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도시에서 더 심하다. 실질적으로 발표되는 온도는 서울이 늘 최고는 아니지만, 도심에서는 온갖 물질문명으로 인해 몸이 느끼는 온도는 엄청나다. 그것도 기분 좋은 더위가 아니라, 몸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기분까지도 끈적거려지는 더위다.
이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긴 나도 잘 버티고 있으니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도시의 일상을 시로 표현한 시집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다만 요즘 서점에서 시집 코너가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있듯이, 시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서 그런 시집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일 뿐이지.
언젠가 눈에 들어온 한 시 때문에 사게 된 시집이 바로 김기택의 "사무원"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도시의 삶을 이토록 냉철하게 관찰하고 표현하는 시인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단지 도시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시인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고 또 이를 시로써 표현해내고 있다. 이 관찰력, 이것은 애정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우선 내 눈에 들어온 한 시.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이 시를 읽으며, "그래, 정말 그래." 했었는데...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새없이 지저귀느라
한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틈이 없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2010 초판 10쇄.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전문
원시시대 때 맹수들의 위협을 피해 나무 위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 땐 땅을 밟는다는 행위는 위험에 자신을 내보내는 행위였을텐데... 이후 도구의 사용과 직립 보행으로 땅을 밟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행위가 되었는데... 고도화된 산업사회, 특히 도시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땅을 밟을까? 정말로 우리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지 않을까? 그나마 밟는 땅도 흙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땅이니...이렇게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 그는 도시인의 삶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의 삶은 인간적인 삶과는 좀 거리가 있다. 따라서 그가 도시의 생활을 시로 표현했을 때는 우리의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암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생활이 아닌 생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이젠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사무원'을 보자.
사무원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따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 초판 10쇄. 사무원 전문
(한자어, 순서대로 손익관리대장경, 자금수지심경, 장좌불립)
새보다도 땅을 적게 밟고 산 결과 그는 다리를 여섯개가 가진, 그러나 걷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맡겨야 하는 노동자들의 삶, 우리네 삶을 이토록 아프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그래도 이것은 좀 낫다. 뒤에 가면 이런 사무원은 결국 '화석'이 된다. 그 자리에 붙박혀 더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화석.
그는 언제나 그 책상 그 의자에 붙어 있다.
(중략)
겨울이 지나고 창 안 가득 햇살이 들이치는 봄날,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 나타난다. 구둣소리 힘차다.
그의 옆으로 와 멈추더니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는 기척이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 있다.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굽은 틍을 툭툭 친다.
먼지가 일어나고 등이 조금 부서진다.
젊은이는 세게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조그만 목이 흔들리다가 먼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이어 어깨 한쪽이 온통 부서져내린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그의 몸을 들어낸다.
재빠르게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새 의자를 갖다놓는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10쇄. 화석 부분
평생을 일해도 그는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는 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물에 불과하다. 그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그는 가차없이 버림받는다. 여기에는 피가 흐르는 사람의 모습은 없다. 젊은이는 그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 역시 세월이 흐르면 화석으로 변하고, 곧 치워져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네 도시의 삶은 이렇다.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런 희망을 어린이에서 찾는다. 어린이의 존재 자체가 싱그러움이다. 희망이다. 삶의 활력이다.
이 어린이들이 자랐을 때 사무원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시인은 그래서 이러한 희망과 희망이 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현재를 병치해놓고 있다. 희망 없음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신생아 3
아기의 맑은 울음소리
시냇물 소리로 듣는다
바람 소리로 듣는다
어두운 귀 열어
그 원시림을 한껏 들이쉬니
사각의 아파트 실내가 문득
깊어지고 울창해진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10쇄. 신생아 3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