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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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힘들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또 소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한때 평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사람 등등이 눈 감고 있다는 사실에.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시 강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아직도? 라는 비탄으로 끝난다. 아직도, 여전히? 이런, 참.


전시 강간은 전쟁 범죄와 같다. 분명 이는 반인도적 범죄 행위이고,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그런데도 지금 전시 강간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전시 강간을 전쟁 범죄에 포함시키기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전쟁 범죄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겨우 재판정에 세웠는데,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의 상심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적은 부분을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범죄에 대해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진행형이다.


일본이 배상을 한다고 했지만, 그건 정부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생색내는 행위에 불과했기에 피해자들이 거부했던 것. 그 이후 일본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아니, 뻔뻔하게 그런 일은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런 일본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작자들도 있는 현실이니...


우리나라뿐이 아닌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제대로 된 처벌이 없고,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니...


이 책에서 전시 강간을 다루면서, 범죄자들을 재판정에 세워 정의를 이루려고 했지만, 많은 경우 아직도 제대로 된 처벌이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여전히 멀리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다.


정말 많은 나라에서 전시 강간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라크와 시리아 사이에 살고 있던 야디지 족,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졌던 보코 하람의 만행, 버마에서 일어났던 로힝야 족에 대한 범죄, 여기에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났던 일. 르완다. 보스니아, 2차세계대전 직후의 소련군.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일들,  아프리카 콩고,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벌어진 강간 등등.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 이것이 20세기, 21세기에 이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어떻게를 실천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증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자리잡고 살 수 있도록 함께하려는 사람들, 재판정에서 진실을 밝히고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응징하는 분위가가 형성되도록 하는 사람들이 비록 갈 길은 멀지만 정의를 실현하려고 '어떻게'를 채워가는 사람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전시 강간이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미신을 위해서 아주 어린 사람들을 강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함께해야 할 문제다.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고,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은 어떻게든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전쟁 범죄를 언제든 처벌하듯이, 전시 강간 또는 강간을 기한을 두지 않고 처벌해야 한다. 또한 처벌을 강도를 높여야 한다.


강간은 반인도적 범죄이고, 인격 살인이기 때문이다. 전시 강간은 전쟁 범죄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행위에 가담한 사람은 전쟁 범죄자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불관용 원칙이 적용되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야 한다. 이 책에 나온 여성의 이 말. 이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말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도 더 힘든 일이에요." (476쪽)


알고 있는데도 해결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범죄를 묵인하는 행위다. 지금 전세계가 권력자들이 이렇게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경우, 전시 강간 또는 강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묵인하는 것 역시 범죄에 동조하는 것임을 명심하게 하고, 국가 또 권력자 또 전세계가 이러한 강간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첵임을 전가하는 행위 역시 금지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지니게 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를, 그렇게 유발한 권력자들을 응징해야 한다. 우리가 겨누어야 할 방향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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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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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의 언어학'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다.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는 언어라는 뜻이다. 자기의 삶을 다른 사람의 언어에 의해 틀지워지는 것, 그것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어떤 식으로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컬트라고 한다. 좋은 의미로 쓰지 않고,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흐름을 컬트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컬티시라는 말은 합리, 이성을 넘어 맹목적으로 휩쓸려 가는 상태를 말한다고 보면 된다.(물론 컬트를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다.이 용어 자체의 난해함에 대해서는 28쪽-33쪽에 설명이 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냥 좋지 않은 흐름으로 사람을 빠뜨리는 정도의 언어로 쓰겠다)


'소위 컬트 (컬트 집단에 몸담으려는 움직임과 이에 대한 인류학적 매혹 모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특히 존재론적 고민이 널리 이루어지는 시기에 성황을 누린다.' (40쪽)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불안정한 시대에 사람들이 쉽게 컬트에 휩쓸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 단정적이고 확정적으로 말하는 컬트에 사람들은 위안을 받기 때문에 컬트가 유행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컬트의 특징은 무엇일까?


컬트의 언어는 전향conversion, 조건형성 conditioning, 강제 coercion라는 체계적인 기술을 적용한다고 한다. (97쪽)


전향은 바로 '러브 바밍 love bombing'이라고 할 수 있는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특별하고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은 불안한 시대에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 또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받고, 그 사람이나 집단에 충성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언어 전술을 통해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고. 집단 바깥의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여겨진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행동을 학습하는 이 무의식적인 과정은 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작업을 조건형성이라고 부른다'(98쪽)고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는 사람들이 기존의 현실, 윤리의식, 그리고 자의식과 완전히 상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여기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최악의 경우 개인이 파괴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강제라고 한다'(98쪽)고 하는데, 이 과정까지 가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존재의 말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컬트 집단이 지닌 모습이고, 거기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이성적인 인간이 컬트에 빠질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치가 작동된다고 한다.


첫번째가 바로 편 가르기다. 내 편과 저쪽 편을 갈라 다른 쪽을 배제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어를 쓰게 되는데, 이를 로드된 언어 loaded language라고 한다. 그 말만 들어도 전율이 이는 언어. 그런 언어들을 우리는 집회에서 많이 보지 않았던가. 특히 몇몇 집단의 경우에서 더더욱. 여기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고 차단 클리셰를 사용하면 컬트는 완성된다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될 때 그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을 우리 역시 자주 만나지 않았던가. 누군가와 토론을 할 때 아예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말을 차단하는 말들. 그것이 바로 사고 차단 클레셰다.


이 책에서 말한 그러한 '컬티시'가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아니다. 저자가 들고 있는 컬트의 예는 종교, 외계인을 믿는 집단, 다단계 판매, 피트니스(지금 우리 사회에서 하고 있는 피트니스와는 결이 다르다)와 같은 운동,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등등이 있다. 이것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컬트에 빠지게 했는지를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보여주는데,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컬티시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집단들, 다른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단정적으로 차단하는 말들. 우리 편 아니면 다 나쁜 쪽이라는 사고를 고수하는 집단들. 참 많다. 그런 집단들이 우세하게 되면 안 된다.


이 책에서 컬트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컬트의 위험성을 이 책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자가 말한 방법은 너무도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우리가 충분히 실행할 수 있게 한다.


우선 '적당히 신중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논리적 사고나 (다 이유가 있는) 감정적 직감을 포기하지 않도록 주의하'(322쪽)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생존의 본능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 감정적 직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직감에 질문, 논리적 사고를 덧붙이면 컬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저자는 '마음 한편에서는 동시에 여러 '컬트'에 속하'(324쪽)는 방법도 건강한 방법이라고 한다. 다양한 집단에 속해 있으면 편향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 컬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는 다른 관점을 들을 귀를 갖추라는 말과 통한다. 즉 열린 귀를 가지고 다양한 말들을 듣는다면 편향된 쪽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컬티시한 언어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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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 -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이매진의 시선 13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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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한 명이 쓰러진다. 그것도 생계를 담당하던 사람이. 그러면 그 가족의 생활은 붕괴된다. 생계를 담당하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족 중 누군가가 쓰러지면 또한 가족의 생활은 붕괴된다. 다는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그래도 유지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정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만큼 돌봄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시간? 가정 붕괴에 웬 시간?


당연한 일이다. 돈으로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돌봄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전적으로? 이것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돌봄에 할애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생활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


그러니 돈과 시간은 돌봄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한가? 이것은 돌봄을 사회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맡기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돌봄은 가족이 해야할 일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 쓰러지면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돌봄에 나서야 한다. 대부분은 여성들이 돌봄에 나서곤 했다.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서라도. 자발적인 경우도 있지만 분위기로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돌봄이 과연 돌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러한 돌봄을 한 사람은 돌봄의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자신은 가족의 돌봄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돌봄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희생해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 중에 젊은 사람이 돌봄에 전념해야 할 경우는 어떨까? 자발적인 경우도 힘든데 (이 책에 나온 경훈의 경우는 자발적이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에 해야 하는 경우(이 책에서는 성희의 경우)라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여기에 치료를 필요로 하는 돌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푸른엄마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아름, 동생이 알콜 중독에 빠져 있는 형수, 엄마가 암에 걸린 희준)을 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힘든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 그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이 책의 저자는 면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젊은이였다. 자신의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젊은이들이 돌봄을 하면서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고, 그런 힘듦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나 제도가 필요할까를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돌봄이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 돌봄을 공적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돌봄을 공적 노동으로 인정해주면 돈과 시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돌봄에 관해 통합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 등등을 이 책의 말미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방법들, 요즘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요양원, 요양병원, 데이케어센터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이들이 돌봄을 어느 정도는 책임지고 있지만 아직도 가정에서 책임지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


돌봄은 결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 공적인 제도로 돌봄을 뒷받침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게 된다.


나이듦. 남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어간다. 그리고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된다. 돌봄을 주듯이 돌봄을 받는 것도 당연한 것이 되는 사회, 그것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함께 겪는 일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바라는 사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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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의 과거청산과 기억문화
알렉산더 렌너.최광준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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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과거산을 잘한 나라라고 한다. 나치의 학살을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여러 제도들을 마련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할 수 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기억문화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산이 제대로 되었는가? 되었다는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여전히 친일파들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을 보면. 하긴 어떤 학자는 (아니 기관장인가? 학자라고 하기엔 좀~)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적이 일본인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나치 치하의 비시 정부 프랑스인들은 국적이 독일인인가? 지나친 비약이긴 하지만.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인들은 국적이 미국이었고?


이 정도로 과거산이 안 되어 있으니, 기억문화라는 말도 생소할 수밖에 없다. 기억문화는 무언가가 정리가 되고 그것을 사회 차원에서 기억하는 문화가 확립되었을 때 쓰는 말 아닌가. 친일파 문제조차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데, 무슨 기억문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일본과 얽혀 있는 군위안부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군위안부라는 말을 쓰지 말고 성노예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그것이 더 정확한 용어라고. 용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과거산, 기억문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자발적 매춘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으니, 과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상태에서 기억문화라니, 가당치도 않다. 기억문화가 확립되기 위해선 과거 청산이, 진실규명이 확실하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조건이다.


이 책은 독일과 우리나라의 교류를 기념하여 독일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로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한 것을 정리했다. 토론 내용은 이 책에 실리지 않았고 발표 내용만 실렸는데... 그 중에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꽤 있다. 특히 '기억문화'라는 말.


그렇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지 않은가. 기억문화라는 말은 바로 그것이다. 자신들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 그것이 바로 기억문화다. 그런데 기억문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렇다면 기억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건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일을 하는 위원회가 있다. 여전히 많은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많은 진실을 밝혀내기도 했으니, 기억문화를 확립하는 데 한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먼 과거만이 아니라, 2000년대 들어와서도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력을 지닌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일, 그러한 가해자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것도,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다루는 것도 그래서이다.


아직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도에 반한 죄'를 철저히 적용하는 일이다. 


과거 청산과 기억문화. 독일 역시 완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런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시민들이 더 잘 인식하고 함께할 때 진정한 '기억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다만, 학술적인 내용이라 내용이 많이 건조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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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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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에 대한 불신 시대. 법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는 좋지 않지만, 법이 무시당하는 시대 역시 좋지 않다. 


예전에 함무라비 법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법이라는 말을 듣고 와, 무시무시하다 했다가, 그것이 아니라 당시에 과도하게 자행되던 힘이 있는 자들에 의한 법 집행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 것, 자신의 죄보다 더한 벌을 받지 않도록 한 법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고서, 아, 법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내용을 다르게 바꾸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 말은 곧 인권보호라는 말이다. 인권보호가 법이 우선하는 가치여야 한다는 것, 인권보호를 우선한다면, 그 법은 당연히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을 것이고, 사익(私益)이 아닌 공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 첫부분에 바로 이러한 법에 대한 이야기, 법 중에서 검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법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세 집단, 판사-검사-변호사 중에 검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법조인이라도 검사가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판사가 아니라 검사라고? 판결을 판사가 하는데? 판결은 판사가 하지만 검사가 기소를 해야만 재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소를 할 수 있는 집단이 검찰뿐이었다. 지금은 공수처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일반 사건에 관한 기소 권한은 검찰만이 쥐고 있다. 여전히.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판사보다는 우선 검사가 더 어렵고 두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힘센 사람으로, 권력을 쥔 사람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면 검찰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자세로 일반인들을 대해야 하는가? 저자인 최정규는 '검찰제도의 핵심은 첫째는 시민들의 인권보호, 둘째는 권력으로부터의 분리다. 이 두 핵심을 가장 잘 담은 표현은 "공익의 대표자"다'(26쪽)라고 하고 있다.


인권보호? 검찰이? 아마, 인권이 유린당하는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 청)과 검찰(청)을 들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그곳에서 엄청난 인권유린이 있었고, 인권유린은 곧 권력과 유착된 검찰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권력의 대변인, 아니 권력의 사냥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이 물라고 하면 무는 역할, 수많은 조작 사건들을 보라. 또 힘없는 사람들의 사건은 무시하던 행태를 보라. (이 책에는 그러한 수많은 사건들이 예로 나오고 있다.) 그래서 검찰은 시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 조직이었다. 지금도 신뢰를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최근에 벌어진 여러 사례들을 보면 검찰은 더더욱 신뢰를 잃어가고 있으니...


저자가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 저런 검찰이 법을 집행한다고 여태까지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말인가 하는 한탄이 나온다. 저런 검찰을 민주화되었다고 했던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가만 놓아두었는지, 검찰 개혁, 검찰 개혁, 정말 말이 많았는데, 무엇이 개혁되었지 하는 생각.


검찰 개혁을 누가 하지? 당연히 정치권에서 하는 줄 알았다. 검찰 개혁을 내세우며 당선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래서 믿었다. 믿었는데, 믿음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간 변호사로 검찰과 법원을 많이 접했던, 피해자의 처지에서 검찰과 법원을 바라봤던 변호사의 말이다.


첫째, 검찰 개혁은 정치인의 손에 맡길 수 없다.

둘째, 검찰은 스스로 개혁될 수 없는 조직이다. (284쪽)


왜냐? 아직도 그들에게는 기소독점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독점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검사의 기소독점권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검사들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는 수사 진행 중 담당 검사와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 담당 검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면담 의무 규정, '시민 문전 박대 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263)라는 저자의 말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검찰청 민원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원실에서 민원을 제기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사건을 검사에게 이야기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변호사조차도 검사를 직접 만나기 힘들다고 하니, 물론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은 예외다) 상황에서 인권보호? 될 리가 없다. 


하여 검찰 개혁, 큰 것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앞에 언급한 검사의 면담 의무 규정이라든지, 또 민원실에 검사들이 직접 근무하게 한다든지 (하하, 검사님들이 그런 감정노동을 하시려고 할지?, 이 책에 보면 연구하는 법무연수원에 가는 것조차 좌천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시니), 기소를 독점하지 못하게 서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기소 대배심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또 검찰에 수사를 하게 하는 수사심의위원회법을 좀더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하든지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그래야 검찰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도 잘 보면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검찰은 스스로 하지 못할 테니까. 지금은 대의제 민주주의니, 정치권에서 이러한 제도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한 압력을 누가 넣을 수 있는가? 바로 시민이다. 시민들의 압력이 강해지면 정치권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표를 의식하니까. 그러니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시민이다. 저자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 없는 검사들]이란 말은 '시민들에게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285쪽) 검사들이라는 말인데, 이들도 자신들의 공을 내세울 때는 기자들을 앞세우고 언론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들의 얼굴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 또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이런 모습을 없애는 것, 그것부터 검찰 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제목을 다르게 읽었다. 얼굴은 곧 낯이고, '얼굴 없는'은 '낯짝이 없는'이라고.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다시 얼굴은 체면이고, 체면은 예의와 염치니' 얼굴 없는'은 '예의와 염치가 없는, 부끄러움이 없는'이라고 읽었다.


이젠 그런 얼굴 없는 검사들 없어져야 한다. 권력욕이 아니라 인권보호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검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 검사가 왜 없겠냐마는, 검사라는 집단이 지금까지 그러하지 않았으니, 도매금으로 넘어간 다른 검사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얼굴 없는 검사들은 열심히 일하는 검사다운 검사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시민들에게는 미안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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