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삶》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만약 그가 무언가를 배웠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했을 것이고, 결코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비아누는 제분소의 토마스 씨를 생각했다. 세르탕. 사람중 가장 불행한 이는 제분소의 토마스 씨였다. 왜일까? 아마도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았다. 파비아누는 여러차례 말했었다. "토마스 씨, 어르신은 정상이 아니에요. 뭐하러 그렇게 종이 더미에 파묻혀 지내요? 재난이 닥치면, 토마스 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망할 거예요." 
그러다 가뭄이 왔고,그렇게 착하고 책을 많이 읽은 그 불쌍한 노인은 모든 것을 잃고 나약하게 거리에 나앉았다. 아마도 이미 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사람이 혹독한 여름을 견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 P26

제분소의 토마스 씨는 말을 잘했다. 신문과 책을 너무 많이읽어 시력이 나빠질 정도였지만, 명령할 줄은 몰랐다. 대신요청했다. 가진 사람이 예의 바르다는 것이 이상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그의 태도를 비난했다. 하지만 모두 그의 말에복종했다. 
아! 누가 복종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 P27

다른 백인들은 달랐다. 가령 현재의 주인은 쓸데없이 고함을 쳤다. 거의 농장에 오지 않다가 무언가 흠잡으려 할 때만농장을 찾았다. 가축이 늘어나고 농장 일도 잘 돌아갔지만,
주인은 소몰이꾼을 나무랐다. 당연했다. 그는 나무랄 수 있는 자였기 때문에 나무랐고, 파비아누는 겨드랑이에 가죽 모자를 끼운 채 그의 핀잔을 듣고 용서를 구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P27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수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주인은 그저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화를 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 P28

파비아누는 농장의 일부이자 무용한 물건처럼 보였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해고될 것이 분명했다. 농장에 고용되면서 파비아누는 종마와 다리 보호대, 가죽 재킷, 가슴 보호대와 생가죽 신발을 받았지만, 나갈 때는 그를 대신할 
소몰이꾼에게 모든 것을 내주게 될 것이다. 
비토리아 어멈은 제분소의 토마스 씨의 것과 같은 침대를 갖고 싶어 했다. 정신 나간 생각이었다. 파비아누는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정신나간 생각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들 같은 아무개 따위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그들은 그저 그곳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주인은 언제든지 그들을 내쫓을 수 있었고, 그들은 목적지도 없이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잡동사니를 싸 들고 갈 방법도 없었다. 파비아누의 가족들은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한 채 살았고, 나무 밑에서도 금세 잠들었다. - P28

"언젠가 사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불행을 자초한다."
그도 살과 피를 지닌 엄연한 사람이 아닌가? 물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할 의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괜찮았다. 그러한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쩌겠는가?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만약 더 나은 운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누군가 그에게 말한다면, 그는 놀랄 것이다. - P121

그는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주술로 상처를 치료하며, 겨울부터 여름까지 울타리를 수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그렇게 살았고,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윗대의 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다카루 선인장을 자르고, 가죽 채찍에 그리스 칠을 하는 것, 그것이 핏속에 있었다. 그는 운명에 순응했고,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만약 그의 몫을 주었다면,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몫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미천한 존재였다. 강아지나 매한가지였다. 뼈다귀나 받아먹는 존재였다. 부자들은 왜 그 뼈다귀의 일부마저 차지하려는 것일까? 그처럼 고귀한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 그런 미천한 사람들의
것까지 차지하려 한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 P121

파비아누가 바로 서서 군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는 눈길을 피했다. 파비아누는 사람이었다. 여생 동안 힘없이 축처져 지내게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끝난 인생이라고? 파비아누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주저앉기 바쁜 저 병약한 자를 왜 없애야 할까? 장터에서 어슬렁거리며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그런 제복 입은 자들의 나약함 때문에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파비아누는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일따윈 하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 그는 힘을 비축했다. - P135

파비아누는 주저하며 이마를 긁었다. 그런 나쁜 작은 짐승들이 많았다. 그렇게 약하고 나쁘며 작은 짐승들은 너무나 많았다.
불안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파비아누가 비굴하고 순종적인모습을 보이자 군인은 용기를 얻고 다가와 단호한 태도로 길을 물었다. 파비아누는 가죽 모자를 벗었다.
"정부는 정부니까요."
가죽 모자를 벗은 그는 허리를 굽힌 채 노란 제복의 군인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 P135

가족들은 말라비틀어진 키샤베이라 나뭇가지 아래에서 쉬었고, 밀가루 한 줌과 고기 조각을 씹은 뒤 물병의 물 몇 모금을 마셨다. 파비아누의 이마에서 땀이 마르며 깊은 주름 속먼지와 함께 가죽 모자의 끈에 스며들었다. 현기증은 사라졌고, 요동치던 배도 가라앉았다. 다시 길을 나설 때는 물독의 무게로 비토리아 어멈의 등골이 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는 들판에서 물줄기의 흔적을 찾았다. 날카로운 추위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더러운 이를 드러내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추울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아이들과 아내, 무거운 짐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 P156

물통의 무게는 하찮았지만, 파비아누는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며 힘차게 걸음을 옮겨 물웅덩이로 향했다. 그들은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할것이고,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한 뒤 달빛 아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불확실했었지만 나름의 규칙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보다 더한 일도 겪어봤어." 파비아누는 하늘과 가시덤불, 그리고 독수리에게 도전하듯 말했다.
"왜 아니겠어요?" 비토리아 어멈이 묻는다기보다 그저 그가 한 말을 확인하듯이 중얼거렸다.
조금씩 희미하게나마 새로운 삶의 윤곽이 그려졌다. 가족은 작은 농장에 머물 것이다. 덤불숲에서 자유롭게 자란 파비아누에게 그것은 어려워 보였다. 가족은 몇 마지기의 땅을 경작할 것이다. 도시로 이주하면,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부부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비토리아 어멈은 흥분했다. 파비아누는 웃었다. 그는 손을 비비고 싶었지만 자루와 수발총의 개머리판을 잡고 있어야 했다. - P160

 그는 비토리아 어멈이 확신에 차서 중얼대는 소리를 그대로 따라 했다.
그렇게 가족은 꿈에 부풀어 남쪽을 향해 걸었다. 힘센 사람들이 가득한 대도시.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렵지만 필요한 것들을 배울 것이다. 파비아누와 비토리아 어멈은 나이 들어 결국 강아지와 같이 쓸모가 없어지면, 발레이아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식들이 떠난 집에 남아 걱정만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가족은 문명화된 낯선 땅에 도착해서 그곳에 갇히게 될 터였다. 그리고 세르탕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대도시로 보낼 것이다. 세르탕은 파비아누, 비토리아어멈, 그리고 두 아이들과 같이 강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을 도시로 보낼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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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파르나스 묘지/장미와 함께 잠들다
표지의 ‘유럽 묘지 기행‘이라는 문구에 끌렸다.
체코 프라하 여행 갔을 때 비셰흐라드 공동 묘지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보았던 묘지가 굉장히 인상 깊었었다. 보통은 여행 가서 묘지는 잘 가지 않는데 그 때는 여행 코스에 비셰흐라드 묘지가 있었다. 아름답게 조성된 묘지는 공원으로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드보르작과 스메타나, 알폰스 무하, 카렐 차페크, 얀 네루다의 묘지를 봤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유럽 묘지 분위기라 기억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묘지도 베드로와 바울 성당도 녹음도...
그리고 휴일을 즐기는 프라하 시민들의 여유로운 일상의 모습도...

그래서 이 책에 끌렸을 거다.






푸른 문의 종소리
그때, 느닷없이 종이 울렸다. 종소리는 내 몸 바로 앞에서, 옆에서, 아니 지금까지 걸어온 발걸음 뒤, 지치고 메마른 영혼의 바닥을 치고 울리듯 돌발적이었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등지고 아카시아 꽃잎 눈처럼 하얗게 떨어진 에드가 키네 대로를 느리게 걸어가고 
있던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그곳이 어디든 종소리와 마주치면 나는 헛것에 홀리기라도 한듯 눈이 멀어 길을 잃곤 했다. 
경주 계림의 고택에 누워 있다가도 분황사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대릉원과 황룡사 터를 한달음에 내달려 석양빛 경내로 들어서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센강에서 한참 멀어졌다가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저녁 미사 종소리에 자석처럼 이끌려 발길을 되돌린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를, 태초의 종소리처럼 듣고 있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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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2부의 실망을 만회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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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2부 :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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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삼체 3부를 위한 포석일까 싶지만 생각보다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조금 실망. 별점에 후한 편인데도 3별. 그렇지만 3부를 안 읽을 수는 없지...!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모든 문명이 총을 든 사냥꾼이죠. 그들이 유령처럼 숲속을 누비고 있어요.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치우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숨소리조차 낮추고... 
조심해야 해요. 숲속에 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다른 생명을 발견하면 그게 사냥꾼이든 아니든, 천사든 악마든, 갓난아기든 꼬부랑 노인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죠.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 P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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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가 나의 존재를 알게 되면 교류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요. 다스에겐 한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오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두 화성의 불빛이 모두 사그라졌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았고 공기는 미동조차 없었다. 정적에 눌린 어둠이 아스팔트처럼 끈적끈적해져 밤하늘과 사막이 한 덩어리로 엉겨 붙었다. 마침내 어둠속에서 스창의 한마디가 들렸다.
"제기랄!"
뤄지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스의 선택을 수억 개 항성의 억만 개 문명으로 확대해봐요. 그러면 우주문명 전체가 그려질 거예요."
"그건・・・・・・ 너무 암울해……………."
"우주는 원래 어두운 곳이죠."
뤄지가 백조 깃털을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뻗어 허공에서 휘저었다. 어둠의 질감을 느끼려는 것 같았다. - P677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모든 문명이 총을 든 사냥꾼이죠. 그들이 유령처럼 숲속을 누비고 있어요.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치우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숨소리조차 낮추고……. 조심해야 해요. 숲속에 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다른 생명을 발견하면 그게 사냥꾼이든 아니든, 천사든 악마든, 갓난아기든 꼬부랑노인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죠.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 P677

이게 바로 사랑인가?

그들 옆에서 저차원으로 펼쳐진 지자가 불쑥 나타나 표면에 이 글자들을 띄웠다. 공중에 떠 있는 원기둥의 어딘가가 녹아 한 방울 똑 떨어져 내린 듯 구체의 거울 표면이 매끈했다. 뤄지는 아는 삼체인이 많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 지자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이 외계인이 삼체세계에서 왔는지, 태양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함대에서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뤄지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아마도요." - P711

뤄지 박사, 당신에게 항의하러 왔다.

"항의라고요?"

어젯밤 강연에서 당신이 말했다.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오랫동안 깨닫지 못한 것은 문명이 성숙하지 못해 우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게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게 잘못됐나요?"
- P711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과학적으로는 불명확한 개념이지만 당신이 그 뒤에 한 말은 틀렸다. 당신은 말했다. 인류가 우주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아는 종족일가능성이 크다고. 또 면벽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이런생각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하자면...... 비유라고나 할까요." - P712

삼체 세계에도 사랑이 있다. 그것이 전체 문명의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싹이트자마자 억눌러버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싹의 생명력이 워낙 강해서 어떤 개체에게서는 왕성하게 자라기도 한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

아니다. 나는 200년 전 지구로 경고를 보낸 감청원이다.

좡옌이 깜짝 놀랐다.
"어머나! 아직 살아 있다고요?"
- P712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진 않다. 나는 오랫동안 탈수 상태에 있었지만 너무 오랜세월이 흘러 탈수 상태에서도 늙어버렸다. 그래도 내가 바라던 미래를 보았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 P712

당신과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랑의 싹은 우주의 다른 곳에도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싹이 자라 무성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험을 해볼 수는 있죠."

그렇다. 모험을 할 수 있다.

"내겐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눈부신 햇빛이 암흑의 숲속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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