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나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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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 된(?) 책이다. 이 책이 2003년에 나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번역이 되었으니, 벌써 8년이나 지났다. 과학분야에서 8년이란 천지개벽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간인데... 아마도 그동안 뇌과학 분야에서는 더 많은 성과들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이 뒤집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오히려 이 책에 나온 가설들이나 주장들이 더 정교하게 증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뇌란, 완성되고, 고정되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변할 수 있다는 뇌의 가소성에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고 연일 언론에서는 떠들어대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새삼스레 떠들어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청소년 문제는 늘 심각했음은 사실이니...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동조, 걱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인데...

 

뇌과학의 도움으로 인간의 행동들이 뇌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는 이 책의 제목은, 행동만을 겉으로 보지 말고, 또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청소년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해결점을 찾자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은 방법들은 이미 8년 전에 나온 이 책에 비해서도 한참 뒤떨어지는 방법들이니... 교육계에서만은 최신 뇌과학들의 성과가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이들이 거칠게 행동하고, 일탈행위를 하고,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은 아직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전두엽은 발달하지 못했는데, 흥분과 모험을 일으키는 도파민은 왕성하게 분비가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물론 여기서는 다시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데, 일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 여기서 환경을 생각하는데... 자신의 뇌에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았다면, 외부에서 그것도 자신이 공감하는 사람이 전두엽의 역할을 한다면, 일탈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소년의 상황을 이해하되,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런 환경을 교육에서 갖춰야 하는데, 단지 상황을 경찰에 넘기는 것은 이 책에서도 반대를 하고 있고, 또 체육활동만으로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체육활동만으로 자신의 폭력성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환경을 통해 제어하는 것이고, 지나친 체육활동은 피로를 유발하기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한다.

 

펀안한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 그리고 적당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실수를 하되, 그를 바로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교육에 필요한 요소이고,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청소년의 잠을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다른 문제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잠을 보장하는 교육제도, 그걸 마련하는 것이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전문기자가 써서 쉽게 읽힌다. 뇌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분석하지 않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알게 된 내용을 쉽게 정리해서 썼기에 이해하기도 쉽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다음 관심이 있으면 뇌에 관한 전문서적을 찾아 읽으면 된다. 요즘은 좋은 책이 많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 청소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우선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개괄적으로 알려주는 책.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유효성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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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나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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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의 뇌는 부모나 교육자, 심지어 과학자들이 생각해왔던 것보다 외부의 영향력에 더 노출되고, 더 쉽게 상처를 입고, 심각하고 장기적인 손상에 훨씬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44쪽

십대들은 ... 대부분은 어쩌다 한번씩..."미쳐보고 싶고", 충동을 따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47쪽

전두엽은 뇌에서도 충동을 억제하고,
... 부모가 십대들의 "전두엽"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50,61쪽

뇌에서 "유전 가능성이 가장 낮은" 부분, 일란성 쌍동이 사이에서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가장 많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소뇌... 소뇌가 사회적인 신호의 인식, 심지어 농담을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에서 기존의 생각보다 훨신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주장 ... 소뇌가 청소년기 전반에 걸쳐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74쪽

뇌가 제대로 발달하려면 일정한 경험이 필요하다-82쪽

뇌의 백질을 이루는 미엘린은 뉴런 세포체에서 길게 뻗은 축색돌기를 푹신한 담요처럼 감싸고 있는 지방막이다. 피복 물질 역할을 해서 뇌의 전기 신호가 축색돌기가 의도한 경로를 따라 전달될 수 있게 하며, 신호 전달의 속도를 높여준다.-86쪽

십대들의 뇌에서 미엘린의 성장을 확인한 부분은 뇌이랑과 해마라는 중요한 영역을 이어주는 중계소 역할을 한다. 뇌 중간에 자리잡은 세포다발인 해마의 중요성은 잘 알려져 있는데, 새로운 기억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며 뇌에서는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꼽힌다.-88쪽

청소년기에 여전히 미엘린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된 부분은, 순간적인 반응을 연대기적으로 전후 맥락을 고려한 사고와 연결해주는 회로의 핵심 부분이다.-89쪽

여자의 뇌가 남자의 뇌에 비해 미엘린화가 빨리 진행된다는 사실을 발견-90쪽

어른들은 충동에 재갈을 물리고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전두엽이라는 부분으로 반응하는 반면에, 십대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109쪽

십대들이 성인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들에겐 사회적 신호를 정확하게 분류할 경험이 부족하고, 제 기능을 완전히 수행해서 전후의 맥락을 제공해줄 전전두엽 피질이 없기 때문에 세상을 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110쪽

평균에서 벗어나 성숙이 늦거나 일찍 성숙한 아이들이 곤경에 빠질 때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137쪽

근육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 외에 도파민은 쾌감-보상 회로라고 알려진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회로는 뭔가 좋아하는 것을 갖게 될 때,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활성화된다.-149,150쪽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도파민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십대들의 도파민 수치는 대부분의 성인에 비해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151쪽

아이들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때로는 실수를 저지를 필요가 있습니다.-171쪽

갑론을박이 있기는 하지만, 뇌의 적잖은 영역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이른바 '성별에 따른 이형증'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일치한다. 시상하부의 몇몇 영여성적 행동에 관련된 부분, 누가 뭘 아는가와 관련된 부분 등-은 남자의 뇌가 확실히 더 크다. 반면에 뇌의 양쪽 반구를 잇는 섬유다발의 일정한 부분들은 여자의 뇌가 더 크다.
...뇌의 중앙에는 세포다발로 이루어진 편도핵이라는 것 ...'배짱'이라고 불릴만한 반응...테스토스테론 수용체로 가득하다. ... 편도핵이 같은 십대라도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뇌에서 더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억을 형성하며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널려 있는 해마는 청소년기의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 비해 성장이 빠르다는 사실도 밝혀냈다.-214,215쪽

행동은 호르몬의 수치와 뇌의 구조를 변화시켰고 그렇게 달라진 구조는 다시 동물의 행동 양식을 결정했다.-226쪽

십대가 되면 어렸을 때에 비해 멜라토닌 분비가 많게는 2시간까지 늦춰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멜라토닌은 뇌의 수면물질 가운데 하나이다.-252쪽

십대들은 사실상 어른들보다 훨씬 많이 자야 한다.-253쪽

수면이 부족한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도 뒤떨어지고, 슬픔이나 좌절감의 정도를 측정하는 테스트에서도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유쾌하지 못한 것이다.-255쪽

십대들에게 수면이 지나치게 부족할 경우 특히 두가지 중요한 것, 즉 사고력과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이 동시에 손상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256쪽

술을 많이 마시는 십대들의 해마가 술을 마시지 않는 또래들에 비해 10퍼센트 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81쪽

전전두엽 피질이 청소년기에 대대적으로 재조정되며, 이 정신질환의 상당 비율이 이 시기에 드러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300쪽

청소년들의 전전두엽 피질이 여전히 발달 중이라는 사실은 청소년들이 항상 결과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때문에 가끔은 부모들이 개입해서-이를테면 아이들의 전두엽 피질이 돼서-약간의 통찰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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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20
사이먼 스위프트 지음, 이부순 옮김 / 앨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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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지도 않은 책이다. 그리고 아렌트 전기도 아니다. 이 책은.

 

아렌트의 저작들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개론서라기보다는 아렌트 이론을 자신의 틀을 가지고 해석한 책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도 두껍지 않은 이유는, 제목에 있는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논문처럼 정교하게 아렌트의 이론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자리매김하지 않고, 그냥 아렌트 저작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 속에 자신의 관점을 집어넣고...

 

그래서 이 책은 아렌트의 저작을 다 읽은 사람이 읽으면 좋다. 자신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으므로.

 

아니면 거꾸로 아렌트의 저작을 읽으려고 생각한 사람이 읽어도 좋다. 아렌트의 저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있으므로.

 

아렌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혁명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리고 정신의 삶 등을 중심으로 각 장을 나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문학작품까지도 곁들여서.

 

작은 책에 아렌트 사상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저자가 이해한 아렌트이기에, 우리 자신이 아렌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정하는데는 조금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이야기 하기는 자유와 관련이 된다고 한다.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건으로부터 조금 떨어뜨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이를 종합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여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하여 이야기 하기는 정치적인 활동이 되고, 자신의 삶을 남에게 드러내는 용기를 지녀야지만 가능하다. 여기에 또한 남을 인정한다는 약속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을 지니기에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용서까지도 지녀야 하는 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아렌트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아렌트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아렌트를 한 번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읽어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말

 

아렌트가 플라톤보다는 소크라테스를 지지한다고 했는데, 즉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사이에 내려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지녔다면, 플라톤은 사람들을 떠나 사람들 외부에서 진리를 주입하려 했다고 그래서 아렌트는 소크라테스가 정치 활동을 하는 공적인 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를 지지한다고 자신이 말하면서도 그 자신의 이론은 플라톤과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렌트가 과연 자기의 이론을 사람들 곁으로 가지고 내려와 그들과 함께 토론을 했던가? 설득을 하려 했던가?

 

아렌트는 플라톤의 철학자처럼, 자 이것이 진리다. 너희들은 우상밖에, 그림자밖에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저작들이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론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야 겨우 알듯한 이론으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그리스-로마 전통에 익숙해져 있는 서양 사람들도 이 아렌트를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알 수 있는데, 동양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라기 보다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는,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는 플라톤과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렌트가 무국적자로 살다가 미국에서 국적을 얻었기에, 그런 무국적자 체험이 아렌트로 하여금 인간사회에서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이래 저래 아렌트는 나에게는 어려운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는데... 이 책을 읽어도 사실 정리가 안되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아렌트는 내 삶의 전체를 통해서 계속 반추해내야 하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다.

 

삶 전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할 수 있다면, 그 때는 아렌트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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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 이성아 소설집
이성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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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참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도 그렇고, 국어시간에 배운 소설들을 더 읽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또 소설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그래서 서점에 가면 어떤 소설들이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는 작가의 소설이 나오면 망설이지 않고 사기도 했었는데...

 

하다못해 최신 경향의 소설을 알아야 한다고 문학상 작품집들을 읽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 소설이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존에 사 모았던 소설들은 헌책방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기도 했고.

 

이럭저럭 소설을 잘 읽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현실이 더 소설 같아서. 도대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아니 소설보다 더한 일들이 현실에서 펑펑 터지는데, 소설을 읽을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또 소설들이 지나치게 무슨 기법을 시험하는지, 읽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드는 소설들도 많았으니, 이래저래 소설에서 멀어지게 되었는데...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문학사회학에서 주장을 했고, 따라서 소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문제에 다가갈 수 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문제적 개인이었고, 이 문제적 개인에 대한 판단에 따라 어떻게 우리 삶을 꾸려갈 수 있나를 고민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데 요즘은 삶이 너무 팍팍한데, 소설을 읽으면 더 삶이 퍽퍽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소설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 거리두기, 소설을 읽을 때도 필요한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베르테르 효과도 소설에 거리를 두지 못한 결과 아니던가. 그런데, 요즘 소설은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만든다. 현실이 더 팍팍한데, 어떻게 소설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지, 소설을 읽으며 오히려 현실과 비교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었는지, 이제는 소설의 인물에 몰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읽으면서 분석하고 비판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나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소설의 장년에 비유한 어느 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미 자신의 삶의 치열성에서 조금은 빗겨난 나이... 그러한 나이에 읽는 소설은 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은, 이러한 장년의 나이도 아니다. 읽으면서 이 소설은 노년의 나이에 읽어야 하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총 8편의 단편들로 묶여 있는 소설집인데, 이 책의 제목이 된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는 단편의 제목이 아니다. 이는 이 소설집의 첫번째 소설인 '저 바람 속 붉은 꽃잎' 중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로 제목을 삼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내용은 제목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가 아니라, 태풍이 지나간 다음,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 소설집에는 태풍, 우리 인생에 한 번쯤 휘몰아치는 그런 광풍을 고스란히 겪은 후 그 다음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소설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마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듯이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고, 또 아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편지를 읽듯이 읽을 수 있게 소설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특히 주요 인물들이 인생의 격랑을 거친 여성들... 그래서 이 소설은 여성주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 시대는 여성성을 회복해야 하는 시대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여성성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들이 이 소설집에는 많다.

 

삶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오롯이 겪어낸 여성이 이미 나이가 들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들... 그 과거의 장면은 바로 태풍이 몰아치는 장면이고, 잠시 행복했던 순간은 태풍의 눈에 들었던 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평온하고, 행복에 젖어 있더라도 그 순간이 태풍의 눈 속의 순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네 삶은 결국 태풍을 온몸으로 견디는 일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편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속칭 불륜에 빠지기도 하고, 장애인 자식을 두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유지해 나간다. 그러한 강인함, 그 강인함을 부드러움으로 감싸안는 사랑, 이것이 바로 여성성이고, 이 소설에 나타난 모습이기도 하다.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아니, 이 소설의 제목을 바꾼다.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바로 내 인생에서 태풍은 지금 다가오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한 번 겪고, 지금은 잠시 평온한 상태인 태풍의 눈에 있을까, 아님 태풍의 눈 시간이 지나고 다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 있을까?

 

이 소설에 나오는 여인들은 이미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서서, 태풍을 겪던 시절을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노년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의 삶은 어디쯤 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삶에서 지금 태풍은 도대체 어디쯤 와 있을까?

 

나는 태풍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낼까?

 

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황량함. 태풍이 지나간 삶의 황폐함. 그러나 삶은 살만한 것이므로, 그 황폐함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습. 이미 쓸려간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이 비록 비루할지라도.

 

따라서 이 소설은 노년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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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약속 푸른숲 필로소피아 14
한나 아렌트 지음, 제롬 콘 편집, 김선욱 옮김 / 푸른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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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철학자 아렌트. 그의 유고집이다. 그러므로 체계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렌트의 사고 전반을 알 수 는 책이므로 읽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앞에서 번역자의 해설과 뒤에 있는 편집자의 해설이 그나마 이해에 도움을 주지만, 하여간 상당히 고민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은 맞다. 그렇다고 읽기로 끝내서는 안된다. 읽기란 삶을 변화시키는 행위 아니던가.

 

그리고 읽기 자체가 아렌트의 말로 하면 정치 행위 아니던가. 우리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읽기란 곧 대화이고, 이 대화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대화이기도 하고, 읽는 사람 자신의 하나 속의 둘의 대화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 또는 읽을 사람과의 대화이기도 하니, 읽기는 결국 자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의 관점과 비교하는 행위가 되고, 이러한 행위는 바로 정치적 행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의 말을 인용해 보자.

 

정치는 인간의 복수성에 기초한다.(132쪽)

 

단수의 인간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이기에 정치가 필요하고, 우리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나? 아렌트의 말을 또 인용하면 여기에는 판단이 필요하다.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판단 없이는 전혀 기능할 수 없는데, 정치적 사고는 본질적으로 판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140-141쪽)

 

그렇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판단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아렌트는 '우리의 삶과 연관된 우리의 사적인 경험과 가족적 연관관계에서 벗어남으로써만'(164쪽)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소위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아렌트의 지적에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는 말 안해도 다 알겠고, 이들은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바꾸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정치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치가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아렌트의 관점에서 올해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올해가 얼마나 중요한 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무려 선거가 두 번이나 있는 해이고, 이 선거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면, 국회의원과 대통령이라는 소위 정치가를 뽑는데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해야지만 올바른 정치행위를 하게 된다고 본다. 우리가 정치 행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렌트가 말하는 이러한 정치가를 선출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정치가란 정당체제라는 우회적 방법을 통해 인민들의 대표자를 자처하며, 또한 국가 내에서, 필요하다면 국가에 대항해서 인민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185쪽)

 

자. 이런 사람을 정치가로 뽑아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들이 제대로 된 정치 행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행위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불편부당성이다. 불편부당성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편견을 극복하는, 그래서 우리의 의견으로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고 행위함을 말한다.

 

불편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여기서 판단이 나오고,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즉, 이전투구 판에 끼어들어 함께 진흙을 묻히며 뒹군다면 우리는 행위에 매몰되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과거를 살필 수 있어야 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과거와 미래 사이인 현재에 내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사유해야 한다.

 

최소한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정치판을 보고, 그 정치판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 그는 정치판에서 거리를 두고, 불편부당성의 관점에서 판단을 하고, 그 정치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순간의 행위를 영원으로 기록하고, 이야기로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하기, 이건 엄청난 정치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적어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지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 수가 없다.

 

과거 747공약으로 대표되는 많은 공약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판단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올해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걸고 있는 수많은 공약들의 실현가능성,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될 테고, 그렇다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게 됨으로써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정치 행위를 하게 된다.

 

정치,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무슨 무슨 정치 집단, 또는 정당에 가입한다고 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정치는, 이러한 행위들을 보고,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행위 속에 있다. 이 행위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때 정치는 바로 우리 곁에 있게 되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치적 인간'이 된다.

 

우리 정치적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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