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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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이 또는 예언자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는 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들의 모습이 신비에 가려지지 않았기때문이다. 무릇 선지자란 신비함에 감싸여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일반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던 보통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이를 왕에게 적용하면 왕은 어느 정도 신비에 싸여 있어야 한다. 왕이 신비한 존재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왕의 소소한 일상을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쉽게 만나면 안된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만난다면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드러날 테고, 그렇다면 왕도 신비한 존재가 아닌, 우리와 다름없는 보통사람이라는 인식이 들어 왕이 통치하는데 문제가 생기게 되기 쉽다. 지금처럼 지도자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혈통,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그 시대에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궁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 자체가 왕의 일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고, 이는 왕의 신비한 모습을 벗겨내는 일이니, 거의 역모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여 천년을 넘는 궁녀의 역사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간헐적으로 왕조의 멸망이나, 또는 반역사건과 관련이 있는 궁녀의 기록을 통해서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궁녀란 제목만 보면 무슨 왕조 비사(秘史)나 야사(野史)라는 생각이 들기 쉬우나 이 책은 그러한 비사나 야사가 아니라, 궁중의 문화 중에서 궁녀에 중심을 둔 미시사라고 해야 한다. 역사에서 예전에는 커다란 사건 중심이나 인물 중심의 서술이 중심을 이루었다면 최근의 역사서에서는 작은 일, 소소한 일상생활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려 천 년을 넘게 존재했던 집단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리라. 그만큼 궁녀에 대해서는 연구하기도 힘들었다는 얘기가 되기고 하고.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궁녀에 대한 선행 연구는 조선말기, 더 정확하게는 대한제국 말기에 궁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증언이란 어느 정도의 사실과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게 마련이고, 또한 인간의 기억이란 자기 중심적으로 내용을 엮어가기 마련이어서, 증언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자료들을 보충해야지만 정확한 역사가 재구성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증언도 참조하지만, 다양한 역사 기록들을 찾아 궁녀에 대한 종합적인 역사 서술을 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궁녀도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궁녀에 대한 역사 서술을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자료는 현재 구하기 힘든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적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조선시대에 한정해서 궁녀에 대한 종합 서술을 한다. 궁녀에 대한 종합 역사서라 할만한다. 그렇다고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학술적인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았던 궁녀들의 삶에 대해, 이 책은 "궁궐에 핀 비밀의 꽃"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이들은 꽃은 꽃이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꽃이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오직 한 사람, 아니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왕, 왕비, 대왕대비, 세자, 세자빈, 후궁 등)에게만 보이는 꽃이어야 한다. 보이는이 아니라, 보여야 하는, 그래야만 같은 궁녀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로가는 그런 꽃이었다고 한다. 이런 꽃이 남의 눈에 띄고, 남에게 가려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행동, 역모와 같은 행동으로 취급되어 극형에 처해지는 꽃이었다고 한다. 단지 그들의 신비를 유지하기 위해서.

 

좋게 말하면 궁녀는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 특히 거의 종신직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궁녀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 특히 상궁이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으리라. 다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또 소위 말하는 줄을 잘못 서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궁녀의 조직과 하는 일, 그리고 직급, 월급, 또 역사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궁녀, 궁녀들을 선발하는 방법, 궁녀들이 어떤 계층에서 많이 들어왔는지 등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한 시대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궁녀라는 집단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마지막에 궁녀의 성과 사랑까지. 우리가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이야기하는 세종이 여자들에게만은, 특히 궁녀들에게만은 얼마나 가혹한 군주였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었을지는 모르나 사람으로서의 존엄한 생활은 거의 힘들었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사라진 궁녀. 그러나 이러한 집단이 완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는 존재, 그들의 삶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신비가 걷힌 왕은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일반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왕의 신비를 도와주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궁녀를 비롯한 궁궐에서 일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그 때는 왕이 신비를 돕기 위해 이들의 기록이 존재하면 안되었겠지만, 이제는 이들도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복원되어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작업을 이 책이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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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가 빚어낸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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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선정적이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한 번쯤은 호기심에 보게 만든다. 내용은 선정성보다는 과학기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기술들의 원천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이 전쟁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것이 포르노와 그리고 햄버거로 통칭되는 패스트푸드와는 관련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전쟁을 통해서 발달한 과학기술이 상업화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하는데, 이 대중화를 가장 잘 실현해준 것이 바로 포르노라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호소하는 포르노 사업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게 한다. 이러한 소비를 유도하는데 포르노는 지대한 공헌을 하고, 이런 포르노로 인해 더 간단하고 더 저렴한 기술적 성과들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대형 패스트푸드 점도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 과학기술을 이용한다고 한다. 패스트푸드라는 것이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게 하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맛은 유지하면서 더 빨리 소비자에게 갖다줄 기술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그렇다면 이러한 패스트푸드업체는 현대의 과학기술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용으로 인해서 과학기술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포르노나 패스트푸드보다는 전쟁이 과학기술의 근본적인 원천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이러한 과학기술들이 무기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고, 또한 과학자들이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을 하며, 당장의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절박함 없이 또한 정부에서 많은 연구비를 받으며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과학기술들이 전쟁과 관련이 된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이 기술들의 쓰임을 상업적 목적으로 전용하고, 사업적 이유 때문에 더 간단하고 더 편리하고 더 싼 기술들을 개발하게 되는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1900년대 이후의 기술은 거의 다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그리고 이들이 폭발적으로 사용되는 데는 포르노와 패스트푸드가 있음을 알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전쟁에 관련된 무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연구도 계속 되고 있을테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제는 로봇에 대한 연구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이런 과학기술이 과연 인류에게 행복을 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기술을 중립적인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고 판단이 되지만, 과학기술이 과연 중립적일까 하는 생각을 우리는 해야 한다. 인류를 위해 살상무기로 쓰이던 것이 인류를 구원하는 기술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인류를 파멸시킬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과학기술의 발달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겠지만, 이 흐름이 반드시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과학시술 시대에 책임의 원칙을 이야기했던 한스 요나스처럼, 또는 유전자 변형 식품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과학기술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고민을 정립해가는데, 과학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이 책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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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거나, 자세히 볼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있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삶이 삭막해지고 있다. 나 이외의 다른 것들에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득, 내 삶이 너무 삭막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정록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내 주변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단지 내 삶의 주변이 아니라, 내 삶이라는 사실을 이 시집은 알려주고 있다. 작고 하찮은 것들이라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서도 시인은 관심을 주고 있다. 그것들을 자신으로 받아들일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마음을 비웠다는, 얘기가 되리라. 그래서 시인은 자기와 사물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리라. 마음이 팍팍해졌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난 山門이고 싶다


난 요즘 散文이다

散文이라서 장황하다

남이 없다

오직 내 얘기만 길―게

늘어놓고 있다

散文이라서 흩어진다 여기저기로

나로 집중하지 못 하고

수다스러워진다

山門이라면

더 많이 조용하고

더 많이 포용하고

더 많이 기다리고

더 많이 이해할텐데

山門!

그윽한 향기가

나를 감싼다

山門은 배척하지 않는다

山門은 재단하지 않는다

山門은 오라지도, 가라지도 않는다

오직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散文의 수다는 공허(空虛)한데

山門의 침묵은 공명(共鳴)이다

난 山門이고 싶다

詩가 되고 싶다

 

산문(散文)으로 장황해지지 않고, 산 속에 있는 문처럼 그윽하게 존재하고 싶단 욕구. 이를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시 바라본다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물론 "의자"란 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잘 알려진 의자란 시 말로, "더딘 사랑"이란 시도 마음에 머문다.

 

더딘 사랑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이정록, 의자, 문학과 지성사, 2012년 초판 7쇄 67쪽 더딘 사랑 전문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의 앞부분에 있는가, 아니면 뒷부분에 있는가.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순간이라고 나를 합리화해야 하는가, 아니다. 단 한 번의 윙크도 한 달이 걸린다는 이 달처럼, 내 삶은 길고 긴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보고, 남도 보고, 내 주변에도 관심을 가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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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2 - 다큐멘터리 만화 시즌 1 다큐멘터리 만화 2
최규석.최호철.이경석.박인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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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나온 만화집이다. 그것도 그냥 만화라고 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만화라고 하는. 읽는 또는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출판계에서 첫번째에 이어 두번째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반갑다.

 

만화라고 하면 읽는다기보다는 본다고 하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예전에는 만화를 보고 있으면 만화 따위나 본다고, 책 좀 읽으라고 야단을 맞았는데, 그래서 만화는 가볍고, 그냥 한 번 보고 잊어버리면 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화 역시 예술의 한 종류이다 보니, 여러 종류의 만화들이 등장하는 모습은 당연해야 하는데... 참.. 이 중에 우리네 삶이 녹아들어 있는 만화를 다큐멘터리 만화라고 지칭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들도 많이 생겨났고, 또한 그러한 만화를 출판해주는 출판사도 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문화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도 되리라.

 

만화는 그림을 보는 재미가 우선이다. 그림을 통해서 친숙하고 쉽게 내용에 다가간다. 그리고 만화를 이루고 있는 칸과 칸 사이에 숨어 있는 시간의 흐름, 동작의 흐름 등을 자연스레 읽어내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독립된 한 칸에서도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 또 그 그림을 뒷받침하는 글들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만화는 단절되어 있되, 연속되어 있다. 정지되어 있는 장면들로 영화같이 연속되어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람사는 이야기2에서는 우리네 삶과 밀접한 이야기가 그야말로 다큐멘터리 만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잘 나타나 있다.

특집과 기획, 그리고 연재되고 있던 만화들까지...

 

20대의 처절한 삶(하마탱으로 대표되는 젊은이의 정착할 방 찾기와 다단계로 나름대로 삶을 치열하게 살려는 젊으니)과 20대에 겪었던 민주화 투쟁으로 인한 투옥생활이 특집에서 나오고 있으며, 기획에서는 시위와 법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보수집회 답사기는 웃음을 머금게 하면서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지형을 알 수 있게 해주는데, 그 내용 중에서도 아이를 등장시켜 작가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강원도 보궐선거에서 있었던 문제를 인터뷰식의 만화로 만들어 공권력의 문제와 우리의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다루고 있고,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것을 비롯하여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벗어나 가시밭길을 가는 변호사들을 만화로 다루고 있다. 그만큼 만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거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몸짱 열풍과는 달리 건강한 몸을 가꾸어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몸 가꾸기를 하는 과정을 그리는 만화도 있고, 도심 속 식물이라든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나무 이야기, 그리고 재일교포 2.5세의 한국 체험 등도 만화로 나오고 있으며, 역사인물들(서양과 우리나라)도 나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내용이 이 만화집에 등장하고 있다.

 

만화의 지평이 어느까지 늘 수 있는지, 그리고 만화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유용한지,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만화 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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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노래처럼 - 노래로 부르는 시, 시로 읽는 노래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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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라는 사람이 있다. 가수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어린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시인이라고 해야 할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우리 음악을 잃어간다는 생각에 어린이 음악, 즉 동요를 살리는 운동도 하고, 동시에 또는 짧은 시에 곡을 붙이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참 많은 시에다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게 하였는데...

 

며칠 전에 "나는 가수다(일명 나가수)"라는 방송을 봤다. 그 중에서 박완규라는 가수가 부른 곡은 "부치지 못한 편지".

 

노래를 부를 때 이 노래의 원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래는 고 김광석이 불렀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삽입곡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보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였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박완규의 노래도 좋았지만, 그 노랫말의 처연함이란. 그리고 그 노랫말의 처연함과 함께 영화의 총격 장면이 떠올랐고, 그것과 더불어 박완규가 팔목에 흰 천을 두르고 나온 이유가, 꼭 살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가사, 아니 시의 내용을 생각해 보라.

 

시와 노래, 얼마나 연관이 되는지, 이 방송을 본 사람은 다 알았으리라. 그리고 시가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음도 역시 알았으리라. 이와 관련지어서 이은미가 리메이크한 "세월이 가면"도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시가 얼마나 좋은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고.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시와 노래의 연관성을 따져보면 매우 많은 시들이 노래로 불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정지용의 "향수", "고향",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김광섭의 "저녁에", 여기에 마그마란 대학생의 그룹이 불렀던 "해야"(이 노래는 박두진의 "해"를 노래로 변용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또 김현성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리고 김지하의 많은 시들이 노래로 불려졌고, 이밖에도 많은 노래들이 있다.

 

또한 한 때 우리나라에 가사 대상이라는 시상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 좋다. 시적인 노랫말을 시상하는 프로그램이 한 때 존재했었다는 사실. 이는 시와 노래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시를 시라고 하지 않고, 시가라고 했다는 사실, 시에 노래 가(歌)가 붙는다는 사실은 시는 노래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아니, 사실은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대중가요를 어려워하지 않듯이 시도 대중가요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시가 대중가요처럼 우리들 일상생활에 들어와 언제든지 우리가 필요할 때면 흥얼거릴 수 있게 되는 상태를 꿈꾸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이 책은 시의 단순성, 쉬움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중가요도 우리가 쉽게 흥얼거리기는 하지만,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대중가요 중에 특정한 대중가요를 더 좋아하지 않는가. 특정한 대중가요를 더 좋아할 때 왜 더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정말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요즘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그냥"이란 말도 있지만, "그냥"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게 한다.

 

대중가요도 이렇듯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 시도 마찬가지다. 대중가요만큼 많은 종류의 시가 있고, 그 시들은 그마다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시는 이래서 좋고, 어떤 시는 저래서 좋다는 말을 우리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래에도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듯이 시에서도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하다. 시를 좋아하는데도 "그냥"은 하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시를 좋아하는지, 이 시의 어떤 면이 내 마음에 와닿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 책은 그러한 시의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을 노래와 비교하여, 또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들을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외우라고 하지 않고, 그냥 시에는 이런 면이 있다. 이런 면이 어떻게 시에 드러나는지 한 번 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시들을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다는 지적인 면에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다양한 시들을 읽을 수 있다는 시의 감상 면에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가끔 아는 시도 나와 마음을 더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많은 시들이 나오지만, 이 시의 뜻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시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시를 통해 지은이는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시의 모습을 보면서 아, 시는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다.

 

아마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 연재되었다는 지은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미 시에 대해서 알만큼 안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시에 대해서 어렵다고만 생각한 어른들이나, 또 시는 시험 공부만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 그리고 시는 나하고는 관계없어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썼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중가요를 함께 예를 들고 있으니 더 친숙하고 이해하기 쉽다.

 

시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이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이다.

 

덧글

 

93-94쪽 정희성의 '얼은 강을 건너며'란 시를 인용했는데 명백한 오타가 있다. 시인이란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에도 신경을 집중시키는 사람들인데, 시를 인용할 때 오타는 치명적이다. 다른 글들과는 달리 그래서 시를 인용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12행에 '얼음을 꺼서 물을 마신다'고 되어 있는데, 누가 봐도 '얼음을 깨서 물을 마신다'의 오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07쪽의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 은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깃발은 소리없는 아우성, 손수건, 순정, 백로,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이라고 했는데, 백로는 좀 이상하다. 그 앞부분의 구절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인데 여기서 은유는 순정이다. 그런데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는 구절에서는 은유가 백로라니, 왜 애수가 아닌가. 백로는 애수를 뒷받침하기 위한 직유 아니던가. 시의 구조상으로 보아도 깃발의 은유는 백로가 아닌, 애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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