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 카프카는 누구의 것인가
베냐민 발린트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평점 :
'카프카 유산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 누구의 것이라는 말에는 '소유'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소유는 독점이라는 말과 통할 때가 많고, 독점은 이윤과 함께할 때가 많다. 즉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카프카의 유산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가 있다.
이런 질문을 위대한 작가의 유산에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위대한 작가라고 인정한다면 그 작가는 누구의 것 또는 어느 나라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저작권이라는 이윤을 독점하는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저작권조차도 특정한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은, 지적 재산을 보호해서 작가나 그 계승자의 생활을 보장할 필요는 있지만, 영원히 이득을 취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프카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으니,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발간 작품들은 어떤가? 그것들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후손들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보상은 필요하겠지만, 후손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느냐도 논쟁거리다. 특히 카프카처럼 자식이 없다고 알려진 사람에게는.
이 책은 이스라엘에서 벌어졌던 막스 브로트의 유산을 둘러싼 소송을 다루고 있다. 막스 브로트의 유산을 둘러싼 소송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막스 브로트가 가지고 있던 카프카의 유산에 대한 소송이라고 보면 된다.
이 소송이 벌어질 당시 막스 브로트는 문학계 또는 예술계에서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또한 국가들이 그의 유산을 둘러싸고 소송을 벌일 만큼 위대한 작가라고 인정받고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막스 브로트의 유산을 놓고 이스라엘, 독일과 그것을 소유하고 있던 에바 호페라는 사람의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게 된 이유는 카프카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카프카. 유언을 집행하지 않고 오히려 카프카의 모든 글들을 모아 보관한 막스 브로트. 우리는 막스 브로트 덕분에 카프카의 작품을 만난다. 그가 인류의 문학에 공헌한 점은 바로 카프카의 작품을 보존하고 출판했다는 점이다.
이런 카프카의 유산을 막스 브로트는 생전에 자신의 비서였던 에스테르 호페(에바의 어머니)에게 카프카의 유산을 증여한다는 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막스 브로트가 죽은 뒤 그의 유산은 모두 에스테르에게 넘어갔다. 막스 브로트의 유산 처분권을 맡긴다는 증서와 함께.
1974년에 첫재판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판사는 막스 브로트의 유산을 평생 재량껏 처리할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에 들어와 다시 소송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대대적인 소송이고, 이스라엘과 독일이 참여했다. 에스테르 호페가 살아 있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그녀의 죽음 이후에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그만큼 카프카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있었고, 카프카의 작품이 경매에 나와 팔려 개인의 금고 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자, 카프카의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누가 보관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명하다. 카프카를 가장 잘 연구할 수 있고,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존재가 보관하면 된다.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간단명료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송이 이루어지는 법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윤리보다도 명확한 것이 법이라고 하지만 법이 얼마나 애매모호한지는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소송]을 읽어봐도 알 수 있고, 짧은 단편인 [법 앞에서],[법에 대한 의문], [유형지에서] 등을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기나 긴 소송 끝에 이스라엘 법정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아직 스위스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카프카의 원고(취리히에 있는 호페 서류)는 반환 수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312쪽 주 참조)
소송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작품을 다 태워버리라고 했던 작가의 유언은 어디 갔는가? 물론 후세인들은 작가의 유언을 다 지킬 필요는 없다. 작가의 유언과 달리 보존되어 인류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 작품들이 많으니까. 카프카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이런 소송을 통해서 문화 유산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우리 인류는 어떻게 문화유산을 보존ㅡ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점을 생각나게 한다.
카프카 유산을 두고 벌어진 소송만이 아니라 막스 브로트의 생애, 그리고 그와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 카프카 작품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에바 호페에게 가게 되었는지의 과정 등을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카프카 사후에 벌어진 일들을 잘 살펴보게 한다.
여기에 작품을 두고 작가의 민족, 국가 또는 성향 등을 따지는 일과 작품을 보존하는 일이 어떻게 연결이 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하고. 문화유산에 이윤이 개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보여주고 있으니...
카프카의 유산을 두고 벌어진 소송, 흥미롭기도 하지만 인류가 문화유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