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진영에서 김지하 시인을 영입한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단지 김지하 시인을 모셔 도움을 얻겠다는 목적일까? 아니면 김지하 시인의 지명도를 업고 지지율을 더 올리겠다는 얘기인가?
인혁당에 대한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후보가, 그 때 대척점에 서 있던 시인을 영입하려 한다니...
하지만 적어도 김지하 시인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면 과거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단절이 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설마, 김지하 시인이?
다시 얼마 뒤 김지하 시인은 박 후보 진영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는데... 공중파에서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내가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방송을 하지 않은 건지...
이 뉴스를 듣는 순간 김지하 시인의 "중심의 괴로움"이란 시집이 생각이 났다. 도대체 이 양반은 이제 정치와는 손을 놓고 지내는데도 이렇게 주변에서 괴롭히는구나. 김지하 시인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중심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나 해야 할까.
김지하 시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민주화 운동의 투사였고, 80년대가 넘어서서는 생명운동, 환경운동에 참여를 했으며, 그 다음에는 율려라는 이름의 영적 운동에 참여를 했었다. 그 다음에는 잘 모르는데... 94년에 낸 시집의 제목이 "중심의 괴로움"이고, 그 시집의 제목은 주로 "봄"과 관련이 있다.
시인이 돌고 돌아 다시 시작하는 봄으로, 즉 자신의 만년에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인의 새봄이라는 연작시 중에서 마지막 시인 새봄9를 보자.
새봄 9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솔, 1997 10쇄. 새봄9 전문
이 시에서 말하는 새봄은 대동세상이다. 모두가 하나되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 세상. 이것이 시인이 도달한 세계이다.
이런 세계에서 시인은 이 시집에서 모든 생명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반면에 모든 생명에서 인간은 제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어, 외로움이 짙게 배어나고 있다.
인간에게서 느낀 고독, 외로움이 다른 생명과의 교감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시인은 중심을 지키고자 하나, 중심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 흔들리기에 중심이라는 생각.
중심의 괴로움
봄에 / 가만 보니 /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 중심의 힘
꽃피어 / 퍼지려 /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 가 / 비우리라 피우리라.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솔, 1997 10쇄. 중심의 괴로움 전문
아래로부터 위로부터, 좌로부터, 우로부터 중심은 늘 당김을 당한다. 그 당김을 묵묵히 견디며 싹을, 꽃을 피워내는 일, 그것이 중심이 할 일이다. 그러한 중심은 흔들리고, 흔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꽃을 피울 수 없게 된다.
시인은 자신이 이제는 우주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아니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 이것이 지천명에 다다른 시인이 깨달은 점일테다.
이러한 우주의 중심에서는 좌니 우니, 나니 너니 하는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넌 나고, 난 너고, 좌는 우고, 우는 좌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다 중심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심에 속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미묘한 틈. 그 틈이 바로 다른 것이 생겨나는 힘이 된다.
틈
아파트 사이사이 / 빈틈으로 / 꽃 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 사람 몸 속에 /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 봄이 오는 것은 / 빈 틈 때문
사람은 / 틈
새일은 늘 / 틈에서 벌어진다.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솔, 1997 10쇄. 틈 전문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곧 '새봄'을 맞이할텐데...'틈'에서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중심의 괴로움'을 새생명의 탄생으로, 새세상의 탄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시인의 이 시집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질 '새봄'을 만들 '틈'을 우리가 '중심'을 잡고 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중심을 잡기가 참 힘들다는 것, 중심은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을 통해 새로움을 탄생시킨다는 것. 그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