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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노래처럼 - 노래로 부르는 시, 시로 읽는 노래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백창우라는 사람이 있다. 가수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어린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시인이라고 해야 할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우리 음악을 잃어간다는 생각에 어린이 음악, 즉 동요를 살리는 운동도 하고, 동시에 또는 짧은 시에 곡을 붙이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참 많은 시에다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게 하였는데...
며칠 전에 "나는 가수다(일명 나가수)"라는 방송을 봤다. 그 중에서 박완규라는 가수가 부른 곡은 "부치지 못한 편지".
노래를 부를 때 이 노래의 원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래는 고 김광석이 불렀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삽입곡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보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였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박완규의 노래도 좋았지만, 그 노랫말의 처연함이란. 그리고 그 노랫말의 처연함과 함께 영화의 총격 장면이 떠올랐고, 그것과 더불어 박완규가 팔목에 흰 천을 두르고 나온 이유가, 꼭 살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가사, 아니 시의 내용을 생각해 보라.
시와 노래, 얼마나 연관이 되는지, 이 방송을 본 사람은 다 알았으리라. 그리고 시가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음도 역시 알았으리라. 이와 관련지어서 이은미가 리메이크한 "세월이 가면"도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시가 얼마나 좋은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고.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시와 노래의 연관성을 따져보면 매우 많은 시들이 노래로 불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정지용의 "향수", "고향",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김광섭의 "저녁에", 여기에 마그마란 대학생의 그룹이 불렀던 "해야"(이 노래는 박두진의 "해"를 노래로 변용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또 김현성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리고 김지하의 많은 시들이 노래로 불려졌고, 이밖에도 많은 노래들이 있다.
또한 한 때 우리나라에 가사 대상이라는 시상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 좋다. 시적인 노랫말을 시상하는 프로그램이 한 때 존재했었다는 사실. 이는 시와 노래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시를 시라고 하지 않고, 시가라고 했다는 사실, 시에 노래 가(歌)가 붙는다는 사실은 시는 노래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아니, 사실은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대중가요를 어려워하지 않듯이 시도 대중가요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시가 대중가요처럼 우리들 일상생활에 들어와 언제든지 우리가 필요할 때면 흥얼거릴 수 있게 되는 상태를 꿈꾸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이 책은 시의 단순성, 쉬움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중가요도 우리가 쉽게 흥얼거리기는 하지만,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대중가요 중에 특정한 대중가요를 더 좋아하지 않는가. 특정한 대중가요를 더 좋아할 때 왜 더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정말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요즘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그냥"이란 말도 있지만, "그냥"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게 한다.
대중가요도 이렇듯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 시도 마찬가지다. 대중가요만큼 많은 종류의 시가 있고, 그 시들은 그마다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시는 이래서 좋고, 어떤 시는 저래서 좋다는 말을 우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래에도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듯이 시에서도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하다. 시를 좋아하는데도 "그냥"은 하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시를 좋아하는지, 이 시의 어떤 면이 내 마음에 와닿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 책은 그러한 시의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을 노래와 비교하여, 또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들을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외우라고 하지 않고, 그냥 시에는 이런 면이 있다. 이런 면이 어떻게 시에 드러나는지 한 번 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시들을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다는 지적인 면에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다양한 시들을 읽을 수 있다는 시의 감상 면에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가끔 아는 시도 나와 마음을 더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많은 시들이 나오지만, 이 시의 뜻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시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시를 통해 지은이는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시의 모습을 보면서 아, 시는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다.
아마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 연재되었다는 지은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미 시에 대해서 알만큼 안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시에 대해서 어렵다고만 생각한 어른들이나, 또 시는 시험 공부만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 그리고 시는 나하고는 관계없어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썼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중가요를 함께 예를 들고 있으니 더 친숙하고 이해하기 쉽다.
시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이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이다.
덧글
93-94쪽 정희성의 '얼은 강을 건너며'란 시를 인용했는데 명백한 오타가 있다. 시인이란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에도 신경을 집중시키는 사람들인데, 시를 인용할 때 오타는 치명적이다. 다른 글들과는 달리 그래서 시를 인용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12행에 '얼음을 꺼서 물을 마신다'고 되어 있는데, 누가 봐도 '얼음을 깨서 물을 마신다'의 오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07쪽의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 은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깃발은 소리없는 아우성, 손수건, 순정, 백로,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이라고 했는데, 백로는 좀 이상하다. 그 앞부분의 구절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인데 여기서 은유는 순정이다. 그런데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는 구절에서는 은유가 백로라니, 왜 애수가 아닌가. 백로는 애수를 뒷받침하기 위한 직유 아니던가. 시의 구조상으로 보아도 깃발의 은유는 백로가 아닌, 애수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