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동물의 탄생 - 동물 통제와 낙인의 정치학
베서니 브룩셔 지음, 김명남 옮김 / 북트리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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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로 시작하자. 이 중에서 유해동물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은 동물은?

(쥐, 뱀, 생쥐, 비둘기, 코끼리, 고양이, 코요테, 참새, 사슴, 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쥐와 뱀은 망설이지 않고 유해동물로 꼽을 것이다. 그런데 사슴은? 우리나라에서 가끔 고라니가 출몰해서 밭작물을 먹어치우는 일들이 있으니, 고라니와 비슷한 사슴도 유해동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시에서 엄청난 배설물을 낙하시키는 비둘기도? 생쥐는 쥐와 구분하지 않을 테니, 유해동물이고...참새? 예전에 곡물을 먹어치운다고 박멸해야 할 새로 규정한 적도 있으니 당연히 유해동물? 고양이? 길고양이, 들고양이를 유해동물로 볼 수 있나? 누구는 유해동물로 보고, 누구는 먹이를 주어야 하는 귀여운 동물로 보고 있으니,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코끼리는?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유해동물에 대한 기준이 뭐지? 하는 질문도 있을 수 있고.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동물을 유해동물로 본다면, 이 정의에서 벗어나는 동물이 있을까?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는 말에는 시간과 장소가 개입한다.


즉 인간이 살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물들은 절대로 유해동물이 될 수 없다. 그냥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생태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러한 동물들 역시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단, 시간과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


이러한 동물들이 인간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오면 그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어떤 동물은 유해동물이 된다. 아니, 대부분의 동물이 유해동물이 된다. 인간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여겨지는 끼어듦이 아니라 인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끼어듦. 


이러한 불편한 끼어듦을 느끼게 하는 동물은 유해동물이 된다.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반달곰은 절대로 유해동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캠핑장에 들어와 인간을 위협하는 곰은 유해동물이 될 수도 있다.


산에서 사는 고라니는 우리에게 자연을 즐기게 해준다. 하지만 밭작물을 해치는 고라니는 유해동물이 된다. 어떤 사람은 뱀을 반려동물로 삼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뱀을 보기만 하면 피하거나 죽이려 들기도 한다.


결국 유해동물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다. '거리'의 문제다. 이런 '거리'는 사람들끼리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지나치게 가까워도 우리는 피곤함을 느낀다. 피곤함이 불편함이 되면 상대에게 불만을 품고, 상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같은 사람들끼리도 그런데 동물들이야... 앞에 언급한 열 종류의 동물은 이 책에서 유해동물로 취급받았던 적이 있었던 동물들이다. 그런 동물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피고 있는데...


인위적으로 환경을 바꾼 인간에게 책임을 묻기는 쉽지만, 진화론을 생각하면 동물들은 언제든 어떻게든 우리의 예측과는 다르게 진화할 수가 있다. 그들의 서식지도 한 군데로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런 점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이 해야할 일은 당연히 '공존'이다.


이 '공존'이 마냥 평화롭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온갖 동물들이 평화롭게 함께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연'이 아니다. 자연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군가의 삶이 유지된다. 그것이 자연이다. 그러니 '공존'에서 삶과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공존'이 최소한의 피해가 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은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만 하고, 지구가 오롯이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다른 존재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인간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공존'이다.


때로 인간의 것을 그러한 '자연'에 돌려줄 줄도 알아야 하고... 인간이 아무 것도 '자연'에 돌려주지 않고 자기 것만을 지니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것은 '공존'이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러한 관점을 지니게 된다. 다양한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또 저자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 이외의 존재를 쉽게 판단하는 일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동물들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참고로 이 책에서는 앞에 언급한 동물들을 모두 유해동물로 여기는 지역,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공존'에는 적당한 '거리'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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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한글 우리말글문화 총서 1
김슬옹 지음 / 마리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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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는 우리 문자. 한글. 


세계에서 만든 사람과 방법이 알려져 있는 문자, 한글.


하지만 한글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질문을 바꾸자. 우리는 한글을 얼마나 자랑스레 여기며 잘쓰고 있는가?


말로는 과학적이고 창의적이며 편리한 문자라고 하면서도 지금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면 과연 우리가 한글을 잘쓰고 있는지 살펴보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길거리에 보이는 간판들은 외국어가 많으며 (외래어가 아니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우리말이 된 말이니) 하다못해 공공기관 이름들까지도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대표적으로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몇군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통신은 KT가 되었으며 담배인삼공사는 KT&G가 되었고, 국민은행은 KB라고 하고, 한국방송공사는 KBS, 문화방송은 MBC라고 하는 형편이니, 무슨 한글 사랑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이런 현실에서 한글의 소중함을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나라에서조차 한글을 외국어로 바꾸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국경일에서 제외됐다가 다시 국경일이 된 지도 몇 해 되지 않았고... 


하지만 그럼에도 한글은 우리 문자다. 우리들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다. 사라져서는 안될 문자이기도 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한글 관련 유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글길부터 시작해서 한글박물관, 한글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유적 등등을 소개하고 있다.


참 많은 곳에 한글을 기념하는 유적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이토록 많은 한글 유산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으니, 어디서든 한글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그동안 그냥 지나쳤던 한글 유적들을 자세히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저자인 김슬옹이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훈민정음을 제대로 읽고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보편 교양을 가르친다는 중등교육에서 훈민정음 해례 언해본을 강독하는 과정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래야 한글이 왜 좋은 문자인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훈민정음만이 아니라 한글의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한글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질 수 있을 테니까.


한글, 다시 한번 우리가 쓰고 있는 문자를 생각하고, 한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 책이다.   


덧글


한글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알려주는 책인데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오타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144쪽에 '신숙주는 훈민정음 관련 모든 저술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라고 되어 있는데...

145쪽에 (성삼문은) '신숙주와 마찬가지로 <<운회>> 번역을 제외하고는 훈민정음 관련 저술에  모두 참여했다'라고 나온다. 

이 문장이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신숙주도 <<운회>> 번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성삼문만 빠진 것인지... 

차라리 문장 순서를 '<<운회>> 번역을 제외하고는 신숙주와 마찬가지로 훈민정음 저술에 모두 관여했다'라고 했으면 명확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더해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 관련된 작업을 요약하면서 147쪽에 성삼문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운회>>를 언문으로 번역'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명백한 실수다. 빼야 한다. 분명 성삼문은 <<운회>> 번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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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와 연금술사 - 신화상징총서 5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재실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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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엘리아데의 이 책을 읽으면 이들에게는 짙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장장이는 금속을 변형시키는 일을 하고, 연금술사 역시 물질을 변형시키는 일을 한다. 그런 변형이 지금 우리 시대에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겠지만.


엘리아데는 이를 신화적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연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물질들을 우리에게 내놓는다. 즉 자연이 출산을 하는 것이다. 그런 출산을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시간을 앞당겨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과거에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즉 자연이 보여주는 일들을 인간이 보여줄 때 그에게는 신성성이 부여되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 신화들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연금술 하면 마법을 떠올리고,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지만, 과학이 현실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지금의 사고방식을 잠시 뒤로 젖혀두고 과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생각하면, 연금술은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하고 싶다는 욕망, 또 인간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그들에게 대장장이는 불을 통해 용광로에서 풀무와 망치를 통해 이 물질을 다른 물질로 변형시키는 존재였으니, 연금술사와 비슷한 기능을 했다고 여겨질 만했다.


이런 연금술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신화를 살피는 일이 과거를 살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일이라면, 연금술을 살피는 일도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엘리아데는 이렇게 말한다.


'연금술을 통해서 물질의 완성에 참여하는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완성을 견고히 하게 된다. ... 자연을 변화시키는 책임을 맺게 됨으로써, 인간이 시간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76-177쪽)


자연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는 일, 그것이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의 역할이었다는 것. 지금은 자연의 시간보다는 인간의 시간이 우세하다는 생각이 드니, 연금술사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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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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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스페인 여행기다. 그는 스페인으로 가는 여정에서 특급열차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기차 여행도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때만 해도 특급열차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교통수단이었으리라. 그런 교통수단을 타면 사람이 주체가 되지 않고 객체가 됨을, 무엇을 할 수도 없이 그냥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게 되어 '관에 드러누운 시체처럼 잠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14쪽)고 한다.


그럼에도 특급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는 그 나름의 묘미가 있다고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을 때, 다른 집들과 다른 언어, 다른 경찰들, 다른 색깔의 토양과 다른 풍경을 지닌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는 건 언제나 내게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온다'(16쪽)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체코를 떠나 독일,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 도착하게 된다.


스페인에 도착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인물, 풍경, 풍속 등을 소개해주고 있다. 지금도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으며(세르반테스,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 등등),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톨레도 등 많이 들어본 지역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투우 경기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있으며, 플라멩코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투우는 동물학대로 요즘은 거부되고 있지만 한때 스페인에서 대유행했던 행사였으니 차페크가 그것을 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페크는 투우에 대해서는 양가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반려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렇다고 투우를 그냥 거부하지는 않는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지닌 고유한 풍습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있다.


영국 편처럼 날카로운 풍자는 없지만 스페인의 다양성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다양성이 필요함을, 그런 다양성이 우리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여행이 필요하고.


꼭 여행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다양한 관점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자신만의 관점에 빠져 있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엘 그레코를 이야기하는 글에서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 혹은 적어도 그는 비전의 소재와 형식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에게서 가져오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진다.'(55쪽)고 했다.


미쳤다는 것은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에 집중한다는 의미고,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이 고정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에 대두되었던 예술의 흐름으로 매너리즘은 이상적인 형태와 조화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예술표현을 하는 경향이라고 하니, 바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차페크가 말하는 매너리즘은 자기 습관에 빠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라고 하는 우리가 흔히 쓰는 뜻과는 거리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세계가 중요하듯 다른 사람의 세계도 중요하다는 것. 즉 나만 옳다는 독선에 빠지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차페크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스페인의 다양한 지역, 다양한 사람들, 풍습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차페크의 이런 생각은 이 책 말미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지금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 다름을 통해서 나를 다시 보고, 나를 더 풍요롭게 하듯이, 그만큼 다른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그의 마지막 말로 스페인 여행기를 맺고자 한다.


'... 자신들만의 문명화된 모습이 받아들여져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사랑에 대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니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 우리가 이렇게 만나 기쁘니 국가들의 연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다만 주의할 점은, 그 나라들이 제각기 개성을 살려서 꾸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는 저마다 다른 머리카락 색깔과 다른 언어를 가져야 하고, 그 나라만의 독특한 관습과 문화를 지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 나라만의 신을 가질 권리도 있어야겠지요. 왜냐하면 모든 차이점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겨질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기에 우리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우리를 구분 짓는 모든 것으로 우리를 하나되게 만들어봅시다!' (219쪽)


이런 혜안이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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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카렐 차페크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 여행기 흄세 에세이 5
카렐 차페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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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왜 읽을까?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다른 사람이 가본 다음에 그곳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일까? 단지 가보지 못한 곳을 알려준다는 이유로 여행기를 읽기도 하겠지만, 여행기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여행기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한다.


거울에 나를 비추면 내가 보인다. 그런데 그 내가 진짜 나일까? 내 모습을 대칭되게 보여주는 것이 거울 아니던가. 그렇다면 여행기는 나를 살펴보게 하되,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차페크가 영국 여행을 하면서 썼던 글이라고 하는데, 단지 영국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차페크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다른 무엇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여행기의 목적이기도 하겠다.


차페크 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머가 이 책에도 어김없이 담겨 있다. 또한 풍자와 해학도 넘쳐나고.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지금의 영국과는 엄청나게 다른 과거의 영국, 무려 100년 전의 영국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우리가 맞아, 영국은 그래, 하는 것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압도적인 느낌에 휩싸이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할 때, 그리고 아주 익숙한 무언가를 발견할 때죠.' (10쪽)


이것이 바로 여행기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행기에 이런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무엇인가가 없다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제목을 '대놓고 다정하지 않지만'이라고 붙인 이유는 영국인들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차페크의 내용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다. 기차 여행 내내 아무 말도 없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함께 가는데, 내릴 때 키가 작아 짐칸에서 짐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 짐을 그냥 내려주는 영국 사람들 이야기... 대놓고 다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차페크는 그러한 예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단순하게 영국 여행기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영국인들의 특성을 드러내는 제목을 붙인 것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정한 표현을 하지 않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과 더불어 거리의 모습을 '런던의 거리는 그저 삶이라는 물줄기가 집에 닿기 위해 거쳐가는 홈통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삶을 살지 않거든요. 무언가를 보거나 얘기하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지 않아요.'(22쪽)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대놓고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서로 무언가를 만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반대로 광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연히 들르게 된 하이드 파크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여러 활동들을 한다. 즉, 우연한 장소에서는 서로 관계를 맺지 않지만 광장에서는 활발한 관계들이 맺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 두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역시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무언가가 일어난다. 이 광장에서 차페크가 본 영국의 하이드 파크에서 일어난 일처럼 수시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또 다른 활동을 하는 많은 집단들이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광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 아닌가 하고...


차페크가 런던의 거리를 보면서 천편일률적인 집들에 놀라는 장면(13쪽)이 있는데, 아마도 그가 서울에 오면 사각에 하늘 높이 뻗은 형태의 건물들만 즐비한 모습에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물론 빌딩 숲 사이로 고궁들과 한옥이 남아 있는 서울의 모습을 보고 다른 표현을 하기도 하겠지만.


그는 근대 예술과 과거의 활동들을 보면서 예술에서 '발전이라는 건 없습니다. '전진'과 '퇴보'가 아니라 끝없이 새로운 창작이 이어질 뿐이죠. 역사와 다양한 문화, 수집품, 세계 각지의 보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뿐입니다.'(47쪽)라고 하면서 예술에서 등급을 매기거나 발전, 전진, 퇴보라는 평가를 하는 것이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 예술에서 어찌 우월을 따질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이처럼 차페크는 영국 여행을 하면서 영국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여행기가 거울의 역할을 하고, 앞에서 인용했듯이 다름과 비슷함을 통해서 충격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영국인들은 어디서나 영국인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국인들을 비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영국은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세계라고 생각하는지 차페크가 우려했던 것들을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서 다시금 반복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길지 않은 영국 여행임에도 영국의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러한 영국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조국인 체코에서 반복하지 않게 하자는 마음을 담아 이 여행기를 썼다고 할 수 있다. 


차페크 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유머를 보자. 영국 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한데, 우리나라 출신으로 영국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 역시 그 점은 언급하고 있으니... 그런데 그 맛없음을 차페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음식이 그들의 성향과 이렇게 연결이 될 수 있다니... 그의 표현으로 이 글을 맺는다.


'훌륭한 영국 요리는 한마디로 프랑스 요리입니다. 보통의 영국인을 위한 보통 호텔의 보통 요리를 맛보면 영국의 우울함과 과묵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죠. 압축한 소고기에 맛없는 머스터드를 발라 씹어 먹으면서 어느 누가 환하게 웃고 떠들 수 있겠어요? 이에 붙은 타피오카 푸딩을 떼어내면서 어느 누가 큰 소리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분홍빛 덱스트린에 담근 연어를 먹다 보면 누구든 지독하게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죠. 살아 있을 때는 물고기였다가 식용이라는 우울한 상태가 되면 '신발 밑창 튀김'으로 돌변하는 것을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먹고, 가죽을 우린 듯 시커먼 홍차로 하루 세 번 위를 그슬리고, 칙칙한 데다 미지근하기까지 한 맥주를 마시고, 특색 없는 만능 소스와 절인 채소, 커스터드와 양고기를 먹으며 살아왔다면 보통의 영국인에게 주어진 육체적 쾌락은 다 누린 셈이니 이제는 과묵함과 진지함, 엄격한 도덕성을 포용하기 시작합니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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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3-06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페크 님이 남긴 글이 새로 나왔으면 찾아봐야겠습니다

kinye91 2025-03-06 14:14   좋아요 0 | URL
저도 차페크 작품들을 찾아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