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캔터 선생님은 그들에게 산책을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먼저 에이번 애비뉴의 드러그스토어에 들러 소다파운틴에서아이스크림콘을 하나 샀다. 그는 회전하는 선풍기 아래 스툴을골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데, 지금 그에게 요구되는 일은 놀이터의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가 그 요구를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다가오는 모든 요구를 이행한 완강한 식료품점 주인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샤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의 일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포코노 산맥으로 도망가는 것보다 더 형편없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 P95

"문제는 계속 애들이 공놀이를 하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네. 폴리오에 걸린 두 아이. 두 형제의 어머니가 그랬지요. 저도 그 어머니가 히스테리 상태였다는 건 압니다. 절망감 때문에저를 비난했다는 건 알지만, 그걸 아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의사도 그런 일을 만나게 되지.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우리가 폴리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아. 어디 가나 애들은 여름 내내 밖에서 열심히 놀지만 유행병이 돌 때도 병에 걸리는 애들 비율은 아주 낮아. 또 그것 때문에 심하게 아픈 애들 비율도 아주 낮고, 또 죽는 애들 비율도 아주 낮지. 사망 원인은 호흡기 마비인데, 이건 상대적으로 아주 드문 거야. 두통을 앓는 아이들이 모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 P106

 그래서 위험을 과장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하던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자네는 죄책감을 느낄 게 전혀 없어. 가끔은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그럴 이유가 없어." 그는 파이프설대로 의미심장하게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아무 근거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 P107

... 자네보다 나이도 많고 질병에 관한 경험도 훨씬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네는 알아야 하네. 의사로서 이 무시무시한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일세. 주로 애들만 공격해서 그 가운데 일부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 위력적인 병, 이건 어떤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 자네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고 양심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네가 자네의 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한다면 그건 귀한 게 아니게 되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 P109

... 이것은 라디오에서 흔히 듣거나 신문에서 흔히 읽는 비인격적인 수, 집을 찾거나 사람의 나이를 기록하거나 신발 가격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가 아니었다. 이것은 잔혹한 병의 진전을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수, 뉴어크의 열여섯 개 병동에서는 그 충격이라는 면에서 진짜 전쟁의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수에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수였다.
이 또한 진짜 전쟁, 살육과 폐허와 파괴와 저주의 전쟁, 전쟁 고유의 파괴력을 가진 전쟁-뉴어크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P135

"뭐?" 오개러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응? 당연히 선택할 수 있지.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바로 선택하는 거라고 해. 자네는 지금 폴리오한테서 도망치는 거야. 일을 하겠다고 계약을 했는데 폴리오가 발생하니까 일 같은 건 난모르겠다. 약속 같은 건 난 모르겠다,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미친듯이 달아나는 거야. 자네가 하는 건 그저 달아나는 것일 뿐이라고, 캔서, 자네 같은 세계 챔피언급 근육질의 사나이가 말이야.
자네는 기회주의자야, 캔서,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지만, 그거면 될 듯하네." 그러더니 마치 그 말이 한 남자에게 오명을 씌울 수있는 모든 불명예스러운 본능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혐오감을 담아 되풀이했다. "기회주의자." - P141

...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 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것이 너무 많았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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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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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이라는 작가의 발견! SF소설이라기엔 어색하고 환상소설이라는 말로 대체하기도 애매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오랜만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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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의 위로 세리프
그레텔 에를리히 지음, 노지양 옮김 / 빛소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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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오밍이라는 거대한 대자연과 평원에서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문장으로 그려진 인디언들과 카우보이, 그리고 척박하고 거대한 평원에서의 목장 일이란 것이 결코 평탄하고 낭만적인 삶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작가의 문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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