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혁명 - 교육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 미룰 수 없다
교육혁명공동행동 연구위원회 지음 / 살림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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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교육에는 혁명이 필요하다. 단순한 개혁이나 개량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한 번에 확 갈아엎는 혁명이 필요한데... 과연 지금은 혁명이 가능한 시대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참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시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성공했다고 하는 개혁은 없었다. 그러므로 혁명이 필요하다. 이 논의에는 동의한다.

 

혁명을 하는 방법은 교육의 공공성 확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사적인 자본에 맡기지 말고, 공적 자본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교육 혁명이 시작되고, 이 혁명의 첫 단계로 대학평준화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학벌사회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우리나라 대학들은 서열이 확연하게 나뉘고 있으며, 이 서열이 너무도 공고해서 삶의 전반을 좌지우지한다. 유럽의 나라들처럼 평준화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를 하기 위해서는 역시 교육의 공공성이 필요하다는 논의다.

 

개인 재산으로 취급되고 있는 대학을 국가에서 평준화한다 만다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평준화시키고, 그 다음에는 중등교육을 평준화시킨다. 자사고와 특목고 등을 없애고, 학생의 선택권도 없애며, 거주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학생들을 배정하며, 시설이 열악한 학교에는 더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교육의 질이 동등해지도록 노력하자고 한다.

 

또한 3년, 3년씩 분리되어 있는 중고등학교를 6년으로 통합해서 운영하자고 한다. 그러면 소단위 학급이 되고, 오히려 공동체 정신이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다음으로는 정책 면으로 나아가서, 교육부를 해체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자고 한다. 교육청도 교육지원센터로 바꾸고... 좋은 말이다. 군림하는 관료집단이 아니라, 학교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집단으로 바꾸어야 한다.

 

전면 무상교육과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당연한 일인데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고, 또 학교의 비정규직 문제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렇듯 교육의 전반적인 면에서 교육 혁명을 하자고,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나름대로 구체적인 방안이 나왔다는데 이 책의 의미가 있는데...

 

다만, 너무도 좋은 이야기는 어쩌면 하지 않은 이야기하고도 같을 수가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혁명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교육혁명공동행동 연구위원회에서 내놓은 방안이라는데, 이들의 방안에서 아쉬운 점은 방안은 제시했으나 이 방안을 어떻게 강제해낼 것인지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산부터 시작하여 평준화 문제는 정말로 강한 반대 세력이 있다. 이 반대 세력이 너무도 강해서 우리는 좋은 방안을 제시하고도 늘 제자리 걸음을 하지 않았던가.

 

청사진의 제시도 좋지만, 하나부터 실현해 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부터 해야 한다. 즉 말로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말로만 그친다면, 이 책 역시 방안의 제시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교육에 대해서 또 하나의 허무주의를 낳을 뿐이다.

 

정말 혁명을 하고 싶다면, 이 책에서 나온 방안들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아니면 가장 시급한 일부터 손을 대야 한다. 그 분야에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집중해서 관철시켜 내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일을 하기가 쉬워진다. 한 번에 모두라는 생각을 하다간 혁명은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꼬를 틀 수 있는 방안부터 힘을 집중해야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교육 혁명 방안들, 두고두고 생각해 둘 필요는 있다. 꿈이 없는 것보다는 꿈이 있는 것이 더 낫고, 이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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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 - 학생인권이 교육에 묻다 오늘의 교육 총서
한낱.최형규.조영선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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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장 인권적인 교육이 가장 교육적인 교육이다. 그러면 동어반복이 되나?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생각하게 하는,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이라는 제목.

 

이런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어쩌면 당연한 조례를 가지고 반대파와 찬성파가 나눠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역이 몇 개의 지역이 있지만, 그 지역들에서도 과연 인권조례가 잘 지켜지고 있나 하면 그렇지 않다는데 이 책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한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인권의 한계가 교육의 한계다.

 

이 구절을 보고, 샴 쌍동이가 생각났다. 늘 함께 붙어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 교육과 인권도 그러한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우리는 억지로 어느 한 쪽을 떼어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특히 교육이라는 이름을 살리고, 인권이라는 부분을 없애는 쪽으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인권에도 계급과 계층이 있나? 하는 생각.

 

도대체 학생인권과 교권이 어떻게 상충된다는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다른 개념을 동일한 수준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 책에서는 교권과 학생인권은 다른 개념이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는데, 그럼에도 학생인권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서는 아무래도 인권이라는 상위 개념에 학생이라는 하위 개념이 속하고 있단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인권은 사회 계급, 계층, 신분고하, 빈부, 인종, 연령 등을 막론하고 인간이 지녀야할 보편적인 권리이다. 이 보편적인 권리는 어리다고, 가난하다고,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다른 민족 출신이라고, 다른 계급에, 다른 계층에 속해 있다고 제한되거나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왜 학생인권조례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얼마나 학생 인권이 지켜지지 않았으면 이런 조례까지 생길까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학생인권조례만을 이야기한다면 학생이 아닌 집단은 자기들 나름대로 또다른 인권조례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

 

오죽 세계인권선언이나 유엔아동청소년권리규약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면, 얼마나 유명무실했으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생각을 했나 싶어, 인권 후진국인 우리나라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러한 인권선언이나 규약들이 우리 사회에 관철되게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하지 못했기에 학생이라는 특정한 집단을 놓고, 인권조례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자조감이 든다. 그러니 학생인권과 교권을 등치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

 

자, 이러한 보편적인 얘기를 그만한다면,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어떻게 교육에 들여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또한 문서로만 남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동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고민들을 모아 놓았다.

 

물론 학생이라고 하니까 학교 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고,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거나 실천해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읽으면서 내 학창시절,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학창시절,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 또 인권조례도 많이 사문화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인권은 위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인권은 쟁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권을 실현할 것인가, 이를 고민해야 한다.

 

학생에게도, 그리고 교사에게도, 또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인권의식을 가지며, 인권을 지키려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교육이 해야 할 일이다. 교육에서 인권을 떼어내면 안된다. 떼어낼 수도 없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은 학생인권에 대해서 강조점을 찍고 있지만, 이는 곧 모든 이의 인권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인권, 그거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내가 하기 싫은 것,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이는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지혜 아니던가.

 

여기에 한 가지, 인권은 어느 집단, 어느 계층, 그리고 어느 나이대, 어느 경제상태, 어느 민족에 따라 다르지 않다는 사실. 우리는 누구나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이 사실이 교육이 되지 않으면 인권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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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없는 미래로 - 출구는 자연에너지다
이이다 데쓰나리 지음, 한승동.양은숙 옮김 / 도요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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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자력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중. 한 때의 관심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생각으로 원자력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원자력 전문가처럼 과학에 정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원자력에 대해서는 우리의 상식 수준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원자력이 왜 대도시에 건설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원자력이 청정에너지 발전이고, 안전한 운영을 할 수 있는 시설이라면 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필요로 하는 대도시에 건설하지 않는가라는 질문. 여기에 대한 대답은 뻔하다.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오지에 건설하고 있고, 먼 거리에 있는 대도시에 에너지를 수송하기 위해 다른 부대시설이 또 필요하다는 답이 나온다.


한 때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 저장소를 건설하는 문제로, 핵폐기물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님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이니, 지역이기주의니, 다른 사람의 선동에 넘어간 순진한 사람들이니 하는 말들이 있었다. 이 때 어느 지식인이(누군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원자력 폐기물 저장소가 안전하다고 하면 서울 한 복판에다 건설해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다들 미친 소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는데... 안전하다면 왜 서울은 안 되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반대가 기정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더라도 우리 삶을 위협하는 발전은 하지 않아야 하지만 말이다. 원전 반대의 역사도 40년이 넘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대안이 제시되고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대안은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한다.


이웃 일본에서도 원전 말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그런 결과가 이번에 책으로 나왔다. 이미 실천하고 있고,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어서, 원전에 대한 대안이 뭐냐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야라고 제시해줄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제목은 “원전 없는 미래로”라고 하지만 작은 제목이 “출구는 자연에너지다”이다. 즉 자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에너지로 발전을 하면 우리에게도 지구에게도 모두 좋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에너지, 생소하다면 생소한 개념이지만, 이는 오래된 미래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사용하던 에너지다. 이를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연관지어 더욱 발전시킨 것이 자연에너지 발전이다.


태양력, 풍력, 지열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원천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방법. 이미 몇 십년 해오고 있으며, 또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많기에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발전을 부안 쪽에서 하고 있다고 들었고, 상당히 성공적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만큼 자연에너지는 앞으로 우리가 발전시켜나가야 할 에너지이고,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자연에너지에 대한 오해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하여, 자연에너지의 역사, 그리고 일본에서의 실천 등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각 정당들의 강령에 자연에너지에 대한 정책이 들어가게 압력을 넣어야 한다. 


다른 나라처럼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태양광 발전을 의무로 한다든지(서울에 있는 고층빌딩들에 태양광 시설을 한다면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주택을 지을 때는 단열에 신경을 써서, 스웨덴처럼 난방을 하지 않아도 겨울에도 견딜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지역 조례로 제정해서 실시한다면, 동시에 하지 않아도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마을들이 점점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너지는 결코 거대 산업이 되면 안 된다. 이는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서부터 시작한 자연에너지 사업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역에서부터 시작한 자연에너지 발전이 점점 확산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원자력에 의존하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환경도 점점 좋아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책의 말미에 있듯이 우리는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 않았던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에너지 효율만 높여도 우리들이 희생하지 않고도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원자력 르네상스라고 하는 이 시대, 다른 나라들은 원자력 르네상스를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정부 스스로 포기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부가 포기할 수 있게, 다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제시 방법은 자연에너지에 있고, 자연에너지 사업은 기존 기득권을 가진 사업체들과 꼭 상반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기존 업체들과도 충분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함께 한다면 자연에너지로 우리의 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먼 나라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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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강은주 지음 / 아카이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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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011년. 세상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일어난 해. 안전하다고 말하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야 했던 해. 그리고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진행이 되고 있는 문제가 발생된 해.

 

체르노빌, 후쿠시마. 아마도 이 도시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 가장 큰 재해 중의 하나로.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재해 중의 하나로 말이다.

 

체르노빌은 사고가 발생한 지 26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살 수 없으며,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는 아직도 제대로 폐쇄되지 않았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여기에 2011년 겨우 1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체르노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의 일처럼 취급했다.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오히려 우리나라 원자력을 세계에 수출할 절호의 기회라고 떠들어대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멈추거나 앞으로 어떻게 폐쇄할 것인지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하겠다고, 지금의 23기도 부족해서 더 짓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지니고 있는지. 이번 총선에서도 원자력발전의 문제는 강하게 제기되지 못했고, 원자력발전 폐기를 들고 나왔던 녹색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원자력 발전이 거대한 집단들의 연합으로 작은 힘으로는 막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켰다고 할 수 있다.

 

체르노빌에서도 후쿠시마에서도 사고를 예측하지는 못했다. 안전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도 사고가 났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3개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라도 큰 사고가 난다면 이는 거대한 재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텐데...여기에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겠다니.

 

체르노빌, 후쿠시마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결국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고, 발전 중에도, 또 사고가 난 뒤에 더 큰 희생을 당하는 존재들은 평소에도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의 피해만을 생각하기 쉽다.

 

폭발했을 때의 피해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러한 폭발 사고는 몇 십년이 지나도, 아니 몇 백년이 지나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뒷부분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굳이 폭발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자력발전소는 건설과정부터 작동 중일 때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삶터를 잃어야 하는 사람들에서부터, 한 마을 공동체가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지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 인근 마을에서는 송전탑 문제로 또한 자신들의 생활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고, 또한 보관한 방법도 별로 없어 먼 미래 세대에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명한 오만한 기술이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현실. 그래서 대안이 뭐냐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 기술은 우리가 사용해서는 안되는 기술이라는 인식을 먼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적정기술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기에 하루바삐 다른 기술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고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에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단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원령공주"가 생각났다. 인간이 만든 무기 총으로 인간이 자연의 신을 살해하는 순간, 자연이 처절히 죽어가는 장면. 거기에서 멧돼지 지도자가 했던 말. 점점 자신의 종족들이 작아지고 있다는. 인간의 힘이 늘어날수록 자연의 힘은 약해지고, 자연의 정복이 가속화될수록 인간도 역시 제대로 살기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데... 총이 아니라 원자력은 그야말로 핵임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영화의 끝장면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데...

 

원자력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공존, 아니 생존을 위해서는 폐기되어야 할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나 할까.

 

무지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원자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 실상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원자력을 핵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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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멈춰! - 보살핌 우정 배움의 공동체 평화샘 프로젝트 2
문재현 외 지음 / 살림터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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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뜨거운 화두다.

 

학교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기도 하고, 또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고 경찰들까지 배치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기엔 다들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배움에서도 생활교육에서도 학교에 그리 만족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보낸다. 아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찾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도 행동도 학교에 규정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존재인가? 자아실현을 하게 하는 장소이어야 하는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알려주지 않는 공간이 학교이다. 학교는 지식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지식 습득에 뒤처지면 생활도 뒤처지게 된다. 자연스레 그런 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집단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결국 성적, 성적 하는 학교가 폭력을 조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폭력은 반복될 뿐만이 아니라 확대재생산된다.

 

청소년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폭력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단순한 한 때의 다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역시 정신적으로, 삶적으로 피폐해진다.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은 교사들이 평화샘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천결과를 책으로 내었다. 북유럽의 실천을 받아들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고쳐서 폭력을 없애는 나름의 지침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침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하나하나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폭력의 반대가 평화라는 사실, 보살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보살핌이 학교에서 살아날 수 있음을 자신들의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실천 중의 하나인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을 보자.

 

1.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2. 우리는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을 도울 것이다.

3.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다.

4.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누구나 실천하기는 힘든 이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멈춰!"를 도입한다. 괴롭힘이 있을 때 피해자가, 또는 주변의 친구들이 멈춰라고 말하고,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과정에서 역할극을 하고, 이를 다른 경우로까지 적용하여 일반화한다. 그래서 폭력을 단지 방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평화를 만드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 제도가 정착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교사부터 선언해야 한다는 사실, 본인부터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겠다는, 폭력에는 끝까지 책임지고 대처하겠다는 그런 선언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교사가 하고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평화가 깃들도록 하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아니, 반드시 교실에 평화가 깃들도록 해야 한다.

 

남학생의 사례에서 여학생의 사례, 직접적인 폭력에서 간접적인 폭력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그 해결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학교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교사들이 꼼꼼이 이 책을 읽고 대처한다면 학교 폭력이 많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책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풀어가기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그 수준에 맞는 해결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데 있다. 담임이 거의 모든 시간을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초등학교와 담임이라고 해도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중,고등학교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실천사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평화샘들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럴텐데, 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실천사례들을 정리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처하기보다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평화로운 학급, 보살핌이 있는 학급,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학습에 시간을 쫓기는 아이들에게서는 평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고, 남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면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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