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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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한 남자. 집을 나와 평생을 함께했던 자신의 배에 오른다. 배로 사람들을 실어날랐던 사람. 노르웨이, 피오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들을 이동시켜주었던 그. 이번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배에 오른다. 이젠 자신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게 하러.


그가 집을 나와 배(페리)를 몰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어떤 사람들은 주마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일생이 주욱 펼쳐진다고.


이 소설 역시 그렇다. 닐스 비크라는 사람이 죽음으로 가는 길에 배에서 만났던 사람, 자신의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 그가 페리로 이곳과 저곳으로 이어주었듯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이제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삶과 죽음 사이에 놓는다. 마치 징검다리처럼.


잔잔하게 펼쳐진다. 잔잔하다? 과연 그럴까? 멀리서 보는 바다와 산은 보기에 좋다. 어떤 위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아니다. 바다는 천변만화하고 온갖 위험이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다. 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인생을 바다와 산에 빗대는 경우가 많은데, 인생 역시 그렇게 굴곡이 많다. 멀리서 보면 평평하고 단조로워 보이겠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너무도 복잡하고 울퉁불퉁하다.


피오르 해안의 아름다움을 '자연'으로 뭉뚱그리고, '이곳의 자연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늘어놓(196쪽)'는 사람 앞에서 ,


'닐스는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있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것은 숲과 바위와 산과 강과 피오르지, '자연'이 아니라고 했다.'(196-197쪽)


이것이 인생이다. 마냥 좋아보이는 것만이 인생은 아닌 것이다. 닐스 비크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둔 닐스의 회상은 아름답다.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평화가 뒷부분에 가면 그의 인생에 평화만이 있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동생의 죽음, 딸들의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 등등. 여기에 뇌졸중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 이것은 결코 평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소설은 그의 삶이 결코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


아내와는 평생 사랑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만날 것을 기약하는 모습. 자식들의 삶 또한 자신들의 삶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는 모습.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삶에는 그 나름의 특별함이 있다. 우리 모두가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닐스 비크의 평범한 삶을 통해서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삶은 모두에게 특별함을, 특히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산 사람의 삶은 더더욱 특별함을, 그래서 그러한 삶이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페리를 운전하면서 만난 사람들, 죽어가면서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떠올리고, 또 이미 죽은 사람들을 배에 태우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는 닐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268쪽)


이런 통찰. 평범한 삶 속의 특별함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특별함이란 꼭 겉으로 드러내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닐스가 아내 마르타를 사랑하는 모습. 둘이 사귀게 되는 장면과 다시 죽음에 이른 닐스가 기다리고 있던 마르타를 만나는 장면. 


피오르는 어떻게 건너왔나요? 그가 물었다.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82쪽)


어떻게 피오르를 건너왔나요? 그가 물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왔죠. 그녀가 대답했다. (270쪽)


이 대화가 살짝 변주되면서 둘이 만나 함께 살게 되는 장면과 다시 죽음 이후에 함께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사랑.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이렇게 마르타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은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노트북]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만큼 격정적인 사랑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솔직담백한 사랑. 그리고 마지막까지 같이 하는 모습이 이 소설의 닐스와 마르타를 영화 [노트북]의 두 사람과 연결짓게 하고 있어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04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이 되었을 때 보았는데, 재개봉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어 찾아보니, 2016년, 2020년, 2024년에 재개봉이 계속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부부의 사랑 못지않게 닐스가 마르타를 사랑하는 모습이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영화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랑에서도 굴곡이 있음을, 그 굴곡을 넘어 함께했을 때 더 큰 사랑과 감동이 있음을 영화와 소설이 모두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든 감동적인 소설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이런 사랑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불의에 저항하는 닐스 비크의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든지, 닐스 비크에 연대해 결국 정의가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페리 동료들의 모습이라든지, 여러 사회문제도 닐스 비크의 삶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들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닐스 비크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이 바로 특별함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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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오드리 로드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았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 시를 쓰기도 했다고 했는데, 마침 시집이 번역이 되었으니 읽어봐야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겪은 일들이 시에 잘 드러나 있다. 물론 번역이 된 시라서 영어로 어떤 표현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오드리 로드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다.


  유니콘 하면 뿔 달린 말이다. 주로 하얀 식의 말을 떠올린다. 왜일까? 그만큼 백인 신화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을 주무르던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니콘 하면 하얀 색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진 백인들은 처음에 흑인이나 인디오들이 인간인지 아닌지 가지고도 자기들끼리 논쟁을 했다고 하니, 그것도 모자라 자연사박물관에 그런 사람들을 전시까지 했다고 하니, 그들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이야기, 신화들이 지금도 사람들 무의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고정관념에 틈을 낸 사람이 오드리 로드다. 유니콘을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그렇다. 왜 상상 속 동물인 유니콘이 꼭 하얀색이어야 할까? 유니콘 역시 다양한 색깔을 지닌 말로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러한 다양성이 인정받는 세상, 이것이 바로 오드리 로드가 꿈꾸었던 세상 아닌가 한다. 


'초상'(90쪽)이란 시에서 오드리 로드는 이렇게 말한다.


'강인한 여성들은 / 자신의 증오가 / 어떤 맛인지 안다 / 나는 언제까지나 / 바람 부는 곳에 / 둥지를 지어야 하겠지' ('초상' 중에서)


피해가지 않는다. 정면으로 맞서려 한다. 그것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나아가려는 오드리 로드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여성이 말한다'(24-25쪽)에서는 '나는 여성이었다 / 아주 오래전부터 / 내 미소를 조심하라 / 나는 오래된 마법과 / 정오의 새로운 분노 / 당신에게 약속된 / 드넓은 미래를 품은 위험한 존재 / 나는 / 여성이고 / 백인이 아니다.'('여성이 말한다/ 중에서)라고 하면서 자신이 여성임을 백인이 아님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러한 존재가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더라도 그것이 오드리 로드가 나아갈 길이다. 그래서 이 시집의 1부에서는 흑인 신화에서 언급되는 여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백인의 세계에,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갇혀 있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전승되어온 신화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신화를 신화로만 삼지 않고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로 나오게 하고 있다.


당당하게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려는 존재, 그러한 존재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 있다.


덧글


한 가지 바로잡을 것이 있다. 93쪽에 실린 시 '앨빈 형제'(93쪽)에서 '우린 함께 브라우니에서 나올 수 있었어'라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번역자 주에 브라우니(Brownies) : 초콜릿 케이크, 7-10세 또는 11세까지의 어린 아이들로 구성된 스카우트단 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드리 로드의 자서전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자미]를 읽어보면, 52-56쪽 정도에 앨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즉 이 시에서 말하는 브라우니는 학급에서 우수 모둠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속한 모둠을 말하는 것이다.


오드리 로드는 앨빈이 숫자를 읽을 수 있는 덕분에, 자신이 글을 읽는다는 능력과 합심하여 둘이 브라우니 모둠에서 페어리 모둠으로 옮겨가게 된 이야기를 이 부분에서 하고 있다. 그러니 스카우트 단이 아니라 학생들을 수준별로 구성했던 모둠, 그것도 보통 또는 열등하다고 인정한 아이들이 속한 모둠이 '브라우니'다. 이렇게 주를 달아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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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동물의 탄생 - 동물 통제와 낙인의 정치학
베서니 브룩셔 지음, 김명남 옮김 / 북트리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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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로 시작하자. 이 중에서 유해동물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은 동물은?

(쥐, 뱀, 생쥐, 비둘기, 코끼리, 고양이, 코요테, 참새, 사슴, 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쥐와 뱀은 망설이지 않고 유해동물로 꼽을 것이다. 그런데 사슴은? 우리나라에서 가끔 고라니가 출몰해서 밭작물을 먹어치우는 일들이 있으니, 고라니와 비슷한 사슴도 유해동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시에서 엄청난 배설물을 낙하시키는 비둘기도? 생쥐는 쥐와 구분하지 않을 테니, 유해동물이고...참새? 예전에 곡물을 먹어치운다고 박멸해야 할 새로 규정한 적도 있으니 당연히 유해동물? 고양이? 길고양이, 들고양이를 유해동물로 볼 수 있나? 누구는 유해동물로 보고, 누구는 먹이를 주어야 하는 귀여운 동물로 보고 있으니,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코끼리는?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유해동물에 대한 기준이 뭐지? 하는 질문도 있을 수 있고.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동물을 유해동물로 본다면, 이 정의에서 벗어나는 동물이 있을까?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는 말에는 시간과 장소가 개입한다.


즉 인간이 살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물들은 절대로 유해동물이 될 수 없다. 그냥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생태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러한 동물들 역시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단, 시간과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


이러한 동물들이 인간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오면 그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어떤 동물은 유해동물이 된다. 아니, 대부분의 동물이 유해동물이 된다. 인간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여겨지는 끼어듦이 아니라 인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끼어듦. 


이러한 불편한 끼어듦을 느끼게 하는 동물은 유해동물이 된다.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반달곰은 절대로 유해동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캠핑장에 들어와 인간을 위협하는 곰은 유해동물이 될 수도 있다.


산에서 사는 고라니는 우리에게 자연을 즐기게 해준다. 하지만 밭작물을 해치는 고라니는 유해동물이 된다. 어떤 사람은 뱀을 반려동물로 삼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뱀을 보기만 하면 피하거나 죽이려 들기도 한다.


결국 유해동물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다. '거리'의 문제다. 이런 '거리'는 사람들끼리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지나치게 가까워도 우리는 피곤함을 느낀다. 피곤함이 불편함이 되면 상대에게 불만을 품고, 상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같은 사람들끼리도 그런데 동물들이야... 앞에 언급한 열 종류의 동물은 이 책에서 유해동물로 취급받았던 적이 있었던 동물들이다. 그런 동물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피고 있는데...


인위적으로 환경을 바꾼 인간에게 책임을 묻기는 쉽지만, 진화론을 생각하면 동물들은 언제든 어떻게든 우리의 예측과는 다르게 진화할 수가 있다. 그들의 서식지도 한 군데로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런 점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이 해야할 일은 당연히 '공존'이다.


이 '공존'이 마냥 평화롭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온갖 동물들이 평화롭게 함께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연'이 아니다. 자연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군가의 삶이 유지된다. 그것이 자연이다. 그러니 '공존'에서 삶과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공존'이 최소한의 피해가 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은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만 하고, 지구가 오롯이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다른 존재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인간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공존'이다.


때로 인간의 것을 그러한 '자연'에 돌려줄 줄도 알아야 하고... 인간이 아무 것도 '자연'에 돌려주지 않고 자기 것만을 지니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것은 '공존'이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러한 관점을 지니게 된다. 다양한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또 저자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 이외의 존재를 쉽게 판단하는 일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동물들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참고로 이 책에서는 앞에 언급한 동물들을 모두 유해동물로 여기는 지역,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공존'에는 적당한 '거리'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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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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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도 한다. 관계를 통해서 삶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말. 이 관계라는 말에는 상대를 생각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내 말과 행동에 늘 상대를 끌어와야 한다는 말이 들어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남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학교에 다니면 다녀야 하고, 일하면 일해야 하고, 결혼하면 결혼해야 하며,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그런 생활들.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을 하는 보통 사람들. 보통 사람이라고 하면 지녀야 하는 생활과 감정들.


이런 관계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 받아들이기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그런 사람을 밀어내려 한다.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범주에서 제외시킨다. 그런 존재를 배제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들이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의 삶을 어떨까? 과연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까? 이 소설 [편의점 인간]은 그러한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도무지 남의 감정을 읽을 줄 모르는 인물 후루쿠라(게이코)는 보통의 삶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자신의 행동이 왜 남들에게 문제가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남들 눈에 띠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남에게 맞추려는 행동을 하고, 편의점이 생겼을 때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꽉 짜여진 매뉴얼대로 하는 편의점을 편하게 여긴다. 여기서는 개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간섭을 하려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정해진 규칙대로만 하면 되는 일.


다른 일을 찾지 않고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보낸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도 안 쓴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다른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것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후루쿠라.


나중에 다시 편의점에 들렀을 때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편의점이 운영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자신은 편의점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데...


편의점 인간. 어쩌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언가 같은 범주로 묶여야만 안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는 틀을 정해놓고,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은 잘못 살고 있는 것이라고, 남의 삶에 끊임없이 들어와 간섭하는 사람들. 그것이 옳은 일인 양, 당연한 일인 양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 다른 삶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사는 삶에 특정한 틀만이 있지는 않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 현대 사회. 같은 방향으로만 달려가야 하는, 주위를 둘러보기도 또 아예 달리기를 포기하지도 못하게 하는 현대인의 삶.


편의점 인간은 그러한 삶에서 다른 인간을 배제하고 있다. 자신이 할 일을 그냥 할 뿐이고, 그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한때 루저라고, 밑바닥 인생이라고, 패배자라고 하는 그러한 삶이 과연 패배자의 삶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정규직이 아니라고, 또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남들과 같이 사귀고 회식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잘못된 삶일까? 아니라는 것. 


남들 눈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아 보이는 삶 속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소설은 주인공은 후루쿠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삶이 있음을, 그 삶 역시 존중받아야 할 삶이라는 것을, 굳이 자신들의 삶의 범주 속에 집어넣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 경쾌한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우선 이 소설은 재밌다. 그냥 죽 읽힌다. 아주 빠른 시간에 읽을 수 있다. 어찌보면 패배자라 할 수 있는 후루쿠라의 삶을 안타까워 하면서 읽지 않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후루쿠라의 삶이 패배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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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4-18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이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

kinye91 2025-04-19 08:35   좋아요 1 | URL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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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를, 영국에서 주는 유명한 문학상을 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노벨문학상을 타는 데 이바지한 작품조차도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런 책을 읽힐 수 있느냐고 도서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운동을 하는 나라에서, 과연 이 책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을까?


있겠다. 왜냐하면 읽히기 전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또 대부분 책을 도서관에서 퇴출시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도, 제대로 읽지도 않으니까. (다 그렇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대부분은 그렇겠지만)


오드리 로드의 책은 꽤 번역이 되어 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나는 당신의 자매입니다], [블랙 유니콘]. 그리고 [자미]. 물론 오드리 로드에 대한 평전도 있다. 그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평등을 향한 오드리 로드의 주장을 담은 책이기에 도서관에 소장하는 것을 별로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평등을 반대하지는 않으니까. 지금은 성소수자에 대한 불평등을 대놓고 자행할 수 없는 시대니까.


하지만 성소수자로 자라나면서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 [자미]는 다른 대우를 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직도 성소수자 이야기가 전기로 나오면 그것을 읽는 학생들이 성소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렇지만 이 책은 도서관에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저자가 전기나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라는 이름 대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서 '자전신화'라고 했는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서전과 신화를 합친 말. 그렇다. 이 책이 쓰인 때가 1980년대 미국이지만 미국에서도 과연 이때 성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면에서 그러한 불평등,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이제는 성인이 된 흑인이자 여성이고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성소수자인 오드리 로드의 성장기는 거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성장하기 전에 스러져 간 사람이 많으니까. 잊힌 사람도 있고, 스스로 물러난 사람도 있으니, 이 책에서도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한 친구 제너비브(제니)의 이야기도 있듯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화'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사람'이라는 그러한 말이 생각나듯이, 오드리 로드는 살아남아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니,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자전신화'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더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으니, '위인전' 읽히기 좋아하는 이 나라에서 오드리 로드의 이 이야기는 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오드리 로드의 다른 책들 (사실 읽은 책이 [시스터 아웃사이더]밖에는 없지만)과는 다르게 20대까지 삶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즉 운동가로서의 오드리 로드의 주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그러한 운동가가 되는 오드리 로드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흑인으로 태어나 겪게 되는 일들, 흑인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온갖 차별들, 여기에 흑인여성 레즈비언으로 겪게 되는 더 많은 일들이 시간 순서대로, 오드리 로드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일, 감정, 사랑 등이 펼쳐진다.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는 오드리 로드를 만날 수 있으며, 그가 경험하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사랑으로 오드리 로드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불평등을, 불합리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이 책이 여성들에게만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는 레즈비언으로 나오지만 이는 오드리 로드가 그러한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고, 성소수자들이라면 대다수가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에, 성에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말고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고 그렇고.


이 책 제목이 된 '자미'는 캐리아쿠 말로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여자들로부터 받은 삶들이 오드리 로드를 '전사'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러한 '전사'가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떤 책을 두고 도서관에 있을 만하다 아니다는 논쟁도 할 필요가 없어야겠고.


20대 초반까지의 삶을 다룬 이 책을 먼저 읽고 오드리 로드의 다른 책들을 읽으면, 이 책에서 오드리 로드가 깨달아가는 것들이 어떻게 주장으로 발현되고, 사회를 바꾸는 '전사'로서 하는 주장의 맥락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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